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행 19:1-7)
오늘 본문은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겸손하게 듣고, 대답하여야 할 주님의 명령을 질문하고 있습니다. 행1:4-5절에 보면,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우리에게 남겨놓으신 마지막 명령가운데 하나가 '성령을 받으라'입니다. 그런데 본문 2절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이 물음은 그리스도인이냐 아니냐를 결정짓는 중요하고도 심각한 질문이 됩니다.
롬8:9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요3장에 보면, 예수님은 한 밤중에 자기를 찾아온 니고데모를 향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선언하셨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 질문은 천국이냐? 지옥이냐? 영생이냐? 멸망이냐를 결정짓는 심각한 질문이기도 합니다.
▶본문의 배경은 사도 바울이 3차 선교 여행 중 에베소에 들려 '믿는다고 하는 어떤 제자들을 만났다'고 본문 1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 어떤 제자란, 믿는 그리스도인을 말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아볼로 목사님이 시무 하다가 고린도 교회로 옮긴 교회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여행 중 마지막 길에 잠시 들렸다가 떠나면서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너희에게 다시 오겠다고(행18:21) 약속했던 곳인데 마침내 바울이 그 에베소에 온 것입니다.
에베소는 항구 도시로써 그 당시 교통과 무역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으며 '아시아의 보고'로 불리 울 만큼 번창한 도시였습니다. 또 에베소는 예술과 문화의 도시였으며, 그 당시 로마의 총독이 일정한 때에 이곳에 와서 모든 큰 사건을 재판한 순회 재판소가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에베소는 우상의 전각이 가뜩한 곳이며, 모든 범법자들이 득실거리는 범죄의 소굴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악한 도시에 사도 바울이 생명의 복음을 들고 온 것입니다. 에베소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을 만나자마자 단도 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바울은 그들이 복음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 받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의 대답은 너무도 놀라운 것입니다. 2절 "아니요!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모르고 산다는 것은 얼마나 슬픈 비극인지 모릅니다.
그들의 대답에 놀란 바울이 다시 묻기를 "그러면 당신들이 무슨 세례를 받았소!" 저들의 대답은 "요한의 세례, 즉 물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요한의 세례는 구원받는 세례입니다.
바울은 4절에서 저들에게 세례요한이 증거한 '그 예수를 믿으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이 무엇을 증거 했는가? 눅3:16절에서 세례요한은 "자기 뒤에 오시는 예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했습니다.
5절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세례 받은 그들에게 안수했더니 그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한다고 6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또 7절에 보면, 모두 열두 사람이 성령의 불을 받았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모두 열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중요한 성경의 교훈은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자마자 성령작전을 개시했다는데 있습니다.
●6절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다'고 했는데 이 사건을 학자들은 에베소의 오순절사건이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세 번의 오순절과 같은 사건이 소개되는데, ▶첫 번째는 우리가 잘 아는 행2장의 사건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오순절 성령 강림입니다. 이때부터 예루살렘 교회가 세워졌으며, 허다한 무리들이 예수 믿고 구원받는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행10장에 나오는 이방인의 오순절! 그것은 고넬료의 가정에서 일어난 사건이었고, ▶세 번째는 바로 오늘 본문의 사건입니다. ◀제목소개!▶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질문은 성령 불 세례를 받았느냐는 질문입니다. 이미 믿는 자들에게는 성령이 임하여 계십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고 할 수 없느니라"고 하였습니다(고전12:3). 우리 믿는 사람들은 이미 성령의 은혜로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를 구주로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미 물과 성령을 거듭났습니다. 이미 천국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또 무슨 성령을 받으라고 하느냐고 반문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성령으로 예수를 영접하고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과 성령 충만함을 받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구원받고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새 생명을 얻는 것이고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은 능력을 받는 것입니다.
▶즉 죄를 이기는 능력, 마귀를 이기는 능력, 복음을 전하는 능력을 받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고 우리 속에 있는 새 생명을 키워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평생 한번이면 족하지만 성령 충만은 거듭 거듭 받아 충만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하는 것은 성령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입니다.
성도가 주의 일을 하기 이전에 하나님의 능력을 먼저 알고, 행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애굽의 최고가는 바아로 제국 대학을 졸업한 모세를 쓰지 아니하시고, 왕궁에서 법도를 잘 배운 모세를 쓰지 아니하시고, 미디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은 모세를 부르자 노인 된 그에게 지팡이 하나로서 그를 불러서 쓴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언제부터 하나님의 큰 능력을 받았는가? 하면, 자기 아들 이삭이 100세에 기적적으로 태어나는 것을 보고, 그때 사 '진짜 하나님은 능력의 하나님이구나!'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삭을 바치라고 할 때, 참으로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히11장에서는, 아들 이삭이 죽더라도 살려 줄 것을 믿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고백하면서 뭐라고 했습니까?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나의 요새요! 방패요! 힘이 시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다윗이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았기 때문에 도와주는 사람도 적은데, 군대를 가지고 있는 사울을 이기게 되었고, 이스라엘에서는 최고가는 임금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 아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입니다. 모든 행정의 시작이 하나님의 능력 아는 것입니다. 교회 안의 위계질서도 하나님의 능력 알고 난 이후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우리는 모자라지만, 하나님은 완전하십니다. 우리는 간혹 가다가 실수하지만,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아는 자에게서부터 하나님의 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무조건 하나님의 능력 모르고 그냥 자꾸 믿으려고 하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도 보니까, 바울이 현장에 가서보니, 모여서 사람들이 믿기는 한데, 안다고 하는 것이 요한의 세례, 그것밖에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성령으로 역사 하는 능력의 예수님을 다시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바로 깨닫는 길이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것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것을 바로 깨달아야 됩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구약 성경을 완전 성취한 분이요, 그리스도라는 말은 사단의 세력을 완전히 깨뜨렸다는 말이요, 그리스도라는 말은 지옥으로 가는 사망의 문을 깨뜨리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선지자, 제사장, 왕 이 세 가지 기능을 합친 것이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은 참 선지자, 참 제사장, 참 왕이 십니다. 이 세 가지 이름의 기능을 합친 것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니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최고 문제 중 가장 큰 문제가 사탄입니다. 바로 그것을 깨뜨리는 힘을 주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셨습니다. 그 이름이 그리스도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는 말은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의 불
세례를 받으라는 말입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네가 믿을 때에 정말 하나님의 능력을 아느냐?' '부활하신 주님이 보혜사 성령으로 역사 하는 줄을 아느냐?'라 질문도 됩니다. 그 성령은 완전한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그래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무엇을 받고?" "권능을 받고!"했습니다.
여러분의 사업이 어렵습니까? 괜찮습니다. 여러분 환경이 지금 어렵습니까? 괜찮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은 지금 다 알고 계시고,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베드로가 고난 당할 때 기도하기를 '주여 우리의 위협 당함을 하감하옵시며, 우리가 담대히 주의 말씀을 전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자 그때 누가 임했습니까? "빌기를 다하매,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더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저는 성령에 대하여 알아보려고 합니다.
1. 성령은 언제부터 오셨는가?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사람과 한 식구로 살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마귀에게로 갔습니다. 마귀와 더불어 지옥에 가야 마땅한 사람들을 구원하려고 예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3일만에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요16:7절에 보면, 예수님이 이 땅에 남겨 놓으신 고별 설교 속에서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라!"고 하셨습니다.
또 행1:4절에 "사도와 같이 모이자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인류의 구원 사역을 완성하시고 하늘나라 성령 본부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대신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주님과 성령과 임무교대를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는 예수가 안 계시지만 성령님이 와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사면 성령님은 다시 올라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셨던 예수와 다시 오실 예수님 중간에 살고 있습니다.
성령이 이 땅에 오신 오직 하나의 이유는 영원 구원에 있습니다. 모든 복음의 역사는 여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주님의 명령은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으며,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행1:8절에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십니다.
교회가 탄생된 동기도 영원 구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 영원 구원에 전념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의 명령이요, 또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전도하면 우리가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전도하는 심령! 모든 범사를 책임져 주십니다. /믿/
2.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우리 알아봅시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10일만에 마가의 다락방에 보혜사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그 때부터 사도들이 방언, 신유, 각가지 은사가 나타났습니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된 자를 예수의 이름으로 일으켜 세우는 능력이 사도에게 나타났으며, 예언 등의 수없이 많은 신비가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세 가지 이론이 있습니다.
①단회설(유일설): 성령의 기적들을 한번으로 보는 학설입니다. 홍해도 한번 갈라지고, 여리고도 한번 무너졌다는 주장입니다. 물이 포도주 된 것도 한번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그러므로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도 한번뿐이므로 이제는 방언도 신유도 없어졌고 십자가만 남았다는 이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만 잘 믿고 구원 중심의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령에 대하여 무관심합니다. 심지어 신비주의자들이라고 몰아세웁니다.
②동일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그러므로 그 때 그런 성령의 역사를 일으켜주신 주님은 지금도 변함 없이 성령의 역사를 주신다고 믿는 이론입니다. 그 대 방언이 있었으므로 지금도 존재한다고 믿고, 그 때 기적이 일어났으므로 지금도 기적이 일어나는 것을 굳게 믿는 믿음입니다.
여러분! 지금도 기도하면 여리고가 무너지고 홍해가 갈라집니다. /믿/
③증가설: 오히려 예수 시대 당시보다 성령의 능력이 더욱 증가될 것을 믿는 이론입니다. 행2:17절 "말세에는 성령을 물 붙듯이 부어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 가지 설에서 어느 것을 믿느냐에 따라 우리의 믿음이 달라집니다. 성령은 단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단회적으로 끝났다고 믿으면 성령의 역사는 끝이 납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처럼. 아니 말세에는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주신다고 하셨으니 이 믿음 기지고 성령 충만 받아야 합니다. /할/
3. 성령의 단계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여러분! 예수 믿는다는 것과 성령 받았다는 것과는 다룹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이 땅에 40일간 계시면서 11번이나 나타내 주셨습니다. 그런데 단 한번도 예수 안 믿는 사람을 찾으신 적이 없습니다. 꼭 예수를 영접한 여인들에게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아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안 믿는 사람에게 '성령을 받아라!'고 하신 적이 단 한번도 없습니다. 꼭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에게 오셔서 성령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예수 믿는 것과 성령 세례 받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본문에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성령은 믿는 저와 여러분이 받아야 된다는 이야깁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내가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체험이 강력하면 강력할수록 주님께 붙잡히는 강도가 높습니다.
성령의 단계는, ①성령세례가 있습니다. 예수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하고 고백하는 단계입니다.
②성령 충만한 단계가 있습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오직 예수로 똘똘 뭉친 사람입니다. 예수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의 고백은 '내가 죽어도 주의 것이요 살아도 주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직 예수 오직 주를 위하여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③성령의 넘침의 단계입니다. 성령이 철철 넘칠 정도로 충만한 단계가 있습니다. ●내가 먼저 뜨겁지 않고 누구를 뜨겁게 할 수 있습니까? 내가 먼저 뜨거워져야 합니다.
'무디'목사가 어느 날 성도들과 함께 맹렬히 통성으로 기도할 때,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모두가 미칠 것만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 때 무디 목사가 하나님께 '성령님을 이제 그만 주시옵소서! 더 주셨다가는 모두가 미치겠나이다'라고 기도했답니다.
진정 이런 단계를 맛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 이 단계를 체험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④성령의 열매를 맺는 단계가 있습니다. 열매는 우리 신앙의 행위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갈5:22-23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이 아홉 가지 열매는 성령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맺을 수가 없는 열매입니다. 마치 로케트를 타지 않고서는 달나라에 절대 갈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보혜사 성령'은 '곁에 와서 도와주시는 이'입니다. 성령을 모시면, 성령님이 옆에 오셔서 도와주시기에 나 이상의 삶을 살수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이 사랑은 '아가페' 사랑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남녀간의 사랑인 '에로스'는 성령의 도움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친구간의 사랑인 '필리아'도 그렇고,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인 '스톨케'도 성령의 도움 없이도 능히 가능한 사랑입니다.
그러나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는 성령의 열매인 사랑은 성령의 도움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사랑입니다.
⑤성령의 은사의 단계가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 차원이 지나면, 성령의 은사 차원으로 승화됩니다. 성령의 은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도구들입니다.
손으로 땅을 파는 것보다는 호미로 파는 것이 쉽고, 호미로 파는 것 보다 삽으로 파는 것이 더 쉽습니다. 그러나 포크레인으로 찍어버리면 게임이 끝나버리고 맙니다. 성령의 은사 받으면 게임이 끝나버립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은사는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더욱 하나님을 섬기는데 좋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속에 나타난 은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성령 충만 받기란 그리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령님을 인정하고, 모셔들이고, 환영하면, 성령님은 우리 심령 속에 오셔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베이컨'은 남에게 피해만 주는 거미와 같은 사람이 있고, 남에게 이익도 손해도 주지 않고 오직 자기만 위해 일하는 개미와 같은 사람이 있고, 열심히 일해 남도 주고 자기도 사는 꿀벌과 같은 인생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도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말합니다.
①육에 속한 사람: 고전2:14절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이는 예수를 믿지 않은 사람을 말합니다. 도저히 하나님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세상에 속한 그런 사람들입니다. 지옥행입니다.
②육신에 속한 사람: 고전3:1절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예수는 영접하였으나 아직 믿음이 어린 아이 같은 사람입니다. 어린 아이는 약합니다. 이런 사람은 쉽게 넘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③영에 속한 사람: 고전2:16절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예수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고전3: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고 있음을 믿으며, 그분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세 종류의 사람들은 모두가 다 믿음이 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도 믿음이 있습니다. 이 믿음은 자연적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안 믿는 사람이 차를 타고 무사히 도착지에 실어다 줄 것을 믿고 탑니다. 이발소, 은행, 슈퍼에서 우유를 하나 사 사시는 것도 독이 없는 줄 믿기 때문에 사먹습니다. 이런 믿음을 자연적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또 육신에 속한 사람도 믿음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되 어린아이와 같이 약한 신앙입니다. 여러분! 어린아이가 자라야 힘을 쓰고 큰 일을 하는 것처럼 우리 믿음의 분량도 장성해야 큰 믿음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육신에 속한 믿음은 발전도 성장도 하나님의 은혜체험도 은사체험도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예수 믿고 받은 증거가 많아야 합니다. 우리는 소속감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확실하게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믿음은 기적을 봅니다. 이런 믿음은 기도가 기도로 끝나지 않고 응답으로 끝나게 됩니다. 왜? 성령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믿/
행20장: 바울이 드로아에서 복음을 전하고 있을 때, 유드고라는 청년이 창가에 걸터앉았다가 떨어져 죽었습니다. 교회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회밖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한발은 교회에 한 발은 세상에 둔 사람입니다. 알송달송한 믿음이지요! 믿음은 중간지대가 없습니다.
계3:16절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미국 남북전쟁 당시에 경계선에 있는 마을이 있었답니다. 하루는 북군이 점령하고, 다음 날은 남군이 점령하는 골치 아픈 그런 마을이 있었습니다. 하루는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대책 회의를 했습니다. 결론은 위에는 북군의 옷을 입기로 하고, 아래는 남군의 옷을 입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들이 각각 볼 때에 각기 자기편으로 생각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북군이 와서는 남쪽의 옷을 보고 죽이고, 남군이 와서는 북군의 옷을 보고 죽여서 얼마 후 그 마을은 한사람도 남지 않았다는 이야깁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을 육신에 속한 믿음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영에 속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의 물음에 확실하게 대답을 해야 합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예, 받았습니다 충만 충만합니다. 자신 있게 대답해야 합니다.
요20:20절에 보니 실의와 허탈과 좌절에 빠져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오셔서 다른 말씀을 하시지 않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만이 저들의 삶을 치료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제자들에게 "왜 겁을 먹고 숨어 있느냐? 왜 벌벌 떨고 있느냐? 나가서 활동하라! 프로그램을 짜라! 전도하라!" 말씀하시지 않고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만이 저들의 삶과 상황을 변화시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슥4:6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 일하는 것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도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힘이 없이는 할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너무 잘 알았기에 빌4: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성령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능력도 하나님이 주십니다. /믿/
주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 받기 위서는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을 굳게 잡고 간구 해야 합니다.
눅11:11-13절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주실 줄 믿고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을 물 붓듯이 부어주십니다.
막11:24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약1:6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 질문은 '너희가 예수 믿은 후 지금 성령의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느냐? 성령의 지배를 받고, 인도를 받고 사느냐?'는 질문입니다.
엡5:18절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성경은 성령 충만과 술 취함과 대조시켜 말하고 있습니다.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술 취하게 되면, 소극적인 사람이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합니다. 담대해집니다. 사람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겁이 없어집니다. 간덩이가 커진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한 사람도 소극적인 사람이 적극적인 사람으로 변합니다. 사람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술 취한 사람은 술에 힘이고, 성령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힘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조그마한 계집종 앞에서도 예수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는데, 그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불 세례를 받고 나서 자기를 죽이려고 서슬이 시펄은 산헤드린 공의회 앞에서도 대담하게 예수가 그리스도인 것을 전했습니다.
술 취한 사람은 말이 많아집니다. 떠 벌이가 됩니다. 술기운에 가슴속에 넣어 두었던 평소에 하고 싶었던 말들을 모두 쏟아 놓습니다. 그리고 했던 말을 또 하고 또 하고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도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면 말이 많아집니다. 그러나 쓸데없는 말하느라고 말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느라고, 찬송하느라고 말이 많아집니다. 전도하느라고, 간증하느라고 거듭 거듭 반복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 하게 됩니다.
술 취한 사람은 세상 근심 걱정 모두 잃어버리고 즐거워합니다. 술이 몇 잔 들어가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노래가 나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도 세상 근심 걱정 모두다 잃어버리고 기뻐 하나님을 찬양하며 주님이 주시는 평화가 넘치게 됩니다.
집안 형편이 어렵고, 일이 잘 되든 말든, 몸이 좀 아프던 말던 몸이 좀 병들었어도 환경과는 크게 개의치 않습니다. 왜? 하나님이 때를 맞춰 합력 하여 좋은 것으로 이루어 주시고, 채워 주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누가 주십니까? 우리 주님이 주시는 은사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할 것은 술 취함과 성령 충만이 현상적으로 비슷하지만 본질적으로 아주 다룹니다. 술 취한 것은 타락한 육의 본성의 지배를 받은 것이지만, 성령 충만은 거룩한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은 것입니다.
술 취한 행동은 순간입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영원합니다. 술 취한 것은 깨고 나면 죄책감과 후회가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함은 더 놀라운 기쁨과 변화를 가져옵니다. 술 취하게 하는 것은 인간을 망하게 합니다. 사고 칠 확률이 큽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은 절제하게 만들고, 인내하게 하고, 우리에게 더 놀라운 풍성한 생명과 삶을 보장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강조합니다.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 물음에 우리는 도전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을 새롭게 정검 해 봐야 합니다.
4.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어떤 일을 하시는가?
①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고 계십니다.
롬8:16절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②하나님의 선하시고 기쁘신 뜻대로 인도하십니다.
롬8: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믿음으로, 구원의 길로, 하나님의 선하신 일로 인도하십니다.
③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책망하십니다.
요16:8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같이 죄를 지었어도 성령 님이 안에 계신 분은 너무나 괴로워합니다. 성령 님이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④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우리에게 소원을 주십니다.
빌2: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마음속에 무엇을 하고 싶은 소원이 막 일어나면 그 것이 하나님의 소원이고 성령의 음성입니다.
5. 성령 충만 받는 것이 왜 그토록 중요할까요?
①행복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어떤 환경과 역경과 시련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②성공의 원천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영이 임하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를 사로잡아 어떤 분야에도 뛰어나며 두각을 나타나게 됩니다.
③성령 충만이 곧 승리의 원천입니다. 사탄은 호시탐탐 우리를 노리고 공격합니다. 사탄의 공격을 물리쳐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성령 충만입니다. 나 자신의 정욕, 세상의 불의, 그리고 사단의 권세와 싸워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성령 충만함에 있습니다.
④용서와 용납과 이해의 삶의 원천입니다.
●안데르센 동화집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날 농부가 아내에게 말합니다. "여보, 오늘 말을 가지고 나가서 좋은 것으로 바꿔 올게" 그러자 아내가 "잘 생각했어요. 좋은 것으로 바꿔 오세요" 그러자 농부는 말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길에서 소를 가진 사람과 만났는데, 소가 좋다는 그의 말만 듣고 말을 소와 바꿨습니다. 그리고 소를 데리고 가다가 양을 가진 사람과 만났는데, 그가 양 자랑을 하니까 다시 소를 양과 바꿨습니다. 그리고 양을 데리고 가다가 거위를 가진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거위가 좋다고 하니까 다시 양을 거위와 바꿨습니다. 계속해서 거위를 가지고 가다가 암탉을 가진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암탉이 알도 잘 낳고 수입도 좋다고 하니까 다시 거위를 암탉과 바꿨습니다. 이어 암탉을 가지고 가다가 사과 한 봉지를 가진 사람을 만났는데, 그가 사과가 맛있다고 하니까 그 사과 한 봉지와 암탉을 바꿨습니다.
농부는 흐뭇한 마음으로 사과 한 봉지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몸이 칼칼해서 잠시 주막에 들렀습니다. 마침 주막에서 쉬던 한 귀족이 이 농부의 이야기를 다 듣고 말하기를 "아마 당신 아내는 틀림없이 화를 낼 겁니다"
그러자 농부는 "아닙니다. 제 아내는 틀림없이 '잘했어요, 훌륭해요' 라고 할 걸요" 귀족이 말하기를 "정말 그렇다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금화를 다 주겠소" 마침내 이 어리석은 농부가 귀족과 함께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하루에 벌어졌던 일을 죽 설명했더니 아내가 그 말을 다 듣고 나서 "참 잘했어요. 훌륭해요" 라고 맞아 주었습니다.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귀족이 생각하기를 '이런 가정이라면 내 돈을 다 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고 그는 가지고 있던 금화를 모두 그 집에 주고는 돌아갔다는 이야기입니다.
6. 성령의 능력은 언제 나타납니까?
①말씀을 들을 때(행10장) 옵니다.
②안수 받을 때(행8장/19장) 옵니다. 6절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성경에서 안수는 여러 방편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우선 세례를 베풀 때 안수를 했습니다. 사명을 줄 때도 안수하여 보냈습니다. 병자를 위해 기도할 때도 안수하였습니다. 또 축복할 때도 안수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안수가 성령과 축복을 전달하는 통로가 됩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도 많은 경우에 안수하셨습니다.
안수할 때는 성령께서 역사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안수를 통하여 축복과 성령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수는 성령 님의 손을 끌어다 얹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 성령 님의 손을 끌어다 얹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능력과 축복을 주십니다.
③우리가 기도할 때(행1:14) 임합니다.
④나 자신을 깨끗이 비우고 성령을 간절하게 사모하게 될 때에 성령께서 우리에게 역사 하는 것입니다. /믿/
▶말씀을 마칩니다. 우리 모두 성령 충만한 성도가 되어 하늘의 능력을 마음껏 체험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2004년 10월 17일 대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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