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오경의 현대적 이해
1.창조와 최초의 인류에 대한 설교
창세기 1-11장의 내용은 늘 신학적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 부분을 어떻게 이해하느냐 하는 것은 나머지 모세오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바탕이 된다. 본문의 고대역사를 자유주의자들처럼 신화로 취급하거나 신정통주의자들처럼 시적표현이나 상징적인 내용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결국 본문에 대한 우리의 접근방식은 본문의 장르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한다.
창세기는 히브리 사상의 집합체라 할 만큼 히브리민족의 우주관과 역사관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저자가 주장한 우리 시대의 역사기술 방식이 아닌 당시의 역사적 사실성을 고수하면서 고대의 우주 발생론적 시각과 역사기록 맥락으로 접근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주장이다. 저자가 지적한 과학과 역사, 역사적 현실과 신앙을 분리시키는 딜레마는 설교자들에게 큰 난제거리이지만 우주기원을 기술하는 고대적인 방법을 우리가 따른다면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현대과학과 창세기 사이에서 하나의 선택을 강요하는 것은 그다지 지혜롭지 못하다. 그것은 이러한 강요가 사람들을 극단화시킬 뿐만 아니라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창세기는 인류역사에 대한 세밀한 교재가 아니고 하나님의 구속사에 대한 교재다. 오경의 참 된 주인공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중요 사건만을 시대에 따라 선택하여 당시의 기록방식에 따라 기록한 것이다. 또한 성경은 과학 교과서도 아니다. 그렇다고 시대에 뒤떨어진다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는 기록 목적을 올바로 이해하는 가운데 그 책을 바로 평가하고 그 목적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과학적 모든 질문에 해답을 제공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목적으로 성경에 접근한다면 실패하게 된다. 우리는 성경이 명확하게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그대로 놔두고 성경이 명확하게 말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외쳐야 한다.
창세기에 들어 있는 자료들도 서로 다른 기자들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을 전달하는 일에 가능한 모든 자료들을 동원한 것으로서 창조의 개념을 당대의 친숙한 청중에게 쉽게 전달하기 위해 그러한 문화적 자료들을 이용하여 편집했다고 본다. 어떤 양식비평 학자들은 창조, 홍수 등의 기사들을 히브리인들이 고대 수메르와 바벨론으로부터 빌려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기사들은 고대의 자료들로부터 파생되어 공유된 전통적인 자료들을 모세가 사용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심어주신 위대한 진리들을 가르치려고 한 성경 기자들에게 의해 사용되어져 왔던 고대의 이야기들이다. 중요한 것은 성경 기자들이 그들의 이야기들을 전통 속에서 수용했으며 그들의 증거를 위하여 그것들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바벨론의 다신론적 창조 자료에 접했던 성경의 기자가 창조주 하나님을 더 분명하게 강조하기 위하여 바벨론의 자료를 참고하면서 순서는 수용하고 중요한 신학적 견해를 야훼로 바꾸어 편집한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이 아니라 충분히 비평하면서 신학적으로 창조하여 기록하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의 영감이 함께한 것이다. 바벨론의 창조 자료를 참고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시성이 떨어지거나 오류를 삽입시킨 것은 결코 아니다. 참고하면서 비판하면서 그 시대에 맞는 것을 뽑아낸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시대나 사상에 맞추려고 그것들을 변화시키지 않았다. 그러기에 창세기의 기록은 다분히 반 바벨론적인 특징을 지닌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의 진리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 고대 이야기를 사용했을 뿐이다. 이것은 저자가 ‘고대 청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으로 기술하기를 선택’했다고 표현한 것은 옳다. 그러므로 창세기에 대한 올바른 해석은 근원적인 계시와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된 전통적인 이야기는 반드시 구별되어야 한다. 따라서 설교자는 사실적 사건보다는 해석되거나 설교된 역사에 보다 깊은 관심을 지녀야 한다. 이것은 사건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분명한 역사적 사건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창세기의 기록들은 모두 전설이나 신화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고대적 기술은 해석된 역사내지는 설교된 역사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창1-11장의 진리들은 원역사의 보존성과 정확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건의 증거 속에 있다. 신학자들은 성경의 역사적, 과학적 정확성에 관하여 계속 논쟁할 것이지만 설교자의 임무는 다른 데에 있다. 그것은 역사적, 과학적 정확성의 논쟁에 대한 결과가 어떠하든 본문의 핵심이 하나님의 사건에서 온 것이기에 분명한 확신 가운데서 설교해야 한다. 설교자가 본문에서 역사적, 과학적 정확성을 얻기 위해 성경 기자가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질문들까지도 그 문서를 통해 답변되고 있다는 듯이 조작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주장은 대단히 중요하다고 본다. 설교자는 전문적인 과학자나 역사비평가가 되어야 할 필요가 없다. 성경의 기록은 모두 고대인들의 기술형식에 따라 기록된 사실이기에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연구하고 이해하여 하나님이 본문에서 주시고자 하시는 진리를 찾아내어 선포하는 작업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것이야 말로 논점의 핵심에 도달하는 일이라 여겨진다. 과학이론들과 신학 체계들은 끊임없이 개정되고, 우리의 성경에 대한 이해도 진전을 가져왔지만 그 핵심적 메시지는 여전히 동일하다. 바로 이 바탕 위에 설교자가 서야한다. 탁상공론의 논쟁 놀이에 시간을 소비하지 않고 하나님이 본문에서 주시고자 하는 불변의 진리를 확신 있게 전해야 한다. 논쟁의 폭풍들이 격노할 때 배를 정로로 인도할 책임이 바로 설교자들에게 있다.
또한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상징적으로 해석할 것인가, 아니면 히브리인들의 전통에는 맞지 않지만 신화(myth)로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갈등이 존재하나, 본래 히브리 성경 기자들은 그러한 표현에 그들의 신앙을 세우지 않았다. 그들은 창조, 출애굽, 가나안 정복, 왕정생활, 포로 생활, 복귀 등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에 근거하여 신앙을 구축했다. 설교가의 목적은 하나님의 계시의 진리를 선포함에 있어서 고대의 전통으로부터 만들어져 사용된 것을 발견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전통과 메시지를 구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추구하는 바는 그 저자가 성경에서 그 이야기를 하는 의도가 무엇인가를 발견해 내는 일이다. 어떤 본문의 요점이 결정되었을 때 설교자의 과업은 막 시작되는 것이다. 설교자는 성경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 사이의 긴 역사와 문화의 간격을 좁혀 ‘그 때’의 하나님이 ‘지금’의 하나님으로 다가오게 해야 한다.
2.모세의 율법에 대한 설교
모세의 율법에 대한 설교도 저자가 주장한 고대적인 상황과 대조하여 율법을 설명해 줄 때 현대 청중은 이해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러나 저자가 고대 법률의 성격과 율법에 의한 히브리 공동체의 가치관, 그리고 모세 율법의 계약 성격과 율법의 두 가지 형태와 특징들을 설교에 적용하도록 자세히 설명한 부분에 대하여는 높이 평가하나, 중요한 것은 현대 설교에서 모세의 율법을 해석하여 적용하려면 무엇보다도 당시의 사회정황에 대한 율법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이 율법을 주신 근본이유와 더불어 하나님에 대한 성품일 것이다.
현대 설교자는 하나님이 히브리 공동체에 율법을 주신 근본적인 목적부터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신 시기가 기원전 약 1500년경으로 족장시대와 출애굽사건과 광야생활의 시대다. 당시 히브리 공동체는 부족사회의 구조를 형성하고 있었고 반(半)유목적이었다. 율법을 자세히 조사해 보면 당시 사회가 부족간의 유대관계를 중요시하며 보편적으로 계급이 없는 평등사회로 보아진다. 이렇듯 한 부족사회체제 속에서 평등과 평화를 보존시키려는 시도가 바로 율법의 기원이라 여겨진다. 그러므로 율법을 현대적 사회에 적용하여 설교하려면 당연히 율법의 내면에 흐르고 있는 사회체제의 평화정신 내지는 평등정신 등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율법에는 하나님의 인격과 활동이 계시되어있다. 그분은 창조주이며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사건의 주권자이며, 압제당하여 고통 받고 있는 백성을 초자연적인 능력으로 구원하는 사랑과 권능의 하나님이시다. 율법에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이 계약준행을 통해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 또한 율법에는 그의 거룩하심이 종교법과 민법, 판례법과 절대법 등 모든 법률의 중심에 계시되어 있다. 이러한 율법들은 모두 그 당시의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서 정치, 경제, 종교, 사회 전반에 적용된다. 히브리 공동체의 윤리관이 강조되어 있는 십계명과 성례전, 그리고 신명기법전 등은 모두 하나님과 이웃들을 향해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들을 중점적으로 교훈하고 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과 함께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것이 인간에 대한 존엄성, 인권존중 정신들을 볼 수가 있다. 조금 더 풀어보면 율법에는 종교문제, 가정문제, 경제문제, 법률적 문제 등 하나님 중심의 공평과 평화를 보존하는 사회 윤리적 관심을 강조한다. 이 외에도 계약법전에는 재판에서의 공정성을 통해 약자와 가난한 자들의 권리를 옹호하는 고대적인 복지정책 등이 들어있다. 레위기에는 성법전을 통해 히브리 공동체의 정당한 분배를 통한 경제문제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의 절대소유권과 인간의 청지기적 역할 등을 강조한다. 동시에 희년 제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화목의 관계를 유지하며 변화시킨다. 안식년 제도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창조질서 안에서 조화관계를 유지하도록 인도하며 동시에 자연을 가꾸어야 할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 것이다. 성법전에서의 노예문제는 근본적으로 동족끼리의 노예화를 금지하며 평등주의의 원칙이 저변에 흐르고 있다. 신명기법전은 모세 율법의 중심이라 볼 수 있는 것으로 그 저변에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헌신과 인간을 향한 폭넓은 자비심이 담겨져 있는 사회윤리 교훈이다.
오늘 날 우리가 모세의 율법을 자구대로 설교한다면 청중은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큰 혼란을 겪게 될 것이다. 고대 사회의 특성에 맞게 선포된 율법을 오늘 날에 맞게 설교하려면 우리는 율법을 주신 근본적인 이유와 아울러 그 율법 내면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성품과 의도에 집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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