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계명! (막 12:28-34)
사람이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특히 주님께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말할 수 없는 영광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칭찬이 곧 인정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어떤 사람을 칭찬하십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헌금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계셨습니다. 부자들은 의기양양하게 많은 돈을 내면서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과부는 두 렙돈의 헌금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의 화폐로 계산해 보면 약 이백 원정도 하는 돈입니다.
그 때 주님께서 "저 과부가 가장 귀한 헌금을 했다"고 칭찬하자 제자들이 어리둥절했습니다. 주님은 최고를 보시지 않고 최선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은 최선을 다 하는 것입니다. 성도가 최선의 노력을 다 한 후에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 믿음이요 신앙입니다. /믿/ 자기가 할 일을 다 하지 아니하고 하늘에서 무엇인가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믿음도 신앙도 아닙니다. 그것은 욕심이고 착각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씨를 심지 않은 곳에선 아무리 기다려도 거둘 것이 없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땀과 노력이 없이 얻은 불로소득이나 요행을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요 하늘의 법칙입니다.
갈6:7절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126:5절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할/
여러분! 최선을 다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을 최선을 다하여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최선의 기도! 응답 받습니다. 최선의 예배!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최선의 봉사! 열매가 맺습니다. /할/ ◀제목소개!▶
하루는 서기관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묻기를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은 30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즉 '다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최선의 삶'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가 최선을 다하여 힘쓰고 애쓸 때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내가 예배에 최선을 다하고 섬김에 최선을 다하고 기도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축복의 비결이요, 기적의 통로가 됩니다. /믿/ 그러니까 최선은 축복의 통로가 되지만 최선을 다하지 않을 때는 후회하는 인생이 됩니다.
오늘 본문은 신6:4-9절을 인용한 말씀으로 마22:34-40절에도 같은 배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크게 두 단락으로 분해할 수 있습니다.
▶28-31절에서 '서기관의 질문과 주님의 대답'이고, ▶32-34절은 '서기관의 고백과 주님의 칭찬'으로 이어집니다.
▶28절을 보면 서기관의 귀한 신앙의 모습을 찾아보게 됩니다. 서기관은 당시의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는 일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서기관은 율법에 능숙한 학자들입니다.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을 보존하는 임무를 가진 학자계급이었습니다. 그래서 '교법사 또는 율법사'라고 불렀습니다. 대개의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한 서기관은 예수님께 칭찬을 받은 아주 예외적인 사람입니다.
⑴경청하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듣고'라는 말씀은 '귀를 기울여 경청하여 듣는 신앙의 모습'을 말합니다. 이 서기관은 사람들이 예수와 변론하는 것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있었습니다. 먼저 듣는 자세가 귀합니다. 듣고 은혜를 받아야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⑵말씀을 깨달은 자였습니다. '예수께서 대답 잘 하신 줄 알고' 예수를 모함하는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이 진리에 맞는 대답으로 깨달은 사람이었습니다. 깨닫는 것은 귀한 것입니다.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깨달아야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⑶적극적인 사람입니다. '나아와 묻되' 적극적인 행동이었습니다. 그 당시 예수님께 찾아가 질문했던 사람들은 예수를 모함하려고, 또는 올무를 놓으려고 나쁜 동기에서 나왔으나 이 서기관은 진리를 알고자 하는 적극적인 마음에서 주님께 나온 것입니다. 적극적인 자 만이 최선을 다할 수 있습니다. /할/
⑷서기관의 질문은 무엇인가?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 무엇입니까?" 여기서 서기관이 물었던 '모든 계명'이란 당시에 유대인들이 지켰던 613계명이었습니다. 613계명 중에 '하지 말라'는 계명이 365개요, '하라'는 계명이 248개입니다. 서기관은 그 많은 계명들 중에 첫째 되는 계명을 알고 싶었습니다.
⑸주님의 대답을 보겠습니다(29-31). 양파 얇은 껍질을 벗기면 양파가 알맹이가 드러납니다. 벗기면 또 있고 벗기면 또 있습니다. 한참 벗겨 나가면 가장 중앙에 생명체 눈이 있습니다. 중앙 중심의 핵심은 생명의 눈입니다. 하나님께서 수많은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율법의 중심 핵심은 무슨 율법일가요? 이런 율법 중에서 가장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 무엇이냐고 묻는 율법사에게 예수님이 주신 말씀은 간결했습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먼저 '자기 사랑'이 있어야 이웃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유명한 랍비 아키바에게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물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나이까?" 이 때 아키바는 "네가 하기 싫은 것은 남에게 시키지 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 사랑', '자기 사랑' 그리고 '이웃 사랑' 다시 말하면 '사랑'이 가장 중심 되는 율법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라면 지켜야 하고, 가져야 할 율법은 '세 가지'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신6:4-9/신11:13-21절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유명한 쉐마 교육입니다. 쉐마란 히브리어로 '들으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야 믿음이 생깁니다. 첫째 되는 계명을 묻는 서기관의 질문에 주님은 '큰 계명'을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큰 계명은 하나가 아니라 둘로써 서로 짝이 있음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다 짝이 있습니다. 10계명에도 짝이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대한 계명과 사람에 대한 계명입니다. ▶본문에서 주님이 가르쳐 주는 큰 계명은 모두 '하라'고 하는 적극적인 계명입니다.
1.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①나를 부르신 하나님을 사랑하라! 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를 지명하여 불러 하나님의 자녀 삼으신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김 집사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이웃 사람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자기>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②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사랑하라! '주'란 언약의 하나님으로 약속하신 것은 무엇이든지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으로 바로 나에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고 이루시는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③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섬기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는 우리가 어떻게 섬길 수 있습니까? 예배입니다. 구약 성경은 예배드린다는 말과 섬긴다는 말씀과 같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배가 섬기는 것입니다.
모세가 400년 간 종살이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출애굽 시키면서 한 말은 '우리를 해방시켜 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10가지 재앙을 퍼부을 때마다 바로에게 가서 한 말은 "광야로 나가 하나님을 바로 섬기게 해 달라, 이 곳을 떠나 하나님께 희생제물을 바로 드리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즉 바른 예배를 드리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신앙을 귀하게 보신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할/
나폴레옹은 한 때 유럽 전역을 호령했던 시대의 영웅입니다. 그가 마지막 워털루 전쟁에서 패한 후 센트헤레나 섬에 갇혀 살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그 때 외롭게 살고 있는 그에게 기자가 가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어느 때였습니까?" 묻자 나폴레옹은 미소를 띄우며 말하기를 "전쟁 중에 주일날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던 순간이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말했답니다. /할/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라고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④불러주시고 언약을 이루어 주시는 나의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라고 하십니까? 30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여기 '다하여'는 '헬'어로 '홀로스'인데 '전부, 몽땅, 온전히'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4가지 방법은?
⑴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정열적으로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사랑은 머리가 아니고 가슴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싶은데 왜 안 됩니까? 머리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슴을 열고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해야 할 분입니다.
사랑에 이 요소가 없으면 사랑에 힘이 없고 탄력이 없어 사건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랑에는 가슴 뜨거운 정열이 있어야 합니다. 열심 있는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에너지가 분출되어야 합니다. 가슴 뜨거운 열정이 없다면 사랑을 온전하게 하지 못합니다. 흔히 사랑이 식어졌다는 말을 하는데 이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신앙에도 정열이 없으면 죽은 신앙이 되고 맙니다. 계3:16절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 미지근한 사람은 뱉어 내치겠다."는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사랑이든 사람 사랑이든 뜨거운 심장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다하여'란 하나님을 사랑하는 출발이 마음으로 하는 것인데 그 마음 전부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마음이란 인간의 '지적, 감정적, 의지적'인 모든 것을 포함하는 총체적 표현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모든 문제는 마음에서 발생합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잠4:23절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사람은 무엇보다 마음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모든 행동의 근원이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마음가짐에 따라 선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악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잠23:7절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마음 한번 잘못 먹어서 인생을 망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무엇보다도 인생의 근원 되는 마음을 하나님을 향하여 초점을 맞추어 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마음 따로, 행동 따로' 그러면 안 됩니다. 예배를 드릴 때도 마음까지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몸은 교회 안에 있고 마음은 지금 세상 속에 있다면 하나님은 슬퍼하십니다.
㈀구원도 마음에서부터 옵니다. 롬10: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회개도 마음으로부터 나와야 합니다. 욜2:13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사람의 건강도 마음가짐에 따라 좌우합니다. 잠17:22절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
㈃행복도 마음에서부터 옵니다. 마음가짐에 따라 똑같은 환경 속에서도 행복해 질 수 있고, 불행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또 감사하며 살수도 있고, 원망하며 살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는 사람은 삶이 흔들립니다. 마음 관리를 못하면 생활의 질서가 파괴됩니다. ▶시51:10절을 보면 다윗은 자신의 마음이 흔들림을 깨닫고 이런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할/
그리고 보면 우리의 적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을 이기고 환경을 이길 수 있습니다.
잠16:32절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부부가 함께 살면서도 마음이 떠나 있으면 언젠가는 헤어지고 맙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를 찾아와서 입을 맞추면서도 그의 마음은 벌써 주님 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배신하고 은 30냥에 자신의 스승을 팔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죽음의 길을 자초했습니다.
㈄축복의 조건도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주님은 복의 근원을 말씀하실 때, 심령문제를 축복의 기본으로 삼으셨습니다. 마5:3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마5:5절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세상에는 가시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을 복의 기준으로 보지만, 주님은 더 근본적인 축복은 마음이 가난하고 깨끗한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삐뚤어진 양심, 삐뚤어진 인격 속에는 주신 물질이, 주신 권세가, 있는 지식이 이웃을 해하고 남을 속이고, 나라를 망치고 불의의 열매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변화된 인격, 변화된 양심, 변화된 마음속에 물질과 권세와 지식이 주어지면 이런 것들을 가지고 의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롬12:2절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성도는 기도할 때도, 예배를 드릴 때에도, 봉사할 때도, 그 무엇을 하든지 마음 중심이 먼저 하나님을 향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먼저 '네 마음을 다하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⑵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
'목숨을 다하라'라는 말은 '생명을 다하라'는 뜻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생명 걸고 하면 못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이 생명 걸고 나서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되 생명을 걸고 사랑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할/아멘!/
막5장에는 12년 간 혈루증으로 고생하는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인은 그 병을 고쳐보려고 재산을 다 허비하였습니다. 약이라고 한 약은 다 먹어보고 용하다고 하는 의사는 다 만나보았습니다. 또 해보라고 하는 것 다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병은 더 중해졌습니다.
이때 이 여인은 '무슨 병이든지 고칠 수 있는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군중들 속에 계신 주님을 발견하고는 달려가 주님의 옷가지를 붙잡았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으면서 정말 놀라야 할 때 놀라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여인의 행동은 놀라운 것입니다. 이 여인의 행동은 생명을 걸고 한 행동이었습니다. 만일 이것이 들키면 그 당시 율법에 의해서 음란한 여인으로 몰려 돌로 처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여인의 생명을 건 행동을 주님이 보시고 이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시고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사실 생명은 귀한 것입니다.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온 천하를 다 잃고도 제 목숨하나를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내가 존재한 후에야 가정도 돈도 사랑도 필요한 것입니다.
어느 장례식에 한 여인이 남편의 영구차를 붙들고 "당신 없으면 나 못살아! 나도 같이 가게 해 줘!" 울부짖던 그 여인도 역시 땅에 남편을 묻고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사람은 혼자 가는 게 인생이로구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죽음은 외로운 것이며, 고독하며 동반자가 없는 것입니다. 아내도, 남편도, 자식도, 이 세상의 모두는 다 이웃입니다. 모두가 내 생명을 대신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생명을 하나님께 맡기고 살라는 것이 본문이 주는 또 다른 교훈입니다.
우리의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책임을 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건강관리 잘 한다고 해서 안 죽습니까? 살고 싶다고 천년, 만년 사는 것도 아닙니다.
어느 날 외아들을 잃고 애통해 하는 어머니를 보았습니다. 생명은 재천입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 생명을 하나님을 위해 바로 살 때,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믿/
눅12장에는 어느 부자가 농사를 잘 짓고, 창고를 다시 짓고 그곳에 여러 해 먹을 곡식을 쌓아두고 이제는 먹고 마시고 인생을 즐겨보자 계획하는 데, 예수님은 그에게 어리석은 부자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지혜로운 사람 같습니다. 인생의 계획도 잘 세웠고, 내일을 위해 저축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인생의 계획은 소용없는 계획입니다.
이 부자의 비유는 하나님이 없는 인생의 말로가 어떠한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 부자에게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어리석다고 하는 말은 부자로 사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생명의 주인을 모르고 사는 것이 어리석다는 말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내 것이라면 천년, 만년 살겠으나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것이 목숨이라면 반드시 생명에는 주인이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바울같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을 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되 생명 바쳐 사랑하다가 하나님의 큰 기적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할/
⑶뜻을 다하라고 했습니다.
'뜻을 다하여'란 '이성'분별력입니다.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입니다. 사랑에는 분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에는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다듬어지고 균형 잡힌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뜻을 다하다'란 나의 모든 뜻을 모아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뜻에는 사람의 뜻이 있고, 하나님의 뜻이 있고, 선한 뜻이 있고, 악한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뜻은 항상 하나님의 뜻을 거스른다고 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데 왜 내 인생의 열매가 맺히다가 떨어지고, 축복이 막히거든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은 내 생활은 아닌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주파수와 채널이 맞아야 화면이 잘 나오듯 하나님의 뜻에 맞춰야 축복이 오고, 응답이 옵니다. /믿/ 특히 성도가 기도가 막히고 영적인 정체가 오고 답답하다고 느끼면 지금하고 있는 내 믿음 생활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왜 기도의 응답이 없는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축복이 없습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달을 향해가던 로켓도 궤도에서 이탈하면 그 궤도를 수정하듯 우리의 뜻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으면 하나님의 뜻에 맞추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다보면 손해 보는 것 같고, 망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롬8:28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할/ 손해 봐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하고 따라 가십시오, 그 길이 축복의 길이요, 승리의 길입니다. /믿/
▶무엇이 하나님의 뜻입니까?
⑴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믿어도 잘 믿어야 합니다. 요6:40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⑵하나님께 봉사하는 것입니다. 시103:21절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⑶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살전5:16-18절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등산을 즐기는 한 청년이 신나게 산에 오르던 중 큰 계곡을 만났습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썩은 나무다리 외에는 없었습니다. 겁이 난 청년이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이 나무다리를 무사히 건너게 된다면 백만 원을 감사헌금으로 드리겠습니다. 제발 무사히 건너게 해 주세요" 기도를 마친 그는 조심스럽게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습니다. 다리는 보기와는 달리 튼튼했습니다. 별 어려움 없이 중간쯤 왔습니다. 무사히 건널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다시 기도하기를 "하나님 백만 원은 너무 많고 오십만 원만 드리겠습니다." 그 순간 청년이 밟았던 나무 부분이 삐꺽하면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청년은 아찔했습니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하나님 저는 농담으로 말했는데, 주님은 진심으로 들으셨군요? 백만 원을 몽땅 드리겠습니다." ▶우스운 애화입니다만 처음 먹은 마음이 성령이 주신 마음입니다. 주님은 뜻을 다하여 주 여호와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⑷끝까지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힘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식의 힘으로 삽니다. 기술, 돈, 권력, 또 어떤 이는 재능의 힘으로 삽니다. 음악을 잘 하는 이가 있고, 가르치기를 잘하는 이가 있습니다. 세계 인구 60억이 넘는 사람 중에 비슷한 사람은 있어도 똑같은 사람은 없듯이 하나님이 주신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어떤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어떤 힘을 주셨는가를 찾아서 내게 주신 힘을 하나님을 위해 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힘은 하나님을 위해 쓸 때 더 큰 힘을 주실 줄 믿습니다. 건강도, 재능도, 물질도, 지식도 하나님을 위해 바로 쓰면 하나님이 더 크게 쓸 것을 주십니다. 눅6:38절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여러분!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나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히스기야 왕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 시켜주신 사실은 히스기야를 위해서가 아니라 히스기야로 하여금 해야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건강해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건강을 주신 것입니다. /믿/ ▶물질도 마찬가지요, 우리의 모든 재능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게 주신 힘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청지기로 살기만 하면 됩니다.
▶미국 백화점 왕으로 알려진 '존 와너 메이커'는 정부로부터 장관직을 추천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일학교 교사를 할 수 있도록 주일에는 어떤 일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서야 장관직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그 후 그는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주일이면 어김없이 필라델피아 교회로 내려와 어린아이를 가르쳤습니다. ▶주님께 최선을 다하는 사람, 하나님의 축복을 받습니다. ▶또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잠8:17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아멘!/
2. 자기를 사랑하라!
율법 중에 대강령 속에 하나가 자기 사랑입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웃 사랑 전에 사랑하여야 할 것이 바로 자기 사랑입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못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자기를 사랑하려면 먼저 내가 누군가를 알아야 한다. 희랍의 철인 소크라테스는 '네 자신을 알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요,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보시는 존재입니다. ▶왜 우리가 나를 사랑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우리 안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말씀이요,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 만큼 가치가 있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극치는 갈보리 십자가입니다. ▶왜 우리가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고, 우리를 용서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자기가 자기를 믿어주고 자기가 자기를 관리하고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자가 자기가 자기를 크게 기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기를 기르는 것 아닙니다. 선생님이 길러 주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를 가장 잘 기를 수 있는 이는 바로 자기입니다. 자기가 자기를 포기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내가 날 사랑하지 않는 데 누가 날 사랑하겠습니까? <자기 사랑 자기가 지니고 있다>는 말은 진리입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은 자기를 잘 관리한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범죄인으로 취급하는 사람은 자살하는 사람입니다. 자살하는 이의 장례에는 참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규범은 이웃 사랑의 척도가 됩니다. 자신의 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자격이 됩니다. 자신을 버리고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진정한 사랑을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웃 사랑한다면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자신의 가정도 돌보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위험합니다.
이웃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이어야 합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순교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허영심에서 자신을 속이고 남을 속이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대강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이웃을 사랑하라!
①일반적인 이웃의 개념은? ▶나의 필요를 위해 찾아가서 만나는 사람, ▶나에게 잘 대해 주어서 편안한 사람, ▶내가 좋아하고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 그런 사람을 이웃의 개념으로 봅니다. 사람들은 여기에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웃은 부분적인 이웃입니다.
②성경적 이웃의 개념은?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들입니다. ▶불교 권에서 말하는 옷깃을 스치는 사람들입니다. ▶일부러 만나려고 해서 만났든, 우연히 만났든 만나지는 그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바로 우리가 사랑해야 할 사람이요 나의 이웃이요 하나님의 명하신 사랑의 대상들입니다. 내가 유익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나에게 편안하게 대해주는 사람만이 아닌 오늘 만나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의도와 명령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곧 이 명령을 따르는 자세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데 기준이 '자기 몸'입니다. "내가 배고프면 상대방도 배고픈 줄 알고 내가 싫어하는 일이면 상대방도 싫어하는 줄 알라"는 것입니다.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여야 합니다.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내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입니다. 일차적으로 가족입니다. 그리고 이차적으로 우리 성도들끼리 사랑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의 공동체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서로 아파하는 이가 있을 때 같이 찾아주고 만져주고 알아주고 쓰다듬어 주어야 합니다.
▶경상도 안동에 있는 하회 마을에 류씨들이 살던 집단 마을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가장 큰집이 북촌 댁이라고 하는 집입니다. 7대가 200간 그 집을 떠나지 않고 사는 집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 손자 3대가 살고 있는 큰집입니다. 강도 끼고 산도 끼고 동쪽도 잘 보이는 아주 명당자리 집입니다. 1700평 대지에 72칸입니다. 이 집안이 안동에서 가장 존경받는 집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동기가 있습니다.
1859년 여름에 홍수가 났습니다. 화회마을 건너 쪽에서 홍수가 나서 건너오던 배가 밤중에 뒤집혔습니다. 상갓집에 조문을 다녀오던 길이었는데 급 물살에 배가 뒤집혀서 수십 명이 죽게 되었습니다. 그 때는 전기가 없던 때입니다. 그런데 강가에는 북촌 댁이 새 집을 지으려고 유명한 나무인 춘향 목을 잘 말리고 있었습니다. 좋은 재목입니다. 3년 간 말린 재목입니다. 북촌 댁은 그렇게 아끼고 공을 들인 이 나무들을 강으로 막 떠내려보냈습니다. 사람들이 둥둥 떠가는 통나무를 붙들었습니다. 나머지 목재들은 불을 질러 밝혔습니다. 그래서 그 때 물에 빠진 사람들을 다 살렸다고 합니다.
그 후 이 집은 명문가가 되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높이 평가하여 주었습니다. 이 집은 부자였는데 소작료도 다른 사람들은 땅을 빌려주고 60%를 받았는데 이 집은 50%를 받았습니다. 아주 어려운 집은 40%를 받았습니다. 동학 혁명이 일어났을 때 부자들을 모조리 잡아 공격했습니다. 그 때 이 집에 와서는 동학군들이 인사를 하고 갔다고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이를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히틀러가 유대인들을 600만 명을 죽였습니다. 독일에서만 그랬습니다. 소련에서도 500만 명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 폴란드, 스페인 등 유럽 전역에서 150만 명 가량이 죽었습니다. 그 때 히틀러는 전 유럽에 살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노란 다윗의 별 달게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노란 별을 달고 다녔습니다. 표시가 났습니다. 그 때 유대인을 죽이지 않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덴마크 왕은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덴마크 국민들에게 명령하기를 "덴마크 국민들은 모두 가슴에 노란 다윗의 별을 다십시오." 그리고 국왕 자기부터 달고 다녔습니다. 전 국민이 다윗의 별을 달았습니다. 그래서 덴마크에서는 유대인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이웃 사랑입니다.
이웃에게 줄 수 있는 사랑 중에 가장 큰사랑은 전도입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사랑은 없습니다.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이에게 가장 큰사랑은 건지는 것입니다. 밥을 사주는 것보다 옷을 사주는 것보다 시급한 사랑은 건져주는 것입니다.
▶미국 광야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사냥꾼이 사냥을 하다가 기차 철로를 보니 끊겨져 있었습니다. 도둑이 긴 부분을 절단하여 갔습니다. 기차가 달려오는 기적소리가 났습니다. 그는 기차가 달려오는 방향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습니다. 기차를 세우지 않으면 기차가 전복되어 모두 죽습니다. 엄청난 사고가 일어날 것입니다. 광야라 막힘이 없는 곳이라 기차는 전속력으로 달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최후의 결심을 했습니다. 기차 길 가운데 서서 옷을 벗고 흰 러닝사쓰를 흔들어 댔습니다. 아무래도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빨간 기가 위험을 알리는 기입니다. 그래서 그는 손가락을 철로 위에 놓고 돌로 내리쳤습니다. 흐르는 피로 흰옷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피가 뚝뚝 흐르는 빨간 기를 흔들어 댔습니다. 기관사가 이 모습을 보고 급정거를 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습니다. 이 사람은 깔려 죽고 말았습니다.
조금 후 기관사는 철로가 끊겨 있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 이야기입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이야기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코미디언 이 주일이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2001년 10월 25일 몸이 이상하여 병원에 갔더니 폐에 암이 다 퍼져 있었습니다. 의사는 "인생을 정리하십시오." 그 때 기자가 "지금 가장 중요하게 생각난 것이 무엇이나?"고 묻자 "가족에 대한 사랑입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더 사랑하지 못 하고 죽는 것이 안타깝다는 말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사랑하는 삶은 후회가 없는 삶입니다.
▶흘러간 유행가중에 한 명숙씨가 이런 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란 셔츠 입은 말없는 그 사람이 어쩐 지 맘에 들어. 어쩐지 나는 좋아. 미남은 아니지만 씩씩한 생김생김 어쩐 나는 좋아. 어쩐지 맘에 들어>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좋아하는 것이 있습니다. ▶노란 색을 좋아합니다. ▶말없는 것을 좋아합니다. ▶씩씩한 것을 좋아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요소가 그 사람 속에 들어 있기에 그 사람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좋아하실 까요?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은 좋아하십니다. 벧후1:5-7절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무지개는 7가지 색깔이 합하여 무지개가 됩니다. 도래미파솔라시 7음이 합하여 음악이 됩니다. 신의 성품은 8가지 요소가 합해 져야 합니다.
믿음이 시작이라면 사랑은 끝입니다. 기독교는 믿음에서 시작하여 사랑으로 끝나는 종교입니다. 형제 우애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사랑의 범위를 더 넓혀야 합니다.
여기서 사랑이란 아가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가페 사랑이란 사랑할 수 없는 이를 사랑하는 사랑을 말합니다. 사랑할 수 있는 이를 사랑하는 것은 상식이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이야기 하나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지극히 적은 소자 하나를 사랑하는 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마25;46).
▶성 프랜시스에게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꿈에 주님께서 나타나서 내일 너를 찾아가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튿날 프랜시스는 하루 종일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추운 겨울 밖으로 나간 프랜시스는 예수님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거지가 추운 데 옷도 입지 못 하고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추워 보였습니다. 프랜시스는 순간적으로 달려가서 자기 외투를 벗어 입혀 주었습니다. 그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지나갔습니다. 날이 저물어 버렸습니다. 프랜시스는 집으로 들어와서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 오늘 나에게 오신다고 하시더니 왜 오시지 않았습니까? 온 종일 나는 주님만을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이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너에게 갔었다" 프랜시스는 놀라서 "언제 오셨습니까?" 예수님이 "네가 나에게 외투를 벗어 주었지 않냐? 거지에게 외투를 벗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준 것이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 하늘에서 천사들이 나타나서 찬양을 했다고 합니다. 우리 주변의 모든 이들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40절에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입니다. 곧 성경의 골자라는 말입니다. 롬13:8,10에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하셨고, 요일4:20-21절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 찌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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