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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 (렘 33:1-9)

by 【고동엽】 2022. 2. 4.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 (렘 33:1-9)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합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한 명도 없습니다. 문제는 그 실수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입니다. 실수를 잘 처리하면 그 실수는 우리 인생의 '플라스'를 줍니다.
모세는 사람을 죽이는 실수를 했습니다. 그는 그 실수로 인하여 광야에 가서 40년 동안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어느 날 호렙산 가시떨기 나무에서 하나님을 만나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풍운아가 되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다시스로 갔다가 물고기의 밥이 되었는데,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생사를 건 기도를 했습니다. 드디어 고기 뱃속에서 나온 요나는 니느웨 성에 들어가 하늘을 찌를 듯한 능력으로 회개의 복음을 전할 때, 그 나라 왕으로부터 시작하여 백성들과 심지어 짐승들까지 금식을 하면서 죄를 토해내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라고 자처하던 베드로는 예수님이 붙잡혀 가시던 날 실수를 합니다. 예수님이 죽는 데까지 가겠다고 큰소리치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어린 계집종 앞에서도 세 번씩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합니다. 주님은 이것을 미리 아시고 "네가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예언하십니다. 세 번째 모른다고 부인하는 순간 닭이 두 번 울었습니다.
닭의 울음소리를 듣고 베드로는 통곡했습니다. 이 실수로 베드로는 인간의 결단이 얼마나 약한 것인가를 뼈저리게 알았고, 오직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으로 바뀌어졌습니다.
1895년에 미국 '알라바마'주에 있는 한 농장 주인이 토질 분석에 실수를 했다고 합니다. 그 땅에 목화를 심었습니다. 그런데 벌레들이 들끓고 토양이 맞지 않아 목화가 모두 말라죽고 말았습니다. 그 농부는 벌레들을 죽이려고 애써 보았지만 헛수고였습니다. 할 수 없이 농부는 목화대신 땅콩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땅콩농사가 얼마나 잘 되었는지 엄청난 돈을 벌었습니다. 그 농부는 벌레에게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벌레 동상을 세워주었답니다. 아마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벌레 동상일 것입니다.
실수도 아름답습니다. 기도의 왕 하면 우리는 '죠지 뮬러'를 꼽고 있습니다. 그가 어렸을 때, 생각하기를 예수님을 믿어봐야 별 신통할 것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오히려 제약만 생기고 황금 주일에 놀지도 못하는 것이 아까워 예수를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남의 물건을 도적질하다가 잡혀 감옥에 갔습니다. 첫날 식사를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둘째 날은 배가 조금 고파 ⅓을 먹었습니다. 셋째 날은 ⅔, 그 다음날은 다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부터는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뮬러는 간수에게 배고픔을 잊기 위해 책을 보겠다고 책을 요청합니다. 이때 간수가 넣어준 책이 성경책입니다. 그는 감옥에서 성경을 읽다가 예수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것이 16살 때의 일입니다. 그는 94살의 죽기까지 약 5만 번의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하기만 하면 반드시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발견한 것입니다.
여러분! 어떤 실수라도 그 실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살면서 사업이 무너져 물질을 잃어버릴 수도 있고, 병이 들어 건강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또 사랑을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명예를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큰 문제는 아닙니다. 가장 큰 실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잃어버리는 것이요, 믿음을 까먹는 것입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도 이 실수를 했습니다. 눅2장을 보면 예수님이 12살 되던 해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예루살렘에 모여 유월절 행사를 마치고 돌아가다가 예수님을 잃어버렸습니다. 그것도 하루 길을 가도록 몰랐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잃어버린 지도 모르는 실수를 했습니다.
성도 중에 믿음을 잃고도 잃은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기도생활을 잃어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열심을 잃고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슨 병인지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실수입니다. 분명히 문제가 있는데 무슨 문제인지 모르는 것이 가장 답답한 일인 것처럼, 잃어버린 줄을 모르는 것이 가장 큰 실수입니다. 마리아는 잃어버린 예수님을 엉뚱한 곳에서 찾는 실수를 했습니다. 친족 중에서 찾아봤고, 아는 사람 사이에서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속에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예수 없는 데서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생의 만족을 돈(물질)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쾌락에서, 엔조이에서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참다운 삶의 안식이 없습니다. 오히려 더 갈증만 주는 것입니다.
진정한 삶의 안식은 예수 안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마리아는 하루만에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찾는 데는 나흘이나 걸렸습니다. 어디서 찾았습니까? 예루살렘 성전에서 찾았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성전에 계십니다. 오늘 이 자리가 예수님 만나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오늘 본문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간의 지각이나 능력으로는 우리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가를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어떤 존재인가를 모르는 체 하나님을 섬기거나 경배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자기 자신을 계시를 통해서 어떤 분이신 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모세에게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을 계시한 사건입니다.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사건은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오신 사건이며, 인간들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가를 보다 구체적으로 경험하여 알게 하신 사건입니다.
주님은 요8:16절에서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그리고 요13:20절에서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고 하셨고, 요16:15절에 보면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더 결정적으로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요12:44-45절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쉽게 표현하면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예수를 본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어떤 일을 행하시는 분인가를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가 성전에서 예수 만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가 만나야 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신 가를 오늘 본문은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1. 일을 시작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2).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오늘 ◀제목▶은 이 말씀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①일하시는 하나님!
창1: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창세기는 성경이 시작되는 책입니다. 그리고 창1:1은 창세기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시작이 "하나님이 일하셨다"로 출발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요5:17절에서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살후3:10절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⑴창조의 사역입니다. 미국에 가면 100년 넘게 짓는 교회가 있다고 합니다. 엄청난 돈과 인력이 동원되지만 아직도 완공이 안 된 채로 공사를 계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 삼라만상과 천지만물을 엿새만에 창조하셨습니다. 그것도 공사를 전문분야별로 나누어 하청이나 도급을 준 일도 없고, 전문가들을 동원한 일도 없고, 오로지 '있으라!'는 말씀 한마디로 창조하셨습니다.
⑵섭리의 사역입니다. 장엄한 우주를 운행하시고 섭리하십니다.
⑶구원의 사역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사역가운데 가장 큰 사역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셨고 세상을 구원하셨고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⑷심판의 사역입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놓는 심판도 하십니다.

②일을 시작하시고 완성하시는 하나님!
기독교는 '네가 누구냐? 네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를 중요시하지 않고 '너와 함께 하시는 분이 누구냐? 어떤 능력을 가지신 분이 너와 함께 하느냐?'를 중요시 여깁니다. 시23;1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여러분! 이 세상은 물질이 있어도 근심과 염려가 있고, 권력이 있어도 시험과 환난과 재난이 옵니다. 오늘 우리들에게 푸른 풀밭, 쉴 만한 물가, 염려가 없는 곳, 걱정, 두려움, 불행이 없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 있습니까?
한 마디로 우리 주님이 목자가 되어 주셔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만이, 그러니까 목자 되신 예수께서 우리의 일을 행하시고 그 일을 지어 성취 시켜 주어야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믿/
계1;8절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계22;13절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할/
사람들이 하는 일을 보면 시작은 거창하게 합니다. 그런데 끝에 가서는 희미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용두사미라는 말이 생겨난 것입니다. 시작과 끝이 분명해야 합니다. 우리의 처음 믿음과 끝나는 믿음이 분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백성들을 통하여 새 일을 행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사43;19절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계획하고 실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언제나 새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해 내실 때, 홍해를 가르는 새 방법을 내셨고, 여리고 성을 한번에 무너져 내리게 하는 새 방법을 쓰셨습니다.
여러분! 새 일을 행하시는, 그리고 그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고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 빌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셨고, 사40:29절에서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또 사40:31절에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새 힘을 얻으리니" 시121;1-2절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삼상2;6-7절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절대적인 힘과 상대적인 힘. 절대적인 힘이란 모든 것이 다 가능한 힘입니다. 그러나 상대적인 힘이란 할 수 있는 것도 있고, 할 수 없는 것도 있는 그런 힘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십니다. 또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사업장을 축복하시면 하루아침에 판도는 달라집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셔야 하며 그 재물도 지킬 수 있는 힘을 주셔야 합니다.
사실 돈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재물을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재물을 잘 관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막아주셔야 합니다. 황충을 제하시고 과일이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높이게도 하시고 낮추게도 하십니다. 다윗을 높이셨고, 요셉을 높이셨던 하나님이 우리를 높여 주시면 그 누구도 우리를 낮추게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생사화복을 행하시고 지어 성취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③"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십니까?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주시는 하나님, 약속을 주시고 그 약속대로 시행하는 자들에게 오늘도 새 일을 주시고 그 일을 성취시키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

 

2. 부르짖으면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①본문은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조국 유다가 바벨론 느부갓네살 군대에 에워싸여 풍전등화의 위기 앞에 상황을 묘사하고 있는 본문입니다.
어찌 예레미야만 시위대 뜰에 갇혀있는 신세이겠습니까? 시위대란 왕궁을 지키는 군대본부를 말합니다. 우리로 말하면 수도경비사령부 내지는 청와대 경호 실쯤 되는 권력을 지키는 핵심부요 그 나라의 자존심의 마지막 보루라고 보면 됩니다. 그곳까지 외국의 군대가 진주하여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을 지켜보는 애국자의 가슴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는 믿음의 사람입니다. 아무리 상황이 어둡고 캄캄해도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면 역사는 일어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은 기도입니다.

②3절 속에서 3가지의 교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⑴부르짖으라! 부르짖는 다는 것은 힘써 기도하라, 전심으로 기도하라, 소리 질러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또 통회하는 기도, 열심 있는 기도, 끊임없는 기도, 울부짖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열심히 하는 기도입니다. 기도는 뜨겁게 해야 합니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이 성공적인 삶을 삽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정성들을 쏟아 바치는 기도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온 정성을 쏟아서 기도했습니다. 머리를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개월 가문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왕상18:42,45). ▶부르짖는 기도는 낙심하지 않고 하는 기도입니다.
▶또 부르짖는 다의 더 깊은 원 뜻은 쥐어짜며 부르짖는다는 말입니다. 눈물을 짜며, 땀을 짜며, 피를 짜며, 생명을 짜며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기도를 통해서 옵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기도를 통해서 오고 하나님의 비밀도 기도를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기도의 원어는 '데필라/자이크' 등이 있는데 '씨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씨름 선수들의 경기를 볼 때마다 온 힘을 다해 상대방을 넘어뜨리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을 봅니다. 기도는 바로 젖 먹는 힘까지 동원해야 합니다.
또 다른 원어의 뜻은 '고문당하는 사람이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것'과 같습니다. '한번만 살려주세요!' 기도는 생명을 걸고 필사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어느 때 기도해야 합니까? 시50:15절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요15:7절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마21:22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의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약1:6-7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이스라엘 사람들의 전설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이 사흘동안 여행을 갔다 왔더니 아내가 잔득 화가 나 있었습니다.
아담이 아내를 보고 말하기를 이 넓은 천지에 여자라고는 당신 한 사람밖에 없으니 내가 외도한 것도 아닌데, 어딜 좀 갔다 왔기로 왜 이렇게 화가 났습니까?
그리고 아담은 여전히 기쁨으로 찬송을 부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런데 하와는 가만히 있다가 밤에 몰래 아담의 갈빗대를 세어 보드랍니다. 갈빗대 하나 더 뽑아 가지고 어디다 여자를 하나 더 만들어 놓은 것은 아닌가해서입니다. 그렇지 않고야 저 남자가 왜 저렇게 좋아할까 싶어서였습니다.
사람은 이렇게 에덴동산에서부터 의심이 많았답니다. 이 의심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평화가 깨어집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왜 의심하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⑵응답하리라! 응답하신 다는 것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분이심을 나타내는 증거입니다. 세상에 어리석은 사람들은 죽어 있는 우상에게 가서 복을 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삼상18:25절 이하를 보면, 하나님의 종 엘리야와 바알을 섬기는 선지자들과 한판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누가 능력 있는 신인가? 살아 있는 신인가를 대결하는 자리입니다. 먼저 바알 선지자들이 자신들의 방법대로 송아지를 잡아 놓고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의 이름을 불러가며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소리쳤지만 아무소리도 응답도 없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그들을 조롱하면서 말합니다. "큰 소리로 불러라, 행여나 너희 신이 묵상하고 있는지, 잠을 자고 있는지 모르니 큰소리로 부르라"고 야유를 보냅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심지어 자신들의 몸을 칼과 창으로 베며 피를 흘리게 하면서 고래고래 소리칩니다. 그러나 끝내 바알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때 엘리야가 무너졌던 여호와의 단을 새로 쌓고 열두지파의 돌의 세우고 그 위에 번제물을 올려놓고 '여호와여 응답하소서!' 기도하니 여호와의 불이 임했습니다.
왕상18:39절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믿/ 오늘도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⑶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까지도 보여 주리라!
▶크고 비밀한 것을 보여 주신다는 것은 ⑴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 ⑵다른 사람에게는 알리지 않은 것 ⑶자신의 생각으로는 짐작도, 꿈도 꾸지 못했던 깜짝 놀랄 사건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크고 비밀한 뜻은 이러합니다.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비밀한 계획은 요셉 자신도 몰랐고, 그 형들도 몰랐고, 그의 아비 야곱도 몰랐습니다. 그가 비로소 애굽에 총리가 되고 난 이후에 비로소 하나님의 섭리를 알게 되었습니다(창45:5).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그러했습니다. 다윗 자신도 몰랐고, 그 형들도 몰랐고, 그 아비 이새도 몰랐습니다.
아비의 양을 치는 목동이었으나 적은 일에 충성함을 보고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고, 구원역사에 징검다리로 놓으신 것입니다(마1:1).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바울 자신은 물론이거니와 유대교의 바리새인이나 제사장들도 몰랐고, 하나님의 종 아나니아도 몰랐습니다.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행9:15).
사랑하는 성도들이여!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리하면 응답주시고 깜짝 놀랄 하나님의 사건들을 허락하십니다. /믿/
렘29:12-13절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③기독교는 기도하는 종교입니다.
성경은 기도와 그 응답의 기록부입니다. 역사는 기도응답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를 향하여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기도하면 그 기도 속에서 우리는 다섯을 만날 수 있습니다.
⑴기도하면 하나님을 만납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하는 것은 부탁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을 만나려는 사람은 청와대로 가야 하는 것처럼 기도하려는 사람은 하나님께로 가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⑵기도하면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자기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라는 사람을 만납니다. 남편을 위하여 기도하는 아내는 기도로 남편을 만나게 됩니다. 아내를 위하여 기도하는 남편은 기도시간 아내를 만나게 됩니다.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부모는 기도시간에 자녀를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시간에 그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대통령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은 기도로 대통령을 만나게 됩니다.
기도는 사람을 만나게 합니다. 내가 기도하여 주는 사람을 기도 속에서 만납니다. 기도는 만남입니다.
⑶기도하면 마귀를 만납니다. 기도 자는 반드시 하나님과 만나고 사람과 만납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이 만나는 존재가 있는데 누굽니까? 마귀입니다. 반갑지 않은 존재도 만나게 됩니다. ‘기도 자가 기도로 바쁘면, 천사는 기도와 응답을 가지고 왔다 갔다 하느라고 바쁘고, 하나님은 응답하시느라고 바쁘시고, 마귀는 방해하느라고 바쁩니다’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은 해결 자로 만나고, 사람은 사랑을 주는 자로, 마귀는 전 투자로 만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흥분이요, 사람과의 만남은 즐거움이요, 마귀와의 만남은 투쟁적입니다. 하나님과 만남은 응답을 얻고, 사람과의 만남으로 사랑을 얻고, 마귀와 만남으로 전쟁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기도 자와 만나기를 즐거워하시고, 사람들은 기도 자와 만나기를 반가워하고, 마귀들은 기도 자와 만나기를 지겹게 싫어하게 됩니다. 마귀는 가장 약한 성도일지라도 그가 기도의 제단에 무릎을 꿇으면 벌벌 떨게 됩니다.
⑷기도하면 천사를 만납니다. 기도를 시작하면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주셔서 기도하는 사람을 도와주십니다. 눅22:43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그런데 이제는 성령 님이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를 도우시기에 성령 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롬8;26절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기도를 시작하면 성령 님이 오셔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도와주시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기도하는 사람은 성령을 만날 수 있습니다.
⑸기도하면 응답을 만납니다. 기도는 기도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반드시 응답에서 끝납니다. 기차는 종착역까지 가고야 말듯이 기도는 반드시 응답까지 가고야 맙니다. 하나님을 만나 그 분을 위하여 기도하다가 마귀와 영적 전쟁을 하게 되기도 하지만 반드시 종착역은 응답입니다.
욥42:10절 "욥이 그 벗들을 위하여 빌매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이 역경을 이긴 것은 기도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기도는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 이 시간 일을 시작하시고 그 일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또 부르짖어 기도하면 응답주시고 하늘의 비밀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할/

 

3. 얼굴을 가리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5)

 

"나의 얼굴을 가리워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버리심으로 바벨론 포로가 되어 70년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돌아보지 아니하시고 얼굴을 돌리셨습니까?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해야 할 그들이 하나님을 외면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제 멋대로 교만 가운데 살았습니다.
무엇이 좀 되어진다 하면 사람들은 교만해 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꺾으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이스라엘의 교만은 곧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얼굴을 돌린 결과가 되었습니다.
▶북극 지방의 겨울은 길고 춥습니다. 그리고 밤이 20시간이나 계속 될 때가 있습니다. 왜 밤이 깁니까? 그것은 빛이 가리우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얼굴을 가리우시고 돌리시면 내 영혼은 밤을 맞게 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할 영혼들이 추워서 얼어죽게 됩니다. 영원한 태양이신 주님의 얼굴을 날마다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민6: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기 중요한 진리는 하나님이 나를 바라보실 때, 내게 은혜가 넘친다는 사실입니다.
민6: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나님의 얼굴이 나를 바라보실 때,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고 하루 하루를 살아갈 때, 내 영혼과 내 삶 속에 평강과 하나님의 은혜가 넘친다는 말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고, 시42: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우리 모두 이 시간 하나님의 얼굴을 향하여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할/

 

4.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6)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강과 성실함에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 함으로 하나님이 그들을 외면해 버리자 그들은 바벨론 포로가 되어 인간의 기본권마저 잃어버리고 하루하루를 절망과 좌절과 슬픔과 탄식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물론 예루살렘 성은 바벨론의 침공으로 쑥대밭이 되고 말았습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무너졌던 예루살렘 성을 고치시고 평강과 성실함을 풍성하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성은 예루살렘입니다. 그 성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범죄 할 때마다 하나님은 그 성을 치셨습니다. 그러나 그 성 사람들이 회개하면 그 성을 회복시키셨습니다. 예루살렘 성뿐이겠습니까?
하나님은 살리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십니다. 흥하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십니다. 이유는 창조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 출15:26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23:25절 "너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 병을 제하리니"

 

▶성경 안에는 하나님이 치료하시는 사건이 광범위하게 나타납니다.
①자연을 치료하십니다. 출15:25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마라에서 발견한 오아시스의 물이 써서 먹을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고쳐주십니다. 하나님은 쓴 것을 달게도 바꾸어 주십니다. 우리의 생활에 모든 쓴 물을 단 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왕하2:19-22절에 보면, 엘리야가 여리고 성의 수질을 고친 기사가 나옵니다. 수질에 따라 생명들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합니다. 여리고 성의 수질 때문에 곡식이 결실을 못하게 되자 이 사정은 엘리사에게 알리고 해결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새 그릇에 소금을 담아 가져오라고 한 후 그것을 물 근원에 뿌렸습니다. 그랬더니 수질이 고쳐졌고 농사가 풍작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연을 창조하셨습니다. 자연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연을 고치십니다.
②인간을 치료하십니다. 인간은 영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건강하다는 것은 영과 육의 강건함을 말합니다. 성경에 보면 우리 주님께서 병든 자를 치료하는 기사는 너무너무 많이 나옵니다.
③역사를 치료하십니다. 본문에서 성을 치료하신다는 것은 곧 이스라엘 나라와 그 역사를 치료하신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인간의 생사화복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를 한 손에 쥐고 계십니다. 놀라운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나라는 모두 선진국 대열에 끼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흥망 사를 살펴보면 하나님을 올바로 섬겼을 때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빛났고 나라가 발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외면하고 거역했을 때는 국가가 시련을 겪었고 역사가 불안해졌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역사도 국가도 그 주인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믿/
하나님은 치료하실 뿐 아니라 회복도 시키십니다. 본문 7절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하나님은 내 영혼의 깊은 고독과 상처를 고치시고 내 육체의 질병을 치료하시고 자연도 병든 역사도 치료하시고 싸매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아멘!/

 

5. 죄악을 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의 내게 범하여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한 죄는 크게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불신 죄'요,
그 다음은 '하나님대신 우상을 섬긴 죄'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대신 바알신과 몰록신과 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 그 죄 때문에 그들은 나라가 망했고 살던 땅에서 쫓겨났고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정하게 한다는 것은 더러운 죄악에 오염된 나를 깨끗하게 한다는 것이요, 사하신다는 것은 용서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죄악을 사하여 주십니다.
모든 죄악은 ⑴그동안 지은 모든 죄를 말합니다. ⑵세상이 용서하지 못하는 죄를 의미합니다. ⑶하나님 앞에 고백한 모든 죄를 의미합니다. 고백하지 않는 죄, 회개하지 않는 죄는 그대로 죄를 낳습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고백한 죄는 정케 하시고 사하여 주십니다.

 

6.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9).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내게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나의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나의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강을 인하여 두려워하며 떨리라"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섬기는 성이 받은 복과 평강 때문에 이방인들이 놀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시29:11절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사26:12절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평강을 베푸신다"고 했습니다. 이 구절들은 평강의 출처가 어디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4구역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회교도 지역, 기독교 지역, 유대인 지역, 아르메니안 지역'입니다. 특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좁은 땅에 공존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 평화가 깨질지, 언제 총성이 울릴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스라엘이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성에 평강을 주셔야 합니다. 사람이 만들고 땅에서 솟아나는 평강은 바람 불면 날아가 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은 시들지도, 날아가지도, 꺼지지도 않습니다. 우리에겐 그 평강과 그 평화가 필요합니다.
▶이 구절을 정리하면 ⑴그 성의 이름만 들어도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⑵이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⑶주변 국가들이 두려워하며 떨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 성에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⑷그 성에는 평강이 넘치게 됩니다. 한 마디로 결론은 '해피 앤드'랍니다. 멋집니다. /할/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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