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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손바닥만큼 사는 인생, 세 가지를 물어라! (시 39;4-7)

by 【고동엽】 2022. 1. 25.

손바닥만큼 사는 인생, 세 가지를 물어라! (시 39;4-7)

다윗은 이스라엘 최고의 왕으로서 인생을 파란만장하게 그리고 화려하게 그리고 멋지게 살 온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뒤를 돌아보니 자기가 살아 온 날이 <손넓이만큼> 정도였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앞에서는 아예 없는 것같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살아 온 나날이 그림자 같고 재물을 쌓느라고 쌓아 보았으나 엉뚱한 사람들이 취하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오직 하나의 소망은 <오직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이스라엘 전체중에서 가장 화려한 인생을 산 사람을 들라면 솔로몬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인생을 다 살고 마지막 결론을 이렇게 내리고 있습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1;2-3)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일식 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 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시90;9-10)

 

야고보는 말했습니다.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약4;14)

 

옛 시인은 이런 시를 썼습니다.

 

<내 청춘 누구 주고 뉘 백발 가져온고.

백발이 오고 가는 길을 알았던 들

막을 것을 알고도 못 막는 길이니

그를 서러워 하노라.>

 

이렇게 짧은 인생이 물어야 할 세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1. 언제 죽을 지 물어 보라.

시편 기자는 우리에게 종말을 물어보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의 어떠함을 알게 하사 나로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내가 언제 쯤 죽을이지 물어 보라는 것입니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앞으로 나에게 남은 세월이 얼마만큼이나 되는 지 물어 보라는 것입니다.

대개 자기 아버지 어머니 중에 한 분이 세상을 떠나면 그 때부터 죽음 준비를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는 49살에 돌아 가셨습니다. 1977년에 돌아 가셨습니다. 나는 30년 전부터 죽음 준비를 하여야 했습니다.

우리 감리교 목사님 중에 8명이 8형제를 만들어서 재미있게 20년을 지냈습니다. 제일 큰 형님이신 김 우영 목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70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도 이 세상에 살 날이 10년 정도라는 것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나라 평균 수명이 여자는 79세, 남자는 72세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앞으로 얼마나 더 살 것입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9;27)

 

지금 지구상에는 70억명의 인구가 있습니다. 평균 70년 산다고 하면 지금 일년에 약 1억명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하루에 약 27만명이 죽고 있고 한 시간에 1만 1천명이 죽고 있습니다. 1분에 200명이 어디론가 가고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한 시간동안에 1만명이 죽고 있을 것입니다. 오늘 거룩한 주일에도 27만명이 죽을 것입니다. 그들이 다 어디로 가고 있습니까?

70%가 지옥으로 끌려가는 소리가 들리고 있지 않습니까?

 

알렉산더 대왕은 죽으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모든 것에 대하여 시간을 바치고 생각하여 왔지만 가장 중요한 사실인 죽음에 대하여만은 준비하지 않았구나!>

우리는 죽음을 준비하며 살아야 합니다. 죽음준비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여야 하여야 현명할까요?

한 뼘 길이만한 인생입니다.

언제 쯤 죽을이지 예상하고 살아야 합니다.

 

 

2. 누가 거두게 될 것이지를 물어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5-6)

 

우리의 생명은 손바닥 넓이입니다. 영원에 비하면 없는 것같습니다. 지나놓고 보니 모두가 허사입니다. 그림자 같습니다. 헛된 일로 열심히 일하지만 누가 취할이지 알지 못 합니다.

 

내가 알고 있는 목사님이 계십니다.

사모님에게 돈을 주어 본 적이 없습니다. 돈만 생기면 수석을 열심히 모았습니다. 3000개나 되는 수석을 모으며 즐겁게 수집광으로 살았습니다. 사람들이 와서 보고 이렇게 물을 때가 가장 기뻤습니다.

<이렇게 신기한 돌을 어디서 구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처음으로 물었습니다.

<평생 먹지도 않고 입지도 않고 모은 이 돌들이 누구 것이 될 것인가?>

생각하여 보니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남 좋은 일만 하여 준 것입니다.

그는 암 선고를 받고 그 돌들을 다 버렸습니다.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에 분요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6)

 

나는 목회하면서 가장 아픈 죽음을 기억합니다.

착실한 은행원 집사님이셨습니다. 일생동안 알뜰하게 돈을 모았습니다. 약 3억원 정도를 저금할 정도이니까 얼마나 <돈돈돈...>하며 살았는 지 짐작이 갑니다. 먹을 먹지 않았습니다. 갈 데 안 갔습니다. 쓸 데 안 썼습니다. 입어야 할 때 안 입었습니다. 겨울에 춥게 살았고, 여름에 덥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가장 친한 친구 보증을 서주었습니다. 믿을 만한 사업이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그 친구가 사업이 망해 버렸습니다. 그 빚들이 모두 자기에게 떨어졌습니다. 그는 빈손으로 양평 허허 벌판에 비닐 하우스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아내도 도망가고 말았습니다. 그는 허허 벌판에서 쓸쓸히 정말 쓸쓸이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돈만 알고 죽음을 준비하지 않은 삶의 종말이었습니다.

 

빅터 프랭클의 단편소설중에 <곡예사의 헌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난쟁이 곡예사가 있었습니다. 이 난쟁이는 거꾸로 서서 공을 돌리고 접시를 돌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즐겁게 하여 그들이 던져주는 동전으로 먹고 사는 이였습니다. 나이가 드니까 그나마 할 수가 없어서 불쌍한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신부가 이를 보고 측은히 여기면서 성당으로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돈을 조금씩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일 삶의 의미를 찾지 못 하고 생활이 지루하였습니니다.

그러던 어느 날 신부가 설교하면서 말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재능을 주님께 드리는 자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이 가슴에 자리잡았습니다. 난쟁이는 그렇게 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매일 새벽이면 성모 마리아상앞에서 거꾸로 서서 접시를 돌리고 공을 가지고 재주를 부렸습니다. 낮에는 사람들이 보면 챙피하니까 하나님만 보시도록 새벽에 그렇게 하였습니다. 어느 날 청소부가 이를 목격하고 신부에게 고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숨어서 확인한 신부가 왜 그런지 물었습니다. 난쟁이가 말했습니다.

<신부님!

내가 가진 재주란 이것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신부님이 가진 재능으로 주님을 기쁘게 하라고 말씀하셔서 그 다음날부터 이렇게 하였습니다.>

신부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렸습니다. 그 순간 성모 마리아가 내려오더니 무릎을 굽히고 한 손으로 난쟁이를 만지며 말했습니다.

<그대가 나를 기쁘게 하였노라. 그대의 땀을 내가 받았노라. 그대의 눈물을 받았노라. 그대의 재능을 내가 받았노라.>

이 모습을 본 신부님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습니다.

<오! 주시여! 나도 이 난쟁이와 같이 주님을 위하여 땀을 쏟고 재능을 바치게 하옵소서.>

이것이 <곡예사의 헌신>이라는 소설의 줄거리입니다.

재물은 없어도 재능으로 기쁘게 살면 행복한 삶입니다.

 

3. 영생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물어야 합니다.

인생의 생명은 손바닭 넓이입니다. 짧습니다. 잠간입니다. 그렇기에 영생을 주시는 이가 누구인지 물어야 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7)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공원에 가서 아침 운동을 하는 데 50대 여자가 나무에 몸치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등을 대며 생나무에 등치기를 하는 데 이런 타령 비슷한 노래를 하였습니다.

 

<자식도 헛되고(쾅!),

남편도 쓸 데없고(쾅!),

돈도 필요없고(쾅!)

다 소용없다(쾅!)

내 몸 건강한 것이 최고다(쾅!)>

 

나는 속으로 웃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건강도 소용없다(쾅!) 아무리 건강하여 보아야 70-80년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이까 가로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하라>(사40;6-8)

 

파스칼은 말했습니다.

 

<우리 중심에 공백을 두었나니 그 공백에 하나님이 계실 때까지 인간은 만족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하나님안에서 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입니다.

시골목회를 하면서 그 마을에서 최고 부잣집의 문을 전도하기 위하여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는 애지 중지 기르는 외아들이 있었습니다. 외아들 아버지가 전도하는 목사님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들이 겨우 하나인데 예수믿고 남자 새끼가 술도 못 먹고 담배도 못 하는 계집애같은 나약한 남자를 만들고 싶지 않소.>

이렇게 말하면서 냉정하게 문전박대하였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예수 잘 믿고 참으로 바른 사람으로 기르겠다고 사정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부자는 소리질렀습니다.

<당신 아들이나 잘 기르시오.>

그 후 몇 년이 지났습니다. 그 부자가 목사님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애걸하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도와 주세요. 큰 일 났어요. 우리 아들이 취직한답시고 서울로 올라가더니 알콜 중독자가 되어 내려 왔습니다. 그리고 매일 술만 마시며 땅 팔게 문서 달라고 폭력을 휘두르고 있으니 어쩌면 좋습니까? 할 수 없이 몇 번 땅을 팔아 주었습니다. 그 많던 재산을 다 날리고 이제는 집 한 채 남았는 데 그 것마저 내놓으라고 뗑깡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것마저 내놓으면 우리는 길거리에서 살아야 합니다. 아들 좀 예수믿고 술 안 마시게 좀 해주실 수 없겠습니까?>

목사님이 아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때가 늦었습니다. 진한 알콜중독에서 헤어나오기 힘든 폐인이 된 것을 알았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말하고 있습니다.

<재물을 쌓으나 누가 취할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

 

짧은 인생을 살아야 하기에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재물은 가지고 가지 못 하지만 생명은 가지고 갈 수 있기에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분이 누구인지 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래서 손바닥 같은 인생을 펑튀기 하여야 합니다. 넓혀야 합니다.

그 분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느니라>(요 14; 6)

 

어떤 노인이 세상 떠날 날이 다가오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도대체 죽은 후에는 어떤 곳으로 가게 되는 것일가?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길을 걸어가는 데 한 여인이 전도지를 나누어 주면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러면 구원을 받습니다.> 할아버지는 전도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근처 교회로 달려 갔습니다. 마침 장례식을 하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는 젊은이에게 물었습니다.

<젊은이.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젊은이가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지금은 예수님 이야기할 때가 아니예요. 죽은 사람 때문에 슬퍼하고 있어요.> 할아버지는 허탈하게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그런데 이웃에 살고 있는 자매가 와서 교회에 경로 잔치가 있으니 같이 가자고 권하였습니다. 그래서 따라 나섰습니다.

음식이 맛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재롱을 떨면서 춤도 추고 노래도 하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즐겁지가 않았습니다. 음식을 나르는 집사님이라고 하는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여보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요?>

집사님이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지금은 바빠요. 음식을 날라야 해요.>

할아버지는 지난 번처럼 허탈한 마음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 오면서 중얼거렸습니다.

<예수님은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닌가 보다. 전도자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였는 데 다시 가서 물어 보아야 겠다.> 그렇습니다.

이제 예수님에게 대하여 다시 물어 보아야 할 때입니다.

그 분만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어느 재벌이 죽기 전에 의사 세명에게 말했습니다.

<1년만 더 살게 하여 주면 10억씩 주겠다.> 그러나 의사도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어느 가난한 집이 있었습니다.

도시 생활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시골로 이사하려고 짐을 싸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돕던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딸이 물었습니다.

<어머니! 우리가 이사가는 동네는 교회가 있어요?>

<없다.>

조금 후 딸이 없어졌다가 나타났습니다. 어디 갔었느냐고 묻는 어머니에게 딸이 대답하였습니다.

<그 마을에 교회가 세워지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고 왔어요.>

그들이 이사한 3개월 후 그 마을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통하여 영생을 나누어 주는 영생 보급소입니다. 교회만이 생명입니다. 여기저기에 교회가 세워지고 주 예수님이 전파되도록 우리는 끊임없이 일하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시편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나의 날을 손 넓이 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의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마다 그 든든히 선 때도 진실로 허사 뿐이니이다.>

 

짧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세 가지 질문을 하여야 합니다.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1. 언제 죽을 지 물어 보라.

2. 누가 거두게 될 것이지를 물어야 합니다.

3. 영생을 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물어야 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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