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예수를 죽였다. (요 7;1-2, 요 19;14-16)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요 7;1-6)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저희가 소리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저희에게 넘겨주니라>(요 19;14-16)
김 찬삼 숙대 교수가 무전으로 세계 여행을 하고 나서 한 말이 있습니다.
<어느 곳에 도착하여 첫 날 보면 사람 사는 것이 다 달랐다. 그러나 3일 같이 살다 보면 사람 사는 것은 다 같았다.>
이스라엘과 우리 나라는 어쩌면 그렇게 같은 지 놀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의 최고 명절은 설입니다.
음력 1월 1일입니다. 구정이라고도 말합니다. 외국에서는 양력 1월 1일을 새 해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양력 1월 1일은 새 해입니다. 송구영신 예배도 1월 1일에 드립니다.
그런데 명절은 음력 1월 1일입니다. 정부에서는 이중 과세를 하는 것같아 구정을 없애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신라 시대부터 전통적으로 내려 온 우리 문화를 정부도 거스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 해는 양력 1월 1일이고, 음력 1월 1일은 우리 나라 최대 명절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력 1월 1일은 새 해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새 해는 그들의 음력 7월 1일입니다. 그 날은 성경에서 나팔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축제일입니다. 새 해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음력 1월 1일을 설이라고 부릅니다. 왜 설이라고 불렀을 가요?
설이면 <설빔>이라고 하여 마음 가짐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마음 가짐을 새롭게 하려면 옷부터 새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하여 전 민족이 새 옷을 설부터 입었습니다. 설을 앞두고 제일 분주한 것은 새 옷을 장만하여 두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꼬까 옷이라고 하여 색동 저고리, 치마 저고리, 바지 저고리를 새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어른들은 두루마기, 도포를 준비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신발까지 새로 준비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그래서 설이라고 하였습니다.
설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살자고 새 옷, 새 신을 신기 시작하면서 새 해를 새롭게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민족이 설에 하는 것이 있습니다.
(1) 제사
설이면 꼭 하는 것이 차례라고 하는 제사입니다.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추도예배입니다. 우리나라 풍습은 4대 조상까지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까지만 제사를 지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추도 예배를 드리며 조상을 추모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2) 세배
제사를 드리고 나서 꼭 하는 것이 어른들에게 드리는 세배입니다. 어른에게 차례로 절을 하며 축복의 말을 합니다. 이를 덕담이라고 합니다. 덕담은 꼭 주고 받아야 합니다. 세배를 하는 사람은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새 해에는 더욱 건강하십시오> <새 해에는 하시는 일이 만사 형통하시기를 바랍니다> <새 해에는 백수 향수하십시오> 이렇게 덕담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세배를 받는 어른도 덕담으로 화답합니다.
<금년에는 소원 성취하게> <금년에는 더욱 복많이 받게>
이렇게 이스라엘의 나팔절처럼 덕담을 주고 받으며 서로 사랑하고 친교합니다.
(3) 축복
세배를 마치고 나면 설에는 반드시 떡국을 끓여 서로 나누어 먹었습니다. 떡국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흰 쌀 가루를 길게 만들어 동그렇게 자릅니다. 그 것을 소고기와 끓여서 맛있게 먹습니다. 떡국은 동전을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바로 돈입니다. 축복많이 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통하여서도 서로 서로 돈많이 벌라고 축복하였습니다. 제일 좋은 고기는 꿩고기였습니다. 설을 앞두고 산에 올라가 꿩을 잡아다가 그 고기 국물로 떡국을 끓여 대접하는 것이 최고의 대접이었습니다. 그러나 꿩을 못 잡을 경우에는 닭을 썼습니다. 그래서 <꿩대신 닭>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설은 서로서로 축복을 비는 날입니다.
(4) 널뛰기
설이면 이 마당 저 마당에서 널뛰기를 하였습니다. 서로 교대로 하늘로 치솟으며 나 때문에 네가 오르고 너 때문에 내가 하늘로 치솟는 널뛰기를 하면서 서로가 잘 되기를 축복하였습니다. 겨우 내내 움쿠려 살다가 발바닥을 그렇게 부딪쳐 주면 너무나 건강하였다는 것입니다. <널을 뛰지 않으면 발바닥에 가시가 박힌다>라는 속담은 여인들의 건강으로 널뛰기 운동을 시키려는 조상들의 지혜였습니다. 그 때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널뛰기를 하였습니다.
묵은 해는 지나가고
새 해 신원을 맞았네
널뛰자. 널뛰자
앞 집에 수캐야 너 왔느냐
뒷 집에 순이야 너도 왔느냐
널뛰자. 널뛰자
만복 무량 소원 성취
금년 신수 좋을 시구
널뛰자. 널뛰자
규중 생장 우리 몸은
설노름이 널 뛰기라
널뛰자. 널뛰자
널뛰기를 마친 후에
떡국놀이 가자세라
널뛰자. 널뛰자
재미있는 널뛰기 노래가 또 있습니다.
허수자 척실루
네 머리 흔들. 내 다리 삽작
허수자 척실루
네 댕기 팔랑. 내 치마 낭넉
허수자 척실루
네 눈이 휘휘. 내 발이 알알
널뛰기를 하면서 친교하며 다른이가 솟아 오르도록 도와주는 미덕을 길렀습니다.
(5) 윷놀이
윶놀이는 이웃 놀이의 준 말입니다. 이웃들이 모여 긴긴 밤을 같이 놀며 친교하며 지냈습니다.
(6) 쥐불놀이
설날을 우리 조상들은 상자일이라고 하여 쥐불을 논뚝이 밭뚝에 질렀습니다. 모두가 논밭으로 나와 그 곳에 있는 쥐들을 멀리 쫓자고 하면서 모여 불을 놓았습니다. 이 불을 쥐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논밭뚝에 있는 해충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리는 풍습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모두가 모이는 친교의 행사이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저런 것들을 하는 것이 설입니다. 이런 명절이면 예수님을 잊어 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명절을 지내고나면 신앙생활의 맥이 끊어지기 쉽습니다.
오늘 본문을 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은 명절 초막절에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갈릴리에 계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명절에 올라가라.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그러나 기어코 유대인들은 예수님은 유월절 명절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명절 초막절에 죽이려고 하다가 못 죽이니까 유월절 명절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왜 명절에 예수님을 죽였을 가요?
다른 것에 모두 관심을 가질 때 죽이면 여론을 약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명절에 여기 저기 왔다가 갔다합니다.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납니다. 이런 일 저런 일을 합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을 잊어 버리는 명절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이번 명절은 신앙적으로 이렇게 지내면 어떨가요?
1. 기도 명절
그 동안 기도 싫컷 못 한 한이라고 풀듯이 기도원이나 교회에서 한없이 기도하는 명절이 되지 않으렵니까?
하나님이 무척 기뻐하실 것입니다.
살제로 나는 명절이면 기도원 집회를 많이 인도합니다. 다른 때보다 기도원이 메어질 정도로 많이 찾아와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는 응답입니다.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킵니다.
지난 목요일 배재 목사님들 약 60명이 우리 교회에서 모임을 가졌습니다. 5시반에 시작하여 10시까지 아주 진지한 모임이었습니다. 그 때 배재 출신 의사중에 한분인 세브란스 병원 김 동수 의사가 간증을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더불어 치료하면 다른 의사가 불치라고 선언한 병들을 수없이 고친다는 간증이었습니다. 패혈증으로 피를 쏱는 어린아이가 있었습니다. 가는 병원마다 불치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세브란스로 왔습니다.
김동수 의사가 말했습니다.
<예수 믿나요?>
<아니요.> <그러면 병원마다 불치병이라는 데 하나님이 고쳐주시면 교회에 나가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요?>
죽어가는 데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하면서 치료를 시작하였는 데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 후 다시 재검진 받으로 왔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를 데리고 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우리 가족 모두가 예수를 믿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잘 나가고 있습니다.> 이 때 아이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우리 아빠와 엄마는 요 내가 고침받고도 교회에 안 나갔어요.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약속을 어기면 하나님이 내게 또 병을 줘요. 약속을 지켜야 돼요. 그래서 우리 아빠와 엄마가 교회 나가게 되었어요.>
이런 일이 수없이 많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치료하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하나님의 기적을 믿고 기도하는 시간을 집중적으로 갖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2. 독서 명절
평소에는 바빠서 책을 읽을 틈이 없습니다. 명절에 좀 한가한 시간을 내어 독서이 기쁨을 누려보지 않으렵니까?
나는 요즈음 독서량이 더 늘어섰습니다. 한 달에 40권 정도 읽고 있습니다. 설교 자료를 모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독서가 즐거워 읽다보면 설교 자료가 풍부하여 지는 것뿐입니다.
요즘 어려울 때 내가 쓴 <위에서 정상을 본다>라는 책을 한번 권하고 싶습니다. 50판정도 나간 책입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오후 예배에 강의를 시작한 <알이랑 민족>도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250판 정도 나간 <내려놓음>도 우리 가슴을 울려 줄 것입니다.
독서는 우리에게 꿈을 줍니다.
가만히 앉아서 무한한 꿈을 기를 수 있는 것이 독서입니다.
상록수 로 활동한 최 용신 묘가 안산 천곡교회 내에 있습니다. 작년에 상록수 기념관을 지었습니다. 그 곳에 가서 최 용신 묘를 보았습니다. 묘지에 적혀 있는 말입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는 네 가지 요소가 여기 있나니
첫째는 가난의 훈련이요
둘째는 어진 어머니의 교육이요
셋째는 청소년 시절에 받은 큰 감동이요
넷째는 위인의 전기를 많이 읽고 분발함이라.
농촌 계몽가 최 용신 선생님이 남긴 말씀>
독서는 꿈을 쭙니다.
3. 명화 명절
명절에 온 집안식구들이 둘러 앉아 같이 지나간 명화를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십계> <벤허> <사운드 어브 뮤직> <진주만> 타이타닉>등의 영화는 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는 유익한 영화입니다.
명절에 예수를 죽이지 않고 예수님을 살리는 영화들입니다.
4. 여행 명절
오랜만네 가족이 만나 하룻밤이라도, 호텔이 아니라 민막이라고 지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믿지 않는 식구, 믿지 않는 친척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실 것입니다.
여행은 사람을 넓혀 줍니다.
멀리에 살고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워싱톤으로 수학여행을 왔습니다.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 와서 기행문을 썼습니다.
한 학생이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이번 여행이 내 생애를 바꿀 것을 믿습니다. 내가 들어갈 집에 가보았습니다. 나는 꼭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여행은 포부를 넓혀 줍니다. 여행하면서 살던 곳을 멀리서 보며 종합 집단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여행은 필요합니다.
5. 등산 명절
가족과 몇 명이 명산이나 조용한 산을 한번 정복하는 명절도 의의가 있을 것입니다.
내가 아는 부부가 있습니다. 아내가 아팠습니다. 의사가 등산이 제일 좋다는 말을 듣고 한국의 산 정상을 정복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한국 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은 150군데가 넘습니다. 병도 나았습니다.
어느 사람은 이런 명절에 산속으로 들어가서 기도하고 성경을 한 번 다 읽고 내려와서 영도 육신도 새로워져서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예광교회 양 예산 권사님은 명절 때면 늘 전도지를 많이 가지고 가서 산아니 해변가에서 놀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전도하다가 돌아 온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죽이는 명절이 아니라 예수님을 살리는 명절입니다.
6. 전화 명절
명절을 지내며 그 동안 만나지 못 하였던 친구들이나 친지들에게 핸드폰 문자를 넣어 주고 전화 한번 하여 주는 것도 좋은 명절을 만느는 방법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간단한 문자 멧세지 하나가 깊은 관계를 맺어 줍니다.
지난 약력 1월 1일 나는 300여명에게 문자를 넣었습니다. 그 중에 장 경동 목사와 수양산 기도원 박 승자 원장님은 특이하였습니다.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간답니다. 금년 혼자 빨리 가지 말고 같이 멀리 가요.>
장 경동 목사님은 문자를 받자 말자 방송에서 내가 보내준 문자가 제일 좋았다면서 방송을 하였습니다. 그 방송을 듣고 많은 이들이 내게 어떻게 그렇게 특이한 문자를 보냈느냐고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 준 분 중에 하나가 국방대학원 김 홍태 목사님입니다. 그 분이 장 경동 목사 방송을 듣고 내게 전화를 걸어서 말했습니다.
<강 목사! 나하고도 같이 가요.>
박 승자 원장은 이런 문자를 보내 주었습니다. 지금도 지우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제일 존경하는 강목사님! 강 목사님 같이 가자고 하니 천하를 얻은 것같아요. 나는 문자를 보낼 줄 몰라요. 그래서 문자 보내는 법을 목사님에게 이 문자 보내려고 배웠어요.>
충주 이 회학 권사님은 이렇게 답을 하였습니다.
<그래요. 형님! 같이 가요. 그런데 내가 모셔야 해요. 차로 모실가요? 열에서 걸으며 모실가요?>
전화, 문자 하나가 깊은 인간 관계를 만들어 줍니다.
7. 구제 명절
명절이 쓸쓸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명절이 안 오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늘 진 곳을 한 곳 정도 찾아 가는 것도 좋은 명절을 보람있게 만드는 비결일 것입니다.
욕심쟁이만 사는 사회는 비극적인 사회입니다. 주면서 남을 생각하면서 살아가는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입니다.
어느 가난한 집이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딸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죽기 전에 그렇게 좋다는 다이아몬드 한번 손가락에 꺼어 보고 죽고 싶다.> 딸은 어머니의 마지막 소원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생각다 못 하여 옆에 살고 있는 부자집 안방 마님을 찾아가서 하소연하였습니다. 다이아몬드를 잠간 빌려 주시면 어머니 돌아가신 후에 도로 드리겠다고 찰떡같이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 분도 듣고 보니 딱 하였습니다. 마지막 소원이었습니다. 그리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엇습니다. 그래서 빌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그 다이아몬드를 받더니 손가락에 한번 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빼더니 먹으면서 말했습니다.
<가지고 갈란다.> 그리고 죽었습니다.
수천만원짜리 다이아몬드였습니다. 어떻게 하였을 가요? 배를 갈랐을 가요? 수천만원을 물어 주었을 가요?
그러나 어떤 이는 죽을 때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모두 기증하고 죽었습니다. 대조적인 삶입니다.
이번 명절은 구제하는 명절로 만들지 않으렵나까?
이번 명절은 이런 특이한 명절로 예수님을 죽이는 명절이 아니라 예수님을 살리는 명절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막은 샘이 있어서 아름다워라! (창 26;12-22) (0) | 2022.01.23 |
---|---|
주님이 나를 필요로 하는 이유가 있다! (눅 5;27-29) (0) | 2022.01.23 |
안나를 찾습니다! (눅 2;36-38) (0) | 2022.01.23 |
부럽다. 첫 영성이여! (행 2;5-13) (0) | 2022.01.23 |
비를 구하면 소낙비를 주리라 (0) | 2022.01.23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