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으면 만나리라! (렘 29:11-14)
예레미아는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로,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유대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시기로 나라가 망해서 바벨론에 70년 포로 생활하던 때입니다. 예레미아는 눈물의 선지자, 고독의 선지자라고 불립니다. 그는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영적 암흑기에 하나님의 말씀 하나를 붙잡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회개와 영적 회복, 그리고 앞날의 희망을 눈물로 선포하며 살았던 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유다를 버리셨을까요? 유다의 우상숭배와 불순종과 범죄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통해서 그들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이미 많은 선지자들이 회개를 촉구했지만, 유다 왕들은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도 하나님의 심판과 유다의 멸망을 예언했다가 왕궁의 감옥인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를 12-13절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램33: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절망하지 말고, 오직 부르짖고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오늘날 우리도 낙심과 절망과 어려움 속에 있다 할지라도, 가난과 질병과 저주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도와주십니다. 개인적으로나 가정적으로나 혹은 국가적으로 어려운 위기에 하나님 앞에 부르짖고 기도해야 합니다. 고난 중에서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어느 교회에 경찰서장 한 분이 아주 열심히 교회에 나와서 헌금도 잘하고, 기도생활도 열심히 했는데 갑자기 좌천이 되어 경찰병원의 과장으로 발령을 받게 되자 낙심이 되었습니다. '예배출석도 잘하고, 헌금도 잘하고, 기도생활도 잘하고, 내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잘했는데, 좌천이라니. 하나님, 정말 살아 계십니까?' 그래서 그만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되고 보니 목사님도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쯤 지났을 무렵, 교회를 떠났던 경찰서장이 다시 목사님을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면목이 없습니다. 저는 좌천된 것에 대해 불평을 많이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좌천을 통해 저를 살려주셨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좌천을 감사하는 뜻으로 감사 헌금을 백만 원이나 가져왔습니다. 목사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가 전에 있던 경찰서는 얼마 전 탈옥수 신창원이 나타났던 지역이었습니다. 신창원이 하도 신출귀몰해서 무궁화가 줄줄 떨어진다는 유행어까지 생긴 때였습니다. 그의 후임으로 온 경찰서장도 역시 탈옥수를 잡지 못해 그만 파면 조치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그가 계속 경찰서에 서장으로 있었으면 벌써 파면을 당했을 텐데 좌천을 통해서 그나마 보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할/ ◀제목소개!▶
▶11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눈물의 선지자를 통해서 주시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의 내면에는 하늘로 향하는 영혼의 안테나가 존재합니다. 무선전화 안테나가 공중에 떠다니는 전파를 잡아서 내게 소리를 전해 주듯이 영혼의 안테나는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잡아서 마음속에 들려줍니다. 사람은 영적인 동물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그 안테나를 통해서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분명한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길을 잃고 방황하고 있을 때 길을 가르쳐 주시며, 인도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습니다. 결정하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을 때 좌우를 분별할 수 있는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삶의 무게가 무거워 지쳐 있을 때 위로의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앞을 가로막는 힘든 일을 만났을 때 헤쳐 나갈 용기의 말씀을 보내 주십니다. 영혼의 안테나를 길게 뽑아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하나님의 말씀이 중요합니다. 이 짧은 성경에 '여호와의 말'이 세 번 나온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들어야 합니다. 영혼의 안테나를 높이 세워 믿음의 귀에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시기 전에 먼저 그 행하실 일을 말씀하신 다음 그 일을 행하십니다. 메시야를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다음 마침내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말씀하신 다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들이 4백 년 동안 객이 되어 있다가 4대만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냥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부자가 되어 돌아오리라'고 예언했는데 요셉의 때에 애굽에 들어갔다가 4백년 만에 모세에 의해 애굽에서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행하시기 전에 행하실 일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많은 예언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약속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성경에는 32500가지나 되는 약속들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첫머리에서부터 예수그리스도가 누구 신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요1:1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할 때 처음부터 그분을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말씀'으로 소개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소개하지 않고 '말씀'이라고 소개하고 있을까요?
사람이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전달하거나 나타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행동입니다. '판토마임'은 대사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표정이나 몸짓만으로 사상이나 감정을 나타내는 연극의 한 형식입니다. 대표적인 배우로는 찰리 채플린이 있습니다. 이들은 극중에 일체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짓 하나만으로도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관객들에게 잘 전달합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하나는 '말'입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말'로서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 보입니다. 대화를 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마음의 상태는 어떠한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말하기를 '말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을 '말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왜?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이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모든 생각과 계획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나타내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가리켜 '말씀'의 육신을 입고 오신 분이십니다. /믿/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고 받아야 합니다. /아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도 있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는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주신 가장 위대한 축복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축복은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말씀의 종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이 말씀을 전할 때 복음의 씨앗이 뿌려지는 것입니다.
개인도 성경말씀을 통하여 영향을 받고, 국가의 운명도 성경을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독일이 위대한 나라가 된 것은 마르틴 루터가 1517년 종교개혁을 해서 전 독일 사람들에게 독일어로 번역된 성경을 읽고 배우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일이 최고의 민족이 되었다."고 했고, 프랑스의 시인 빅토르 위고는 "영국이 세계적인 나라가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날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안전하고, 평화로운 나라 스위스라고 말합니다. 스위스가 좋은 나라가 된 것은 종교개혁자 칼빈 때문이라고 합니다.
현재 최강국인 미국은 신앙으로 세워진 나라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지금도 대통령이 성경에 손을 놓고 선서를 합니다. 국회의장, 대법원장, 대학교 총장들도 성경에 손을 올려놓습니다. 또 지폐에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인쇄를 했습니다. 그 돈은 세계 경제를 주름잡고 있습니다.
복지가 잘 되어있고, 잘 사는 나라, 부강한 나라, 세계를 이끌어 가는 나라는 다 기독교 국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도 훌륭하고 위대한 인물로 만들뿐만 아니라, 그 가정, 회사, 더 나아가서 국가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잠13:13절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얻느니라." 시18:7절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인간은 다 불완전합니다. 흠이 있고, 허물이 있고, 부족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완전하게 되고 영혼이 소성케 됩니다. 때로는 연약할 때가 있고 부족할 때가 있고 쇠약할 때가 있습니다. 병들 때가 있습니다. 이렇게 나약하고 부족하고 연약하고 병들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면 소성케 되는 역사, 치료받는 역사, 더 번창케 되는 역사를 허락하여 주십니다. /믿/
여기서 소성케 된다는 것은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힘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시119:154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소성케 하소서"
시19:7절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말씀대로 살면 어리석고 미련한 자로 하여금 지혜로운 삶을 살게 만듭니다. 방황하지 않습니다. 죄악에 빠지지 않습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인생을 망치지 않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인생을 새롭게, 보람되게 살게 됩니다.
시19:8절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러분, 정직하게 사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수많은 게이트 사건들, 뇌물 사건들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없기 때문에 정직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선진국일수록 나라가 정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정직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들은 마음에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우리 마음이 기쁘고 즐거움이 넘치게 됩니다.
시19:8절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항상 우리를 거룩하게 하고 깨끗하고 새롭게 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순결하여 우리의 눈을 밝게 합니다.
계1: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할/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11)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효도를 하려면 부모의 마음과 생각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의 생각을 알지 못한 체 효도를 하게 되면 도리어 부모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나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알아야합니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이 무엇입니까? 재앙이 아니라 평안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불안이 아닙니다. 불행이나 두려움이나 비극이 아닙니다. 평안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돈이 아닙니다. 지금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평안입니다.
지금 그들은 포로로 끌려와 있습니다. 모든 것이 생소합니다.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의 징계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니까 절망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베드로는 언제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베드로가 성공했을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그가 고기를 많이 잡았을 때 예수님이 그를 축하해 주러 오셨습니까? 아닙니다. 베드로는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철저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성공한 베드로를 찾아오신 것이 아니고 실패한 베드로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일에 실패하셨습니까? 어쩌면 바로 그 때가 예수님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때입니다. 우리가 성공했을 때만 예수님이 찾아와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실패했을 때도 예수님은 찾아와 주십니다. 우리가 강할 때만 찾아오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약할 때도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실패의 현장 속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와 주십니다. 우리를 위로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의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어 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낙심하고 힘들어 할 때, 더더욱 예수님은 우리를 찾아와 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에게도 예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태어나면서 눈먼 자에게도 예수님은 찾아와 주셨습니다. 낙심 가운데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에게도 예수님은 찾아와 주시고, 그들과 동행해 주시고, 그들을 위로해 주시고, 그들의 슬픔이 바뀌어서 큰 기쁨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광야와 같은 인생 길을 걸어가면서 피곤하고 힘들어 지칠 때마다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이 누구이겠습니까? 예수님은 마28:20에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할/
여러분! 어려운 일을 당하셨습니까? 어떤 일에 실패하셨습니까? 낙심 가운데 빠져 있습니까? 베드로를 찾아오셨던 예수님은 우리도 찾아와 주실 것입니다. 베드로는 실패했을 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새롭게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했습니다.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당하는 육신 적인 실패는 영적으로는 큰 축복이 됨을 믿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우리를 찾아와 주시는 예수님을 우리 모두가 만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절망하고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위해 재앙을 준비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한 평안과 소망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바로 그 포로의 시기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린 때가 아니요, 가장 가까이 계신 때라는 것을 알고, 그때 오히려 '하나님께 부르짖고 찾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인생들을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을 광야 40년 동안 훈련시키신 이유는 그들이 미워서 일부러 골탕 먹이고 괴롭히려고 그렇게 하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렘애3:33절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로다."
우리가 고생하며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른데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택하신 백성들을 광야에서 좀 더 성숙한 모습이 되도록 훈련시키고 연단시켜서 마침내는 그들에게 큰 복을 주시고자 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본심입니다.
신8:16절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광야 길에 반드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있습니다.
⑴이스라엘을 낮추시기 위해서 광야로 인도했습니다. 신8: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이 교만한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겸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십니다. 교만을 반드시 꺾어버리고 마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면 우리는 언제나 온유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대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대적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씀하는 교만은 무엇이고, 겸손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교만은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잘나서 잘된 줄 아는 것입니다. 반대로 겸손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고, 하나님을 잊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감사할 줄 아는 것입니다.
신8:14절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 바로 교만이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기가 쉽습니까? 아니면 우리가 형통하고 잘될 때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교만하기가 쉽습니까? 신8:12-13절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8:17절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자기가 잘나서 잘된 줄로 생각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내가 잘나서 잘된 줄 알고 교만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겸손은 내가 형통할 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을 잊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8:18절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할/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의 삶이 형통하게 된 줄로 알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됩니다. /믿/
⑵당신의 백성들의 순종여부를 시험하시기 위해서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신8:2절(하)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때때로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을 시험하십니다. 그 옛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100세에 얻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령하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에게 그러한 시험이 없었더라면, 그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욥도 시험하셨습니다. 두 번씩이나 견디기 어려운 시련을 그에게 허락하셨습니다. 욥은 극심한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자기의 믿음을 잘 지켰습니다. 만일 욥에게 그러한 시험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그의 믿음이 얼마나 순수한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욥이 시험을 잘 견디고 이겨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욥에게 허락하셨던 모든 곤경을 돌이키시고, 그에게 갑절의 축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힘든 광야 길을 걷고 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과 믿음이 얼마나 순수하고 진실한지, 그것을 알아보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시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⑶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게 만드시기 위해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신8:3절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람이 떡으로만 살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기 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존재임을 아는 사람은 나를 의지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이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광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사람이 살 수 없는 곳,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의식주조차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년 동안이나 그곳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힘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도우심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신8:16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오늘 절망 중에 있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을 누리며 살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최고의 관심은 평안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요14:27절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할/
▶또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장래에 대한 소망입니다. 소망이 무엇입니까?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인하여 반드시 그것이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 신앙이 바로 소망입니다. 하나님은 언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될지 모르는 그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그들이 장래에 대한 소망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지금은 포로가 되어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아니 70년이 지나면 우리도 고국으로 돌아가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리라! 소망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아직 상황이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전히 그들의 신분은 포로입니다. 여전히 그들은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꿈을 가진 자는 절대로 낙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꿈을 가진 자는 세상의 유혹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꿈을 가진 자만이 인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생각은 평안과 장래에 대한 소망입니다. 한마디로 우리의 최고의 소망은 하늘 나라 저 영원한 천국입니다. 이 소망이 우리를 견고하게 합니다. ▶시146:5절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42:5절 "내 영혼아 !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아멘!/
▶그런데 오늘 본문 12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은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우리 하나님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을 통하여 말씀하십니다. 선포되는 말씀을 통하여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처하여 있는 여러 환경과 사건들을 통하여서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온전한 교제란 말할 뿐만 아니라 들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상대방의 말은 들어 주지도 않고 일방적으로 자기 이야기만 하면 온전한 교제가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인격적인 교제란 주고받는 교제라야 합니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무엇을 들으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민20:16절 "우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우리 소리를 들으시고 천사를 보내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나이다." ▶기도만이 아니라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들으십니다. 민14:27절 "나를 원망하는 이 악한 회중을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이스라엘 자손이 나를 향하여 원망하는 바 그 원망하는 말을 내가 들었노라"
이스라엘의 12명의 정탐꾼들은 40일 동안 가나안땅의 이곳저곳을 정탐하고 돌아와 보고를 했는데 10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는데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나님을 불신하는 보고를 했습니다.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행하리니"(민14:28) 하나님은 그들의 원망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땅을 탐지한 날수의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환산하여 40년 동안 광야에서 유리하다가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부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불평과 원망의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13)
포로된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생각을 말씀하신 하나님은 이제 그들에게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①나를 찾고 찾으면: 그런데 신실하신 여호와를 어떻게 찾아야합니까? 찾고 또 찾아야 합니다. 찾고 찾는다는 말은 이루어질 때까지 그 주님을 만날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한 번하고 그만 두는 것이 아닙니다. 중간에 포기하는 사람은 기도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나아만이 몇 번 시도하다가 그만두었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기도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약속이 이루어질 때까지 계속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찾고 또 찾아야 합니다. 이른 새벽에도, 동이 터 오르는 아침에도 찾아야 합니다. 하루의 일과를 마무리하면서도 찾아야 합니다. 풍랑의 한 복판에서도 여호와를 찾아야 하고 잔잔한 시냇가에서도 찾아야 합니다.
또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12절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어떤 사람은 기도에 대하여 기도는 한번만 하면 되지 반복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이유인즉 하나님께서 그렇게 기억력이 없으실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는데 조용하게 기도하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울며불며 매달려 기도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기도에 맛을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기도는 조용히 할 수도 있지만 때로는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우리의 형편과 환경에 위기가 찾아 왔을 때 하나님께 삶을 전폭적으로 맡기는 기도요, 내가 할 수 없으니 주님만 바라겠다는 갈급한 기도요, 이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안 된다는 간청의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할/
▶부르짖는다는 말은 간절한 기도를 말합니다. 간절한 사람은 정말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잠8:17-18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사55:6절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만날 때는 어떤 계기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할/
예수님이 여리고로 지나가실 때 소경이며 거지인 바디메오가 있는 힘을 다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할 때 모두 윽박지르며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더욱 심히 소리 질러 부르짖었더니" 예수님도 머물러 서셔서 그의 눈을 뜨게 했습니다. 물론 그는 소리만 부르짖은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꼭 고쳐 주실 것을 믿고 부르짖었습니다.
소리 높여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는 모든 위급한 상황에서 구출되는 비결이 됩니다. 부르짖는 기도! 한국 교회가 부흥되는 비결이고, 전쟁의 위기에서도 벗어나고 경제도 회복되고, 평화통일로 이룩하는 비결도 되는 것입니다.
출3:7에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노예로 전전하며 온갖 환난과 어려움을 당할 때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들으시고 그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간절해야 합니다. 우리 예수님이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셨는지 아시지요. 히브리서 기자는 이 땅에서 예수님의 기도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히5:7절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셨느니라."
기도는 간절해야 합니다. 들어주시면 좋고 안 들어 주셔도 된다는 그런 기도는 안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소리의 크고 작음을 떠나서 간절하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약속이 무엇입니까? 지금 당신이 붙들고 몸부림치는 기도는 무엇입니까? 그렇다면 부르짖어 기도하세요. 찾고 또 찾으세요. 두드리고 또 두드리세요.
▶고양이 한 마리가 어쩌다가 우물에 빠져서 올라오지 못하고 우물 벽에 붙어서 죽겠다고 야옹 야옹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고양이를 구해주려고 네모난 큰 막대기를 갖다대고 타고 올라오라고 아무리 해도 자기를 죽이려는 줄 알고 그 나무를 타지 않고 계속 소리만 질렀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그 막대로 고양이를 쳐서 물에 빠지게 한 다음 그 나무를 갖다대니까 얼른 나무 위를 기어 올라와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정말로 절망에 빠지지 않으면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려고도 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절망할 때를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개나 고양이는 수영을 배운 일이 없어도 잘 헤엄쳐 나오는데 사람이 물에 빠지면 허우적거리다 빠져 죽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원인은 온 몸을 물에다 맡길 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물에다 몸을 완전히 맡기고 있으면 처음에는 가라앉지만 조금 있으면 뜹니다. 그 다음에 손을 움직이고 발을 움직이는 법을 배우면 헤엄치게 됩니다.
이와 같이 온 몸을 물에도 맡기면 뜨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내 인간의 힘을 빼고 하나님께 완전히 맡기고 의지하는 법을 배우면 그 때부터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인도해주십니다. /믿습니까?/
미국의 백화점 왕 존 워너메이커는 "기도란 하나님과 손을 잡는 것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손을 잡아주시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하나님께서 동업하시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영국의 종교개혁자 존 웨슬리는 "기도 시간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시간이다."고 했습니다. 기도할 때, 축복 받을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마음으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할/
▶부르짖는 기도는 열심히 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뜨겁게 해야 합니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삽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정성들을 쏟아 바치는 기도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온 정성을 쏟아서 기도했습니다.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하니 3년 6개월 간 가물었던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왕상18). ▶부르짖는 기도는 낙심하지 않고 하는 기도입니다.
▶또 부르짖는 다의 더 깊은 원 뜻은 쥐어짜며 부르짖는다는 말입니다. 눈물을 짜며, 땀을 짜며, 피를 짜며, 생명을 짜며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서 옵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기도를 통해서 오고 하나님의 비밀도 기도를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기도의 원어는 '데필라/자이크' 등이 있는데 '씨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씨름 선수들의 경기를 볼 때마다 온 힘을 다해 상대방을 넘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봅니다. 기도는 바로 젖 먹는 힘까지 동원해야 합니다.
또 다른 원어의 뜻은 '고문당하는 사람이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만 살려주세요!' 기도는 생명을 걸고 필사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 기도해야 합니까? 시50: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마21:22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의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약1:6-7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렘33:3절에 우리가 기도하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까지도 보여 주리라! ▶크고 비밀한 것을 보여 주신다는 것은 ⑴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 ⑵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않은 것 ⑶자신의 생각으로는 짐작도, 꿈도 꾸지 못했던 깜짝 놀랄 사건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뜻은 이러합니다.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비밀한 계획은 요셉 자신도 몰랐고, 그 형들도 몰랐고, 그의 아비 야곱도 몰랐습니다. 그가 비로소 애굽에 총리가 되고 난 이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그러했습니다. 다윗 자신도 몰랐고, 그 형들도 몰랐고, 그 아비 이새도 몰랐습니다. 아비의 양을 치는 목동이었으나 적은 일에 충성함을 보고 유다의 왕으로 세우시고, 구원역사에 징검다리로 놓으신 것입니다(마1:1).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바울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유대교의 바리새인이나 제사장들도 몰랐고, 하나님의 종 아나니아도 몰랐습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행9:15).
성도들이여!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면 응답주시고 깜짝 놀랄 하나님의 사건들을 허락하십니다. /믿/
▶나를 만나리라!: 사람은 만남에 관계입니다. 첫 번째는 부모님과의 만남이고. 두 번째는 친구와의 만남이고. 세 번째는 스승과의 만남이고. 네 번째는 배우자와의 만남입니다.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인권에 복에 속합니다. 우리 성림의 성도들은 좋은 사람들의 만남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만남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야말로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만남이요. 가장 영광스럽고도 위대한 만남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우리가 왜 하나님을 꼭 만나야 할까요?
⑴그 분이 우리 인생들을 만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부모는 언제나 자기 자식 만나기를 기뻐하는 것과 같이.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형상을 따라지으신 인생들을 만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집을 나간 자식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와 같이 우리 인생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로 돌아가 인자하신 그분을 만나야 합니다.
⑵하나님을 만날 때 비로써 자신의 존재를 바로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바로 알지 못합니다. "나는 어디서 온 누구이며. 왜 왔으며. 왜 살며.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 존재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주님을 만나지 않고서는 이 질문에 분명한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주님을 만날 때에만 비로써 우리들은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야 자신이 죄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눅5:8).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려면 주님을 꼭 만나야 합니다.
⑶주님을 만날 때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인생들은 수많은 문제 속에 파묻혀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문제없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건강문제. 물질문제. 가정문제. 직장문제에서부터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의 문제는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하나님을 만남으로 모두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마11:28). /믿/ 바울의 고백은 무엇인가? 빌4: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을 만나야 삽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만나 주십니까?
⑴당신의 마음에 합한 자를 만나 주십니다. 행13:22절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자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⑵하나님은 당신을 사모하는 자를 만나주십니다. 솔로몬 왕은 하나님 만나기를 얼마나 사모했는지 기브온 산당에 1천 번제를 드렸다고 했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하나님 만나기를 그토록 사모했으니 어찌 하나님이 그를 만나주시지 않겠습니까? 드디어 그는 하나님을 만났고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지혜의 복을 받았습니다.
⑶하나님은 당신을 전심으로 찾고 찾는 자를 만나주십니다. 대상28:9절에 다윗 왕은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정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찾는 자를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잠8:17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본문에서도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찾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곧 기도입니다.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할/
▶기도하면 그 기도 속에서 우리는 다섯을 만날 수 있습니다.
⑴하나님을 만납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⑵기도하면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내가 기도하여 주는 사람을 기도 속에서 만납니다. 기도는 만남입니다.
⑶기도하면 마귀를 만납니다. <기도 자가 기도로 바쁘면, 천사는 기도와 응답을 가지고 왔다 갔다 하느라고 바쁘고, 하나님은 응답하시느라고 바쁘시고, 마귀는 방해하느라>고 바쁘다는 말이 있습니다. 마귀는 가장 약한 성도일지라도 그가 기도의 제단에 무릎을 꿇으면 벌벌 떨게 됩니다.
⑷기도하면 천사를 만납니다. 기도를 시작하면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주셔서 기도하는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눅22:43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롬8;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렇기에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을 만날 수 있습니다.
⑸기도하면 응답을 만납니다. 네가 응답하리라! /할/
▶결론을 막9:29절에서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기도해 본 사람은 기도 응답의 감격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아무것도 아닌 일 같아도 기도한 사람은 감격이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감동도 감격도 없습니다. 기도의 감동과 감격을 체험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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