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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속으로 〓/영성 교회 성장 10대 지침등(가나다순)

기독인의 사회적 참여와 책임

by 【고동엽】 2022. 1. 28.

기독인의 사회적 참여와 책임

-프란시스 쉐퍼의 사상을 중심으로

 

신 동 식 목 사

 

Ⅰ. 서 론

 

2006-2007년의 시청 앞 서울 광장과 광화문 광장은 한국 사회에 현 주소를 잘 보여준다. 진보와 보수의 진영이 분명하게 나뉘어서 한 쪽은 친미를 다른 한 쪽은 반미를 외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한국 사회가 형식적인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정착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형식적인 민주주의 모습은 다른 어떤 곳보다 기독교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특별히 광화문으로 대변되는 진보적 기독교의 모습은 그리 달라진 것은 없지만 시청 광장으로 대변되는 보수적 기독교의 모습은 놀라운 변화를 볼 수 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요즘은 보수적 기독교가 더 많은 집회를 한다. 20년 전의 고민스러웠던 교회의 모습은 볼 수 없고 자연스럽게 대 정부 투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관 운동을 하였던 시대에 있어서 세월의 유수함을 느낀다.

 

이러한 측면에서 복음주의로 대변되는 대다수의 교회들이 이처럼 과격하게 사회 참여 및 정치 참여를 하는 것은 어디에 있는가? 사회 참여에 대하여 정교분리의 원칙을 내 세우며 세속적인 일에 관여하지 말고 교회 일에나 열심 하라고 하였던 그 용감하였던 교회 지도자들이 이처럼 세속적인 일에 목숨 걸고 투쟁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이에 대한 평가와 함께 사회참여에 대한 다양한 이해 그리고 이를 기본으로 하여 프란시스 쉐퍼가 제안하는 사회참여에 대한 가르침과 한국 상황에서의 대안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Ⅱ. 본론

 

1. 사회 참여에 대하여 보수적 기독교가 관심이 높아진 이유

 

보수적 기독교 혹은 복음주의 단체가 적극적인 대정부 투쟁과 정치 참여 그리고 소극적인

사회 참여인 복지 사역에 열심을 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떠한 상황이 적극적인 사회참여의 길로 전진하게 하였을까? 이 문제에 종교 사회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사실 이러한 평가는 개인적인 판단이므로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보수적 교회의 사회 참여의 관심은 다음의 사실에서 살펴 볼 수 있다.

 

첫째 형식적 민주주의 선물

독재 정권 시절에 정교 분리의 원칙을 강하게 주장하였던 교회가 당당하게 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교회 내부의 개혁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군사정권이 사라진 후에 나타난 민주주의 선물이다. 이러한 민주주의가 교회로 하여금 세상으로 나오는 대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 주었다. 숨죽여 살았던 교회가 이제는 성경이 사회참여를 말하고 있다고 떠들 수 있었던 것은 성경 신학의 새로운 발견 때문이 아니라 정치의 민주화 때문임을 부인 할 수 없다. 물론 이 시대의 민주화에 대하여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고 말한다. 즉 형식적 민주화는 이루었지만 절차적 민주화는 아직 이루지 못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형식적 민주화라 할지라도 교회로 하여금 세상을 바라보게 한 것이다.

 

둘째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이념성

형식적 민주화가 가져다 준 사회 참여에 대한 선물이 폭발하고 광장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놀랍게도 형식적 민주화를 만들어 주었던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의 이념 때문이다. 진보 좌파의 이념을 가지고 있는 정부에 대한 반감이 광장으로 나오게 한 것이다. 특별히 친미적 이념의 기치를 가지고 있는 보수교회로서는 반미가 곧 친 공산주의로 인식되었다. 그런데 참여정부에 들어서서 대미 관계가 약해지자 이로 인하여 친미 전선에 들어서고 온갖 반공적인 용어를 사용하며 투쟁의 전선에 나선 것이다. 대부분의 보수적 교회 지도자들은 현 시국이 위기이며 곧 멸망하여 공산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이념에 대한 반감이 참여의 광장으로 나오게 된 것이다.1)

 

셋째 독재 정권 시절에 비하여 기득권이 상실됨

그러나 좀더 실질적인 것은 독재 정권 시절에 누렸던 기득권이 상실되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독재 정권 시절에는 국가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독재 정권을 비호하였던 교회는 정권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많은 혜택을 받았다. 대표적인 것이 사학과 교회가 가지고 있는 많은 혜택이다. 그러나 참여정부에 들어서서는 이러한 기득권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혜택에 대하여 딴지를 걸기 시작하였다. 교회와 목회자의 세금을 압박하고 있다. 또한 사학법 개정은2) 그 동안 많은 비리를 저질러도 문제가 없었는데 이제 그 모든 것에 제약이 온 것이다. 이에 대한 최형묵의 지적이다.

 

“진보개혁진영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자, 권력을 두고 진보·보수 양 진영 간에 일종의 경합 또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독재 권력을 지지한 대가로 보수 교회가 권력과 뒷거래를 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그 거래 루트가 차단되자, 그동안 진보 교회의 반정부 투쟁을 비난해 왔던 보수 교회가 오히려 거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화로 마음이 불편한데, 진보진영이 정권을 잡고 그 일부 인사가 정치권에까지 진입하니까 아무래도 박탈감이 더 심했을 것이다. 자신들은 뒷거래밖에 하지 않았는데 진보는 앞거래까지 하니, 배가 아프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3)

 

이것이 일반적인 이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사회적 투명성이 점점 견고해 지면서 한 동안 누렸던 교회의 기득권에 대한 위기의식이 결국은 투쟁의 자리로 나오게 된 것이다.

 

넷째 교회의 영향력의 위기

이제 좀더 소극적인 의미에서 복음주의 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아마도 교회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영향력의 상실에 기인한다고 생각한다. 영향력의 상실은 교인수의 절감을 가져왔고 현실적으로 교회 개척이 어렵다는 인식이 보편화되었고 이에 대한 반성으로 사회적 참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결국 교회 성장의 수단으로서의 사회참여가 교회 안으로 들어 온 것이다.

 

사실 통계적으로 본다면 사회 참여에 대한 교회의 역할은 모든 종교와 사회단체에 비하면 높은 수준에 있다. 그 이유는 한국 교회의 초기의 역사는 철저하게 사회적인 약자를 돕는 사역을 바탕으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병원과 학교 그리고 계몽 운동등 교회는 이러한 일에 열심을 내었으나 일제를 지나고 전쟁과 60-70년대의 독재정권을 거치면서 아주 오랫동안 개인주의와 내세주의에 빠져 버리고 만 것이다. 결국 한국 기독교의 장점을 상실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교회의 변질로 내 비치었고 결국 정체와 감소라는 위기를 가져 온 것이다.

정신을 차린 교회는 다시금 하나님 나라의 영향력을 되찾기 위하여 잃어버린 사역을 회복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90년 이후에 더욱 두드러졌다.

 

다섯째 긍정적인 측면에서 신학적 이해와 세계관 운동의 영향

이것 역시 논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오늘의 시점에서 복음적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참여가 활발할 수 있는 것은 신학적인 측면에서 성숙하였기 때문이다. 보수적인 신학의 본래 의미가 상실되고 분리주의적이며, 개인구원과 내세적 신앙을 강조하였던 것들이 제 자리를 잡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은 한국 교회에 큰 영향을 준 그레셈 메이첸의 “기독교와 자유주의”에서볼 수 있다. “기독교가 개인적이라 해서, 단지 개인적인 것에만 고취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사회적 요구에 충분하게 응한다”4) 또한 내세론에 관하여 아주 분명하게 말한다.

“기독교의 내세론은 결단코 현세의 싸움으로부터 퇴각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 주님은 자신의 심각한 사명을 띠고 인생의 혼란과 분규의 한가운데서 사셨다. 따라서 확실히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업무로부터 퇴각하여 문제를 단순화 할 수 없다. 반대로 그는 현대 산업생활의 복잡한 여러 문제들마저 예수님의 원리를 응용하는 방식을 배워야 한다.”5)

 

메이첸은 분리주의자요 근본주의자로 매도당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참여와 연합에 부정적이지 않고 긍정적인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교회에는 이러한 사실들이 잘 가르쳐지지 않았다. 그러므로 신학적으로 견고하였음에도 실제 생활에는 미치지 못하였던 것이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개혁 신학이 바르게 알려짐으로 자연스러운 사회참여와 연합활동이 가능하여 진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한 몫 한 것이 바로 80후반에 시작되어 90년도에 절정을 이룬 성경적세계관운동이 그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더구나 당시의 세계관 운동의 기본도서들은 종교개혁 신학의 기본 가르침을 중심하였다. 특별히 성경적 세계관운동은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자는 운동으로 강력한 힘을 주었고 이에 로잔 언약이 소개됨으로 복음주의 교회의 젊은 세대들이 복음적인 사회참여에 대하여 눈을 뜨게 되었다.6)

 

2. 해방 이후 한국 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한 역사

 

그렇다면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교회의 사회 참여에 대한 역사는 어떠하였을까? 간략하게 살펴보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강인철교수는 한국 교회의 사회 참여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50년대에는 교회 차원의 정치참여가 과도해서 말썽이 일어날 정도였습니다. 당시 선거 때면 한국기독교연합회(NCC), 교단, 그리고 개별 성직자 수준에서도 지나치게 정치에 개입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개신교, 가톨릭 모두 그랬습니다. 교회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선거 운동조직을 만들었고, 선거자금을 제공했으며, 교회 공식 기관지에 공공연히 선거 운동 내용을 실었습니다. 그것이 너무 심하다보니 NCC나 교단 차원의 선거운동을 하지 말자는 내부 논의가 있을 정도였습니다.

 

60년대에는 정치에서 물러나는 모습을 취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50년대에도 근본주의적인 성속 이원론에 의거해 정치와 관련을 맺지 않으려는 입장도 있었습니다. 주로 일제 말에 신사참배를 거부해 고난 받았던 그룹이었습니다. 나중에 알려진 이야기지만 고신파의 경우 60년대 말에야 고려신학교의 대학인가를 받았습니다. 그 전에는 대학인가를 받는 과정 자체가 국가의 간섭을 자초하는 위험이 있다는 정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70-80년대에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참여가 이루어집니다. NCC 가맹교단을 중심으로 민주화와 인권을 모토로 내건 정치참여가 이루어졌고, 그런 정치참여를 '하느님의 선교' 신학으로 정당화했습니다. 반면 교단차원은 아니지만 실상 정교유착에 가까운 움직임인 '국가조찬기도회'도 나타났습니다. 사실 이 모습이 기독교의 지배적 움직임이었습니다. 개신교 전체로 볼 때 훨씬 더 많은 신자들을 포함한 교단들이 그쪽으로 기울어져 있었으니까요. 과도한 분리 입장은 이때도 여전히 남아있긴 했지만 이전보다는 현격히 줄어들었습니다.

 

90년대는 70년대에 국가에 대해 저항적이고 진보적이었던 그룹은 탈정치화, 보수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는 반면, 그 동안 보수적 선택을 했던 그룹의 일부는 사회참여, 국가와의 창조적 긴장을 모색하는 것이 특징적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를 보수와 진보의 수렴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90년대로 들어서면서 상당히 다른 양상이 나타납니다. 우선 NCC의 탈정치화와 보수화가 진행되었습니다.7) 김영삼 정부가 들어섰을 때는 개신교가 국가와 지나치게 유착한다는 비판도 들어야 했는데, 이것은 개신교의 보수화를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1989년 말〈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보수교단 대부분을 묶어 내며 만들어지자 NCC는 상대적으로 왜소해졌고, 이후 양대 조직간의 세 불리기 경쟁의 과정에서 순복음교단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NCC가 탈정치화, 보수화된 반면 1980년대 말 이후 보수교단 내에서는 신 복음주의라는 신학적 흐름과 함께 기독교윤리실천운동, 한국기독학생회(IVF),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 등 여러 갈래의 사회참여 그룹들이 등장했습니다.“8)

오늘의 시점은 바로 1980년 이후의 확장된 상황이라 할 수 있고 앞서 보았듯이 보수 교회가 이념적으로 좌파에 속하였다고 생각하는 정부의 출현과 민주주의의 깃발 아래서 정치적 열심을 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눈 여겨 볼 것은 이러한 변화가 바로 1980년 후반 정확하게 말한다면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여파 속에서 싹이 낮다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프란시스 쉐퍼가 본격적으로 전해지던 시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때 처음으로 프란시스 쉐퍼가 알려졌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쉐퍼의 책은 70년대 초반에 출판되었지만 대중화된 것은 80년 후반 그리고 90년 초반이다. 이것은 한국 라브리가 설립되던 시기와 맞물린 것이라 생각한다.

 

3. 사회 참여에 대한 쉐퍼의 기준

 

이러한 현실 가운데 우리 모두는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사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책임감만으로 사회 참여를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분명한 기준이 없으면 우왕좌왕하기 때문이다. 쉐퍼는 이에 대하여 분명한 준거점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의 일생의 삶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회 참여에 대한 기준은 무엇인가? 특별히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의 근거는 성경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 참여에 대한 성경적 근거는 무엇일까?

 

바울신학자인 김세윤 교수는 네 가지로 사회 참여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제시한다. ① 기독교의 창조의 교리 때문이다.[창1] ② 이 세상이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 사업의 대상이기 때문이다.[요3:16,창1:26-30] ③ 예수가 만유의 주이시기 때문이다[빌2:9-11] ④ 예수의 사랑의 계명 때문이다.[22:34-40,25:31-46]9)

 

또한 대표적인 진보적 목사인 홍근수 목사는 사회 참여의 성경적 근거를 다음과 제시한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 , 성육신 신앙 '너희는 세상의 빛과 소금이다'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10)

 

또한 우리 시대 가운데 복음주의자 중 젊은 세대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구약 신학자인 김회권교수 역시 정치 참여의 이유를 세 가지로 강조하였다. ① 창조시 주셨던 문화명령에 대한 순종의 일환으로 정치에 참여하여야 한다. [창1:26-28, 2:15]11) ② 아담의 범죄로 이 세상은 죄와 죽음이 지배하는 땅으로 돌변하였다. ③ 구원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 전파를 위한 도구로서 정치 활동에 참여하여야 한다. 이러한 삼중적인 의미에서 정치 참여의 모본을 보이신 분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시다12)

 

신구약과 진보진영의 인사들의 사회참여 혹은 좁은 의미에서의 정치 참여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를 살펴보았다. 이에 대한 쉐퍼의 관점은 성경적인 측면에서는 동일하나 그는 역사적인 측면을 강조하고 있음을 본다. 그런 면에서 좀 더 넓은 측면에서 사회 참여의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첫째 사회참여의 성경적 근거

 

쉐퍼가 가지고 있는 사회참여의 성경적 근거는 이미 상술한 것들과 일치하지만 특별히 그의 인간론에 있어서 더욱 분명하다. 쉐퍼는 인간이 매우 특별한 존재임을 강조한다. 인간은 특별한 존재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첫째로 인간은 매우 존엄한 존재이다 둘째는 인간은 우연한 존재가 아니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고 보냄을 받은 존재이다. 셋째는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이 사람에게 굴복하게 되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피조된 사실에 기초한 것이다. 쉐퍼는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은 이 세계에 대한 통치권을 가진 존재라고 말한다.13)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재자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스리도록 허락하신 모든 것을 의식적으로 관리할 책임이 있게 되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도덕적인 책임을 부과하는 통치권을 소유 받게 하였다”14)

 

이러한 관점의 근거는 바로 창1:26-29과 2:15절의 창조명령[문화명령]에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진 인간을 향한 영원히 변하지 않는 명령이었다. 이러한 통치는 인간의 타락 이전에도 해야 할이 있었다는 것이다. 비록 인간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 통치권을 비정상적으로 사용하였지만 여전히 통치권을 소유하고 있다15).

 

쉐퍼는 이 사실에 주목 하였다. “타락사건이 인간을 하나님과 분리시켜 놓았으나, 인간과 기타의 다른 피조물과의 원래의 구별선 까지 제거한 것은 아니다. 타락한 사람도 타락 이전의 사람만큼 중요하기는 매 일반이다.”16) 그리고 이러한 관점을 창9:6절이 증명하고 있다고 보았다.17) 이처럼 쉐퍼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것이 바로 모든 투쟁의 기초로 보았다.

둘째 사회 참여의 역사적 근거

 

쉐퍼의 사회 참여에 대한 근거는 매우 견고한 역사적 전통 가운데 있다. 쉐퍼는 종교개혁의 신학과 역사적 전통에 매우 충실하였다. 특별히 영국의 청교도들의 관점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이것은 미국이 청교도의 전통을 이어 받은 나라이기도 하였지만 청교도들이 가지고 있던 사회 참여에 대한 입장이 시대적 상황에 적절한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쉐퍼는 그의 기독교 선언에서 종교개혁의 역사속에 불복종운동의 한 인물로서 장로교의 설립자인 존 낙스를 칭하면서 그에 대하여 많은 면을 강조한다. 특별히 낙스의 사상은 마틴 루터나 존 칼빈 같은 개혁가들처럼 민중지배자에 대한 거역만을 주장한대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평민들에게도 성경에 위배된 정치를 하는 관리에 대해 거역하고 저항 할 권리가 있다”고 하는 주장하였으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거역하는 일이 된다고 하였다.18)

 

이러한 낙스의 사상은 웨스터민스터 신앙고백서 작성의 한 사람이며 왕과 법을 저술한 사무엘 러더포드에게로 이어진다. 러더포드는 1637년 찰스1세가 스코틀랜드에서 장로교회를 폐지하고 성공회 예배를 드릴 것을 명하자,1644년에 『왕과법(Lex Rex)』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시민 불복종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 책에서 러더포드는 먼저 정부의 기원과 목적에 대하여 논하고, 정부의 형성에 대하여 진술하였다. 그에 의하면 정부는 인간의 간교한 꾀에 의하여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하여 세워졌고, 권선징악을 위하여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통치자는 하나님의 사자로서 권선징악을 시행하므로 하나님과의 계약 관계를 집행하고, 악한 세력으로부터 백성을 보호하므로 백성과의 계약을 집행해야 한다. 그러므로 통치자는 백성과 하나님이라는 계약 대상을 가진다. 백성이 법을 어길 때 법에 의하여 제재를 받는 것과 같이 통치자도 계약을 깰 때에 법에 의하여 제재되어야 한다. 따라서 백성이나 통치자 모두 법에 의하여 권세를 제한 받는다. 만일 통치자가 법을 어겼다면 계약을 파기한 것이므로 백성은 그에게 복종 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19) 쉐퍼는 국가에 대한 이해와 불복종의 사상적 근원이 사무엘 러더포드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쉐퍼의 사상은 청교도의 흐름에만 머물지 않고 현대 개혁주의 신학의 중심인 화란의 개혁주의자인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에 함께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쉐퍼의 사상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던 한스 로크마커는 바로 아브라함 카이퍼의 제자이다.20) 이러한 일련의 흐름으로 볼 때 쉐퍼가 가지고 있는 사회 참여의 근거는 철저하게 종교개혁의 사상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4. 사회참여의 실제

 

쉐퍼가 가지고 있던 전제가 견고한 만큼 그의 사역 역시 지치지 않았으며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쉐퍼가 보여준 사회 참여의 실질적 모델을 크게 세가지면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인권의 문제로서의 낙태

 

쉐퍼가 현실에 직접적인 참여자로서의 모습으로 변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는 바로 1973년 1월22일 미합중국 대법원의 로우 대 웨이드 사건 및 도우 대 볼톤 사건을 판결하면서 헌법 안에는 새로운 권리 또는 자유가 존재한다고, 즉 어느 때에든지 여자에게는 낙태할 권리가 있다고 판시한 사건이었다.21) 쉐퍼는 이 사건이 중요한 전환점이 되리라 생각하였다. 낙태는 단순한 하나의 독립된 현상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놓는 동시에, 인간을 “마음대로 처분 할 수 있는 쓰레기”조각으로 환원시켜 버리는, 물질주의적 세계관의 극단적인 한 결과로 보았다.22) 쉐퍼는 이 사건 이후에 적극적인 운동을 펼친다. 쉐퍼는 1979년에 에버레트 쿠프박사와 함께 『인간,그 존엄한 생명』(Whatever Happened to the Human Race?)를 저술하고 프랭키 쉐퍼와 다시 영화를 만들고 강연을 하면서 낙태 반대 운동을 하였다. 쉐퍼는 낙태반대운동의 실천은 바로 우리가 지금 이 자리에서 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 운동의 주체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라는 것을 강조하였다. 그럴 때에 변화가 주어질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낙태 반대는 인간에 대한 성경적 이해를 가졌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그는 낙태 반대 운동에 대한 자세에 세밀하게 강조하였다.

 

“첫 번째로 낙태와 영아 살해, 안락사에 관하여 당신 자신이 먼저 인식하고 당신의 가족을 교육하고, 이웃들을 교육하라. 그들에게 아직 태어나지 않은 뱃속에 있는 태아의 발당 과정에 관하여 사실을 말하라. 그리고 태어나지 않은 태아에 대한 의학계와 법조계의 사례를 설명해주라.

둘째, 여러분의 이웃과 공동체 안에서 낙태를 하는 일이 없도록 설득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진작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라. 신문을 일고 편집자에게 편지쓰기 운동을 전개하라.

셋째, 교회들은 생명분제들에 관한 교육을 위하여 또 하나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장년 주일 학교에서 이 문제들에 관하여 토론하도록 하고, 특별한 연사들을 초빙하여 세미나를 개최하고 주일 저녁 예배 시간에 설교하도록 한다.

넷째, 생명의 옹호의 목소리가 필요한 사회를 향하여 특별한 세미나, 토론의 광장등이 있음을 인식시켜라.

다섯째, 정치 분야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많다.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주의 권리는 유권자들을 조직하여 생명 옹호 후보자를 당선시키기 위한 노력하라.

여섯째. 특수 아동을 가진 부모들 역시 우리의 도움이 필요로 한다. 계획을 짜서 일주일 동안 스케줄을 만들어 교회의 지체들이 그 아이를 보살펴주고 그 부모에게 꼭 필요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은 낙태를 시켜주는 개인 병원과 종합 병원을 감시하고 이 사회가 묵과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23)

 

둘째 환경문제

 

쉐퍼는 환경문제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강조하였다. 사실 환경파괴에 대한 원인을 기독교의 개발주의에 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 쉐퍼는 환경의 문제는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있었으며 환경문제는 성경의 가르침으로 돌아갈 때 회복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사실상 교회는 낙태에 대한 관점에서 보았듯이 환경에 대하여도 그리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 쉐퍼가 보여준 환경에 대한 진단과 이해 그리고 대안은 교회에 중요한 경종을 울렸다. 아쉬운 것은 쉐퍼의 이러한 사상이 오늘 한국교회에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다는 것이다. 쉐퍼는 “공해”라는 책을 통하여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쉐퍼는 기독교적 자연관의 시작을 창조에 있으며 자연이 그 자체로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상경적인 자연관이라고 하였다.24) 자연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은 그것이 아름답다는 미학적인 관점이 아니다. 자연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만물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모든 만물은 보존 될 것이며[창9:8-17] 모든 것이 질서 있게 다루어 질 것이기에 자연을 존중 하여야 한다고 보았다.25). 또한 자연을 존중히 여겨야 하는 것은 창조의 사건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것이 피조물에 대한 존엄함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피조물에 관심을 두고 게시며 그것을 멸시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인이 플라톤적인 자연관을 갖는 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며 성경적으로 볼 때 완전히 틀린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존재인 나 자신도 역시 피조물인고로 다른 피조물을 경멸해서는 안 된다.”26)

쉐퍼는 기독교만이 실질적인 치유를 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쉐퍼는 이러한 치유의 근거를 하나님의 창조와 인간의 지배권 혹은 통치권에서 찾는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에 대한 존중과 하나님의 방법대로 다스리는 것이 타락하여 무질서해진 자연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치유인 것이다. 그래서 쉐퍼는 교회가 이 일을 감당 할 수 있어야 하며 또한 그러한 일을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는 교회가 "실험공장"이 되어서 인간의 반역이 만들어 낸 모든 분리와 소외 현상을 교회의 회중들과 선교 사역 속에서 실질적으로 치유하는 모습을 사람들로 볼 수 있게 해주어 한다고 하였다.27) 쉐퍼는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려면 두 가지 선택 즉 경제적인 문제와 시간의 문제에 있어서 초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탐욕과 조급함의 문제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환경을 파멸로 이끌지 않는 것으로 보았다.28) 쉐퍼는 이 일을 기독교 공통체가 보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공동체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에게 땅을 훼손시킬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남자들에게 여자를 확대할 권리를 주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가 할 일은 이익이 좀 덕더라도 자연을 남용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그 첫 단계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 또는 기독교 공동체로서 우리 자신이 먼저 어떤 형태로든 탐욕을 위해서 우리의 어여쁜 누이인 자연을 훼손시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29)

 

특별히 쉐퍼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하여 의미 있는 제안을 한다. 그것은 “제한의 원리”를 인식하라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할 수 있다고 해서 하고 싶은 모든 일을 다 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절제하지 않으면 자신의 인간됨이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쉐퍼는 이것을 자연의 영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자연은 그 자체로 하나님이 주신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자연을 함부로 취급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이 만드신 것을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쉐퍼는 기독교적 자연관을 회복하는 것이 모든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이것 즉 기독교적인 자연관을 알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생태학이 있을 수 있고 아름다움이 흘러넘치게 되며 심리적인 자유가 생겨나게 되고 세상이 사막으로 변하는 것이 멈추게 된다. 기독교적인 모든 체계를 기초로 해서 볼 때 그것이 옳은 일이고 그 모든 체계는 이 모든 일을 고수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튼튼한 것이고 또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나는 서서 미나리아 제비를 바라볼 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와 같은 피조물아, 나와 같은 피조물아, 나는 일부러 너를 밟고 걷지는 않으련다. 우린은 같은 피조물이잖니?“30)

 

셋째 시민불복종 운동

 

쉐퍼는 1981년에 복음주의 교회에 떨어진 폭탄31)과도 같은 책을 저술하였다. 이 책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독재정부에 저항하든지 아니면 그들을 너그럽게 용서하든지 둘 중의 하나라고 선언한 『Christian Manifesto기독교 선언(1981)』이었다. 이러한 행동에 대하여 쉐퍼에 대한 적극적인 비판세력이 생기기도 하였으며, 그러나 어떤 이들은 이 책을 통하여 큰 자극을 받기도 하였다. 『Christian Manifesto기독교 선언(1981)』은 쉐퍼로 하여금 처음으로 정치적 행동주의자라는 이름을 갖게 했다.32) 그러나 쉐퍼는 오히려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침묵을 비판하였다.

 

“우리는 그들도 거의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보아왔던 지도자들은 과도하게 염세적인 기독교, 즉 플라톤적 영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영성은 삶의 전 영역에 걸친 그리스도의 주권을 주장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종종 영성은 매우 작은 영역에 가두어 졌습니다. 종종 복음주의자들의 궁극적인 목적이 자신들의 계획만을 보호하려는 것처럼 보여 졌습니다.”33)

 

쉐퍼는 18세기의 부흥운동을 찬양하는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18세기 부흥운동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강조한다. 18세기의 부흥운동의 요체는 개인 구원운동과 더불어 사회참여 운동도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앞에서 살펴보았던 웨슬리,휫필드, 샤프츠베리경, 윌버포스 뿐 아니라 휘튼대학의 설립자인 블랜처드, 그리고 오벨린 대학의 학장이었던 찰스 피니와 같은 복음주의자들은 노예제도와 같은 사회참여에 놀라운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34). 쉐퍼는 이들 모두는 단호하게 “만약 법이 옳지 못하다면 불복종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면서 오늘날 복음주의적 지도자들이 이러한 유산을 잃어버렸다고 꼬집고 있다.35)

 

쉐퍼는 좀더 구체적으로 국가의 독재적인 모습에 대하여 그리스도인이 하여야 할 일을 무엇인가? 그리스도인이 국가에 대하여 가져야 될 한계선[Boottom Line]이 무엇인가? 인식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쉐퍼는 롬13:1-4절의 말씀을 통하여 국가는 하나님께서 자율적인 권위가 아닌 대리자로서 권한을 국가에 주셨다고 보았다. 즉 국가는 정의를 실현하는 대표자가 되어야 하며, 그릇 행하는 사람에게 징벌함으로서 악을 견제하고 사회 안에서 선을 보호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직무를 감당 하지 못할 때는 참된 권한을 얻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다. 또한 베드로전서2:13-17에서도 국가는 악을 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옳은 일하는 사람을 격려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36)

 

쉐퍼는 국가에 대한 이해와 시민 불복종의 모습을 역사적으로 사무엘 러더포드의 『Lex Rex』에 두고 있다. 러더포드는 17세기 특유의 “왕의 천부인권” 즉, 왕이나 국가가 하나님의 사신으로 권한을 부여 받았기 때문에 왕의 말이 법이라는 사상을 공격하였다. 그는 모든 인간은 왕이라 할지라도 법의 지배 아래 있으며 그 위에 군림 할 수 없다는 것이다.37)

쉐퍼는 이러한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가르침 아래 시민 불복종 운동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좌시하였다. 쉐퍼는 자기가 말하는 문장에 주의를 기울일 것을 강조하였다.

 

“만약 시민 불복종과 같은 한계선이 없었다면 국가는 자율적이 되었을 테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절대적으로 자명한 이치입니다”38)

 

위에서 보듯이 쉐퍼는 인권, 환경 그리고 정치적 시민 불복종에 있어서 매우 분명하였다. 그리고 실천적으로 행동하였음을 본다. 쉐퍼는 행동하는 개혁주의자였다.39) 쉐퍼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사회, 정치, 법, 문화, 환경의 문제에 참여하여 불의한 것을 알리고 막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사회에 대한 책임과 의무라는 것이다. 프란시스 쉐퍼는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실제적 현실주의자이다. 또한 그는 현실을 바로 알고 경고한 선지자였다. 그는 공허한 정치가도 아니고 연설가도 아니다. 그는 선지자의 가슴을 가진 현실주의자였다.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온 선지자적 현실주의자였다. 그는 이렇게 외친다.

 

“만약 우리가 성경의 명령되어 있는 기독교적 대안들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성경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적절한 단계에서 정치적, 법적 수단으로서 시민 불복종의 한계선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역시 성경대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40)

 

5. 프란시스 쉐퍼가 주는 교훈

 

앞에서 쉐퍼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보았다. 쉐퍼는 낙태 문제와 환경문제에 대하여 이론적인 문제만을 제기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일이 실현되기 위하여 정치적인 압력은 물론이고 실질적인 대안까지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자면 낙태 반대를 하면서 피켓을 들고 시위의 현장에 있기도 하였지만 동시에 미혼모들을 위한 대안 공동체도 만들어 운영하였다. 또한 정치의 중심지인 워싱턴의 장가에 자주 찾아가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으며 영화를 만들어 보급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민 불복종의 운동의 타당성도 분명하게 강조하였다. 단순히 정신적인 동의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천의 현장에서 서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쉐퍼의 모습은 진정한 기독교의 참 모습을 회복하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종교 개혁적 신학의 본질을 회복하여 준 것이다. 그 동안 잠들어 있던 교회의 침묵을 깨운 선지자였다고 할 수 있다. 쉐퍼는 그러한 측면에서 우리 시대에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다.

 

첫째는 사회 참여에 대한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기준이 분명하여야 한다.

쉐퍼는 자신의 전제에 충실하였다. 특별히 성경 무오에 대한 확고한 신앙은 종교 개혁의 전통에 서 있었다. 성경과 역사적 개혁신학에 견고하였기에 그의 사역역시 견고하였다. 복음주의 계열의 사람들에게 비판을 받았음에도 그는 자신의 전제가 견고하였기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사회참여에 대하여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관점이다. 사회참여는 견고한 세계관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둘째는 기독교 현실주의에 대한 인식이다

쉐퍼는 문화의 전 영역에서의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새롭게 하여 주었다. 특별히 문화의 실제성을 보게 하였고, 세계관의 이해를 가지고 사물을 보게 하였고, 분열된 진리를 기독교의 관점으로 통합할 수 있게 하였다. 그러므로 현실 속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자각하게 하여주었다. 특별히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강제의 명령을 하는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복종과 무력의 사용 등의 주장은 우리의 신앙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것이었다. 신앙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며 적극적이며, 생명의 싸움임을 보여 주었던 것이다. 그는 실로 현실을 아파하는 심정을 가진 개혁주의 행동가였다.

쉐퍼에게 있어서 성경은 현실적인 책이며, 현실의 진리에 관한 책이다. 이러한 그의 신앙은 그리스도인의 삶도 예외가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삶의 전체영역에서의 그리스도가 주가 된다는 그의 고백은 교회 안에서 만의 그리스도인임을 자랑하던 대다수의 복음주의자들에게 분명한 경종이었다. 특별히 이러한 사고가 단순히 쉐퍼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기독교 개혁주의의 전통을 20세기 후반의 시점에서 재천명 하였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바른 신학위에 바른 신앙이 있을 수 있음을 보여 주었고 ,바른 신앙은 현실의 사회를 바로 보는 것을 웅변하는 것이었다.

 

셋째 침묵에 대한 경고이다.

쉐퍼는 현실에 대하여 기독교가 침묵하는 것은 악의 세력에 대하여 동조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의 위기라고 본 것이다. 그러기에 기독교가 삶의 모든 것에 있어서 진리라면 이런 시대에 대하여 대답을 주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쉐퍼는 우리 시대를 향하여 실제적인 제안을 하고 있다.

 

“첫째로, 우리 자신들이 우리의 영적 자녀들을 위하여 우리는 기억만이 아닌 강력한 기독교가 필요하다41).즉 지금은 기독교가 세속적인 면이나 신학적인 면에서 상대론적인 사상에 침륜되지 않도록 해야 할 때이다. 지금은 교회가 진리를 가진 진정한 혁명세력임을 강조해야 할 때이다42).둘째는 우리 기독교는 참으로 보편적이어야 하며 사회 전 분야에 관련되고 세계 전 사회에 관련되어야 한다43).셋째, 그대들의 집을 공동체를 위하여 개방하라44), 넷째, 여러분들의 교회를 공동체를 위하여 구성하라,45)

쉐퍼는 침묵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교육과 가르침과 행동으로 기독교는 침묵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 미래역사가 알린 미글리아조[Arlin Migliazzo]는 쉐퍼의 이러한 분명한 모습에 대하여 말하였다.

 

“쉐퍼는 나에게 그리스도인들이 벙어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46)

 

이 시대의 싸움은 교회와 사회를 파괴하고 있는 세계정신과의 싸움이다. 이들을 향하여 성경적 진리를 믿고 있는 자들이 외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쉐퍼가 지적하였던 우리는 그리스도의 대의가 상실된 세상 속에 살게 될 것이다.

 

“훗날의 역사는 이 시대를 회고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것이다. 즉 몇몇 ”복음주위적 대학들은“하버드와 예일의 전철을 밟았고 몇몇”복음주의 신학교들“은 뉴욕에 있는 유니온 신학교의 길을 걸었으며 다른 ”복음주의적 조직들“은 그리스도의 대의를 영영 상실해 버린 그런 시대였다고 이야기 할 것이다.”47)

 

6. 한국적 상황에서의 대안

 

사회와의 단절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다. 오히려 사회 참여가 성경적인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참여하여야 하는가? 사회 참여에 대하여 다양한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특별히 사회 참여라고 할 때 그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이다. 사회복지의 문제에서부터 현실적인 정치 참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다.

 

1단계 접근은 사회 참여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지역 사회에 참여하는 작은 일에서부터 사회 참여에 대한 눈을 갖는 것이다. 여기에는 사회복지의 의미가 우선된다. 소외된 이웃을 살피고 함께 하며 작은 부분에서 도와주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 작은 일이 없다면 큰 틀의 사회참여는 자기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일 될 것이다. 교회 역시 이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여야한다. 물론 교회는 사회복지가 목적이 아니다. 이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는 지역을 돌보는 돌보미로써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지역에 교회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이라 할 수 있다. 특별히 소년 소녀 가장, 독거 노인, 장애인과 차상위 계층에 대한 풀뿌리 참여가 필요하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된 경건을 이루는 것이다.[약1:26]

2단계 접근으로는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NGO운동과 계몽적 성격이 강한 문화운동을 하는 것이다. 지역 사회의 틀을 공론화 하여 구조적 변화를 이끌고 사회의 담론을 이끌어 내는 기능으로서의 시민운동과 NGO운동이 2단계이다. 한국 교회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러한 접근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민운동과 NGO운동의 역할은 매우다양하다. 지역 사회의 변화를 가져 올 수 있으며, 정치적인 견제 역할과 소외 계층에 대한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된다. 사회가 민주화가 이루어 질 수록 이 운동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민운동과 NGO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가지고 있다하더라도 입법적 역할이 적기 때문에 그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기에 좀 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이것이 3단계 접근을 생각 하게 한다.

3단계 접근은 현실 정치 참여이다. 현실 정치 참여는 풀뿌리 참여에서부터 시작하여 중앙정부의 참여에 이르러 정권을 획득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교회의 정치 참여는 많은 문제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진보적인 진영에서도 동의한다.48)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정치 참여는 모두가 한결 같이 동의한다. 이제 한국 사회도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되었다고 할 수있다. 구의원에서부터 국회와 정권을 획득하는 일에 투명성을 가지고 참여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정치 참여는 법적인 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고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교분리의 원칙 아래 그리스도인의 정치참여를 막았던 지난 시절의 어리석음은 이제 배제하고 좀 더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 참여에 대하여 문을 열고 준비하여야 한다. 교회도 이 일에 문을 열어 놓고 있어야 한다.

 

이에 대하여 소극적인 측면과 적극적인 측면을 생각하므로 정리하여 본다면 다음과 같다.

“첫째는 성경이 가르치는 정부와 법에 대한 바른 교육이 있어야 한다. 둘째는 시민 불복종 운동에 대한 교회의 새로운 인식과 가르침이 필요하다. 셋째는 사회와 문화에 대한 현실주의 인식이다. 넷째는 성경적 혁명성의 인식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다. 적극적인 측면에서 첫째는 침묵하는 다수에 대한 도전을 하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정치인을 세워야 한다. 셋째 도덕적 정의와 시민의 자유를 위하여 구조 악에 실천적인 저항을 하여야 한다.”49)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문제에 대하여 침묵하지 말 것을 말씀하고 있다. 이 땅의 대리 통치자로서 우리는 그 사명을 감당하여야 한다. 특별히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야 한다. 침묵이 결코 미덕이 아니다. 투쟁하고 외쳐야 할 때 외치지 않는 것은 성경의 명령을 불순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또한 쉐퍼가 그렇게 강조하였던 사랑으로 진리를 전하는 심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마음이 없는 투쟁은 의미가 없다. 다음의 쉐퍼의 말은 기독교인의 현실 참여에 대한 중요한 선언이다.

 

“투쟁방법에 있어서 기독교적인 해결책만 사용하고 정치적인 면으로 투쟁하지 않는 것은 너무 이상주의에 치우치게 되는 반면, 기독교적인 해결책을 쓰지 않고 정치나 법적으로만 해보려는 것도 불완전하고 그릇된 생각입니다. 그 생각에 있어서만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그 결과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순종한다고 말하는 하나님 앞에서도 그릇된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해결책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성경대로 사는 것이 못 됩니다. 적합한 정도의 시민 저항의 한계선을 지키지 않을 때는 국가가 그 권위를 팽창시켜 성경대로 살 수가 없게 됩니다.”50)

 

Ⅲ. 나가는 말

 

우리는 세상에 살지만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며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말만으로는 우리의 현실을 온전하게 표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세상 안에 있지만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간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기독교인으로서 이 땅에서 산다는 의미의 구체적인 정체성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것은 총 4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우리는 기독교 현실주의자가 되어야 한다. 둘째는 우리는 비관적 선지자로 살아야 합니다. 셋째는 절망적 낙관주의자의 삶이다. 넷째는 현실적 선지자의 삶이다. 우리는 이 땅에 우연하게 보내진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과 계획 가운데 보내진 존재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의 어떠한 부분도 존귀하지 않은 부분이 없다. 우리의 삶의 참된 목적인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삶이되기 위하여 우리의 삶에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51)

쉐퍼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교훈이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 이 시대를 무관심으로 사는 것과 빈약한 가치인 개인적인 풍요와 평안만을 위하여 사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의 허락하신 삶의 현장에서 현실주의자로 그리고 비관적 선지자로 절망적 낙관주의자로 현실적 선지자의 삶을 살아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우리의 책임은 주님 오시는 날 까지 지속되어야 한다. 이 일을 위하여 지금도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시고 그 일을 맡기시고 있다. 여전히 창조의 명령과 구속의 명령이 유효하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들이 살아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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