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는 하나님! (욥 5:17-20)
욥5:7절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인간이 있는 곳에 고난의 문제는 그림자처럼 피할 수 없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당 동에 김정순이라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남편은 크게 사업을 하고 있었으며, 그 집안은 경제적으로도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풍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욕심이 생겼습니다. 더 많이 모아서 행세하고 싶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남편을 졸라서 명동에다 고급 음식점을 내고, 충무로 에다가 고급 미장원을 계약했습니다.
그런데 명동에 계약한 건물이 사기꾼에게 이중 계약에 걸려서 몽땅 손해를 봤습니다. 미장원을 하면서 명동에 나가는 고급 마담들과 사귀면서 고스톱에 손을 댔고, 술과 향락에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이 여자는 술 잘 먹고, 놀기 좋아하는 뱃심 좋은 여자로 탈바꿈이 되었습니다. 돈 이 붙틀만한 사업이라면 무조건 덤벼들고 즉흥적으로 처리해버리는 기분파여자였습니다.
이런 여자에게 고난의 밤이 찾아왔습니다. 세상 적인 쾌락에 젖어 세월 가는지 모르고 지내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식욕이 없어지고 하체의 뼈마디가 끊겨지는 지독한 통증이 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병원에 가보니 자궁암이라는 엄청난 진단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토록 잘 되던 남편의 사업이 부도가 나버리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그만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루아침에 안녕이라더니 너무 엄청난 고난이 그 여인에게 다가온 것입니다.
빚쟁이들에게 모든 재산을 빼앗겨 버리고 건물 3층에 있는 교회의 종탑 옆 월세 방으로 나 앉게 되고 말았습니다.
고3때까지만 해도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잘 했던 이 여자는 세상 향락과 물질에 취해 하나님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다가 이러한 인생의 캄캄한 고난의 밤을 맞게 된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기가 막히고 처량합니다. 잠은 안 오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을 때, 교회에서 들려오는 찬송가소리에 정신이 바짝 났습니다.
'어서 돌아오오! 어서 돌아오오! 지은 죄가 아무리 무겁고 크기로 주 어찌 못 담당하고 못 받으시리요! 우리 주의 넓은 가슴은 하늘 보다 넓고 넓어' 317장의 찬송이 들렸습니다.
그 여인은 그 길로 교회 문을 박차고 들어가 무릎 꿇고 자복하고 하나님께 회개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남편을 설득하고 함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밤마다 두 부부가 철야기도 드리고 매달리기 시작한 지 8개월이 지나가던 어느 날 "너희를 다시 일으켜 세우리니 다시는 세상으로 가지말고 나의 일을 하라"는 부드러우면서도 준엄하게 꾸짖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는 너무 기뻐서 먼저 병원으로 가 진찰해 보았습니다. 의사가 고개를 가우뚱 하면서 "이상한 일이네! 암세포가 다 말라져 버렸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할/
자궁암의 치료는 물론 전에 고생하던 디스크와 위장병까지도 다 치료해 주셨습니다. 아들도 휴우증 없이 다 고침을 받았을 뿐 아니라 남편도 전에 함께 사업하던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다시 사업을 일으켰으며, 지금은 두 부부가 열심히 하나님께 충성하며 어려운 개척교회 여러 군데를 매월 물질로 돕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갈릴리 선교회' 총무 일도 보면서 사명도 감당하고 있다는 간증을 월간지에 실었습니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도 깨닫고 바로 서면 싸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 ◀제목소개!▶
확실히 고난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고난의 과정을 지내 놓고 보면 고통에는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고난의 문제가 닥쳐오더라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감정에 사로잡히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고난은 누구에게나 옵니다.
저는 오늘 고난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솔로몬은 전7:14절에서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전도자의 말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은 항상 행복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항상 불행한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 기쁨과 고통이 항상 인생살이에 함께 찾아다닌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의 괴로움은 어떤 특정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보편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갓난아이가 태어날 때, '으앙!' 하고 우는 것은 인생이 그만큼 괴롭기 때문에 울기부터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인생이란 물면서 왔다가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가야하는 괴로운 존재입니다. 간혹 '저렇게 잘 사는 사람에게도 무슨 고민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내면에 들어다보면 말할 수 없는 인생의 괴로움을 안고 씨름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때로는 '10년 전이 좋았어! 옛날이 좋았네' 하며 지난 일을 생각합니다. 그만큼 지금의 형편이 나쁘고, 고통스럽고, 괴롭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형편도, 환경도, 조건도, 하나님 앞에서는 안 통하는 것이 없습니다. /믿어집니까?/
1. 오늘 본문의 주인공 욥을 한번 연구해 봅시다.
욥은 우스라는 마을에서 아들 칠 형제와 딸 셋을 잘 키웠습니다. 또한 재산도 얼마나 많은지 지금 재벌 급에 속하는 그런 위인이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곱고 정직해서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동방의 의인이요, 큰 자라고 불렸습니다.
욥1:1절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욥은 참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는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욥에게 하루아침에 무서운 재난이 그 가정을 덮쳤습니다. 마치 순풍이 역경으로 바뀌고 낮이 밤으로 바뀌듯 욥은 갑자기 10가지의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①자녀로 인한 고난을 당합니다. 10남매가 큰형 집에서 생일 파티를 하다가 광풍에 집이 무너져 모두가 압사 당했습니다. 욥은 하루아침에 모든 자식을 잃어버렸습니다.
②물질적인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 많은 재산을 스바 사람, 갈대아 사람들이 와서 몽땅 노략질해 갔습니다.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③육신적인 고난을 당했습니다. 욥의 몸에는 설상가상으로 악창이 나서 구더기가 기어 다녔습니다. 살점이 시커멓게 되어 떨어져 나가고 고름이 어찌나 흐르던지 잿더미에 앉아 고름을 빨아내야만 했습니다.
④친척들로 인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욥19:13-14절 "나의 형제들로 나를 멀리 떠나게 하시니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게 외인이 되었구나 내 친척은 나를 버리며 가까운 친구는 나를 잊었구나" 친척들이 모두 남이 되었습니다.
⑤아내로 인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당신이 믿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저주하고 죽어버리라고 악담을 하고 조강지처는 떠나가 버렸습니다(욥2:9).
⑥친구들로 인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친구들도 모두 욥을 떠나버렸습니다. 돈 있을 때, 친구지 돈이 떠나니 친구도 떠나 버립니다.
⑦종들로 인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물질이 사라지니 종들의 순종도 사라졌습니다. 욥19:15-16절 "내 집에 우거한 자와 내 계집종들은 나를 외인으로 여기니 내가 그들 앞에서 타국 사람이 되었구나 내가 내 종을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니 내 입으로 그에게 청하여야 하겠구나"
⑧동네 꼬마들로 인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욥19:18절 "어린 아이들이라도 나를 업신여기고 내가 일어나면 나를 조롱하는구나"
⑨사단으로 인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사단은 어떻게 하는지 욥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배반하도록 걸프전의 융단 포격처럼, 이락크 전의 미사일처럼 집요한 공격을 가해옵니다.
⑩하나님으로 인한 고난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욥에게 나타나 주시지 않았습니다. 거지요, 병자요, 홀아비 된 비참한 욥에게 하나님께서도 침묵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욥은 한탄하고 있었습니다.
욥23:8-9절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지금 욥은 어디를 보아도 고난 투성입니다. 폭설이 내린 날이면 어디를 봐도 눈인 것처럼 욥의 위를 보아도 고난이요, 밑을 보아도 고난이요, 양 옆을 봐도 고난이요 어디를 봐도 고난, 고통입니다.
2. 여기서 우리가 중요한 욥의 신앙을 배우고 넘어가야 합니다.
욥에게 닥친 그 큰 환난 앞에서 욥이 보여준 믿음의 태도는 놀랍습니다. 욥은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욥1:20절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며"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드린 신앙입니다.
욥1:21절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그 와중에도 여호와의 이름으로 찬송하는 신앙입니다.
욥1:22절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어리석게 원망하지 아니하니라" ▶범죄치 아니했고, 원망하지 않는 신앙입니다.
▶또 온몸에 악창이 나서 고통 중에 있는 욥을 그 아내가 저주 할 때에도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했다"(욥2:10)고 했습니다.
▶욥과 같은 신앙의 절개를 가지면 지금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곤경을 돌이켜 주십니다.
욥42:10절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독일에 이런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농부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번 여름에 햇빛을 많이 주셔서 농사가 잘 되게 해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기도대로 햇빛을 많이 주셨습니다. 그런데 쭉정이들만 생겼습니다. 그래서 농부는 항의를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나는 잘못 없다. 네가 요구한 햇빛을 나는 충분히 주었다" 농부는 외쳤습니다.
"그런데 왜 농사는 망쳤습니까?" 하나님은 대답하셨습니다. "넌 햇빛만 구하였지 찬 서리는 구하지 않았다. 서리가 없으면 곡식은 영글지 않는단다" 그렇습니다. 고난은 양념이 아니라 소금입니다. 고난은 악세사리가 아니라 삶의 내용입니다.
3. 고난, 고통, 역경, 시험, 이런 것들이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한마디로 에덴에서 아담이 하나님께 범죄 한 후 인간들에게 고통이 온 것입니다. 죄 때문에 고통이 온 것입니다.
⑴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을 가져야 했고, ⑵남자는 이마에 땀을 흘려야 하는 수고의 고통을 당해야 했으며 둘 다 병의 고통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①고통에는 4가지가 있습니다.
⑴일시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가끔 고통스러운 일이 생깁니다. 그런데 일시적으로 잠시 왔다가 가는 고통이 있습니다. 다니엘은 일시적으로 사자 굴에 들어갔다 나오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요나는 3일 고기 뱃속에 들어가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시적인 고통입니다. 히스기야도 일시적으로 병에 걸려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기도하다가 응답 받는 일이 있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 욥은 욥5:7절에서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낫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고 탄식했습니다.
▶이는 두 가지의 고난의 성격을 말해줍니다. 첫째는 고난의 보편성입니다. 사람에게 고난을 당하는 것, 감옥에 있을 때나, 궁중에서 살아갈 때나 고난은 그림자처럼 따라다닙니다.
두 번째는 고난의 확실성입니다. 불티가 위로 날아다니는 것은 자연법칙입니다. 누구에게나 어디에나 고난은 확실하게 따르게 됩니다.
▶고통이 없는 곳은 딱 한 곳 무덤뿐입니다. ▶한 사람이 우거지상을 하고 뉴욕거리를 지나가다가 '노만 핀센트 필'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반가운 듯이 그는 "목사님! 죽겠어요! 문제 넘어 문제, 하나 해결하면 또 문제가 태산 같아요. 문제없는 곳은 없는지요?" 목사님은 "있지, 그곳에 가고 싶은가?" 그 사람은 반색을 하며 "목사님 그런 곳이 있다면 당장 나를 보내주세요" 목사님은 정색을 하며 "저 넘어 공동묘지가 있지, 거기엔 전혀 문제가 없다네, 죽은 사람에게는 문제가 없어,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지"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불티가 위로 날듯이 고통은 따라다니게 되어있습니다.
⑵장기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고통이 몇 일, 몇 달, 또는 몇 년 지속되다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계속되는 고난도 있습니다.
열두 해 혈루증으로 앓고 있던 여인의 고통은 장기적인 고난입니다. 38년 된 병자의 고통도 장기적입니다. 욥의 고난도, 요셉의 시련도 장기적인 고통이었습니다. 문제가 좀처럼 떠나지 않았습니다.
장기적으로 하나님께서 고통을 주시는 대는 하나님께서 훈련을 시켜서 쓰시려고 고통의 기간을 정하여 놓으신 기간입니다. 군대기간과 같이 정해진 기간에는 아무리 기도하여도 하나님은 참고 계십니다.
욥의 고난이 그러합니다. 욥을 귀의 믿음에서 눈의 믿음으로 훈련시키고 싶으신 하나님의 계획이셨습니다. 고난을 마친 욥은 욥42:5절에서 고백하기를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할/
여러분! 귀로만 듣는 신앙하고, 눈으로 직접 보는 신앙하고는 그 차이가 큽니다. 그렇습니다. 장기적인 고통에는 훈련의 의미가 있습니다.
⑶일생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나사로가 죽을 때까지 거지로,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가 버린 부스러기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가난의 고통이 일생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가시와 같은 병에 걸렸습니다. 그 병을 고쳐달라고 세 번씩이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시면서 안 고쳐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일생을 그 병을 안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병 때문에 죽지는 않았습니다. 로마에서 순교하기까지 의사인 누가를 하나님이 붙여주셔서 같이 위로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일생적 고통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나 고통을 일생 간직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남편이 일생 속을 썩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몸의 한 부분이 일찍 없어져 한평생 불편하게 살아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⑷영적인 고통이 있습니다.
이런 고통은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일시적인 고통도 아니요, 장기적인 고통도 아니요, 일생적인 고통도 아닌 영원한 고통이 성경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히 고통 당하는 무시무시한 고통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한 사람들이 저 세상에서 당하는 지옥 불의 고통입니다.
마25:46절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요3:18절에 "예수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나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대에 올라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지옥이라는 말이 55번이나 나옵니다. 헬라의 청년들은 명절에 춤을 추며 놀 때, 많은 촛불을 피워 그 위에 철판을 놓고, 그 철판 위에 곰 한 마리를 올려놓습니다. 철판이 뜨거워짐에 따라 곰이 야단입니다. 청년들은 '인생은 저런 것이다'라며 손뼉을 치며 춤을 춘답니다.
그러다가 곰이 너무 뜨거워지니까 철판 위를 빙빙 돌다가 거품을 흘리며 혀를 한 자나 쑥 빼고 죽습니다. 그러면 청년들이 '와 인생도 저렇게 가는 것이야!' 외치며 춤을 춘답니다. 범죄한 인생이 지옥에 가서 고통 당하는 모습을 상기시키는 놀이랍니다.
②지옥의 고통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⑴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입니다.
막9:43절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웨슬러'는 '당신의 손가락을 뜨거운 불 속에 1초만 넣어 보아라! 견딜 수 없으리라, 그러나 지옥은 더 뜨거운 불에서 더 큰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⑵구더기가 우글거리는 곳입니다.
막9:48절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무신론 철학자인 '볼테르'는 "100년 후에는 성경이 없어진다"고 거짓 예언한 사람입니다. 그가 병원에서 죽어갈 때, "나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버림을 당했구나! 의사여 나를 6개월만 더 살게 해 주세요! 그러면 내 재산의 반을 주겠소!" 사정하면서 죽어갔습니다.
그가 최후의 숨이 넘어갈 때, 발로 벽을 차면서 "저 지옥 불을 보라"고 하면서 벌벌 떨면서 "나는 지옥으로 가는 구나!" 외치며 죽었답니다.
⑶지옥은 너무 고통스러워 이를 가는 곳입니다.
마13:42절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성경은 지옥을 표현합니다. 고통스러워 이를 갈기는 하지만 마귀에게 속은 것이 원통하고 분하여 이를 갈기도 한답니다.
⑷지옥은 어두운 곳입니다.
마8:12절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어두움은 무서움과 괴로움과 답답한 곳입니다.
고통에는 일시적인 고통, 장기적인 고통, 일생적인 고통, 영적인(영원한) 고통이 있습니다.
③왜 이런 고난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실까요? 고난 속에 하나님의 섭리와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⑴주어진 고통은 더 큰 고통을 막는 수단입니다.
미국 전쟁 시 '버나드 길핀'이라는 병사가 도망가다가 넘어져 다리가 부러져 주저앉았습니다. 그 순간 뒤쫓아오던 적군이 총을 쏘자 총알이 바로 머리 위로 날아갔습니다. 그래서 다리가 부러진 덕에 생명을 건진 것입니다.
한 성도가 고속도로 중간에서 차가 고장나서 짜증내며 고쳐 가지고 떠났습니다. 얼마 가다보니 바로 앞서 가던 차가 6중 충돌이 일어나 모두 죽거나 부상당한 채 있었습니다. 주어진 고통은 더 큰 고통을 막아주려는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믿어지면 아멘!/
⑵고통 속에는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최수동 목사님은 사우디에서 사고로 두 다리를 잃어버렸습니다. 일생 그렇게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두 다리가 없는 사람의 불편을 깨닫고 그들을 위해 살겠다고 '두 다리 선교회'를 만들어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천우 목사님은 거지였습니다. 그는 목사가 되어 '거지 선교회'를 만들어 거지들만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오왕진 목사님은 감옥에서 오랜 고생을 했습니다. 그는 감옥의 아픔을 알기에 '오네시모 선교회'를 만들어 교도소 선교에 열심입니다.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십니다.
⑶고통은 인간을 완성시킵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고난은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반성하게 합니다. 깨닫게 합니다. 후회하게 합니다. 그래서 결단하게 합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지!" 다짐하게 됩니다.
뜨거운 용광로를 통해서 쇠가 완성되듯이 인생은 고난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요셉을 보세요! 그는 17세에 국무총리가 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이뤄지기까지는 형들의 미움을 받는 아픔을 당합니다. 종살이의 쓰라림이 있습니다. 억울하게 감옥까지 가게 됩니다. 요셉은 이러한 고난의 자리를 통하여 영광에 자리까지 오게 됩니다.
▶스위스는 산악으로 이루어진 나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많은 강국 사이에 끼어 있는 악조건의 나라입니다. 번영은커녕 제대로 생존하기조차 어려운 나라입니다. 그러나 소를 길러 우유와 버터 그리고 치즈를 만들어 팔았습니다. 양을 길러 우수한 양모 생산국이 되었습니다. 섬세한 기계를 만들고 정밀한 시계의 대명사 국가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유럽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가 되었고 세계적으로 가장 평화로운 나라로 손꼽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악조건을, 역경을 활용해야 합니다.
▶'죤스 프레빌'은 "인간의 한계 상황은 하나님의 기회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려울 때 어려운 일에 맞는 능력을 반드시 주십니다. 그래서 심리학에 "비상능력" 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역경은 축복의 싸인입니다.
본문의 욥도 10가지의 역경을 당하고 있지만,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욥23:10절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할/
욥은 10가지의 역경을 인생의 정금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고백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욥은 드디어 정금같이 되었습니다.
욥42:5절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깨닫고 난 뒤 욥은 물질적으로도 두 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욥42:10절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⑷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역경은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입니다. 역경의 장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모세는 홍해라는 역경 앞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요나는 고래 뱃속이라는 역경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고난이 무엇이며, 문제가 무엇입니까? 고난! 두려워 마십시오! 지금이 하나님을 만나는 찰나적인 순간입니다.
사람들은 무엇이 잘 되어 가면 안일주의, 교만, 향락주의로 빠져가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대로 가는 백성을 다시 돌이키는 방법으로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문제를 바로 깨닫기만 하면 오히려 어떠한 고난도 역경도 축복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믿/
⑸한 마디로 고난은 축복입니다. 본문을 봅시다.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 시나니"
여러분! 어느 부분이 아픕니까? 어느 부분이 상했습니까? 어떤 사람은 가정이 아프고 상한 가정이라고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장이, 아니면 자녀들이 아프고 상해서 고통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염려 마십시오. 먼저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달으십시오, 자신의 신앙의 위치를 정검 하십시오, 다시 한번 결단하십시오, "나 이제 주를 위해 살리라!" 말로만이 아닌 진짜 행함으로 나아가 보십시오! 하나님은 깨닫고 하나님의 품으로 오기만 하면 싸매시는 작업, 고치시는 작업에 명수이십니다. /믿/
여러분! 여섯 번 넘어졌습니까? 아니면 이번이 일곱 번째 고난의 자립니까? 아무 염려 마십시오, 뜻을 돌이키십시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것이 분명히 선으로 바꾸어집니다'. /할/
▶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도 그 손으로 고쳐주십니다. ▶어떤 자매님은 애를 낳다가 그 해산의 아픔 속에서 '우리 주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 얼마나 아프셨을까?' 처음으로 주님의 아픔을 생각하며 은혜를 받았다고 합니다. 문제와 아픔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평안과 오락과 세상 속에서는 우리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⑹성경은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17절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 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견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
그렇다면 잿구덩이의 아픔 속에서 앉아 있는 욥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복된 은혜에 앉아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징계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징계의 출처는 하나님이십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은 결코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여기 징계란 채찍의 의미입니다. 채찍은 더 잘하라고, 더 잘 달리라고 가하는 것입니다. '여섯 가지 환난, 일곱 가지 환난'이라는 말은 '겹치는 환난, 끝없이 다가오는 환난'을 말합니다. 19절에서는 '재앙'이라고 했습니다. 이 재앙은 인간의 힘으로 방어하거나 고치거나 전혀 손을 될 수 없는 속수무책의 성질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하실 수 있습니다.
속담에 '병 주고 약 준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녀에게 환난도 주시고, 축복도 주십니다.
4. 고난의 주인공인 욥의 결론은 무엇인가?(욥42:10-17)
욥은 물질적 축복을 두 배나, 자녀의 축복을 다시, 명예의 축복과 장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영적인 축복은 더더욱 받았습니다. 환난의 징계를 받고 있을 때,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욥은 직접 체험했습니다. 깊은 회개의 은총을 새롭게 체험했습니다. 차원 높은 영감의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욥42:10절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라고 하였고 12절에 "여호와께서 욥의 모년에 복을 주사 처음 복보다 더하게 하시니...."
모년이란 말은 '뒤에 또는 나중'이라는 말로 욥의 시련이 끝이 나고 결국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욥이 받은 복이 무엇인가?
⑴곤경을 돌이키시는 축복입니다(욥42:10).
'곤경을 돌이키시고'란 히브리어로 '취소하다'란 뜻입니다. 모든 고난이 취소되었습니다.
⑵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욥의 회개를 기뻐 받으셨고 욥의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⑶모든 인간관계를 회복시키는 축복입니다.
욥42:11절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및 전에 알던 자들이 다 와서 그 집에서 그와 함께 식물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금 한 조각과 금고리 하나씩 주었더라"
⑷많은 재산의 축복입니다. '그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⑸가정이 회복되는 축복입니다.
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 할지라도 가정이 없다면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욥42:13절 "또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낳았으며" 그런데 그 딸들이 보통 딸들이 아닙니다.
욥42:15절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 아비가 그들에게 그 오라비처럼 산업을 주었더라" 여러분! 미스 코리아의 영광을 아시지요!
⑹노년건강과 장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욥42:16-17절 "그 후에 욥이 일백 사십 년을 살며 아들과 손자 사대를 보았고 나이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을 행하시고, 성취하시는 하나님! (렘 33:1-9) (0) | 2022.02.04 |
---|---|
영원한 의사! 예수! (마 9:1-8) (0) | 2022.02.04 |
놋 뱀을 쳐다본즉 살리라! (민 21:4-9) (0) | 2022.02.04 |
여호와의 성일은 존귀한 날이라! (사 58:13-14) (0) | 2022.02.04 |
믿음의 본질을 바로 알자! (히 11:1-3) (0) | 2022.02.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