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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시 126:1-6) / 이철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6.

그리스도인의 나라사랑
시편 126:1-6


1.하나님의 대사-기쁨,감사(1-3)


1. 1945년 8월 15일은 우리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갑작스런 선물을 주신 날입니다. 오늘과 다름없는 청명하고 뜨거운 여름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거리 곳곳에 벽보가 붙었습니다. 정오에 중대한 방송이 있으니 라디오를 들으라는 벽보였습니다. 그리고 정오 방송을 통해 소위 일본의 천왕이 무조건 항복한다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하에 있던 우리나라가 그 시간부터 해방이 된 것입니다. 옛날 평양 산정현교회 장로님이셨고 또 조만식 선생과 함께 민족주의 지도자였던, 오윤선 장로님의 아들, 작가 오영진씨는 그 당시의 상황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오영진씨는 그 방송을 들은 순간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완전히 정신분열증에 걸린 것 같다. T군과 같이 두 손을 들어 조선독립만세를 부를 수도 없었다. 사랑에서 안방으로, 안방에서 사랑으로 의미없이 들락날락하며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는 것이다. 기쁜 날이 왔다. 기쁜 날이. 너도 나도 다 같이 기뻐해야 한다.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악수하자. 나는 히죽히죽 웃었고 만나는 사람마다 끌어안다시피 악수했다.” 오늘 성경의 이야기 그대로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꿈인지 생시인지, 마치 정신이 나가 실성한 사람과 같이 꿈꾸는 것 같은 모습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갑작스런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생각 못했던 기적이 일어났기 때문에 그 놀라운 은혜를 받은 사람은 꿈꾸는 것 같은 모습을 보입니다.






2. 이스라엘 사람들이 포로생활을 하다가 귀환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멸시를 당하고 천대를 당하고 절망적인 상황가운데에 있다가 갑자기 해방이 되었습니다. 포로로 있던 데에서 갑자기 해방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를 아무도 알지 못했습니다. 정치적, 군사적으로 봤을 때 그 당시 페르시아라는 나라가 굉장히 강대한 나라였고,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는데, 그 나라가 아무 이유없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포로로 있던 데서 자기 나라로 돌려보내게 된 것입니다. 역대하 36장이나 이사야 44,45장에는 하나님께서 바사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포로를 해방시키고 귀환시켰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에서도 시편기자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대사, 놀라운 일을 행하셔서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귀환하게 하셨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1a,3a) 하나님께서 전적인 은혜로 포로를 해방시키고 귀환시켰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상상하지 못했던, 기대하지 못했던 기적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을 때에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은 꿈꾸는 것 같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그 역사의 주관자께서 대사를 행하신 것입니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한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기도 하시지만 한 나라에 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그 분께서 전적인 은혜, 값없는 은혜를 주심으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해방이 되고 또 우리나라가 해방되었던 것입니다.






3. 이런 놀라운 은혜를 받았을 때에 그 놀라운 은혜를 받은 사람마다 기쁨과 웃음과 찬양이 넘쳤습니다. 포로 생활을 하고 있을 때에는 그 입에서 절망적인 이야기, 혹은 탄식, 슬픔과 한탄이 쏟아져 나왔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받고 난 후엔 그 입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포로 생활할 때에는 그 혀가 신음의 소리, 원망의 소리, 저주의 말만 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는 그 입에서 찬양이 흘러 나왔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작가 오영진씨도 비슷한 증언을 합니다. 평양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만세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점점 도시로 파급되어 오더니 온 도시가 만세소리에 뒤덮이게 되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 날 밤이 지난 새벽에 평양신사가 불에 탔습니다.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고, 한국교회를 박해하던 상징인 평양신사가 불에 탔습니다. 길거리에 쏟아져 나온 사람들은 저마다 만세소리를 외쳤습니다. 어떤 중년남자는 생각없이 일본 전투모를 쓰고 나왔다가 사람들에게 봉편을 당했습니다. 생각없는 어떤 여성은 일본 몸빼 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다가 핀잔을 받았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얼싸안고, 만나는 사람마다 “대한 독립 만세”를 불렀습니다. 이따금 장정을 실은 트럭이 "대한 독립 만세"를 부르며 평양거리를 질주했고 그 소리를 듣는 사람마다 이에 화답을 하여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태극기가 온 도시 안에 만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기쁨이 넘치고 찬양을 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생각 못했던 기적을 보는 사람은 기쁨이 넘치고 찬양을 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육신적인 질병이 있다가 건강이 회복된 자가 기뻐하고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죄 가운데 있던 사람이 회복되서 새생명을 얻었을 때에, 기뻐하고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나라가 회복되었을 때에 기뻐하고 찬양하게 된 것입니다.


4. 여러분, 오늘 1절 말씀은 이스라엘이 회복된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고백하기를 우리나라가 회복되어 광복을 얻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고백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맞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그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만 나라를 회복시키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역사의 주관자이신 우리 하나님께서만이 이 나라를 회복시키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믿음의 기도와 약속(4-6)


1.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나안 약속의 땅,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 나라의 현실은 매우 고통스러운 현실이었습니다. 기쁨과 감격가운데 돌아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현실은 눈물과 고난의 현실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은 다 파괴되고 성전도 다 허물어 졌습니다. 곳곳에 잡초만 무성하고 돌들이 흩어져 있고, 들짐승이 돌아다닙니다. 완전히 황폐되었습니다. 농경지는 오래 묵혀 놓아서 당장 농사지어 수확을 얻을 형편이 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이 돌아왔을 때, 모두가 다 그들을 환영해 준 것이 아니었습니다. 주위에 있는 다른 부족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결속되고 하나의 나라를 형성할까봐 훼방하고 그들을 방해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매우 황폐한 가운데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민족적 정체성이라던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제대로 정비되지 못했습니다. 정신무장이 제대로 되지 못한 것이지요. 그들은 험악한 현실을 눈앞에 두고 비관했습니다. 패배주의에 빠졌습니다. 그리고는 자기들 보다는 조금 나은 옆에 있는 이방인들을 의지했습니다. 이방인들과 결혼하고, 이방인들에게 의지해서 그들의 신을 섬겼습니다. 그들은 정신적으로 황폐한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광복이 되어서 기쁨과 감격가운데에 있었지만, 우리에게 닥친 현실은 매우 고통스러운 현실이었습니다. 광복되자마자 분단이 되었습니다. 남쪽에는 미군이 지배하고 북쪽은 소련군이 지배했습니다.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자가 갈등을 하고 서로 싸웠습니다. 그 결과 6.25 전쟁이 일어났고, 6.25 전쟁으로 인해서 모든 것이 파괴되고 모든 것이 무너지고 모든 것이 황폐화되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고, 피를 흘렸고, 눈물을 흘리는 아픔이 우리 가운데에 있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렇게 모든 건물들만 파괴되고 황폐된 것이 아니라 정신과 감정도 황폐되었습니다. 갈갈이 찢기고 고통 속에 비관주의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국토뿐만 아니라 정신도 폐허가 되고, 황폐화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고통과 눈물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지 않습니까? 정신적으로도 참 고통스러운 현실가운데 놓여져 있습니다. 북쪽은 생각과 말의 자유가 없이 억압된 상황가운데 놓여져 있습니다. 굶주림과 헐벗음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는 일까지 생기고 정말 어려운 상황 가운데 놓여져 있습니다. 우리 남한은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정신적으로 역시 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그러나 그 자유를 물질의 노예로 스스로 삼아버리고 말았습니다. 물질주의에 빠져있고, 퇴폐와 향락, 부정과 불의가 온 나라에 만연되어 있어 정신적 황폐화는 말로 다 할 수가 없습니다.






2. 이러한 고통스러운 현실에 맞부딪쳤을 때, 오늘 5-6절 말씀에는 그 고통스러운 현실을 극복하는 말씀을 볼 수가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고통스러운 현실 가운데 놓여있지만, 낙심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나서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일어서서 다시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좌절하여 주저앉지 않고 눈물을 흘리면서도 그 눈물을 훔쳐내고 그리고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요? 하나님께서 거두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런 황폐화된 상황속에서도 우리가 눈물을 흘리면서도 씨를 뿌리고 애를 쓰고 노력하고 우리가 할 책임을 다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수확하게 하시고 회복케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믿기 때문에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있는 사람은 환난 중에도 좌절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환난중에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환난중에도 인내하고, 인내하기 때문에 소망을 가지고, 그래서 자기가 해야 할 책임을 다 감당하게 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환난중에도 책임있는 행동을 합니다. 다른 사람이 다 포기하고, 다른 사람이 다 주저앉아도 믿음있는 사람은 책임있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울면서도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무슨 씨를 뿌려야겠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이 뿌려야 할 씨는 복음의 씨입니다. 복음의 씨를 뿌린다는 것은 제일 먼저, 복음을 전파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쁨의 소식을 전파한다는 것입니다. 희망의 소식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구원의 소식, 하나님의 은혜의 소식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복음의 씨를 뿌린다는 것은 복음대로 삶을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겸손하고 정직하고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건전하고 고상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도덕적으로 높은 수준의 삶, 품위있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하고, 복음대로 삶을 살아가고, 이렇게 복음의 씨를 계속해서 뿌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다 황폐한 가운데 놓여있고, 좌절가운데 놓여있더라도 믿음 있는 사람은 이 복음의 씨를 계속해서 뿌리는 것입니다. 복음의 씨를 뿌릴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황폐된 정신을 올바르게 회복케 하실 것입니다. 복음의 씨를 뿌릴 때에 부패하고 타락한 이 민족의 정신을 기독교 정신으로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복음의 씨를 뿌릴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정직과 정의와 자유와 민주의 정신을 회복케 하실 것입니다.


윌버포스라는 분이 있습니다. 제가 만남지 이번 달 호에 ‘그리스도인과 나라사랑’이라는 칼럼에서 윌버포스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윌버포스가 살던 당시의 영국은 산업혁명과 식민지로 인해서 경제적으로 굉장히 풍요했습니다만 나라의 꼴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빈부격차가 너무 심했고, 사회정의가 깨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방탕하고 술 취하고 타락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윌버포스도 마찬가지여서 그 당시의 상류층 귀족들이 삶을 살아가던 그대로 그도 역시 출세와 명예를 추구하면서 쾌락가운데 타락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웨슬레의 ‘영적부흥’에 영향을 받았습니다. 성령께서 그 가운데 감동하고, 그가 죄 가운데서 구원받아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거듭난 사람이 되었을 때에 그는 자기가 여지껏 까지 살아가던 모든 삶의 가치관과 목표를 모두 버렸습니다. 그전까지 그의 목표는 수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거듭나는 순간, 수상이 목표가 아니고 우리 사회의 타락한 것을 바로 잡아야겠다는 것이 그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정신적 건강은 기독교를 믿고 실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는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나라의 도덕적인 중생, 도덕적으로 거듭나는 일에 자기 자신을 헌신했습니다. 출세하는데 헌신하지 않고, 그 나라의 도덕적인 거듭남에 헌신했습니다. 노예무역을 근절시키고, 타락한 관습들을 개혁하고, 어린이 노동이나, 감옥 제도들을 개선하는 일을 했습니다. 후세의 사가들은 윌버포스의 업적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가 살던 시대는 그 이전의 잔인하고, 살벌하고 타락한 나라였던 것이 절제와 예의와 질서정연한 나라가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한 헌신된 그리스도인이, 그 정치가가 자기의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라를 사랑하는 가운데 정신을 바꾸고자 복음의 씨를 뿌리게 되었을 때에 그 나라가 변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우리 한경직 목사님을 볼 때에 ‘개척자’라는 생각을 가집니다. 6.25후에 우리나라가 여러 가지로 황폐된 가운데 있는데, 우리 한 목사님은 그 황폐된 정신으로부터 민족정신을 바로 세우는 일들을 압장서서 하신 개척자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 목사님은 이 나라를 세우는 것은 복음으로만이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민족 정신의 기초가 기독교 정신이 되어져야 이 나라가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일생을 이 나라 이 민족의 복음화에 전적으로 헌신했습니다. 전적으로 헌신한 결과, 우리 영락교회도 여러 가지 많은 은혜를 보게 되었고, 한국교회는 말할 것도 없이 이 민족이 그 정신이 바로 세워지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일이 분명합니다. 우리 교회는 이 민족 속에서 복음의 씨를 뿌려야겠습니다. 이 민족을 복음화 시킬 때에 정신이 바로 서고 나라가 바로 선다는 믿음을 가지고 민족복음화에 헌신해야 겠습니다. 열심히 전도하고, 교회를 세우고, 학원선교나 군선교에 힘을 쓰고, 북한선교에 힘을 쓰는 일에 헌신해야 겠습니다. 또 우리 성도들은 헌신된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 속에서 복음의 씨를 뿌려야겠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어떤 현장가운데 삶을 살아가든지, 정치를 하는 분이던지, 기업을 하는 분이던지, 교사던지, 혹은 미디어에 종사하는 분이던지, 복음의 삶을 살아가는, 복음의 씨를 뿌림으로 인해서 황폐된 이 나라의 정신을 바로 세우는 일들을 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우리가 복음의 씨를 뿌릴 때에 우리 하나님께서 이 나라 이 민족의 정신을 바로 세울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씨를 뿌릴 때에 하나님께서 이 나라를 회복케 하실 줄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들, 우리 하나님께서 회복케 하실 줄을 믿고 복음의 씨를 뿌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낙심하지 아니하고, 좌절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복음의 씨를 뿌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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