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영으로 예배하라
본문: 요 4:23-24
요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오늘 말씀에 주목해야 할 구절은 ‘하나님께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신다.’는 것입니다.
요 4:23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배하는 자를 찾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려지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그 예배자입니까?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참된 예배의 기준이 무엇인가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자의 두 기준을 말씀하셨습니다.
요 4:23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오늘은 첫째 기준에 대하여 말씀드리려 합니다. “영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영으로 예배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영이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예배를 드리다’ ("... led by the Spirit to worship the Father”)는 의미입니다. 한마디로 예배는 장소나 형식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났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리는 것을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제가 청년부를 담당했을 때, 침체된 청년부를 부흥시켜 보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조직도 개편하고 성경공부도 하고 재미있고 유익한 여러 모임도 만들고, 단합을 위한 야외예배도 나가 보았지만 반짝 효과 뿐 이었습니다.
그 때, 온누리교회 경배와 찬양 모임에 대한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곳에는 청년 대학생들이 구름같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찾아가 보았습니다.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확 하고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청년들의 모습이 놀라왔습니다. 손을 들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가? 예배가 저렇게 좋은가? 한 시간씩 찬양을 드리다니! 저는 그 때까지 청년들은 다 예배를 싫어하고 지겨워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게 해 주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예배 때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니 어떤 방법도 실패였던 것입니다.
형식적인 예배와 영적 예배의 차이를 이해하려면 아버님 추도예배와 생신잔치의 차이를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추도식 때는 주인공이 아버님이시지만 분위기가 엄숙하고 가라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생신 잔치 때는 역시 아버님이 주인공이지만 웃음소리, 노래 소리로 떠들썩합니다.
여러분이 드리는 예배는 추도식 분위기입니까? 생신 잔치 분위기입니까?
우리가 예배 때마다 예수님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자리에 함께 계신다고 믿지 않으면 형식적인 예배를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어느 교회 부흥회를 갔는데, 목사님께서 ‘설교를 가능한 한 짧게 해 주세요. 우리 교회에는 주일예배 1시간이 지나면 뚜벅뚜벅 나가시는 장로님이 계십니다.’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주님 앞에서라면 이렇게 하겠습니까? 결코 한 시간, 땡 일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칼 루이스라는 종교 철학자는 “춤추는 사람이 스탭을 밟으면서 박자를 마음속으로 헤아리고 있다면 그 사람은 춤을 추는 사람이 아니고 춤을 배우고 있는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춤을 즐기는 사람은 결코 박자를 세고 있는 사람이 아닌 것입니다.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시간을 재고 있는 사람은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관람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행복해집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회개하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면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면 세상을 이길 힘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눈이 뜨인 사람은 모든 예배가 성령충만 입니다.
여러분이 예배 때 이런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신앙생활을 근본적인 데서 다시 점검해야 합니다. 예배는 신앙생활의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예배형식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너무 형식에 안주해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서도 예배는 드렸다는 식으로 넘어가면 큰일 입니다.
얼마 전 인도로 어학연수를 간 자매가 주일에 인도 교회에 갔다가 느낀 소감을 전해주었습니다. 그 교회는 대부분 젊은이들로 구성된 30여명 정도 되는 작은 교회였는데, 대부분이 힌두교를 믿는 나라에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예배하는 모습에서 큰 은혜와 도전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들은 정말 열정적 이예요. 열정과 성령 충만함이 매주 마다 가득해요. 지난 주도 저는 성령님의 임재에 울고, 오늘도 울고.... 이들이 예배 시간에 구하는 것은 오직 성령님뿐 이예요.
성경책도 너덜너덜하고 표지는 찢어지고 없는 걸 들고 나와서 기도하는데 그 기도는 얼마나 강력한지..오늘 새삼스럽게 느낀 것이...이들의 기도는 절대 어떤 다른 것을 구하는 기도는 없다는 거예요. 이들은 모든 단어를 동원해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의 이름을 높이고, 주님의 아름다움과 위대하심과 영광을 노래하고, 주님의 임재를 사모하고, 주님의 임재를 초청하고, 오직 아름다운 날을 주신 것, 이곳에 모여 예배하게 하신 것, 오직 그 교회에 충만하게 임재하실 것....정말 그 외에 것은 어떤 것도 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오늘 깨닫고 엄청난 감동을 받았어요.
이들은 우리보다 더 못살고, 더 어렵고, 더 힘든데도 예배에는 온통 주님을 향한 찬양과 영광만이 가득하니....그래서 성령 충만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간절히 구하니 주님께서 더 강력하게 임하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라구요.
오직 주님께만 집중하고 오직 주님만 찬양하고, 온통 주님으로만 가득한 이 예배와 이 기도와 찬양들이 너무나 가슴이 벅찬 주일 이예요.
우리의 예배 기도들도 오직 성령의 임재와 성령의 충만함과 주님을 찬양함과 주님의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이름을 높이는 언어들로만 가득차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어떤 도움이나 어떤 것들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그 분만을 구하는 기도와 예배 말이예요!“
계 7:9-12, 천상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모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계 7:9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10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 11 모든 천사가 보좌와 장로들과 네 생물의 주위에 섰다가 보좌 앞에 엎드려 얼굴을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여 12 가로되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찌로다 아멘 하더라.
얼마나 표현이 강합니까? 특히 :11의 “엎드려 절하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구약에서 예배 때 가장 많이 쓰인 단어도 ?엎드려 절하다?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분위기의 예배를 드리십니까? 점잖게 좋은 옷을 입고 좋은 환경에서 편안한 의자에 앉아 예배를 인도하는 이들을 바라보며, 어떤 때는 점수까지 매기며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영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닙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가 왕으로 있을 때, 어느 주일에 왕과 왕족들이 교회에 도착했는데, 교회에는 왕실 설교자인 프넬론 대주교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깜짝 놀란 왕이 교인들이 다 어디에 갔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프넬론 대주교는, “폐하께서 오늘은 이곳에 예배하러 오시지 않을 것이라고 광고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러 오는지 아니면 단지 폐하께 아첨하러 오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미국 워싱턴 의 백악관 옆에 있는 교회에는 요즘도 “이번 주에 대통령이 교회에 나오십니까?’하고 묻는 전화가 많이 온답니다. 그러면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신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나오실지 안 나오실지 잘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늘 출석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예배드릴 때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제부터 표현이 강한 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자신의 말로 고백해 보고, 몸으로 표현해 보십시오. 표현하기를 어색해 하는 교우들이 많습니다.
하용조 목사님이 온누리교회에서 교인들로 하여금 주일예배 찬양 때, 손들게 하기까지 7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저도 찬양할 때, 손을 들기 어려웠고, 일어나기까지 어려웠습니다. 사람을 너무 의식하기 때문입니다. 손뼉을 쳐야만, 손을 들고 찬양을 해야만 구원을 받는다든지 경건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외적인 표현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할지 모르나 사실은 외적인 표현은 우리의 중심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징입니다. 이것을 body language라 부릅니다.
여러분, 벚꽃 구경, 단풍 구경, 여름에 바닷가, 겨울에 스키장에 가서는 어떻게 합니까? 소리 지르며 환호하며 얼굴은 웃음을 띠며, 두 팔은 넓게 벌리며 좋아하지 않습니까?
너무나 고마운 사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어떻게 합니까?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습니까? 얼굴 표정이 달라지고, 약간 수다쟁이가 되고, 들떠 보입니다.
영적예배를 드리는 성도도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예배는 드리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있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저는 주일 낮 예배 때 통성기도를 하게 합니다. 아마 불편하신 분도 계실 것입니다. 세련되지 못하다고 여기실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통성기도를 하면 세련된 맛이나 질서는 없습니다. 그래도 통성기도 하는 것은 교인들이 개인적으로 예배에 참여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교인들은 예배드릴 때,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목사님이 인도하시고, 대표기도하고, 찬양대에서 찬양하고, 목사님이 설교하고 축도합니다. 그러나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슬픔, 기쁨, 간절한 소원, 충만함, 외로움, 뜨거움 등등 어떻게 대표기도로 다 충족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통성기도 시간을 가지려는 것입니다.
찬양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목소리로 하나님께 직접 올려드리는 찬양을 부르게 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향하여 고백의 찬양을 담은 곡을 선택하고 일어나서 찬양하고 많이 부르려는 것입니다.
예배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불러서 나온 시간입니다.
어릴 때, 동네에서 친구들과 놀다 보면 날이 어두워졌는지, 저녁 먹을 때가 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정신없이 뛰어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면 영락없이 “들어와서 밥 먹어라” 하고 부르는 엄마들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엄마들은 왜 아이들을 불렀겠습니까? 아이들이 스스로 알아서 밥 먹으러 들어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배고플 텐데 배고픈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놀고 있기 때문에 소리쳐 불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배로 부르시는 이유는 우리가 자발적으로는 예배하러 올 수 없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 우리의 존재 목적이고 우리가 세상을 살 힘을 얻는 시간인데도 그것을 모르고 정신없이 세상만 바라보고 살기에 우리를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배는 몸으로도 마음으로도 아니고 영으로 해야 합니다.
어떤 교우가 “목사님, 오늘은 예배드릴 기분이 아닙니다.” 하셨습니다. 실제로 충만한 예배를 드릴 수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몸은 아프고 생활은 너무나 힘들고, 마음이 괴로워 예배도 신앙생활도 다 귀찮기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는 기분이나 감정으로 드리는 것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무슨 말일까요? 우리의 영은 어떤 상태일까요?
알고 싶습니까? 천국과 지옥이 갈라서는 자리에서 천국 가는 길에 설 때, 생각할수록 감격스럽지 않겠습니까? 아!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이구나! 예수님의 보혈 때문이구나! 그 때 그 자리에서 찬양하고 감격하고 감사하고, 노래하지 않겠습니까? 세상에서 돈 없어 고생한 생각나겠습니까? 병들어 고생한 생각나겠습니까? 돈 떼먹고 도망간 자 생각나겠습니까?
지금 우리 안에 있는 영이 그렇습니다. 마음이나 감정은 세상 일로 상하였을지라도 우리 영은 환경 여건 관계치 않고, 언제나 주님은 찬양하고 싶어 합니다.
영으로 예배하려고 힘쓰면 구원받은 자는 누구나 영으로 예배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1995년 1월 미국 세미나 중 호텔 세미나 룸에서 아침예배를 드렸는데, 예배당도 아니고 악기도 없는 조그만 방에서 인도자 목사님께서 기타로 30분 정도 찬양을 인도하였습니다. 그 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얼마나 감사와 고백의 시간을 가졌는지 모릅니다. 정말 주님 앞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늘씬 두드려 맞고 채찍질 당하고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그 지경 속에서도 밤새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마음에 임재해 계셨던 성령 하나님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주님과 친밀하지 않은 사람은 편안한 예배당, 좋은 설교자, 찬양대가 있어야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친밀히 동행하는 사람은 최악의 환경에서도 예배 때, 뜨거운 은혜를 받습니다.
백부장 선교사님이 한나호 사역 중 한번은 동남아에서 한국으로 오는 길에 태풍을 만났는데 배 엔진이 꺼져 버렸습니다. “죽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는 다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 때, ‘마지막 예배드리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찬양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렇게 찬양을 하니까, 쓰러져있던 선교사님들이 하나 둘 일어나기 시작하여, 함께 찬양하다가, 점점 담대해지고 나중에는 외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후 식욕이 돌아와 식사를 했습니다. 결국 한국에 도착했는데, 배 안의 음식 다 없어졌다고 했습니다. 믿음 충만하니 식욕도 충만해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러 모리아 산으로 갔을 때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치는 예배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죽은 자도 살려내시는 하나님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다 준비하신다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같은 예배를 드려도 은혜가 다른 것은 주님과의 친밀함이 다른 것입니다.
이제부터 예배 할 때마다 찬송할 때 마다 느낌과 감정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때때로 마음이 즐거울 때도 있지만, 힘들고 짜증나고, 지칠 때가 더 많습니다. 마귀는 우리 기분을 나쁘게 만드는 데는 선수입니다. 기분은 하루에도 12번 바뀝니다.
그래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영으로 예배하면 마음이 회복됩니다. 몸도 치유됩니다. 문제가 해결 받습니다.
영으로 예배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임합니다.
회개가 터지고 감사가 터지고 사랑이 임하고 기쁨이 임하고 질병이 고침 받고, 시험과 문제가 해결 받습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합니다. 이것이 영으로 예배하는 이유입니다.
찬양
예수, 우리 왕이여 이곳에 오소서, 보좌로 주여 임하사 찬양을 받아 주소서
주님을 찬양하오니 주님을 경배하오니 왕이신 예수 오셔서 좌정하사 다스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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