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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고전 12;12-27) / 이철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6.
그리스도의 몸된 공동체
고린도전서 12:12-27


I. 주 안에 한 몸 (12-13)


1. 그리스도는 한 몸이지만 많은 지체 (12)


정육점에 가면 소고기를 팔 때에 부위별로 나누어서 팝니다. 값이 다르지요. 등심과 안심, 혹은 갈비, 우족 다 이렇게 값이 다릅니다. 그러나 외양간에 소를 매두고 있을 때에는 그 외양간에 있는 소는 부위별로 나누어서 그 가치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소 한마리 전체가 다 같은 가치를 가지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무슨 부위별로 가치를 정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간혹가다 어떤 사람들이 장기를 매매해서 신장을 얼마에 판다,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만, 그것은 아주 비정상적이고 부도덕한 경우의 일이구요, 정상적인 경우에는 그런 일이 없습니다. 사람은 전체를 놓고 그 사람의 가치를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생명이기 때문에, 생명체이기 때문에 나누어서 생각을 할 수 없고 전체를 같이 하나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여러분, 교회도 마치 생명체와 같은 유기체이기 때문에, 그래서 교회도 여러가지 많은 다양한 지체들이 있습니다만 나누어서 생각할 수 없이 다 하나로 생각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지체들이 있지만 다 조화를 이루고 협력을 해서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입니다.


12절은 선언을 하기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은 지체가 많으나 한 몸인 것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께서 머리시고 교회는 하나의 몸이다, 예수그리스도의 한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지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작은 교회는 교인수가 적으니까 지체의 수가 적구요, 큰 교회는 교인수가 많으니까 지체의 수가 많습니다만, 많으나 적으나 그 전체를 하나로 다 모아서 한 몸이라는 말씀이지요.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모인 사람들이 교회가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 성도고, 그런 성도들이 모인 것이 교회구요, 예수그리스도와 강하게 연결이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교인들끼리,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교인들끼리도 강하게 연결이 되어서 한 몸이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를 머리로해서 한 몸된, 기초가 그리스도인 그런 유기적인 관계를 가진 지체들이 모인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2. 각양 다른 집단이 성령으로 한 몸 (13)


이렇게 교회를 한 몸되게 만든 것은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13절에 말씀하는 것 같이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다’ 말씀하는 것 같이 여러 다양한 지체들을 성령께서 그 가운데에 교통하시고 운영하시고 역사하셔서 한 몸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오늘 이 본문의 고린도교회도 그렇습니다만,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고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 다양한 지체들이 있습니까? 고리도교회는 인종적으로 다양했습니다. 유대인들도 있고 헬라인들도 있고, 다른 많은 이방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회적인 신분도 다양해서 종(노예)도 있고 자유인도 있고, 빈부귀천 다양한 사람들이 다 모여있었습니다. 직업도 다양해서 상업이나 농업이나 혹은 배의 선원들도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 은사도 다양해서 방언을 하는 사람, 예언을 하는 사람, 혹은 영분별 은사를 가진 사람, 신유의 은사를 가진 사람, 지혜와 지식의 은사를 가진 사람,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직분도 다양해서 선지자나 교사나 사도나 이런 다양한 직분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었습니다. 한 교회 안인데도 신앙형태가 달라서 어떤 사람은 바울에게 은혜를 받은 사람, 그래서 바울같은 신앙형태를 가진 사람, 어떤 사람은 아볼료에게 은혜를 받아서 아볼료같은 신앙형태를 가진 사람, 어떤 사람은 베드로에게 은혜를 받아서 베드로같은 신앙형태를 가진 사람, 정말 다양했습니다. 다양하다보니까 고린도교회는 많은 분열과 다툼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고린도 전서 1장 말씀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요. 다앙햔 사람들이 서로 나는 바울파다, 나는 게바파다, 이렇고 싸우는 모습을 보면 너무나 답답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그렇게 모여서 분쟁과 다툼이 있었습니다만, 성령께서 그 가운데에 운행하시고 교통하셔서 다양한 사람들을 다 하나로 묶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2절에도 성령께서 강림하셔서 다양한 많은 성도들을 하나로 묶어서 한 교회로 만드는 따뜻한 사랑의 공동체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지만 성령께서 다 운행하고 교통해서, 하나로 묶어서 그래서 한 공동체, 한 몸으로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II. 각 지체가 다 한 몸 (14-21)


1. 서로 배타적일 수 없다.(14-17)


교회는 이렇게 예수그리스도를 기초로 해서 성령께서 역사하시고 운행하셔서 다양한 사람들을 한 공동체로 만든 것이 교회, 한 몸입니다. 지체가 많이 있습니다만, 그 다양한 지체가 다 한 몸입니다. 다양하기 때문에 서로 배타적일 수가 없는 것이지요. 사람들은 보통 나와 같지 않으면 같이 어울리지 않습니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보면 슥 이렇게 밀어내고 배척을 합니다. 사람들은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나하고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그저 인정하고 존중해 주지 못하고 나와 다른 사람, 나와 차이점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은 배척을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 우리 몸 안에 다양한 많은 지체들이 있습니다. 발도 있고 귀도 있고 눈도 있고, 다양한 지체들이 많이 있는데, 그 지체들의 모양과 기능이 다 달라요. 그 다른 지체들이 다른 지체는 나하고 다르다고 해서 서로 배척하기 시작하면 얼마나 큰 문제와 혼란이 일어날까요? 지체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배척하기 시작하면 그 몸은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그 몸은 여러가지 일들을, 제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다른 지체를 무시한다든지 배척한다면 그런 지체를 가진 몸은 쓰러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손하고 다리하고 싸움이 벌어졌다고 칩시다. 여러분, 다리가 내맘에 안 들어서 다리를 한 번 혼을 내줘야겠다, 버릇을 고쳐야겠다, 그리고 손으로 다리를 꽉 잡아서 꼬집어 비틀어 보십시요. 입에서 아야 소리가 나올겁니다. 내 다리가 신경통이라든지, 뭐 말을 잘 안들어서 이거 안되겠다 싶어서 잘라낼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기 몸을 상하게 만드는 것을 자해라고 이야기합니다. 자기 몸을 스스로 자해하고, 자기 몸에 스스로 상처를 입히고 자기 몸을 스스로 배척하는 일이 있으면, 다리면 다리만 손해보는 것이 아니고 몸 전체가 손해를 보게 되는 것이지요. 한 지체가 상처나고 한 지체가 고통을 겪게되면, 모든 지체가 모든 몸이 다 고통을 겪고 손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 안에도 다양한 분들이 모여서 다양한 지체들이 같이 신앙생활합니다. 직분과 은사가 다르고 사회적인 조건도 다 다르고 신앙생활하는 양태도 다르고, 각각 다 다릅니다. 그러나 다르다고 해서, ‘저 사람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그 사람과 다툰다든지 배척한다든지 하면, 몸 안의 지체들끼리 싸움이 나면, 그것이 자해행위인 것 같이, 우리 교회 안의 다른 지체를 공격하거나 배척하거나 반대하거나 다투면 그것은 자해행위를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몸 전체가 손해를 보는 그런 자해행위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차이가 있어서 그 안에서 여러가지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사실입니다. 남녀간의 차이로 인한 갈등, 혹은 또 사회적인 차이로 인한 갈등, 뭐 여러가지 갈등이 있습니다. 그런 중에 또 세대간의 차이로 인한 갈등도 있어요. 여러분, 세대간의 갈등은 집안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서요, 집안에서 보면 TV를 같이 봐도, 제가 좋아하는 프로그램하고 저희 아이들이 좋아하는 프로그램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저는 뉴스라든지, 혹은 또 교양물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좋아하는데, 저희 아이들은 또 그런 것은 질색이란 말이지요. 제가 그것을 보고 있으면 슬그머니 떠납니다. 재미 없으니까. 그러나 저희 아이들이 좋아하는 연예프로그램이나 가수 나와서 노래하는 프로그램이나 제가 좀 보려고 옆에 앉았다가도 이건 재미가 없어서, 제 마음이 불편해서 앉아 있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이제는 제가 또 슬그머니 떠나는 것이지요. 교회 안에서도 세대간의 차이가 있고, 그 가운데에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미국이나 유럽의 교회가 오랫동안 기성세대들이, 어른들이 자기들이 편한대로만 교회를 이끌어가다 보니까 시간이 점점 흘러가면서 젊은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갔습니다. 어른들이 편안한대로만 하다보니까 젊은 사람들이 불편한 거예요. 그래서 교회를 떠나가는 겁니다. 교회 안에서 자해행위가 일어난 겁니다. 어른들이 젊은 사람들을 자해하는 일들이 일어났어요. 그러다 보니까 교회 전체적으로 손해를 입게 되고, 많은 미국과 유럽의 교회들이 노인들만 있고 교회가 죽음의 상태에 이르는 교회들이 있는 것입니다. 자해를 많이 하다보면 그렇게 되지 않겠습니까? 다양한 많은 지체들이 있는데, 그 다양한 지체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고 양보하고 인내할 때에, 모든 지체가 같이 삶을 살아가고 한 몸을 이룰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내셨다.(18)


우리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18절에 말씀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그 모든 지체들을 그렇게 만드셨어요. 고유한 모양, 고유한 기능을 다 가지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 밖에 없는 것입니다.


3. 모든 지체는 동일한 유용성을 가지고 있다.(19-21)


여러 다양한 지체들이 몸에 있습니다만, 그 지체들은 다 동일한 유용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말하면 손보다는 눈이 더 정교하게 만들어지고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이야기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손에는 조금 상처가 나도 그저 잘 돌보면 잘 아물지만, 눈에 상처가 나면 상당히 심각한 문제가 되는 것이지요. 그런 면에서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만 그러나 모든 지체들은 동일한 가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 중요한 것이고 같이 협력하고 협조해서 일을 해야 온전하게 제 기능을 발휘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즘에 눈이 많이 와서 집에 동네에 눈 치우느라고 고생들을 하셨을 것입니다. 눈을 치우려면 제일 중요한 지체가 뭡니까? 손입니다. 손을 가지고 눈을 치우게 되지요. 그러나 손만 가지고 눈을 치울 수 있습니까? 그 일을 하는데 있어서는 손이 굉장히 중요하지만, 손만 가지고는 그 일을 못합니다. 다리도 있어야하구요, 눈도 있어야 하고 여러가지 지체들이 같이 힘을 모아서 협력해야 그 눈 치우는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또한 지체라는 것은 자기 혼자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지체들이 같이 협력해서 일을 할 때에 온 몸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고, 온 몸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고, 온 몸이 같이 유익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교회 안에서 여러가지 은사가 다른 분들, 혹은 직분이 다른 분들이 모여있습니다. 교회 안에 다양한 부서들이 다 모여있습니다. 그런데 은사나 직분이 다른 분들, 부서가 다른 부서들 다 각각 자기만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구요, 그 다른 은사와 직분을 가진 분들이, 다른 다양한 부서들이 같이 협력함으로써 온 몸을 위해서 온 몸을 유익하게 하는 일에 헌신을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규모가 크다 보니까 부서가 굉장히 많이 있고 다양하구요, 부서의 규모도 굉장히 큽니다. 우리 교회는 한 부서에 그 인적자원이나 그 재정이나 하는 것이 방대하기 때문에 왠마큼 큰 교회보다 재정이나 인적자원이 많은 부서들이 여럿 됩니다. 그러니 그 부서들이 각각 다 우리 부서만을 위해서 일을 한다면, 부서이기주의에 사로잡혀서 우리 부서만을 위해서 일을 한다면 온 몸은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부서들이 서로 협력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부서가 각각 독자적으로 벽을 치고 그리고는 독자적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일을 해서, 교회 전체를 위해 유익을 주도록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지체가 다양하지만, 다양한 지체를 인정하고 나와 다른 것을 존중하고 같이 협력하고 협조할 때에 몸이 유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III. 모든 지체는 하나의 공동운명체 (22-27)


1. 하나님은 모든 지체를 고르게 하셨다. (22-24)


또 모든 지체는 하나의 공동운명체입니다. 오늘 22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모든 지체를 다 고르게 필요하게 만드셨고, 그래서 돌보게 만드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 안에 다양한 형태와 기능을 가진 지체들이 있습니다만 어느 것 하나 필요없는 것이 없습니다. 어느 것 하나 버릴 것이 없습니다. 다 소중하고 다 중요한 것이지요. 다 필요한 것입니다. 엣날에는 한 때 맹장이나 편도선 이런 것들을 다 필요없는 것으로 생각해서 빨리빨리 잘라냈습니다. 그러나 맹장이나 편도선도 굉장히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뭐 조금만 감기가 온다든지, 피곤하다든지 하면 편도선이 붓지 않습니까? 편도선이 부어서 굉장히 불편하다고 해서 잘라낼 수가 없어요. 편도선은 우리가 무리를 한다든지 몸을 관리할 때에 미리 경고를 주는 것입니다. ‘너 좀 조심해라, 좀 쉬어라’ 경고를 주는 겁니다. 열도 나고 이렇게 해서 쉬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경고하는 예방하는 장치가 없으면 그냥 계속해서 몸이 무리가 되고 잘 관리를 못하고 해서 그것이 축적되어 갑자기 큰 병이 다가오게 되는 것이지요. 필요없는 것이 없습니다. 다 독특한 나름대로의 고유한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다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지체는 불필요한 것 같아 보이고 연약한 것 같이 보이지만 그래서 그것을 무시하고 잘라내야 할 것 같이 생각이 들지만, 그러나 관심을 기울이고 서로 돌보아야 온 몸 전체가 유익하고 아름다운 몸이 되는 것입니다. 25절 말씀은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몸 가운데에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하여 돌아보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연약한 지체도 서로서로 돌보고 서로서로 가꾸고 아름답게 만들어갈 때에 몸 전체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된다는 말씀이지요. 여러분, 우리 몸에 머리카락이 있습나다만 머리카락이 뭐에 쓸모가 있습니까? 이렇게 추을 때에는 좀 온도조절도 되고 그런 유익한 점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머리카락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다 우리가 몽땅 다 빡빡으로 전부 머리를 깎고 다녀도 다 똑같이 그렇게 깎는다면 별 무슨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머리카락이 없는 분들도 다 불편없이 사니까요. 그렇게 중요한 것 같이 않은데, 우리 몸 가운데에서 머리카락만큼 세심하게 돌보는 지체가 어디있습니까? 머리카락에 굉장히 돈을 많이 들여요. 매달 미장원도 가고 이발소도 가고 해서 깎기도 하고 파마를 하기도 하고 얼마나 돈을 많이 드립니까? 머리카락에 기름을 바르기도 하고 혹은 뭐 드라이어로 하기도 하고 온갖 정성을 기울이고 시간을 많이 드립니다. 언뜻 우리 성도님들 보니까 아침에 머리카락 매만지지 않고 그냥 온 분은 안계신 것 같아요. 여러분 그런데 옷을 다 깨끗하게 예쁘게 아름답게 다 입었습니다. 참 멋있는데, 머리카락을 매만지지 않아서 부수수하게 이렇게 새집짓게 만들면 그 사람 전체가 아름답지 못한 것이지요. 다른 것은 다 아름답지마 별 필요도 없는 머리카락을 만지지 않았기 때문에, 돌보지 않았기 때문에 전체가 아름답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온 몸이 아름다고 건강하기 위해서는 연약한 지체, 별로 필요한 듯이 보이지 않는 지체들도 돌봐야 되는 것이지요. 교회 안에 사회 안에 연약한 지체들을 돌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휠체어가 전부 다 들어올 수 있도록 램프도 만들고 그랬습니다. 또 저쪽 아랫마당에서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램프를 만들었어요. 물론 옛날에 지은 건물, 2층 3층에 올라갈 수 있는 시설은 아직 없습니다만, 이런 시설들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연약한 분들이 불편없이 전부 다 참여할 수 있도록 돌보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장애인을 위한 주차장을 따로 만들고 한 것이 연약한 분들을 돌보기 위해서 그런 것이지요. 시설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분들이 먼저 갈 수 있도록 양보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탈 때에도 그 분들이 먼저 탈 수 있도록 양보하고, 연세 많은 분 연약한 분이 먼저 타도록 양보하고, 이렇게 양보하고 돕고 돌보고 인내하고 하는 것이, 그렇게 함으로써 몸 전체가 건강하고 아름답게 되는 것입니다.


2. 고통과 영광을 함께 받는다.(26)


오늘 26절 말씀을 보면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몸 전체가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몸 전체가 영광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손가락 끝 하나 다쳐서 거기가 곪기 시작하면 온 몸에 열이 나서 아프지 않습니까? 피아니스트가 피아노를 잘 치는데, 그 피아노 잘 치는 것 때문에 그 손가락만 영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피아니스트 전체 사람이 영광을 받게 되어 있는 것이지요. 교회 안에서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전체가 고통을 받는 것이고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전체가 영광을 받는 것이 바로 공동운명체를 가진 것이 교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서로 돌보고 관심을 기울이고 아껴야 되는 것이지요.


3. 성도는 몸인 그리스도의 각 지체(27)


여러분 교회는 여러 사람이 모여서 각각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된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한 몸과 같은 공동체입니다. 그 속에 성령께서 운행하시고 교통하심으로 인해서 한 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요. 교회 안에 각각 다른 다양한 지체들이 있는데, 다르다고 해서 그것을 배척한다든지 반대한다든지 그런 것은 자해행위입니다. 스스로 상처를 입고 스스로 고통을 당하고 스스로 죽는 일이지요. 각각 다른 지체지만 그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리고는 각각 다른 지체들이, 다른 기능을 가진 지체들이 협력하고 협조함으로써 몸 전체가 아름다운 일들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연약한 지체들을 서로 돌봐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협력하고 돌보게 될 때에 몸 전체가 아름다운 몸이 되고 건강한 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IV. 결


사랑하는 여러분들, 우리 교회 안에 너무나 다양한 지체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양한 부서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다양한 지체들이 서로 인정하고 존중해주고 서로 돌보고 협력함으로 우리 교회가 건강한 몸, 아름다운 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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