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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신학 비판

by 【고동엽】 2022. 1. 11.
오순절 신학 비판




성령 세례가 처음 예수 믿음으로 성령 받음과 별개의 것이며, 방언 말함은 필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순절파가 제시하는 사도행전 본문들을 구원사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오순절은 단회적 구원사적 사건
오순절 성령 강림은 헤르만 바빙크(Hereman Bavinck)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하신 세 번째 큰 사역으로서 창조사역과 성육신 다음의 큰 사역이요, 성육신 다음의 신비이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실 수 있게 된 근거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의 구속에 있기 때문에 그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공로이다.
또 그리스도의 구속이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획득한 근거이며 속전으로서 하나님께서 그 구속을 만족하셨다는 표라고 할 수가 있다.
오순절에 하나님은 인류와 함께 거하시기 위해서 오셨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시 가지신 경륜의 실현인데, 그러나 인류의 구원이 완성된 것이 아니므로 인류에게 오신 성령은 구속 사역도 계속하신다. 그러므로 구속 사역이 완성 되면 성령의 내주가 구원 사역의 확장과 연관되지 않을 것이고 새 인류에의 내주가 완전해 질 것이다. 새 인류에의 하나님의 내주가 성령 오심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오순절에 성령 강림은 구약에 약속하신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출29:45)의 성취이고, 이 일은 종말에서 완성될 것이다.(계21:3)
이 내주의 측면에서 볼 때 성령 강림절의 외적 표징들은 그리 본질적이 아니며 방언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성령의 오심은 하늘 본처로 가셨다가 또 오시고 하시는 것이 결코 아니라 처음 인류에게 오신 날부터 떠나시지 않고 계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 중에 교회가 발생한 것이다.
또 인류와 함께 계시기 위해 오신 성령은 영구히 인류와 함께 계신다는 진리에서 보면 성령 세례 받을 시 방언함이 필수적인 것이 아님은 오순절 후에 나타난 성령 받음에서 잘 밝혀졌는데, 성령이 인류와 함께 하심은 하나님의 충만한 거주의 실현이 목적이 될 것이다.


2. 방언의 구원사적 관점
오순절의 성령 강림이 방언 말하게 하심도 구원사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① 구약의 예언의 성취로 주신 것이다.(사28:11)
② 바벨탑을 통해 하나님께 대항하는 역사를 할 때에 혼잡케 된 언어를 다시 원상 회복시킬 것임을 예표한 것이다.(어느 말을 할지라도 서로 알아듣는 회복이 될 것이다.)
③ 성령 받음에 방언을 말함은 필수적인 것도 아니고 규범적인 것도 아니며 사도행전의 기록에 의하면 오순절 후에도 몇몇 곳에서 방언은 나타났지만 계속적으로 반복되지 않았다.


3. 사마리아 개종과 두 수사도의 역할
행8:4~25의 말씀에서 사마리아 개종 사건이 성령 세례가 예수 믿은 다음의 일로 발생한다고 추론하지만 그들이 말씀을 주목한 사실이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 두 사도가 와서 기도 할 때에 믿은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4. 베드로와 로마인의 개종
행10:1~48의 고넬료의 가족의 개종도 믿음 후 성령 세계와 방언으로 해석 할 것이 아니라, 착취하는 로마인들의 교회에의 편입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증명하기 위해 성령 강림에 방언이 동반된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5. 에베소의 12제자
행18:24~19:7까지에 에베소의 12제자의 개종이 잘 기술되어 있는데, 여기는 처음 세례 받고 얼마 후에 사도 바울의 안수로 성령 세례를 받고 방언을 말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요한의 세례만 받았기 때문에 성령의 세례를 받을 수가 없었는데,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근본 세례를 받게 함으로서 성령 받음이 어떤 것인가를 분명히 가르쳐주시기 위한 섭리로 이해해야 한다.


6. 예수 믿음 = 성령 받음
오순절 성령 강림 시에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예수를 믿어 성령 받은 3천명과 며칠 후 5천명은 예수 믿음과 성령 받음이 동일했다.


7. 성령 충만의 문제
성령충만이라고 함은 물독에 물이 가득 담기듯 가득한 의미로 주어진 말씀은 성경에 없으며 바울의 어법과 이해를 따라서 새 생명의 원리, 능력으로 새 생활의 원리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라고 이해해야 한다.


(1) 육과 영과 대비
성령 충만은 우리의 노력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으로서 성령에 전적으로 지배된 상태를 의미한다.


(2) 성령의 인도받음 = 성령 충만
로마서 8장에는 성령 충만이란 표현과 암시는 전혀 없고 성령의 인도만을 말하는데, 여기 성령의 인도는 성화와 연결해서 전개되고 있다.
성령의 내주와 사역의 목표에서 볼 때 성령 충만은 바로 성령의 인도함 받는 것으로 이해해야 옳다. 이에 벗어나 다른 이해를 갖고 성령 충만을 구하면 곧 분파의 길에 서기가 십상이고 다른 신학 곧 오순절 운동의 신학과 같은 것을 만들어 내기가 쉽다.
성령의 중요한 사역은 복음 선포와 그리스도인 만듦에 성립하며, 복음 선포도 실상은 그리스도인 만듦에로 귀착한다.
성령의 능력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권세라는 것을 모르고 별개의 능력으로 알고 구하다가 어려움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성령의 능력은 그리스도 증거 중심적으로 말씀 선포가 이루어질 때 가장 활발하다. 왜냐하면 성령께서 이 증거를 위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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