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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솔로몬의 중보의 기도/ (2)왕상 8:27-30

by 【고동엽】 2022. 1. 7.

솔로몬의 중보의 기도 (2)

 

왕상 8:27-30

 

주의 종과 부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께서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

소서.

 

철길이나 지하철에서 자주 사고가 발생합니다. 어린아이나 취객들이 사고를 내는데 그때 보면 자신의 몸을 던져서 아이를 건져내고 자신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고 희생되든가 큰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난해 어느 역무원도 위험에 처해 있던 아이를 건지고 자신은 미처 피하지 못해 큰 부상을 당하고 마침내 발목을 절단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히 치료되어 이제는 의족으로 근무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칭송을 합니다. 그러니까 발이 하나 없어졌어도 감사한 것입니다. 오히려 몸이 온전할 때 보다 그 삶에 더 기쁨이 있고 행복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람이라는 마음의 만족함 때문이고 사람들이 알아주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말하자면 중보의 삶입니다. 이 중보의 삶은 나를 희생시켜 누군가는 돕는 삶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그 삶에 향기가 있고 감동이 있는 것입니다. 그 삶에 희생이 있고 헌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군복무를 하면서 가장 마음이 뭉클했던 기회가 한번 있었습니다. 어느 소대장이 사고사로 죽었을 때입니다. 대학 나온 ROTC 소대장이 전방에서 소대병력을 데리고 훈련에 임하던 중 부대원이 수류탄을 잘못 다뤄서 소대병력이 위험에 처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이 소대장이 뛰어들어 몸으로 수류탄을 덮치고 소대원을 다 살리고 자신 혼자만 죽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생각할 수록 이 소대장의 행동이 참 장엄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 소대장의 장례식이 부대 연병장에서 거행되었는데 그 소대장의 아버지가 참석했습니다. 그 아버지가 순서에 의해서 답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 아버지가 답사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장하다, 네가 여러 명의 부하를 건져내고 죽었다니 내 아들 장하다, 이 애비는 네 죽음을 조금도 슬프지 않게 받아들이겠다, 내 아들아 장하다“. 그때 그 아버지의 답사 한마디가 마음에 뭉클하게 다가왔습니다. 순간 마음속에 스쳐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아 그 아들이 그 아버지를 닮았구나.”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 아들이 그 아버지에게 얼마나 소중한 아들이었겠습니까. 그 아까운 아들을 잃었지만 한편 마음에 감사하고 기쁨이 있고 오히려 보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슬픔 그 이상의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값없이 죽는 젊은이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은데 내 아들이 그렇게 소중한 죽음을 죽었는데 왜 슬퍼만 하겠습니까. 이것이 중보의 삶입니다. 중보의 삶은 그래서 중요한 것입니다. 중보의 삶은 나를 초월하고 내 몫을 극복하고 내 범위를 떠나서 함께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삶이 중보의 삶이고 중보의 기도입니다. 성경에 보면 대표적인 중보의 기도가 몇 번 나옵니다. 이 중보의 기도를 살펴보면서 여러분의 기도와 신앙의 틀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의 중보기도”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 함께 고향을 떠났습니다. 가나안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마침내 재산이 늘어나면서 조카와 재산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조카에게 재산을 다 줘서 내 보냈습니다. 롯은 소돔성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그때 소돔성은 타락한 도시였습니다. 조카는 굳이 그 타락된 세속도시를 택해서 이사가 살았습니다. 어느 날 아브라함의 집에 나그네들이 찾아왔습니다. 자세히 보니 그들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그들을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대접을 받고 천사들이 가면서 “우리가 하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뭘 감추겠느냐” 하면서 “지금 소돔성을 심판하러 가는 중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언뜻 소돔성에 사는 조카 롯을 생각했습니다. 소돔이 망하면 조카는 물론이고 그곳에 사는 그 많은 백성이 모두 멸망당해 죽어야 합니다. 큰일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다급한 마음으로 중재에 나섰습니다. 그 기도가 중보의 기도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천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소돔성에도 다 악인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곳에 의인도 있을 것인데 의인도 악인과 함께 심판하는 것은 선한 일이 아닙니다. 그곳에 의인 50여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러면 소돔성을 심판하지 않겠다.” 그렇게 말은 했지만 아브라함은 소돔성에 의인 50명이 있을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또 물었습니다. “그곳에 의인 45인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의인 45인이 있어도 심판하지 않겠다.” 생각해 보니 의인 45인도 없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곳에 의인 40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40명만 있어도 안하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곳에 의인 40명이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35명밖에 없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35명만 있어도 안하겠다.”고 말합니다. 여기까지 흥정은 했지만 아무래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흥정하기를 30명, 20명, 10명까지 내려왔습니다. 천사가 말하기를 소돔성에 의인 10명만 있어도 그 성을 심판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생각해 보니 그 성에 의인 10명도 있을 것 같지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거기서 더 이상 협상하고 중재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이것이 중보의 기도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세상을 구원하고 재앙을 면하게 하고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 중간에 서서 간절하게 구하는 기도, 그것이 중보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결국 아브라함이 그렇게 간절하게 중재의 기도를 했어도 소돔성은 의인 10명이 없어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이 기도가 중보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가 오늘 이 시대 우리들이 해야 할 기도입니다. 이 기도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몫입니다. 그러니까 그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편안하게 놀고 잠잘 수가 없습니다. 이 기도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중보의 기도입니다.

 

“모세의 기도”

 

모세는 우여곡절 끝에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을 합니다. 성경에 보면 60만 명을 이끌고 나왔다고 그것은 장정의 숫자입니다. 여기에 노소여인들을 포함하면 최소 300만 명이 되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짐승 떼를 이끌고 보따리를 들고 이고 430년을 살아온 애굽을 떠나 홍해를 건넙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휴가 때 다섯 가족이 며칠 떠나는데도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것, 놀이기구 준비에 얼마나 분주합니까. 그런데 300만 명이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지자 430년을 살던 땅을 떠나 홍해를 건너 광야를 가로질러 지금 가나안 입구까지 왔습니다. 그때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아갈 강령을 받기 위해서 시내 산에 올라가 있습니다. 산에 올라간 지 40일 동안 내려오지 않으니까 백성들이 모세가 죽은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도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이제 우리의 하나님을 만들자 하고 금붙이를 거두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제부터 우리의 하나님이다” 하고 절하고 제물을 바치고 춤추고 야단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타락한 모습입니다. 모세가 죽었으면 지도자를 새로 뽑으면 될 것을 모세의 하나님도 죽었다고 믿고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제부터 이것이 우리의 하나님이다 하고 제물을 바치고 야단입니다. 인간은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곁을 떠나려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잘되면 감사헌금을 드리지만 안 되면 원망부터 합니다. 그때 산에서 돌비를 만들어 십계명의 글을 쓰시던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야, 내려가 보라, 큰일 났다, 나는 이 백성에게 신물이 났다, 이 백성은 부패했다, 그러니 나를 말리지 말라, 내가 이 백성을 다 멸망시키고 네 자손만 남겨서 가나안에 들여보내야 하겠다.“고 하십니다. 얼마나 신나는 제안입니까. 이 백성을 다 진멸하고 내 자식들만 살려서 가나안에 들여보내겠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얼마나 황송한 제안입니까. 모세가 생각해도 이 백성은 본성이 악하고 타락한 백성입니다. 생각할수록 이 백성이 타락했습니다. 이제 저주받아 죽어도 할말 없는 백성입니다.

그런데 그 제안을 받고 모세가 기뻐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슬펐습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께 정중히 기도합니다. 이 기도를 보면 모세의 진가가 나타납니다. 이 기도가 그 유명한 모세의 중보기도입니다. “왜 이 백성을 여기까지 끌고 와서 여기서 죽이려 하십니까, 이 백성을 여기서 죽이시면 이방인들이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이 백성을 여기서 죽이려고 여기까지 끌고 나왔다고 비웃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며 하나님의 영광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별같이 많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하고 당당하게 나서서 기도를 합니다.

이 기도 중에 클라이맥스는 다음 대목입니다. 아마 하나님은 그 기도 때문에 모세의 기도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모세가 이렇게 기도합니다. “만일 이 백성을 여기서 기어코 죽이신다면 나도 내 백성과 함께 죽겠습니다. 내 자손만 살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도 싫습니다. 내 백성이 다 죽는데 나만 살아서 무엇 합니까, 나도 내 백성과 함께 죽겠습니다. 나도 죽여주십시오.“

이것이 모세의 기도입니다. 얼마나 당당한 기도입니까. 이것이 중보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 속에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 내 민족, 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 들어 있습니다. 모세는 내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불같이 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런 기도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의 중보의 기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스인들의 가슴에 이런 기도를 품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내 나라, 이 민족을 품는 마음이 이렇게 불같이 뜨거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 마음 때문에 엎드리면 눈물이 나오고 기도하면 뜨거운 기도가 나오고 그 뜨거운 기도는 마침내 중보의 기도로 터져 나올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능력 있는 기도입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나도 죽여 달라고 그렇게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마침내 진노를 풀으시고 그 백성을 용서하십니다.

오늘 이 땅에 이런 기도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두들 내 기도에만 열중합니다. 모두 자기 이익에만 급급해서 살아갑니다. 집 옆에 교회를 짓는다면 집값 떨어진다고 한사코 반대하는 사람이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그 가슴속에 무슨 기도가 있고 나라가 있고 이웃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세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 간장을 애끓는 단장의 기도, 이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진노의 잔을 버리십니다. 그리고 그 백성을 용서하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기도입니다. 이것이 중보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가 나를 변화시킵니다. 너를 변화시킵니다. 이 민족을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모세의 기도를 보게 됩니다.

 

“솔로몬의 기도”

 

다윗에게는 하나의 꿈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내 손으로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그것이 그의 평생 소망이었고 희망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나라를 통일하느라고 전쟁을 많이 해서 손에 너무 많은 피를 묻혔습니다. 하나님은 그 손으로 성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성전도 아무나 아무 때나 짓는 것이 아닙니다. 목회자가 평생 한번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가능합니다. 아무나 하고 싶다고 지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교회도 한번은 지어야 합니다. 그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가능합니다. 그런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저에게도, 여러분에게도 큰 은혜이고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성전을 짓기 위해서 준비를 완벽하게 했습니다. 재목을 준비하고 은과 금을 준비하고 건축비를 충분하게 준비했습니다. 마침내 성전을 지으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허락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할 수 없이 그 일을 아들 솔로몬에게 위임했습니다. 마침내 솔로몬이 왕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성전건축을 시작합니다. 그 성전을 짓는데 7년의 세월이 걸렸습니다. 아주 장엄하게 성전을 지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봉헌식을 하는 날 솔로몬은 봉헌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그 봉헌기도가 바로 솔로몬의 중보의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서 아주 간절하게 중보의 기도를 합니다. 그 중보의 기도가 왕상 8: 대하 6: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거기서 솔로몬은 이렇게 기도합니다.(8:22-61)

“내 백성이 성전에 와 기도할 때에 그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죄지은 사람이 이 성전에 와 기도할 때 그들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이 백성이 죄를 범함으로 하늘이 닫혀 비가 없어 망해갈 때 이곳에 와 기도하거든 이 땅에 비를 내려 주소서, 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나 적군침입이나 재앙이나 질병이 있을 때 온 백성이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그 기도를 들어주소서, 비록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그 기도도 들어주소서, 적군과 싸우게 될 때 전쟁에 나가기 전 이곳에 모여 기도할 때 그 기도를 들으시고 저들을 돌보아 주소서, 하나님은 이 백성에게 모세에게 맹세하신 것 하나도 남김없이 이루어 주소서, 이 백성으로 하여금 주의 계명을 지키고 율례와 법도를 지켜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는 줄 알게 하소서“.

이것이 솔로몬이 성전을 다 지어놓고 봉헌식 할 때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얼마나 간절하고 백성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내용의 기도입니까. 이 기도내용을 보면 그곳에 정신과 뜻과 지도자로서의 책임감이 들어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기도가 모두 나라와 내 백성을 위한 기도 아닙니까. 이것이 중보의 기도입니다. 그 기도를 왜 하나님이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을 보면 솔로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의 응답이 곧 바로 주어졌습니다. 왕상 9장을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이르시되 네 기도와 네가 내 앞에서 간구한 바를 내가 들었은즉 나는 네가 건축한 이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 내 눈길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라“. 이것이 중보기도의 응답이고 능력이고 은혜입니다. 얼마나 간절한 기도입니까. 이 기도가 지도자들이 해야 할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아버지가 자식들을 위해서 할 기도입니다. 선생님들이 제자들을 위해서, 장성들이 국방과 부하들을 위해서, 사장이 회사와 사원들을 위해서,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위해서,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그 시대를 위해서 할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를 왜 하나님이 듣지 않고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힘 있고 능력 있는 기도는 이 중보의 기도입니다.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할 기도입니다. 오늘 교회에서는 이 같은 기도소리가 크게 들려야 합니다. 이 기도가 여러분의 몫입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기도입니다. 그래서 이 중보의 기도는 성숙한 신앙이 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신앙이 여물어야 합니다. 깊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곳에서 신앙인의 성숙한 마음과 생각과 책임이 울어 나올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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