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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울 때는 멀리 보라! (롬 8;18)

by 【고동엽】 2022. 1. 23.

괴로울 때는 멀리 보라! (롬 8;18)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어느 세일즈 맨의 사무실에 그림 한 폭이 걸려 있었습니다.

배 한 척이 갯벌 위에 을씨년스럽게 삐딱하게 누워 있습니다. 물은 다 빠져 버렸습니다. 그 배는 너무나 오래 사용한 배가 역역하였습니다. 노는 갯벌위에 딩굴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처량하고 처절한 인상을 풍기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그림 밑에 이런 글이 유난히 돋보이고 있었습니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소망의 생기가 솟아오르게 하는 말이었습니다. 그 세일즈 맨이 이 그림을 자기 사무실에 걸어 놓고 날마다 자기가 자기를 훈련시키게 된 동기가 있었습니다.

말할 수 없는 절망이 자기를 휘감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모두가 절망이고 이제는 끝장이라고 여기던 때였습니다. 행복이 멀어져 가고 모든 이들은 자기 일의 방해자로 보일 때였습니다. 어떤 사무실에 물건을 팔러 갔을 때 노인 책상 뒤에 이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는 이 그림을 보면서 두 주먹을 불끈 쥐었습니다.

<그렇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온다. 어려울 때에는 멀리 보자.>

그리고 다시 소망을 얻었습니다. 그의 일은 차차 풀리기 시작하여 놀라운 생동감있는 생애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그 그림이 걸려 있는 사무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노인에게 말했습니다.

<저 그림은 나를 변화시킨 그림입니다.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실 때 저 그림을 제게 주십시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전화번호를 남기고 돌아 왔습니다. 그는 까막득하게 모든 것을 잊었었는 데 어느 날 전화가 왔습니다. 그 할아버지는 그 그림을 그에게 주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반드시 밀물 때가 옵니다.> 고난중에는 멀리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평안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하였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최고 학부를 나온 박사입니다. 다소가 그의 고향인데 다소에서도 부요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바리새인중에 바리새인입니다. 권력이 있었습니다.

금상첨화로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온 유럽을 로마가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 시민권만 가지고 유럽 어느 곳에 가든지 대우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못 하였습니다.

그런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바울을 이방인의 선교사로 임명하여 주셨습니다.

그런 바울이 온 세계를 돌면서 너무나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바울은 그가 당한 고난을 이렇게 간증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군이냐 정신 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하였으니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하지 않더냐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22-30)

 

바울은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 그런 고난을 이길 수 있었던 믿음의 고백이 하나 있었습니다.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바울은 고난을 당할 때에, 괴로울 때에 멀리 보았습니다.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을 보았습니다. 왜 괴로울 때에는 멀리 보아야 할가요? 이유가 있습니다.

 

1. 멀리에 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오늘 심고 내일 열매를 거두지 않습니다. 멀리 가야 추수가 있습니다. 봄에 심으면 가을에 추수를 하게 됩니다.

너무 조급하지 말아야 합니다. 멀리에 완성이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한 마디에 집중하십시오.

아무리 급하여도 바늘에 실을 매어 쓸 수는 없습니다. 점점 속도가 빨라지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밥을 한번 하려면 장작불을 피우고 쌀을 씻어 밥이 되기까지 한 시간 이상 걸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3분 라면이면 족합니다.

춤도 그렇습니다. 곡선적인 춤 아리랑은 유유한 멋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디스코같이 직선적이 선정적이고 빠른 템포의 음악에 맞춘 춤이 현대적이라는 인식입니다.

옛날 길을 오솔길같이 꼬부랑 고부랑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길은 될 수 있는 대로 직선이어야 합니다. 자동차가 속도를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조급하여 지고 있습니다.

 

중국에 가면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만만디>(천천히>라는 말입니다. 그러나 한국에 오면 외국인이 제일 먼저 배우는 말이 <빨리빨리>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외국인은 우리 한국 사람을 향하여 <미스터 빨리 빨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중국 속담이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누가 얼굴에 침을 뱉어도 닦지 말라. 조금 있으면 마른다.>

 

<장차 받을 영광.>

 

영광은 장차 받는 것이지 내일 받는 것이 아닙니다. 멀리에 완성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괴로울 때에는 참아야 합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고 있는 미국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갓 50이 된 집사님이십니다. 백혈병에 걸렸습니다. 다 죽다가 살아났습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살아났습니다.

<목사님!

나는 하도 괴로움을 당하여서 이런 괴로움을 당하여 보지 않은 사람과는 말이 통하지 않아요. 내 나이는 50이지만 70세 정도된 사람하고만 말이 통해요. 목사님! 미안해요. 목사님도 내 동생같아요.>

괴로움을 통과하면 완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괴로울 때는 멀리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말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시 126;5-6)

 

배추는 오늘 심으면 한 달이면 먹을 수 있습니다. 오이도 봄에 심으면 여름에는 능히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과는 5년 정도 지나야 열립니다. 참나무는 10년 지나야 기둥이 됩니다.

괴로울 때에는 멀리 보십시오. 장차 완성이 있습니다.

 

미국 잡지 다이제스트에 실린 글입니다.

미국 철도 공무원 닉시스 맨이라는 사람 이야기입니다. 역에서 근무하면서 그는 어느 날 밤 늦게 냉동 차량안에서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이렇게 늦은 밤에 그 안에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밖에서 문을 잠그고 가버렸습니다.

이튿날 보니 그는 냉동차 안에서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이런 글을 남기고 죽었습니다.

<나는 지금 추워서 온 몸이 마비되어 가고 있다. 차라리 이대로 잠들어 버리고 싶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이 되는 것같다.>

알고 보니 그 안에는 냉동시설이 가동되지 않고 있었습니다. 생각이 그를 죽였습니다. 아주 쾌적한 온도였습니다. 괴로울 때 좀 더 멀리 보고 운동을 하며 몸을 뜨겁게 하였으면 죽지 않았습니다.

불과 3-4시간만 버티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괴로울 때에는 멀리 보면 됩니다. 바울처럼 장차를 보면 됩니다.

 

2. 멀리에 상급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려고 온 세계를 다녔습니다. 환영하여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오라는 사람은 없어도 만나야 할 사람은 많았습니다. 부르는 곳은 없어도 가야할 곳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괴로울 때마다 생각한 한 단어가 있습니다.

 

<장차 받을 영광.>

 

이것이엇습니다. 멀리 보앗습니다. 멀리 상급이 있을 것을 확실히 보앗습니다. 바울은 늘 고백하였습니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

 

장차 상급이 있습니다. 멀리에 면류관이 있습니다. 괴로울 대에는 멀리 보아야 합니다. 장차를 보아야 합니다.

 

쌍용건설 직원 김 일용(29세)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그는 작년도 모 대학 건축과를 졸업하고 입사시험에 109번이나 낙방하였습니다. 그러나 쌍용입사 시험에 합격하였습니다. 110번 입사 시험이었습니다. 그 동안 신입사원 입사시험에 109번 쫓아디니느라고 서류 준비한 돈만 100만원이 넘었습니다. 몇번이고 포기하려고 하였지만 될 때까지 한다는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였습니다.

서양속담에 <포기하지 않는 개구리가 버터를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의 배경은 다음과 같습니다. 두 마리 개구리가 우유통에 빠졌습니다. 미끄러워서 나올 수 없었습니다.한 마리는 절망속에 빠져 죽었습니다. 한 마리는 계속 발을 저었습니다. 그랬더니 버터가 되었습니다. 버터위에 앉아 버터를 즐기며 살았습니다.

괴로울 때에는 멀리 보어야 합니다.

 

지금은 몹시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장차 나타날 영광은 비교할 수 없이 큰 것임을 바라 보았습니다. 고난 속에서 결과를 바라 보았다는 말입니다.

바울은 고난 속에서 멀리 보았습니다. 지금은 복음을 전하기에 그렇게 고통스러워도 후에 하나님이 면류관을 주실 장면을 생각하면 능히 지금의 고난을 참을 수가 있었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 봄이라>

>(히 11;24-26)

 

모세는 거절한 것이 많았습니다. 무엇을 거절하였습니까?

(1) 왕이 될 명예를 거절하였습니다.

(2) 자기를 죽음에서 살려주고 길러준 공주를 거절하였습니다.

(3) 부귀영화를 거절하였습니다.

(4) 행복을 거절하였습니다.

 

모세가 그렇게 큰 것을 거절한 이유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 봄이라.>

 

멀리 보았기 때문에 현재의 고난을 능히 참을 수가 있었습니다. 고난 중에는 멀리 보아야 합니다.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공사장에서 트럭 운전을 하는 이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깔보며 아무렇게나 말하고 천하게 대우하였습니다. 그는 자기가 운전하는 트럭 뒤에 이렇게 써붙였습니다.

 

<내 아들은 서울 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딸은 이화대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둘 다 큰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나를 깔보지 마십시오.>

 

지금은 트럭 운전 기사로 천하게 지내고 있지만 멀리 바라보며 지금의 고난을 이기고 있었습니다.

괴로울 때에는 멀리 보십시오. 멀리에 상급이 있습니다.

 

3. 멀리에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생각컨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누가 영광을 주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괴로울 때 하나님은 멀리에 계시는 것같지만 사실은 가까이 와 주십니다. 그리고 훈련이 끝나고 나면 영광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괴로울 때에는 멀리에 있는 영광을 끌어 다 보십시오.

카메라의 줌같습니다. 카메라의 줌은 멀리 있는 물체를 가까이 끌어다가 봅니다. 줌을 사용하여 멀리 있는 영광을 끌어다 보십시오.

그래서 시편기자도 말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괴로울 때에는 위로 하나님을 바라보면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같이 고난을 안 당한 이들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참기 어려운 고난을 이긴 이들이니다. 고난이 문제가 아니라 고난을 이기지 못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고난을 이기고 나면 고난이 없었던 것보다 더 큰 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욥의 고난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기기 힘든 고난이었습니다.

자녀 10명이 한꺼번에 죽는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아내도 떠나 갔습니다. 병까지 났습니다. 재산도 모두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고난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모든 사람을 잃었습니다. 남아 있는 것은 오직 병든 몸둥아리였습니다.

욥은 여기에서 재출발하였습니다. 기도밖에 더 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로 출발하였습니다. 결론은 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욥은 고난속에서도 고난 후 축복이 있을 것을 믿었습니다. 고난속에서 멀리 보았습니다. 시간적으러도 멀리 보았을 뿐 아니라 공간적으로도 멀리 보았습니다.

앞만 보지 않았습니다. 뒤만 보지도 않았습니다. 오른 편이나 왼 편만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위로 멀리 하나님의 보좌까지 보았습니다. 욥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욥23;8-10)

 

<그는 뜻이 일정하시니 누가 능히 돌이킬까 그 마음에 하고자 하시는 것이면 그것을 행하시나니 그런즉 내게 작정하신 것을 이루실 것이라 이런 일이 그에게 많이 있느니라>(욥23;13-14)

 

욥은 고난 속에서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멀리 보았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200만 명이 모두 홍해 앞에서 따라 오는 애급 군사를 보고 두려워 하였습니다. 그러나 모세만은 결코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담대하였습니다. 모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또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14;13-14)

 

모세는 고난속에서 공간적으로 멀리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여 싸우시리니 오늘 보는 애급 군대르 다시는 보지 못 할 것이라고 고백하였습니다. 드디어 고난을 이겼습니다.

괴로울 때에는 멀리 보아야 합니다. 멀리에 하나님이 보시고 게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곳에서 어려울 때 멀리 하나님을 바라 보면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 성가를 부리고 있습니다.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 보아라.

세상에서 시달린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 보아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힘이 없고 네 마음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 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는

힘주시며 늘 지켜 주시리.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의사들이 하는 말입니다. 병원에 입원하였다가 퇴원하는 환자들을 보면 두 가지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는 병에서 해방되었다.> 그리고 밝게 퇴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15% 정도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은 다시 병원에 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70% 정도의 환자들은 불안하게 퇴원을 합니다.

<재발하면 어떻게 하지?>

그래서 70%는 재발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괴로울 때 문제가 있을 때 멀리 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괴로울 때에는 멀리 보십시오.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멀리 완성이 있습니다.

멀리 상급이 있습니다.

멀리 하나님이 계십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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