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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 말라! (마 10:24-33)

by 【고동엽】 2022. 1. 27.

두려워 말라! (마 10:24-33)


본문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훈련시켜서 세상에 내보내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3년 동안 아주 강하게 교육하고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내시며 가서 복음을 전파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 주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보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내보내실 때 한가지 당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제 나가면 당장 어려움이 닥칠 것이고 두려움이 올 것인데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당부였습니다. 그것이 오늘 읽은 본문의 내용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엇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까? 바로 이 세 가지입니다.

 

1.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10: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마10:25)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
이것이 무슨 말씀이냐 하면 세상 사람들이 예수를 향해서 바알세불에 씌였다고 핍박을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바알세블을 귀신의 우두머리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병을 고치고 기적을 일으키니까 사람들은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에 씌어서 저런 일을 하고 있다고 핍박을 한 것입니다. 당시는 무당이나 귀신들린 사람들을 무시하는 풍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그 귀신의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사람들의 병을 고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사람들이 나에게도 그렇게 악의에 찬 누명을 씌워서 조롱하고 핍박하는데 너희들에게야 어라나 조롱이 심하고 핍박이 많겠느냐 그 말입니다. 그러니 너희는 그런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말씀을 담대하게 전하라고 당부하고 계십니다. 전도의 길에는 이 조롱과 핍박이 언제나 병행되어 따라다닙니다. 어쩌면 이것은 필수적인 양상일 것입니다.
한때 우리나라에도 신앙생활하는 것에 대해서 핍박이 많았습니다. 조롱도 많았습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이 신앙생활 때문에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당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유교적인 고정관념이 상당히 고답적인데 비해 기독교가 지나치게 행동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상당 기간 이 두 문화가 정면으로 대치했습니다 그래서 이 신앙 때문에 핍박이 많았던 나라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참 좋은 시대입니다. 누가 예수를 믿는다고 핍박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은 직장에서도 예수 믿는다고 핍박을 못하는 시대입니다. 요즘 주일에 출근시키는 직장이 어디 있습니까? 오늘날에는 며느리를 향해서 "예수 믿지 말라"하는 시어머니가 없습니다. 만일 그런 시어머니가 있다면 그분은 참으로 간 큰 시어머니입니다. 오늘은 어림도 없는 시대입니다. 오히려 시어머니들이 며느리들 눈치를 보며 시집살이를 하는 시대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이렇게 자유로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씀을 하는 분도 있습니다. 집에서 예수 믿는 것을 반대할 때는 힘도 생기고 용기도 생겨서 열심히 교회에 다녔는데 막상 자유가 주어지고 핍박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나니까 오히려 게을러지고 열심도 없어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래서 니체가 말하기를 기독교는 절대로 박해하면 안 되는 종교다. 기독교는 박해하면 할수록 더 번성하는 종교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기독교는 생리적으로 박해하면 박해할수록 더욱 왕성해지는 종교입니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해 줍니다.
그래서 사람은 어느 정도 긴장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너무 안정되고 자유하게 되면 신앙생활하는 데 긴장감이 없어지고 마음이 풀어져서 지장이 많아집니다. 농촌에서보다 도시에서 동창회가 더 잘되고 농촌 사람보다 도시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더 잘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시골에서 사는 사람은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모두가 안전 장치가 잘 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곳은 내가 태어난 고향입니다. 그곳에 내 땅이 있고, 내 집이 있고, 잘 아는 이웃이 있고, 어려서부터 함께 자란 친구가 있습니다. 무엇이 아쉬운 것이 있습니까? 사람이 고향에서 살면 긴장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고향에서 사는 사람은 그만큼 신앙생활하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고향을 떠나 도시로 가서 살면 외롭고 불안해서 안전장치를 필요로 하게 됩니다. 외롭고 허전한 생활에서는 마음의 안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고향을 떠나 도시에 가서 사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고국을 떠나 외국에 나가서 살게 되면 거의 모두들 신앙생활을 하는데 이유도 알고 보면 그런 이유들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편하고 안정되고 부족한 것이 없이 살아가는 생활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완벽한 복지제도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무력해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네델란드 같은 나라는 복지제도가 가장 잘 되어 있는 나라라고 알려져 있는데 그 나라는 대신에 자살하는 비율이 세계 최고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이 완벽한 복지제도 때문입니다. 이 복지제도는 사람들로 하여금 살아가게 하는 목적을 잃게 만들었습니다. 아침이 되어도 일찍 일어나게 하는 목적을 상실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병들지 않으려고 하는 노력의 의지를 잃게 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슨 의미로 살아갑니까?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실직을 하게 되면 수당이 나옵니다. 몸이 아프면 전액 무료로 치료를 해줍니다. 일주일에 3일을 놀고 4일만 일을 합니다. 그래도 충분히 먹고 살 수가 있습니다. 노후에는 국가에서 다 먹여 살려 줍니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 늦게까지 일을 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삶의 모습이 윤기가 없고 활력이 없습니다. 그런 삶에는 하나님이 필요 없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무력해지면 그만 사람이 귀찮아지니까 자살해서 죽어 버리는 것입니다. 얼마나 무력한 인생입니까?

그런데 여러분, 새벽 일찍 동대문 시장이나 남대문 시장에 한번 가 보십시오. 거기에 가 보면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게 됩니다. 우선 사람들이 생동감에 넘쳐 있습니다. 삶의 의욕이 충만해 있습니다. 모두들 발걸음이 빠르고 움직임이 원활합니다. 거기 어디에서 사람이 무기력해지고 삶의 권태를 느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약간의 긴장 상태에서 살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삶에 약간의 긴장이 주어지는 것도 축복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드을 세상에 내보내시면서 그런 말씀을 했습니다. "너희는 핍박을 두려워 말라." 전도자에게 있어서 적당한 핍박은 오히려 축복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핍박을 받으면 더 기운이 나고 오기가 생기고 극복하려는 의지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을 살다가 혹시 예수님 때문에 핍박이 주어진다면 그것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주님은 그런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2. 복음 선포를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마10:26)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당시는 지붕 위에서 대화하고 모임을 갖곤 했습니다. 오늘로 말하자면 옥상입니다. 마치 지붕 위에서 아래에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듯이 자신 있고 확신 있게 전하라는 말입니다.
"(마10: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고 말씀했습니다. 이것이 그 말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데 소극적으로 하지 말고 지붕위에서 말하듯이 자신 있게 전파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자신의 신앙을 세상에 나가서 확신 있게 고백하라는 말입니다.

오늘날에는 신앙고백하는 것을 아주 부끄러워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직장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인인 것을 자신 있게 나타내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뭔가 자신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또 식장에 가서 식사 기도도 제대로 못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부끄러워서 그렇습니다. 그것도 자신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얼마나 좋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을 앞에 놓고 진정 감사하는 마음으로 머리 숙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은 극히 인간다운 모습이고 또 그것이 신앙인의 자세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식사 시간만 되면 갈등이 생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서 기도를 하자니 부끄럽고, 그렇다고 그냥 먹자니 혹시 먹고 나서 체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되는 마음도 있고 해서 마음에 갈등이 생기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식사 전에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것은 부끄러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사람들이 식사하기 전에 감사 기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신앙고백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 앞에서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하고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또 사람들에게 복음의 전파 행위도 될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아! 저 사람은 그리스도인이구나. 참 그 모습이 아름답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신앙생활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얼마나 복된 일입니까?

그렇다고 해서 식사기도를 너무 길게 하는 것도 곤란합니다. 어떤 분은 식당에서 감사 기도를 시키면 너무 오래하는 분이 있습니다. 옛날 얘깁니다만 오래전에 선교사 한 분이 아이스크림을 사 가지고 오셨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앉아서 나누어 주고는 장로님에게 감사 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앉아서 나누어 주고는 장로님에게 감사 기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장로님이 기도를 하시는데 끝이 안 보입니다. 날씨는 무더운데 기도는 길고 아이스크림은 녹아서 흐르고 야단입니다. 참다 못한 이 선교사님이 "아이스크림 다 녹습니다" 하고 중단시켰다고 합니다. 개중에 그런 분들도 있습니다.
제가 중학교에 다닐 때는 예수 믿는 집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그때 학교에서 점심 식사 때만 되면 제가 곤욕을 치렀습니다. 제가 식사 전에 기도를 하는 것을 놓고 아이들이 얼마나 장난을 하고 짓궂게 구는지 기도만 하고 나면 도시락 반찬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일부러 장난을 합니다.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때마다 저는 "이것도 하나의 핍박이다"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도시락 반찬으로 맛있는 걸 싸온 날은 좀 고민이 되었습니다. 기도를 하고 나면 다 없어져 버릴텐데 왜 고민이 안 되겠습니까? 하루는 어머니가 잔치 끝날이라 닭다리 둘을 싸 주셨습니다. 그날은 어린 마음에 고민이 많았습니 . 아이들이 닭다리를 보면 틀림없이 난리 날것입니다. 잠시 눈 감고 기도하고 나면 금방 없어져 버리고 말 것이 분명합니다. 어떻게 하나 하고 생각하다가 제가 닭다리를 손으로 붙잡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문제를 간단하게 처리한 적이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용기가 없으면 못합니다. 용기가 없으면 신앙생활을 해도 변변하게 할 수가 없습니다. 소신이 없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이 무슨 신앙생활을 변변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본문에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마10: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는 것입니다. 이 말은 복음 전파는 자신있게 하고 확신을 가지고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신앙생활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3. 인간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이 말씀은 전도를 하다가 혹은 신앙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다가 핍박이 주거지거나 어려움이 주이진다 해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유를 곧이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10: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마10: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바 되었나니 (마10: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 이 말씀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먹이시고 입히시고 돌보시는데 하물며 참새보다 더 귀한 너희를 그냥 두시겠느냐 그 말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값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값을 이렇게 비싸게 매겨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선교사 리빙스턴이 아프리카로 선교하러 갔습니 . 그때는 아프리카 선교가 참 무서운 때였습니다. 맹수들이 들끓었고 식인종들이 산재해 있었고 풍토병과 환경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목숨을 내놓고 살아야 합니다. 언제 죽을는지 모릅니다. 그때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방문하던 사람들이 위험하게 선교하고 있던 리빙스턴을 보고는 참 안타까워 했습니다. 언제 흑인 식인종들에게 죽음을 당할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영국으로 돌아가면 편할텐데요" 하고 권면했습니다.
그랬더니 리빙스턴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 소리 하지 마시오. 하늘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의 희생에 비하면 이것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대답 속에는 이런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 주신 사명이 끝나기 전에는 절대로 나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하는 의식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위험하고 힘든 곳에서 선교를 하면서도 자신 만만하게 일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내보내시면서 그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가서 전도할 때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오히려 너희 영혼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우리 신앙인들이 이런 신앙적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이 세상은 한번 살아볼 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그런 삶이 곧 신앙인의 삶입니다.

여러분, 이 사순절 기간 동안 무슨 생각들을 하고 계십니까? 사순절 기간은 주님께서 고난당하시는 모습들을 묵상하면서 그 고난에 나도 동참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또 너무 편하고 용기 없이 신앙생활하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죄송해 하고 자신을 바로잡으면서 살아가는 기간입니다. 이 사순절을 보내면서 주님을 더 가까이에서 만나고 체험하며 여러분의 신앙이 더 성숙해지는 축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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