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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극복한 욥의 위대한 신앙! (욥 1:13-22)

by 【고동엽】 2022. 2. 5.

고난을 극복한 욥의 위대한 신앙! (욥 1:13-22)

 

찬송가 188장 '만세만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를 지으신 영국의 톱 레이디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 목사님은 불행하게도 폐결핵으로 인해 38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남긴 불후의 찬송 시는 우리 믿는 성도들의 가슴을 영원토록 울려주고 있습니다. ▶그 분이 쓴 찬송시 중에 우리가 즐겨 부르는 503장이 있습니다. 1절의 가사를 보면 <고요한 바다로 저 천국 향할 때 주 내게 순풍주시니 참 감사합니다.> 이어서 2절에 보면 <큰 물결 일어나 나 쉬지 못하나 이 풍랑 인연하여서 더 빨리 갑니다.>
그러니까 1절에서는 '이 세상을 순풍 만나듯이 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의 고백이요, 2절에서는 '큰 풍랑이 일어나서 몹시 힘들지만 그 가운데서도 천국을 향해 가는 발걸음을 늦추지 않게 하시니 참 감사하다.'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503장의 찬송가의 가사가 말해 주듯이 우리의 인생 길에는 순풍과 역풍이 있기 마련입니다. 기쁨과 즐거움도 있지만 고난과 슬픔 또한 피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입니다.
우리 한번 세상을 진지하게 들어다 봅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행복보다는 불행이, 형통보다는 고난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생로병사를 기본으로 해서 8고니, 16고니. 32고니, 64고니, 128고 등의 여러 가지 고난을 풀어나가는 고의 철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 안에서도 고난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고난의 대명사는 욥이 당한 고난입니다.
왜 세상에 고통이 있을까요? 왜 세상에는 질병과 지진, 전쟁, 굶주림이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돌보시지 않는 것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이 악을 다스리지 못하시는 것일까요? 욥기를 읽을 때마다 이런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욥기서의 주요관심사는 고통이나 고난의 문제가 아닙니다. 욥기서는 잠언, 전도서 함께 지혜 서에 속합니다. 우리에게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임을 지혜서는 주장합니다.
잠9:10절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또 욥28:28절에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 하셨느니라." /할/ ◀제목소개!▶

 

1. 본문의 욥은 누구인가?

 

우리가 욥을 생각할 때 흔히 극한 고난을 이긴 믿음의 승리자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욥이 큰 고난이 오기 전에도 평소에 어떠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는가를 오늘 본문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욥은 엄청난 부자였지만 그 모든 재산보다 가정을 더 소중히 여겼던 사람입니다.
한 마디로 욥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쳤던 신앙의 아버지요, 자녀들에게 사랑의 아버지였습니다. 욥은 칠 남 삼녀의 아버지로서, 평소에 최대 관심사는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데 있었습니다. 욥은 가정생활과 사회생활 모든 면에서 뛰어난 신앙의 거인이었습니다.
욥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입니다. 그는 '우스'땅에서 살았습니다. 우스 땅은 팔레스틴이 아니라 동방 아라비아에 위치한 곳이라고 학자들이 말합니다. 그러니까 욥은 이방인입니다. 욥은 이방인으로서 참된 하나님을 구속자로 믿고 살아가는, 살아있는 신앙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⑴욥의 신앙인격을 보면 하나님은 그를 매우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1).
▶순전한 자 ▶정직한 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 ▶악에서 떠난 자입니다. 하나님은 이와 같은 자가 또다시 없다고 칭찬했습니다.
먼저 자신과의 관계에서 '순전'했습니다. 이 말은 그가 양심과 도덕적으로 깨끗했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정직'했습니다. 이는 그가 대인 관계에서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했다는 의미로 '곧은 사람', '옳은 사람'의 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았습니다. 한마디로 경건의 사람이요, 큰 신앙의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또 욥은 성결(성별)의 삶을 살았습니다. '악에 서 떠난 자'라는 말은 악한 죄악의 세상에 서 구별된 삶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그뿐 아니라 그는 범사에 예배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5절에 보면 그가 매일 매일 가족들의 성결을 위하여 번제를 드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활은 욥의 삶에 규례가 되고 버릇이 되고, 생리가 되고, 습관이 되어버렸습니다.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여기서 중요한 말은 '항상'입니다.
⑵그는 큰 부자였습니다(3).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 백 겨리요 암 나귀가 오 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다."고 한 것을 보면 당시 대단한 거부였습니다.
⑶그뿐 아니라 그는 사회적으로 명예를 떨친 사람입니다(3).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했습니다. 여기 '큰 자'란 왕을 뜻하는 말로 당시 동방 사회에서 그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이런 신앙의 사람 욥이 사단의 공격을 받습니다.

 

⑴사단은 천사와 함께 하나님 앞에 등장합니다(6-8).
사단은 참소자로 욥을 헐뜯어 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비난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땅을 두루 다녀왔다고 보고합니다. 사단은 세상 신이요, 불신자와 악한자의 속에 거처를 둡니다(고후4:4, 엡2:2).
⑵사단의 참소가 무엇인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사단이 말하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욥의 생에 풍파가 없도록 울타리를 쳐주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그 울타리를 치워버리시면 그는 흔들릴 것이고 즉시 하나님을 떠날 것임을 암시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욥을 한번 흔들고 쳐서 그래도 그의 행사가 항상 그런지 보라는 것입니다.
'로저스'는 "하나님은 우리가 견디어 내는가를 시험하시고, 마귀는 우리가 고꾸라지는지를 시험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사단은 욥이 고꾸라지는지를 보고 싶은 것이고 하나님은 욥이 견디어낼 것을 보시겠다는 것입니다.
영국의 대설교가 '스펄존'은 "하나님이 그 자녀를 풀무에 던지실 때는 하나님도 그 안에 같이 들어가신다."고 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의 세 친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풀무에 던졌는데 느부갓네살이 본 것은 네 사람이었습니다. 그 한 사람이 신의 아들입니다.
지금 사단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고 예배하며 순전하고 정직하게 사는가? 그의 신앙인격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욥을 자랑하고 있지만 하나님이 욥에게 그토록 축복해 주셨으니까 하나님을 경외하지, 그 모든 것을 거두어 간다면 그렇게 할 것 같은가 어림도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 '친다'는 말은 '완전히 파괴시킨다'는 의미로서, 사단은 욥을 완전히 패망시키고 싶은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과 욥의 관계를 와해시키려는 속셈이요, 하나님의 완전성에 대한 공격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단의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단의 참소와 비난이 거짓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사단의 입을 막아버리기 위해 사단에게 욥의 생명에는 손대지 말고 그의 소유를 쳐보라고 허용합니다. 사단은 욥이 하나님을 욕하고 원망하는 것을 보고 싶어 기대를 걸고 고난을 줍니다.
⑶욥에 대한 첫 번째 시련은 자녀들이 집에 있을 때 종이 와서 보고하기를 500게리의 소와 500게리의 나귀를 스바 사람들이 도둑질하고 종들까지 다 죽였다고 보고했습니다. 다른 종이 와서 말하기를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벼락이 떨어진 것) 양과 종을 모두 태웠다고 말했습니다.
또 한 종이 달려와 약대 삼천 마리를 갈대야 사람들이 빼앗아 가고 종들이 다 죽였습니다. 그 많던 재산들이 하루아침에 다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재산의 일부만 날라 가도 걱정하고 자살하는 것이 사람인데 욥은 재산이 전부 없어졌습니다.
두 번째 시련은 아들 7명과 딸 3명이 맏형의 집에서 음식을 먹고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태풍이 불어와 집이 무너져 모든 자녀가 죽었습니다. 그 뿐만 아닙니다. 건강한 욥이 갑자기 발바닥으로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생겼습니다. 너무나 괴로워 그 몸에 재를 뿌리고 기와 조각으로 온 몸을 북북 굵습니다(2:7,8).
또 가장 마음 아픈 것은 사랑하는 아내의 배신입니다. 이젠 병들었다고, 거지가 되었다고! 그 동안 함께 살던 남편을 배반합니다.
여러분! 사단은 욥의 모든 재산과 자녀들을 모두 손을 대서 치면서 최후까지 왜 이 아내는 그대로 남겨 두었을까 하는 것이 궁금하지 않습니까? 욥의 아내가 한 말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욥의 아내는 말하기를 "당신은 그래도 순전을 그대로 지키겠느뇨?" 무슨 말입니까! 욥의 아내는 하나님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찬 여인이었습니다. 욥의 아내는 마귀의 보조자이며, 사단의 도구임을 보여 주기 위해서입니다. 욥은 인간이 당할 수 있는 모든 고난을 당한 사람입니다.
이런 시련을 당하면 보통 사람 같으면 버티기 힘들어 기절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말하기를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갈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라." 이렇게 원망하지 아니하고 찬양을 했습니다. 얼마나 귀한 신앙입니까?
저주하고 죽으라는 아내의 말을 들은 욥은 2:10절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고난이 5년, 10년 사이에 온 것이 아니고 하루 동안에 닥친 것입니다.

 

3. 인간의 운명은 '하루'에 '갑자기'로 바뀝니다.(13/15).

 

"하루는 욥의 자녀들이 그 맏형의 집에서 식물을 먹으며 포도주를 마실 때에"
'하루'라는 말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욥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날벼락으로 떨어진 것입니다. 본문을 다시 보십시다. '하루'는 다음의 15절의 '갑자기'로 바꿔집니다.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느낄 수 있습니까? 인간의 고난과 불행은 예측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욥의 식구들 중에는 아무도 하루아침에 이렇게 무서운 일들이 일어나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누가 우리나라 삼풍백화점이 무너질 줄 알았으며, 미국의 쌍둥이 빌딩이 무너질 줄 알았으며, 우리나라 경제가 이렇게 무너질 줄 알았습니까?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고난과 재난은 예측불허입니다. 욥은 자기에게 꿈에도 이와 같은 불행이 찾아오리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욥29:18절을 보면 욥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내 보금자리에서 선종하리라 나의 날은 모래 같이 많을 것이라" 욥은 자신의 생애를 낙관적으로 내다보았습니다. '선종'한다는 말은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죽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착하게 살다가 복되게 임종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나는 모래알처럼 많은 날들을 누리면서 살게 될 것이다'라는 자신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재난은 그 어느 날 갑자기 욥에게 찾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보십시다. 욥은 그 당시 보기 드문 의인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1절을 보세요!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은 참으로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신앙의 인물들을 평가할 때에 가장 중요한 기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그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사단 앞에서 두 번이나 칭찬한 사람은 욥 밖에 없습니다. ▶8절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욥2:3절을 보세요! 똑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 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하나님은 욥의 인격을 '순전하고 정직하다'고 하십니다. 또 그의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순전하고 정직하다'는 말은 '하나님을 높이고 사랑하는 그의 마음가짐이 시종일관 순수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욥이 왜 고난을 당해야 합니까? 욥이 당한 고난은 이유를 말할 수 없는 고난이었습니다. 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이유를 모르는 어려움이 찾아올 때가 많이 있습니다. 착하고 선한 사람일수록 이유를 모르는 고난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흔하게 봅니다.
이것이 바로 의인이 당하는 고난의 수수께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편에서 보면 이유가 있는 고난입니다. 왜 하나님이 욥에게 그런 고난을 허락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욥을 시험해 보신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워도 하나님만을 사랑할 수 있는가?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하나님이 욥도 그런 차원에서 시험하신 것입니다.
일단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수지맞습니다. 약1:12절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할/
▶고대 희랍의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솜씨 좋은 어느 조각가가 신전에 장식할 석상을 만들기 위하여 커다란 대리석을 정으로 쪼개고 있었습니다. 열심히 대리석을 파 나가고 있던 조각가의 귀에 신음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자세히 들으니 그것은 대리석이 내는 고통스러운 신음소리였던 것입니다. 조각가가 "왜 신음소리를 내느냐?"고 물었더니, 대리석은 "당신이 지금 나를 날카로운 정으로 쪼고 있지 않습니까? 내 몸에 붙은 살점이 이렇게 무참하게 쪼개져 나가 땅에 버려지지 않습니까?"하고 괴로운 듯이 불평을 하였습니다.
그러자 조각가는 크게 노한 목소리로 꾸짖기를 "어리석은 대리석아 내가 너의 몸을 다듬어서 훌륭한 석상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너 같은 뭉뚝한 돌덩이가 무슨 재주로 그 거룩한 신전에 올려져 후세 사람들에게 존경과 찬양을 받을 수 있겠느냐? 너의 고통은 일시적이다 잠시만 참어라."고 호통을 쳤다고 합니다.
▶주안에서 당하는 모든 고난에는 확실한 하나님의 섭리와 뜻과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 고난 직후 욥이 취한 태도입니다.

 

4. 고난당한 후에 욥이 취한 행동은 무엇인가?(20)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①욥이 일어났습니다. '욥이 일어나' 이런 환난을 당하면 보통사람은 충격을 받아 죽습니다. 일시에 재산을 모두 잃어버리고 가정이 완전히 파산해 버리면 살아남을 사람은 드뭅니다. 그런데 욥은 일어났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물질로 차 있는 사람은 물질을 빼앗기면 물질 때문에 죽습니다. 권력으로 마음에 찬 사람은 권력을 잃으면 죽습니다. 그런데 욥은 다 빼앗겨도 전혀 요동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땅에 정착한 사람은 충격을 받으면 박살이 납니다. 여러분 욥이 일어났다고 하는 말이 우리에게 충격적인 은혜가 되지 않습니까? 욥은 재산을 다 잃었고, 10자식을 다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기절하지도, 졸도하지도, 당황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우리가 잃은 것이 얼마나 됩니까? 욥과 한번 비교해 보십시다. 건강을 잃었습니까? 재산을 잃었습니까? 자식이 문제입니까? 무엇이 문제입니까? 생활이 문제입니까? 저도 욥을 바라보면서 새롭게 목회에 힘을 얻습니다.
다 무너질 것 같지만 분명히 성림교회는 욥처럼 다시 일어날 줄 믿습니다. /아멘!/할/ 여러분들도 일어나십시오!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을 바라보세요! 그 분이 새 힘을 주십니다. /할/ 사40: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②이 모든 고난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믿고 회개했습니다.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그 당시 욥의 겉옷은 귀족들이 입던 외투였습니다. 그 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었다는 것은 삭발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극한 슬픔을 표현하거나 하나님 앞에 참회 기도할 때 하는 행동들입니다. 땅에 엎드렸다는 것은 자신의 비하입니다. 자신은 낮고 천한 존재라는 표현입니다. 그렇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인 하나님 앞에 낮고 천한 존재임을 알 때, 겸손해 질 수가 있습니다.
▶욥의 신앙의 인격을 한번 정리해 보십시다. 욥은 자신에게 덮친 일련의 재앙을 보며 자신을 뒤돌아보았습니다. 자신이 모든 면에서 정직히 살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온전한 의에는 결단코 이르지 못한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욥의 이런 태도는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연약한 죄인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만난 자리에서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5:8) 라고 고백했습니다.

③욥은 오직 하나님께만 경배 드렸습니다.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보통사람 같으면 절망에 빠져 정신이 없었을 것이고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욕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욥은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배했습니다.
▶욥의 이런 믿음은 무조건적인 신앙입니다. 내가 축복 때문에 잘 믿는 것이 아니라 잘 되든 못 되든 하나님을 섬기는 것 자체가 목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삼 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자식 대학합격을 위해 기도했는데 그만 떨어졌습니다. 떨어지니까 실망하여 기도도 안하고 교회도 안 나오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대학교 합격을 위해서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저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바라보며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 자체가 목적이지 내가 잘 되고 못되고 그것 때문에 신앙이 좋아지고 나빠지면 그것은 좋은 신앙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라도 조건 없이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예수의 피로 용서하셨기에 무조건적이 신앙이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여러분 이런 신앙은 결단코 기적의 주인공으로 인도합니다. 욥은 자신을 티끌과 같은 존재로 낮추고 하나님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으로 경배하는 자세를 가졌습니다. ▶이런 신앙은 기필코 하나님이 복을 주십니다. 욥42:12절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할/ 그리고 그는 다시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고 140년을 살면서 아들과 손자 4대까지를 보았다고 했습니다.

 

5. 욥의 위대한 신앙의 고백은 무엇이며 인생 고백은 무엇인가?(21)

 

"가로되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①공수래공수거의 인생을 고백합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쉽게 표현하면 알몸으로 왔다가 알몸으로 간다는 고백입니다.
여러분! 욥의 이 신앙 고백이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줍니까? 유명 디자이너도 관속에 들어갈 때도 수의 한 벌이면 족합니다. 재벌 총수도 수의 한 벌 밖에 걸치지 못합니다. 우리 모두는 욥의 고백대로 알몸 인생입니다. /믿/
우리가 어머니 배속에 나왔을 때에도 빈손으로 나왔습니다. 마지막 죽을 때도 빈손으로 갑니다. 이 땅에 가진 것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언젠가는 다 놓고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주어도 감사하고 없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이것을 알면 비참하고 가난할 때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가난할 때도 범죄하지 않습니다.
자기 본래의 모습은 빈손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권력을 쥐고 있다가 잃어버리면 모든 것이 다 잃어버렸다고 절망하고 자살까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이 원래 가진 자 인줄 압니다. 원래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인생임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인간들은 왜 이렇게 욕심이 많습니까? 세상의 모든 범죄는 욕심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과 무엇이 달라도 달라야 합니다. 마음을 비우십시다. 우리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②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이 고백이야말로 알몸 인생 고백보다 더 위대한 고백이 아닙니까? 보통 사람들은 가지면 타락하고 방탕하고 죄를 짓습니다. 또 빼앗기면 원망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앙심을 품고 죄를 짓습니다. 그런데 욥은 가졌을 때도 전혀 죄를 짓지 않고 겸손했습니다. 가져도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 청지기의 마음으로 겸손했습니다. 또한 빼앗겨도 하나님이 가져간 것으로 믿기 때문에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고, 탄식하지도 않았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전5:15절에서 "저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 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알몸으로 낳고 알몸으로 죽었다'는 이 고백이야말로 인간의 온갖 탐욕과 탐심에서 해방 될 수 있는 진리인 줄 믿습니다. /아멘!/ 또한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가져가시는 분도 하나님'이라는 이 고백이야말로 하나님을 생명의 주인으로 고백하는 신앙입니다.
여러분! 주실 수도 있고, 취하실 수도 있다는 것은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주인이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세계와 역사와 인생과 나의 주인이 되십니다. /믿/ 그분은 주실 수도 있고, 가져가실 수도 있습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이 가져가시겠다고 할 때, '안됩니다, 이것만은 안 됩니다', 거절하거나 반항할 수 없습니다.
나 자신의 의지나 결단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이 원하시면 하나님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때 욥처럼 엎드려 경배하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③하나님은 우리의 경배의 대상임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고난과 절망 중에서 부른 찬송입니다. ▶찬송은 크게 세 가지 성격으로 크게 나눌 수 있습니다.
⑴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와 찬양입니다. 그 이름을 찬양하고 섭리와 능력을 찬양하고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찬송들이 있습니다. ⑵사람을 향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알리고 권고하는 찬송이 있습니다. <너 근심걱정 말아라 주 너를 지키리> 이런 노래입니다. ⑶자기 자신의 신앙과 고백으로 엮어진 찬송들이 있습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나 어느 곳에 있든지> 자신의 고백과 신앙으로 하나님을 노래하는 찬송들 이 있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찬양(경배)했습니다. 욥은 고난과 절망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무엇을 의미합니까? 욥의 찬송의 정신이 무엇입니까? 재산이 불타고 자식들이 참변을 당하고, 자신은 병들고, 아내는 곁을 떠나는 처절한 고난에 시달린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절대로 버릴 수 없다는 것이 욥의 찬양의 정신입니다.
여러분! 얼마나 귀한 신앙입니까? 우리는 이것만은 분명해야 합니다. 어떤 환경이라도,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을 떠나거나 버리시면 안 됩니다.
그런데 어떤 신앙인 들은 환경 따라, 경우 따라, 신앙을 바꾸고, 감정을 바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 신앙의 태도가 아닙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하고 모스크바에 입성을 했습니다. 당시 러시아의 황제였던 '차르'를 퇴위시키고 나폴레옹이 '차르'의 자리에 앉아 반대자들을 심문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촌스럽게 생긴 농부 한 사람이 심문 대 앞에 섰습니다.
"너는 누구에게 충성을 바치겠느냐?" 그러자 그는 거침없이 "차르 황제에게 충성을 바치겠습니다." 혈압이 올라간 나폴레옹이 "너를 죽이겠다. 그러나 이제라도 나에게 충성할 것을 다짐하면 살려주겠다."고 회유하자 농부는 또 거침없이 "차르를 반대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소!"
나폴레옹은 그 농부의 우직하고 충성스러운 태도에 감동하여 총살형을 취소하고 대신 농부의 팔뚝에 나폴레옹을 상징하는 N자를 새겨 놓도록 종결을 지었답니다. 그런데 문신 작업이 끝나자 그 농부는 그 자리에서 도끼로 자신의 팔을 잘라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외치기를 "나에게는 러시아의 황제 차르 외에는 그 누구도 숭배할 수 없소" 한 주인에게 생명을 걸고 충성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런 고백을 해야 합니다. "나는 예수 밖에 없소, 사도 바울처럼 내가 살아도 주의 것이요, 죽어도 주의 것"임을 고백해야 합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믿/

④이 모든 일에 범죄 하지 않고 원망하지 않겠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22).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욥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감사의 반대는 원망입니다. 감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원망과 불평은 마귀가 좋아합니다.

 

▶왜 사람들이 원망합니까?
⑴불신의 결과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원망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경우를 보면 전쟁 때문에, 마시는 물 때문에, 길 때문에, 생활의 불편 때문에, 위기와 고난 때문에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그런데 그 원망의 뿌리에는 불 신앙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믿음 없는 사람일수록 원망이 잦은 법입니다.
⑵자기가 져야할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기 위해 원망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습니다.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서로 탓하고 원망했습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들은 자기의 잘못을 남에게 떠넘기기 일 수였습니다. 그 때부터 누구 탓이라고 책임을 전가했습니다.
⑶악한 습관 때문에 원망합니다. 감사하는 습관, 웃는 습관, 화목 하는 습관, 얼마나 좋습니까? 그러므로 나쁜 버릇은 빨리 버려야 합니다. 원망도 버릇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이 말은 무엇입니까? 원망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요, 믿음에서 떠난 자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고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고전10:10절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욥은 그 큰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 소망을 두고 달려갔습니다. 욥23:10절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고난이 정금되는 지름길이라고 욥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⑷원망대신 감사의 사람이 욥입니다. '마라벨 몰간'은 그의 저서 '진정한 기쁨'에서 진정한 기쁨을 아는 자는 네 가지 기쁨을 감추지 못한다고 합니다.
㉠생존의 기쁨이요, ㉡주는 자로서의 기쁨이요, ㉢사랑하는 자의 기쁨이요, ㉣생활의 기쁨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감사를 하나 더 안다면 '금상첨화'의 삶이 될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정한 기쁨과 진정한 감사를 가지고 세상에 그 누구도 부럽지 않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욥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⑴감사할 수 없을 때 감사했습니다. 여러분, 감사 할 수 없을 때 드리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입니다. "주신 자도 여호와 취하신자도 여호와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자니이다." /할/
그룬 투비(덴마크)는 패전의 결과 황폐한 황무지에서 기도하기를 "하나님이여 우리에게 황무지를 옥토대신 주심을 감사합니다. 나로 하여금 할 일 많은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이런 감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음 주일은 전 교회가 맥추감사절로 드립니다. 준비하는 신앙이 복을 받습니다. /할/
⑵욥의 감사는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지극한 감사였습니다. <잃어버리고도 감사요, 병들어도 감사요, 실패해도 감사요, 배신을 당해도 감사요> /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은 결코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된 줄로 믿고 하나님의 주권에 의지하니 마음이 편해집니다. 슬픈 마음이 사라집니다. 억울한 마음이 없어집니다. /할/

⑤하나님은 고난 가운데서도 분명한 약속 몇 가지를 주십니다.
⑴고난 중에도 인내하고 기쁘게 여기라고 하십니다.
약5:11절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
욥은 끈질기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원망 없이 인내하는 중에 결국 하나님은 욥을 인정하셨고, 욥은 과거보다 큰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고난과 함께 살아가는 인생이라면 온갖 시험을 인내로 참고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약1:2-4절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우리 인생 길에 여러 가지 시험이 있다 하더라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온갖 시련을 신앙으로 기쁘게 맞이하는 그 자세 앞에 승리의 생활이 분명히 있습니다. /할/
⑵고난 중에도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해주시고 인도해 주시겠다고 성경에는 여러 번 약속했습니다.
사43:2절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물을 건너고, 강을 건너고, 불을 건너는 것은 우리가 당하는 시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큰 시련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십니다. 시121:3절 "여호와께서 너로 실족치 않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자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시121:7절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이 약속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⑶하나님은 고난 중에서도 감당할 힘을 주시고 피할 길을 열어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고전10:13절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당하는 고난에 피할 길을 열어주십니다. 또 고난 중에서도 능히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갈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뿐입니까?
⑷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시30:11절 "주께서 나의 슬픔을 변하여 춤이 되게 하시며 나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우셨나이다." ▶하나님은 욥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의 슬픔을 거두어 가시고 다시 기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다윗의 슬픔을 거두어 가시고, 기쁨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고난도 거두어 가시고 기쁨으로 회복시켜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말씀을 확실히 믿기에 교회가 어려워도 소망으로 인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우리 모두 인내하십시다.
⑸현재의 고난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약속하셨습니다. 롬8:18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무슨 말입니까? 이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을 나중에는 넘치도록 위로하시고, 넘치도록 보상하시고, 넘치도록 축복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이 축복의 말씀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멘!/
⑹욥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많은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욥42:12-13절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그가 양 일만 사천, 약대 육천, 소 일천 겨리, 암나귀 일 천을 두었고, 아들 딸 십 남매를 하나님께 욥에게 주셨는데 그 자녀는 전국에서 제일 아리따운 여자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고난 중에도 신앙을 잘 지킨 욥을 축복해 주셔서 처음 복보다 나중이 더 좋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독교는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지는 종교입니다. /믿/
⑺결론적으로 우리들에게 일어난 어떠한 고난도 신앙으로 풀기만 하면 모든 것이 내게 유익이 됩니다. 시119:71절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욥42:5절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고난 중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욥은 고난 중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요셉도, 다니엘도, 다윗도 고난 중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교회의 고난도, 개인 적인 삶의 고난도, 우리 모두 참고, 이기며 하나님을 바라보십시다.
시121:8절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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