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가 품어야 할 마음! (빌 2:1-11)
화장품 업계에서 화제를 모았던 '참존 화장품'의 김광석 회장님은 하나님을 믿기 전 약국을 경영하면서 많은 돈을 벌었답니다. 그렇게 많은 돈을 번 그는 제일 먼저 도봉산 기슭에 절을 지었답니다. 그 절에는 일천 명의 신도가 가입을 했고, 그는 그 절의 신도회 회장까지 맡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가 조제한 약이 무허가 제약으로 보건범죄단속법에 걸리게 되어 그는 도망자 신세가 되어 전국의 절을 찾아다니며 도피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6개월을 피해 도망 다니던 중, 어느 절간의 텅 빈방에서 빛 바랜 신문지 한 장을 발견했는데, 부도내고 도망간 자신의 기사가 실린 신문이었습니다. 그 신문을 보는 순간 갑자기 울분이 솟구친 그는 그 신문을 움켜쥐고 울고 또 울었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입술이 열리며 난생 처음으로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튀어 나왔습니다.
그 날 그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영접하고 목놓아 울었답니다. 그리고 그 길로 절을 내려와 당국에 자수하고 교회를 정하고 매일 성경공부를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원에 확신에 감사하며 그 기쁨을 이웃 친구들에게 전하면서 새로운 사업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사업을 구상했다고 합니다.
그것이 기초전문화장품회사인 '참존'이었습니다. 사업을 하면서도 예배중심으로 사업을 했으며, 어느 주일날 목사님으로부터 말3:10절의 〈온전한 십일조로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는 설교를 듣고 온전한 십일조, 때로는 십에 이조, 삼조를 드리면서 기도하기를 "하나님은 참 존 화장품 회사의 사장님이시고 자기는 지배인"이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사업을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엄청난 복을 주셨는데 사업의 복을 받았고, 온 식구들이 믿음의 복과 건강의 복을 받았다고 간증하면서 그는 지금도 소망교회 장로로 충성하고 있다고 합니다. /할/ 여러분! 제대로 믿으면 제대로 복을 받습니다. /믿/ ◀제목소개!▶
빌1장에서는 바울 사도는 간단한 인사와 함께 빌립보 교인들의 장점을 들어 하나님께 감사하며 칭찬을 해 주는 가 하면, 또한 단점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감옥에 갇혀 있는 바울 자신의 심정을 말하면서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리고 빌립보 교인들에게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란, 복음을 전하는 일에 협력할 것, 대적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 것,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도 은혜로 알고 기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봉독한 빌2장의 말씀은 교회 생활에 대한 권면입니다. 그 주제는 하나가 되라는 것이며, 하나가 되기 위하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17장은 대제사장으로서의 예수님의 가장 긴 기도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자신과 제자들과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당신 자신을 위하여서는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였고, 제자들과 교회를 위하여서는 "하나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요17:11절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행16:11절 이하에 보면 빌립보 교회는 루디아의 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자주 장사를 하는 여성 사업가로써 그녀가 바울에게 은혜를 받고 자신의 집을 교회로 내주면서부터 출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교회는 여성적이고, 세밀합니다. 사랑이 넘치고 부드럽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 됨이 약합니다. 샘이 많고 질투가 많아서 화목을 이루기가 어렵습니다.
그 교회에 '유오디오'와 '순두게'라는 두 여인이 있었는데 그들은 열심히 복음을 위해서 일을 하다가 시기와 알력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을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심할 것은 당 짓고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의 문제도 이것이었습니다. 남다른 열심을 가지고 일하고 노력하지만 끝에 가서 다툽니다. 그래서 헛된 일로 만듭니다.
여러분! 다툼은 무섭습니다. 서로 파멸이 옵니다. 사단은 우리가 하나 되어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것을 막으려고 서로 다툴 이유를 만듭니다. 우리 속지 맙시다. 언제나 하나되고 조화를 이루면서 협력하여 하나님의 큰일을 행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바울은 빌1:27-28절에서 세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①복음을 대적하는 자를 두려워 말라(28절). 복음을 전하다 보면 대적하는 자가 있습니다.
②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27절). 믿는 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③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27절).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무관심은 가장 큰 적입니다. 눅11:23절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힘의 세 가지 원리는, '하나 되는 것, 조화, 협력'입니다.
삼국지를 보면 유비와 관우와 장비가 나옵니다. 삼대영웅인데 이 세 사람은 개인적으로 보면 별 볼일 없습니다. 유비는 돗자리 장사하는 사람이었고 관우는 서당의 훈장이었고 장비는 백정이었습니다. 혼자서 살 때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세 친구가 뭉치니 그 시대를 정복하는 영웅이 된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에서 조심스럽게 하나가 되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 교회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을 같이 하라!(1-2)
중요한 원리는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온 성도가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몇 가지 원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①예수 안에서 바른 권면을 주라!
즉 믿음이 약하거나 시험에 빠진 성도들에게 신앙의 권면을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교회에서 권면이 사라져 버린다면 교회로서의 한 가지 기능이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도들 대다수는 그것을 듣기 싫어합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약점이 잡히는 것 같아서 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신앙의 발전은 누가 나를 권면해 줌으로, 다른 길로 걸어갈 때 그것을 말씀으로 바로 잡아 줌으로, 그리고 내가 그것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드릴 때 가능합니다.
권면해 주면 오히려 시험에 들어 버리는 사람이 있고, 그것을 겸허하게 받아들여 괄목할만한 신앙의 성장을 도모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권면을 잘 받아들이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②사랑의 마음으로 위로의 말씀을 주라!
즉, 영 육간의 고통에 빠진 사람들에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위로해 주라는 말입니다.
사실 교회에서 이러한 위로나 사랑이 없다면 안될 일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의 위로는 바로 하나님의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사30:26절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
또 시86:17절에 "하나님은 우리를 돕고 위로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위로보다는 하나님의 위로가 더 기쁨이 있습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 슬픔 중에, 사람들에게도 위로를 받지 못하고 괴로운 마음으로 방황하다가 뜻밖에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 때문에 형용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로 인하여 눈물을 흘리고, 용기를 얻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인생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 받는 위로가 참된 위로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하나가 된 성도는 바로 그러한 위로와 사랑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③성령의 교제를 하라!
교제는 바로 교회의 생명입니다. 교제가 없는 교회는 그 생명력을 잃고 맙니다. 그런데 그 교제는 반드시 성령의 교제가 돼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인간적인 친교모임이나, 또는 서로 마음이 통하고 사는 환경이 비슷하고, 같은 동네에 살고, 같은 회사나, 같은 동문이거나 하는 이유로 교제를 나누면 교회에 당이 생기게 됩니다.
성령의 교제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신분상의 평등한 위치에서 나누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위는 절대 적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 형제님, 자매님 하는 것입니다.
또 성령의 교제는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이 그것을 간증하고 자랑하는 것입니다.
또 성령의 교제는 주님과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즉 기도입니다.
진정한 교제는 바로 주안에서 서로 떡을 나누고, 기도에 힘쓰고 전도하기를 서로 힘쓰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그 일을 감당했습니다.
④긍휼과 자비를 베푸는 성도가 되라!
긍휼은 사랑을 전재로 한 것입니다. ▶8절을 보면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화신입니다. 십자가가 바로 사랑의 확증입니다.
자비는 약자를 대하는 동정을 말합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예수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바로 이 약자를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여기서 약자의 개념은 단순히 세상적 가난한 자를 말함이 아니라 마음이 상한 자를 의미합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가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권세와 돈이 있던 삭개오도 마음이 상한 자였기 때문에 예수를 만났습니다. 시34:18절에서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삶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자비와 긍휼을 베푸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라 남을 위한 삶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기주의가 아니라 이타주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상한 심령을 싸메주는 성도가 됩시다!
⑤한 마음을 품으라!(2)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으라" 한마디로 마음의 일치를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장엄한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연주되는지 아십니까? 여러 가지 악기의 모양과 소리의 체계는 다 다릅니다. 음색도 틀립니다. 다 같은 소리를 내지는 않지만 좋은 질서와 좋은 조화를 이루기 때문에 그것들이 함께 어우러지면 환상적인 화음이 되어서 듣는 이로 하여금 감동을 줍니다. 성가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연주 전에 악사들이 악기를 조율할 때는 시끄럽고 단조로운 소리를 내므로 시끄럽고 어수선합니다. 그러나 지휘자가 그 행동을 멈추게 하고 연주를 시작하면 그렇게 시끄럽고 다양하고 부산했던 소리가 한 지휘자의 지휘아래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어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양한 구성원, 은사도 다 다르고, 사는 모양도 다다릅니다. 그러나 한 성령을 받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뭉쳐서 우리의 지휘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휘를 받아서 움직일 때 아름다운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 불협화음을 낼 때, 비난할 것이 아니라 권면하고 사랑으로 가르치므로 한 화음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바울이 지금 그것을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2. 겸손한 마음이 하나되는 요소입니다(3).
▶하나됨을 파괴하고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요소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①<다툼>입니다.
여기 '다툼'이란 '말다툼, 논쟁'이란 말인데, 모두 자기 본위의 생각대로, 말다툼이나 논쟁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자기 본위의 이기적인 생각대로 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 다툼이 나오는가? 서로를 이해해주는 마음이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부부간에도 잘 다투는 부부가 있는데, 그것은 서로의 이해가 부족해서 그렇습니다.
▶세상 것만 추구하는 사람은 바로 '다투는 자'가 됩니다. ▶사람과 다투게 됩니다. 얻기 위해 남을 희생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다투게 됩니다. 육을 위해 살면 영을 거스리기 때문입니다.
다툼의 반대는 바로 교제입니다. 성령과 교제하는 사람은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의 삶을 살수가 없습니다. 왜? 항상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기 때문에 겸손할 수밖에 없고, 남을 나보다 항상 낫게 생각합니다.
②<허영심>입니다.
이것은 아직 세상 것을 버리지 못한 사람들이 하는 짓입니다. '허영'이라는 말은 '빈 마음'이라는 의미입니다. 속이 비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물욕, 명예욕, 권세욕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우선으로 내세워서는 아니 됩니다. 주님의 일 때문에 나의 그러한 욕망을 꺾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필경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그 행사가 다 형통>하다고 다윗이 시1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③하나님은 겸손한 마음을 좋아하십니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 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복을 주십니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Uncle Tom's Cabin)이라는 유명한 책을 쓴 여류 작가 '스토우' 부인과 링컨 대통령이 만났습니다. 링컨은 "부인을 만나니 매우 반갑습니다. 나는 부인의 Uncle Tom's Cabin을 읽고 나서 이 책을 쓴 저자는 강대한 장군일 것이라고 짐작했는데 이렇게 만나고 보니 아주 연약한 분이시군요. 그런데 어쩌면 그렇게 훌륭한 작품을 쓰셨습니까?" 부인은 겸손한 태도로 대답했습니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것은 제가 받을 칭찬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릴 뿐입니다. 오히려 각하께서 하신 일이 놀랍습니다. 남북전쟁을 대승리로 이끄시고 오늘 이와 같은 평화로운 국가를 만드시지 않았습니까? 각하의 공이야말로 영원히 빛날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 역시 겸손한 어조로 대답했습니다. "그 무슨 말입니까? 나는 단지 하나님의 종일 뿐입니다. 내 자신에게는 아무런 힘도, 능력도 없습니다. 영광은 오직 주 하나님께만 돌릴 뿐입니다"
흑인 노예해방은 스토우 부인의 저서로 말미암아 민중이 계몽을 받았고 거기에다 링컨의 정치적 활동으로 승리적 성과를 이룬 것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모두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린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겸손한 마음을 배우고 닮아가면서 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욥22:29절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구원하신다"고 했고, ▶시10:17절 "하나님은 겸손한자의 소원을 들으신다"고 했고, ▶시22:26절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시147:6절 "여호와께서 겸손한 자를 붙드신다"고 했습니다.
또한 ▶잠11:2절 "겸손한 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잠22:4절 "겸손의 보응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을 주신다"고 했고, ▶사29:19절 "마음이 겸손한자가 하나님을 기뻐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겸손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는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겸손 그 자체십니다. 그분은 누구인가? 만 왕의 왕, 구세주, 하나님의 아들, 온 우주 만물의 통치자, 그런 분이 미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④<자기 우월감>을 버리라!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모든 사람이 나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하나 됨을 깨뜨립니다.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서로를 존경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잘못된 버릇은 상대방이 나보다 낫다고 생각하면 열등감에 빠집니다. 그리고 자신이 낫다고 생각하면 우월감을 느낍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성경에는 '서로' 하라는 말이 많습니다.
⑴서로 문안하라! ⑵서로 화목하라! ⑶서로 발을 씻기라! ⑷서로 용납하라! ⑸서로 돌아보라! ⑹서로 짐을 지라고 하셨습니다. '서로'란 연대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서로 웃고, 서로 우는 사랑의 관계처럼 더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교회다움이란 서로를 존중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각각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고 했습니다.
▶4절 "각각 자기 일을 돌아 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3절 말씀은 겸손의 원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고, 4절은 그 행동적인 실천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첫째 계명이 무엇인가? 마19:19절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 이것은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바로 알면, 남의 모습도 보입니다. 우리 모두는 연약하여 위로 받고 용서받고 사랑을 받아야 할 존재입니다.
▶5절-7절까지를 보면, 예수님의 성육신하신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의 저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왕자가 말을 타고 시골로 사냥을 가면서 빈민촌을 지나게 되었답니다. 그 시골길에서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습니다. 천사같이 아름답고 깨끗한 여인이었습니다.
왕궁에 돌아와서도 그는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끝없이 생각나고 그리웠습니다. 그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어떻게 하면 그 여인에게 내 사랑의 진실을 믿게 할 수 있을까? 그것이 첫째 고민이었습니다.
둘째 고민은 신분의 격차가 엄청납니다. 그래서 그는 생각합니다. 신분의 격차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하면 알릴 수 있을까? 배우고 못 배우고, 가난하고 부하고가 문제 안됩니다. 사랑은 그 모든 것의 위에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세째로, '잘되고 못되고, 행복하고 불행하고'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무슨 문제가 있든 모든 책임은 내가 질 것임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제 네째로, 어떻게 하면 그녀도 내가 저를 사랑하는 만큼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 내 사랑을 받아들이게 하고, 저도 나를 사랑하게 할 수 있을까? 그는 이것을 고민하고, 연구도 했습니다. 주변의 의견도 구했습니다.
많은 고민 끝에 그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왕궁에서 입던 화려한 옷을 벗어버리고 그녀가 사는 시골 마을로 가서 조그마한 방을 하나 세 얻고 목수가 됩니다.
일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의 풍습을 배우고, 언어를 배우고, 그들과 깊이 사귀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 순박한 생활 속에 엄청난 행복이 있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동네 사람들과 부지런히 사귀었습니다. 마침내는 그 여인하고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윽고 그는 고백합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렇듯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찾아 왔다고 말을 합니다. 비로소 이 여인은 왕자의 엄청난 사랑을 알고, 믿고, 깨닫고 받아들여 왕궁으로 들어가 왕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모양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늘 보좌 버리시고 오신 것입니다.
3. 하나되는 핵심은 예수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5).
'열 길의 물길은 알 수 있어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은 알 수 없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날씨보다 변덕스럽고, 나뭇가지보다 더 흔들리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리는 종종 고백하기를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다"고 말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의 사람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고 말하면서, 이 마음은 곧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즉, 우리의 마음에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모시고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입니까? 예수님은 마11:29절에서 친히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대도 온유하고 겸손하며, 마침내는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주님이 이렇게 온유하고 겸손하며 죽기까지 복종하시니, 하나님은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고,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며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던 것입니다(9-11).
이와 같이 우리도 예수님을 닮기만 하면, 버려진 자 같으나 존귀해 지고, 낮아진 것 같으나 높아지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옛 아담의 성품과 생활 태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이기적인 생각만 하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 무시하고 불평하고 원망하기를 그치지 않고 있다면 그는 진정 주님의 제자는 아닌 것입니다.
인간관계는 덕이 필요합니다. 예로부터 정치나 군사적인 용어 가운데 보면, <용장과 지장과 덕장>이 있는데, <덕장>을 가장 좋은 지도자로 여겨 왔습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문제가 많이 불거져 나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①불평불만과 원망이 있으면 문제가 됩니다.
출17장에 보면, 모세의 영도 하에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 광야를 떠나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이스라엘 진영에 마실 물이 없게 되자 갈증을 느낀 백성들이 모세와 하나님께 원망을 하고 불평을 합니다.
원망과 불평은 마귀의 찬송이요, 감사는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②은혜를 잊어버리면 문제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얼마나 많이 체험했습니까? 홍해 바다가 왜 갈라졌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리시기 위하여 갈라진 것입니다. 이집트에 왜 재앙이 일어났습니까? 이스라엘을 구출하기 위하여 완악한 바로를 꺾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처럼 불평과 원망을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배은망덕한 노릇입니까? 이것은 은혜를 잊어 버려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굳건히 의지하면서 은혜 가운데 살면, 문제가 별로 발생하지 않습니다. 설령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할 지라도 그 문제 속에서 말씀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노력하면서, 주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하면 복이 오고 응답이 옵니다.
③의심이 들어오면 문제가 됩니다.
하나님이 지금도 역사하고 계심을 의심하기 때문에 문제가 들어옵니다.
눅24:38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약1:6-8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어떤 사람은 주님보다는 세상을 더 의지하고, 세상 방법대로 살면서도 세상일이 자기의 마음과 뜻대로 잘 안되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교회를 원망하고 지도자를 원망합니다. 자기의 탓인지는 모르고 누구누구에게 탓을 전가 시키려 듭니다. 이것은 잘 못된 것입니다.
④말씀대로 살지 않기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늘 대하고 들으나, 그 말씀대로 믿지 않거나 말씀대로 살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4. 예수의 마음을 품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①비워야 합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7)
우리의 마음에 있는 욕심을 비워야 합니다. 세상의 헛된 꿈들을 버리고 비워야 합니다. 탐욕과 세상의 자랑을 비워야 합니다.
이 빈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로 가득히 채워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더욱 큰 축복의 역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비우지 않으면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가 없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무엇을 더 얻을까 하는 문제에 골몰하기 전에 먼저 비우는 훈련을 하여야 합니다. 내 마음에 차있는 욕심과 세상의 모든 욕망을 비우는 훈련을 더욱 하여 그 마음이 비워질 때에 하나님이 부으시는 새로운 큰 은혜와 축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②낮아져야 합니다. "자기를 낮추시고"(8)
현대 사람들은 높아지려고 합니다. 더 높아지려고 합니다. 제자들의 싸움도 그 이유였습니다. 사단은 하나님만큼 높아지려다가 떨어졌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과제는 더 낮아짐입니다. 더 부서지고 깨지고 낮아지는 것입니다. 나의 세상 적인 욕심과 욕망을 비우고 얼마나 더 낮아지느냐가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요, 우리의 목표입니다.
신앙은 올라가고 삶은 내려가는 것이어야 합니다. 반대가 되면 안됩니다. 아직도 덜 부서진 부분 때문에 교만이 싹트고, 아직도 떨 깨진 부분 때문에 감정적이 되고, 아직도 덜 낮아진 부분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고 원망이 나오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세상 적으로 생겼던 나의 모습이 더 부서지고, 깨지고, 무너져서 하나님의 손에 들려 성령의 기름 부음을 받아 다시 빗어져야 합니다.
더 부서져야 하고, 더 무너져야 하고, 더 깨어져야 하고, 더 낮아져야 합니다.
③복종하는 삶입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8)
순종하는 훈련을 하여야 합니다. 내 고집을 버릴 줄 아는 사람, 내 생각을 내려놓을 줄 아는 사람, 내 개인적인 이익을 버릴 줄 아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복종할 줄 아는 사람. 하나님의 나라는 이러한 자들이 세워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그 쓴잔을 복종함으로서 받아 마셨습니다.
한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우리에게 죄가 들어왔으며, 한 분 예수님의 순종이 온 인류를 구원시킨 것입니다.
지금도 이러한 복종의 신앙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쳐 가는 것입니다.
예) 초대교회 조만식 장로님의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어거스틴'은 첫째부터 마지막까지 그리스도인의 덕목은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5. 어떻게 하면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을 수 있는가?
①마음속에 있는 나쁜 마음을 내어쫓아야 합니다.
사람들 마음 안에는 선과 악이 공존합니다. 그런데 선보다는 악이 더 숨어 있습니다. 이러한 속마음은 나의 본연의 모습이요, 나도 모르는 속 사람이며, 쓴 뿌리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다 내어쫓아야 주님의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지킬박사와 하이든'이라는 책에서 지킬박사는 과학자요,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선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밤만 되면, 지킬박사는 하이든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온갖 못된 짓을 골라합니다. 포악하고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어서 온 지역 사람들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사람은 같은 사람인데, 천사와 악마의 일을 동시에 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마치 '지킬박사와 하이든'처럼 이중적인 면을 보게 됩니다.
다윗도 자기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속 사람이 있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 욕망 적이고 잔인한 속 사람이 있어서 자기의 욕정을 채우기 위하여 충성된 신하를 죽이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은 일천 번 제사를 드린 사람입니다. 참으로 대단한 신앙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에게 전무후무한 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또 다른 속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자행한 것입니다. 이방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가 하면, 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산 당을 짓고 우상을 섬겼던 것입니다.
▶네로 황제는 본래 시적인 사람이고, 정적인 사람 이였답니다. 황제의 위에 올랐을 때, 한 신하가 사형에 처하게 하는 결재 서류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내가 어떻게 사람을 죽이라고 싸인을 할꼬?" 하면서 "내가 무식한 사람이 되어 차라리 황제가 안되었으면 좋았겠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포악하고 잔인한 속 사람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내와 어머니를 죽이는가 하면, 로마시가지를 불질러 이것을 기독교인에게 뒤집어 씌웠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잡아다가 마구 고문을 하고, 불로 태워서 죽이고, 사자 굴에 넣어 죽였습니다. 사람은 이와 같이 천사가 되다가도 때로 악마로 돌변합니다.
다윗은 시139:24절에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잘못된 길로 가려고 하거든 바른 길로 인도해 달라고 하는 간구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을 모두 천사로 압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다 속 사람이 있습니다. 죄악의 쓴 뿌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모두 내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런 것들을 내어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바로 주의 말씀으로 내어쫓을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모두 다 드러나게 됩니다.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 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등...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갈5:19-21).
마치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한줄기의 빛은 모든 어두움을 내어쫓듯이, 주의 말씀은 못된 속 사람을 다 내어쫓습니다.
시119: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믿겠다고 고백하고 다짐하면, 진리가 있는 곳에 악은 물러갑니다. /할/
②주님과 자꾸 만나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이성교제에 성공을 거두는 비결은 자꾸 만나는 것입니다. 자꾸 재어보고 달아보면 안됩니다.
예수를 믿는 성도들도 자꾸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심령에 주님을 영접하게 되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닮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자주 만나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 모임에 자주 나오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라면 자꾸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면서, 성경을 보면서, 설교 말씀을 들으면서도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닮아 갑니다.
부부는 서로 닮아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랫동안 같이 사니까 점점 닮아 가는 것입니다.
▶저는 초대교회 때 예수의 마음을 품은 한 집사님을 소개하고 마치려고 합니다.
한국교회 100년 역사에서 자랑스러운 한 여종이 있습니다. 그 여종이 '백선행' 집사님입니다. 그는 16세에 자식도 하나 없이 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안 먹고, 안 쓰고, 삯바느질하여 번 돈으로 재봉틀을 사서 방직을 하여 200냥을 벌었습니다.
200냥을 벌어놓고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 시아버지, 남편 좋은 양지바른 곳에 무덤을 써서 잘 모실 수 있는 선산을 사야지' 하고는 모은 돈 200냥으로 선산을 구입하려고 먼 친척 뻘 되는 사람에게 산을 사달라고 했더니 대동강변에 있는 산을 하나 사 주었습니다.
산 문서를 받아 쥔 백 과부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남편의 무덤을 이장하려고 산 구경을 가보니 이것은 산이 아니라 나무하나 살 수 없는 바위산이었습니다. 한마디로 사기를 당한 것입니다. 그는 너무나 크게 실망하였으나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 있으려니 하고 감사를 드렸다고 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이 이 산을 샀더라면 그가 망할 것인데 이 손해를 나에게 돌리시니 감사합니다."
백선행 집사는 예수님 마음으로 이 일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일로 백 과부는 망했다는 소문이 평양에 자자했습니다.
그 후에 일본 사람들이 대동강에 다리를 놓으려고 계획하고 시멘트 공장을 세우려고 석회암 지질조사를 하던 중 대동강에 있는 석회암산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주인을 찾으니 백선행 집사의 땅이었습니다.
기업주 '오노타'는 소개인을 넣어 300냥에 산을 팔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백선행 집사는 팔지 않는다고 거절을 했습니다. 거절하므로 더 받으려는 줄 알고 나중에는 일백 냥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거절하자 나중에는 오천 냥을 준다고 했는데 또 거절했습니다.
"이 산은 절대로 팔 수 없으니 절대로 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백과부가 석회암이라는 것을 알고 배짱을 부리는 줄 알고 산값의 백 배인 2만냥을 준다고 했습니다. 또 거절했습니다.
드디어 일본 사람은 백 집사가 목사님 말씀은 잘 듣는다는 얘기를 듣고 도지사를 동원하여 백과부가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에게 설득하도록 했습니다.
목사님은 심방을 하여 산을 팔지 않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때 백 선행 집사는 "목사님,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이백 냥에 이 산을 사 가지고 사람들이 나더러 망했다고 하는데 이 산을 이만 냥에 사간다면 그 사람은 망할게 뻔한데 그 사람이 망하는 것을 어떻게 봅니까? 믿는 내 양심으로는 나 혼자 망하고 말지 다른 사람 망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자초지종을 말해주자 목사님으로부터 자기 산이 석회암 산임을 알고 이만 냥에 산을 팔았습니다.
그는 그 재산으로 교회를 짓고, 학교를 세우고, 기독교 회관 건물을 짓고, 평양신학교 재단 설립에 예산을 바쳤습니다. 그가 이 세상을 떠날 때 사회 장을 치렀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한 집사를 위해서 사회 장을 치른 예는 없었습니다.
예수님 마음을 품고 착한 마음으로 남에게 유익을 주려고 자기를 비우고 선하게 살았기에 후대에 그 이름을 '선행'이라 지어 불렀습니다. /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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