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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마 6:5-15)

by 【고동엽】 2022. 2. 4.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마 6:5-15)

 

▶웰즈라는 사람이 <대주교의 죽음>이라는 단편 책을 썼습니다. 대주교는 날마다 습관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날도 성전에서 늘 똑같은 기도의 제목으로 기도하고 있는 그 순간 하늘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여왔습니다. "오냐 대주교야 내가 너의 기도에 응답하리라"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순간 그는 깜짝 놀라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셨군요” 한 마디를 남기고 심장 마비를 일으켜 대주교는 엎어져 죽고 말았답니다.
확신이 없는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신앙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입니다.
▶그 반대 이야기 하나 드립니다. 프랑스의 애국 소녀 잔다크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어느 날 기도할 때, 하나님의 또렷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잔 다크야! 백년 전쟁으로 영국에게 짓밟힌 조국을 네가 구하라"는 음성이었습니다. 너무나 분명하고 정확했습니다. 그는 감격했습니다. 그는 확신을 가지고 1429년 국왕 샤르 7세를 만나러 갔습니다. 하찮은 소녀가 국왕을 만나자고 할 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웃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자세는 너무나 진지했고, 조국을 구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여 누구도 말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와 이야기를 해본 사람들은 그의 믿음에 다 놀랐습니다. 그래서 국왕을 만나게 해 주었습니다. 잔 다크는 어린 무명의 소녀로서 국왕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국왕은 "왕인 나도 하나님의 음성을 못 들었는데 건방지게 네가 들었다는 말이냐? 도저히 믿지 못 하겠다"며 그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그 때 잔다크는 조용히 국왕에게 말하기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하나님처럼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만 그의 음성을 들여 주신답니다!
결국 왕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린 잔 다크에게 군사 6,000명을 주었습니다.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잔 다크는 6,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영국군을 대파하고 풍전등화 위기 속에 있는 그의 조국을 구한 구국공신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오늘도 하나님은 응답을 주십니다.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면 인생이 변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그분의 음성을 사모하며 살아야 합니다. 오늘 주제는 기도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비결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헌신생활을 통해서 가까워질 수도 있고, 봉헌생활을 통해서 가까워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생활입니다. 기도생활은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팔복을 가르치신 이후에 기도에 대하여 가르치고 계십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이 그 유명한 “주기도문”입니다. 주기도문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모범적인 기도문”이라는 뜻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내 마음을 내놓고 보고하고 상의하고 호소하고 간구하는 시간입니다. 기도는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특히 현대인들에게는 마음속에 쌓여 있는 것들이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많고 호소하고 싶은 말도 많습니다. 얼마나 스트레스 받을 일들이 많습니까? 이것들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이것들이 큰 병이 될 수도 있고 마음을 상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우리들이 기도할 자격이 있다는 말이요, 기도하면 들어주시겠다는 약속이 전제된 것입니다.

1.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이 말씀 속에 몇 가지 진리가 들어 있습니다.

 

①세상을 생각하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생각하며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사람다운 것은 생각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생각하면서 살면 실수나 사고가 적어집니다. 어떻게 보면 모두들 생각 없이 살기 때문에 자꾸만 사고가 일어나고 사건이 일어납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래도 생각하며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농사를 짓다가 비가 오지 않으면, 또 비가 너무 많이 와 피해가 나면 사람들은 먼저 하늘을 바라보고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런 생각들이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늘과 무관한 생활들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이 잘되면 모두 내 공로로 돌려버립니다. 모두 내가 잘해서, 내가 능력이 있어서 잘된 줄로 알고 우쭐합니다. 그리고 일이 잘 안 되면 모두 남의 탓이고 환경 탓입니다. 그래서 원망을 하고 불평부터 합니다. 모두 생각 없이 살아서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인생을 살면서 잘 생각해 보고 행동하라는 명령입니다. 생각이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무엇을 생각하느냐에 따라 행동의 옷으로 나타납니다. 생각은 말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인생을 바꿉니다.
신앙생활도 생각하는 삶입니다. 이 일이 내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인가? 슬프게 하는 것인가? 이 말이, 이 행동이 하나님이 보시고, 부모님이 보시고, 이웃이 보고 기쁘게 하는 것인가? 슬프게 하는 것인가를 한번 생각해 보면 성숙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양심 없이 행동합니까? 불법을 행합니까? 범죄를 저지릅니까? 생각 없이 살기 때문입니다.
시77:12절 “또 주의 모든 일을 묵상하며 주의 행사를 깊이 생각하리이다”
잠15:28절 “의인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잠23:7절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전7:14절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②하늘의 소리를 들으며 살라!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하늘의 소리를 듣고 살아야 합니다. 이 하늘의 소리는 조용히 엎드려야만 들립니다. 엎드려서 깊이 묵상을 하면 내 속에서 이 음성이 들려옵니다.
양심을 통해서 들리고 마음을 통해서 들리고 생각을 통해서 들려옵니다. 이 소리를 듣고 살아야 그 사람이 올바른 신앙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이렇게 조용히 엎드리는 시간이 없으면 하루 종일 세속의 소리만 듣게 됩니다. 세속의 소리만 듣다 보면 생활이 짜증스럽습니다.
오늘 신문을 보고 TV를 보십시오. 전부 짜증나는 소리만 들리지 않습니까? 매일같이 부정부패 뉴스만 들리고, 누가 뇌물을 받고 구속되었다느니, 무슨 사고가 터지고, 강도당하고, 교통사고로 죽고, 집이 무너지고 그런 소리만 듣게 됩니다.
이제는 뉴스를 듣기도 싫고 신문도 보기가 싫어집니다. 거기 어디에 신앙적인 소리 한마디라도 나오고 소망적인 말 한마디라도 있습니까?
사람이 이런 소리만 자꾸 듣고 살다보면 인성이 파괴되어 “될 대로 되라”는 식이 되고 맙니다. 그만큼 인성이 파괴되었다는 말이요, 자포자기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음이 삐뚤어져서 싸우고 파괴하고 사고를 치고 막 살아가는 막가파가 생기는 것입니다.
누가 2억을 받았다, 5억을 받았다 하니까 몇 천만 원 받은 사람은 “나 같은 사람이야”하고 생각해 버립니다. 그러다 보니 뇌물에 대해 무디어지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니까 이 나라가 뇌물 천국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람이 기도하고 묵상하고 엎드리면 인간의 소리가 아니고 하늘의 소리를 듣게 됩니다.
이렇게 묵상 생활을 하다 보면, 먼저 자기를 보게 되고 자신을 살피게 됩니다. 그러다가 회개가 터져 나오게 되고, 내가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를 맺으면, 거기서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힘을 받게 됩니다. 이 힘을 능력이라고도 말하고, 은혜라고도 말합니다.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이 힘을 입고 살아야 합니다.
<웨슬리>는 그런 삶을 가리켜서 “성화의 삶”이라고 했고, <루터>는 그런 삶을 가리켜서 “영성의 생활”이라고 했습니다. 이것들은 모두 기도하는 삶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③하나님과 화목을 위해 기도하라!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는 생활입니다. 그래서 욥22:21절을 보면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고 했습니다.
화목이 복입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이 화목을 유지하고 살아야 합니다. 가정도, 부부 사이도, 형제간에도, 성도 간에도 이 화목이 최고의 복입니다.
그런데 화목을 유지하려면 자주 찾아가야 하고, 자주 만나야 합니다. 부모도 자주 찾아가지 않으면 멀어지기 쉽습니다. 자주 찾아가야 관계가 돈독해집니다. 형제도 멀리 떨어져 살면 남만도 못합니다. 어떤 때는 친구가 형제보다 훨씬 좋을 때가 있습니다. 이웃이 사촌보다 훨씬 좋습니다. 그것은 가까이 자주 만나고 친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도 자주 찾아가지 않으면 멀어지기 쉽습니다. 여기서 접촉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주 접촉하여야 좋은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자주 찾아가서 만나야 합니다.
자주 만나면 가까워지고 정들고 이해가 깊어지고 사랑을 입게 됩니다. 이것이 접촉이 주는 축복입니다.
▶어떤 어머니가 실수를 해서 감옥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어린아이도 같이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고 잘 자라더랍니다. 그곳은 어머니가 생각할 때 감옥이지 아이에게는 그곳에 어머니의 품이 있는 한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 안에 살면서 하나님의 체온을 느끼고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당부하기를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가장 가깝게 관계를 이루면서 사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2. 어떻게 기도할 것인가?(5-8) ▶몇 가지 기도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①외식하는 자 즉 바리새인들처럼 하지 말라!(5)
바리새인들은 하루에 세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를 했고 그리고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러 가는 도중에도 큰 길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할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에게보다는 옆에서 보는 사람들을 의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즉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거룩하게 보이고, 위대하게 보이기 위함이었습니다.
이 모습을 예수님은 눅18:10-13절에서 자세히 설명해 주십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중요한 것은 주님의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1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여러분! 우리가 거룩하게 기도하면서도 죄를 지을 수 있고, 성경을 가르치고 선을 행하며 구제와 봉사를 하면서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즉 우리가 행한 이 모든 선한 행위에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의식했다면 그것은 위선이요, 교만일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너무나 자기를 좋아했던 사람들이요, 자기 신앙에 자기가 도취되었던 사람들이요, 자기 이상으로 하나님 잘 믿는 사람이 없다고 자만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이 회당 어귀에서 기도하거나 큰 거리에 서서 기도할 때 사람에게 보이려고 했더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②네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6)
이 말은 산 기도를 가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들에 신앙 방종파들이 은둔해 있었고, 그리고 산 속에 있는 굴에 금욕주의자들이 모여서 은둔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은둔생활이나 방종생활은 신앙인의 정상적인 생활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무엇보다도 생활이 건전해야 합니다. 방종파나 금욕주의자들은 한결같이 그 생활이 한편으로 치우쳐 있습니다. 이를테면 왜곡된 신앙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이 들에 가고 산으로 가면 그들에게 물들까 봐 주님은 골방으로 가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네 골방에 들어가서 기도하라!”이 말은 반드시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을 의식하고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감동을 주기 위한 기도나 자기의 기도를 자랑하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골방에 들어간다는 뜻은 나와 하나님만이 있는 것을 뜻합니다.
즉 무슨 기도를 하든지 기도할 때에는 하나님만 생각하며 기도하는 것을 하나님이 들으신다는 뜻입니다.

③“문을 닫고 기도하라!”
이 말은 진지하게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진지한 기도는 사람이 많이 모인 곳에서는 할 수가 없습니다.
데이트하는 남녀들을 보면 시끄러운 곳은 찾아가지 않습니다. 조용한 곳을 찾아가서 둘만이 앉아서 대화를 합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한나라는 여인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나에게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같이 성전에 들어가서 아이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니 그 기도가 얼마나 진지하고 간절했겠습니까?
제사장 엘리가 가만히 보니까 한나가 기도를 하는데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는데 음성은 들리지 않고 입술만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는 한나가 술에 취한 줄 알았다고 했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소리가 필요 없습니다. 말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마음의 소리를 들으시고 고요한 영혼의 소리를 들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골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또 골방에 들어갈 때 문을 닫으라고 하신 것은 사람들이 골방에 들어가 기도를 하면서도 자기가 골방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이러한 유혹을 끊어 버리라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며, 우리의 신앙적인 행위를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싶어 하는 간사한 마음을 지적하신 말씀입니다.

④“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
이것은 기도의 대상을 분명히 가르쳐 주신 말씀입니다. 너희는 기도하되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정감 넘치는 말씀입니까? 주기도문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 하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우리 아버지” 얼마나 부드러운 단어입니까?
어떤 아들이 식사 때마다 가족을 대표해서 혼자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의 아버지가 기도한다고 하면서 “하나님 형님이시여” 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놀라서 “아버지 무슨 형님입니까?” 하고 물으니까 아버지는 당연하다는 듯이 “너는 촌수도 모르느냐, 네게 하나님 아버지면 나에게는 하나님 형님이지 않느냐”고 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여”하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⑤“중언부언하지 말라!”
중언부언이라는 말은 “이미 한 말을 또 되풀이하는 말”입니다. 말하자면 준비 없이 기도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대표 기도할 때 준비가 없으면 중언부언하게 됩니다. 한 말 또 하고 자꾸 되풀이합니다.
그러면 듣는 사람들이 은혜가 안 됩니다. 성의가 없어 보입니다. 준비 없는 것이 금방 표가 납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는 얼마나 큰 실례가 되는 일입니까?
기도에는 무엇보다도 진지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기도 속에는 생명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중언부언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또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말은 ‘불교에서 염불하는 것과 가톨릭에서 반복하여 외우는 기도문도 비슷한 속성으로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도 그와 비슷한 위험성 있는 기도문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 생각 없이 습관적으로 외우는 주기도문입니다. 잘못 사용하면 주님이 가르쳐주신 그 귀한 기도문을 이방인들의 중언부언하는 기도수준으로 전락시키게 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특별히 이방인들의 중언부언의 기도는 기도의 내용인 질보다는 기도를 얼마나 많이 했는가의 양이 중요합니다. 기도는 한마디를 해도 하나님과 관계있는 생명력 있는 대화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을 많이 해야 들으시는 분도 아니고 화려한 언어로 인하여 감동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그 기도에 진실이 담겨져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할 말을 잃고 눈물만 뚝뚝 흘리면서 마음속으로 진실을 고백하는 기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훌륭한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도가 하나님과의 진실한 대화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⑥기도마지막으로 본문에는 없지만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예수의 이름은 만능열쇠입니다. 예수의 이름은 모든 문제의 해결사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고, 죄 사함을 받고, 귀신이 나가고, 병이 낫고, 기도 응답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예수의 이름으로 새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소중한 이름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마칠 때 반드시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를 마무리해서 응답을 기원해야 그것이 기도입니다.
우리 주님은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시작할 때도 주님 이름으로 기도를 하지만 마칠 때도 주님 이름으로 끝을 내야 그것이 기도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대상으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입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복을 받고 은혜를 입는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우리는 기도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을 만나고 사랑을 입고 살아갑니다. 그러니 이 기도가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그래서 주님은 강조하기를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은혜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라

 

3. 우리가 늘 외우는 주기도문입니다(9-). 몇 가지 기도의 원리가 있습니다.

 

①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뜻을 구하라!
10절“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는 말입니다. 기도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대화를 목적으로 하는 기도가 있고, 또 하나는 간구 목적의 기도가 있습니다.
대화식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영적 깊이를 이루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앉아서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되면 사랑과 이해가 깊어질 수 있듯이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깊은 이해를 이루어 냅니다.
그리고 간구 목적의 기도는 우리들이 지금 흔히 하고 있는 기도입니다. 필요를 위해서 간구하는 기도입니다.
이 기도에는 반드시 하나의 조건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가깝게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에는 반드시 응답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아버지의 뜻과 다르면 소용이 없습니다. 응답이 주어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아버지의 뜻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우리들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나는 이것은 하고 싶은데 하나님의 뜻은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내가 하는 일을 막으십니다. 가는 길을 막으십니다. 그래서 하는 일이 안 되는 때가 있고 가는 길이 자꾸만 막히는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들이 그 뜻을 모르면 불평하기 쉽습니다.
우리들이 아이들을 기르면서 조그만 생각하면 하나님의 그런 심정을 너무나 절실히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때로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부모에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 입장에서 보면 그 일은 아이가 할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막습니다. 하는 일을 못하게 합니다. 그것이 자녀를 위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이가 그 뜻을 모르면 불평불만을 하게 됩니다. 부모를 원망합니다. 그것은 부모의 뜻을 몰라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그 아이들의 성숙치 못한 뜻을 들어주면 곧바로 나가서 사고를 치게 됩니다.
오늘날 아이들이 자꾸만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알고 보면 여기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부모들의 정신이 바르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내게 하나밖에 없는 자식이라 해도 그것이 선한 방법이 아니면 그 요구를 들어주면 안 됩니다. 그때에는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아이가 절제를 할 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보면, 돈은 있고 자식은 하나뿐이니까 하고 싶다는 대로 다 들어줍니다. 마음껏 돈을 쓰게 하고 또 하고 싶다는 것을 다 해주다 보니 그 아이가 나가서 무슨 짓을 하겠습니까? 나가서 무절제한 생활을 하다가 마침내 사고를 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참 깊습니다. 거기에는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배려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의 요구를 거절하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냉정하게 거절하면 그때는 잠시 서운한 것 같아도 그것이 진정 자식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는 먼저 아버지의 뜻을 구하라고 했습니다.

②일용할 양식을 구하라!(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이 말은 매일 매일 먹을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것은 주시려면 한꺼번에 많이 주셔서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도록 하지 않고 조금씩 매일 달라고 기도하라는 것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여기에 하나님의 성도들에 대한 깊은 애착이 들어 있고 특별한 배려가 포함됨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께 매일같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생활을 하게 되면 몇 가지 의미가 그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⑴매일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매일같이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한다면 매일같이 하나님을 찾아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들은 하루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⑵“매일 하나님을 불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매일같이 간구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우리들로 하여금 매일같이 기도생활을 하도록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매일같이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씀 속에는 너희는 내 곁을 떠나지 말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인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어쩌면 그렇게도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들의 육신의 부모의 생각과 같은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육신의 부모도 가능하면 자식들을 곁에 두고 함께 살아가고 싶어 합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곁에 있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마음과 육신의 부모의 마음은 똑같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이 같은 부모들의 바람과는 정반대로 자식들이 흩어지는 시대입니다. 자식들은 부모 곁에서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할 수만 있으면 부모 곁을 멀리 떠나지 못해서 안달을 합니다. 부모들은 시대가 그러니까 할 수 없이 수용은 하지만 속마음으로는 서운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것은 어쩌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그렇게 애착을 가지고 계시지만 사람들은 그 곁을 떠나지 못해서 안달입니다.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그 곁을 떠나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런 장치를 만드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 하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매일같이 하나님을 찾으라 그 말입니다.
⑶하나님께서 우리를 매일 매일 돌보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⑷양식이라고 할 때 육을 위한 양식, 한 가지만이 아닙니다. 우리의 심령의 양식이 더 필요합니다.
암8:11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⑸공동체 전체가 영적으로 하나가 되자는 기도입니다.

③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 기도하라!(12)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아마도 이것은 기도 가운데서도 가장 근본적인 기도일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는 데 가장 심오한 부분은 죄 사함을 받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 가운데서 가장 본질이 되는 기도는 죄 사함을 위한 기도입니다.
사람은 죄를 짓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크고 작은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약점입니다. 제아무리 큰 소리를 쳐도 우리는 죄를 떠나서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은 “나는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교만이고 무지입니다. 사람이 반드시 살인을 하고 도적질을 해야만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마음속으로 미움만 품어도 그것이 하나님 앞에 죄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함을 받지 않으면 죄의식 때문에 우선 마음에 평화가 깨져 버립니다. 사람은 죄를 짓고는 살수가 없습니다.
사탄은 영적인 세계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의 감정을 잘 이용합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사탄은 사람의 마음속에 대고 자꾸만 약점을 기억나게 만듭니다. 잊어버리는가 싶으면 또 찾아와서 기억나게 해놓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은혜를 받고 나서 성경을 많이 읽었다고 합니다. 하루는 밤에 조용히 앉아서 성경을 읽고 있는데 사탄이 찾아왔습니다.“거룩한 체하지 말아, 당신은 위선자야”라며 벽에다 그 동안 지은 죄목을 죽 적어 놓았습니다. 루터가 보니 자신이 생각지도 못한 죄들을 모조리 적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책상 위에 있던 잉크병을 집어서 사탄의 머리에다 집어 던졌습니다. 그러자 사탄이 재빨리 피해서 없어져 버렸습니다. 던져 버린 잉크병이 벽에 부딪히면서 깨지는 바람에 새까만 잉크가 온 벽에 펴져서 사탄이 써 놓은 죄목들을 덮어버렸습니다. 그때 루터가 한마디 합니다 “모르고 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사탄이 와서 이렇게 고발을 합니다. 자꾸만 생각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마음을 불화하게 만듭니다. 이렇게 사탄이 와서 고발을 하면 주어지는 것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감을 상실하게” 됩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맨 먼저 나타나는 증상이 바로 자신감의 상실입니다. 마음에 떳떳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그때부터 어두움을 좋아하게 되고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기쁨을 잃게 됩니다. 그래서 죄는 사람을 망가트려 놓습니다.
▶또 사람이 죄를 지으면 자꾸만 거짓말하게 됩니다. 이것이 두 번째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당신 뇌물 먹었느냐”하고 물으면 100%의 사람은 절대로 먹지 않았다고 대답합니다.
우선 우기고 봅니다. 나는 그런 사람은 보지도 못했고 그런 사람 알지도 못하며 그를 만난 일도 없고 금시초문이라고 잡아뗍니다.
잠시 후면 금방 탄로 날 일인데도 불구하고 우선 우기고 봅니다. 이것이 죄의 속성입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은 순순히 자백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위험한 것은 사람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의 사이에 틈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입니다. 틈이 생기면 원구 마귀는 귀신같이 알고 접근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죄 사함 받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기도 가운데 가장 근본적이고 고상한 기도는 죄 사함의 기도입니다.

④용서하기 위해서 기도하라!(12)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이 말씀은 내가 사함 받은 것같이 너도 용서하라 그 말입니다. 쉽게 말하면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주기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이 지은 죄를 사함 받는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입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축복은 나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들이 그렇게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아량이 없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모두 한이 많습니다. 부모와 자식간에 맺힌 것이 많습니다. 형제간에 맺힌 것이 많습니다. 이웃간에도 서로 맺힌 것이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은 것처럼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나면 우리는 하나님께 당당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얼마나 당당한 기도입니까? “내가 남의 빚을 탕감해 주었으니 내 빚도 탕감해 주옵소서. 내가 남을 도와주었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옵소서.” 사람이 이렇게 당당해질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을 바꾸어 말하면 내가 남을 용납하지 못하면 누구로부터 용납 받을 수가 없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웨슬리>가 길을 가다가 잘 아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 사람은 친구와 원수로 지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지금은 친구를 용서했습니까?” 그랬더니 하는 말이 “그 놈은 죽어서도 용서 못합니다.”라고 하더랍니다. 그 사람에게 웨슬리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은 단 한번도 실수를 하거나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이제부터 당신이 죄를 지으면 당신은 그 누구로부터도 용서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고 대답해 주었다고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죄를 지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실수할 가능성이 많고 또 죄를 지을 가능성도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그때 우리는 또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너도 용서하라”는 그 말입니다. 내가 용서해야 내가 용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의 방법입니다.

⑤기도를 마칠 때는 반드시 아멘 하라(13)!
여러분, “아멘”이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믿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분이 “목사님 아멘이 무슨 뜻이냐?”고 묻을 때, 운동 경기하는 사람들이 경기 도중에 “화이팅”을 외치는 것과 같다고 설명해 주었다고 합니다. 운동 중에 회이팅하고 외치면 상당한 효과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는 이길 수 있다”는 “자기 암시”의 효과를 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끝난 후에는 확신 있게 “아멘”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섭니다. 그리고 자신감이 생깁니다. “아멘”, “그렇습니다, 옳습니다, 그렇게 될 줄로 믿습니다.” 얼마나 확신이 생깁니까? 그래서 가급적이면 기도가 끝난 후에는 “아멘”을 크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기도 끝에 가서 “아멘”하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자상하신 주님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4. 기도하면 하나님은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십니다.(마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은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항상 우리에게 좋은 것을 허락하여 주십니다. 일을 하더라도 기도하면서 하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도 기도하고, 직장에서도 기도하고, 뛰면서 기도할 때 우리는 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높이 들어 승리하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기도하는 자가 받는 축복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치유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히스기야는 유대 왕입니다. 그가 죽을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 앞에 통곡하면서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눈물을 보시면서 15년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셨습니다.
약5:16절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②위기에서 벗어나게 해줍니다. 다니엘이 그러했고, 모르드개가 그러했고, 요셉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 위기가 역전되어서 전화위복이 되는 기적의 주인공들이 되었습니다. /할/
③전쟁에서 승리합니다. 르비딤 전투에서 모세가 손을 들고 기도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승리했습니다.

④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납니다. 신4:29절 “만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그(하나님)를 구하면 만나리라”
⑤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대하16:9절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⑥형통케 됩니다. 욥8:5-7절 “네가 만일 하나님을 부지런히 구하며 전능하신 이에게 빌고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정녕 너를 돌아보시고 네 의로운 집으로 형통하게 하실 것이라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기도는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기도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막9:29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마21:22절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아멘!/ ( 대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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