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한 자와 겸손한 자의 보응은? (잠 18:12/22:4)
국민의 의무 가운데 교육의 의무가 있습니다. 교육은 개인과 국가가 다 잘 살수 있는 방편입니다. 그래서 의무 교육 수준이 더 높은 나라일수록 그 나라가 잘 살고 모든 면에서 앞서 가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도 하나님의 학교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법과 도리를 알기 위해서는 이 학교를 졸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 학교를 거치게 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배우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광야 학교를 만들어서 그곳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기르고 영적인 훈련을 받게 합니다. 광야를 거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만날 수도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하다가 모세를 통하여 해방이 되어 가나안으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40년 간이나 광야에서 훈련시키시고 가나안으로 이끄셨습니다. 광야를 거치지 않으면 가나안으로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광야를 거치는 것입니다. 광야가 없는 곳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광야 학교를 거쳐야 만이 어리석게 살지 않고 교만을 꺾고 보람된 길을 따라 살수가 있습니다.
그럼 광야에서 배우는 것이 무엇입니까? 광야는 마치 유격 훈련을 시키는 곳과 같은 특수한 지형 조건이 있습니다. 광야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샘물도 아무 것도 없는 곳'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붙잡아야 되고 하나님이 잡아주시지 않으면 살수가 없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기를 때, 광야에 데려다가 오직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게 만드십니다. 내가 의지했던 배경, 친척, 인간의 수단과 방법 이 모든 것을 끊어버리고 오직 하나님 한 분만 바라보게 만드는 곳이 바로 광야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이 광야 학교를 거치게 하십니다. 어떤 사람은 육신의 질병으로 광야를 몰아넣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과 가정으로, 환경으로, 조건으로 또 사람을 통해서 광야에 훈련을 받게 만드십니다.
훈련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훈련은 더 큰 담력과 경험을 줍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은 다 광야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요셉도, 다니엘도, 욥도, 다윗도 다 광야학교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입니다. 욥은 광야 학교를 거치면서 고백하기를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욥은 광야학교가 인생의 정금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고백합니다. 욥은 광야학교를 거치면서 귀로 듣기만 했던 하나님을 눈으로 봤다고 했습니다. 욥42:5절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듣는 신앙에서 보는 신앙으로 나아갔습니다.
시119:67절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광야학교가 사람을 만듭니다. 겸손한 사람으로 만듭니다. 깨어진 사람으로 만듭니다. 온전한 주의 백성으로 만듭니다. 오직 예수 바라보며 믿음으로 사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할/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행여나 광야에서 고난 받는 자가 있습니까? 참으십시오. 인내하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자신을 주님께 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새 일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믿/ ◀제목소개!▶
우리는 역사의 인물들 가운데 그들의 겸손함을 교훈으로 듣습니다. 하루는 링컨 대통령이 백악관 현관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 옆을 지나가던 비서가 구두를 닦고 있는 사람이 대통령임을 알고 너무나 미안하고 송구스러워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말을 합니다. "각하!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일국의 대통령의 존귀하신 몸으로써 천한 사람들이 다 하는 구두를 손수 닦으시다니 이게 될 법한 말입니까? 이리 주십시오" ▶링컨이 대답합니다. "여보게 제임스! 자신의 구두를 자신이 닦는 것이 당연한 일이지 이게 무슨 잘못된 일인가? 또 구두 닦는 일이 천한 일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잘못된 생각일세. 대통령도 구두닦이도 다 세상을 위해 일하는 사람일세!" 비서는 링컨의 겸손하고 사리에 맞는 말에 감탄을 했습니다.
▶어느 날 두 마리의 수탉이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러 마리의 암탉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놓고 주도권 싸움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혈투였습니다. 말리는 사람도 없는 터라 닭은 날개를 퍼덕이며 날카로운 부리로 상대방을 쪼아서 서로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마침내 흰 닭이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툇마루 밑으로 슬그머니 도망을 칩니다. 싸움에서이긴 검정 닭은 우쭐해졌습니다. 그는 울타리 위에 올라가서 목청을 높여 크게 외쳤습니다. "이놈들아 내 실력이 어떠냐? 누구든지 나를 이길 자는 없다. 앞으로 내 암탉들에게 손을 대는 놈은 가만두지 않겠다"
큰 소리를 친 검정 닭은 이번에는 툇마루 밑에 있는 흰 닭에게 "너 이놈! 너는 이제부터 나를 시중드는 부하가 되어라 만약 말을 안 들으면 또 혼날 줄 알아!"
바로 그때였습니다. 앗! 검정 수탉은 소리쳤으나 피할 틈이 없이 매 한 마리가 검정 닭을 발톱으로 단단히 움켜쥐고 쏜살같이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싸움에 이겼다고 뽐내지 마라. 네가 울타리 위에 올라가지 않았더라면 내 눈에 띄지 않았을 텐데" 매는 중얼거리면서 하늘높이 올라갔습니다.
툇마루 밑에서 나온 흰 닭은 그 꼴을 보고 암탉들에게 눈웃음을 지었답니다. 최후의 승자는 누가 될지 모르는 법입니다.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교만이 있습니다. ▶지식의 교만이 있습니다. 무엇을 남보다 더 배워서 안다고 교만합니다. 그러나 한평생 달고 다니는 자신의 눈썹의 수효도 모르고 지냅니다. 한 시간 후에 일도 모르고, 종이 한 장만 눈앞에 가려도 그 앞을 못 봅니다.
▶물질적인 교만이 있습니다. 남보다 돈이 많다고 교만합니다. ▶또 사회적인 교만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보다 지위가 높다고 혼자 잘난 것처럼 생각하는 교만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신앙적인 교만도 있습니다.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잘 믿는다고 착각해서 <저렇게 믿는 것도 믿음이냐?>고 비판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교만에서 오는 것입니다. 탈무드에 <포도송이는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아래로 숙인다>라는 말이 있고, 우리 속담에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겸손과 교만 중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겸손한 사람보다 힘이 강한 사람은 없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떠나서 신과 함께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교만한 사람과 함께 하지 않으십니다. 교만한 순간부터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서서히 떠나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잠18:12절을 보세요!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또 잠16:18절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교만의 '만'자를 쓰는 단어가 성경에 세 가지 나오는데 그 뜻이 참으로 무섭습니다. '교만, 거만, 오만'입니다.
▶교만은 '남보다 뛰어난 것이 있다고 뽐내면서 자랑하는 것'입니다. ▶거만은 '아무것도 아니면서 으스대는 것'인데, 이것은 눈뜨고 볼 수 없는 꼴입니다. 아무 것도 아닌데 혼자 잘난척합니다. 그런 사람은 남의 앞잡이 노릇만 잘합니다. 일본 외정 때 앞잡이들이 다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의 인격이 없기 때문에 밤낮 남에게 이용만 당합니다. 이런 사람을 '꼴값'한다고 합니다.
▶오만은 무엇입니까? '사람만 업신여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까지 업신여기는 것'인데 거만 보다 더 나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 오만 방자한 사람입니다.
1. 교만은 무엇이며 교만한 자가 받을 보응은 무엇인가?
교만은 영적인 암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그 몸 속에 암세포가 자라게 되면 건강을 잃어버립니다. 이와 같이 교만도 우리의 영적인 암이 되어서 건강한 정신을 파괴하고 마음을 쇠폐하게 만들고 타락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절대로 교만해서는 안 됩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인간의 가장 큰 죄를 일곱 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교만, 둘째는 질투, 셋째는 분노, 넷째는 탐심, 다섯째는 탐식, 여섯째는 게으름, 일곱째는 정욕입니다. 이 큰 죄들 중에서 첫 번째가 교만입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교만은 인간이 빠지기에 가장 쉬운 것인 동시에 인간이 극복하기에 가장 어려운 것이다>라고 했고, 스콜라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은 모든 죄악의 어머니다>고 했습니다. 교만은 모든 죄의 근원인 것입니다.
교만은 제 스스로가 잘난 체하며 뽐내며 방자한 것입니다. '프랑크린'은 인간의 욕망 중에서 교만만큼 정복하기 어려운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인류의 범죄는 교만 때문에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모양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어보겠다고 하나님을 거역했습니다.
창1:28절을 보면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에게 모든 생물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다스리는 권세, 즉 통치할 수 있는 권세를 허락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자연은 사람의 다스림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모든 것이 '보기에 심히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실 때 그대로 됨으로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에 그대로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았다는 것이요, 다스림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대로 순종했다는 의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을 때만이 아름답고 선한 것이며 질서가 유지됩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인간의 진정한 행복과 복된 삶을 보장합니다. 그런데 아담은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고 자신도 하나님처럼 되어보겠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도전하고 권위에 도전했습니다.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 죄가 들어왔습니다. 그 죄 때문에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사건까지 이러한 피 흘리는 역사의 시작은 교만에서부터 온 것입니다. /믿/
사단이 심어준 이 교만의 독소가 오늘날까지 이 세상 도처에서 인간들을 '시기와 질투와 갈등과 전쟁의 수라장'에 빠지게 합니다.
냉정히 생각해보면 인간은 교만을 떨 이유가 하나도 없는 존재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께로 전세로 받은 것일 뿐이요, 우리가 가진 얼굴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작품이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갈 것이니 내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좀 안다고 하는 지식'은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바닷가에 모래알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교만합니다. ▶그렇다면 교만이 무엇인가?
①교만은 뭐니뭐니해도 하나님께 영광(찬양, 예배)을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되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입니다. 사43: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고전10:31절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전12:13절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할/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대신 얼마나 많은 영광을 받기를 원했습니까? 어떤 사람은 정치적인 권력의 옷을 입고, 어떤 사람은 사이비 교주의 옷을 입고 하나님의 영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시50:23절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②교만은 욕심입니다. 시기는 남이 잘되는 것을 보고 배 아파하는 것인데 욕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인간이기에 남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할 수도 있습니다. 또 으뜸이 되고자하는 욕망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이런 목표가 있어야 더 노력하고 성공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시기는 자기가 가지는 것 보다 남이 더 못 가졌으면 하는 심사입니다. 질투하는 사람은 남의 행운을 자신의 불평으로, 남의 성공을 자신의 실패로, 남의 축복을 자신의 저주로 알고 앙탈을 부리는 것입니다.
▶버드나무가 가시덤불에게 물었습니다. "왜 너는 지나가는 사람의 옷을 그렇게 질투하며 찢어 놓느냐? 너에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고 하자, 가시덤불은 "아무런 유익이 없어, 다만 그 옷을 찔러주고 싶을 뿐이지" 라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약3:16절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교만한 사람은 얻어도, 얻어도, 누려도, 누려도, 가져도, 가져도, 만족이 없고 다른 사람을 칭찬할 줄도 모릅니다. '호레이스'는 <질투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번영함으로 자신은 말라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③자신을 나타내고 자신을 자랑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어떤 연못가에 개구리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개구리는 공중에 나는 새를 볼 때마다 논둑에서 울어댈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날아서 폼을 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한번은 논둑에 날아온 학을 보고 "나도 한번 하늘을 날고 싶으니 나를 데리고 날아가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학이 "날개도 없는 개구리가 어떻게 날수 있느냐"고 물으니까 개구리가 "막대기를 가지고 양쪽을 당신과 내가 물고 있으면 하늘로 올라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개구리의 말대로 학은 막대기에 개구리를 물려 하늘을 날아 올라갔습니다. 의기양양하게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개구리를 동료 개구리들은 감탄을 하고 부러워하며 "누가 저런 기발한 생각을 했을까?'하고 칭찬을 했습니다.
그때 기대했던 대로 동료 개구리의 선망과 칭찬을 받은 개구리는 우쭐한 마음으로 "누군 누구야 내가 생각한 아이디어지" 말하는 순간 개구리는 높은 하늘에서 땅바닥으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결국 자신의 자랑을 말하느라고 작대기를 문 입을 열다가 변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내가 했지, 나만이 할 수 있어" 나를 내세우고 자랑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자만심이 지나칠 때 남을 무시하고 업신여기게 되며 교만과 허세에 빠지게 됩니다.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라고 말씀했습니다.
④불평불만으로 남을 미워하는 것도 교만입니다.
유독 불평과 불만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은 손 하나 까닥하지 않으면서 불평불만만 늘어놓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어떻고 우리 목사님은 어떻고 우리 권사님은 어떻고, 구역장이 어떻고"
여러분, 하나님의 교회를 비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기가 섬기는 교회를 자랑해야 복을 받습니다. 또 우리교회는 그런 사람이 없어서 감사합니다. 주의 종을 비판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징계를 받습니다. 모세가 검둥이 첩을 얻었다고 누이와 형이 모여 모세를 욕했습니다. 그때 모세는 듣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들으시고 미리암에게 문둥병을 발하게 하였습니다.
주의 종은 하나님이 징계하시고 다루십니다. 주의 종은 여러분들의 축복을 빌어주는 제사장입니다.
다른 사람을 무자비하게 비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솔직하고 정직한 것 같아도 그 속에 교만이 가득 차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한번 우리 성림교회는 이런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에 감사 드립니다. /아멘!/
⑤대접만 받기를 원하는 것, 또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고 하는 것 교만입니다.
이 세상에는 언제나 자기의 권리만 주장하고 자기의 특권만 생각하는 사람과 자기의 의무를 생각하고 그 의무에 충실하며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빚진 자로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삶을 살았습니다. 교만하고 무례한 자는 남의 생각을 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주장만 내세웁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권리보다는 의무를 더 생각하면 세상이 조용해집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중심으로 살지 않고 자기의 중심으로 살면서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를 원망하고 이웃을 원망합니다. 이는 교만의 증거입니다.
⑥자신의 부족을 모르는 자, 자신의 죄를 시인하지 않는 자도 교만한 자입니다.
자기의 죄를 아는 것이 겸손이요, 자기의 부족을 모르는 것이 교만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선하다고 의롭다고 생각하며 '나 정도만 깨끗하라고 해! 나 정도만' 이런 사람은 자기에게 있는 허물과 그 죄에서 구원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추호도 못합니다.
교만했던 바리새인은 "하나님이여 내가 다른 사람과 같지 아니함을 당신께 감사하나이다." 독선적이며 자기만족과 자만으로 가득 차 있던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이 외면하셨지만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가슴을 친 세리의 기도를 응답하여 주셨습니다. /믿/
2. 교만한 자의 보응은?
①멸망의 선봉이라고 했습니다.
'명예, 재물, 권세, 지위'를 얻었다 할지라도 교만한 자는 하나님이 거두십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고전10:12절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아랫사람이 교만하면 윗사람이 살수가 없습니다. 직장이나 단체나 어디서든지 교만하면 쫓겨납니다. 또 윗사람이 교만하면 아랫사람에게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②교만하면 수치와 욕을 당하게 됩니다.
잠11:2절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
잠16:5절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 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다니엘서에 보면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이 교만해서 궁전 높은 꼭대기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내 능력과 지혜로 이 모든 성을 건설한 것이다"고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 말을 한지 얼마 안 되어 느브갓네살은 정신이 나가고 그만 미쳐버렸고, 들에 나가서 소처럼 풀을 뜯어먹으며 그 머리털이 독수리 털처럼 되어 버렸다고 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교만하다가 수치를 당하고 부끄럽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십니다. 여자가 인물이 좋으면 겸손해야 하는데 얼굴 값 하느라고 으스대다가 수치스러운 여인이 되기도 합니다.
돈을 벌고 나서 감사할 줄 모르고 교만한 맘 가지고 그 물질로 부끄러운 짓 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축복을 받았는데 교만하다가 교회의 거침돌이라는 성도들이 서울 장안에 많이 있답니다. 권세를 잡으면 겸손해야 할 텐데 교만하다가 수치스럽게 인생을 마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모릅니다.
③교만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⑴하나님이 대적하십니다. 벧전5:5절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하나님을 이길 사람은 이 세상 아부도 없습니다.
⑵꺽어 버리십니다. 레26:19절 "내가 너희의 세력을 인한 교만을 꺾고 너희 하늘로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으로 놋과 같게 하리니"
⑶권세도 거두어 가십니다. 겔30:18절 "그 교만한 권세를 그 가운데서 그치게 할 때에"
⑷헛되게 만드십니다. 사16:6절 "그의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 과장이 헛되도다"
⑸하나님이 눌러 버리십니다. 사25:11절 "여호와께서 그 교만과 그 손의 교활을 누르실 것이라"
⑹낮추어 버리십니다. 삼하22:28절 "교만한 자를 살피사 낮추시리이다."
⑺매를 자청하게 됩니다. 잠14:3절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는 입술로 스스로 보전하느니라"
⑻저주하고 꾸짖게 됩니다. 시119:21절 "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에서 떠나는 자를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⑼기도의 응답이 없습니다. 욥35:12절 "악인의 교만을 인하여 거기서 부르짖으나 응락하는 자가 없음은"
⑽진노를 받게 됩니다. 대하32:25절 "히스기야가 마음이 교만하여 그 받은 은혜를 보답지 아니하므로 진노가 저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게 되었더니"
3. 겸손은 무엇이며 그의 보응은 무엇입니까?
교만의 헬라어의 원 뜻은 '자기 자신을 위로 나타낸다. 꼭꼭 숨지 않고 머리를 드러낸다. 머리카락이 보인다'는 의미이고, 그러나 겸손은 흔히 우리가 '내가 부족하다고 양보하는 것'만을 겸손으로 아는데, 원어의 뜻은 '많은 물결 속에 자기 자신을 감추는 것'입니다.
드러내지 않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겸손할 때, 은혜를 받습니다. 겸손은 자기 자신을 감추는 것입니다. 온유한 말을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며 순종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의 분수령이 바로 교만과 겸손입니다. 겸손한 자는 은혜를 주시고 사랑하십니다. 겸손한 자는 축복을 받고 끊임없는 하나님의 지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갈대와 올리브 나무가 힘과 절개 문제를 놓고 서로 말다툼을 합니다. 올리브는 갈대에게 약한 바람이 불어도 굽실거리며 허리를 펴지 못하는 주제에 힘있고 건강한 자기에게 무엇을 따지고 대꾸한다고 당치도 않는 소리라도 딱 잘라 말합니다. 얼마 후 큰 바람이 불었습니다. 갈대는 바람이 부는 대로 순종하여 바람이 그칠 때까지 탈 없이 잘 넘겼습니다. 그러나 올리브 나무는 자기의 힘을 믿고 버티다가 그만 가운데 토막이 꺾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겸손의 터 위에 믿음이 자라납니다. 교만한 곳에 믿음이 자랄 수 없습니다. 겸손한 기도는 하나님 앞에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겸손이 무엇입니까?
⑴자기를 낮추는 것입니다. 겸손의 본을 우리 주님이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본체이십니다. 하나님과 동등하게 되려하지 않고 하늘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왕궁의 푹신한 요람에 눕지 않으시고 초라한 말구유에 몸을 누이셨습니다. 주님은 늘 낮은 데로 찾아오셨고, 그분의 사랑은 낮은 자를 찾아 낮은 데로 흐르고 있습니다.
⑵자기의 죄와 부족을 깨달은 것입니다. 겸손은 자기를 비우는 것이요, 자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포기하셨습니다. 하늘의 영광 보좌를 포기하시고 마지막에는 생명까지도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⑶겸손은 섬기는 종의 생활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섬기는 자로 오셨습니다.
마20: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 물로 주려 함이니라"
⑷겸손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겸손한 사람은 내 뜻대로 안 된다고 해서 불평하지 않습니다. 남이 알아주는 말을 하나님 뜻에 순종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무슨 일을 하든지 먼저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라고 했습니다. 겸손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을 스스로 낮춤을 통해서 겸손해지는 사람은 존귀를 얻습니다. 존귀는 높은 지위를 얻게 되고, 부유하게 되고, 명예롭고, 존경할만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할/
4. 겸손한 자의 보응은 무엇인가?
잠22:4절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하나님을 겸손한 마음으로 경외하라고 하십니다. 경외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입니다. '겸손하다'는 말은 '여호와를 경외한다'는 말과 같습니다. 겸손한 사람이 하나님을 믿지,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①재물의 축복을 받습니다. 소유가 점점 많아지고, 풍족한 삶을 살게 됩니다.
시22:26절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겸손한 사람은 굶주리지 않습니다. 어디를 가도 배부르게 먹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축복과 은총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겸손한 자에게 재물의 축복을 주신 예가 많이 나옵니다. 아브라함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재물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솔로몬도 겸손할 때 지혜와 총명을 얻고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왕상3:5,7,13). 히스기야도 하나님 앞에 겸손함으로 부와 영광의 축복을 받았습니다(대하32:26-27).
미국의 정치가 벤자민 프랭클린은 <교만이 앞서면 가난이 뒤에 진을 친다>고 말했습니다. 또 영국의 청교도 작가 존 버니언은 <겸손한 자는 언제나 하나님을 안내자로 모신다>고 했습니다.
옛말에 '교불삼년'이라고 해서 '교만한 자는 3년을 못 가고', '권불십년'이라고 해서 '권세는 10년을 못 가고', '부불백년'이라고 해서 '부자는 100년을 못 간다'고 했습니다. 겸손은 오래 가지만 교만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②영광의 복입니다. '영광'은 '명예의 축복'을 말합니다. 겸손한 사람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갖게 됩니다.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수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를 축복하시고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려 주시는 것입니다.
삼상9장에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을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울 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청년 사울은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라고 말할 정도로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인정받고 기름 부음을 받아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왕이 된 사울은 점점 교만해져서 자기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운 사무엘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삼상15:23). 결국 그는 전쟁에서 패하여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습니다.
잠29:23절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벧전5:6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③생명의 복입니다. 여기서 '생명'은 '건강과 장수의 축복'을 말하고, 영원히 사는 영생을 의미합니다. 이 땅에서 잘 지켜주셨다가 저 영원한 천국에서 누리는 영원한 생명입니다. 여러분, 겸손합시다. 그리하면 물질의 복을 받습니다. 모든 것이 형통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④겸손한 자에게는 더 많은 축복이 따릅니다.
⑴하나님은 은혜를 받는 통로가 바로 겸손입니다. 약4:6절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⑵출세하고 높아지기를 원하십니까? 겸손하십시오! 약4:10절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⑶천국에서도 겸손한 자가 큰 자가 됩니다. 마18:4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⑷겸손한 자가 기도의 응답도 받습니다. 시10:17절 "여호와여 주는 겸손한 자의 소원을 들으셨으니 저희 마음을 예비하시며 귀를 기울여 들으시고"
⑸겸손한 자는 하나님이 그의 인생을 붙들고 계십니다. 시147:6절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는 붙드시고 악인은 땅에 엎드려 뜨리시는도다."
⑹겸손한 자의 후손들이 복을 받습니다. 시112:1-2절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자의 후대가 복이 있으리로다"
⑺겸손한자를 구원하십니다. 시149:4절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기뻐하시며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심이로다." 겸손만이 축복의 비결입니다. /믿/할/
5. 사울 왕은 교만한 자요, 다윗 왕은 겸손한 자의 모델입니다.
①교만하다가 버림받은 사울 왕!
성경은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잘 생긴 사람이었습니다. 멋있게 출발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나중에 교만하게 되었고, 그의 생애는 그 교만으로 말미암아 비참하게 끝나고 말았습니다.
⑴사울의 첫 번째 교만은 제사장직분을 월권한 죄입니다(삼상13:13-14).
그가 왕위에 오른 지 2년에 불레셋과 전쟁을 했는데 전쟁에 나서기 전 하나님께 제사들 드리고 나가야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은 정해진 날이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오지 않고 상황은 급하게 돌아가자 그만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제사를 자신이 해버렸습니다. 그 때 사무엘이 와서 "왕이 지금 행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니 "번제를 드렸나이다" 이 말을 들은 사무엘이 사울 왕을 책망하였습니다.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왕에게 명하신 바를 왕이 지키지 아니하였음으로 여호와께서 그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그 백성의 지도자를 삼으셨느니라"고 하고는 떠나갔습니다. 이것이 사울 왕이 왕위에서 물러나게 된 첫 번째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⑵하나님이 아말렉을 진멸하라고 하신 말씀에 불순종하다가 버림을 받았습니다.
삼상15:11절 "내가 사울을 세워 왕 삼은 것을 후회하노니 그가 돌이켜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 명령을 이루지 아니하였음이니라 하신지라"
아말렉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로 지칭됩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에서부터 시작된 족속입니다. 성경은 에서의 후손들을 통상 에돔 족속으로 부르는데 이것은 아말렉 족속도 포함하는 명칭입니다. 에서는 야곱을 핍박하고 장자의 명분을 업신여겼으며, 아말렉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광야에서 공격했습니다.
또한 아말렉 왕 아각의 후손인 하만(에3:1)은 페르시아 제국에 퍼져있는 유대인들을 전멸시키려 했으며, 이두메 사람인 헤롯은 아기 예수를 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에돔 족속과 아말렉 족속은 영영히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대표로 지목되며, 오바댜 선지자는 에돔의 멸망에 대한 예언만을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직후의 대대로 아말렉과 싸우실 것을 맹세하셨습니다(출17:16).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어느 정도 안정된 상태에서 옛 일을 추억하시고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내리신 것입니다. 진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헤렘'은 '성전 중 적을 완전히 섬멸시켜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서 사람은 적군의 소유 중 어느 것도 가져서도 안 되는 특별한 전쟁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의 제사 의식처럼 인식된 전쟁이었습니다.
사울은 그 전쟁에서 아말렉 왕인 아각과 좋은 짐승들을 사로잡아온 것입니다. 그는 여러 가지 말로 변명했지만 어떠한 이유에서건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했고 선택적으로 진멸함으로써 하나님을 욕되게 한 것입니다. 여기서의 불순종은 치명적인 것으로서 사울이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 사울 왕가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데 사울은 물론 그 아들 요나단도 전쟁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②칭찬 받은 다윗 왕!
행13:22절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의 이름이 구약에 800번 가량, 신약에 60번 가량 언급되었습니다. 다윗은 시인이고, 정치가이고, 제사장이고, 군인이자 또 지도자이고, 왕이자 믿음의 사람입니다. 한마디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⑴섬김에 사람입니다. 다윗의 생애는 섬기는 생애였습니다. 어려서는 양을 잘 섬겼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아! 네게 양을 맡겨 보니 너무나 잘 돌본다. 네가 내 백성을 맡겨도 그렇게 잘 할 것 같다. 내가 너를 왕으로 삼으리라"
다윗은 어려서는 양을 섬겼고, 청년 시절에는 사울 왕을 섬겼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지만 다윗은 사울을 섬겼습니다. 사울 왕이 병들었을 때 수금을 가지고 가서 연주해 주었습니다. 다윗이 악기를 연주할 때 악귀가 나가고 사울의 병이 상쾌하게 나은 적이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어서는 온 백성들을 정성껏 섬겼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겼습니다.
⑵회개의 사람입니다. 다윗은 죄를 안 지은 사람이 아니라 죄를 지었을 때 멋진 회개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죄가 탄로 날까 두려워 남편 우리아 장군을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나단 선지자가 와서 그 죄를 지적하자 다윗은 눈물을 흘리며 회개했습니다. 침상이 눈물에 뜰 정도로 울었습니다. 철저한 회개였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그 후 다시는 그 죄에 빠진 적이 없었습니다.
회개가 멋있고, 회개한 후가 깨끗했습니다. 다윗은 회개의 모범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런 점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된 동기입니다.
⑶칭찬 받는 사람입니다. 다윗은 누구에게나 칭찬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라고 하는 말 자체가 '극진히 사랑 받는 사람'이라고 하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다윗을 칭찬하였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죽이고 났을 때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모세는 최고의 선지자로, 다윗은 최고의 왕으로 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디매오도 예수님을 부를 때 "다윗 자손 예수여!"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이 칭찬하셨습니다. 오늘 성경에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이같이 다윗은 칭찬 받는 사람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마음에 합한 다윗은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윗은 완성의 사람이었습니다.
결론으로 잠22:4절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할/ (2006년 2월
19일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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