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예언과 거짓 예언/한스 라돈엘교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변화가 심하고 불안전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이 물음에 구체적인 답을 얻고 싶어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앞날이나, 정치 적인 미래를 알고자 점쟁이나 유명한 심령과학자를 찾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들의 예언들이 그다지 믿을만하지 못하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경의 3분의 1은 예언서이다 인기있는 종교서적의 작가들은 특히 성경 마지막책인 계시록 16장 16절의 아마겟돈(Armageddon)을 자주 등장시킨다. 그들은 아마겟돈이 마지막 세계대전이 일어날 곳으로 북구 팔 레스틴의 카멜(Carmel)산 근처의 메기도(Megiddo)골짜기를 가르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있다. 아메겟돈으로 알려져있는 하마게돈 (Harmagedon)이 정말로 그런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 수 없다.
성경을 믿는 크리스챤들도 서로 부딪히는 성경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마지막 7년 환란을 겪지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7년환 란이 시작되기 직전에 교회는 휴거된다고 믿는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시온산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며,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은 임박한 휴거의 첫번째 증거라고 믿는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참다운 교회는 7년환란을 통과해야만 하고, 순교와 시련의 환란을 견디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믿는다.
예언의 완성과 현대적 의미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세대주의자 dispensationalist)라 불렀다.
그들은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에 큰 의미를 두어, 1948년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세대가 시작하는 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마가복음 13장 30절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일이 다 이루리라고 한 말씀을 그 증거로 들었다.
한 세대를 40년으로 계산하며, 1988년은 아마겟돈전쟁이 시작되는 해가 된다. 홀린세이(Hal Lindsey)는 대유성 지구의 종말(The Late Great Planet Earth, New York: Bantam Books, 1973)에서 다음 과 같이 썼다.
"무슨 세대냐고요 분명히,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의 건국은 가장 중요한증거가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한 세대는 40년정도의 기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계산해보면, 1948년이후 40년정도면, 모든 일은 다 끝나 버립니다."(p. 54)
우리는 예수가 말했던 바로 그 마지막 세대입니다.1 이러한 계산법에 따라 휴거는 1988에서 7년을 뺀 1981년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실제로 1981년에 휴거를 준비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시카고선타임즈(Chicago suntimes)1981년 6월 4일자는 그와 같은 잘못된 추측 들이 가져온 결과를 아래와 같이 전했다.
"그 사건(1981년 6월 28일에 휴거가 일어날 것으로 믿고)을 준비하기 위해, 50명의 신도(아리조나주 툭손의 밝은 집 복음협회, Lighthouse Gospel Foundation) 들은 직장도 그만두고 재산도 처분했다"(p. 34).
세대주의자들은 성경 지명의 문자적인 적용을 주장한다. 헤롤드 린셀 (Harold Lindsel)
l)은 중동지역이 마지막 예언의 무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성경은 중동이 예수의 재림과 관계가 있는 사건들이 일어난 주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2
그는 아마겟돈을 이스라엘과 아랍 산유국 사이의 전쟁이라고 보았다. 린셀은 같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말세는 아랍국가의 석유가 고갈되기 전에 온다. 이는 말세가 가까운 것을 의미 하며 세계역사의 완성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머지 않은 장래에 그 정점에 이르게 될것이라.3
1967년 6월 6일전쟁 결과, 이스라엘 육군이 고도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그것을 구약예언 성취이며, 인류 역사의 결정적 전환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데렉프린스(Derek Prince)는 이렇게 말했다. 예루 살렘 지역에 유대인 정권이 다시 들어서는 것은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변하는 것이다. 예수가 말한 이방인의 시대(the time of Gentiles)는 끝나가고 있다. 새로운 시대가 온다. 그 시대는 이스 라엘과 모든 나라들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정부가 통치하는 때이다. 4
세대주의자들은 지금의 이스라엘은 마지막 전쟁을 위한 도화선이라고 부른 다. 실제로, 월부드(Walvoord)는 3차세계대전에서 아마겟돈까 지의 사건 일지도 만들었다.
5 오늘날 기독교 예언가들 특별히 근본주의자들은, 지금의 우리들은 임박한 심판 날을 앞둔 마지막 세대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들의 성경해석은 하나의 공통된 가정에서 출발한다. 히브리 예언자들은 예언서에서 앞날의 사건들을 기록했다고 보았다. 즉 문자적인 해석이 성경 해석의 바른 지침(gideline)이 며 전제조건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서의 예언들이 미래에 문 자 그대로 이루어 진다고 생각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각 계파, 지리적 설명, 당 시의 적대국들이 지금도 문자 그대로 적용됨을 뜻한다. 나아가, 현재의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세계(Gentile World)에서 신정국가가 될 것이 라고 가정한다. 그들은 구약의 예언은 무조건 문자 그대로 신약시대에 일어나야 한다는데 너무 열중하여, 구약 예언서의 중심 주제가 예수의 오심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나타난 예언
바벨론 유수 직전, 하나님께서 곧 유대국가를 회복하여 축복하실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한 국수주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 내용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만을 전했다.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을 가 르키면서 그들은 외쳤다. 이것은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렘7:4). 마치 이스라엘이 하나님앞에서 지은 죄악이 어떠하든 지 상관없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이미 떨어질 수 없는 하나가 된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와 같은 잘못된 평화와 소식에 반박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렘23:16). 또한, 자칭 선지자들이 바벨론에 끌려간 유대인들 가운데도 있었다.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의 귀환이 임박했다고 선전하므로, 은근히 유대인들의 반란을 부추기 기도 했다. 느부갓네살은 2명의 반란자를 체포하여 처형했다 (렘29:22). 이는 예레미야가 포로된 유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 언한 것이 이루어진 것을 뜻한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골라 야의 아들 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죽일것이라(렘29:21).
하루는 궁전 뜰에서 예레미야는 국수주의 거짓선지자가 하나니야 (Hananiah)와 맞닥뜨린다. 하나니야는 바벨론 포로 생활이 70년 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예레미의 예언과는 정반대로 하나님께서 곧 이스라엘을 회복시 킬 것이라고 말했다(렘25:11; 29:10). 뻔뻔하게 하나니야 는 주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2년 안에 하나님이 바벨론으로 간 유대 모든 포로 들은 다시 돌아가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렘28:4). 얼마나 놀라운 예언인가 그는 평화(shalom)가 임박했음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 자신의 예언일 뿐이었다. 그 때 예레미야는 그와같은 평화의 선포는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과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렘29:8, 참조, 사8:20).
그러면, 왜 하나니야의 예언은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는가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과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이 빠른 시일안에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거짓예언자들을 구별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평화와 축복의 언약을 무조건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이스라엘의 회복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귀향의 필수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는 회개와 믿음의 회복을 애써무시하거나 거부하고 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 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 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렘29:10~14).
도덕적인 회개가 예레미야의 예언의 핵심이다(렘18:7~10). 그러나 하나니야는 여호와께 패역하는 말(렘28:16)을 전했으며, 조건없는 예루살렘의 평화를 선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거짓을 믿게 (렘28:15)하였다.
구약학자들 가운데는 하나니야를 선자자 이사야를 흉
내낸 사람 (caricature)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는 하나니야가 그 날에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목에 매인 앗수르의 멍예를(사10:27)를 벗어지게 할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앵무새처럼 반복했기 때문이라 한다. 하나니야는 자신의 시대로부터 1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이 살던 시대에 문자적으로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았다. 만일 그렇지 않 다면, 하나님은 이사야의 예언에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단정했다. 유대 신학자 마틴부어(Martin Buber)는 하나니야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고 지적했다.
그러나 하나니야는 전적으로 다른 역사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시간을 잘 못 안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몰랐다.
거짓 선지자들은 그저 이사야의 예언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그들은 각각의 예언이 갖는 조건을 무시하고 있다. 즉 그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어떤 시대 에나 적용할 수있는 조건없는 안전의 약속으로 선전했던 것이다.6 하나니야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가 아니었다. 그는 참 선지자처럼 거룩한 도성과 성전을 위해 간구하는 선지자의 소명을 받지 못했다(렘27:18).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멸망했고, 이는 유대인들이 성전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대신에 성전을 의지한 때문이다. 히스기야왕은 앗수르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 했을 때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의 안전을 지켰는데, 이것은 한 모형이 되어서 그후 유대인들이 잘못된 평안을 갖게 되는 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니 히스기야왕 이후의 왕들이 종교적으로 타락했다. 유대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때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백성들로 잘못된 희망을 갖게 했을 뿐아니라, 결과적으로 임박 한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이 내백성의 상처를 심상 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라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6:14).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 씀이니라 하며 또는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예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뇨(렘23:17, 18).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박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 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렘23:21).
이스라엘의 자칭 선지자들은 열정을 갖고 자신들이 참 예언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믿었던 것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으셨다.
이와 같이 내가 내 노를 담과 회칠한 자에게 다 이루고 또 너희에게 말하기를 담도 없어지고 회칠한 자들도 없어졌다 하리니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 하며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본다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13:15, 16).
모세는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을 구별하는 결정 기준을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그 는 그 예언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지를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고 했다 (신13:1~5).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시험하셨다(신23:3). 모세오경(Torah)은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을 구별하는 기준이되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유혹, 이방 신들을 믿게 하던 거짓 선지자들을 주로 지적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에도 어긋나며 또한 백 성들을 현혹시키는 거짓 예언들에도 적용할 수 있다(신30:1~3).
주전 586년,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함락한 다음 하나님은 거짓된 평화의 예언들이왜 잘못된 것인가하는 보다 깊은 이유를 선지자를 통해 알려 주었다.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 집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애2:14)
그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을 인함이니 저희가 성읍중에서 의인의 피를 흘렸도다(애4:13).
이스라엘의 거짓 선지자들은 분명 하나님의 백성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었다.
에스겔은 엄중하게 그들의 잘못을 폭로하고 있다.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여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였으며 이 땅 백성은 강포하여 늑탈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였으며 우거한 자를 불법하게 학대하였으므로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아가 얻지 못한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 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22:28~31).
자칭 선지자들은 건방지게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참 예언을 전하지 못하게 막 기도 했다. 미가는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에언할 것이 아니어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고 불평했다(미2:6; 암7:16). 미가는거짓 평화를 전하는 선지자들과는 정반대의 예언을 했 다.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미3:12).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참선자는 언제나 어두운 앞날만 예언했고, 거짓 선지자들만이 평화와 번영을 예 언한 것일까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분명 앞으로 메시야의 왕국에서 누리게 될 평화를 선포했다(미4:1~5; 암9:11~15; 렘23:5, 6, 29:13, 14; 32:42; 겔36:24~32; 37; 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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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질적인 차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를 벗어났을 때, 참 예언자들은 진실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깨어있는 자(남은자)만이 이스라엘의 약속된 평화와 축복을 누렸다(암5:6, 15; 미2:12, 13; 4:6~8; 렘23:3~6; 31:7; 31~34; 겔36:24~28). 반면, 거짓 예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의 성취만을 강조 도덕적(신앙적)인 전제조건을 생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조건없는 보장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들은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즉 거짓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린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아무 조건없이 선택하셨다는 독단의 교리를 전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하나님, 이스라엘과 메시야의 관계에 대한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못했다.
오늘날도 과거의 거짓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이 현재의 이스라엘을 택해서 회복 시켰다고 단정하는 것은 거짓 선지자의 예를 따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신약에 나타난 참 예언과 거짓 예언
크리스챤들은 나사렛 예수를 구약의 해석자로 생각한다. 그들은 예수를 메시야 라고 믿는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나님의 선지자(막6:4; 눅13:33)라 선언했고, 또한 하나님이 주신 권위로 앞날을 내다 보았다(막13장, 마5~7장).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은 그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권위는 율법이나, 조상들, 전통혹은 랍비들로 부터 받 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하나님의 뜻을 아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바(abbba)아버지라 불렀다. 우리는 예수님이 아주 친밀하게 하나님과 교제 하셨음을 알 수 있다7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맺은 언약의 분명한 목적을 완전하게 보이셨다(히1:1, 2). 오직 예수만 이 아버지의 품속으로부터 세상에 오셨다(요1:18).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예언된 바있는 자신의 사명을 아셨다: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그는 자신이 요나보다 더 큰 이 솔로몬보다 더 큰 이 성전보다 더 큰이라 말해 당시에 유대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예언이 성취될 때가 지금이라고 말한 것이다.
예수는 모세오경을 구속의 책, 약속의 책으로 보았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을 율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도는 또한 시편의 단편들, 특히 이스라엘의 왕들과 지도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들을 자신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보내심을 설명하였다.
부활하신 후 그는 제자들에게 구약성경의 핵심이 무엇인지 설명하셨다. 미련 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것을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 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5~27).
성경학자들은 구약 전체가 이스라엘 중심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메시야 중심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예언과 역사적 사명의 한 가운데 그리스도가 있다. 이는 구약의 예언들을 하나님과, 기름부음 받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와 연관시켜 성경의 예언들을 이해해야 된다는 것을 뜻한다 (고후1:20).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충고하셨다.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7:15, 16). 그리스도는 그 열매가 귀신을 쫓아 낸다거나, 기적을 행하는 것 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7:21~23). 모세도 신명기 13장 1절부터 5절에서 거짓 선지자들의 가면을 벗기는 방법을 제시했다. 거짓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구속자와는 전혀 다른 거짓 신을 전한다. 그 신은 모세오경에 나오는 도덕적 순종과 회개 를 요구하지 않는다(신30:1~10). 거짓 선지자는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한다(신13:5).
그리스도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24)경고했다.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 처럼 신약의 거짓 선지자들도 평화의 약속만을 강 조했다. 당시의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생각지 않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그리스도는 예언의 성취이다. 사도바울 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강조했다(고 후2:20).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무조건 이스라엘과 교회에 평화를 전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종말에 일어날 거짓 선지자들을 경고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 전5:3; 렘6:14; 8:11; 겔13:10).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21:43).
왜 그가 그런 충격적인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리스도는 농부의 비유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유대인들은 상속자를 보고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 하자고 결정했다.(마21:38). 즉 유대의 건축자들은 이스라엘의 머릿돌,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했다(마21:42).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사람들은 미래의 어떤 세대가 아니라 예수를 메시야로 받 아 들인 자들이다. 그리스도는자신의 제자들을 위로하셨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 그리스도는 12명의 사도를 임명, 그들을 새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나의 교회(마16:16~18)라고 불렀다. 사도교회는 그리스도를 믿었던 남는 자들을 대표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이와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가르쳤 다(롬11:5). 축복의 언약은 반드시 정치적이나 인종적으로 유대인들에 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안에서 공동체된 모두에게 미친다.
최초의 남은 자(remnant)들은 예수를 주와 구주로 믿었던 유대인들 이었다. 또한 남은자된 유대인들은 이방인 크리스챤들을 받아들였다 (롬10:9~13). 이방인들은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가지에 접붙 임이된 것처럼 이스라엘의 남은자 가운데 접붙임이 되었다. 그리스도를 거절 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감람나무에서 꺽임을 당했다. 그러나 성경은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 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고 한다(롬11:23). 모든 경우 성경의 언약과 예언의 핵심으로 메시야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예수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가 이스라엘의 주되심을 거절한 유대인들 은 팔레스틴에 있을 때에도 흩어짐을 당했다.
성경의 예언은 이스라엘이 메시야에게 모일 것이라고 한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인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11:10). 그리스도를 통해 이 놀라운 회복의 약속은 성취되었다.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수고하고무거운 짐짐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초청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메 시야예언의 성취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언서에 나타난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구약 예언은 그리스도 중심으로 기록된 것이다.8 로마가 고대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참 이스라엘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얼 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직전에 그 도시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 로마군대로부터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떠들었다. 유대인 사가 요세푸스는 자칭 선지자들이 유대인들을 계속 부추켜 결국 그들은 비참한 최후의 순간을 맞이 할수밖에 없었다고 적고있다.
멸망의 날이 이르기 직전에,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하나님은 명령하셨다. 성전으로 모이시요 너희는 놀라운 구원의 기적을 누리게 될 것이다고 떠들 어 댔다. 매수된 거짓 선지자들이 위협적인 말투로 선전하고 다녔다.9 거짓 선지자들은 시온산에서 히브리 선지자들과 맺은 구원의 약속이 곧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요2:32; 3;2; 단12:1). 그들은 예루 살렘이 곧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의 시간을 잘못 해석했고 거짓 선지자들은 비참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거짓 예언을 하게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회복의 약속이 조건없이 이스라엘에게 적용되다고 보았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거룩한 남은 자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예언을 이루셨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멸망당할 거룩한 성을 떠나라고 명령하셨다. 예루살렘을 떠나면서, 예수는 보라, 너희 집이 황페하여 버린바 되리라고 선언하셨다. 성경의 지명이 문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원리에 따라, 예루살렘이 아직도 예언 성취의 중심무대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 있 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거룩한 도성이시다. 예수는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다고 외쳤다. (마12:6; 눅17:20, 21; 요4:21~24). 결과적으로 문자에 억매이지 않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구약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바른 것이다.
거짓 예언이 또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재림의 시기에 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느냐하는 것이다. 재림에 대한 시간표를 만들어 보려는 어떠한 노력도 잘못 된 것이다. 예수님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 지 못함이니라고 말했다.
의미를 분명히 이해시키기 위해서, 예수는 예화로 말씀하셨다.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른지 혹 저물 때엘는지,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마13:34,35).
예수님의 경고는 교회에도 바로 적용된다. 부활후, 제자들이 예수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고 물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다고 즉각 대답하셨다(행1:6, 7).
참 크리스챤은 구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마음 속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우리를 위로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말고 오직 깨어 근 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 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 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다(살전5:4~9).
주(註)
1. 임박한 아마겟돈, The 1980s Countdown to Armageddon, New York: Bantam Books, 1982, p. 162.
2. 거세지는 폭풍, The Gathering Storm Wheaton, III.: Tyndale House Publishers, 1980, p. 97.
3. Ibid., p. 101.
4. 중동에 관한 마지막 예언The Last Word on the Middle East, Linclon, va.: Chosen Books., 1982, p. 97.
5. J. F. Walvoord, 아마겟돈, 석유와 중동분쟁, Armageddon, oil and the Middle Crisis, Grand Rapids:Zondervan Books, 1974, pp. 23, 200-206
6. 변 화, Die Wandlung, Heidelberg 2, 1946~1947, pp. 279, 280.
7. 신약성경의 유일성과 다양성 Unity and Diversity in the New Testament, Philadelphia:Westminster Press, 1972, pp. 186, 187.
8. 예언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스라엘, LaRondelle, The lsrael of God in Prophecy, chaps. 7-10.
9. 유대전쟁사,Wors of the Jews 6.5.2, in W. Whiston, trans., Josephns: Complete works, Grand Rapids, Mich.: Kregel pub., 1960, p. 582.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변화가 심하고 불안전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이 물음에 구체적인 답을 얻고 싶어한다. 자신의 개인적인 앞날이나, 정치 적인 미래를 알고자 점쟁이나 유명한 심령과학자를 찾는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들의 예언들이 그다지 믿을만하지 못하다. 한편, 많은 사람들은 성경이 미래를 예언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성경의 3분의 1은 예언서이다 인기있는 종교서적의 작가들은 특히 성경 마지막책인 계시록 16장 16절의 아마겟돈(Armageddon)을 자주 등장시킨다. 그들은 아마겟돈이 마지막 세계대전이 일어날 곳으로 북구 팔 레스틴의 카멜(Carmel)산 근처의 메기도(Megiddo)골짜기를 가르킨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제는 남아있다. 아메겟돈으로 알려져있는 하마게돈 (Harmagedon)이 정말로 그런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 수 없다.
성경을 믿는 크리스챤들도 서로 부딪히는 성경해석을 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마지막 7년 환란을 겪지않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7년환 란이 시작되기 직전에 교회는 휴거된다고 믿는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시온산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며,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은 임박한 휴거의 첫번째 증거라고 믿는다.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은 참다운 교회는 7년환란을 통과해야만 하고, 순교와 시련의 환란을 견디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고 믿는다.
예언의 완성과 현대적 의미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세대주의자 dispensationalist)라 불렀다.
그들은 1948년의 이스라엘 건국에 큰 의미를 두어, 1948년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세대가 시작하는 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마가복음 13장 30절에서 예수가 제자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일이 다 이루리라고 한 말씀을 그 증거로 들었다.
한 세대를 40년으로 계산하며, 1988년은 아마겟돈전쟁이 시작되는 해가 된다. 홀린세이(Hal Lindsey)는 대유성 지구의 종말(The Late Great Planet Earth, New York: Bantam Books, 1973)에서 다음 과 같이 썼다.
"무슨 세대냐고요 분명히, 모든 상황, 가운데서도 이스라엘의 건국은 가장 중요한증거가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한 세대는 40년정도의 기간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계산해보면, 1948년이후 40년정도면, 모든 일은 다 끝나 버립니다."(p. 54)
우리는 예수가 말했던 바로 그 마지막 세대입니다.1 이러한 계산법에 따라 휴거는 1988에서 7년을 뺀 1981년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실제로 1981년에 휴거를 준비했던 사람들도 있었다.
시카고선타임즈(Chicago suntimes)1981년 6월 4일자는 그와 같은 잘못된 추측 들이 가져온 결과를 아래와 같이 전했다.
"그 사건(1981년 6월 28일에 휴거가 일어날 것으로 믿고)을 준비하기 위해, 50명의 신도(아리조나주 툭손의 밝은 집 복음협회, Lighthouse Gospel Foundation) 들은 직장도 그만두고 재산도 처분했다"(p. 34).
세대주의자들은 성경 지명의 문자적인 적용을 주장한다. 헤롤드 린셀 (Harold Lindsel)
l)은 중동지역이 마지막 예언의 무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성경은 중동이 예수의 재림과 관계가 있는 사건들이 일어난 주요 무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2
그는 아마겟돈을 이스라엘과 아랍 산유국 사이의 전쟁이라고 보았다. 린셀은 같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예측했다. 말세는 아랍국가의 석유가 고갈되기 전에 온다. 이는 말세가 가까운 것을 의미 하며 세계역사의 완성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머지 않은 장래에 그 정점에 이르게 될것이라.3
1967년 6월 6일전쟁 결과, 이스라엘 육군이 고도 예루살렘을 점령하자, 그것을 구약예언 성취이며, 인류 역사의 결정적 전환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데렉프린스(Derek Prince)는 이렇게 말했다. 예루 살렘 지역에 유대인 정권이 다시 들어서는 것은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변하는 것이다. 예수가 말한 이방인의 시대(the time of Gentiles)는 끝나가고 있다. 새로운 시대가 온다. 그 시대는 이스 라엘과 모든 나라들을 통치하는 하나님의 정부가 통치하는 때이다. 4
세대주의자들은 지금의 이스라엘은 마지막 전쟁을 위한 도화선이라고 부른 다. 실제로, 월부드(Walvoord)는 3차세계대전에서 아마겟돈까 지의 사건 일지도 만들었다.
5 오늘날 기독교 예언가들 특별히 근본주의자들은, 지금의 우리들은 임박한 심판 날을 앞둔 마지막 세대의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들의 성경해석은 하나의 공통된 가정에서 출발한다. 히브리 예언자들은 예언서에서 앞날의 사건들을 기록했다고 보았다. 즉 문자적인 해석이 성경 해석의 바른 지침(gideline)이 며 전제조건이 된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에 대한 예언서의 예언들이 미래에 문 자 그대로 이루어 진다고 생각한다. 이는 이스라엘의 각 계파, 지리적 설명, 당 시의 적대국들이 지금도 문자 그대로 적용됨을 뜻한다. 나아가, 현재의 이스라엘이 이방인의 세계(Gentile World)에서 신정국가가 될 것이 라고 가정한다. 그들은 구약의 예언은 무조건 문자 그대로 신약시대에 일어나야 한다는데 너무 열중하여, 구약 예언서의 중심 주제가 예수의 오심이라는 사실을 잊고 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나타난 예언
바벨론 유수 직전, 하나님께서 곧 유대국가를 회복하여 축복하실 것이라고 주장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한 국수주의 예언자들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맺은 언약 내용 가운데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만을 전했다. 예루살렘의 솔로몬 성전을 가 르키면서 그들은 외쳤다. 이것은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 여호와의 전이라(렘7:4). 마치 이스라엘이 하나님앞에서 지은 죄악이 어떠하든 지 상관없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은 이미 떨어질 수 없는 하나가 된 것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와 같은 잘못된 평화와 소식에 반박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렘23:16). 또한, 자칭 선지자들이 바벨론에 끌려간 유대인들 가운데도 있었다.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의 귀환이 임박했다고 선전하므로, 은근히 유대인들의 반란을 부추기 기도 했다. 느부갓네살은 2명의 반란자를 체포하여 처형했다 (렘29:22). 이는 예레미야가 포로된 유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예 언한 것이 이루어진 것을 뜻한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골라 야의 아들 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라 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너희 목전에서 그들을 죽일것이라(렘29:21).
하루는 궁전 뜰에서 예레미야는 국수주의 거짓선지자가 하나니야 (Hananiah)와 맞닥뜨린다. 하나니야는 바벨론 포로 생활이 70년 동안 계속될 것이라는 예레미의 예언과는 정반대로 하나님께서 곧 이스라엘을 회복시 킬 것이라고 말했다(렘25:11; 29:10). 뻔뻔하게 하나니야 는 주의 이름으로 맹세하며 2년 안에 하나님이 바벨론으로 간 유대 모든 포로 들은 다시 돌아가게 할 것이다고 말했다(렘28:4). 얼마나 놀라운 예언인가 그는 평화(shalom)가 임박했음을 선포했다. 그러나 이것은 그 자신의 예언일 뿐이었다. 그 때 예레미야는 그와같은 평화의 선포는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이 전한 하나님의 말씀과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렘29:8, 참조, 사8:20).
그러면, 왜 하나니야의 예언은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는가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과는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이 빠른 시일안에 자신들의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했다. 거짓예언자들을 구별할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인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평화와 축복의 언약을 무조건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이스라엘의 회복에도 그대로 적용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귀향의 필수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는 회개와 믿음의 회복을 애써무시하거나 거부하고 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칠십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 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 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나게 하던 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느니라 (렘29:10~14).
도덕적인 회개가 예레미야의 예언의 핵심이다(렘18:7~10). 그러나 하나니야는 여호와께 패역하는 말(렘28:16)을 전했으며, 조건없는 예루살렘의 평화를 선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로 거짓을 믿게 (렘28:15)하였다.
구약학자들 가운데는 하나니야를 선자자 이사야를 흉
내낸 사람 (caricature)으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는 하나니야가 그 날에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목에 매인 앗수르의 멍예를(사10:27)를 벗어지게 할것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을 앵무새처럼 반복했기 때문이라 한다. 하나니야는 자신의 시대로부터 100년 전에 이사야를 통해 전해진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이 살던 시대에 문자적으로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았다. 만일 그렇지 않 다면, 하나님은 이사야의 예언에 응답하지 않은 것으로 단정했다. 유대 신학자 마틴부어(Martin Buber)는 하나니야가 잘못된 판단을 내렸다 고 지적했다.
그러나 하나니야는 전적으로 다른 역사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시간을 잘 못 안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를 몰랐다.
거짓 선지자들은 그저 이사야의 예언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러나 그들은 각각의 예언이 갖는 조건을 무시하고 있다. 즉 그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어떤 시대 에나 적용할 수있는 조건없는 안전의 약속으로 선전했던 것이다.6 하나니야는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의 중재자가 아니었다. 그는 참 선지자처럼 거룩한 도성과 성전을 위해 간구하는 선지자의 소명을 받지 못했다(렘27:18).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심판에 따라 멸망했고, 이는 유대인들이 성전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대신에 성전을 의지한 때문이다. 히스기야왕은 앗수르왕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포위 했을 때 하나님의 도움으로 이스라엘의 안전을 지켰는데, 이것은 한 모형이 되어서 그후 유대인들이 잘못된 평안을 갖게 되는 한 요인이 되었다.
그러니 히스기야왕 이후의 왕들이 종교적으로 타락했다. 유대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 때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는 메시지를 전했고, 백성들로 잘못된 희망을 갖게 했을 뿐아니라, 결과적으로 임박 한 하나님의 심판을 재촉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들이 내백성의 상처를 심상 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라 하나 평강이 없도다 (렘6:14).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 씀이니라 하며 또는 마음의 강퍅한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예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뇨(렘23:17, 18).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박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 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렘23:21).
이스라엘의 자칭 선지자들은 열정을 갖고 자신들이 참 예언의 전통을 따르고 있다고 믿었던 것같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으셨다.
이와 같이 내가 내 노를 담과 회칠한 자에게 다 이루고 또 너희에게 말하기를 담도 없어지고 회칠한 자들도 없어졌다 하리니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예언 하며 평강이 없으나 평강의 묵시를 본다 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13:15, 16).
모세는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을 구별하는 결정 기준을 백성들에게 가르쳤다. 그 는 그 예언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는지를 먼저 알아보아야 한다고 했다 (신13:1~5).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시험하셨다(신23:3). 모세오경(Torah)은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을 구별하는 기준이되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유혹, 이방 신들을 믿게 하던 거짓 선지자들을 주로 지적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에도 어긋나며 또한 백 성들을 현혹시키는 거짓 예언들에도 적용할 수 있다(신30:1~3).
주전 586년,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함락한 다음 하나님은 거짓된 평화의 예언들이왜 잘못된 것인가하는 보다 깊은 이유를 선지자를 통해 알려 주었다.
네 선지자들이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 집힌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애2:14)
그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을 인함이니 저희가 성읍중에서 의인의 피를 흘렸도다(애4:13).
이스라엘의 거짓 선지자들은 분명 하나님의 백성의 행복에는 관심이 없었다.
에스겔은 엄중하게 그들의 잘못을 폭로하고 있다.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여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하였으며 이 땅 백성은 강포하여 늑탈하여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압제하였으며 우거한 자를 불법하게 학대하였으므로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아가 얻지 못한고로 내가 내 분으로 그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보응하였 느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22:28~31).
자칭 선지자들은 건방지게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참 예언을 전하지 못하게 막 기도 했다. 미가는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에언할 것이 아니어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고 불평했다(미2:6; 암7:16). 미가는거짓 평화를 전하는 선지자들과는 정반대의 예언을 했 다.
이러므로 너희로 인하여 시온은 밭이 갊을 당하고 예루살렘은 무더기가 되고 성전의 산은 수풀의 높은 곳과 같게 되리라(미3:12).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참 예언과 거짓 예언의 근본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참선자는 언제나 어두운 앞날만 예언했고, 거짓 선지자들만이 평화와 번영을 예 언한 것일까 하나님의 선지자들도 분명 앞으로 메시야의 왕국에서 누리게 될 평화를 선포했다(미4:1~5; 암9:11~15; 렘23:5, 6, 29:13, 14; 32:42; 겔36:24~32; 37; 2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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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질적인 차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를 벗어났을 때, 참 예언자들은 진실한 회개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깨어있는 자(남은자)만이 이스라엘의 약속된 평화와 축복을 누렸다(암5:6, 15; 미2:12, 13; 4:6~8; 렘23:3~6; 31:7; 31~34; 겔36:24~28). 반면, 거짓 예언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겠다는 약속의 성취만을 강조 도덕적(신앙적)인 전제조건을 생략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조건없는 보장인 것처럼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지 않았다. 그들은 믿음과 순종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즉 거짓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린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아무 조건없이 선택하셨다는 독단의 교리를 전했다.
그들은 이스라엘과 하나님, 이스라엘과 메시야의 관계에 대한 어떠한 관심도 보이지 못했다.
오늘날도 과거의 거짓 선지자들처럼 하나님이 현재의 이스라엘을 택해서 회복 시켰다고 단정하는 것은 거짓 선지자의 예를 따르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신약에 나타난 참 예언과 거짓 예언
크리스챤들은 나사렛 예수를 구약의 해석자로 생각한다. 그들은 예수를 메시야 라고 믿는다. 그리스도는 자신을 하나님의 선지자(막6:4; 눅13:33)라 선언했고, 또한 하나님이 주신 권위로 앞날을 내다 보았다(막13장, 마5~7장). 제임스 던(James. D. G. Dunn)은 그의 내면에 숨겨져 있는 권위는 율법이나, 조상들, 전통혹은 랍비들로 부터 받 은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하나님의 뜻을 아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바(abbba)아버지라 불렀다. 우리는 예수님이 아주 친밀하게 하나님과 교제 하셨음을 알 수 있다7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은 아브라함, 모세, 다윗과 맺은 언약의 분명한 목적을 완전하게 보이셨다(히1:1, 2). 오직 예수만 이 아버지의 품속으로부터 세상에 오셨다(요1:18). 그리스도는 구약에서 예언된 바있는 자신의 사명을 아셨다: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요5:39). 그는 자신이 요나보다 더 큰 이 솔로몬보다 더 큰 이 성전보다 더 큰이라 말해 당시에 유대인들을 놀라게 했다. 그는 예언이 성취될 때가 지금이라고 말한 것이다.
예수는 모세오경을 구속의 책, 약속의 책으로 보았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을 율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도는 또한 시편의 단편들, 특히 이스라엘의 왕들과 지도자들을 위해 만들어진 시들을 자신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보내심을 설명하였다.
부활하신 후 그는 제자들에게 구약성경의 핵심이 무엇인지 설명하셨다. 미련 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것을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 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눅24:25~27).
성경학자들은 구약 전체가 이스라엘 중심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메시야 중심으로 기록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예언과 역사적 사명의 한 가운데 그리스도가 있다. 이는 구약의 예언들을 하나님과, 기름부음 받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와 연관시켜 성경의 예언들을 이해해야 된다는 것을 뜻한다 (고후1:20).
그리스도는 그의 제자들에게 충고하셨다.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7:15, 16). 그리스도는 그 열매가 귀신을 쫓아 낸다거나, 기적을 행하는 것 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7:21~23). 모세도 신명기 13장 1절부터 5절에서 거짓 선지자들의 가면을 벗기는 방법을 제시했다. 거짓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구속자와는 전혀 다른 거짓 신을 전한다. 그 신은 모세오경에 나오는 도덕적 순종과 회개 를 요구하지 않는다(신30:1~10). 거짓 선지자는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한다(신13:5).
그리스도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24:24)경고했다. 구약의 거짓 선지자들 처럼 신약의 거짓 선지자들도 평화의 약속만을 강 조했다. 당시의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생각지 않았고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지도 않았다. 그리스도는 예언의 성취이다. 사도바울 은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 강조했다(고 후2:20).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무조건 이스라엘과 교회에 평화를 전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종말에 일어날 거짓 선지자들을 경고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살 전5:3; 렘6:14; 8:11; 겔13:10).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는 유대 지도자들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마21:43).
왜 그가 그런 충격적인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가 그리스도는 농부의 비유에서 그 이유를 설명했다. 유대인들은 상속자를 보고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 하자고 결정했다.(마21:38). 즉 유대의 건축자들은 이스라엘의 머릿돌, 하나님의 아들을 거절했다(마21:42).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사람들은 미래의 어떤 세대가 아니라 예수를 메시야로 받 아 들인 자들이다. 그리스도는자신의 제자들을 위로하셨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12:32). 그리스도는 12명의 사도를 임명, 그들을 새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나의 교회(마16:16~18)라고 불렀다. 사도교회는 그리스도를 믿었던 남는 자들을 대표했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이와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가르쳤 다(롬11:5). 축복의 언약은 반드시 정치적이나 인종적으로 유대인들에 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안에서 공동체된 모두에게 미친다.
최초의 남은 자(remnant)들은 예수를 주와 구주로 믿었던 유대인들 이었다. 또한 남은자된 유대인들은 이방인 크리스챤들을 받아들였다 (롬10:9~13). 이방인들은 돌감람나무가 참감람나무가지에 접붙 임이된 것처럼 이스라엘의 남은자 가운데 접붙임이 되었다. 그리스도를 거절 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언약의 감람나무에서 꺽임을 당했다. 그러나 성경은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 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고 한다(롬11:23). 모든 경우 성경의 언약과 예언의 핵심으로 메시야 예수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 예수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예수가 이스라엘의 주되심을 거절한 유대인들 은 팔레스틴에 있을 때에도 흩어짐을 당했다.
성경의 예언은 이스라엘이 메시야에게 모일 것이라고 한다.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인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사11:10). 그리스도를 통해 이 놀라운 회복의 약속은 성취되었다. 예수는 유대인들에게 수고하고무거운 짐짐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초청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은 메 시야예언의 성취이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예언서에 나타난 영적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구약 예언은 그리스도 중심으로 기록된 것이다.8 로마가 고대 예루살렘을 점령했을 때, 참 이스라엘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얼 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었다.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직전에 그 도시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 로마군대로부터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떠들었다. 유대인 사가 요세푸스는 자칭 선지자들이 유대인들을 계속 부추켜 결국 그들은 비참한 최후의 순간을 맞이 할수밖에 없었다고 적고있다.
멸망의 날이 이르기 직전에,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하나님은 명령하셨다. 성전으로 모이시요 너희는 놀라운 구원의 기적을 누리게 될 것이다고 떠들 어 댔다. 매수된 거짓 선지자들이 위협적인 말투로 선전하고 다녔다.9 거짓 선지자들은 시온산에서 히브리 선지자들과 맺은 구원의 약속이 곧 실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요2:32; 3;2; 단12:1). 그들은 예루 살렘이 곧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들은 성경의 시간을 잘못 해석했고 거짓 선지자들은 비참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거짓 예언을 하게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은 회복의 약속이 조건없이 이스라엘에게 적용되다고 보았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오셨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거룩한 남은 자들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예언을 이루셨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멸망당할 거룩한 성을 떠나라고 명령하셨다. 예루살렘을 떠나면서, 예수는 보라, 너희 집이 황페하여 버린바 되리라고 선언하셨다. 성경의 지명이 문자 그대로 적용되어야 한다는 원리에 따라, 예루살렘이 아직도 예언 성취의 중심무대가 되고 있다는 주장이 있 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거룩한 도성이시다. 예수는 성전보다 더 큰이가 여기 있다고 외쳤다. (마12:6; 눅17:20, 21; 요4:21~24). 결과적으로 문자에 억매이지 않고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구약성경을 해석하는 것이 바른 것이다.
거짓 예언이 또 다른 두드러진 특징은, 재림의 시기에 관해서 어떠한 태도를 취하느냐하는 것이다. 재림에 대한 시간표를 만들어 보려는 어떠한 노력도 잘못 된 것이다. 예수님은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 지 못함이니라고 말했다.
의미를 분명히 이해시키기 위해서, 예수는 예화로 말씀하셨다.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른지 혹 저물 때엘는지,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마13:34,35).
예수님의 경고는 교회에도 바로 적용된다. 부활후, 제자들이 예수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이니까고 물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다고 즉각 대답하셨다(행1:6, 7).
참 크리스챤은 구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마음 속에 거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우리를 위로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말고 오직 깨어 근 신할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 으니 근신하여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 하나님 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다(살전5:4~9).
주(註)
1. 임박한 아마겟돈, The 1980s Countdown to Armageddon, New York: Bantam Books, 1982, p. 162.
2. 거세지는 폭풍, The Gathering Storm Wheaton, III.: Tyndale House Publishers, 1980, p. 97.
3. Ibid., p. 101.
4. 중동에 관한 마지막 예언The Last Word on the Middle East, Linclon, va.: Chosen Books., 1982, p. 97.
5. J. F. Walvoord, 아마겟돈, 석유와 중동분쟁, Armageddon, oil and the Middle Crisis, Grand Rapids:Zondervan Books, 1974, pp. 23, 200-206
6. 변 화, Die Wandlung, Heidelberg 2, 1946~1947, pp. 279, 280.
7. 신약성경의 유일성과 다양성 Unity and Diversity in the New Testament, Philadelphia:Westminster Press, 1972, pp. 186, 187.
8. 예언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스라엘, LaRondelle, The lsrael of God in Prophecy, chaps. 7-10.
9. 유대전쟁사,Wors of the Jews 6.5.2, in W. Whiston, trans., Josephns: Complete works, Grand Rapids, Mich.: Kregel pub., 1960, p. 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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