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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베스의 복을 주옵소서! (대상 4:9-10)

by 【고동엽】 2022. 2. 2.

야베스의 복을 주옵소서! (대상 4:9-10)

 

성경이 인명사전은 아닙니다만 창-계시록까지를 보면 수를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복 받은 사람들과 저주받은 사람, 성공한 사람들과 실패한 사람, 구원받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로 구별되어 나옵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 요셉처럼 그 생애를 길게 취급한 경우도 있고, 단 한마디로 끝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인 야베스의 경우 그의 업적이나 생애에 대한 기록이 길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고, 기도로 하늘 문을 연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야베스는 유다지파 갈렙 자손입니다. 갈렙은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 정탐군 열 두명을 세울 때 선택받은 사람이며, 그들 중에 열 정탐군이 가난안 들어가기를 포기했어도 그는 여호수아와 함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가나안땅에 들어갈 것을 소원했던 믿음이 신실한 사람입니다(민14:10).
갈렙은 후일에 가나안에 들어가서 여호수아로부터 헤브론 산지를 기업으로 분배받아 아낙 자손을 진멸하고 전쟁을 마감했으며, 헤브론 산지를 기름진 도성으로 건설한 족장입니다(수14:12-15).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야베스가 바로 유다지파 갈렙의 자손입니다. 그러니까 쉬운 말로 하면 명문가의 집안에서 그가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을 보면 그의 인생살이가 그리 순탄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야베스라는 이름의 뜻은 '수고를 불러온 자, 혹은 고통과 슬픔을 불러온 자'란 뜻으로,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라는 뜻인데, 아마도 그의 어머니가 야베스를 임신한 중에 남편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는지 아니면 남편이 세상을 떠났는지 아니면 그를 낳을 때 난산했기 때문에 죽을 고생을 해서 낳았다고 해서 그의 이름을 야베스라고 지었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야베스의 인생이 하는 일마다 '수고, 고통, 슬픔' 뿐이라 해서 이름을 그렇게 지었을 것이라고도 합니다.
그의 이름의 뜻대로 사실 그의 인생의 전체가 고통의 삶이요, 괴로운 삶이요, 답답한 삶이요, 환난을 겪는 삶을 살아갔음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야베스와 같은 일을 당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됩니까?
어떤 문제가 하나 해결되고 나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지고, 그래서 괴롭고, 힘든 인생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인생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는 다른 형제들보다 더욱 존귀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기도로서 그 인생의 운명을 바꾼 사람입니다. 인간의 삶에 주어진 고통은 "기도하라"는 신호입니다. 영적인 사람은 기도로서 고통의 야베스를 축복으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기도는 내 인생의 야베스를 처리해 주십니다.
우리 모두 야베스의 기도를 배워서 야베스가 받은 그 복을 우리 모두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제목도 ◀야베스의 복을 우리도 받자!▶입니다.

 

1. 야베스는 그 형제보다 존귀한 자로 살았습니다(9)

 

존귀하다는 말은 높일 만하고 섬길 만하고 남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적어도 이 땅에 살면서 우리의 삶의 목표는 어느 정도여야 하겠습니까? 높임 받아야 합니다. 인정도 받아야 하고 사랑도 받아야 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지도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돈이 많고, 권력을 잡고, 공부는 많이 했지만 존경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공부도 많이 못했지만 존경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돈도 많고, 권세도 있고, 공부도 많이 해서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자입니다. 존경은 그 사람의 인격과 삶이 인정받을 때 성립됩니다.
어떻게 사느냐,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존경이 결정되는 것입니다.
제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다고 해도 고리대금을 했다든지, 부동산 투기를 했다든지, 마약밀수로 부자가 됐다면 존경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떼돈을 벌어 갑부가 됐다 하더라도 낮과 밤을 주색잡기나 도박으로 보낸다면 존경받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바로 벌고 바로 써야 합니다. 권력도 바로 잡고 바로 써야 합니다. 신앙생활도 바로 믿고 바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위대한 사람이었다는 칭송은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욕을 먹진 않아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존경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야베스는 어떻게 살았기에 하나님께서 존귀한 자라고 인정해 주었습니까? 그의 믿음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기도합니다. 그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사실 여기 나오는 존귀는 하나님이 높이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알고 대상17:18 "주의 종에게 베푸신 존귀"라고 했고, 솔로몬은 전6:2절 "사람은... 존귀를 하나님께 받았으나..."라고 했습니다.
존귀는 스스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받아야 합니다.
히5:4절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존귀는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시16:3 "땅 위에 있는 성도는 존귀한 자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저희에게 있도다"라고 했고, 사49:5절에서도 "나는 여호와의 보시기에 존귀한 자라 나의 하나님이 나의 힘이 되셨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존귀한 자입니다.
첫째는 가치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귀한 사람들입니까?
둘째는 쓰임새, 용도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고 있는 도구다"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의식을 통해 방종을 막을 수 있고, 세속을 막을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쓰임 받는 도구"라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존귀한 잡니까?
셋째는 우리의 주인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그리스도인들이 존귀한 이유는 생김새가 아름답거나 지식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이 귀하시기 때문에 내가 귀한 것입니다.
넷째는 하나님의 인정하심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존귀한 것은 하나님이 인정해 주시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황송하게도 우리들을 향하여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하셨습니다. 또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도 흠모하는 대상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존귀한 자라는 것입니다.
내가 그렇게 느끼던 느끼지 않던 그것은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존귀한 삶을 살아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인생의 목표입니다. 좀더 가치 있고 높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이 바로 그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베스는 그 형제들 보다 존귀한 자라" 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많은 사람들 가운데 존귀한 자로 살아가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야베스는 기도의 사람입니다(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사"
그는 이스라엘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기도하면 승리자로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만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수 있으며,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야베스는 자신의 문제를 안고, 안되고, 막히고, 얽히고 설킨 문제 덩어리를, 자신의 원함을, 자신의 성취를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간 사람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였고, 세상의 그 어떤 피조물에게 자기의 소원을 구하지 않고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그 분만을 의지했습니다. 오직 이스라엘 하나님만이 인생들에게 복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히6:14절에 하나님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이 아프고, 피곤하고, 낙심되고, 좌절되고, 답답하고, 괴롭고, 밉고, 원망이 나오고, 얽히고 설킨 문제로 고통당하고, 상하고 찢긴 문제로 힘들어하며, 마음이 세상 적으로 흘러 들어가 소망을 잃어갈 때에 하나님께 나아가서 그분께 여러분의 문제를 해결 받기를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것들을 다 맡아 주십니다. 마11: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께로 나아올 때 에 살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을 때에 문제의 해결이 있고, 하나님을 찾을 때에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 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오십시요.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찾아 나와야 합니다.

 

■그는 어떤 기도를 했습니까?
'아뢰어 가로되' '아뢰다'는 말은 '부르짖다'라는 뜻입니다. 이는 곧 야베스가 '아주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도움을 요청' 하는 모습이고, 또 '아뢰다'는 말은 '소원을 이루어 달라는 간절한 고백의 기도'입니다.
오늘부터 여러분들도 여러분들이 당한 문제와 해결을 위하여, 또 여러분의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지기 위하여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아뢰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그대로 될 줄 믿습니다.
여기 "원컨대"는 '내가 소원한다', '내가 바란다'라고 하는 간절한 소원과 소망이 섞인 기원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의 축복을 쟁취하기 위한 간절한 기대와 소원이 있었습니다. 마음속에서의 간절한 소원,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는 싸인(Sign)입니다.
빌2: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3. 야베스의 기도의 내용이 무엇인가?(10)

 

①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소서

사람들은 복을 좋아합니다. 복을 싫어하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제일 많이 인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부자 되세요' '대박 터지세요'
■그런데 복을 얻기 위해서 누구에게 복을 구해야 합니까? 주께 구해야 합니다. '주께서' 이 말씀은 복의 근원이 누구인가? 하는 문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이 주관하시고,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복을 주관하시고, 결재하시며, 베푸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이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은 하지 않고 어떻게 복을 얻을 수 있겠는가?
■'복에' 복은 두 종류가 있습니다.
■영적인 복이 있습니다. 구원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가는 것, 가장 큰복 인줄 믿습니다.
■육적인 복이 있습니다. 건강에 복, 재물의 복, 만사형통의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육적인 복은 영적인 복을 받으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요삼1:2절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복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형성입니다. 복은 하나님과의 화목한 관계입니다. 복은 하나님과 손잡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욥22:21절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 청컨대 너는 그 입에서 교훈을 받고 네 장막에서 불의를 멀리 버리면 다시 흥하리라"
여러분, 사람이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그 소유가 즐거움과 평안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그것은 복이 아닙니다. 재물은 많은데 마음에 근심이 있으면 마음에 복 받은 사람이 아니며, 유명한 사람인데도 근심이 있으면 복 받은 사람이 아니며, 지위가 높고 많은 지식을 가졌는데 그 마음에 늘 불안하고 근심이 있다면 복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복 받은 사람은 마음에 평안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재물을 갖되 즐거움이 함께 있는 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잠10:22절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심으로 사람을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신다"
■'내게 복에 복에 복을 더하사'
지금 현재 있는 것 위에 더 큰복으로 채워 주소서, 더 많은 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다윗이 고백한 '내 잔이 넘치나이다'의 복 인줄 믿습니다.
이 복은 은혜 위에 은혜의 복이요, 능력 위에 능력의 복이요, 자손 만대로 이어지는 축복입니다.
출20:6절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보태기의 종교입니다. 플라스 종교입니다. 누가 복을 받아야 합니까? 네가 받아야 합니다.
야베스는 이미 받은 복이 있는데 그 위에 복을 더해달라는 것입니다. 복은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받을수록 좋고 더할수록 더 좋은 것입니다.
저는 뺄셈보다는 더하는 셈을 좋아합니다. 나누는 셈보다는 곱셈을 좋아합니다. 100에다 100을 더하면 200이 되지만 100에다 100을 곱하면 1만이 됩니다. 축복과 은혜는 덧셈이 되고, 곱셈이 되어야 합니다.
'복에 복을 더하여'
㉠작은 복에서부터 큰복에 이르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육신의 복에서부터 신령한 복에 이르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부모의 축복이 자손 대대에 이르는 복입니다.
㉣끊임없는 축복입니다.
물질 위에 물질을, 건강 위에 건강을, 사업 위에 사업의 복이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여러분 정말 이렇게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야베스처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여 나에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셔서 그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이제 이 복을 받으려면, 복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시1:1-2절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이런 것들을 한마디로 이야기하자면, 시73:28절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하리이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복위에 복을 더하는 길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기를 바랍니다. 찬송으로, 말씀으로, 기도로, 예배로, 봉사로, 드림으로 가까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②주께서 나의 지경을 넓혀 주소서

이것은 곧 자기의 생존 세계에서의 활동 영역을 넓혀 달라는 기도입니다. 이것은 어디서든지 길이 막히지 않는 형통의 복을 구하는 기도입니다. 성도들의 활동 무대는 결코 제한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동서남북이 성도들의 활동 무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하셨습니다(창13:14-15).
한편으로 이것은 우리가 받은 선교 사명의 영역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다로, 유다에서 사마리아로, 사마리아에서 땅 끝으로 점점 선교의 영역이 넓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경은?' 내가 치고 있는 울타리입니다. 소유한 범위를 말합니다. 즉 지금 거하고 있는 집, 사업장, 어떤 자기의 소유를 말함이요, 직분이요, 위치이기도 합니다.
㉯'넓혀 주소서' 글자 그대로입니다. 넓혀 달라는 말은, 큰 발전을 달라는 말이요, 확장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이 넓어져야 합니다.
믿음의 지경이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마음의 지경도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장막터의 지경도 넓어지기 바랍니다. 월세는 전세로, 전세는 내 집으로, 내 집은 더 넓은 집으로 지경이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사업도 두 배, 세배로 넓어지고, 자신이 맡고 있는 직책도, 때를 따라 진급의 복이 있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들의 십일조, 헌금의 지경도 더 넓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의 지경도 넓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차고 넘치고, 성전터도 넓어지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모두 꿈을 가지고 입을 넓게 엽시다.
시81:10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고 하십니다.
'입을 크게 열라'는 말은, 큰 꿈, 큰 비젼을 갖고 앞을 내다보라는 것입니다. 지금 없는 것, 안 되는 것, 못하는 것을 바라보지 말고,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믿음의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막9:23절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부정적인 생각, 안 된다는 생각, 못 한다는 생각은 버리고, 하나님이 능력주시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은 빌4: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③주의 손으로 나를 도와주세요!

■주님의 손은 긍휼과 자비의 손입니다(눅15:20). 탕자와 같이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워 주는 손입니다. 사41:10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했습니다. 주의 손이 우리를 붙들어 주시면 그 누구도 해하지 못합니다.
■주님의 손은 크고 능하신 권세 있는 손입니다. 시편기자는 시89:13절 "주의 팔에 능력이 있사오며 주의 손은 강하고 주의 오른손은 높으시니이다"고 했습니다. 그 누구도 주의 손을 당할 자가 없으며, 그 누구도 주의 보좌보다 높이 오를 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때 자만했던 베드로는 이 사실을 깨닫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벧전5:6)고 했습니다.
■주님의 손은 모자람이 없는 넉넉한 축복의 손입니다. 요6:13절 "저희가 다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개로 먹고 남은 조작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손들어 축사하시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를 남기는 넉넉한 손입니다.
■주님의 손은 아브라함, 모세, 다윗, 바울과 베드로를 잡아 주신 손입니다. 그 손이 저와 여러분들을 붙잡아 주실 줄 믿습니다.

④환난에서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환란이 외부에서 온 환경적인 것이라면, 근심은 내부에서 온 심리적인 요소입니다. 사람이 외적인 것보다는 내적인 것에서 잘 넘어집니다.
인생의 삶은 문제의 연속입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이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경이 넓혔으니 환란도 많은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에게 문제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모리아산은 하나님의 언약을 확인하는 축복의 기회입니다(창22:12).
야곱의 얍복나루는 그 생애에 잊을 수 없는 고뇌의 순간입니다. 앞으로 가자니 형의 공격이 있고, 뒤로 물러서자니 외삼촌 라반과 맺은 언약이 있습니다. 진퇴양난에 빠진 그는 기도함으로 환란을 벗어나게 되었습니다(창32:25).
모세는 홍해 앞에서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출14:13)고 했습니다.
욥의 고난은 갑절의 축복을 받는 기회였습니다. 욥23:10절 "나의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고 했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이름은 운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그 이름은 그 인격과 그 생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사람을 쓰실 때에 그 이름을 먼저 바꾸셨던 것입니다.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야곱을 이스라엘로, 시몬을 베드로로, 사울을 바울로 바꾸신 것입니다.
야베스의 고통은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고통입니다. 그러나 그는 기도함으로 그 인생의 운명을 바꾸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에게는 운명이라는 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기도는 내 인생의 야베스를 처리해 주십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근심'이라는 단어는 "메리조"(분리시키다, 나누다)라는 말과 "누우스"(마음)라는 말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근심이란 마음이 둘이나 셋으로 분리되고 나눠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찰스 스윈돌'은 '다시 웃자'라는 자신의 저서 속에서 기쁨을 빼앗아 가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하나는 근심입니다. 근심이란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는 일에 대한 터무니없는 염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던 일들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은 스트레스입니다. 스트레스는 근심보다 더 심각한 것인데 스트레스가 쌓이면 정신과 육체를 괴롭히고 모든 질병의 원인을 된다고 합니다.
셋은 두려움(공포)입니다. 이것은 위험이나 불행이나 고통이 있을 때 느끼는 무서운 불안정인데 근심이나 스트레스처럼 기쁨을 빼앗아 가고 사람을 망가트린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근심, 스트레스, 공포는 기쁘게 살고 싶은 사람을 공격하고 파괴하는 원수인 것입니다.
근심을 해결하는 방법에 대하여 성경은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길을 보여 줍니다. 본문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했고, 요14:1절에서 주님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벧전5:7절을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또 바울은 빌4:6-7절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이런 말씀들을 합해보면 근심을 해결하는 비결은 하나님께 믿고 맡기는 것입니다.

 

4. 야베스의 기도는 응답이 있는 기도입니다(10).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여기 "허락하셨더라"는 '하나님께서 그 구하는 것을 가져 오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인생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하는 자의 기도를 응답하신다는 확실한 증표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실망을 당치 아니합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자는 결코 공수로 돌아가는 법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는 결코 망할 수가 없습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 무엇을 원하십니까? 복을 원하십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넓은 지경입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슬픔과 근심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까?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마7:7-8절 "구하라 그러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약속입니다. 진실한 약속입니다. 확실한 약속입니다.
요14: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
요15:9절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야베스의 이야기는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 하셨더라'로 끝납니다. 드라마나 영화로 치면 해피 엔딩입니다.
잠10:22절 "여호화께서 복을 주심으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 복을 주시고 근심은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나를 괴롭히고 근심과 걱정을 주지만 하나님은 내게서 근심을 물리치시고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근심, 걱정의 반대는 기쁨과 평안입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근심을 털어 버리고 기쁨과 평안을 주안에서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3년 2월 16일 대예배 설교)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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