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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세 성도의 3대 의무! (벧전 4:7-11)

by 【고동엽】 2022. 2. 4.

말세 성도의 3대 의무! (벧전 4:7-11)

 

민족 고유의 명절! 추석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고 있습니다. 나그네이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최희준은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길에 정일랑 두지 말자. 미련일랑 두지 말자.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를 노래했습니다. 유행가이면서도 찬송가 같은 유행가입니다. 베드로도 '인생은 나그네'라고 벧전1:1-2절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특별히 나그네 의식이 강했습니다. 주후 70년 로마에 나라를 빼앗긴 이스라엘은 이 곳 저 곳 떠돌아다니며 살아야 했습니다. 1948년 독립할 때가지 이스라엘은 나그네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흩어진 나그네' 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뿐만 아니라 인생은 모두 나그네입니다. 인생은 나그네이기에 나그네 철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①나그네의 궁극의 목적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살아가는 것이 나그네입니다. 늘 고향을 그리워하는 본능을 귀소본능이라고 합니다. 여우는 죽을 때 꼬리를 자기 굴로 향하게 하고 죽는다고 합니다. 연어는 알에서 깨어 바다로 가서 살다가 알을 낳을 때가 되면 반드시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와 알을 낳고 죽습니다.
나그네는 고향을 떠나 살기에 고향을 늘 생각하며 사는 것이 나그네입니다. 그래서 수 천 만 명이 명절이면 고생을 무릅쓰고 이동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진정한 고향은 하늘 나라입니다. 바울은 빌3:20절에서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했고, 히11:16절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②나그네는 항상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지금 있는 곳은 영원한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도 내 것이 아니며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주님을 위해 써야겠다는 생각, 이런 의식이 하늘나라 시민권자의 상식입니다.
주님은 산상보훈에서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마6;19-20)
갈6:8절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③나그네는 외롭습니다. 그래서 나그네끼리 사랑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신10:19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너희들은 애굽에서 400년 동안 나그네로 살았었으니 너희 땅에 들어오는 나그네들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그네들을 사랑하였습니다. 농사를 지어도 추수할 때 꼭 귀퉁이 10분의 1 정도는 추수하지 않고 그대로 두었습니다. 나그네들이 거두어 먹게 하였습니다. 아름다운 민족입니다.
욥31:32절 "나그네로 거리에서 자게 하지 아니하고 내가 행인에게 내 문을 열어 주었었노라" 욥은 나그네를 사랑하였습니다. 내가 나그네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나그네를 사랑하게 됩니다.

④나그네는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는 벧전1:17절에서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고 권면합니다. 또 나그네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합니다. 벧전211절 "사랑하는 자들아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나그네는 항상 유혹이 많고, 시험도 많고, 싸워야 할 것이 많습니다. 그러기에 좌우로 치우치지 말고 정욕에 빠지지 않게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면서 넘어지지 않게 두려움으로 살아야 한다고 베드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본문은 나그네로 사는 인생들이 종말이 가까웠다고 하면서 '말세 성도의 3대 의무'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제목소개!▶


본문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이 마지막이라는 말이 참 의미가 깊습니다. 이 마지막이라는 말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신을 번쩍 나게 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이 시간이 진짜 내 인생의 마지막시간이다"라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떨리는 시간입니까? 이 말씀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일하라는 명령입니다.
여기서 마지막이란 종말을 의미합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말세라고 말합니다. 본문이 말하는 만물의 마지막은 세상 끝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종말을 보는 태도가 여러 가지입니다.
①종말이 없다는 태도입니다. 종말, 심판, 예수가 다시 와! 웃기지 말라고 합니다.
②종말에 관심이 없는 태도입니다. 자기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처럼, 종말이 오든지 말든지, 또는 종말이 아직 멀었다고 믿는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③종말이 92년 10월 28일 24시로 보는 태도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세대주의라고 합니다.
④종말이 가까웠다고 믿고 준비하는 태도입니다. 가장 옳은 태도입니다. 우리 주님은 분명히 오십니다. 오늘밤에 오실 지, 언제 오실 지는 미지수입니다 만은 우리 신앙인은 오시는 날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실 예수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앙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기름을 준비하고 깨어 있는 신앙인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믿/
화란의 철학자 스피노자는 '오늘 지구의 종말이 온다해도 내일을 위하여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자세로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했습니다. 종말이요, 말세요, 세상 끝을 말함인데, ▶크게 세 가지의 종말이 있습니다.

 

①개인의 종말이 있습니다.
히9: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 뒤에 심판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사람들이 교만합니다. 우리 인간은 언제 어떻게 될 지 아무도 모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라는 말속에는 내 개인적인 종말도 들어갑니다. 주님 앞에 가기 전에 우리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하여 작품을 남겨야 합니다.
성경은 죽음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묘사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성경 구절이 바로 왕상 2:1-2절입니다.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다윗이 누구인가? 이스라엘의 막강한 권세를 쥔 왕입니다. 그도 죽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라고, 죽음을 직설적이고 노골적으로 표현했습니다.
벧전1:24절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베드로는 죽음을 웅변적이요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왜 인간이 죽어야 합니까? 죽음의 원인이 무엇인가? 자연주의자나 현대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연법칙의 결과로 죽음이 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사람이 죄 때문에 죽는다고 했습니다. 롬6: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류의 머리로 정하신 아담을 모든 인류의 대표자격으로 세웠는데, 그가 죄를 범하므로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후손들에게까지 죄를 미치게 하였습니다.
롬5:19절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그렇다면 이 죽음에서 우리 인간이 살아 날수는 없을까요? 있습니다. 분명히 비결이 있어요! 죽음은 죄 값으로 오는 것이기에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신 분이 계십니다. 누구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인간은 모두 죄인이기에 죄의 문제를 청산할 수 없고, 오직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죄인의 모습인 사람의 형상을 입으시고 오셔서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습니다. 왜 죽으셨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기에 그 삯을 치르시기 위하여 그 분 예수께서 죽으셨습니다.
그 분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끝나버렸다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죽음 3일만에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찬란히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라!" /할/
개인의 종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죽어도 사는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②국가, 민족의 종말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를 상고해 보면 이 땅위에 많은 국가 민족들이 일어났다가 망해버린 나라들이 있습니다. 로마도 월남도 망했습니다.

③우주와 인류의 종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만물의 마지막을 의미합니다. 이 종말은 우리가 대망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입니다.
우리 기독교는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는 종교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을 학수 고대하며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주님은 계22:20절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의할 것은 언제 오신다고 못박아 놓치는 아니하신 것입니다.
마24:36절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25:13절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이 인간에게 감추어 놓은 세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①인간 환란의 때가 비밀입니다.
인간이 대단한 것 같지만, 사실 한치의 앞길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②인간의 죽음이 비밀입니다. 그리고 ③말세에 예수님의 재림이 비밀입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가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해서 비밀로 부치신 것입니다. 알아보십시오! 난리가 납니다. 모르니까 편안하게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말세의 보배로운 성도의 삶을 세 가지로 조명해 놓고 있습니다. 먼저 '기도하라!'고 했고, 두 번째는 '서로 사랑하라!'고 했고, 세 번째가 '서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서로 사랑할 수 있고 서로 봉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사랑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 봉사하기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 가지 단어는 뗄 수 없는 기독교의 교리입니다. /이해가 되면 아멘!/

 

1. 기도하라!(7절)

 

주의 이름으로 하는 모든 일은 무엇보다 먼저 기도로 시작해야 합니다. 어떤 일도 기도보다 앞서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참으로 많은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기적을 행하시고, 사람들을 고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시고, 제자들을 교육하셨습니다. 매일매일 동분서주하시면서 사역하셨습니다. 예수님 사역의 성공의 비결은 한마디로 기도입니다. 그분은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셨고, 기도로 새 힘을 얻었습니다.
기도를 뒤로 미루는 것은 하나님을 뒤로 미루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기도의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미국의 '토리' 목사는 '기도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과 축복이 가득 쌓여 있는 창고 문을 여는 열쇠이다'고 말했고, '맥콘키'는 '기도하는 골방은 은혜의 보급소이다'라고 했고, 예수님은 '기도 이외는 이런 류가 나가지 않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은 분명히 응답해 주십니다. 문제도 해결해 주시고, 사업도 축복해 주십니다.

▶오늘 본문 7절은 기도에 대하여 몇 가지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①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므로 기도해야 합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먼저 '때를 의식하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세상 돌아가는 모습을 한번 보십시오! ▶그 다음, 이 말은 '주님의 일 할 기회가 이제는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을 두고도 이렇게 생각해야 되지만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의 생애도 생각해야 할 것을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말세의 특징 중 하나가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눅18:8절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여기 말세에 우리 예수님이 기도하는 믿음을 보겠다고 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대화입니다. 대화는 중요합니다. 부부간에 대화가 끊어지면 파탄이 옵니다. 형제간에 대화가 끊어지면 사이가 멀어집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대화가 끊어지면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세상과 가까워지고 우상과 가까워집니다. ▶왜 우리가 기도해야 합니까? 세상 마지막이 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할 것인가? 기도에 방법입니다.

②정신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정신이 중요합니다. 정신은 생명과 같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고는 아무리 책을 오래 붙들고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공부는 하는 것 같은데 성적이 올라가지 않는 이유는 대개 정신을 차리지 않고 공부하기 때문입니다. 정신이 죽으면 공부도 죽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설교를 들어야 은혜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생명 있는 기도가 됩니다.
십자가를 눈앞에 둔 예수님은 사랑하는 수제자 셋을 대리고 마지막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그들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곳에서 졸면서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기도의 능력을 전혀 얻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이 붙잡혀간 그 현장에서 어린 계집종에게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으며, 그 밤에 그는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하고 배신하는 실패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실제적인 체험을 가진 베드로이기 때문에 그는 특히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신을 차리지 않고 기도하면 능력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조그마한 시험에도 넘어집니다. 실패자 배신자가 됩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면 권능을 얻습니다. 시험을 이깁니다.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면 영적인 능력을 얻어 승리하게 됩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소년입니다. 그는 바벨론의 궁전에서 배우고 자라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 쪽의 창문을 열고 그쪽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몸은 비록 바벨론 포로에 있었지만 그의 정신은 예루살렘 성전에 가 있었습니다. 정신이 살아있는 기도였습니다. 그가 바벨론에 있으면서도 끝까지 애국심과 신앙심과 민족애를 잃지 않았던 것은 정신이 살아 있는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도가 있었기에 사자 굴에 던짐을 당하여도 사자 밥이 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되 정신을 차리고 기도해야 합니다.
여기 정신차리라는 말은 '경건한 마음, 자신을 통제하는 마음, 여기 저기 정신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고속도로에서 운전 중 졸다가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경우, '얼마동안 졸았는가?' 물으면 '깜빡 졸았다'는 말이 87프로랍니다. 깜빡 졸았다는 말은 깜빡 정신을 잃었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 깜빡이란 순간이 중요합니다. 깜빡하는 순간에 일이 터지고 사고가 벌어집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③근신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근신한다는 말은 '자기를 살핀다, 자기를 이긴다'는 뜻이 있습니다.
사실 누구든지 자기를 살피면 자신의 부족한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자기의 부족을 발견한 사람은 기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근신하며 자기를 살피는 사람은 기도하기 마련입니다. 또 자기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어디서 옵니까? 기도하는데서 옵니다. 기도는 하늘의 능력을 붙잡는 통로입니다.

④기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중요한 봉사가 됩니다.
남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 사명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하여 기도해야할 뿐만 아니라 이웃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주님은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교회를 위하여, 주의 종을 위하여, 성도들을 위하여,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믿/
모세를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범죄 했을 때, 그들을 대신해서 모세가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광야에서 목말라 애통하는 백성들을 위해 모세가 기도했더니 쓴 물이 단물 되고, 르비딤 반석에서 생수가 터졌습니다. 사무엘이 나라를 위해서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불레셋 군대를 무찔러 주셨습니다. 그것이 '에벤에설', 즉 '하나님이 우리를 여기까지 도우셨다'는 고백이 나왔습니다. 베드로가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병든 자가 일어났으며 죽은 다비다를 위해 기도 할 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헤롯왕의 핍박으로 베드로가 옥에 갇힌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옥문이 열리고 쇠사슬이 벗겨졌습니다. 베드로가 다시 자유의 몸이 된 것은 그를 위해 기도한 성도들의 기도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서로를 위해 기도합시다.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야말로 서로 돕고 봉사하는 일이 됩니다. 기도의 봉사는 참으로 능력 있는 봉사이며 열매있는 봉사입니다. /할/

 

2. 사랑하라!(8절)

 

고전13:13절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말세가 오면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진다고 주님이 말세의 증조를 예언했습니다. 마24:12절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베드로는 본문 8절에서 세 가지의 교훈을 말하고 있습니다.

①열심으로 사랑하라!
열심은 인생살이나 신앙생활도 성공적으로 이끄는 힘이 됩니다. 게을러서 좋을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공부도, 장사도, 직장 생활도, 사업도 열심을 내야 성공합니다. 마찬가지로 기도생활도, 전도생활도, 봉사생활도, 모든 신앙생활도 열심히 있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열심히 있어야 책임과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열심히 있는 곳에 성공이 있습니다. 사랑에도 열심히 있어야 성공자가 됩니다. 부부애, 형제애, 효성, 애국자가 되려면 열심히 사랑해야 됩니다.
열심히 없으면 자기 일도 하기 어렵습니다. 게으르면 자기를 위해 기도도 못합니다. 열심히 있는 사람만이 자기를 위하여, 또 남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열심이란 자신의 모든 능력과 가능성을 총동원하여 최선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보면, 100미터를 10초에 달릴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정도면 세계적인 선수입니다. 10초 이내에 100미터를 달린다면 그건 신기록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나이 먹은 사람이나 심장병에 걸린 사람은 10분이 걸릴 수도 있고 더 걸릴 수도 있습니다. 열심히 달린다는 것은 10초의 기록 보유자가 10초의 벽을 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기울 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10초의 기록 보유자가 15초나 20초에 100미터를 달렸다면 그는 열심을 다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각자에게 분량대로의 믿음과 재능을 주셨습니다. 주어진 재능과 믿음 안에서 열심을 내야 합니다.
본문이 말하는 '열심히 사랑하라'는 말은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과 언어를 총동원하여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이며, 원어의 뜻은 '경주자가 전력을 다해 달리는 것처럼 지칠 줄 모르는 정열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또 열심히 사랑한다는 것은 말만으로 행하는 사랑이 아닌 구체적인 사랑이요, 희생적인 사랑이요,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바로 봉사의 근본 정신이 됩니다. 오늘 베드로는 '열심으로 사랑하라'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을 열심히 사랑합시다. 네 이웃을 열심히 사랑합시다. 잠8:17-18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②서로 사랑하라!
'서로'라는 한마디 속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의 태도는 여러 가지입니다. 주는 사랑, 받는 사랑, 또 주고받는 사랑도 있습니다. 사랑은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한다면 일방적이어서 그 의미가 제대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사랑은 일방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을 실천하는데는 서로라는 관계를 떠나서는 진정한 사랑이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사랑은 서로 해야 합니다. 자기는 미워하면서 상대방에게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나는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만 받으려고 한다면 잘못입니다. 사랑은 줄줄도 알고, 받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은 주고받는 쌍곡선입니다. 그것이 본문이 말하는 서로 사랑하라는 가르침입니다.

▶야구 경기의 묘기는 네 가지입니다. 던지는 것, 받는 것, 때리는 것, 그리고 달리는 것입니다. 제아무리 공을 잘 던지는 선수라도 공을 받는데 서툴면 팀윅이 금이 갑니다. 제 아무리 공을 잘 던지고 잘 받는 선수라도 달리는 것이 느리면 끝장입니다. 또 제아무리 공을 잘 던지고 잘 받고, 잘 달려도 공을 때릴 줄 모르면 그 시합은 별 볼일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팀윅입니다. 다시 말하면 서로 잘해야 유명한 팀이 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부간에도 서로 사랑해야 되고, 부모 자식간에도 이웃 간에도, 친구간에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경제 용어에 수요와 공급이 있답니다. 사랑학 역시 주고받는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랑이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 왜 네 사랑이 식었느냐? 왜 옛날과 달라졌느냐? 하는 것은 이미 내 사랑 쪽에도 문제가 발생했다는 적신호입니다. 서로 사랑할 때 그곳에 웃음이 있고 기쁨이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할/

③다른 사람의 허물과 단점을 덮어주는 사랑을 하라!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그 사람의 허물과 죄를 덮어 줄줄 알아야 됩니다. 어떤 사람은 남의 허물을 덮어주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남의 허물만 들추어내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쪽의 사람입니까?
요8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이 간음한 여인을 붙잡아서 예수께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합니다.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들의 손에는 이미 돌이 들려져 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처라!" 그때서야 그들은 양심에 가책을 받고 모두 물러갔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 이것이 무슨 말인가? 인간의 죄를 심판할 자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죄를 들추어내고 돌을 던질 자격이 없습니다. 거기에 바리새인들만 있었다면 그 여인은 죽었을 것입니다. 그 여인이 살 수 있었던 것은 죄를 덮어 주고 용서해주신 예수님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들도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눈감아 주시리라는 뜻도 있습니다. 주기도문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한 것처럼 내가 다른 사람을 얼마만큼 용서하고 사랑했느냐 하는 정도에 따라서 주님이, 나에 대한 죄와 허물도 용서해 주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모두는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누구를 용서하지 못합니까? 용서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 1서 4:7절에서 사랑의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할/

 

3. 서로 봉사하라!(10절)

 

봉사는 겸손한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이솝우화'에 보면, 어느 날 사자 한 마리가 잘 못하여 그물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백수에 왕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자이지만 이쯤 되면 영락없이 죽은목숨이 아니겠는가? "제발 누가 나를 좀 살려 주시오!" 사자는 몸부림치며 처절하게 울부짖었습니다. 마침 이 소리를 들은 생쥐가 달려가 봤더니 사자의 처지가 가련하기 이룰 때가 없었습니다. 생쥐는 날카로운 이빨로 그물을 찢어 사자를 살려내었습니다.
이것은 아무리 강한 자라 할지라도 약한 자를 업신여길 것이 아니며, 또 약한 자도 얼마든지 강한 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우화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러니칼'한 교훈을 안겨주는 것은 그 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짐러'라는 작가는 '현대의 이솝'이라는 책에서 그 뒷 이야기를 이렇게 일러주고 있습니다. ▶사자를 살려낸 생쥐가 어느 날 사자들의 사은회에 초청을 받았습니다. 성대한 잔치가 베풀어지고 생쥐는 술에 잔뜩 취했습니다. 그러자 생쥐는 차츰 간이 부풀어 기고만장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아주 조그마한 생쥐라는 사실을 까먹게 잊어버리고, "그물 안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는 사자를 내가 구해 주었지! 내가 사자 보다 더 강하지 않는가?" 하며 거드름을 피었습니다. 사자 쪽에서 듣고 있기가 민망했지만 좋으나 굳으나 생명의 은인이기 때문에 어찌 할 바가 없어서 그냥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러자 점점 더 방자하게 굴면서 돌아다니던 생쥐는 마침내 사자에게 밟혀 개미의 밥이 되어 버렸다는 이야깁니다.
자기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고 교만하다가 죽어버린 생쥐를 보면서 무엇을 느낍니까? 봉사를 해도 겸손한 마음으로 해야합니다.

 

▶10절 이하를 자세히 보면, 봉사의 네 가지 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①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하라!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는 여러 가지입니다. 봉사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은사를 주셨습니다(고전12:4-11).
가르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가르치는 일을 해야 합니다(교사/구역장).
위로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위로하는 일을 해야 하고, 노래 잘 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찬양대로 봉사하고, 전도 잘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전도하는 일로, 섬기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섬기는 일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아무 은사도 없다고 말합니다. 아닙니다. 다 주셨습니다.
●동물 농장에서 동물들이 각각 자기 자랑을 합니다. 말이 강아지를 보고, "난 주인의 짐을 날라다 준단다. 그래서 주인이 나를 최고로 안단다. 그런데 너 꼬마 강아지는 주인을 위해 짐을 날라다 준 일이 있니?" 하고 놀려댔습니다. 이번에는 소가 자기 자랑을 합니다. "나는 주인 마님에게 젖을 주고 치즈와 버터를 제공하고 있지? 그래서 주인이 나를 최고로 아는 거야! 강아지 너 젖이 나오니?"
양은 주인에게 따듯한 털옷을 제공하기 때문에 자기가 최고라고 우기고, 닭은 주인에게 맛있는 계란을 주기 때문에 자기가 최고라고 우깁니다. 그리고 고양이는 주인에게 쥐를 없애 준다고 자기가 최고라고 자랑하면서 강아지를 몰아 세웠습니다. 강아지는 아주 기분이 나빴습니다. 자기는 주인을 위해 아무 것도 해 줄 일이 없는 것 같아 우울해졌습니다.
그런데 그 날 저녁 주인이 밭일을 마치고 피곤한 몸으로 돌아 올 때, 강아지는 예전과 같이 꼬리를 흔들면서 깡쭝깡쭝 뛰면서 주인을 반겼습니다. 주인은 그런 강아지와 한참 놀다가 강아지를 가슴에 안으면서 하는 말이 "난 아무리 피곤해도 너의 재롱을 보면 확 풀린단다. 너는 최고야!"
여러분! 강아지도 주인을 기쁘게 하는 재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각각 재능을 주시고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더 좋은 은사를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고전12:31절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이유가 무엇인가?
엡4:1절에 보면, ⑴성도를 온전케 하며, ⑵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⑶봉사의 일을 하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직분을 주신 이유, 은사를 주신 목적은, 바로 봉사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받은 자는 누구든지 그 직분대로 봉사를 해야 합니다. 직분을 받고도 봉사하지 않으면 그것은 직무유기가 됩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 받은 은사를 잘 개발해서 주를 섬기고 형제를 섬기고 이웃과 하나님의 교회를 잘 섬기면 천국의 상급은 따놓은 추첨권입니다. 할렐루야!

②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라!
선한 청지기가 누구인가? 충성으로 봉사하는 사람입니다.
충성이란, ⑴내가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내가 하는 것입니다. ⑵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고 오늘 하는 것입니다. ⑶억지로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람을 아십니까? 그는 눈이 하나밖에 없습니다. 1794년 '코르시카' 섬 점령에 공을 세우고 오른쪽 눈을 잃었습니다. 그는 손도 하나밖에 없습니다. 1797년 '세인트 빈센트' 해전에서 수훈을 세웠으나 오른쪽 팔을 잃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나폴레응의 프랑스 함대를 나일강 입구 해전에서 격파하였고, 1805년 '트라팔가' 해전에서 프랑스, 스페인 연합 함대를 격변시키고 영국을 위기에서 구출하였습니다. 이 사람이 바로 영국의 '넬슨 제독'입니다. 그는 트라팔가 해전이 끝날 때 적의 총탄에 맞아 숨을 거두기 전에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무를 다했습니다"라는 최후의 말을 남기고 운명했습니다.
넬슨 제독은 참으로 맡은 일에 충성한 사람이며,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충성을 다한 군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충성심을 가져야 합니다.
청지기란 '관리자'란 의미입니다. 즉 내게 있는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인데, 그것을 잠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절대로 교만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모르니까 하나님께 봉사하고도 내 것을 낸 것처럼 의시댑니다.
▶충성된 청지기는, ⑴주인을 압니다. 우리의 생명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진정한 주인입니다. /믿/ ⑵충성된 청지기는 하나님의 은혜를 압니다. 그래서 감사하면서 충성합니다. ⑶충성된 청지기는 작은 것에도 소중히 여깁니다. 여러분! 큰 것에 실패하고 큰 것을 잃었습니까? 작은 것부터 시작하십시오!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큰 것을 주십니다. ⑷충성된 청지기는 시작이 민첩합니다. 아브라함을 보십시오! 본토 아비집을 떠날 때도, 독자 이삭을 바칠 때도 그 행동이 민첩했습니다. ⑸충성된 청지기는 끝까지 최선을 다합니다. 넬슨 제독을 보십시오!
계2:10절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고전4:1-2절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③서로 봉사하라!
사랑의 원리가 그러하듯, 봉사의 경우도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대접만 받기만 원한다든지, 섬김을 받기만 원하는 것은 봉사의 질서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요13:14절에서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서로 사랑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 봉사하고, 서로 돕고, 서로 섬기는 것이 기독교인의 삶의 바른 자세입니다. 할렐루야!

④봉사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하라!(11절)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내 의지나 내 능력이나 내 주관으로 봉사하려고 하지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변함 없이 꾸준히 봉사할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 일하면 조금만 해도 피곤해 집니다. 짜증납니다. 일하다 짜증나면 내 힘으로 한 줄 아십시오! 주님께 받아서 하면 짜증내지 않고 잘 할 수 있습니다.
빌4: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가 힘써 봉사하면, 11절의 말씀처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그리고 교회가 빛나고 발전하게 되며, 개인적으로도 큰 축복의 열매가 맺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더 할 수 있는 재력과 능력과 건강을 주실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의 상급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말세에 사는 성도 여러분! 정신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합시다! 서로 열심히 사랑하며 삽시다.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어 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기 위해 힘써 애써 봉사합시다.
하나님이 우리들에게 축복하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쓰라고, 충성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해서 큰 축복의 주인공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
(2004년 9월 26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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