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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로마서 13:1-7
제목: 국가 공권력의 정당성과 그 한계
여기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말이 나오죠? 이 하나님의 사역자. 4절에 그죠?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말뜻이 바로 천사라는 뜻입니다. 천사. 하나님의 천사 또는 하나님의 집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집사. 그러니까 하나님의 디아코노스, 우리 교회 집사님을 디아코노스라고 그러죠? 하나님의 통치를 양심을 다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궁극적으로 실현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국가는 뭐냐 하면은 하나의 통치를 소극적으로 최소한도로 실현하는 곳이 국가거든요. 국가는 뭐냐 하면은 야만과 문명의 경계선상에서 국가 바깥에 나가면 야만 사회가 되는 거죠. 그때는 각자 자기가 자기를 지켜야 됩니다. 그러니까 국가 공권력이 법치주의를 구현하지 못하니까 국가 공권력의 통치 아래 있지 않으면은 야만 사회가 되는 거죠. 그래서 로마 제국이 바울 시대 때 이렇게 국가에 대해서 낙관적 견해를 가졌던 이유가 있는데 바울이 로마 시내를 다녔을 때 로마가 엄청난 법치주의가 작동하는 사회였다는 것을 공공연히 암시합니다. 사도행전 보세요. 사도행전 보면은 로마 시민인 바울이 재판 없이 사람을 구금하고 구타했다고 항의하니까 지방 관리들이 두려워 어쩔 줄을 모르거든요. 실제로. 그러니까 로마는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 들어오는 사람에게 법치주의 혜택을 주었습니다. 법치주의 혜택. 그 말은 뭐냐 하면은 로마가 세계 제국을 형성할 때 처음으로 보편적인 질서, 로마의 법 아래 순종하면은 안전한 여행도 가능했고 아무 탈 없이 로마 시내를 돌아다녀도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것은 너무 낯설었습니다. 실제로. 그래서 로마 사람들은 정치의 은사가 탁월합니다. 엄청나게 정치를 잘 합니다. 그래서 로마 제국의 군대가 들어가는 곳은 압제를 행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로마 시민권을 주러 가는 거라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래서 윈스턴 처칠이 영국의 앵글로 색슨족이 언제 문명사회 진입을 했냐? 로마 군인이 Great Britain 상륙하여 주둔하면서부터 영국은 문명의 혜택을 입기 시작했다, 이런 말을 했거든요. 지금 우리가 생각하면 굉장히 기분이 나쁜 이야기인데 윈스턴 처칠이라는 영국의 위대한 정치가가 로마의 법치주의를 그렇게 많이 칭찬했죠. 그러니까 로마의 법치주의 핵심은 뭐냐 하면은 국가가 하나님의 권선징악적 심판을 대행한다고 보는 거죠.
오늘 본문 보세요. 하나님의 사역자, 디아코노스, 천사, 다시 말합니다. 국가 권력이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악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일을 한다는 말은 부분적으로 맞습니다. 그죠? 그래서 교회는 그러면 무슨 일을 합니까? 하나님의 마음 통치 그러니까 궁극 통치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통치하는 것은 어떤 국가도 감히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국가가 마음은 통치하지 못하게 양심은 국가 통치 바깥이다, 양심은 국가 통치의 치외법권 지역이다, 이렇게 해서 양심의 자유를 위협하면은 그것은 국가가 아주 악한 궤도로 일탈했다고 보는 거거든요. 그래서 북한으로 넘어간 이인모라는 장기수가 있죠? 한완상 부총리가 통일부총리 할 때 넘겨준 사람입니다. 북한에. 그런데 한완상 전부총리가 이인모를 넘겨줄 때 무엇 때문에 넘겨줬냐 하면은 양심의 조항, 그러니까 어떤 국가 권력도 사람의 양심을 지배할 수는 없다, 그러니까 공산주의가 옳다고 믿는 그 양심을 어떤 국가의 법도 지배하고 바꿀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양심의 법이라는 게 뭐냐 하면은 국가 공권력의 치외법권 지역입니다. 내가 감옥에 갇혔어도 ‘대한민국 유신헌법은 틀렸어!’ 이렇게 양심은 할 수 있다는 거죠. 그 양심을 가지고 정치 조직을 만들어서 사회질서를 교란하면은 뭐 사회질서 교란죄 정도로 처벌할 수 있지만 그런 생각을 품은 것을 단죄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유신헌법, 72년에 들어선 박정희의 유신헌법은 그 양심까지 지배하려고 그랬고, 독일의 나치 정부는 양심을 지배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양심을 지배하려고, 마음을 지배하려고 하는 모든 국가 권력은 다 국가 권력의 도를 넘어서 버린 거죠. 그런데 양심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로마는 로마 정부를 미워해도, 로마 정부를 속으로 경멸해도 국세를 바치고 속주세를 바치면은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로마 총독은 유대 사람들, 이스라엘 사람들의 존경을 원하게 아닙니다. 그냥 십분의 일의 속주세를 납부하는 그 관료적인 행동을 원한 겁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우리 하나님의 통치는 이런 관료적인 기계적 순종을 원하지 않고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해 주길 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의 본질입니다. 하나님 통치의 본질은 외적 행동에 있지 않고 마음으로부터 우러나는 지극히 자발적인 행동, 이것을 하나님은 통치한다고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를, 김회권을 하나님이 통치한다고 하나님이 기쁨을 느끼시려면은 어떤 공권력의 두려움과 위협과 감시 없이도 가만히 있는 김회권이 그냥 깊은 마음속의 확신으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해야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김회권은 나의 통치 아래 있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국가는 인간 사회를 야수적인 무법천지 사회로 전락하는 것을 막는 문명과 야만의 경계선상에 있는 하나님의 디아코노스, 사역자다. 우리 국가를 사역자로 봐야 됩니다. 이때 이 국가는 뭐죠? 법치주의를 구현하는 국가입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 완벽한 법치 국가가 있습니까?’ 물론 없지요. 불완전하지만 법치주의를 구현하는 모든 정부는 하나님의 디아코노스입니다. 그런데 이 디아코노스가 국가 공권력이 생긴 이유가 뭐냐 하면은 위에 있는 권세들이 생긴 이유는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세상에 국가 공권력이 들어서게 만드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여기가 아주 중요합니다. 여러분 국가 공권력이 언제 생겼냐 하면은 함께, 지나치게, 촘촘하게, 모여 살 때 국가 공권력이 필요합니다. 개인이 흩어져 살 때는 아무도 아무에게 정치 활동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5시간 동안 말을 타고 만나는 이웃끼리, 5시간 동안 자동차를 타고 만나는 이웃끼리는 반상회를 할 필요도 없고, 선거를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충분히 멀리 떨어져 사는 흩어져 사는 개인들은 정치가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 네안데르탈인이나 하이델베르크인이 동굴 안에 살 때도 정치가 있었습니다. 왜? 촘촘히 모여 살았기 때문에. 촘촘히 모여 사는 모든 모듬살이에는 항상 권세가 있고 위계질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존의 부족사회에도 인디언 모든 사회에도 전부 다 정치가 있습니다. 그런데 흩어져 살면 정치가 없죠. 그래서 로마의 법치주의는 주후 1세기 세계가 너무나 좁혀져서 너무나 교류가 활발하고 엄청난 교역이 활발해서 지나칠 정도로 인간이 가까이 살기 때문에 거대한 제국이 이것을 질서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될 만큼 국제적 권력 그러니까 한 지역을 뛰어넘는 보편권력이 필요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로마 제국을 세우셔서 문명과 야만의 경계선상에서 딱 법치주의를 구현하게 하셨죠. 바울은 그 법치주의 혜택을 덧입고 로마를 마음대로 이야기 했습니다. 만일에 B.C. 63년 이전에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지중해 일대에 바다의 제해권, 바다를 완전히 장악해서 해상여행을 공권력으로 지켜주지 않았으면 사도 바울은 100전에만 태어나도 폼페이우스가 지중해 일대를 해적을 소탕해 주기 전까지는 없는 거죠. 그래서 지중해를 배로 여행했던 모든 사람들이 로마 제국을 보고 너무나 기뻐했던 이유가 지중해 일대에 배를 타고 가도 아무런 해적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진짜 로마 제국의 초기에 지중해 일대의 모든 사람들은 로마를 칭찬했습니다. 실제로. 왜? 배로 여행을 해도, 육지로 여행을 해도, 어떤 여행을 해도 안전한 겁니다. 그런데 지금부터 2000년 전에 그렇게 위대한 법치주의가 들어섰다는 것이 너무너무 기가 막힌 하나님의 은혜죠. 그래서 바울은 감히 ‘디아코노스 투 데오, 하나님의 집사로서 국가가 역할을 한다’라는 말을 했고 그래서 ‘세금 바쳐야 한다’ 요런 말을 한 거죠.
그런데 김종필이라는 사람이 한국 교회에 반정부 시위하고 데모하는 목사님들을 데리고 식사를 하면서 로마서 13장을 읽었습니다. 이렇게 오늘처럼 1절부터 7절을 읽으면서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고 했는데 왜 안하냐?”라는 말을 했는데 그렇게 이제 말하니까 너무 목사님들이 어이가 없었죠. 히틀러 치하의 독일 선전부 장관이 독일 저항 목사들을 불러서 로마서 13장 1절을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경우는 왜 잘못됐냐 하면은 권선징악으로서의 국가가 아니라 인간의 양심을 유린하고, 파괴하고, 훼손하는 짐승, 국가 자체의 권력이 야수가 되어버립니다. 국가 권력 자체가 야수가 되었을 때에는 이것은 저항의 대상입니다. 그래서 캘빈이 기독교 강요 제 2권 8장에서 십계명을 강의하면서 “부모에게 공경하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말의 뜻은 이것이다. 이때 부모는 우리를 통치하는 정치 지도자도 부모일 경우가 있는데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을 방해하는 부모는 공경 대상이 아니고 교육받지 못한 부모, 자녀보다 덜 똑똑한 부모는 공경의 대상일지라도 부모가 우상숭배를 주도하여 자녀를 우상숭배로 끌고 가고자 할 때 그 부모는 공경의 대상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어떤 중간 정치 지도자도 하나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방해할 때는 복종 대상이 아니라 저항 대상이다”라는 말을 하면서 저항의 권리를 인정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로부터 온 권세는 권선징악적 하나님의 심판 대행자로서 그리스도인의 순종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 권력 자체가 인간의 양심을 유린하고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를 박탈하고 그것을 박멸하여 국가의 모든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은 비국민으로 축출하고 추방하는 1897년 명치유신 치하에 일본 군국주의처럼 가면은 그런 국가는 반드시 하나님이 심판한다, 그것을 보여준 거죠. 그래서 일본 군국주의, 독일 나치, 두 나라는 비참하게 파멸했죠. 사실은. 1897년에 우찌무라 간조는 메이지 유신 치하의 일본 천황제도를 엄청 비난합니다. 비국민이라고 그랬습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는 오늘 대한민국 정부가 야만과 문명의 경계선상에서 하나님의 디아코노스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할 의무가 있고 대한민국 정부가 민주적 통제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는 그런 기관이 되도록 기도하고 세계 모든 정부가 그렇게 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
하나님께서 국가 권력을 세우신 목적을 깨달았습니다. 국가 권력이 국민에게 복종을 기대하기 전에 위에 있는 권세들이 하나님을 먼저 두려워하게 도와주옵시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국가 권세를 또한 우리가 두려워할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 이름 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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