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로마서 5:6-11
제목: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게 된 우리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레위기 17장 11절, 14절, 16절이 좀 필요하거든요. 왜냐하면 레위기 17장 11절, 14절, 16절은 사람의 죄 중에서 피를 흘리는 죄는 그 피 흘리는 사람이 친히 담당하도록 규정하고 있거든요. 최은혜 교우님 좀 읽어주십시오.
11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제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14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것의 피인즉 그 피를 먹는 모든 자는 끊어지리라
16 그가 빨지 아니하거나 그의 몸을 물로 씻지 아니하면 그가 죄를 담당하리라
네, 피를 흘리는 죄는 피를 흘림으로써만 그 죄를 담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피 흘리는 죄를, 피 흘리는 죄가 우주 안에 살아있는 생물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히브리인들은 죄가 한 번 범해지면 그 죄는 살아있는 나무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죄가 한 번 자행되면은 그 죄를 속하지 아니하면은 굉장히 우주가 교란상태를 겪는다고 봤어요. 이게 오늘날 우리가 이해가 안 되죠. 어떤 특정한 잘못된 행동이 바로 고쳐지지 않고 그게 무효화 안 되면은 우리가 자행한 그 행동이 우주를 매캐한 매연으로 가득 차게 하고 우주를 세차게 뒤흔들어 불안정하게 만든다고 본 거예요. 이건 현대인들은 도무지 상상을 못할 텐데요, 고대인들, 모든 고대인들은 죄가 범해지면 그 죄를 속하지 아니하면, 그 죄를 진 자를 징벌하여 죄를 무효로 돌리지 않으면, 그 사회는 우주가 엄청나게 오염되고 더럽혀져서 망한다고 봤어요. 멸망, 해체된다고 본 거예요. 그러니까 죄가 해결되지 않고 그대로 존치되어 있으면 큰일 난다고 본 거예요. 그래서 창세기 9장 7절을 읽어주십시오. 김은자 집사님 부탁드립니다.
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가득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
예,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9장 6절도 부탁드립니다.
6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
아하, 하나님이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는 죄를 볼 때 하나님도 그 죄의 궁극적 피해를 입으신다는 거죠. 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은 사람의 피를 흘리면은 하나님의 피를 흘리는 거랑 동일한 효과가 난다는 거죠.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러면 피를 흘리는 죄 말고는 죄가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고대인들 특히 성경을 쓴 사람들은 피 흘리는 죄를, 이 산소와 헤모글로빈 철분이 가득 찬 이 붉은 색 액체 이걸 피라고 보지 않고 그걸 피 흘리는 거라 보지 않고 포괄적으로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생명 선물 자체를 파괴하는 행위를 전부 다 피 흘리는 행위라고 본 거예요. 포괄적으로. 그러니까 모든 죄는 근본적으로 피 흘리는 죄, 타인의 생명권을 손상하거나, 타인의 행복권을 손상하거나, 타인의 생육, 번성, 땅에 충만하려고 하는 그런 열망, 그런 건전한 욕구를 파괴하면 그 모든 것을 피 흘리는 죄라고 본 거예요. 왜? 피가 생명이니까요. 그러니까 지금 행복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에게 말로 욕설을 하거나 그의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마음을 엄청 상하게 만들면 피 흘리는 죄인 거예요. 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그런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니까, 타인의 행복을 파괴하는 모든 죄는 피 흘리는 죄가 되는 거죠. 장로님, 창세기 5장 1절 2절 읽어주십시오.
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네, 창조되던 날에 복을 주셨다. 그러니까 여기서 아주 중요한 사상이 나옵니다.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프랑스 인권 선언, 미국 독립선언문 같은 이런 놀라운 사상이 나오는데 모든 사람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어떤 국가가 들어서서 모든 사람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파괴하면은 그거는 국가가 죄를 짓는 거라 봤기 때문에 17세기 말에 로크, 토마스 스펜서 이런 사람들은 자연 상태에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그런 부보다 더 가난해진 사람들은 자연 상태의 보통 사람이 수렵, 채집 경제 때 누릴 수 있는 그런 생명력 보다 국가가 구성된 이후에 그 사람이 더 가난해지면 그 가난한 만큼 국가는 그 사람에게 보존을 해줘야 돼요. 행복 향유권을 보존해줘야 된다고 본 거예요. 토마스 스펜서나 토마스 페인 같은 이런 사람들이요. 그게 당연한 거죠. 기본 소득도 그런데서 막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타인의 생명을 파괴하고 행복추구권을 이렇게 파괴하는 행위는 문득 보면은 나는 일단 타인과 정면으로 마주치지도 않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오늘날은 타인의 행복을 파괴하는 행위가 세계적인 나비효과 같은 게 있습니다. 내가 어떤 부동산에 대한 탐욕을 심하게 가지면은 그 부동산에 대한 탐욕이 궁극적 피해자, 진짜 집이 없어서 유리 방황하는 사람들을 30년, 40년 내내 집을 못 갖게 만드는 비참한 일을 나의 이 부동산에 대한 이 소박한 탐욕이 그런 일을 가져오니까 그런 죄가 바로 뭐냐 하면 피를 흘리는 죄입니다. 그런데 이런 죄를 방치하면은 어떤 일이 오냐하면 인구감소가 일어납니다. 인구감소. 그러니까 생육 번성의 복을 하나님이 닫아버립니다. 한국은 지금 작년에 27만명이 태어났는데 생육 번성의 복을 빼앗겼습니다. 아무리 반도체로, 조선 산업으로 돈을 벌어본들 뭐합니까? 인구가 태어나지 않는데요. 지금 대한민국은 하나님이 손을 보고 계시는데 대한민국은 인구가 태어나지 않게 된 나라, 즉 보존될 가치가 없는 나라, 이 지상에서 존속할 가치가 없는 나라, 저주 아래 있는 겁니다. 이걸 저주 아래 있다는 이 말을 하지 않고 목사님들이 번영을 노래하거나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대한민국 사회를 어떻게 보냐 하면은 태어나서 이 나라를 보존할 만한 가치가 없는 나라, 굉장히 굉장히 죄로 가득 찬 나라입니다. 우리가 죄로 가득 찬 나라인 걸 어떻게 알 수 있냐 하면 생육 번성의 복을 회수하시는 하나님의 손을 보셔야 됩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뭔가 어린 아이를 태어나도 환영하지 않고 어린 아이들을 지극히 박대하는 사회입니다. 굉장히 유아에게, 생명에게 적대적인 공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박근혜 정부 때, 이명박 정부 때 98조를 썼다는대요?” 예, 98조 쓴 그 많은 예산이 어디로 갔냐면은 성소수자 인권회복에 대한 세미나로 갔고요, 실제로 아이를 출산한 데에는 돈이 거의 쓰이지 않았습니다. 그 여성가족부가 한 일이기 때문에 비난을 엄청 받습니다. 여성가족부나 보건복지부에서는 98조를 어떻게 썼냐 하면은 가정 성폭력 예방 방지법 비디오 촬영해서 전국에 뿌립니다. 대학교수들도 아동폭력에 관한 걸 8개를 들어야 됩니다. 지금. 정말 슬픈 일입니다. 아동이 없는 교수들도 아동폭력에 관한 그런 비디오를 44분짜리를 8개를 봐야 돼요. 이런 데 돈이 다 들어갔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타인의 생명을 파괴하는 죄가 가득 찬 대한민국에 생육 번성 땅에 충만하는 복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 죄는 가만히 생각해 보면은 우리가 조금씩은 n/1씩 가담한 죄입니다. 즉 다른 사람이 나 때문에 살기가 힘들다고 느끼게 만드는 그 무시무시한 살기, 살기를 분출한 죄가 우리 모두 n/1씩은 참여한 죄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렇게 타인의 피를 흘리는 죄를 반드시 청산하지 않으면은 진노 아래 있는 세상이라고 규정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립적인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 태어난 우리는,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가 노려보는 하늘 아래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이 죄, 타인의 죄를, 타인의 피를 흘리는 이 죄를 죄 없는 자가 대신 흘려주어야만이 우주의 공기가, 매캐한 우주 매연이 대한민국의 하늘을 뒤덮고 있는 이 우주 매연이 정화가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보혈이 이미 흘려졌는데 예수님이 다시 한번 대한민국 남산에서 십자가에 못이 박혀야 된단 말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의롭게 된 자들의 보혈이 흘려져야 됩니다. 지금부터는. 예수님의 피로 의롭게 된 자가, 의롭게 된 자,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을 받은 그 사람이 화목제물이 되여야 됩니다. 지금은. 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이때 ‘죄인 되었을 때, 언약할 때’ 이 말은 뭐냐면은 우리가 하나님의 율법대로 살 능력을 빼앗겼을 때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을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서 우리 대신 율법의 요구를 행하게 함으로 일단은 우주를 가득 채운 이 죄악의 매캐한 공기를 정화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의 보혈이 그 마음의 휘장에 7번 뿌려진 사람들이 먼저 나타나서 의롭게 된 성도가 됨으로 예수님과 함께, 예수님의 보혈 향기를 그 심장에 받아서 의롭게 된 우리가 되어서 이제 대한민국의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이 죄악의 공기를 정화시키는 사명을 받았다는 겁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는 세상이라는 대전제를 이해하지 못하면은 아마 이 구절은 이해하기 힘들겁니다. 아마 이렇게 느끼는 사람이 있겠죠? ‘내가 좋은 차 타고, 내가 좋은 음식 먹으면서 내가 철마다, 해마다 해외여행도 다니고, 좋은 골프장에 가서 하루 종일 행복하게 노래를 부르고 사는데 내가 무슨 진노 아래 있단 말인가? 나는 진노를 경험할 수 없어. 내 인생은 행복 그 자체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진노 아래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아래 인간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이 진노의 심판에서 우리를 건져내신 것이 뭡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게 된 우리가 하나님께 의로운 자가 되어서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의 죄 사함의 은혜를 세상에 퍼트리는 복음의 증인이 되길 바란거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 하나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 더욱 그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의롭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뒤집어쓰고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었습니다. 십자가에 못이 박혀 죽기까지만 했다면은 예수님은 우리 죄 때문에 죽은 완료된 사건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부활하심으로 우리 죄가 징벌에만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 죄를 징벌하시는 그 사건으로 종료된 것이 아니라 부활했기 때문에 우리 죄를 용서하셔서 우리를 의롭다하심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만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살아나지 않으셨으면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죄를 징벌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징벌하셨을 뿐만 아니라 타인의 피를 흘렸던 우리의 생명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의롭게 하셔서 새 언약백성 삼으셔서 다시 한번 세상을 살아갈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뭡니까? 새 언약백성 삼아주심 또는 의롭게 해주심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입니다. “그는 우리의 범죄함으로 내어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아~ 이겁니다. 그래서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이 말은 우리는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고 왜 이야기 했냐면은 우리는 구원을 받았거든요. 구원을 받은 우리는, 이걸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미래 시제를 쓰는 이유는 원리를 설명하기 위한 겁니다. 로마서 5장 1절에 우리는 이미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지금 5장 10절은 원리를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은 우리 타인의 피를 흘렸던 우리 죄를 징벌하시는 징벌을 위한 죽음 즉 우리의 죄가 우주에서 더이상 생물처럼 활동하지 못하게 우리가 저질렀던 죄악된 행동을 무효로 돌립니다. 무효로 돌리는 것은 뭡니까? 죄를 지은 사람을 죽이면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음으로 우리가 범한 죄가 우주 안에서 더이상 생물처럼 작동하지 못합니다. 예수님이 우리 대신 죽었기 때문에 예수님이 짊어진 죄가 우리의 죄를 전부 다 우주적으로 무효화 처리를 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 우리는 죄 안 지은 사람처럼 새 언약백성,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 관계에 돌입하여 의롭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새 언약백성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절부터 5절이 새 언약백성이 되었다는 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는 우리의 범죄함으로 내어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즉 새 언약백성 삼아주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래서 5장 11절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자, 5장 11절, 5장 2절 수미쌍관 구조입니다. 수미쌍관구조예요. 5장 2절과 5장 11절은 수미쌍관구조 그러니까 A와 A′ 구조입니다. 5장 2절입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데 삽입어구로 환난, 인내, 연단, 소망 이런 약간 부정적 경험들이 우리를 에워쌉니다. 그런데 5장 11절입니다. 환난, 인내, 연단, 소망 중 기다림 이런 모든 서스펜스가 끝나고 11절입니다.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여전히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이 구원의 감격은 감소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 원리, 로마서 원리는 신구약 모두를 압축하는 요약입니다. 로마서는 신구약 모두를 압축하는 가장 논리적인 요약입니다. 그런데 그 논리는 현대인들에게 낯설고 어렵습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렸던 그런 히브리인들의 우주관, 히브리인들의 죄론, 히브리인들의 그 생명관 이런 것들은 현대인들에게 매우 낯섭니다. 그런데 성경의 내적논리를 따라가면 납득이 되고 이해가 됩니다.
마무리 하겠습니다. 인간이 저지른 모든 악행과 죄는 타인의 생명향유, 행복을 파괴하는 죄이다. 타인의 행복을 파괴하여 피 흘리기에, 피 흘리는 죄를 범하면은 그 사람의 죄를 담당하기 위해서 죽어야 한다. 그래야 그가 범한 죄가 우주적으로 무효처리 된다. 그런데 우리 모두는 그렇게 하면 안 되니까 하나님은 1년 1차에 대속죄일 제사를 통해서 죄를 무효화시켜 주시고 영 단번에 모든 인류의 죄를 무효화 처리하기 위하여 죄 없는 예수님, 하나님 아들을 보내어 하나님이 마치 잘못한 것처럼 우리 인류의 죄를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어 인류의 미안한 마음, 인류의 죄송한 마음, 인류의 속죄하는 마음을 대신하여 피를 쏟게 만듦으로 인류가 범한 모든 죄가 우주적으로 무효처리 되게 만들어서 그 무효처리된, 그 무효처리는 인류가 범한 모든 죄가 범해지지 않은 새 우주가 되었는데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예수님이 죽기까지만 했다면은 우주는 죄도 없지만 인류도 없습니다. 모두가 죽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만 했다면은 인류도 없고, 죄도 없는 세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의롭다한 인류로 지구는 다시 가득 차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의롭게 하셔서 이 지구를 다시 한번 생육 번성의 땅으로 만들기를 기대하십니다.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이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하루 종일 되길 바랍니다. 화평을 누리는 사람의 특징은 뭡니까?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절대 감소되지 않는 절대희락! 절대평화! 이거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오늘 이 선물이 여러분 모두에게 넘치길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
우리 가향 성도들 오늘 새벽 제단을 쌓는 성도들부터 세상이 빼앗아 갈 수 없는 그리스도의 보혈 향기 가득 차게 하시옵시고 절대 감소될 수 없는 평화와 기쁨과 희락이 가득 차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예수님 이름 들어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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