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자훈련을 시작하게 된 계기 행14:28
고 옥한흠 목사님 총신대학원 수련회 1강
반갑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신학교를 이제 갓 입학한 1학년 형제자매들도 있고,
앞으로 목회현장으로 나아가야되는 졸업반 형제자매들도 계실 거예요.
여러분들을 하나님께서 이곳에 보내셔서 준비시키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아직도 이 세상을 향해서 꿈을 갖고 계신다는 증거'라고 믿습니다.
세상이 아무리 뒤죽박죽이고, 아무리 악이 성행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이 큰 소리를 치며 살고 있지만
결국은 예수 그리스도가 승리할 것입니다.
이 승리하실 예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이 신학교로 보내시고, 준비시키시고,
앞으로 사역의 장을 열어주셔서,
여러분의 한평생,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게 해 주시리라고 저는 믿습니다.
▲오늘 집회 첫 시간은 <저의 목회 간증>이라는 제목으로
그저 쉽게 좀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제가 왜 제자훈련에 그렇게 미치게 되었고
한 평생을 제자를 만드는 일에, 저 자신이 몸과 마음을 던질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을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도움이 될 것 같고요.
또 이번 기회에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거의 <제자훈련 세미나> 때마다 목사님들을 앉혀놓고 제가 말씀하는 내용의 일부를 여러분에게 나누는 것입니다.
왜냐면 여러분들이 졸업하고 나서, 제가 인도하는 제자훈련 세미나에
오실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있을지 저는 모르기 때문에 (*2010년 소천으로 실제로 기회가 많이 없었음)
이렇게 신학교 다닐 때, 좀 한번 문제의식을 가지고
저와 같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음으로써
한국교회 내일을 위한 '진정한 목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여러분이 깨닫는 귀한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정말 목사되기 싫어했던 사람입니다.
어린 나이에도 어떻게 보면 목사가 제일 싫었어요.
'세상에 어디 할 짓이 없어 목사를 하냐?'
하는 식의 막 나가는 생각까지 했던 사람이에요.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목사되기 싫어가지고
정말로 있는 힘을 다해서 도망쳤어요. 저는 그런 사람이었어요.
(왜냐면) 50년 전만 해도 목사님들은 신실하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런 위대한 선배들을 내가 따라가지 못한다'는 자책을 많이 합니다.
그 분들은 복음을 위해서 살려고 했고
작은 교회가서 천대받고 무시받아도, 복음을 위해서 기쁘게 살려고 했고
교회 안에 못된 지도자들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수모를 당해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그 귀한 목사님들을 보면서
저 자신이 참 감동을 받아야 되는데...
목사님들의 그 굽실굽실하는 모습,
뭔가 한 가지밖에 모르는 것 같은 고집,
맨날 강단밑에서 그냥 허리 끄떡이면서 기도하고 있는 모습,
또한 강단에 올라가면 그냥 핏줄이 보일 정도로 소리소리 지르면서 설교하시고,
내려와서 보면 그렇게 강한 사람도 아닌데
강단에만 올라가면 그렇게 요란을 떨고 하는 목사님들이
저는 그렇게 좀 보기 싫었어요.
그래서 제가 목사 안되려고 했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목사되기를 위해 기도하고 계셨고
교회 안에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다
저는 목사 될 사람이라고 초등학교 때부터 찍어놨어요.
그런데 저는 싫었어요. 저 자신은 그게 싫었습니다.
그리고 어린 나이 였는데도 제 생각이 그랬어요.
'교회 안에서 믿음이 좀 좋다'하면 전부 '목사 되라!'
'주의 일을 하면서 세상을 살아야지, 세상 일을 위해서 그렇게 시간 보내지 말고
주의 일을 위해서 살아야지!'
이런 말을 맨날 들으니까, 제 어린 마음에 무슨 생각이 들었냐 하면
'그래, 믿음 좋으면 다 신학교에 가야 되고,
믿음 좋은 사람만 주의 일을 한다...
그러면 다 믿음 좋아서 신학교 가버리면
교회안에서 앉아서 설교들을 사람 하나도 없겠네...
그러면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려고 할 때
전부 다 신학교 가버리면
그럼 세상에서 일할 크리스천은 얼마나 남아있겠나?'
뭐 이런 생각들이 있었어요.
아마 이것이 제가 '평신도에 대해서 좀 남다른 시각을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가 아니었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아무튼 저는 목사되기 싫었어요.
제가 초등학교 때 다니던 교회는 그저 한 백여 명 모이는 시골 교회였습니다.
그 교회 장로님과 그 가족들, 그리고 그 장로님들과 가까운 형제 친지들
몇 분이 그 교회의 중심을 이루고 힘을 쓰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 교회의 연혁을 보면
한 3년 되면 목회자가 갈리는 거예요. 장로가 나가라면 나가야 돼요.
어김이 없어요.
그래서 지금도 그 교회 연혁을 보면,
거의 모든 교회 역사의 내용이 누가 부임하고 누가 사임하고
누가 부임하고 누가 사임하고... 그저 그게 전부예요.
목사님이 들어오셔서 사역을 잘해도, 장로님은 가만히 안 두어요.
왜냐면 교인들의 관심과 사랑이 목사에게 가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는 거예요.
파워 게임에서 자기가 지고 싶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허물을 뒤집어 씌워서라도 쫓아내는 거예요.
어릴 때 저는 그런 걸 보고 살았습니다.
매우 소명감이 있고, 이제 신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안수받은지 얼마 안 되는 젊은 부부가 오셨어요.
목회 잘 하셨어요. 어떤 때는 동네 뒷산에 가서 40일 금식기도도 하셨어요.
그리고 주일날 예배를 마치면, 교인들 몇 명 데리고
북들고 동네로 들어가서, 막 길거리에서 북을 치면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전도하셨어요.
초등학교 어린 학생인 저는, 거기에 졸졸 따라다니면서
같이 전도대에 합류를 했어요.
그래서 온 교회가 그 목사님을 통해 은혜받고
'정말로 신앙생활의 기쁨과 행복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면서 살았어요.
그 당시에 815 해방되고 나서, 가난에 찌들려 가지고 하루하루 사는 것이
정말 지옥 같은 때였지 않습니까.
게다가 조금 지나고 나서는 625 전쟁이 지금 일어나기 직전에
빨치산들 때문에, 밤이 되면 산꼭대기마다 봉화불이 올라가고
저 같은 초등학교 학생도 밤새도록 죽창을 들고 보초를 서야 되는
그런 참 정말로 기막힌 상황에서
오직 교회만이 기쁨이요, 교회만이 행복이요, 교회만이 위로였어요.
목회자 잘 만나니까 온 교회가 천국이 되어버리더라고요.
저는 그렇게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그 목사님때문에 하는데
2년도 안 돼 가지고 목사 쫓아내기 시작하는 거에요.
안 나가려고 하니까, 한번은 자기 집에 목사님을 불러가지고 린치를 가해서
얼굴을 못 쓰게 만들어놨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그렇게 보고 살았어요.
그래도 목사님은 '나를 이곳에 보낸 분은 하나님이지..
그러니까 내가 이 교회를 떠나야 된다면, 하나님이 가라고 해야 내가 떠나지,
누구가 떠나라고 해서 내가 떠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는 버티고 있었어요.
새벽기도를 합니다. 그 장로가정 식구들이 와가지고는
옛날에는 다 바닥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잖아요.
그러니까 헌금 받으려면 헌금을 걷는 작대기가 있는 헌금대가 있었죠. *잠자리채 모양
그 식구들이, 그 헌금대 작대기를 가지고, 호롱불을 다 깨버리고 그랬어요.
새벽 예배를 못 드리도록 하는 거죠.
결국 그 목사님은 쫓겨나갔어요.
제가 이런 것 저런 것 보면서 '내가 왜 목사하나?'
그리고 '목사가 좀 할 말이 있으면 목소리라도 좀 크게
할 말이라도 좀 해야 되는데...'
할 말도 못하고 늘 주여, 주여 하면서 기도만 하는 모습이
제 어린 마음에 좋아보이지 않았던 거죠.
그리고 뭐 쌀독에 쌀이 없어도, 굶는다는 소리도 못하고
그저 성미 갖다 주는 거 있으면 먹고, 없으면 안 먹고
'그게 어디 남자로서 할 짓이냐?'
뭐 이런 생각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보니까
제가 목사되는 것이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도망다녔어요. 2~3년을 도망다니다가
결국은 목이 꿰어가지고 돌아왔는데
그래서 저는 22살에 목사 되기로 결정한 사람이지만
저는 항상 하나님 앞에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 저는요. 강제 차출 당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부산의 정필도 목사님 같은 분은 *2022년 소천, 정필도 목사님 간증
초등학생 때부터 목사되기 위해서 얼마나 사모하고
'하나님 내가 목사 되기를 원합니다' 하고는
학교 가는 길에 교회 들러서 기도하고
학교에서 돌아오면서 교회 들러서 기도 하고
그래서 목사되는 것이 꿈이고,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께 참 헌신하고 싶다..는
그 부푼 꿈을 가지고, 어릴 때부터 자랐다고 하는데
그런 사람 쳐다보면, 제 모습은 마치 이방인을 보는 것 같아요.
항상 저는 정필도 목사님을 보면 기가 죽었어요.
'이 분은 자원해서 주님을 위해 살려고 목사된 사람이고
나는 도망다니다가 할 수 없이 끌려와가지고 와서 목사된 사람이고...'
그러니 게임이 안되죠.
내가 성도교회 부목사 였을 때, 정필도 목사님은 장충교회 부목사였어요.
(성도교회는 남산 아래 회현동, 장충교회는 장충동.. 거리가 가까움)
그래서 둘이서 함께 서울 시내를 걸어다니면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사역할까?' 하고 이런 얘기, 저런 얘기도 나누고 했습니다...
저와 정목사님은 게임이 안되는거예요.
하나님이 보실 때에 정말 진정으로 자기를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하고,
오후 5 시에 할 수 없어서 포도원에 들어온 품꾼같은 사람하고 비교가 되겠어요?
저는 그렇게 목사가 된 사람이에요.
그래서 저는 '소명'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아리까리한 사람입니다.
'뭐가 소명인가?'
목사를 시키려면 하나님이 나에게 소명을 주셔야지,
우리 어머니에게 소명을 주실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잖아요.
일할 사람은 따로 있는데...
그런 식으로 참 어설프게 제가 소명감을 조금씩 조금씩 키워나가게 되었고
그래서 제가 목사가 됐습니다.
제가 22세에 목사 되기로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항복한 다음부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좌우로 두리번거리면서 곁길로 들어간 일이 없습니다.
오직 한 푯대만 향해서 지금까지 달려왔습니다.
출발은 잘못했지만, 출발은 하나님 앞에 미안했지만
그와 같은 자책감이 있었기 때문에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잘해보려고
지금까지 달려온 것이 저의 삶이었다고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에 소명감이 불타서 뜨거운 심정으로 신학교에 오신 분들은 더 좋고,
여러분 가운데서 소명감은 별로 없는데, 주변에서 신학교 가라고 하고
어머니가 너를 낳고 서원기도 했다고 하고...
뭐 이런 소리 때문에 그냥 할 수 없이 끌려 들어온 사람도 희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도 신학교에 들어왔지만
'소명'이라고 하는 사실을 놓고는 고민을 해야 되는 분들도
(그 갈등은) 여러분이 소명을 가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시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신학교로 부르신 이상은
지금 내가 소명을 느끼던/ 소명을 느끼지 않던 그게 큰 문제가 아니에요.
하나의 과정이에요.
한 사람은 완전한 과정일 수 있고,
한 사람은 불완전한 과정일 수 있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님이 부르신 사람은 반드시 소명을 갖고 헌신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꼭 기억하시고, 아름다운 신학교 생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
그런데요, 제가 이렇게 어설프게 신학교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런지 모르지만
저는 "교회가 뭐냐?"에 대해서 생각을 잘 못했어요. (생각이 없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에 '교회가 뭐냐?'에 대해서 진지하게 가르쳐 주는
과목도 없었고, 교수도 없었어요.
그러니까 '교회가 뭐냐?' 라는 것을
정확하게 배우고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까
'목회가 뭐냐?' 하는 질문에 대해서도.. 해답이 별로 없었던 사람이었어요.
'선배들이 하는 식으로 하면 되겠지' 그냥 그 마음이었어요.
'남들이 다 하는 목회, 내가 못할 거 뭐 있냐, 해보면 되겠지!'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신학교 다녔지,
'교회가 뭐냐, 목회가 뭐냐?'를 가지고 씨름하고 고민하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한 일이 없었어요. 그런 동기부여가 없었어요.
지금 여러분은 아마 다를 거예요.
사십 년 전 하고 지금하고는 상황이 많이 다르죠.
그러나 하여튼 그 당시에는 그랬어요.
당시에는, 신학교를 졸업하면 평생 교회를 위해서 살아야 되고
교회 안에서 숨을 쉬고 살아야 되잖아요.
그리고 평생 목회라는 것을 해야 되잖아요.
교수 되는 사람, 선교사로 가는 분들은.. 전체 수의 10프로나 되겠어요?
거의 대부분은 목회자가 되는 것 아닙니까.
저도 교수님들이 '너는 교수가 되면 좋겠다'는 말을 신학교때 들었습니다만
하나님이 제게 주신 은사가 목회 쪽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저는 목회 쪽으로 고집을 했어요.
그렇다면 '교회가 뭐냐, 목회가 뭐냐'를 놓고
좀 고민하고 실험하고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한데
나는 3년 동안 그렇게 못했어요. *신대원이 3년 과정
어떻게 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에요.
시집 장가가는 젊은이들이 평생 가정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살아야 되는데
'가정이 뭐냐, 부부가 뭐냐, 성생활이 뭐냐, 자녀를 키우는 게 뭐냐' 하는 것을
놓고, 좀 더 나름대로 공부하고 준비하지 않고
그냥 나이 되었다고 결혼하는 사람 얼마든지 있죠.
그러나 우리가 볼 때 얼마나 어설퍼요.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예비 신랑신부 교육>이 철저합니다.
결혼하기로 딱 작정하고, 날짜를 정해서 주례를 부탁하는 사람은
5~6주 프로그램을 통해서 가정이 뭔지
하나님이 왜 결혼을 허락하셨는지, 결혼을 통해서 무슨 목적을 가지고 살것인지를
하나하나 가르칩니다.
목회할 사람도 교회를 놓고, 그렇게 연구하고 고민해야 되잖아요.
'남이 하니까 나도 따라 한다..' 과거에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다들 하는 목회 내라고 못할거 뭐 있냐?'
'하나님이 가라는 대로 가서, 어디든지 가서 하면 되지'
뭐 이런 식으로 안일하게 생각을 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제가 신학교 다닐 때만 해도
세계가 부러워하는 폭발적인 부흥을 체험하는 진원지에 살고 있었어요.
1970 년대 중반만 해도, 1년에 교회가 4천개가 새로 생길 정도로
엄청난 부흥을 하던 때입니다.
그리고 한국교회 1백 역사를 기념하던 1884년도에는
공식적으로 개신교가 1200만이라고 공고했어요. 엄청나죠.
그러니까 전도하면 '예, 교회 가 보지요' 대부분이 그런 반응이었고요.
교회에 다니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어떤 인식들이 불신자들 세계에 깔려 있었어요.
그 당시에 가톨릭이나 불교는 꼼짝을 못 했어요.
그런 좋은 시대에, 내가 신학교를 다녔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를 할 때니까
뭐 '교회가 뭐냐?' 하는데 대해서, 구태여 고민 안 해도
뭐 '문만 열어 놓으면 교회는 된다' 이런 식으로 자신만만했죠.
그런 시대에 제가 살았어요.
그러나 여러분, 지금은 상황이 아주 다릅니다.
저는 여러분을 보면서 '하나님이 옥 목사에게 주신 능력에 갑절을,
더 많이 세 갑절을 여러분이 받아야 목회할 거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제가 목회를 시작할 때 당시 하고, 지금 하고는
어떻게 보면 하늘과 땅이에요. 너무나 너무나 달라요.
그때는 한국교회가 부흥의 와중에 있었기 때문에
뭐 교회론이 어설펐어도, 목회가 되던 시대입니다.
그러니까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었지만
지금은요 벌써 한국교회가 비실비실한 지가 20년이 되어가요.
아직도 회복이 안 돼요.
그리고 교회 주변의 상황은 점점 더 어려워져 가고 있어요.
'과연 교회가 이 세상을 감당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런 말 하지 말고
'세상이 볼 때 교회가, 조금이라도 자기들에게 도움이 되겠다고 하는
어떤 생각을 가질 수가 있을까?' 하는 정도까지 지금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알고 있을 거에요.
저는 이런 위기 상황을 여러분보다 더 예민하게 봅니다.
서울의 몇몇 큰 교회에 젊은이들이 모이고
몇몇 교회에 교인들이 그냥 많이 몰려서 교회가 부흥하는 그것은
병적 현상이지요. 한국 교회에 건강한 현상은 아닙니다.
작은 교회에서는 젊은이들이 빠져나가고
작은 교회는 잘 안 되고, 개척교회는 잘 안 되고
그래가지고 한국교회 허리가 병이 들어서
지금 구부정하게 기울어져가는 이것을 놓고
'한국교회가 잘 된다, 지금 건강하다'고 말해요?
대형 교회 한 열 개가 잘된다는 소문 가지고
한국 교회가 잘 된다고 착각하고 있나요?
대형교회에 사람들이 가지 말아야 돼요.
중소 교회에 사람들이 모여서 알차게 신앙생활 하는
건강한 한국교회가 돼야 돼요. 그래야만이 바로 되는 거예요.
대형교회만 크는 것은 기현상이에요. 머리만 커지는 교회에요.
그래서 저는 사랑의교회에 교인들이 많이 몰려올수록 걱정이 태산이에요.
젊은이들이 우왕좌왕 하다가 사랑의교회로 몰려와가지고 등록하고
등록한 다음에 교회 사이즈가 크니까 제대로 관리가 안 되잖아요.
그래가지고 어슬렁어슬렁 그냥 신앙생활 한다고 왔다 갔다 하는 걸 보면
가슴을 칠 일이에요.
좀 작은 교회 몇 백명 모이는 교회, 중소 교회들이
이 젊은이들을 품에 안고
정말로 미래의 꿈을 심어주면서 영적으로 바로 세워주는 일들이 일어난다면
하나의 대형교회가 이 일을 감당하는 것보다도
3백 개의 소형교회가 이 일을 감당하는 것이
한국교회 미래를 위해서 더 소망적이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사역이 될 것이라고 믿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안 되잖아요.
▲여러분, 영화 <왕의 남자> 봤어요? 저도 한번 봤어요. *2005년 개봉
이번 주 집회마치고 나면 한번 더 보려고 그래요. 이유가 있어요.
그런 영화, 그런 문화코드 안에, 사회의 위기를 통해
교회의 위기를 읽을 수 있는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이제 <다빈치 코드>가 또 개봉되면 *2006년 개봉
얼마나 대단한 일들이 일어날지 우리는 상상을 못해요.
그런 영화 속에서, '교회를 보는 세상 사람들의 시각'이 뭔지를 읽어야 돼요.
젊은이들이 어떻게 하나님 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가를 우리가 읽어야 돼요.
얼마나 어려운 시대인지요!
이런 어려운 때, 여러분이 큰 책임을 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 설교, 제 간증을 들으면서
'나는 어떻게 준비해야 될까?' 하는 것을
이번 집회 삼 일 동안 여러분들이 정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그런데 제가 이렇게 흐리멍텅한 사람이었어요.
신학교 다닐 때도 흐리멍텅한 사람이었는데
제 패러다임이 바뀌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들이, 제게 일어났어요.
다시 말하면 "교회가 무엇인가"를 놓고 고민을 안 할 수 없는 상황이
저에게 찾아 왔습니다. "목회가 무엇인가"를 놓고
내 나름대로 씨름해야 되는 상황이 내 앞에 다가온 거에요.
판만 벌이면 잘 되리라고 생각을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는 것을, 제가 현실에서 목격하게 된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지금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간에
여러분이 겪는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메시지에 귀를 기울이면
굉장히 힘든 고통스러운 과정이
나의 패러다임을 바꾸어주는 하나님의 손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만약에 제가 졸업하고 나서, 기성 교회에 부임해 가지고
그 다음에 뭐 담임목사가 되고
그 다음에 전통적으로 하는 목회를 해서 성공해가지고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했으면.. 저는 패러다임이 전혀 안 바뀌었을 거에요.
우리 선배들이 하는 식으로 갔을 거에요.
그 선배들이 하는 식의 목회는 '농경사회에서 잘 들어맞는 목회' 였죠.
지금도 우리 한국교회, 특별히 우리 교단(장로교 합동측) 목회자들 대부분은
제가 속단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절반 이상은 50~60 년전 농경사회에서 통하던 목회방식을 그대로 하고 있어요.
그게 아직도 통하는 것이.. 나는 기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신학교 3학년 졸업반 마지막 학기가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어느 교회에서 주일학교 중고등부를 맡아서 하다가
장로하고 부딪혀가지고.. 제 목이 날아갔습니다.
저도 참 못된 사람이거든요.
'성경적이 아니다. 제 신앙 양심으로 저거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 하는 일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공공연히 하는 사람을 보면
저는 못 참는 기질이 있어요.
담임목사님은 교회 평화를 위해서 꾹 참고 말도 안 하고 있지만
담임 목사 밑에 있는 전도사가 보니, 기가 막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 장로, 내가 길을 들여 놓고 나가야지!'
'목사님은 평생 이 교회에서 목회를 해야 되니까
분란을 일으키면 좀 곤란하겠지만
나는 뭐 전도사로 와 있는 사람, 언제 떠날지 모르는 사람이니까
이왕 여기 온 김에, 장로 하나 길 좀 들여놓고 떠나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겠다' 그래서 제가 선전포고를 했지요.
선전포고를 하고 나서 일주일만에 제 목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갈 데도 없는 거예요. 식구 셋을 거느리고 갈 데가 없었어요.
'개척을 해야 되나?' 하고는 동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개척할 만한 곳이 있는지 찾아보기도 하고...
그런데 돈도 하나도 없었고요.
어느 교회에서 오라고 했으면 좋겠는데, 오라는 데도 없고
그렇다고 뭐 유학이라도 갔으면 하는데, 식구들을 두고 유학을 갈 수도 없고
하여튼 참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런데 참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참 묘한 것 같아요.
그런 하나의 사고 accident 를 통해서
저의 인생에 결정적인 코스로 들어가게 만드셨어요.
▲서울 시내 모 교회에 제가 청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대학부를 맡게 됐죠.
부목사 일을 하면서 대학부를 한다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저는 아직 안수도 안받았는데
한 7~8백명 모이는 교회에서 부목사 일을 저에게 맡겼어요. *성도교회
그러니까 목사님을 도와서 설교도 자주 해야 되고, 대심방도 다녀야 되고
그러면서 대학부를 지도하래요.
그 교회 대학부는 참 제가 볼 때 기가 막힌 대학교였어요. *아마 성도교회
여러분 1970년대만 해도, 주보 뒤에 출석인원 통계가 나와 있었어요.
그런데 그 교회 대학부 출석통계는, 여러 주를 계속 보아도
한 명으로 항상 나왔습니다. 출석 한 명, 그 대학부를 맡으라고 하는 거예요.
근데 그냥 그 당시에는, 한국 교회 대학부가 지리멸렬할 때입니다.
영락교회 대학부는 자폭을 해버렸습니다.
새문안교회 등 굵직굵직한 대학부들이 다 해산해 버렸습니다.
20 명이라도 주일날 모여가지고 대학생들이 말씀을 같이 나누는 교회는
제가 설문조사를 하면서 돌아다녀보니까
서울시내에 20교회도 안 되더라고요.
그러면,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다 어디로 가느냐?
선교단체로 갔어요.
그러니까 CCC. JOY, IVF, 네비게이토 등 전부 그런데로 다 빠져버려요.
그러니까 교회의 대학부가 고사를 당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맡아야 되는 대학부 경력을 봤더니
대학부를 살려보려고, 학위를 가진 신학교 교수 목사님을 모셔가지고
한 1~2년 맡겼는데, 그 목사님이 오셔가지고 참 질 높은 강의를 했습니다만
그 학생들에게 그게 안 먹히죠.
그래가지고 또 바꾸었어요. 그래 가지고 또 젊은이 운동을 잘 한다는 사람을
불러가지고 대학부를 또 맡겼는데.. 역시 잘 안 됐어요.
이래도 안 되고, 저래도 안 되고.. 그래서 결국 대학부가 한 명 남았어요.
그 한 명 남은 대학부를 맡아서 저보고 하라고 그러니까
담임목사님이 명령을 하는데 거절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가지고 주일날 대학부 실에 가봤어요.
갔더니 오전 10시가 되었는데 진짜 한 명이 와서 앉아 있었어요.
하도 신기해가지고 물어봤더니 고려대학교 삼학년이라 그래요.
왜 혼자 와서 앉아있느냐 그랬더니 '목사님, 제가 회장입니다'
제가 그 대학부를 맡으면서 위기의식을 느꼈습니다.
내가 그래도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처음 공식적으로 맡는 사역인데
내가 이 사역을 하면서 나도 한 명을 데리고 씨름하다가 손을 든다든지,
있는 한 명까지 놓쳐버리고 완전히 공수로 돌아간다든지 하면
이 꼬리표가 평생 나를 따라다닐 가능성이 많은데
이거 어떻게 하면 좋겠냐 말이에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기도를 열심히 했어요.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안 하시더라고요.
이런 위기가 저에게 있어서
'교회가 뭐냐, 목회가 뭐냐?' 하는 것을
서서히 제 스스로 마음에 두고 고민하기 시작한 동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맡고 나서, 이제 한 명 남은 회장은 그냥 남겨두고
왜냐하면 이제 뭐 4학년 졸업반으로 올라가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1학년 입학한 학생 하나를 붙들고
제가 사정을 해서 대학부를 새로 시작했습니다.
그 입학한 학생이 저와 손을 잡고 대학부를 살려보려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어요.
둘이서 이제 열심히 합니다. 그래서 2~3명이 모이고 그랬어요.
그러는데 어느 날 그 학생이 그래요.
'목사님, 제가 다니는 서울 공대는 네비게이토가 굉장히 활발합니다.
제가 거기에 좀 들어가서 배우면 안 될까요?'
제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고요.
'너까지 가버리면 어떻게 하냐?' 그랬더니
'아니, 제가 완전히 가는 게 아니고요.
제가 네비게이토에 들어가서 처음부터 거기서 어떻게 하는지 잘 배우면
목사님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제가 거기서 배운 것들을 목사님께 전해 드릴게요!'
'그래서 거기에서 나오는 자료들, 가르치는 방법이라든지
그걸 좀 배워서 목사님께 전해드릴게요.
하여튼 네비게이토 선교회에만 들어가면 대학생들이 달라져버려요.
그리고 눈빛이 반짝반짝 해요. 교회다니는 애들하고 틀려요.'
그래서 제가 그 학생하고 서약을 했습니다.
'나하고 서약하자. 네비게이토에 절대 빠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하고 서약하자.
그리고 네가 가서 배우는 대로, 나에게 좀 가르쳐주고, 자료도 좀 갖다 줘.'
그 학생은 그 약속을 잘 지켰어요.
근데 뭐 갖다주는 자료들이 뻔하잖아요.
-전도할 때 쓰는 브릿지 (사영리 같은 것)
-성경 암송 카드
-성경공부 교재
보니까 별 게 없더라고요.
교재만 놓고 보면 '도대체 이게 뭐 장난도 아니고 뭐냐?'
이런 식으로 느낄 만큼 참 제가 보기에는 수준 이하로 보였어요.
그래도 그 학생이 갖다주는 걸 계속 제가 검토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한 두 달이 지나니까, 네비게이토에 들어갔던
우리 교회 그 학생이 달라지는 거에요.
전도를 열심히 하고..
기도할 때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고..
기도할 때마다 암송했던 성경구절들이 줄줄 나오고..
사람이 달라진 거예요.
그래서 '야 거기에 뭐가 있구나..'
그래 가지고 제가 좀 더 진지한 자세로
그 어설퍼 보이는 자료들을 검토하고
거기에서 그 젊은이들을 어떻게 지도하는가를
제가 하나하나 체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제자훈련이 대학생 선교방식에서 힌트를 얻음)
진리는 어려운 어려운데 있는 게 아닙니다.
진짜 해답은 모호한 데 있는 게 아닙니다. 해답은 멀리 있지 않아요.
가까운데 있어요.
왜 교회로부터 젊은이들이 빠져나가는 지를, 제가 비로소 알게 된 거예요.
왜 선교단체에 많은 젊은이들이 모있는지..
거기에 들어가면 왜 젊은이들이 변화가 일어나는지..
제가 해답을 발견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보니까, 거기에 있는 자료들을 비교하면서
제가 맡고 있는 대학부의 모든 분위기와 내용을 검토해 보니까
중요한 문제가 하나 발견되었어요.
선교단체 para-church 사역에 있는세 가지가
우리 교회 대학부에는 없었습니다.
-복음이 없더라
-훈련이 없더라
-비전이 없더라... 이 세 가지가 없었어요.
대학생 선교단체에는 복음이 살아있었어요.
훈련이 있었어요.
비전이 있었습니다.
이거 뭐 너무나 평범한 거예요.
그런데요. 제가 이것을 발견하고 나서는
교회를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복음이 없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세요?
기성 교회는 복음은 없는데, 교리는 있더라고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학생들이 소요리문답은 1조, 2조, 3조 다 외워요.
교리는 있어요. 그런데 복음이 없더라고요.
네비게이토와 같은 그런 선교단체는,
교리는 약간 산만한데, 복음이 살아있어요.
그러니까 그 복음이 젊은이들을 사로잡는 거예요.
복음이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붙이는 거에요.
복음을 통해서 젊은이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게 만드는 거에요.
그 복음때문에, 젊은이들이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지도록
성령이 역사하는 것을 제가 봤어요.
그런데 기성 교회는 '십자가'라는 말은 하지만
복음의 감격과 능력이 식어버린 지가 오래 되었어요.
고난주간이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설교는 합니다만
모두가 '다 아는 이야기 또 하는구나, 들은 이야기 또 듣는구나' 하는 식의 반응이지,
정말로 십자가앞에 가서, 자기를 위해서, 자기를 사랑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을 토하는 은혜의 감격이 없더라고요.
그러니까 머리로만 아는 것은, 그것은 복음이 아니에요.
복음은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전 인격을 사로잡고 움직이는 하나님의 파워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복음이 없다'라고 하는 말은
뭐 십자가설교를 안 한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 이야기 안 한다는 말이 아니에요.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안 보이고
살아있는 십자가의 피가 말라버렸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그런데 선교단체에서는, 십자가에 피가 흐르고 있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들어도, 젊은이들의 눈에 눈물이 핑핑 돌아요.
주님을 위해서라면, 나는 땅끝까지 달려가겠다고 하는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었어요.
그러나 기성 교회는 그게 없었어요. 그러니 게임이 안 되는 거지요.
▲오늘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실교회는 안 그러나요?
여러분이 지금 다니는 교회는, 복음이 살아있다고 확신할 수 있어요?
사람을 키우는 훈련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사람을 만들어야 되잖아요.
그러나 기성 교회 대학부에서는 보니까 회의는 많이 해요.
뭐 총회, 임원회 등 회의는 많이 해요.
그러나 사람을 키우는 데는 관심이 없어요.
모이면 항상 임원회로 모여요. 동의 제청하는 자리에요.
아니면 목사가 그저 간단하게 설교를 하는 자리에요.
한 영혼을 붙들고 씨름하는 양육, 훈련의 장이 없어요.
그러나 선교단체는 가보니까, 한 사람을 붙들고도
두 시간, 세 시간 앉아가지고 그 사람의 영혼을 바로 세워 주려고
정성을 쏟는 노력이 있었어요.
그리고 그 젊은이들을 영적으로 성숙시키고 성장시키고
그래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 만들도록 하기 위해서
끊임없는 교재가 나오고, 끊임없는 자료들이 공급되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자기도 모르게 주님을 닮아가지 아니할 수 없도록 만들어요.
당시 기성교회는 그게 없었어요. 그저 형식적인 공과공부는 있어도
'정말로 사람을 만든다, 제자를 만든다' 하는 철학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게임이 안 되는 거지요.
선교단체에는 비전이 있었어요.
'세계를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바꾸어 놓겠다!
전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우리는 헌신하겠다'
하는 큰 꿈을 젊은이들이 갖도록 해주는데
기성교회는 기껏 해봐야 그냥 교회 예산 타가지고
일 년에 행사 몇 개 하는.. 그게 꿈이에요.
도봉산 등산가는 거, 어느 교회하고 축구대회 하는 거
그게 꿈이었고,
세계를 가슴에 품고, 환상을 보도록 만들지를 않았어요.
그러니까 1970년대 당시의 교회 청년부는 다 죽을 쑤었는데,
대학교 선교단체는 부흥을 했던 것이죠.
제가 그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부터
'제자훈련'에 대해서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배우기 시작했고
저 자신이 (선교단체처럼) 제자훈련을 하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그 서울공대 다니는 학생이 가르쳐주는 대로
학생들을 10여 명 모아놓고 제자훈련을 시작했어요.
그리고 시작하면서 '내가 잘못하는 것은 네가 가르쳐 줘.
내가 몰라서 실수하는 것은 네가 고쳐 줘' 그래서 같이 앉아서
제자훈련을 최초로 시작했어요.
그 학생이 경기고등학교 나오고, 서울대학교 나오고,
후에 콜롬비아 대학에서 교육학박사 받은 방선기 목사입니다.
그때 당시에 친절하게 나를 잘 도와 주었어요.
그리고 제자훈련을 한 열 명 할 정도로 학생들이 모이고,
제자훈련을 시작하고 나서 보니
그때부터 이제 불이 붙기 시작하는 거예요.
한 10여 명이 토요일 오후에 모여서, 3~4시간을 제자훈련을 하는데요.
두 달 석 달 가니까 다 변하는 거예요.
옥목사부터 시작해서 전부가 사람이 달라지는 거예요.
그 자리에서는 설교 안 해요.
말씀 펴놓고 서로가 받은 은혜를 나누는 거예요.
그리고 교역자(저)는, 이게 궤도가 잘못되지 않도록
방향타만 잘 잡아주면 돼요.
그래가지고 학생들하고 머리 맞대고, 말씀 앞에서 위선을 벗기 시작하고
함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고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자기 자신을 피드백하고
자기 안에 숨어있던 잘못된 생각들이 그대로 노출되고
그것이 회개로 이어지고, 서로가 손잡고 하나님 앞에 우리 모두를 드릴 때에
성령께서 하나하나 만져주시면서, 교역자부터 바꾸어 놓으시고
학생도 바꾸어 놓으셨어요.
그런 과정이 1년 이상 계속되니까, 어떤 일이 그 안에서 일어났는가를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어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제가 제자훈련에 처음 눈을 뜨면서, 얼마나 미쳐버렸는지요.
가정도 잊어버렸어요. 그래서 우리 집사람 고생 많이 했어요.
애 둘을 낳고 키우면서 고생 많이 했어요.
교회에서는 쥐꼬리만한 사례비를 주는데, 매달마다 모자라요.
그러니까 집사람이 얼마나 고생을 했겠어요.
그런데 그것도 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어요.
주일날 12시반에 대학부가 시작되면, 오후 4시반~ 5시에 끝났어요.
하여튼 그것도 시간이 짧았어요.
토요일은 제자훈련 시키고, 주일 날 되면 대학생들 모아놓고 집회하는데
나는 설교도 안 해. 그냥 뒤에 앉아 있어요.
나에게 훈련받은 학생들이 모든 프로그램 진행을 다 맡아서 했어요.
마지막 한 10분 시간 동안, 제가 나가서 격려해주고 기도해 주면
대학부 모임이 끝나는 거에요. 5시간 대학부 모임이 그렇게 끝났어요.
그리고 하루라도 공휴일이 있으면, 학생들을 데리고 기도원에 갔어요.
그리고 여름에 일주일, 겨울에 일주일, 1년에 두 번씩
대학생 수련회를 인도하는데, 5년 동안 10번을 제가 전부 다 인도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강사 초빙할 예산을 안 주니까 내가 인도했죠.
그래서 학생들이 자꾸 늘어났어요.
나중에는 한국에서 제일 큰 대학부가 되었어요. *성도교회
많은 교회들이.. 매주마다 견학을 왔어요.
몇 년 지나니까 120~130교회가 견학을 온 거예요.
견학을 와가지고, 교역자와 장로와 부장과 임원들이
예배실 뒤에 앉아 있었어요.
여러분, 제자 만드는 법, 제자를 만드는 것을
옥목사의 독점 브랜드가 아니네요. 다들 그렇게 오해를 하고 있는데요.
사랑의 교회의 무슨 특허 사역이 아니에요.
제자를 왜 만듭니까? 주님이 제자를 만들라고 했잖아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마지막으로 우리보고 한 말씀 아니에요. 제자를 만들라고 했죠. 마28:18~20
예수님이 제자 만들라고 명령했잖아요. 그러니까 제자 만들려고 하는 것이지
그게 옥목사의 독점 브랜드입니까?
모르면 입다물고 가만히 있지, 왜 비판합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제자 만드는 것이냐?
물론 견해의 차이들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저는, 제가 목회하면서 위기를 만났을 때,
대학부 한 명을 데리고 '이제는 내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씨름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제게 열어주신 길을 통해서
주님이 제자를 만들라고 하신 내용이 무엇이며
제자를 만드는 것이 어떤 것이며
제자를 만들 때 어떤 놀라운 은혜들이 쏟아지는지를 체험하게 하셨어요.
그래서 5년 동안 제가 그 교회를 섬기면서
정말 행복한 젊은이 사역을 했습니다.
부목사로 일하면서 너무 힘들지만
몸이 그냥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가정이 어떻게 되는지도 모르고
이 젊은이들 하고 씨름을 했어요. 그러면서 너무너무 행복한 거예요.
▲여러분, 목회자가 목회하고 나서
자기 목회를 통해서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을 보면... 뿅 가버립니다.
그런데 5년을 10년을 목회해도, 반들반들 하면
정말 그거는 힘든 목회입니다.
목회를 하면, 사람이 변화가 되어야 될 것 아닙니까.
장로가 바뀌는 걸 봐야 될 거 아닙니까.
아무리 병이 든 교회라도, 내가 가서 목회한 이상
그 교회가 건강한 체질로 돌아서는 것을 봐야 될 거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이 있고, 성령의 능력이 있고, 여호와의 영광이 있는 교회가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어요?
그런데 실제로 현장에서 왜 안 되는 것인가요?
우리가 "교회가 뭔가, 목회가 뭔가?" 하는 것을
씨름을 하면서 해답을 찾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래요.
왜 예수님이 제자를 만들라고 했는지,
그 사실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면서 연구를 하지 않아서 그런 거죠.
여러분, 전통 목회가, 제자 만드는 거하고는 조화가 잘 안됩니다.
참 이것이 고민스러운 이야기인데요.
다시 말하면 전통적인 목회 토양에서는
제자 만들기라는 묘목이 잘 자라지 못해요.
심어놓으면 말라버리고, 죽어버립니다. 참 이상해요.
우리 교단만해도 지금 90% 이상이 전통 목회입니다.
여러분은 졸업하고 다 거기로 나가야 돼요.
그런데 제자를 만드는 목회로 방향 전환을 하려면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몰라요.
여러분 지금 목포에 가면, <빛과 소금 교회>가 있어요. 통합측 교회입니다.
거기 조현O 목사님은 17년 전에 우리 세미나에 왔다가 갔어요.
그리고 나서부터는 제자 훈련에 미쳐버린 목사가 되었어요.
근데 그 목사님은 자기가 목회하는 조그마한 목회가 있었어요.
1백명도 남짓한 교회였는데, 자기는 전통적인 목회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교회가 싸우고, 재정담당 집사가 그냥 막 교회를 좌지우지하고
힘들게 했어요.
그래서 조현O 목사는 '제자훈련이 교회를 건강하게 세우는 비결이구나' 하는
것을 깨닫고, '나도 옥목사처럼 제자훈련에 미쳐야 되겠다'
그래서 진짜 미치기로 작정했어요.
자기 교회로 돌아가자마자, 부인들 몇 사람과 함께 제자훈련을 시작했어요.
부인들 데리고 하다가, 그만 그 교회에서 쫓겨났어요.
그 교회 안에 힘 깨나 쓰는 남자 집사님들 서너 명이 와 가지고
교회 문에다가 엑스 자 나무를 대어 문을 못질 해서 잠궈 버렸어요.
그러니까 목사님은 집에 앉아서 이제 기도만 하고 있는데
제자훈련 받던 몇 명의 여성 교우들이 찾아와 가지고
새로 교회를 개척하자고 제안했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교회를 개척하고, 제자훈련을 재개했어요.
지금부터 한 15년 전 이야기입니다.
제가 지난 연말에 그 교회를 다녀 왔어요.
아마 지금 목포에서 가장 앞서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제자훈련을 얼마나 철저하게 시켰는지
교인들의 눈빛이 반짝 반짝 하는 거에요.
지금 아마 한 1,500명 정도 모이죠. 와~ 내가 놀랬어요.
그러니까 그 조목사에게 쇼크 받아가지고,
호남지역의 통합측 목사들이 제자훈련 세미나에 많이 와요.
그리고 자기가 돈 내서, 그 지역 가난한 목사들을 우리 세미나에 보내 줘요.
여러분 기성교회에서 제자훈련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요?
왜 이렇게 목사가 쫓겨나올 정도로, 수난을 당해야 합니까.
바로 여기에 중요한 문제가 있는 거예요.
기성교회의 목회가, 본질에서 많이 이탈했다는 거예요.
기성교회 목회의 특징을 몇 가지 들면
기성교회 목표는 예배 일변도의 목회입니다.
모든 게 예배입니다.
다 모여도 예배고, 심방을 가도 예배고, 무슨 회의를 해도 예배고
그것도 틀에 박힌 예배, 형식적인 예배입니다.
나는 그것이 나쁘다, 잘못됐다.. 하는 말을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러나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목사가 교회를 책임지고 있는 목적이, 예배인도자가 되는게 전부가 아니에요.
여러분, 성경을 들여다 보라고요.
성경에 어디를 봐도 '너는 양떼들 중에서 성령이 피로 값주고 세워서
성도들 가운데에 감독자로 세웠다' 했을 때
그 감독자가 해야 되는 일이, 예배인도자라고 설명한 곳이 어디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예배 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어요.
예배는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지요.
그러니까 목사가 예배 인도를 위해서, 그 준비를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지요.
그것은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계속해야 되고, 더욱더 최선을 다해야 되지요.
그러나 무엇이 문제냐?
목회가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자세가 틀려먹었어요.
예배인도, 예배준비 하는 것이 목회의 거의 80% 라고 생각하는
그 의식구조가 잘못됐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예배 일변도의 목회가 되는거죠.
그렇지 않아요?
대심방을 가도, 교인 앉혀놓고
그 영혼이 어느 정도 수준에 있는 영혼인지,
어떻게 하면 이 영혼을 좀 더 건강하게 키울 수 있는지..를 놓고
목사가 고민합니까?
그 집에 들어가자마자 '묵도합시다!' 하고는
그다음에 자신이 그냥 준비한 말씀 전하고...
교인들도 성경 찬송 가지고 기다렸다가
예배가 끝나고, 축도끝나면 나면 '아 이제 예배가 끝났구나'
그 다음에는 커피 나옵니다. 과일 나옵니다.
그래 가지고 이런저런 잡담하고 거기서 끝나버리는 거죠.
이렇게 예배 일변도의 목회가, 이렇게 한국 교회의 중심이 되어 버리니까
평신도가 전부 병신도가 돼 버렸어요. 왜 그런지 아세요?
예배 군중이 되어버렸다는 말이에요.
제가 '군중'이라는 좀 나쁜 말을 썼어요.
성경적 표현으로는 예배 '무리'가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예배에만 열심히 출석하면
'내 신앙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착각하게 만들어 버려요.
3년 안에, 아니 5년 안에 장로 되기.. 라는 우스개 소리 있잖아요.
그 조건은, 예배 빠지지 말고 참석해, 점점 앉는 자리를 앞쪽으로 옮겨라,
목사 눈에 잘 띄는 자리를 고정 좌석으로 만들어 놓고
절대 예배에 빠지지 마라. 새벽기도 부터 시작해서.
그리고 교회가 필요할 때는, 돈 아끼지 말고 좀 뭉칫돈을 가지고 헌금해라.
그리고 나서 5년 안에 장로 안 되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 우스갯소리죠.
그러나 이게 현실이에요.
성도들의 신앙 성숙도를 측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예배참석'이 돼 버린 거예요.
여러분 이게 성경적입니까?
예수님이 제자를 만들라고 하신 것이,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이 틀을 깨야 됩니다.
그리고 예배라고 하면, 성도들에게 항상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틀이 있잖아요.
근데 그 틀이라는 것은, 성경 말씀 처럼 불변의 어떤 틀이 아니거든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거예요.
성경에 고정적인 예배의 틀이 있어요?
원리는 있어도 틀은 없단 말이에요.
내가 처음에 개척해 가지고, 한 10명 데리고 첫 주일 예배를 드리는데
그게 한 몇 주 지나니까, 한 20명 정도 되더라고요.
그때 어떤 점잖은 부인이, 예배 중에 들어와서 뒤에 앉더라구요.
그럴 때는 천지가 환해집니다. 한 명 들어오는 게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옷을 잘 차려입은 부인이 들어오면
진짜 속된 말로 목사는 그냥 그 시간에 예배인도 잘 못합니다.
'야 저 분이 우리 교회에 오셨구나' 하고 흥분해 가지고 마음이 흐트러지죠.
근데 그때 저는 강대상에서 설교나 예배 인도를 하지 않고,
1인용 의자로 둥그렇게 둘러 앉아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하니까
그래 가지고 마치 제자훈련 하듯이 그렇게 하는데
그 부인이 뒤에 가서 앉아 가지고 한참 쳐다보고 있더니
'이게 예배라고 드리나?' 하고 벌떡 일어나서 나가버리더라고요.
나중에 보니까 저기 강북에 있는 큰 교회 권사님 이더라고요.
그러니까 그 권사님의 의식 속에서
예배는 이렇게 이렇게 진행되고
목사가 강대상 앞에서 이렇게 인도해야 예배지... 이런 개념이 딱 박혀 있는 거에요.
근데 성경에서 그게 예배라고 정리한 데가 있어요?
둘러앉아서 예배드리면, 하나님이 안 받으시나요?
성경공부는 예배가 아닌가요?
하옇튼 이상한 생각들이, 사람들 마음 속을 가득 채우고 있어요.
하옇튼 예배만능주의, 예배일변도,
또하나 설교만능주의..이것이 오늘날 한국교회에
제자훈련을 못 하게 만드는 좋지 못한 전통이 되고 말았어요.
설교 만능주의가 생긴 것은, 예배를 중시하다 보니까
따라서 설교도 중시하게 된 거죠. 목사들은 설교만능주의에 빠져버렸어요.
설교 하나면, 제자를 만들라는 말씀을 다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하는
이상한 오만 기가 들어 있어요.
그리고 설교를 조금 잘한다는 평을 듣는 사람은,
'자기 설교 하나면 모든 성도들의 영적인 니드를 다 채워 줄 수 있다'고
착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얼마나 화려한 설교들이 오늘날 많아요?
얼마나 설교를 자주 합니까, 얼마나 많이 합니까?
그런데 왜 한국교회는 변하지 않습니까?
왜 잘 안 됩니까, 왜 젊은이들이 설교에 귀를 막습니까?
웃기는 설교는 들어도, 진지하게 하는 설교는 왜 안 듣습니까?
값싼 복음은 들어도, 주님이 명령하시는 너무나 엄숙한 명령 앞에는
왜 고개를 돌립니까?
여러분 그거 아세요? 설교가 그렇게 중요해 가지고 설교만능주의로 빠졌으면
설교가 무슨 역사를 일으켜야 될 거 아니에요?
▲여러분, 칼빈의 설교를 읽어 보세요. 루터의 설교를 한 번 읽어 보세요.
18세기 조나단 에드워즈의 설교, 19세기 스펄전의 설교를 한 번 읽어보세요.
번역본으로 나온 것이니까 조금 다르겠지만
전체 내용은 다 파악할 수 있잖아요.
심지어 약간 좀 기울어졌다고 하는 J I Packer 의 설교를 한 번 읽어보세요.
요즘 우리가 하는 설교하고 비교가 안 됩니다.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냐면, 정말 설교다운 설교를 한 시대의
설교자들의 설교를 읽어 보면,
그리고 그 설교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설교와 비교를 해보면
우리는 물을 너무 많이 탄 설교를 하고 있다.. 는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요.
요즘처럼 인터넷에, 출판물, 번역물... 오죽 많아요.
설교자료가 너무 많아가지고 홍수를 이루고 있어요.
그래서 적당히 짜집기 해가지고 들고 나가는 설교,
설교준비 시간 급하면, 그냥 예화 두어 개 가지고 그냥 20분 때우고...
그리고 교인들이 많이 웃어 주면 '은혜 받은 설교'라고 착각하고 그렇잖아요.
교인들이 나가면서 '목사님, 은혜 받았습니다' 말해 주면
그것 때문에 자기가 설교 잘 한 줄로 착각하고...
여러분, '은혜 받았습니다' 소리 하는 사람은 상습적이라는 것을 모르세요?
설교의 진가는, 설교 듣는 시간이 아니에요.
설교들은 다음에 어떤 변화가, 어떤 말씀의 능력이
그 사람의 인격과 삶에 일어나는가...
이것이 설교를 잘했나/ 못했나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설교 시간의 분위기를 가지고 이야기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분위기도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만...
오늘 날 우리 설교가 질이 떨어졌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에만 매달리는 것을 봅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이 점점 힘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성도들이 영적으로 자라지 못하는 거에요.
이게 오늘날 전통 교회입니다.
그리고 우리 한국 교회 만큼, 열심히 가르치는 교회가 어디 있어요?
얼마나 많이 가르쳐요, 얼마나 많은 프로그램을 도입해요?
그런데도 잘못된 게 하나 있어요.
지식 위주의 교육이에요.
얼마나 많이 가르치느냐, 얼마나 많이 알게 하느냐에 초점이 있지,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을 바꾸어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헌신된 사람으로 만들겠다고 하는
거기에 목적을 두고 가르치는 경우가... 쉽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까 많이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문제가 생겨요.
그래서 제가, 저하고 좀 가까이 지내는 서울의 큰 교회 목회자 한 분은
다니면서 제자훈련 비판하는 사람이에요.
저하고 그렇게 가까이 지내면서도 그래요.
비판하는 이유가 뭐냐면,
'교인들은 너무 많이 가르치면 안 됩니다.
교인들은 적당한 수준에 묶어두고, 목사의 설교를 갈급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그걸 일컬어 우민정책 이라고 그럽니다.
왜 많이 가르치면 안 되느냐?
'많이 가르치면 머리에 뿔이 납니다. 머리에 뿔이 나면 누구를 먼저 받는지 압니까?
교역자를 받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평안하지를 못 해요.
그런 까다로운 평신도 데리고 목회하는 것은 굉장히 힘듭니다.'
그런데 그 분은 한가지 모르는 게 있어요.
머리(지식)를 겨냥해서 가르치는 교육을 하니까 잘못 되는 거에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가르친다고 했는데도
바람직한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
성경을 지식으로 가르친 것이지,
성경을 예수님의 인격으로 가르치지 않았어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함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에 대면하도록 만들지 않고
얼마나 많이 아느냐.. 에다 초점을 두고 가르치다 보니까
가르치면 가르칠 수록 병이 나버리는 겁니다.
▲여러분 장로 세우기로 작정하고 투표에서 당선된 사람,
뭐 1년 동안 장로고시 준비하느라고 '성경 한번 읽어라, 뭐 해라, 뭐 해라'
안 할 사람 누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성경 공부 입니까? 거꾸로 가지요.
제대로 가르쳐서 말씀 앞에 철저히 녹아진 사람을 장로로 세우려고 하지 않고,
세워놓고 성경 좀 가르쳐서 장로 만들겠다고 합니다.
오늘 이런 관습은 고쳐야 됩니다. 우리 교단도 고쳐야 돼요.
지식적으로 가르치려고 하니까요...
그렇게 해서 장로 된지 3년만 지나면, 이상한 짓거리를 하기 시작하죠.
본색이 드러나는 거죠.
오늘 날 이렇게 직분자를 만드는 방법이 틀렸어요.
그래서 열심히 가르치기는 하지만, 인격적인 삶의 변화가 없어요.
이게 오늘 날 현실 교회입니다..
오늘날 현실 교회의 문제는 '값싼 복음'이 너무 인기를 끌고 있어요.
너무 인기를 끌고 있어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값싼 복음이 뭔지 아시죠? *'값싼 은혜'라고도 하지요.
그런데 한국의 일부 교회와 미국의 일부 교회는
값싼 복음을 전하면서.. 교회가 점점 대형화 되어가는 것입니다.
또 교회를 다니는 신자들 마음 속에 어떤 사상이 자리를 잡았느냐 하면
이원론입니다. 믿는 것과, 세상에 나가 사는 것은 다르다는 거죠.
성과 속은 일치하지 못한다...
그래서 믿음은 믿음대로, 세상살이는 세상살이 대로 가는 거예요.
그래서 이원론의 종이 돼버려요. 뿐만 아니라 이원론의 종이 되면
심각한 상황에 빠지는데 그것이 세속주의 입니다.
세속주의는, 세상을 닮아 가는 거예요. 가치관도 세상을 닮아 가는 거예요.
모든 것들이 세상을 닮아가기 시작하는 거예요.
교회 와서 '할렐루야 아멘!'은 한참 하고 나서도,
교회 문을 나가고 나면, 세상이 하는 대로 따라가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가 세상을 닮아 가는 거에요.
세상이 교회를 닮는 게 아니라요.
여러분 오늘날 한국 교회 안에 있는 교역자와 평신도들의 가치관을
한 번 따져보세요. 세상을 닮아가지 않는 성도들이 얼마나 있나요?
그게 어떻게 번 돈인지에 대한 과정은 전혀 생각 안 하고
그저 헌금만 많이 드리면 믿음 좋다 그러고...
요즘 이혼 가지고 교회 안에서 고민하는 소리 들어 보셨어요?
요즘 여러분이 성적 범죄를 가지고 옛날처럼 벌벌 떠는 사람 봤어요?
요즘 <왕의 남자> 때문에 동성연애에 대해서
얼마나 우리가 관대해졌다는 거 아세요?
어떤 방법으로든지 돈을 모으고, 빈익빈 부익부의 양극화 속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돈을 많이 모은 것만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 중요한 자리에 앉아, 모든 교회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전통교회의 현상 아닙니까.
여러분, 이것이 정상입니까? 이런 식으로 가면, 한국교회 마지막 결론이 뭘까요?
여러분이 앞으로 평생을 바쳐서 사역해야 될 오늘날 교회의 현장이에요.
피끓는 가슴을 가지고, 주님 앞에 자기를 드리려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진리를 위해서는 세상에서 돌을 맞던지, 사람들로부터 짓밟힘을 당해도
진리를 위해서는 내 생명 아낌없이 바치겠다고 하는.. 결단을 하지 못 해요.
주저주저 주저주저 해요. 세상이 너무 바뀌었기 때문에!
그리고 좀 더 강한 메시지를 전하면, 교인들이 떠날까 싶어서
교인들 눈치 보느라고, 꼭 전해야 될 말씀도 전하지 못 해요.
맨날 그래 가지고 교인들이 기분 좋게 듣는 메시지만 골라 잡느라고
정신이 없어요. 이게 여러분들이 앞으로 일해야 될 교회 풍토입니다.
이런 기성교회의 이런 전통적 교회 안에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하신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이 쉽겠는가 / 어렵겠는가? 여러분 스스로 한번 판단해 보세요.
그러니까 기성교회를 가만히 보면, 아예 '제자 만들지 말라'는 풍토에요.
그래서 제자훈련 하다가 호되게 당한 목회자들도 많아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그렇게 호되게 당한 목회자들이 다 성공하더라고요.
이렇게 여러분이 예배 일변도로 일관하는 목회,
설교 만능주의에 빠져있는 목사의 의식세계,
그래서 성도를 하나 하나 놓고 가르쳐서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자로 세우려고 하는데 시간 투자 안 하고
맨날 밖으로 돌면서, 노회나 총회에 가서 쓸데없는 짓거리나 하고
토요일 날 돌아와 가지고는 급하게 적당히 설교 준비하고...
그래 가지고도 사람만 많이 모이면 성공한 목회자로 알고 있고...
그래서 자기 자신부터 시작해서 교회 전체가
세상 흘러가는 대로 돌아가는... 세속주의에 푹 빠져서
세상을 감당을 힘을 잃어버리는 거... 여러분, 이게 오늘날 우리 현실입니다.
여러분, 똑똑히 알고 목사 되세요.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면, 어떤 모습이 될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런 식으로 목회하다가 하나님 앞에 서면 어떻게 되겠어요?
평신도 하나 하나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아세요?
저만큼 평신도 하나 하나가 대단한 존재라는 걸 아는 사람도 드물 거예요.
나는, 목사보다도, 바로 선 평신도 한 사람이
몇 배로 하나님 앞에 능력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어요.
이런 평신도를 그냥 자기 하인 부리듯이 하면서
교회 안에 딱 사장시켜 놓고
자기 혼자 전부 일을 다 하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여러분, 앞으로 한국교회가 어떻게 될 거 같아요?
그래서요. 오늘날 목회 현장이 이렇게 제자훈련을 하기에는 각박하기 때문에
제가 목사님들에게 자주 그럽니다.
'당신 제자훈련 해서 교회를 건강한 체질로 바꾸고
평신도를 제자리에 세우고 싶습니까?
성경이 말씀하시는 평신도의 꿈을 한번 이루어 보고 싶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미쳐야 합니다. 안 미치면 못 합니다.
미쳐야 돼요! 정신 없는 사람처럼 덤벼야지,
이것저것 기웃거려 가지고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
그래서 제가 세미나 첫시간에는 항상 '광인론' 이라는 강의를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목회하는 것만 사람이 미쳐야 됩니까?
세상에 보면 미친 사람 많아요.
연극인 손숙 씨 보니까, 연극에 미친 사람이더라고요. 제가 만나 보니까.
그리고 여러분 최근에 여러분이 신문을 통해서 보셨겠지만 미친 사람 많아요.
중략
세상 사람들도 미쳐서 목숨 걸고 자기 일을 하더라고요. 사업이나 예술분야에.
그런 세상 일에도 생명을 걸고 하고 있는데,
한 영혼을 구원하고, 그 영혼을 예수님 닮은 제자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고, 주이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에
생명 걸지 않고 적당히 한다고요?
여러분, 제가 대학생을 지도하면서 제자훈련에 그렇게 미쳤어요.
미쳐 가지고 30년, 35년을 달려왔어요.
저는 절대 후회하지 않습니다. 저는 바른 길을 택했다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목회자들에게 이 사실을 지금 가르치고 있어요.
저는 1년에 4번을 정기적으로 (제자훈련) 세미나를 합니다.
사랑의교회 현장을 오픈하기 때문에 450명 이상은 받지 못해요.
450명을 받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인터넷으로 등록을 받았어요.
450명 등록받는 데, 4분만에 다 끝났어요.
4분 지나서는 대기번호를 받았어요.
너무나 많은 목회자들이 제자훈련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이 너무 감사하고요.
그 이유가 뭔지 알아요?
옛날에는 사랑의교회만 하나의 샘플처럼 보였는데
이제는 너무너무 좋은 교회들이, 한국 안에서도 수 백 교회입니다.
여러분이 <디사이플> 이라는 잡지 아시죠? 그 잡지를 한번 보세요.
얼마나 기가 막힌 현장들이 여기저기 우뚝 서는지 몰라요.
'죽었다'하고 10년 정도 앉아서 제자훈련 해서
교회를 완전히 바꾸어 놓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서 그 교회에 복을 주셔서 그냥 성장하게 하시는데요.
이웃 교회들이 그냥 입을 딱 벌리고, 다물지를 못하게 만들었어요.
최근에는 가장 좋은 예가 대전 새로남교회 입니다.
내가 그 교회에 보냈어요. 내 밑에서 10년 이상 있던 사람을 보냈어요.
제가 만났더니 그래요.
'목사님, 제 몸이 너무 뚱뚱하다고 욕하지 마세요.'
'왜 운동 안 하니?'
'목사님,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지난 10년 동안 우리 집사람하고 둘이서 맨날 제자훈련만 했는데요'
그 전에는 너무 너무 힘든 교회였어요.
말도 못할 정도로 힘든 교회였어요.
그럼에도 '사람 키우는 이거 실패하며 나는 이제 끝장이다'
그래서 밤이고 낮이고 제자 훈련 시키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기를 10년을 했어요.
그러니까 물갈이가 되고, 제자훈련을 받으면서 변화되는 사람들이
점점 교회의 중심이 되고.. 이러면서 일어나기 시작한 거에요.
'목사님, 보세요. 제자훈련 하느라고 운동할 시간이 없었어요.
특히 남자 제자훈련은 저녁에 하잖아요.
저녁에 하면은 보통 1시, 뭐 어떤 땐 2시에 끝나고 돌아봐요.
집에 돌아오면 배가 너무 고파가지고 막 먹게 돼요.
그러니까 자꾸 몸이 불어나요.' 그 말에 제가 그만 듣고 감동 받았어요.
마치는 말
여러분, 목회의 본질을 이번 주에 잡으세요.
저는 이렇게 여러분이 알아듣기 쉽게 얘기하는 거예요.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본질입니다.
그러나 '새벽 기도 꼭 다녀야 된다' 하는 것은 비본질 입니다. 이해하겠어요?
성경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것은 본질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하루 석장을 반드시 봐야 된다.. 하는 것은 비본질입니다.
비본질 이란 것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거에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은 본질입니다.
그러나 찬송 부를 때, 반드시 일어서야 된다 하는 것은 비본질 입니다.
본질과 비본질을 여러분이 구별하셔야 돼요.
목회에 있어서 본질이 뭔가요?
제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여러분 마음 속에 딱 담을 수 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프랭크 리차저가 10년 전에 미국 목회자들 5천 명을 상대로 설문조사 했을 때
이런 말을 했어요.
'21세기가 되어서 교회가 정말 교회답게 제 역할을 하려면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이 무엇이냐?' 설문조사 했어요.
놀랍게도 대답 중에 100% 대답이 뭔지 아세요?
'평신도를 발굴해서 훈련해서 사역의 동역자, 즉 제자를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대답이 나왔어요. 옳은 말이죠. 그게 본질이에요.
여러분들 이 자리에 천 여명이 계시는데요.
여러분들만 제자를 만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내가 먼저 제자 되기 위해서 신학교 때부터 몸부림 치고,
그래서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고 예수님을 닮아가기 위해
죽기를 각오하는 제자로서 여러분이 거듭나서
여러분이 교회로 돌아가서, 여러분 때문에 수많은 제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게 되면.. 한국교회는 살아납니다.
아무리 지금 교회 현장이, 제자훈련과는 어울리지 않는 현장이고
여러가지 문제가 너무 많고,
세속의 물이 교회 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들어와도,
지금 여러분, 이 숫자가 대단한 숫자인데
신학생 여러분들이 먼저 그리스도의 제자로 바로 세워지면
그리고 여러분을 통해서 엄청난 제자들이 양산이 되면
그리고 그 제자들이 나가서, 가는 곳마다 가장 작은 자라도 천을 이루고
가장 약한 자라도 강국을 이루는 하나님 나라의 기적이 일어나기만 하면
교회는 이 세상에 소망이 될 수 있습니다. 아멘!
변명 하지 마세요. 변명 하지 마세요.
제가 성결교신학교 대학원에 가서 강의를 했을 때,
제가 제자훈련에 대해서 강의하고,
끝나고 나서 질문 좀 하라 그랬더니
그 성결교 대학원에 나오는 사람들이 다 젊은 목사들이더라고요.
젊은 목사가 질문하는 말이 '목사님, 오늘 강의 들으니까
제자훈련은 목사님이 목회하는 서초동 같은데,
그래도 지적 수준도 있고, 생활도 안정된 그런 곳이라야 가능하지
저같이 인천 달동네, 정말 네 사람이 둘러앉을 방도 없고,
사람들이 새벽이면 시장에 일하러 나가는 그런 달동네에서는
제자훈련이 안 된다고 생각되는데, 목사님 생각은 어떠세요?'
진지한 질문이었어요.
제가 기도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젊은 목사님, 내가 대답하기 전에 질문을 하나 먼저해도 좋겠습니까?
만약 옥한흠 이라는 사람이, 당신이 지금 목회하고 인천 달동네에 가서
목회한다면, 제자훈련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그랬더니 싱긋 웃으면서 '목사님 같으면 하시겠죠!'
그게 답이에요. 문제는 나예요.
내가 누구냐 에요. 내가 어떤 사람이냐?
내가 어떻게 준비된 사람이냐?
내가 교회를 어떻게 보는 사람이냐?
내가 목회의 본질이 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냐?
네가 한 영혼, 한 영혼에 대해서 어떤 환상을 갖고 있느냐?
이게 중요한 것입니다. 내가 준비되면 어떻게 해서든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졸업 후에 나가서 '흔히 하는 식으로 목회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 가지고 3년 보내지 마세요.
여러분 하나에게, 생명이 수 십 명, 수 천 명, 수 만 명이 죽고 사는 문제가 달려있어요. 아시겠어요?
그러므로 저의 목회 간증을 여러분이 이렇게 들으면서
교회를 보는 패러다임을 다시 바꾸고
목회를 보는 패러다임을 다시 바꿔서
이 세대를 바로잡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는 큰 결심과 각오를 갖게 되는
성령님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성령이시여, 우리를 도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정말 우리는 무서운 골리앗과 같은 적을 지금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그저 우리 선배들이 하는 식으로 하면 되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 가지고는, 하나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서운 세상을 앞에 놓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점점 세속화되어 가고,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으며,
의식있는 젊은이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으며
하나님, 교회가 설 땅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이 어려운 상황에
주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살아보겠다고 신학교로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는 귀한 젊은이들에게, 주여 은혜 주시기를 원합니다.
성령이여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캄캄한 어두움에 쌓였을 때
그 시대가 너무나 암울했기 때문에, 엘리야를 보내시고 엘리사를 보내셨습니다.
이 시대가 너무나 어려운 시대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 평범한 사람 보내시면 안 됩니다.
탁월한 지도자들을 보내셔야 되겠습니다.
엘리야와 같이, 엘리사와 같이
주님의 손에 붙들린 능력의 종을 보내 주셔야 되겠습니다.
이 종들이 이 가운데서 다 일어날 수 있도록
주님의 축복하시고 인도해 주시옵소서.
제자를 만들려고 하신 주님의 명령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깊이 깨닫고 순종하는 지도자들이 되도록 은혜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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