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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형 신앙 / 시 143:8

by 【고동엽】 2022. 1. 7.

아침형 신앙

 

시 143:8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 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

혼을 주께 드림이니 이다.

 

일본의 사이쇼 히로시라는 분이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이 책이 한동안 베스트셀러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까 대부분 아침형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부지런하고 일찍 일어나고 중요한 일들은 모두 아침에 계획하고 결정하고 시작하고 추진하는 삶을 살았다는 말입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들은 늦잠을 잡니다. 늦게까지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새벽시간을 활용하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부지런한 존재는 새들입니다. 새들은 일찍 일어나서 지저귀기 시작합니다. 또 부지런한 것은 농부들입니다. 농부들은 새벽 일찍 일어나서 이슬을 털고 논밭으로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마당을 깨끗이 청소합니다. 그런 후에 아침 식사를 합니다. 그러니 그 아침 밥맛이 꿀맛일 것입니다. 그러니까 건강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농부가 살아가는 집터에는 잡초 한포기 없습니다. 이런 농부는 정신도 바르고 마음도 신실하고 사람들에 믿음직하게 보일 것입니다. 그런데 게으른 농부는 늦게 까지 잠을 잡니다. 그 게으른 농부가 살아가는 집 주위에는 보나 안보나 잡초들로 무성할 것입니다. 게을러서 그렇습니다. 가끔 기차를 타고 가다보면 넓은 논밭을 지나가게 됩니다. 그때 보면 유독 논에 피가 많은 논을 보게 됩니다. 피는 벼보다 크고 무성해서 잘 보입니다. 그 논은 보나 안보나 게으른 농부의 논일 것입니다. 그러니 그 농사가 무슨 성공을 거두겠습니까. 그 모습에서 신실성도 찾을 수 없고 정신도 밝지 못할 것입니다.

어느 친구 목사가 자기 동생 집에서 하루 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 동생은 사업을 하는데 곧 잘 합니다. 그렇지만 형으로서 동생을 보면 저 동생이 무슨 사업을 할까 생각하고 늘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이 동생이 사업을 곧 잘 했습니다. 하루 밤 지나며 보니까 동생이 아침 일찍 일어나더니 새벽부터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고 점검하고 지시하고 계획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 이른 시간에 할일 다해 놓고 아침 식사를 하더라는 것입니다. 이 동생은 새벽 이른 시간에 하루 할 일을 다 한 것입니다. 이 형이 그 모습을 보고 “아 저렇게 하니까 동생이 성공을 하는구나“하고 동생을 대견하게 새롭게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회자도 성공한 목회자들을 보면 새벽시간을 활용하는 분들입니다. 새벽기도 후에 잠자지 않고 서재에 들어가 책을 읽고 계획을 하고 그 하루의 일을 아침시간에 다 해 놓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보면 뭔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침형 인간이라는 책도 나온 것입니다. 아침형 인간이라는 말은 그만큼 부지런한 삶, 부지런한 생활, 부지런한 자세, 건전한 정신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성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생활은 이 새벽시간이 절대적입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시입니다. 다윗은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는 늘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 아들 솔로몬도 왕이 되자마자 1천 번 제를 드린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래서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간구한 기도내용입니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 영혼을 주께 드립니다“. 이 말은 새벽에 일어나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새벽시간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다른 시간보다 몇 가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시작의 시간”

 

하루는 해가 뜨고 해가 지는 시간으로 결정됩니다. 해가 뜨는 시간은 활동의 개시 시간입니다. 그리고 해가 지는 시간은 활동이 멈추는 시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의 질서입니다. 사람은 해가 떠서 밝은 때에 움직이고 어두울 때에 쉬며 잠을 잡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조화이고 질서이고 삶이고 배려입니다. 그래서 낮엔 활동하고 일하고 밤에는 어두움 주셔서 잠을 자고 쉬고 활동을 멈추고 안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육신적인 삶이 균형이 주어지고 질서가 있고 건강한 삶이 보장될 것입니다. 건강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이 질서를 무시하고 산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늘 사람들은 이 시간 개념을 잃고 살아갑니다. 일도 직업도 시간 개념 없이 생활합니다. 밤에 출근하고 아침에 퇴근하는 직업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낮에 자고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삶에 육체적 리듬에 온갖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삶의 형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 잠을 자는 삶입니다. 그것이 이상적인 삶입니다. 밤은 쉬라고 주셨고 잠자라고 주신 안식의 시간입니다. 안식이 있어야 내일 또 새롭게 활동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안식을 주신 이유입니다.

두 사람이 나무를 베려고 산으로 갔습니다. 두 사람 똑같이 도끼를 가지고 5시간 동안 나무를 베게 했습니다. 한사람은 꼬박 5시간 동안 나무를 베었습니다. 또 한사람은 50분 일하고 10분 쉬었습니다. 그 결과 5시간 동안 쉬지 않고 꼬박 일한 사람보다 10분간 휴식한 사람이 더 많은 나무를 베었다고 합니다. 그 비결을 물었습니다. “그 쉬는 10분 동안 무엇을 했습니까”. “예 저는 10분 쉬는 동안 도끼날을 갈았습니다“. 이것이 안식의 중요성입니다.

밤은 순전히 안식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몸도 마음도 정신도 안식하고 쉴 수 있는 안식의 시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밤을 주신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동구라파에 가 보면 밤 12시인데도 신문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밝습니다. 잠잘 시간인데도 밖이 환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어두운 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압니다. 그런데 오늘 사람들은 이 질서를 무시하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낮에 자고 밤에 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아침에 퇴근하고 밤에 출근하는 사람도 늘어나며 밤낮 없이 일하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신도 모르게 삶의 질서나 습관 그리고 건강과 생각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시험의 시간”

 

마음으로는 누구나 일찍 일어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잘 안된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참 힘든 일입니다. 그래서 이 새벽시간은 시험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잠에 대해서 무섭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잠 6:9절을 보면 “게으른 자여 어느 때 까지 누워있겠느냐”하고 질문했고 11절을 보면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좀더 누워있자 하면 가난이 강도같이 오고 궁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래서 새벽기도 하는 것은 참 위대한 일입니다. 자신의 의지를 시험하는 생활입니다. 참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나 하지 못하는 일입니다. 새벽에 나왔다 졸고 갈지라도 그것은 시험을 이기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 35년째인데도 아직도 이 일이 힘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 젊은 목회자들은 오죽하겠습니까. 새벽기도만 없어도 목회 할만하다고들 말합니다. 그래서 이 새벽시간이 힘들기 때문에 중요하고 의미가 있고 복을 받는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새벽에 드리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을 주셔야 합니다. 그만큼 시험을 이기고 드리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영적 교통의 시간”

 

이 새벽시간은 특히 신앙인에게 중요한 시간입니다. 그것은 이 새벽시간이 영적으로 가장 좋은 영적 교통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새벽 시간에 산을 오르내리며 기도하셨습니다. 새벽시간은 영적으로 은혜를 받는 시간입니다. 하루를 기도로 시작하고 묵상으로 시작할 수 있는 삶은 분명 은혜의 삶입니다. 새벽에 하는 묵상생활은 그 자체로도 복이고 은혜의 삶입니다. 세속적인 사람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납니다. 더 세속적인 사람은 사람들이 취침에 들어갈 때 활동을 시작하고 사람들이 일어날 때 취침에 들어갑니다. 환락가를 보십시오. 밤이 깊어갈 수록 호황이고 왁자지껄하고 번잡합니다. 그러다가 새벽이면 적막해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에 역행하는 삶입니다. 자연의 질서와 반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장기적으로 보면 그 삶에는 활력을 잃어버리게 되고 신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상당한 부작용을 낳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청소년들의 삶의 질서를 보십시오. 새벽 서너 시에 들어오고 새벽 네 시에 잠을 자고 낮 12시나 되어야 일어납니다. 가족들과 얼굴을 대할 시간과 서로 어긋나게 살아갑니다. 도무지 질서가 없습니다. 그 아이들은 또 저녁 일찍 자는 기성세대들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이 갈수록 뒤죽박죽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할 수 있으면 일을 줄이고 일은 짧아지도록 조절해야 합니다. 우리 신앙인들이 너무 분주하게 살면 안 됩니다. 일은 줄이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그래서 좀 일찍 자고 아침의 신선한 시간에 영적교통의 시간을 갖고 말씀묵상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새벽 시간은 영적 교통의 시간입니다.

 

“간구의 시간”

 

새벽 시간은 보통 사람들은 불필요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인에게는 이 새벽시간은 절대적입니다. 더구나 특별한 간구할 내용이 있는 사람은 이 새벽시간에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다가 어려움을 만나게 될 때가 있습니다. 살아가다가 갑자기 어려움이 닥쳐와 보십시오. 그러면 새벽에 편히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은 새벽에는 죽어도 일어나지 못한다고 하는데 누구는 일어나고 싶어서 일어납니까. 그런 말을 두려운 줄 모르고 자꾸 하면 하나님이 새벽에 저절로 깨어 기도하도록 만드실 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큰 문제가 발생해 보십시오. 누가 감히 나는 죽어도 새벽에 일어나지 못한다고 말 할 수 있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십시오. 다윗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기도하고 간구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 영혼을 주께 드립니다“. 지금 다윗은 내일을 보장받을 수 없는 입장에 처해 있습니다. 내일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다윗은 지금 반란군에게 쫓겨 도망중입니다. 잡히는 날이면 능지처참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새벽에 늦게까지 편히 잠을 잘 수 있습니까. 그래서 다윗은 아침 일찍 일어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침에 나로 주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갈 길을 안내해 주십시오, 내 영혼을 주께 드립니다“. 그 말은 아침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계시를 들려 달라는 간구입니다.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고 어느 길로 가야 할지를 알려달라는 간구입니다. 얼마나 심각한 기도입니까.

사업가는 늘 부도날 위험을 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경영입니다. 그런 준비 없이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다윗과 같은 입장에 처할 수 있습니다. 그때는 준비 없는 사람이 그렇듯이 허둥댈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는 늘 외침에 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국가경영입니다. 그 준비가 없이 국가를 이끌고 가면 마침내 큰 환란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항해하는 배는 언제나 파선의 위험을 대비해야 합니다. 그것이 유비무환입니다. 그 준비가 없이 배를 타고 가다 풍랑을 만나면 속수무책입니다. 파선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인은 늘 영적 무장을 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살면 어느 날 넘어지게 되면 의지할 힘이 없어집니다.

다윗은 지금 내일 내 운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형편에 처해 있습니다. 누가 천하의 다윗이 반란군에게 쫓겨 위험에 처하게 될 줄 알았습니까. 그것도 아들이 반란군 머리가 되어 아버지를 죽이겠다고 군사를 이끌고 좇아올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다윗이 그 지경에 처하여 있는데 편안하게 아침 늦게 까지 잠을 잘 수 있습니까. 그러니까 새벽 일찍 일어나 하나님께 눈물로 간구했던 것입니다. “이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게 하소서, 그리고 나의 갈 길을 안내해 주소서, 내 영혼을 주께 드립니다“. 그 말은 이 이른 아침에 내가 주께 엎드렸으니 내게 계시를 주시고 갈 길을 안내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그러니 그 간구가 얼마나 처절하고 간절한 내용의 기도입니까. 이 기도는 새벽에 할 기도입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문제가 발생해서 새벽에 허둥대며 기도하러 다니지 말고 이 새벽시간을 일상의 신앙의 생활로 바치는 삶을 살았으면 합니다. 갑자기 일이 발생해서 기도하게 되면 내 모습이 비참해 집니다. 그렇게 되기 전에 미리 미리 준비하고 영적으로 나를 무장시켜 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다른 분주한 시간들을 줄이고 불필요한 활동을 줄이고 영적시간을 늘려야 합니다. 불필요한 시간으로 허둥대고 분주하게 살아가다 보면 영적으로 비둔해지고 무디어 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자체가 화이고 불행입니다.

엘리 선지자를 보십시오. 그가 하나님과의 영감이 두절되었습니다. 다시는 영감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의 교제가 상실되었기 때문입니다. 엘리가 얼마나 영적으로 무디었는가 하면 같은 집에서 잠을 자는데도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도 엘리는 듣지 못했습니다.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해 속 타는 마음으로 성전에 나아와 눈물로 기도를 하는데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는가 하면 소리도 없이 입술만 움직이며 기도했습니다. 정말 진지한 기도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음성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말없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술 취한 줄 알고 술 취하지 말라고 소리 지른 사람이 엘리입니다. 신앙인이 세상에 너무 골몰하고 분주한 삶을 살게 되면 영감이 이렇게 무디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 영적으로 무디어 지면 이렇게 영감이 메말라지게 됩니다. 그러면 소명이고 은혜고 사명이고 다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새벽형 신앙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농부도 새벽형 농부가 농사를 잘 짓습니다. 그래서 농사에 성공합니다. 사업가도 새벽형 사업가가 성공확률이 높습니다. 일반인도 새벽형 삶이 이상적입니다. 새도 일찍 일어나는 새가 싱싱한 먹이를 많이 먹습니다. 우리 신앙인은 말 할 것도 없이 아침형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용히 아침에 들려오는 주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그 음성으로 나의 앞길을 인도받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삶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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