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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의 빛 /시 56:10-13

by 【고동엽】 2022. 1. 10.

어둠 속의 빛

시 56:10-13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며

 

여호와를 의지하여 그의 말씀을 찬송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

 

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사면초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위기뿐이고 캄캄하고 앞뒤가 꽉 막힌 상태를 사면초가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그런 때가 있습니다. 어디를 보아도 문이 없고 길이 없고 빛이 없고 방법이 전무할 때가 있습니다. 살아가다가 그런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때 어느 곳에 틈이나 문이 열려 있거나 빛이 있으면 해결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문입니다. 참새 한 마리가 교회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밖으로 나아가려고 하니 문이 없습니다. 이리 날고 저리 날아 탈출하려고 해도 도무지 열린 문이 없습니다. 그렇게 날아다니다가 이 참새는 지쳐서 땅바닥에 떨어졌습니다. 그 상태가 사면초가입니다. 도무지 방법이 없습니다. 그 순간이 절망의 순간인 동시에 그 순간이 기회의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 시간이 또 다른 길을 발견하는 순간이고 새로운 눈이 뜨이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참새가 땅바닥에서 기진맥진해 지친 모습으로 위를 올려다보았을 때 한줄기 빛이 저 위에서 내리 비추고 있었습니다. 분명 그곳에 탈출구가 있어 보였습니다. 그것을 바라본 이 참새는 힘껏 날아서 그 구멍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땅바닥까지 내려앉아서 저 위를 바라보았더니 그곳에 길이 있었고 문이 있었습니다.

 

본문의 시는 다윗의 믹담이라는 표제가 붙은 시입니다. 다윗의 시 가운데 황금과 같은 시라는 뜻입니다. 세상에 교훈을 주고 주옥같은 잠언이라는 말씀입니다. 시편 중에는 아름다운 시들이 참 많습니다. 1편, 23편, 42편, 100편 등은 아름답고 감미로운 시로 많은 독자들이 애송하는 시입니다. 그런데 본 시는 그렇게 감미로움으로 애송하는 시라기 보다 인생의 깊은 의미나 깊이 그리고 무게와 내용이 일품인 시로 평가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의 삶과 신앙과 위기극복을 위한 신앙이 무엇인가를 배우게 됩니다.

 

 

 

다윗의 유복한 유년기

 

 

 

다윗은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고 자랍니다. 7형제 중 막내로 다윗은 어려서 목동 생활을 합니다. 그때 다윗은 자연과 들과 시냇가를 배경으로 한 지역에서 성장했을 것입니다. 그 점이 후에 다윗으로 하여금 풍성한 감정을 가지고 살게 했을 것입니다. 저는 농촌에서 태어난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농촌에 가면 금방 마음이 들뜨고 농촌의 생활에 금방 빠져들곤 합니다. 어려서 생활한 정서 때문일 것입니다. 다윗이 시편 23편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정서 때문일 것입니다. 고향이 종로인 사람이나 광화문인 사람이 이런 감각을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농촌에서 출생하고 잠시나마 농촌에서 자란 것을 특별히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려서 자란 삶의 환경은 그래서 중요합니다. 어려서 교회에 한번 가 보았던 경험이 중요합니다. 후에 신앙의 길에 들어서는데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어려서 미션스쿨을 다니게 된 것도 언젠가 신앙의 길로 돌아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입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놀러 교회에 갔던지 얻어먹으러 갔던지 그 계기는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어려서 경험한 신앙교육과 어머니의 신앙적 말씀 한마디, 교사의 말씀 한마디가 그렇게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말은 또 어려서 받은 상처는 성장한 후에도 크게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래서 어려서 결손가정에서 자란 영향이 크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술주정하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은 성장한 후에도 정신적으로 영향을 받아 아버지와 똑같은 길을 걷게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또한 어려서 당한 성적 피해의 충격도 커서 성장한 후에 까지도 어둡게 영향을 미치는 것입니다. 다윗은 유년시절 참 유복하게 자라고 목동생활에서 얻은 많은 경험을 가지고 성장하게 됩니다. 그것이 후에 백성을 치리하는데 크게 영향력을 미쳤을 것입니다.

 

 

 

청년기부터 위기의 삶

 

 

 

그렇게 유복하게 자란 다윗은 청년기에 접어들면서부터 그의 인생이 아주 험악하게 산전수전을 겪으면서 자랍니다. 어느 날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전장에 나가있는 형들을 면회차 찾아가는 일을 계기로 그의 인생의 행로가 뒤바뀌게 됩니다. 그는 그곳에서 골리앗을 목격하고 그에게 나아가 넘어트림으로서 왕 의 신임을 받고 등용되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는 일약 하루아침에 유명인사가 되었고 그때부터 다윗은 백성들로부터 지극한 사랑과 기대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다윗은 그때부터 사울의 가장 무서운 정적으로 떠오릅니다. 특히 골리앗을 죽이고 돌아올 때 연도의 여인들로부터 들려온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라는 노래 한 소절이 사울로 하여금 두고두고 잊지 못하게 하는 시기와 질투의 사신으로 만들었고 다윗으로 하여금 수난의 길을 걷게 만들었습니다.

 

정치인은 인기를 먹고 존재하는 직업입니다. 인기 없는 정치인은 아무리 유능해도 기회가 주어지질 않습니다. 그때부터 사울이 다윗을 제거하기로 마음먹습니다. 그리고 그 때부터 다윗은 피곤한 도피생활을 하게 됩니다. 다윗의 도피생활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생사의 고비를 수없이 넘나드는 음침한 골짜기를 걷는 것과 같은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그렇게 도피의 삶을 살아가다가 마침내 다윗은 사울을 피해서 블레셋 땅으로 도망을 갑니다. 그곳에 가면 안전할 줄 알았지만 블레셋 사람들은 저가 골리앗을 죽인 사람이 아니냐 하고 알아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왕에게까지 밀고 되어 사로잡히게 됩니다. 안전한 곳으로 도망간다는 것이 적의 수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신하들은 당장 죽여야 한다고 왕에게 진언했고 다윗은 또 한 번 일생일대의 가장 큰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까딱하면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상황이 “사면초가”입니다. 어디를 봐도 캄캄한 칠흑뿐이고 답답한 현실에 봉착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다윗은 침착하게 평정을 유지하며 캄캄한 중에 비추어 오는 한줄기의 구원의 빛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 순간 다윗은 미친 사람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침을 흘리고 몸을 긁적거리며 흉측한 미친 사람의 흉내를 냈습니다. 그 위기의 순간에 이렇게 냉철해질 수가 없습니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 불완전한 사람의 흉내를 낸다는 것도 그리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정신병원에 두 환자가 퇴원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 면담에 임했습니다. “2+3은 몇입니까”하고 물으니까 “가을입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아직도 더 치료가 필요한 환자입니다. 또 한사람에게 “2+3은 몇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정확하게 “5 입니다”하고 대답을 합니다. 그 환자는 퇴원해도 좋습니다. 정상 판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왠지 미심 적습니다. 그래서 다시 확인차 물었습니다. “왜 5라고 생각합니까” 그랬더니 “2+가을은 5 아니냐”하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다시 입원해야 합니다. 한 사람이 “나는 나폴레옹이다”하고 소리치며 돌아다닙니다. 그러니까 또 한사람이 “내가 언제 너를 나폴레옹으로 임명했느냐”하고 쫓아다닙니다.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들이 천연스럽게 이런 흉내를 낼 수 있습니까.

 

그런데 그 위급한 상황에서 다윗은 천연스럽게 미친 사람 흉내를 그럴듯하게 냈습니다. 그러자 왕은 “이 땅에도 미치광이가 많은데 그것이 부족해서 저런 미치광이를 불러 들였느냐, 빨리 내 쫓으라” 명령해서 다윗은 구사일생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다윗은 위기에서 간신히 헤쳐 나옵니다. 그 때를 생각해 보면 아찔했고 현기증이 났을 것입니다. 그때 그런 심정과 과정을 거치는 동안 설렜던 그의 심적 감동을 기록한 시가 오늘 읽은 본문입니다. 그러니까 이 본문의 시가 주는 메시지가 얼마나 심오하고 그 의미가 깊겠는가 말입니다. 그래서 시편은 읽을수록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다윗의 생애는 그렇게 명암이 극명하게 대조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은 통일 왕국을 이루어 정치 종교 사회 문화부분에 탁월한 업적을 남기는 영광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일개 초라한 목동이 이스라엘의 통일왕국 왕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 과정이 그냥 쉽게 이루어졌겠습니까. 그 과정에는 무수한 환란의 삶과 혼동의 과정과 정신적인 아픔이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고뇌의 과정을 거치는 동안 다윗은 자연스럽게 그의 신앙이 깊어지고 믿음이 굳세어지고 인생의 경험이 풍부하게 되는 교훈과 잠언과 신앙 고백자로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후반 인생의 신앙의 삶

 

 

 

다윗은 그런 고난의 길을 통해서 신앙이 아주 깊어집니다. 다윗은 그런 고난의 길을 걷는 동안 세 가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자신의 연약성”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무능한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눈물도 참 많이 흘렸습니다. 8절을 보면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소서,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하고 호소합니다. 그 말은 수많은 밤을 눈물로 지새웠다는 말입니다. 다윗은 남몰래 위험한 자리에 처해서 눈물을 많이 흘렸을 것입니다. 그 눈물이 눈물 병에 담을 만큼 흘렸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겸손해지고 침착해지고 인내력을 키웁니다.

 

그리고 동시에 다윗은 “하나님의 위대성”도 함께 깨닫게 됩니다. 나의 무지, 무능 저 너머에 하나님의 무한한 힘과 신비 그리고 능력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헤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것을 믿게 됩니다. 자신의 무능과 무력함을 깨닫는 만큼 다윗은 하나님의 크고 위대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런 길을 걷는 동안 다윗의 신앙이 여물어 갑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후에 다윗은 매사를 하나님께 맡기는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 후부터 “다윗의 기도 내용”이 달라집니다. 그 후부터는 기도응답이 반드시 이루어질 줄 믿고 기도합니다. 9절을 보면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인 줄 아나이다”, 12절에서 “내가 주께 서원함이 있사온즉 내가 감사제를 드리리니”하고 기도합니다. 이것을 “선취적 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될 줄 믿고 미리 하나님께 감사제를 드리는 믿음 이것이 선취적 믿음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무엇에 근거해서 그렇게 자신만만한 기도를 합니까. 그것은 자신의 지난날에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에 기초를 둡니다. 골리앗과 싸울 때 승리 하게 하신 것, 일개 목동출신으로 하여금 여기까지 오도록 인도하신 것, 그리고 위기 때 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것 등을 통해서 다윗은 틀림없이 이번도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과 믿음이 언제나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응답이 주어질 줄 믿고 미리 감사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시 54:을 보면 그는 낙헌제를 드린다고 고백합니다. 낙헌제는 하나님이 결국 나로 이기게 하실 것을 믿고 미리 제물을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차별화한 믿음의 차원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나로 하여금 이기게 하신다, 하나님은 반드시 내 기도를 들으신다” 하고 믿고 확신합니다. 이런 확신이 있으니까 그렇게 당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위기 때 마다 그의 믿음은 더욱 빛이 났고 기도할 때는 더욱 확신을 가졌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많은 경험, 체험, 산 증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할 말이 많았습니다. 시편을 보십시오. 여러 편의 시를 통해서 자신이 만난 그 하나님을 자신 있게 생생하게 증거하고 찬양하고 고백하고 간증하고 있지 않습니까.

 

가끔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당시는 어렵겠지만 지나고 보면 얼마나 할 말이 많아 좋을 것입니까. 그래서 신앙은 체험의 삶입니다. 하나하나를 체험하고 배우면서 여물어서 인생을 오래 살면 지혜가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이 가장 아끼는 책이 탈무드입니다. 탈무드는 선조들이 고난의 삶을 통해서 터득하고 경험한 지혜들을 모아 엮어 놓은 책입니다. 거기에 지혜가 들어있고 길이 들어있고 방법이 들어 있습니다.

 

토레이 목사가 젊어서 한때 방황합니다. 집이 싫어 가출을 합니다. 집을 나가는 아들에게 어머니가 당부합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알지 못해 두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으라, 그러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에게 응답을 주실 것이다.”

 

집을 나가자마자 그는 가는 곳마다 실패합니다. 인생의 쓴맛을 경험합니다. 어느 날 여관방에 누워 자신을 살펴보니 너무나 초라하고 비참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만 자살하려고 합니다. 그 순간 어머니의 마지막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두려워질 때는 주저하지 말고 하나님을 찾으라, 그러면 틀림없이 응답하시리라.”

 

순간 이 청년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합니다.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가야할 길을 인도하소서.” 그리고 일어나 탕자처럼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때 틀림없이 아들이 돌아올 줄 알고 매일 기도하며 기다리던 어머니가 좇아나가 아들을 맞아들였습니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다 알고 있다, 네가 왜 돌아오게 되었는지를, 분명 너는 하나님을 찾았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네게 응답을 주셨을 것이다“. 그때 그 아들은 아무 말 없이 고개만 끄덕거렸습니다. 그 젊은이가 후에 미국의 대 부흥사 토레이 목사로 거듭나게 됩니다.

 

여러분, 신앙의 연조, 노년의 인생, 그리고 늙음, 이것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노년인생은 힘이 없고 능력이 줄어들지만 거기에 경험과 경륜과 지혜가 풍성하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젊은이는 패기가 있고 능력이 있고 힘이 있지만 그런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만큼 지혜가 부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힘입니다. 잔잔한 바다를 배타고 항해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다 무사하게 돌아온다는 보장만 있다면 집채만 한 파도를 뚫고 뒤집어지기 직전까지 가는 험난한 바다를 항해해서 목적지까지 건너가 보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상당한 경험과 신비함과 교훈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그런 과정을 통해서 비로소 한나라의 왕이 됩니다. 그리고 그는 왕이 된 후에도 하나님을 향해서 언제나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일을 계속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그런 다윗에게 끝까지 책임지고 도우시고 복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 하리니 사람들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이것이 어찌 다윗만의 고백이고 승리의 찬가이겠습니까. 이 고백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고백을 통해서 우리는 오늘 세상에 나의 하나님을 고백하고 증거하고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습입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이 같은 고백이 나오고 승리의 찬가가 터져 나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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