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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겨라! (약 1:2-12)

by 【고동엽】 2022. 2. 5.

시험을 온전히 기쁘게 여겨라! (약 1:2-12)

 

야고보서는 베드로전후서와 요한 1,2,3서와 유다서와 함께 공동서신으로 분류되는 성경으로 이 편지는 여러 교회들이 함께 읽도록 쓰여진 성경으로 예수님의 친동생 야고보를 통해서 기록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약 성경에는 야고보의 이름을 가진 사람이 넷이나 나옵니다. 야고보는 야곱의 헬라화된 이름입니다.
①마4;21절에 나오는 세베대의 아들 중 하나로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야고보입니다. 이 사람은 사도 요한의 형제로 갈릴리 바다의 어부 출신입니다. 그의 별명은 '우뢰의 아들'이라고 불렀는데 성격이 괄괄해서 소리를 잘 지르고 곧 잘 언성을 높이는 성격의 소유자로써, 그는 베드로와 요한과 더불어 우리 예수님의 수석 제자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는 사도 중에 제일 먼저 순교한 자로써 행12:1-2절에 보면 헤롯왕에게 칼에 목 베임을 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②마10:3절에 보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나옵니다. 작은 야고보란 별명을 가진 열두 제자 중에 한 사람입니다.
③눅6;16절에 열두 제자 중 하나인 가롯 유다가 아닌 유다의 아버지 야고보가 나오는데 그 생애는 별로 알려지지 않고 있습니다.
④본문을 기록한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를 메시야로 믿지 않았다가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보고 예수를 참 하나님의 아들로 믿었습니다. 그는 도덕적으로도 깨끗하여 예루살렘교회 초대 감독이 되었고, 기도도 얼마나 많이 했던지 그의 무릎이 낙타무릎같이 되었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그는 평생 면도질을 하지 않고 기름도 바르지 않았고, 술과 독주를 입에 대지도 아니했습니다. 백성들의 신임도가 얼마나 높았는지 그이 옷자락이라도 만지려고 하는 백성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또 그가 엘리야처럼 기도해서 가뭄에 비도 내리게 했다고 합니다. 그가 쓰던 의자를 4세기 때가지 보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는 주후 62년 경 새 총독 '알비네스'의 부임을 계기로 '율법의 파괴자'란 죄목으로 돌에 맞아 순교를 당했다고 합니다. 야고보는 죽으면서도 예수를 전했으며, 그이 마지막 기도는 주님의 십자가상의 기도처럼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의 무덤은 성전 옆에 묻혔다고 합니다.
야고보는 확실히 초대교회의 기둥이었습니다. 그의 신학의 근간은 '믿음은 행함이 따를 때 역사'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약2:22절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또 26절에서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그는 1절에서 자기를 소개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종은 그 몸에 흔적을 가졌습니다. 종은 주인의 소유를 표시하는 불 도장을 몸에 찍으므로 표시를 삼았습니다. 갈6:17절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바울은 자기의 몸에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매맞은 흔적, 옷을 벗으면 여기 저기 흔적이 있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눈에는 눈물로 얼룩진 통회의 흔적이 있어야 하고, ▶손바닥엔 사랑의 수고의 흔적이 있어야 하고, ▶발에는 평화의 사도의 발자국이 있어야 하고 ▶무릎에는 기도하는 무릎의 흔적이 있어야 하고, ▶허리에는 봉사와 겸손의 흔적이 있어야 하고, ▶입술에는 찬양과 회개의 합당한 열매가 있어야 하고, ▶가슴에는 예수의 심장으로 예수의 마음의 흔적이 있어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그렇게 살았습니다.
성경 66권 가운데 가장 철저하게 실천적 행함을 가리키는 생활의 복음이 바로 야고보서입니다. 오늘 본문은 시험과 시련과 환란이 닥칠 때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인가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제목소개!▶

 

사람은 성장을 합니다. 키가 자라고 몸집이 커 갑니다. 그런데 성장과 성숙은 다릅니다. 성숙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키는 어느 정도 자라면 끝이지만 인격의 성숙은 평생 계속 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의 성숙은 고난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히12:8절에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징계를 주시는데 하나님의 징계가 없으면 버려진 사생아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여호와 하나님이 징계합니다. 연단을 시킵니다.
2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여기 '시험'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3절에 "이는 너희 믿음에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여기서는 시련이라고 했습니다.
시련이 무엇을 만들어 냅니까? 인내를 만들어 낸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4절에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 단락을 잘 유의해서 보아야 은혜가 됩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룬 결과가 무엇인가?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할/ ▶여기 '온전'하게 하고 '구비'하게 하는 것, 이 두 가지 때문에 신앙의 연단을 시키십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냅니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가장 무거운 짐은 시험을 치르는 일입니다.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반듯이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자격시험, 승진시험, 면허시험 등 여러 가지 시험을 치를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시험을 치름으로 실력이 향상되고, 실력을 인정받게 됩니다.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시험을 많이 치른 사람들입니다.
또 시험은 자기 수준에 맞게 치러집니다. 초등학생은 초등학생에 맞는 시험을 치르고, 중학교, 고등학교는 그의 수준에 맞는 시험을 치르고, 대학생은 대학생이 맞는 시험을 치르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에게도 이런 각종 시험이 있습니다. 성도들도 예수 학교에서 시험을 치르게 되는데 감당할 수 있는 시험만 치르게 됩니다. 신앙이 성숙하려면 많은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고전10: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1. 시험에 대하여 몇 가지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①시험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각자 나름대로 자신들에게 힘겨운 시험을 경험한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시험을 당할 때 우리에게 다가오는 감정은 절박감입니다. 우리가 앞뒤좌우가 꽉 막힌 것 같은 위기를 당하면 절박해집니다. 이 때 우리는 기도하게 됩니다.

②시험 안에 하나님의 음성이 있습니다.
내가 시험 당하기 전에는 보지 못하던 영의 세계를 보는 영의 눈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시119:71절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고난 자체가 유익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고난 중에 하나님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다, 지금까지 못 보던 것을 보게 되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성 프랜시스는 극한 질병을 통과하고 나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병은 예수님의 은혜였다, 예수님은 병을 통하여 나를 방문해 주시고 나를 새롭게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어떤 이는 '고통은 거룩한 병이다' 이렇게 체험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③예수님은 시험받으실 때 오직 말씀으로 이겼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시119:67절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불 신앙으로 살았으나 이제는 내가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지킨다는 고백입니다. 우리가 시험 중에 삶의 가치를 말씀중심으로 형성해야 됩니다. 믿음의 성숙이 바로 시험을 통한 하나님의 목적입니다. 사람이 떡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다는 것을 붙잡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험을 주십니다.

④예수만 믿으면 모든 일이 잘되고 만사가 형통하고 운수가 대통하리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성도들이 시험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져야 신앙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잔뜩 잘될 것으로 기대했다가 몇 차례 시련을 당하면 그냥 믿음을 포기해버리기 때문에 어느 세월에 믿음이 들어가겠습니까? 돈 달라면 돈주고, 건강 달라면 건강 주고, 지혜 달라면 지혜 주시는 하나님으로만 착각하면 안 됩니다. 여기에는 신앙의 성숙은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⑤시련이 없는 믿음은 우리를 견고하게 세우지 못합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감독으로 30여 년 간 목회를 하다보니 가장 큰 문제가 시험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시험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개인도 시험을 당하고 교회도 시험을 당합니다. 교회가 큰 일을 하려면 시험을 당합니다. 교회를 짓는다든가 선교를 한다든가 중대한 일을 계획하다보면 시련을 주십니다. 어떤 교회는 부흥회를 마치고 시련에 처합니다.
믿음 생활을 할 때 크고 작은 시련이 올 때 시험으로부터 참으로 자유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련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자란다는 사실, 시련을 통하여 지혜를 얻고 시련을 통하여 많은 유익을 얻은 다는 사실을 오늘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

 

2. 본문 2-4절과 12절에서 은혜를 받으십시다!

 

우리는 본문에서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 하나를 만나게 됩니다. 무엇인가? 2절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겨라!" 아니 어떻게 시험을 만났는데 그것도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났는데 기쁘게 여길 수가 있을까요?
여러분, 성경은 우리에게 역설적인 교훈을 줄 때가 많습니다. 먼저 결론을 말씀드린다면 여기서 말하는 시험은 입학시험과 같은 시험으로 그 시험을 통하여 더욱 더 '온전한 신앙, 성숙한 신앙'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믿/
그리스도인의 시험은 환란이나 어려움이 올 때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아 드리는 자세로 기쁘게 여기라'고 말합니다. 그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고 참으면 큰 축복이 된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시련을 재앙으로 받아 드립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을 복으로 받아 드리는 자들입니다. /믿/
시험은 신앙 정도에 따라 다릅니다. 목사가 받는 시련이 있고, 권사가 받는 시련이 있고, 집사가 받는 시련이 있고, 평신도가 받는 시련이 있습니다. 큰 시험이 있고, 작은 시험이 있습니다. 예수 믿는 성도라면 반듯이 시험을 치러야 합니다.
주님은 요16:33절에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할/ 무슨 말씀인가? 주님의 약속은 환난을 제거해 주시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환란 속에서도 믿음으로 살면 승리를 보장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기신 사건을 믿음으로 가면 승리할 수 있다는 약속입니다.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으로 '도키마조'이고, 또 하나는 마귀가 주는 시험으로 '페이라조'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마치 입학시험, 승진시험과 같아서 막상 시험을 치를 때는 괴롭고 쓰리지만 일단 시험을 치러서 합격하고 나면 더 큰 축복이 됩니다. /아멘!/

①하나님이 주시는 시험(도키마조)은 무엇인가?
시련, 환란, 고난 등으로 어떤 목적을 위한 '테스트'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인정하기에 앞서 '테스트'를 먼저 해 보십니다. 이 시험을 통해 더 강해지고 더 담대해지고, 더 하나님을 찾게 되는 과정으로 이루게 됩니다.
▶우리는 독수리의 훈련 법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미 독수리가 자기의 큰 날개에 어린 새끼를 품고는 창공 높이 올라가서 사정없이 밑으로 떨어뜨립니다. 그러면 새끼 독수리는 추락하지 않으려고 연약한 날갯짓으로 안 간 힘을 쓰며 펄럭거립니다. 독수리는 이런 반복적인 훈련을 통하여 새끼 독수리를 훈련시킵니다.
사실 새끼독수리에게는 이런 훈련이 시험이요, 시련입니다. 그런데 단 한 마리의 새끼 독수리도 이 훈련을 통하여 땅바닥에 떨어져 죽은 새끼는 없습니다. 떨어질 즈음에 어미 새가 내려와 그 날개에 받아 가지고 다시 올라갑니다.
이런 훈련을 통해서 새끼 독수리는 자랍니다. 강해집니다. 날쌔집니다. /믿/ 어미 새 쪽에서 보면 새끼 새를 시험하는 것이요. 새끼 새 쪽에서 보면 그것이 연단이고 시련이고 훈련입니다. /할/
우리 교회도 한 때 엄청난 시험을 받았습니다. 저도 그 시험에 힘이 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혼자 산에 올라가 기도하면서 이겼습니다. 자나놓고 보니 그 때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런 때였습니다.
여러분, 교회도 시험을 당하고, 목사도 시험을 당하는데 성도들에게 어찌 시험이 없겠습니까? 성도들에게 많은 시련이 뒤따르는 것이 정상입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교회를 성장시키면서, 주의 종을 키우면서, 성도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하나님의 방편으로 행하시는 과정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엄청난 고난의 태풍이 불어 올 때 '이젠 끝장이구나! 이젠 망했구나!'하면서 절망하지 마시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불평하지 마십시오, 포기하고 불평하는 사람은 그대로 폭삭 망하고 맙니다. 감사하십시오! 확신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키우시려고 시험을 내시고 계시구나! 하나님이 나에게 복을 주시려고 이런 시험을 내시는 구나' /할/ 시인하고 고백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아멘!/
영적인 원리 중에 하나가 성도들에게 복을 줄 기회에 사탄은 틈을 놓치지 않고 공격합니다. 별의별 모습으로 와서 축복 받으려는 사람을 넘어뜨리려고 1단계, 2단계, 3단계로 계속 공격해 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말을 들어도 어떠한 모함을 들어도 하나님은 아시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신앙은 하나님과 1대1의 관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믿/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고, 욥도 시험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아들 독자 이삭을 모리아 산에 가서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참으로 어려운 시험입니다. 이것은 큰 시련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식을 그것도 100세에 얻은 자식을 죽여서 각을 떠서 불사라 드리라고 합니다. 이게 보통 시험입니까? 큰 시험이요 깜짝 놀랄 시험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3일 길을 걸어 모리아 산에 가서 제단을 쌓고 독자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 위해 칼을 높이 드는 순간,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급하게 부르십니다.
창22:12절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은 숫양 한 마리를 준비해 놓으셨다가 그것으로 재물을 받으시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의롭게 여기시고, 그를 하나님의 벗으로 삼았다고 약2:23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처럼 겸손하십시오, 순종하십시오. 겸손은 은혜 받는 비결이요, 순종은 축복 받는 비결입니다. /믿/
아브라함은 '여호와이레'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향하신 예비해 놓고 준비해 놓으신 축복이 많습니다. 모든 것을 준비해 놓고 계십니다. 시험을 참고 이겨서 아브라함이 받았던 그 복을 우리 모두 다 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련이 무서운 독사처럼 다가온다 할지라도 "옳지 독사는 잡아서 고와 먹으면 보약이라지." 시련을 보약으로 알고 큰 힘을 얻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할/

 

②또 하나는 마귀가 주는 시험이 있습니다.
이 시험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시험입니다. 요10:10절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 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이 시험을 '페이라조'라고 합니다. 이 시험은 대부분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 내부로부터 솟아오르는 정욕의 시험을 가리킵니다. 욕심 때문에 오는 유혹, 정욕 때문에 오는 유혹, 교만 때문에 나타내려는 유혹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미혹'이라고도 합니다. 끌려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은 목적이 있고, 결과도 선합니다. 그러나 마귀가 주는 미혹과 유혹은 목적이 나쁘고 결과도 나쁩니다. 또 하나님이 주시는 시험은 그것으로 인하여 믿음이 성장합니다. 그러나 유혹의 시험은 죄를 짓게 됩니다. 시련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지만, 유혹괴 미혹의 시험은 자기의 욕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고난과 환란과 시험은 참고 견디며 이겨야 복이 되지만, 그러나 유혹의 시험은 물리쳐야 합니다. 예수님도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셨고, 요셉도 보디발 부인의 성적 유혹으로부터 멀리 피했습니다.

③시험은 종류가 다양합니다. 2절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먼저 시험은 여러 가지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정말 시험은 다양하고 생각지도 않았던 시험이 있습니다. 돈에 대한 시험, 명예에 대한 시험, 자존심에 대한 시험, 이성에 대한 시험, 질병에 대한 시험, 다른 사람들과 관계에 대한 시험 등 다양한 시험이 있습니다.

④시험을 기쁘게 여기라고 합니다.
불평하거나 원망하거나 탄식하지 말고 '기쁘게 받아 들이라'고 합니다.
벧전4:12절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믿음의 시련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키우려고 주시는 시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도는 뭐니 뭐니 해도 믿음이 제일입니다. /믿/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더 우선입니다. 믿음은 역사가 일어나지만, 지식은 교만에 빠지기 쉽고, 남을 판단하고 정죄할 수가 있습니다.
어떤 면이 복입니까? 믿음이 복입니다. 큰 믿음은 큰 역사를 일으키고, 큰 믿음은 큰 축복을 동반합니다. /믿/ 여러분, 결론이 나왔습니다. 왜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도 기쁘게 여겨야 합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믿음을 키워주시고, 그 믿음대로 복을 주시려는 시험이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해야 합니다. /아멘!/
신8:16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기쁘게 여기라'는 말은 '기쁘게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더 적극적인 면에서는 '시험을 만나거든 피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파도를 타는 사람은 큰 파도가 몰려올 때 오히려 기뻐하는 법입니다. 또 칼싸움을 하는 무사도 적수를 만나면 오히려 기뻐합니다.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온전히 기쁘게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옛말에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문제를 만나거든 그 문제 속에 들어가서 부딪쳐야 해결이 되지만, 피하면 근본적인 해결이 없습니다. /믿/
또 '여기라'는 말은 '평가해 보라'는 말도 됩니다. 굉장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해 보라는 것입니다. 욥은 시험을 당할 때 그 시험을 굉장한 가치로 평가했습니다. 욥23:10절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할/ 이 고백은 자식도, 재산도, 건강도, 행복도 다 잃어버린 현장에서 고백한 욥의 신앙 고백입니다. "내가 당하고 있는 시련 속에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다!" 이 사실을 욥은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환란이나 시련이나 사업의 실패와 질병의 아픔으로 곤고가 오고 어려움이 올 때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오나?" 탄식하지 말고 "하나님이 복을 주시려고 나를 다듬고 있구나!" 생각하면 은혜가 되고 담대해 질 수가 있습니다. /믿/
환란은 우리의 밥입니다. 밥은 우리의 육신을 튼튼하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환난의 밥은 우리의 신앙을 튼튼하게 합니다. 인생은 항상 따스한 봄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옵니다. 산도 평평한 산은 그리 아름답지 않습니다. 높은 산일수록 계곡이 깊습니다. 계곡이 깊어야 물이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시험이 올 때 비명을 지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

 

⑤시험이 올 때 왜 기뻐해야 하는가? 알아야 기뻐할 수 있습니다(3).
유익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알게 되고, 지나고 보면 "아! 주님이 이렇게 쓰시려고, 이렇게 복 주시려고, 그런 고난을 주셨구나!" /할/ 시련이라는 말은 인정이라는 말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인내는 시련을 통한 '엑기스'입니다.
3절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야고보 사도는 2절에서 '여러 가지 시험'이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3절에서는 '믿음의 시련'이라고 했습니다. 믿음의 시련이란 신약성경에서 두 번이 나오는데 본문에서와 벧전1:7절에 기록된 '연단'이 같은 말입니다.
벧전1:7절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함이라"
구약 성경에서는 욥기서에서 한 번 사용했습니다. 욥23:10절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쇠는 마구 두드리고 찬물에 넣었다가 달구고, 수없이 그 일을 반복할 때 강철이 됩니다. 우리의 팔에 튼튼한 근육이 생겨나도록 하려면 그 만큼 우리의 팔에 여러 가지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무거운 역기를 들어 올리고, 아령을 한다든지 팔 굽히기를 한다든지 팔에 적절한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우리의 육체가 훈련을 통하여 튼튼해지고 지구력이 생기고 인내력이 길러지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도 시험을 통해야 비로소 영적 인내력이 배양됩니다.
바울은 롬5:3-4절에서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본문은 이 믿음의 시련은 반듯이 인내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강도는 그 사람이 시험을 당할 때 잘 견디어 내느냐 포기하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낮은 대로 임하소서'의 주인공 안요한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전혀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디오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그의 음성을 듣다 보면 그렇게 활달할 수가 없습니다.
한 번은 이 분이 어느 고등학교에 초청을 받으셨습니다. 그 분의 간증설교를 듣기 위해서 학생들이 강당에 모이게 되었는데 이 분이 도착해서 강단 위에 오르시다가 그만 놓여있는 마이크에 머리를 세차게 부딪혔습니다. 그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서 강당 전체에 울려 퍼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당황해야 할 당사자인 안요한 목사님은 마이크를 손에 잡으시더니 그 특유의 맑은 음성으로 이렇게 말문을 여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죄송합니다. 제가 아침에 너무 급하게 오는 바람에 그만 안경을 잊어먹고 빼놓고 왔습니다. 그래서 눈앞에 있는 마이크를 보지 못하고 실례했습니다."
그 소리를 듣고 학생들 모두가 '와!' 하면서 박장대소했습니다. 앞을 전혀 보지 못하시는 목사님이 안경을 빼먹고 와서 마이크를 보지 못해서 부딪혔다고 하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분은 자기가 당하는 시련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여유 있는 유머를 통해서 학생들에게 웃음과 기쁨을 선사한 것입니다. 그 분은 자기가 맹인인 것을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산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 시련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헬렌 켈러는 삼중고를 겪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보지를 못했습니다. 듣지도 못했습니다.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일평생을 다 살고 난 뒤에 숨을 거둘 때 마지막으로 이러한 말을 남겼습니다.
"아! 참으로 나의 인생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여러분! 시험을 만나셨습니까? 두려워하지 마십시다. 남들이 이겨낸 시험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이길 수 있습니다. 이런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할/

 

⑥야고보 사도가 이 서신을 쓸 때 배경을 1절에서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쓴다고 했습니다.
12지파란 말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가리키는 말로 본문에서는 예수 믿고 새 이스라엘이 된 백성, 즉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해당되는 말로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왜 그들이 흩어졌는가? 그 당시 예루살렘은 복음으로 충만!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모여서 말씀을 배우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주님의 지상명령에 불순종을 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기도로 무장하고 성령으로는 충만했는데 전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무서운 핍박을 통하여 그들을 흩트려 놓았습니다. 자발적으로 안 나가면 하나님은 흩트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흩어지는 연습을 잘 해야 합니다. 흩어져 가정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해야 되고, 직장에 들어가 복음을 전해야 하고, 세상에 흩어져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 당시 핍박이 심해 흩어진 성도들에게 믿음의 시련을 잘 통과해서 큰 믿음의 주인공들이 다 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전도하다가 시험이 와도 잘 참고 견디는 성도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할/

⑦"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믿음의 시련은 결국은 인내를 생산하고 그 인내가 큰 축복을 가져오는 통로가 됩니다. /믿/ 신앙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인내해야 하는가? 하나님 앞에 설 때까지입니다. /할/ 그러므로 봉사하면서도 인내하고, 기도하면서도 응답이 없다고 포기하지 말고 인내해야 하고, 모든 것을 인내로 참아야 합니다. 산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참는 것입니다. /아멘!/
인내라는 말은 그냥 고통스러운 것을 겪는다는 뜻도 있지만 더 적극적인 표현은 그것을 극복해 낸다는 의지까지 포함된 말입니다. ▶본문의 '앎이라'가 중요한 말입니다. 믿음의 시련은 인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너희가 꼭 알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⑧시험을 참는 자가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4절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본문은 세 가지의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⑴온전하고: '성숙되어가고, 흠이 없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금이 불 속에서 녹아서 불순물이 다 없어지듯이 우리의 신앙의 인격도 연단 속에서 성숙되어 갑니다. '파스칼'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당신을 섬기라고 나에게 건강을 주셨건만 나는 세상을 위해 전부 낭비했습니다. 이제 나를 일깨워 주시려고 나에게 육신의 질고를 주셨군요!"
'루이스'라는 사람은 "시련이 닥치기 전에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고통은 귀머거리에게 알아듣도록 하는 하나님의 확성기와 같다"고 했습니다. '밀턴'은 40세에 맹인이 되었고, 그 아내를 잃었습니다. 그러나 "오 주님! 이런 고통을 통하여 내 영혼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길 수 있는 신앙의 인격을 주심을 감사하나이다." 기도했습니다.
인내는 우리가 닮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의 한 부분입니다. /믿/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벧후3:9절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믿음에는 인내가 더 해져야 참된 믿음이 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세 번 참으면 살인을 면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내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의 훈련입니다. 성공할 대보다 실패할 때 많은 것을 배웁니다. 건강할 때보다 병이 들 때 "인생이 뭐냐? 죽음이 뭐냐? 내가 사는 것이 뭐냐?"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 때부터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할/
⑵구비하여: '모두 갖추어진 상태, 결점이 없는 상태'가 구비된 상태입니다.
시련은 우리로 하여금 '구비된 인격, 흠이 없는 인격'을 갖추게 됩니다. 하나님은 준비된 자를 쓰십니다. 세상도 그렇습니다. 장관도 준비된 자를 세웁니다.
⑶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려고: 문자 그대로입니다. 인격을 완전케 한다는 의미입니다. 시련을 통해서 내 믿음이 성장해서 인격이 성숙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시련을 인내로 온전히 이루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그럽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은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축복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건강을 주십니다. 부족함이 없는 물질을 주십니다. 부족함이 없는 아름다운 환경을 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내 잔이 넘치나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3. 결론은 본문 12절에서 찾습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어떤 사람이 복이 있습니까?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염라대왕이 끌려온 사람의 인생 장부를 펴보더니, "너 아직 올 때가 아닌데 잘못 왔다. 너와 함께 온 두 사람도 잘못 왔는데 너희 세 사람을 어떻게 하면 좋으냐? 벌써 장례식을 끝냈으니 다시 옛날 그 몸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미안하게 됐는데,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게 해 줄 테니 너희들 소원을 얘기해 봐라"고 했답니다. 첫째 사람이 "나는 한평생 지지리도 못살았습니다. 이번에 태어날 때는 부자로 태어나서 돈이나 펑펑 쓰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염라대왕이, "알았다.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사람은 부자로 태어났고, 두 번째 사람은, "저는 한평생 무시만 받고 살았는데 이번에는 권세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떵떵거리고 살게 해주세요." 두 번째 사람은 권력자로 태어났습니다. 세 번째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떻게 해주랴?" 그러자 세 번째 사람은, "저는 돈도 싫고 권력도 싫습니다. 그저 공기 맑고 인심 좋은 곳에서 예쁜 아내와 함께 많은 자녀 낳고 무병장수하며 아무 근심 없이 백년 해로 하고 싶습니다." 그러자 염라대왕이, "예끼 놈, 그런 곳이 있으면 내가 가겠다." 그랬답니다. 이것이 중국 사람들의 복 개념입니다.
복이란 무엇이냐? 오늘 야고보 사도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할/
면류관은 왕이 쓰는 왕관을 뜻합니다. 유대인들의 결혼식 때에 신부는 아름다운 관을 머리에 씁니다. 충성된 자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경기에 승리한 자에게는 월계관이 있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은 그리스도인이 받는 최고의 영광입니다.
여기 '생명의 면류관'은 인생 최고의 가치를 의미합니다. 영생 복락의 축복입니다 만은 이 땅에 건강일수도 있고, 물질일수도 있고, 명예일수도 있고, 축복일수도 있습니다. /할/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이 말씀을 놓치지 말고 붙잡읍시다!
▶오래 전에 어떤 미국인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를 했습니다. 정열을 다 쏟아서 열심히 했는데도 열매가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병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더니 죽고 말았습니다. 그 충격 때문에 그의 아내마저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선교사는 외톨이가 되어버렸습니다. 깊은 회의에 빠진 이 선교사님은 결국 자기의 몸을 미국으로 돌아오는 배에 싣고 말았습니다.
드디어 배가 미국의 항구에 도착했습니다. 갑자기 부두에서 예포소리가 들려오고 군악대의 나팔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서 갑판 위로 올라와 보니 그 배에 아프리카로 휴가 차 사냥을 갔다오는 미국의 대통령과 그의 부인이 타고 있었습니다. 부두에는 붉은 주단이 깔렸습니다. 그 위로 대통령이 걸어갑니다. 수많은 환영인파들이 성조기를 흔들고 박수를 치면서 대통령 내외를 맞이했습니다. 선교사는 일부러 제일 마지막으로 배에서 내렸습니다. 이미 환영인파들이 다 사라지고 난 뒤에 그는 깊은 고독감과 실패감 때문에 흐느끼면서 쓸쓸히 부두 밖으로 걸어가면서 혼자말로 푸념을 시작했습니다.

"사냥을 갔다오는 대통령은 저렇게나 열렬히 환영해 주었는데, 선교지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을 잃기까지 한 나는 아무도 환영해 주지 않는구나!"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어디에선가 이런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내 사랑하는 종아! 너는 아직 본향으로 돌아온 것은 아니다. 네가 본향으로 돌아오는 날에는 군악대의 나팔소리가 아니라, 하늘의 천군 천사들의 나팔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붉은 주단이 문제가 아니라, 황금으로 깔린 길이 예비되고 내가 너를 친히 마중 나갈 것이다. 너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 이곳에 너를 위한 생명의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 날까지 인내하라. 이곳에서 너를 위한 성대한 환영식이 베풀어질 때까지…" ▶선교사는 그 음성을 듣고 다시금 발길을 돌려 선교지인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면서 생명을 걸고 충성을 다하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할/
고난을 참고 생명의 면류관을 바라보고 승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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