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평화하는 삶
고후 5:18-19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우
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본문은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성숙한 삶은 평화를 이루는 삶입니다. 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이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가는 이것이 깨지면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국가 간에도 이 평화가 중요합니다. 국가가 평화가 깨지면 국민 모두가 불행해 집니다. 또 이웃 간에도 이 평화가 중요합니다. 그리고 자신과의 평화를 이루는 삶도 중요합니다. 자신과의 이 평화가 깨지면 잠이 오질 않습니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기도가 나오질 않습니다. 이은주라는 배우가 자살했다고 해서 화제인데 얼마나 자신이 자신과의 불화가 강했으면 스스로 목숨을 끊었겠습니까. 그것은 자신과의 평화가 깨지고 불화했기 때문입니다. 또 영적인 평화도 중요합니다. 이 영적인 평화는 하나님과의 화평입니다. 무엇 보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것이 깨지면 모든 것이 깨져버립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두 가지 사역을 하셨습니다. 하나는 소원해진 인간과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신 일입니다. 인간이 죄를 지음으로 인간과 하나님과 사이는 단절되어 벽이 가로놓여 있었는데 예수께서 화목제물로 희생됨으로 그 장벽을 허물고 하나님과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첫 번째 이유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에게 평화를 이루는 진리를 가르쳐 주신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삶의 덕목은 화목을 이루는 삶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화목이 제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이 화평을 강조했습니다. “평화하라, 화평을 이루라, 하나 되라, 누구 집에 가거든 먼저 평안을 빌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은 늘 불화하고 갈등하고 평화를 깨는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만 해도 갈등이 많은 나라입니다. 우선 우리나라는 남북이 갈라져서 갈등하고 있습니다. 우리만 갈등하는 것이 아니고 이 문제 때문에 온 세계가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정치계도 갈등하고 노사간, 지역간, 세대간, 보혁간에 지금 한창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근년에 와서 갈등을 겪는 가정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이, 형제간에, 부부간에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마다 갈등하고 불화를 일으키고 성도 간에 심각하게 나뉘어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불화하고 갈등하는 것은 참 불행한 일입니다. 이런 갈등과 불화를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사탄입니다. 사탄은 자꾸만 부채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누이게 하고 원수 되게 하고 잠 못 자게 만들어 놓고 박수를 치고 그럼니다. 이렇게 되면 영적 파괴를 가져오고 영적으로 심대한 손해를 끼치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와 찬송을 막히게 하고 예배시간에 마음이 꽉 막히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물을 드리려거든 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고 후에 와서 제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이 문제는 그만큼 중요한 문제입니다. 지금 한창 관계가 깨져서 어려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빨리 회복하지 않으면 결국 내가 손해를 당하게 됩니다. 이 깨진 관계를 회복하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상의하라
이 문제를 놓고 먼저 하나님과 상의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는 두 가지를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먼저 내 마음이 바뀌고 내가 먼저 변화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방법입니다. 내가 먼저 변하면 다 변하게 됩니다. 문제는 나에게 있습니다. 이렇게 나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모든 문제는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가지고 진솔하게 기도해야 합니다. 옹졸한 나의 마음을 열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상대방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고 내가 먼저 찾아가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먼저 기도할 내용입니다.
그리고 다음에 기도할 것은 상대방의 마음도 변화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다윗은 사울로부터 상당한 미움과 증오를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몇 차례씩 받았습니다. 그때 다윗에게도 사울을 조용히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여러 번 찾아왔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그에게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하나님이 그를 변화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이 판단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문제를 하나님이 풀어주셨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 상대가 막무가내 형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참 난감합니다. 갈등을 유발하는 상대가 상사일 경우, 내 부모일 경우가 그렇습니다. 그때는 하나님이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는 방법이 가장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해결하면 부작용도 없고 가장 잘 처리해 주십니다. 때로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성가대에서 집사님 한분이 늘 분위기를 깼습니다. 그분은 음치였습니다. 그래서 5명의 성가대원들이 목사님을 찾아와 그 집사님을 그만두게 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그 집사님을 불러서 말했습니다. “성가대원 다섯 명이 와서 음치라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랬더니 이 집사님이 이렇게 대답합니다. “목사님 그까짓 5명 정도 사람을 가지고 뭘 그러세요, 저는요 50명도 더 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목사님 설교 못한다고 말하는데 그래도 나는 참고 말씀안드렸는데 그까짓 5명가지고 뭘 그러세요.” 이쯤 되면 참 난감합니다.
이 불화나 갈등은 신앙생활에서 영적 생활을 파괴한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해야 할 문제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집에서, 이웃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이 불화와 갈등이 발생합니다. 야고보서 4:1-2를 보면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서, 다툼이 어디서 나오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정욕으로 난 것이 아니냐!”고 했습니다. 이 문제는 기도하지 않으면 언제나 발생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먼저 찾아가라
갈등과 불화가 발생하면 관계가 단절되고 끊어진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상대방이 미워집니다. 그렇게 관계가 끊어진 채 언제까지 그렇게 살겠습니까. 그 단절된 관계를 풀려면 누군가 먼저 찾아가야 풀어집니다. 그러면 누가 먼저 찾아가야 하겠습니까. 마 5:23-4를 보면 예배드리러 가기 전에 네 형제를 먼저 찾아가 화목한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네가 먼저 가서 풀라는 말입니다. 그렇게 해서 빨리 풀어야 영적생활에 손해를 보지 않습니다. 그 상태가 길어지면 영적생활에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됩니다. 이렇게 갈등하고 불화하면 우선 기도가 안 됩니다. 예배가 안 됩니다. 매일 머릿속에서 그 생각만 맴돌아 일을 못하게 됩니다. 잠자리에 누워보지만 잠이 오질 않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생활에 얼마나 큰 손해입니까. 그래서 기도하고 먼저 찾아가서라도 문제를 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먼저 찾아가고 문제를 풀려는 시도를 합니까. 오늘 신세대들은 부부싸움을 하거나 애인끼리 싸우면 남자가 먼저 화해를 신청하는 비율이 2/3정도로 높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성은 남자가 먼저 화해를 신청하는 것을 남자로서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세상 많이 변화되었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이 같은 뜻을 가지고 살면 이 세상에서의 갈등은 상당히 줄어들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화목을 이루며 살도록 지음 받은 사람들입니다.
상대방을 이해하라
이 말은 입보다 귀를 많이 사용하라는 말입니다. 상대방의 말을 많이 듣는 자세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어떤 분은 이야기하다 보면 내가 말할 여유가 없이 혼자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자기 입장만 이야기 합니다. 그런 분은 대개 불화를 일으키는 유의 사람입니다.
상대의 말을 자세히 들어보면 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어떤 분은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고 그것을 사실처럼 믿어버리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떻게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해 버립니까. 언제나 한쪽 이야기는 자기 입장만 유리하게 말하게 마련입니다. 한쪽 말만 듣고 판단해 버리면 오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방의 말을 깊이 공감하며 들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듣지 않고 공감하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불필요하게 오해를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당한 오해이고 곡해입니다.
그래서 먼저 판단하고 말하기 이전에 상대방의 입장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들어 보아야 합니다. 들어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들어보지도 않고 들으려고도 하지 않고 내 위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갈등과 불화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평화를 이루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에게도 잘못이 있음을 인정하라
대부분 불화와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네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항상 잘못을 상대방에게 있다고 생각하니까 갈등이 일어나고 불화가 일어납니다. 마 7:5에서 예수님은 “먼저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했습니다. 모두 자기만 옳다고 생각하니까 거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요일 1:8을 보면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다”고 했습니다.
문제가 있는 곳을 보면 모두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갈등이 있는 정치계를 보아도, 교회를 보아도, 고부간의 갈등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자기가 옳다고 주장합니다. 그러기에 갈등과 불화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모두 내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내게도 문제가 있다” 이 생각이 문제를 푸는 열쇠입니다. 오늘 교회들이 너무 갈등이 많은데 거기에 내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 문제도 풀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고부간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어머니가 어른의 입장에서 내게도 잘못이 있다고 한번 생각하면 며느리를 보는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그런데 시어머니들이 며느리에게 시집살이를 시키는데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붙여서 시집살이를 시킵니다. 그러니까 오늘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사고를 가지고 성장해온 오늘의 젊은 며느리들이 시어머니의 불합리한 주장을 수용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것입니다. 시어머니들이 이렇게 비합리적으로 처신하는 것은 신앙도, 처신도, 생각이 아주 서툴고 성숙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시집간 자기의 딸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대부분 시어머니는 시대적으로 현대의 물을 먹고 자란 신세대들로부터 모든 의식이 뒤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항상 신세대들을 이해하는 쪽으로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부족하다 하고 살아야 관계가 원만해지고 상대를 인정하게 됩니다. 그래야 그것이 어른이고 먼저 신앙 생활한 부모가 할 일입니다. 그러면 누구와도 화해를 이루고 화목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롬 12:18에서 “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했습니다. 평화는 내가 먼저 손해 볼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누군가와 관계가 깨진 상태에 있는 분이 있습니까. 먼저 찾아가 보십시오.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맞아줄 것이고 문제는 쉽게 풀릴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불편함이 있거든 시어머니가 먼저 찾아가 보십시오. 며느리도 마음을 열고 다가설 것입니다. 성도끼리 관계가 깨진 분이 있으면 오늘 이후 서로 먼저 찾아가 보십시오. 잘잘못을 따지지 말고 먼저 찾아가 보십시오. 먼저 찾아가는 사람이 이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부부사이에 금이 가 있는 분이 있습니까. 그래서 사이가 서먹하고 불화 중에 있는 부부가 있을 것입니다. 둘 중 누군가가 먼저 다가가 보십시오. 오늘 신세대들은 남자가 먼저 다가간다고 합니다. 먼저 찾아갈 수 있다면 먼저 마음을 열고 다가가 보십시오. 그러면 문제는 너무나 간단히 해결될 것입니다.
오늘 남성들에게 두 가지만 권하겠습니다. 하나는 구태의연하게 옛날 생각에 사로잡혀서 남자의 고집을 부리지 말라는 부탁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를 알아야 합니다. 아내로부터 평생 명령하고 지시하고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는 일은 전근대적인 사고입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삶의 모습을 배우고 실천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또 한 가지는 여성인 아내의 속성을 알아야 하는 일입니다. 여성의 속마음을 깊이 알고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하나님도 복잡해 하시는 문제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떤 남성이 “하와이를 여행가고 싶은데 다리를 놓아 주십시오, 그리면 차를 타고 가고 싶습니다.”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야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는구나, 좀 쉬운 것을 요구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남자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는 도무지 내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내 아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내 아내의 마음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날은 기분이 좋았다가 어느 날은 똑같은 말을 했는데도 신경질을 부립니다. 도무지 어떻게 할지를 모르겠습니다, 아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그랬더니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야, 하와이 가는 길 4차선으로 해줄까 6차선으로 해줄까.” 웃기는 이야기지만 그만큼 여성의 심리를 이해하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이 부부간의 관계를 평화로 이끌어 나가려면 남성들은 여성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까지도 집에서 아내에게 명령하고 고집부리는 남편들이 있다면 그 가정에서 부부관계가 화목하게 잘 이루어지겠습니까.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하나님은 이 화목, 평화,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아들 예수를 이 땅에 보내셔서 제물을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보내사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이 사순절에 우리는 이 화목하고 평화 하라는 진리를 배워야 합니다. 상대방을 예수의 사랑을 가지고 이해하고 다가가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예수께 나아가는 마음이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때 이 세상에 평화가 이루어지고 화평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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