새 힘을 주시는 하나님을 앙망하라! (사 40:27-31)
유대인의 지혜서인 탈무드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젊은이가 등산을 갔다가 깊은 산 속에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는 되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산을 내려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내려오는 길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엄청나게 내려왔다고 생각되는데도 그냥 숲 속입니다. 마을도 보이지 않습니다.
피곤에 지쳐 있을 때, 절망에 빠져 있을 때, 한 백발의 노인이 그에게 나타나서 충고하기를 "산 속에서 길을 잃었다고 아래로 내려가면 죽는 길이야! 반대로 위로 올라가야 해.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사방을 바라보아야 마을도 보이고 내려가는 길도 보이지, 그런 후에 방향을 정하고 갈 길을 찾아야 해!" 그리곤 사라졌습니다.
우리는 이 노인의 가르침에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가 문제가 터지고 어려울수록 모든 문제에 해답을 가지고 계시고 모든 위기를 극복케 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를 바라봐야 합니다. 사람은 원래 '위를 보고 사는 자'란 뜻으로 '안드로포스'란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사야서는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1-39장: 이스라엘의 우상숭배와 범죄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비참한 생활을 하는 장면입니다. 포로는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가장 아픔을 당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절망이고 비극이고 고통입니다. 40-66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절망 속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말씀하시기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할/
이사야가 이 말씀을 할 때는 이스라엘이 굉장히 절망에 빠져 있을 때였습니다. 지금부터 2600여 년 전 그들이 바벨론에 침략을 받아서 나라가 망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머나먼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가서 처참한 노예생활을 하게 됩니다.
한해 두 해가 아닙니다. 10년 20년도 아닙니다. 4-50년 반세기가 흘려갔습니다. 그러함에도 포로생활에서 해방될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절망 속에 탄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의 종 이사야가 외치기를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새 힘을 얻으리라" ▶무슨 뜻입니까? 어려운 일을 당할수록 피곤에 지쳐 있을 때일수록 문제가 생기고 사건이 터지고 고통스럽고 괴로운 일이 생겼을 때일수록 이 모든 것을 해결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설교 제목!▶
세상 사람들을 우리는 세 종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⑴실패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매사에 자빠지고 넘어지는 사람들, 한마디로 불쌍한 존재들입니다. ⑵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실패한 사람들에 비하면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성공하기를 원합니다. ⑶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실패해도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을 다시 일으키십니다. 욥5:18-19절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 /아멘!/
사실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요람(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서) 무덤까지 가는 동안 성공만 한다면 세상 살 맛 날것입니다. 그러나 성공만 할 수는 없습니다. 세상 살다보면 언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산이 있고, 바다가 있고,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겨울도 있습니다.
인생이 그렇습니다. 실패도 있고, 성공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패한 후에 성공하는 경우입니다. 성공하고 잘 살다가 실패로 인생을 마감하는 것보다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성공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더 멋진 행복이요 축복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오늘 본문은 넘어지고 자빠져도 다시 일어서고 새 힘을 얻는 비결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한 번 얻은 성공을 지켜나가는 것도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만 그러나 실패를 딛고 다시 재기하는 것은 더욱 힘든 일입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넘어지는 사람과 넘어지지 않는 사람, 쓰러지는 사람과 쓰러지지 않는 사람,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과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1. 어떤 사람이 넘어지는 사람입니까?
①의심하는 사람들입니다(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이 말씀은 한마디로 이스라엘의 불 신앙과 의심을 꾸짖는 말씀입니다. 사정을 몰라준다고 의심하고 불평하니 이게 웬일이냐는 하나님의 탄식입니다. 여기서 '야곱'은 인간 욕심으로 살아갈 때 그 이름이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른 것은 '승리자'로 바꿔진 이름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너희들이 은혜 안에 있을 때나 은혜밖에 있을 때나 왜 그리 불 신앙이 그득하냐는 질책이십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잘못은 생각해 보지도 않고 '하나님이 택해주신 선민인 우리가 왜 이방 나라 바벨론에 재산을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게 놓아주셨는가? 그들이 양식을 다 약탈해 갔음으로 이스라엘은 헐벗고 굶주리고 기아선상에 허덕이고 있는데 왜 이런 사정을 하나님이 몰라주시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사정을 몰라주는 것을 보니까 '하나님의 사랑도, 약속도, 믿을 수 없다. 하나님의 권능도 정말 있는지 모르겠다.'고 이스라엘은 의심을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것은 그들의 오해입니다. 더 나아가 불신이며 의심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원통함'이란 '송사' 또는 '권리'로 번역되는 말로 인간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공정한 재판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사정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원통한 것을 수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나 자신이 모르는 것까지도 하나님은 알고 계시는 분입니다. 시103:14절에는 "우리의 체질을 아시고 우리가 진토임을 아신다."고 했고, 시69:5절에는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지도 아시고 심지어 사람의 생각과 마음과 행위도 모두 알고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도 셀 수 없을 만큼 많고 많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고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사정도 원통함도 모른 척 한다고 불평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의 의심은 불 신앙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심하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마14장에 보면 예수께서 물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베드로가 "나를 명하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예수께서 명하니 베드로는 물 위로 걷다가 풍랑을 보고 바다를 보다가 그만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주님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느냐?" 하시고 꾸짖었습니다.
의심하는 자는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약1:6-7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은 믿음의 사람들 편에서 일하십니다. 의심하면 주님이 곁에 서 계셔도 알아보지 못합니다. 눅24장에서는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에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함께 걸으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눈이 의심으로 가려져 있었기 때문에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내 곁에 계시고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돕고 계시지만 믿음이 없고 의심하는 눈에 가려지면 주님은 알아보지 못합니다. 의심하는 자는 물 속에 빠집니다. 기도의 응답도 없습니다. 결국 패배이며 절망일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은 의심이 아니라 확신입니다. /믿/ 히11:1절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했습니다. 막9:23절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할/
②고백이 잘못된 사람이 넘어집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입을 잘 못 놀리는 사람은 넘어집니다. 27절 하반절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앞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니 '하나님이 이게 웬 말이냐?'고 탄식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들은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억울한 사정을 아신다면 갈 길을 열어 주실 텐데 왜 이렇게 길이 막히느냐? 아무리 보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몰라주신다.'는 원망입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좀 잘되면 다른 사람을 보지 않고 자신의 잘되는 것만 보면서 교만해집니다. 그러다가 자기에게 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과 비교해 보지도 않고 자기의 어려운 것만 생각하면서 낙심하고 원망하기 쉽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뭐가 좀 잘되고, 무엇인가 좀 했다고 해도 우리보다 더 잘하는 사람을 생각하면서 겸손해야 하며 또 좀 어려움이 온다 할지라도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모든 것이 자기 자신의 표준이 되어 교만해 합니다. '낙심했다, 원망했다, 타락했다' 하면서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평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기도하면 들어준다고 하더니 무엇을 들어주었단 말인가? 하나님을 믿으면 능치 못함이 없다고 하더니 별 볼 일이 없네!' 하면서 하나님을 과소 평가해 버립니다.
하나님은 평가의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경배의 대상입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의 고백이 있습니다. 하나는 감사의 고백이고, 다른 하나는 불평과 원망의 고백입니다. 감사는 다시 일어나는 에너지이고, 원망은 넘어뜨리는 에너지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고, 원망과 불평은 마귀가 기뻐하는 것입니다.
시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그러나 원망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불 뱀을 보내십니다. 민21장을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다가 에돔 땅을 통과해야 하는데 에돔 사람들이 통과 시켜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 길 때문에 그들이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그때 사방에서 불 뱀이 나타나 백성들을 물어 죽게 했습니다.
민21:6절 "여호와께서 불 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원망하지 맙시다. 생활 속에, 환경 속에, 불 뱀이 옵니다. 결국 원망하면 남이 죽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죽고 맙니다. /믿/
③원통한 일이 있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보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실 포로로 잡히고, 있는 것을 빼앗기고, 멸시 당하고 천대를 당할 때, 그때는 원통합니다.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쳐다보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 이럴 수가 있습니까? 왜 내 억울한 사정을 알아주지 않습니까? 왜 나에게 구원을 베풀지 않습니까? 왜 나에게 도움을 주지 않습니까? 왜 원통함을 풀어주지 않습니까?"하고 낙담하기가 쉽습니다. 극한 고난에 빠질 때 인간은 좌절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순간이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됩니다.
렘20:12절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수하심을 나로 보게 하옵소서." 우리의 사정을 하나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때가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시고 도와주시는 분이십니다.
눅18:7절에도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원통함을 풀기 위해서, 원한을 풀기 위해서 밤낮으로 부르짖고 기도하는 자에게 반드시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때가 되면 역사 해 주십니다. /믿/
▶요즘 사람들을 보면 울화병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희의료원에서 많은 중풍병자를 대상으로 그 원인을 조사했습니다. 그런데 중풍병자 200명중 약 30%가 그 병의 원인이 울화병으로 나타났습니다.
남에게 돈을 떼였다든지, 남에게 무시를 당했다든지, 아니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당해서 근심 걱정에 빠졌다든지, 또는 시댁 식구와 갈등을 느꼈다든지 어쨌든 울화병이 결국은 중풍을 가져온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마음의 평안이 중요합니다. 인생을 기쁘게 살며, 감사하게 살며, 생기 있게 살아야 건강합니다. 울화병에 시달리고, 화병에 시달리고, 분노에 시달리고, 더 나아가서 용서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국 그 사람은 병들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원통함을 당합니다. 이럴 때 그 원통함을 푸는 방법이 딱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내가 원수를 값아 야지' 하는 보복하겠다는 마음이고, 또 하나는 '용서하자'는 마음입니다. 보복하는 마음과 용서하는 마음, 이 둘 중의 하나를 택해야 합니다. 그런데 보복하겠다는 앙심을 가지고 독을 품는 그 순간부터 우리 자신도 해를 당하게 됩니다. 남한테 흙을 던지려면 자기 손에 흙을 만져야만 합니다. 남한테 해를 끼치려면 생각도 마음도 악해야 합니다.
그러나 용서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이해하면 결국 그 마음도 평안해지고 안정을 얻게 됩니다. 내 사정과 원통한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주님을 앙망하시기를 바랍니다. /할/
2. 어떤 사람들이 넘어졌다가도 일어나는 사람입니까? 이것이 중요합니다.
①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배 안에 많은 사람들이 탔습니다. 주로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학자도 한 분 탔습니다. 배에 타고 있는 상인들이 자기들이 무엇을 팔며 어떤 수완으로 장사를 하고 있는지 저마다 자랑을 하다가 아까부터 입을 다물고 있는 학자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무엇을 파는 사람이요?" 학자가 대답을 하기를 "내가 파는 상품은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거요" "그 것이 뭐요?" 그러나 학자는 입을 굳게 다물고 빙그레 웃기만 했습니다.
장사꾼들은 나중에 그 학자가 잠이 든 틈에 도대체 이 작자가 파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아내려고 그의 짐을 뒤졌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미친 녀석이구먼." 그런데 그들이 탄 배가 그만 풍랑을 만나 난파하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가까스로 한 섬에 내려 무사했습니다. 그런데 그 섬에 한 현자가 배에 타고 있던 학자를 알아보고 그 학자에게 가르침을 받기를 청했습니다. 자연히 학자는 섬사람들에게 존경을 받고 좋은 대접을 받았습니다.
같이 배에 탔던 상인들이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 사람의 머리 속에 든 것이 가장 값진 상품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지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 지식 중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그 분은 영원토록 전능하신 분입니다. 모르는 것이 없으시고 못하는 것이 없으신 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심을 알았으면 그 분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는 사람이 복된 사람입니다. 신앙의 삼박자는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것이 힘입니다.
▶28-29절은 이스라엘이 원망할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못난 놈들, 너희가 어찌하여 쉽게 낙심하느냐?'고 탄식하시면서 그들의 죄를 깨닫기 위해 다시 한번 하나님 자신을 소개하고 계십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느냐? 듣지 못하느냐?" 무슨 소리입니까? 너희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느냐? 또 애굽에서 너희를 구원할 때 베푸셨던 그 많은 기적들을 잊었단 말이냐? 그러면서 하나님은 자신을 소개하십니다.
28절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⑴영원한 창조주이십니다. 하나님은 영원하신 분, 그리고 세상 우주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세상 우주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그분이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세상의 권력자가 하나님의 일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⑵지칠 줄 모르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와 대 우주를 운행하시면서 지치거나 피곤을 느끼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조금만 과해도 힘이 없습니다. 우리는 하루 밤만 꼬박 세워도 지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치고 피곤해서 넘어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런 하나님만이 자기 백성들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본문의 주님의 심정은 '너희가 어찌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을 너희 인생들처럼 생각하고 함부로 의심하고 원망하느냐?' 하시면서 자신을 보여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⑶명철이 한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명철이 한이 없으십니다. 여기 명철은 하나님의 전지 전능 성만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백성의 요구에 대한 그 어떤 사정도 이해하고 동정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칼까지도 세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까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
지금 이스라엘은 바벨론에서 고통 당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하나님이 모르는 둔한 하나님으로 보았는데 큰 오해와 큰 실수입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삼상2:6-7절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 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 도다"
⑷명철이 많으신 그 하나님은 '피곤하고 무능한 자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9절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우리는 이 말씀에서 힘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넘어졌다 할지라도 다시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왜 넘어지고 실패합니까? 사람들은 피로 때문에 지쳐 쓰러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무능 때문에 도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능력을 주십니다. /믿/ 세상도 건강한 자, 지식 있는 자를 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건강을 주시고 지식과 지혜와 능력을 주셔서 쓰십니다. 이 얼마나 멋있는 하나님이십니까?
여러분! 누가 강한 자입니까? 누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는 자입니다. /할/아멘!/ 아멘이 나올 때 아멘으로 화답할 줄 아는 성도가 복을 받습니다. 크게 아멘 합시다!
⑸ 30절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젊은 청년도 피곤해서 넘어지고 장정도 넘어지고 자빠질 때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재벌 기업들이 쓰러집니다. 정치가들이 권력남용으로 감옥 속에 들어갑니다. 인간의 권세가 막 땅에 떨어집니다. 부귀영화가 하루아침에 없어집니다. 재물도 날개 치며 날아가 버립니다. 피곤하고 곤비하고 넘어지고 자빠지는 것이 인간의 실체라는 것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이것이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넘어지기 쉽습니다. 자빠지기 쉽습니다. 인간은 연약합니다. 큰 소리 칠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흙으로 지음 받았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태어날 때 발가벗고 맨손으로 울며 태어났다가 마지막 죽으면 한줌의 흙이 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가 인간인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믿/
시34:10절에서 다윗은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모든 좋은 것을 풍족하게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이 왜 넘어지고 자빠지는가, 왜 피곤하고 지치는가? 죄를 짓고 멸망하고 병들고 죽어 가는 원인이 있습니다. 그 원인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해서 그렇습니다(시107:10-11). 죄악 가운데 빠져서 그렇습니다(시38:8/36:12). 그 마음속에 욕심이 있어서 그렇습니다(전1:8). 때로는 교만한 마음 때문에 그렇습니다(잠 16:18). 우상을 섬겨서 그렇고(렘18:15), 하나님 말씀을 멸시해서 그렇습니다(벧전2:8).
▶어떤 사람이 일어서는 사람입니까? ②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입니다(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오직'이란 이길 뿐이지 다른 길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앙망은 하나님만 바라고 믿고 의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실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람을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신의 아픔을 느낍니까? 하나님을 앙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날마다 새 힘을 얻어 힘차게 일어나게 됩니다. /믿/
▶'앙망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바'입니다. 이 말은 원래 여러 가지 물건을 비틀어서 하나로 묶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너무 기다리고, 소망하고, 바라보다 보면 충분히 몸이 비틀리는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시25:5절에 시인은 "내가 종일 주를 바라본다."고 했습니다.
여러분이 종일 누군가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한두 시간 기다리는 것이라면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루 종일 눈이 빠져라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다 보면 정말 몸이 뒤틀리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앙망하다'는 말은 몸이 뒤틀리는 것 같은 고통을 느낄 만큼 누군가를 바라는 바로 그런 상황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사38:14절 역시 '앙망하다'는 말이 가진 이러한 의미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나의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오죽 기다리고 바라보았으면 눈에 핏발이 서고 침침해져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피곤을 느끼겠습니까? 우리는 누군가를 오래 동안 기다렸을 때, '눈이 빠지도록 기다렸다'는 말을 종종 사용합니다. '앙망한다'는 것은 그만큼 간절히 사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앙망한다'는 말은 '믿고, 의지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어려운 때일수록, 나를 의지하지 말고, 내 지식, 내 지혜, 내 능력, 내 권세, 내 환경을 의지하지 말고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잠깐 있다가 없어질 수 있는 돈을 의지하지 말고, 언제나 변할 수 있는 환경을 믿지 말고, 얼마 안 있어 늙어질 청춘도 의지하지 말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는 주님을 의지하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부모를 의지하고, 남편을 의지하고, 자녀를 의지합니다. 그런데 사2:22절에 보면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라고 묻고 계십니다. 한마디로 인생은 숨넘어가면 그만인데 어찌 의지할만한 믿음의 대상이 되겠는가? 안 그렇습니까?
▶또 '앙망한다'는 말은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천성을 향하여 가는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든지 믿음의 주인이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믿/
▶또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말은 '힘으로 교체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곧 죄악이 관영한 세상에서 성도가 자기의 힘만으로 한계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새 힘(영력)으로 교체하여 지치지 않게 능력을 발휘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건전지나 가스 같은 것도 일정한 량을 다 쓰고 나면 새 것으로 바꾸어 다시 사용하는 것 같이 성도의 신앙도 기력을 잃게 될 때 하나님께로부터 새로운 힘이 교체되고 공급된다는 것입니다.
▶'앙망'은 우리말 사전에서 '우러러 바람'이라고 뜻풀이를 하고 있습니다. '우러러 바람'에는 기다림과 소망이 다함께 담겨져 있는 매우 좋은 단어입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무엇을 준다고 했습니까? 새 힘을 주십니다. 새 힘이란 깨끗한 힘을 말합니다. "새 힘을 얻으리니" 원문을 직역하면 "힘을 새롭게 하리니"로 번역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 길에서 무엇을 바라느냐에 따라서 인생관이 달라집니다. 주님을 바라보면 하나님 중심의 인생관이 될 것이지만 세상을 바라보면 세속적인 인생관이 되고 맙니다.
3. 새 힘이 어떤 힘인가? ▶몇 가지로 알아보겠습니다.
⑴건강의 힘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머니(돈)가 최고가 아니라 건강이 최고입니다. 건강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복입니다. 건강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도 합니다. 건강이 있어야 가정도 돌봅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 복이 임합니까?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이 힘이 임합니다.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 일할 수 있는 건강도 주십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약하게 보이는데 보이지 않은 강한 힘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믿/
⑵지혜의 힘입니다. 사람은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혹 육신의 힘이 약하다 하더라도 이 지혜의 힘만 소유하면 만사에 똑 소리가 납니다.
잠13:14절 "지혜 있는 자의 교훈은 생명의 샘이라 사람으로 사망의 그물을 벗어나게 하느니라." 잠3:18절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 되도다." ▶이 지혜의 영을 누가 받았습니까? 솔로몬이 받았습니다. 저도 하나님 앞에 말씀에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⑶물질의 힘입니다. 물질도 대단한 힘입니다. 뭐니 뭐니 해도 돈이 있어야 사람 구실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도 돈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림의 모든 성도들이 물질의 새 힘을 다 받아 누리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물질도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신8:18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창26:12-14절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았다"고 했습니다.
⑷권세의 힘도 주십니다. 대권을 잡게 되고, 도지사 장관이 되고 총리가 되는 권세의 힘도 그 분이 주셔야 합니다. 이 권세를 누가 받았습니까? 요셉이 받았고, 다윗도 받았고, 다니엘이 받았습니다. /할/
⑸성령의 권능도 받습니다. 왕하2:12절에 보면, 엘리사는 불 말과 불 수레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엘리사를 바라보며(앙망하며) 소리 지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 하고 부르짖다가 성령의 두루마리가 입혀졌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권능을 받기만 하면 아무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가 나타납니다. 능력 박은 사람이 귀신을 꾸짖으면 귀신이 쫓겨갑니다. 능력 있는 사람이 저주를 몰아내면 저주가 떠나갑니다. 새 힘은 성령의 힘을 말합니다.
▶리빙스턴은 이 말씀 하나를 붙들고 아프리카를 정복했다고 합니다. 날마다 힘을 주시고 지혜를 주시는 하나님을 붙들고 승리했습니다. ▶어떤 신학자는 새 힘을 주신다는 말씀은 곧 '하나님 자신을 주신다.'는 뜻으로 해석했습니다. 맞습니다.
▶이 힘을 우리가 받아야 삽니다. 이 힘을 받아야 선하게 살 수 있고 사랑 할 수가 있고 의롭게 살수가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힘을 받아야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행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또 이 힘을 받아야 우리의 인격이 변화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할/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 되십니다. 시46:1절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러시아의 유명한 작가 톨스토이는 '신앙은 인생의 힘이다.'고 했습니다. 신앙적인 삶을 사는 사람과 신앙이 없는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습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베풀어줍니다. 그래서 나 홀로 사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사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고 바로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아 주시는 것입니다.
4. 새 힘을 받은 사람은 독수리같이 올라가는 복을 받습니다(31).
독수리는 새 중의 왕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독수리의 마크는 벌써 바벨론 시대 때부터 힘과 승리의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미국 대통령의 문장에도 독수리 마크가 사용됩니다. 푸른 창공을 높이 솟아오르는 독수리의 모습은 참으로 시원한 승리의 모습입니다. '넘치는 힘, 승리의 힘'입니다. 해병대의 엥카가 독수리입니다. 바로 이 독수리가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그런 힘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독수리가 하늘을 나를 때 그 나르는 방법이 네 가지입니다.
⑴비행입니다. 양 날개를 쭉 펴서 고정시킨 채 비행기처럼 비행하며 관찰합니다.
⑵날개를 펄럭거리면서 날아가는 힘이 대단합니다. ⑶하강입니다. 땅을 향해 쏜살같이 바로 내려꽂히는 것입니다. 공중을 빙빙 돌다가 적당한 먹이를 발견하면 바로 하강해서 낚아챕니다. ⑷비상, 즉 치솟아 오릅니다. 창공을 향해 마치 로켓처럼 수직으로 솟아오를 수 있습니다. 이 네 가지 중에서 독수리만 할 수 있는 독특한 것이 하강과 비상입니다. 그대로 땅으로 내려 꽃이고 하늘로 치솟습니다. 이것은 독수리만이 할 수 있습니다.
▶독수리는 솟아오릅니다. 하늘을 향해 힘차게 솟아오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이와 같습니다. /믿/ 비행기를 타보면 지상에서는 비가 쏟아져도 구름 위의 하늘은 한없이 맑고 푸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비구름이 지상 1000m 정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니 독수리는 비바람과 폭풍우의 구름을 뚫고 솟아오를 수도 있습니다. 모든 지상의 장애물을 넘어 높이, 높이 솟아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놀라운 힘을 주십니다.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무슨 복입니까?
⑴올라가는 복입니다. 과장이 부장이 되고, 부장이 전무가 되고, 전무가 사장이 되고, 사장이 회장이 되는 승진의 복입니다. /할/ 이 복이 여러분들의 삶 속에 이루어지기를 소원합니다. 또한 사업이 불같이 일어나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사업의 지경이 넓어지는 야베스에 복입니다.
똑같은 새라도 참새와 까마귀는 독수리와는 비교도 안 됩니다. 참새가 나는 한계가 있고, 까마귀가 나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독수리는 창공의 왕자입니다. 독수리는 보통 날 보다 폭풍우가 휘몰아칠 때 그의 실력이 발휘됩니다.
본문의 독수리와 같이 올라간다는 말은 남이 따라오지 못하는 성공 자가 됨을 의미합니다. 경쟁자들이 못 따라오는 성공! 남이 상상도 못하는 성공 자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누가 이 복을 받았습니까? 요셉이 받았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아미 자신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새 힘을 주시니 지혜가 넘쳐 단번에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할/
⑵승리자의 복입니다. 조건이 어렵고 환경이 복잡해도 하나님은 그 조건도 환경도 다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자이십니다. /믿/ 하나님은 원수 마귀 틈 못 타게 지켜주시고, 사망의 음부에서도 건져내 주시고, 환난 날에도 피할 길을 주시고, 결정적인 순간, 승리자로 만들어 주십니다. /믿/
▶하나님이 주시는 힘을 받아야 내 인생살이가 곤비치 않고 피곤치 않게 됩니다.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할/
여러분,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성령님을 의지하십시오. 성령님은 지금 저와 여러분 곁에서 힘을 주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십니다. 왜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습니까? 환경을 바라보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소망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시인은 외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피곤해 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의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할/
▶오래 전에 미국에 이런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를 여였고 너무 가난에서 학교에 제대로 다니질 못했습니다. 22살에 시골에서 구멍가게를 열었으나 파산하고 말았고, 23세에는 주 의회 의원에 출마했습니다만 낙선했습니다. 다시 사업을 시작했으나 자본이 부족해 파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던 중 사랑하는 여인은 그를 떠났고, 훗날 결혼을 하였지만 불행한 결혼이었습니다. 상원의원, 부통령에까지 출마했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그의 생은 한 마디로 실패의 반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은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고 지금도 세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그가 이 많은 실패와 난관을 이겨낼 수 있는 비결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 때마다 그에게 새로운 힘과 새로운 용기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실패와 어려움을 이기고 마침내 영광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믿/
그렇습니다. 무능한 80세의 노인, 모세를 불러 새 힘을 주셔서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게 하셨고, 농사꾼이던 기드온을 불러 그에게 새 힘을 주심으로 3백 명의 군대로 수만 명의 미디안의 적군을 쳐 이기게 하셨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소년 다윗에게 능력을 주시므로 그가 도저히 상대 할 수 없는 거인, 골리앗을 넘어뜨리게 하셨던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할/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을 앙모해서 새 힘을 얻으십시다! 새 힘은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요 성령의 불입니다. 개인도 교회도 그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교회가 새 힘을 얻는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재벌 한 사람이 새로 등록해서 교회가 재정적으로 큰 힘을 얻게 되는 것을 말합니까? 아니면 정치적인 실권자가 새 성도가 되어 교회에서 말 한마디만 하면 해결되는 그런 힘입니까? 아닙니다.
교회가 새 힘을 갖는다는 것은 교회가 진정한 의미의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넘치고, 영적인 예배가 있고, 살아있는 교제가 있고, 기도 열심히 하고, 전도 열심히 하고, 원칙에 따라서 치리를 하는 것이 교회에 새 힘을 줍니다. 강한 교회를 만들어 줍니다.
초대 교회에는 유력한 성도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지도자(사도)들 가운데 많은 숫자가 어부 출신입니다. 성도들 가운데 많은 분은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진정한 교회였기 때문에 새 힘이 넘쳤습니다. 이 힘 가지고 무엇을 이겼습니까? 로마를 이겼습니다. 그 당시 로마를 이겼다는 것은 세상을 이긴 것입니다. /할/
우리 모두 새 힘을 받아 인생 길에 위대한 승리자가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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