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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100주년 기념관 강의)

by 【고동엽】 2022. 1. 5.

성막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100주년 기념관 강의)

 

 

성막을 접으면 예수 그리스도이고, 예수님은 접으면 성막입니다. 성경의 주제는 모두 예수입니다. 종은 어디를 쳐도 종소리가 나는 것처럼 성경은 어디를 펼쳐도 예수가 보여야 합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29)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5;46)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구약을 읽을 때에 수건을 쓰고 보기에 구약을 예수로 보지 못 하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서 다음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2-18)

이것이 성막을 보는 안경입니다. 성막은 모두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성막은 모두가 예수님을 의미하지만 특별히 중요한 몇 가지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짐승

죽음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 성막에서 짐승의 죽음은 그대로 복음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죄를 짊어지고 죽으셨기에 내가 구원받았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면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전에는 어떻게 죄 사함을 받은 것일까요? 죄인은 소, 양, 염소 그리고 비둘기 중에 <흠 없는 숫컷>을 끌고 옵니다.

그리고 안수합니다. 죄인이 직접 안수합니다. <안수하지 않은 동물은 동물이고 안수한 동물은 제물입니다> 안수는 전가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죄인이 직접 제물을 잡습니다.

자동차는 네 바퀴 위를 굴러 가지만 복음은 두 바퀴 위를 굴러 갑니다.

제1 바퀴- 누군가가 죽어야 누군가가 산다.

제2 바퀴-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

그런데 구약은 짐승 피가 흐르고 있고 신약은 예수 피가 흐르고 있습니다. 구약은 짐승피로 예배드리고 있고 신약은 예수 피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짐승 피는 덮는 피고 예수 피는 닦는 피입니다.

짐승 피는 구속하는 피고 예수 피는 도말하는 피 입니다. 짐승피의 유효기간은 일 년이고 예수피의 유효기간은 영원입니다.

미국 어느 마을에는 스컹크가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 곳에서는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도 스컹크가 나타나면 스컹크가 살아지기까지 쉬어야 합니다. 스컹크가 있는 데도 가다가는 스컹크가 놀라며 방귀를 끼고 달아나면 그 자동차는 버려야 합니다. 냄새가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지역에서는 밖으로 나갈 때 문을 꽁꽁 잠그고 나가야 합니다. 만일 어설프게 문을 열어 놓아다가 사람이 없을 때 스컹크가 들어와서 방귀를 끼고 나가면 그 집을 불을 태우고 다시 지어야 합니다.

나는 그 지역에 갈 때마다 말합니다. <사람 방귀는 일시적이지만 스컹크 방귀는 영원하다> 그렇습니다. 짐승 피는 일시적이지만 예수님의 피는 영원합니다.

그런데 또 하나의 법칙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자범죄는 자기가 안수하고, 원죄는 제사장이 안수하였습니다. 그리고 제물은 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를 사용하였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언제 죄를 짊어지셨고 언제 죽으셨습니까? 언제 어디서 죽으셨는지는 너무나 확실합니다. 갈보리에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러면 언제 죄를 전가 받으셨습니까?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요한에게 오셔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하셨습니다. 이 때 요한이 말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3;14)

이 때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3;15)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그리고 세례요한이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1;29)

세례요한은 제사장이었습니다. 성경에 제사장이라는 말은 한 마디도 없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제사장은 세습제였습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갸랴는 유명한 제사장입니다. 세례요한은 그의 아들입니다.

세례요한이 제사장의 임무를 수행하였다는 말은 성경에 한 마디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신분은 제사장입니다. 그가 예수님에게 세례를 준 것은 세례가 아니라 죄의 전가 안수였습니다. 그런 증거가 어디에 있습니까?

 

1. 세례를 받으실 때 비둘기 같은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개 같은 성령이 아닙니다. 돼지 같은 성령도 아닙니다. 비둘기는 죄 사함을 위하여 사용되는 제물입니다.

2.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었습니다. 제사장의 양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양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양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양입니다. 세례를 받고 죄를 짊어졌습니다. 레위기 16장의 아사셀 양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세례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누가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죄를 짊어지고 죽지 않으면 사람은 결코 의롭게 될 수 없습니다. 의로움은 누군가가 죽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향한 세례는 세례가 아니라 죄의 전가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약의 제물은 동물이고 신약의 제물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님은 생축(生畜) 즉 동물이라고 신약과 구약을 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生畜)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엡5;2)

성경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 변동의 역사 기록부입니다. 어디에서 하나님을 만나든지 언제 만나든지 피가 필요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말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빨래를 짜보아라. 물이 나올 것이다. 성경을 짜보아라. 피가 나올 것이다. 구약을 짜보아라. 짐승피가 나올 것이다. 신약을 짜보아라. 예수피가 나올 것이다.

성경에서 피를 보지 못 하면 영적 장님이다> 성막은 그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2. 절기 속에 들어 있는 그리스도

7절기는 모두 모세가 기록하였고 이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7절기는 모두 레위기 2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레위기 23장을 <절기장>이라고 부릅니다.

제1절기 유월절(레23;4-5)------그리스도의 죽음

제2절기 무교절(레23;5-8)------그리스도와의 친교

제3절기 초실절(레23;9-14)-----그리스도의 부활

제4절기 칠칠절(레23;15-22)----그리스도와 성령의 교대

제5절기 나팔절(레23;23-25)----그리스도의 성도 부름

제6절기 속죄절(레23;26-32)----그리스도의 사죄

제7절기 초막절(레23;33-43)----그리스도의 성도 추수

모세는 이렇게 7절기를 공포하였습니다(레23;44) <모세가 여호와의 절기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공포하였더라>(레23;44) 이미 언급한대로 이 7절기는 그리스도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이제 차례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제1절기 유월절

사도바울은 수건을 벗고 유월절 양을 보니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였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고전5;7)

제2절기 무교절

예수께서 피 흘리며 죄사하여 준 것을 믿는 사람들은 무교병이 되었기에 무교병을 먹어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악을 의미하는 누룩이 들어 있는 유교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눅은 누룩으로도 말고 괴악하고 악독한 누룩도 말고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없는 떡으로 하자>(고전5;8) 유월절 다음 날부터 7일간이 무교절입니다.

제3절기 초실절

초실절은 밀 첫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입니다.무교절속에 들어 있는 안식일 다음날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년되고 흠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로는 기름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 포도주 힌 사분의 일을 쓸 것이며 너희는 너희 하나님께 예물을 가져오는 그 날까지 떡이든지 몪은 곡식이든지 생 이삭이든지 먹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레23;9-14)

간단하게 말하면 무교절속에 들어 있는 주일이 초실절입니다. 우리는 첫 열매하면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그는 첫 열매이십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초실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놀라운 일치가 있습니다. 구약성도들이 유월절 양을 죽이는 바로 그 시간에 예수를 죽였습니다. 구약성도들이 첫 열매를 바치는 그 시간에 부활의 첫 열매되신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제4절기 칠칠절

칠칠절은 초실절부터 50일 째 되는 날입니다. 예수 부활후 50일째 되는 날이므로 우리는 이 날을 성령강림절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역을 마치신 주님께서 올라가시고 대신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신 날입니다.

제5절기 나팔절

7월1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신년은 이 날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1월1일입니다.나팔을 불어 온 성도를 모으는 날입니다. 모래더미에는 흙도 있고 유리조각도 있고 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남철을 넣고 흔들면 철가루만 모두 붙어 올라오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섞여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나팔을 불어 성도들만 모으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나팔절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절기입니다.

제6절기 속죄절

속죄절은 대속죄일이라고 합니다. 일년중 가장 중요한 절기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예수님과 가장 가까운 단어는 <아사셀 양>입니다. 세례요한은 아사셀 양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요1;29)

제7절기 초막절

초막절은 그리스도의 심판을 의미하는 절기입니다. 그렇기에 마지막 절기입니다. 초막절은 8일간 지켜야 합니다(레23;23-36)

7일간 초막에서 거하다가 8일째가 되면 모두가 모여서 성대한 집회를 하였습니다(느8;18) 초막절은 그리스도의 심판입니다.

이같이 성막의 모든 절기는 그리스도의 생애입니다.

 

3. 법궤속에 들어 있는 그리스도

법궤는 성막이나 성전에서 가장 중요한 성물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구 역사상 가장 귀중한 보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은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의 중심은 예루살렘입니다. 예루살렘의 중심은 성전입니다. 성전의 중심은 지성소입니다. 지성소의 중심은 법궤입니다.

그렇습니다. 법궤는 예수님의 모습인데 예수님은 법궤처럼 역사의 중심에 서 계신 분이십니다. 모세의 성막, 다윗의 장막 그리고 솔로몬의 성전으로 이어지는 역사 속에서 다른 성물들은 다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변하였습니다.

그러나 법궤만은 그 법궤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것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9;13) 라고 말했습니다.

법궤의 역사와 그리스도. 법궤는 그리스도입니다. 법궤는 하나님만나는 자리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은 죄된 인간을 만나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을 만나게 하는 중보자입니다. 예수 십자가 없이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법궤에서

하나님과 인간은 거냥 만나는 것이 아니라 피를 뿌리며 만났습니다. 예수 피 없이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실을 한 마디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엡2;13-16)

그렇기에 법궤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역사입니다(Its story is His story) 성막이나 성전에서 다른 성물에는 역사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법궤의 역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습니다.

어쩌면 성경의 역사는 법궤의 역사라 할 수 있을 정도로 법궤 이야기는 많습니다. 법궤의 역사와 예수님의 역사는 동일합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법궤와 예수님의 역사의 같은 점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1. 계시 면에서 법궤가 하나님의 계시로 모세에게 나타났습니다(출35;31-36;2,25;10-22)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계시되었습니다.

2. 인카네이션면에서 브살렐이 법궤를 만들었습니다. <브살렐이 조각목으로 궤를 만들었으니>(출37;1)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성령받은 브살렐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부르시고 나서 성령을 주셨습니다.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신을 그에게 충만케 하여 ...>(출35;30-31) 그래서 모세가 받은 계시는 브살렐에 의하여 눈에 나타났습니다. 수많은 선지자가 예수에 대한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계시는 마리아에게서 인카네이션되었습니다.

그런데 성령 받은 마리아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마리아를 부르시고 나서 성령을 주셨습니다(눅1;28-36) 그래서 인카네이션되었습니다.

3. 증거면에서 법궤는 증거궤입니다. <너는 지성소에 있는 증거궤위에 속죄소를 두고>(출26;34) 하나님은 언제나 증거궤위에서 증거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법궤를 증거궤라고 불렀습니다.

<거기서 내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이르리라>(출25;22)

또 하나님은 예수를 통하여 증거하셨습니다. <내가 만일 나를 위하여 증거하면 내 증거는 참되지 아니 하되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거하시는 그증거가 참인 줄 아노라>(요5;31-32)

4. 성령면에서 법궤를 다 만든 후 사용하려고 할 때에 기름을 발랐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또 일러 가라사대 너는 상등 향품을 취하되 액체 몰약 오백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육계 이백 오십 세겔과 그 반수의 향기로운 창포 이백 오십 세겔과 계피 오백 세겔을 성소의 세겔대로 하고 감람 기름 한 힌을 취하여 그것으로 거룩한 관유를 만들되 향을 제조하는 법대로 향기름을 만들지니 그것이 거룩한 관유가 될지라. 너는 그것으로 회막과 증거궤에 바르고>(출30;22-26)

기름을 발랐다는 것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공적으로 쓰임 받으시려고 하실 때 성령를 받고 쓰임받으셨습니다(마3;16)

5. 보임면에서 법궤는 사람의 눈에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지성소에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를 때에도 보자기로 싸서 날랐기에 눈에 뜨이지 않았습니다(민4;44-45)

법궤를 나르는 특수한 제사장들만 볼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분명히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이 땅에서 눈에 뜨이지 않으셨습니다. 특수한 사람들만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았습니다.

6. 음성면에서 하나님의 음성은 법궤에서 나왔습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씀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민7;89)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출25;22)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말씀을 예수님을 통하여 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7. 능력면에서 법궤는 능력이었습니다.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권능의 궤와 함께 평안한 곳으로 들어 가소서>(시132;8)

법궤가 가는 곳마다 능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은 법궤위에 계셨습니다. 그 증거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늘 법궤 위에 떠올랐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가시는 곳마다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늘 주님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10;38)

8. 지성소면에서 법궤는 어디로 움직인다 하더라고 마침내 가장 거룩한 지성소에 두었습니다(출40;3-5,,20-21..39;35) 예수님도 머리 둘 곳이 없으셨으나 마침내 하나님의 우편으로 승천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소망이 있는 것은 영혼의 닻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안에 들어 가나니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아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어 우리를 위하여 들어 가셨느니라>(히6;19-20)

법궤가 지성소롤 들어 간 것은 우리를 위한 것처럼 주님이 지성소로 들어가신 것은 우리를 위하여서입니다.

9. 내용면에서 법궤안에는 만나 항아리, 십계명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 있었습니다(히9;4) 이는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의 만나 즉 하늘로부터 오신 떡이십니다.

떡은 그리스도의 말씀이고 그리스도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 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요6;51)

예수님은 길되신 분이십니다. 십계명은 우리의 신앙생활의 길입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지팡이는 말할 것도 없이 부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라고 법궤에 대하여 종합하여 말씀하셨습니다.

10. 율법면에서 법궤 옆에는 율법책이 있었습니다(신31;9,25-26) 그런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새 율법이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옆에는 늘 율법이 있었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5;17)

그 외에서 법궤가 예수님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가 엄청나게 많이 있습니다. 이같이 법궤는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성육신하시고 성령 받으시고 거절당하시고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의 우편으로 승천하신 모습은 모두 법궤로 예표 되고 있습니다.

모세의 법궤는 인성이 강조된 법궤요. 솔로몬 성전의 법궤는 신성이 강조된 법궤입니다. 성막의 법궤는 이 땅에 오신 초림의 주님의 모습이라면 성전의 법궤는 영광을 받으신 재림의 주님의 모습입니다. 법궤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역사입니다. 법궤는 정확한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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