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낙원을 만드는 사람! (창 21;25-34)

by 【고동엽】 2022. 1. 5.

낙원을 만드는 사람! (창 21;25-34)

 

 

지난 번 이스라엘에 가서 한 달을 지날 때였습니다. 다윗이 숨어 있었던 엔게디를 이 종진 목사와 둘이서 올라가 보았습니다. 세 시간 걸리는 곳입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이었습니다. 풀 한 포기없는 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엔게디만은 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신기하였습니다. 3시간 오른 엔게디에서 밑을 내려다보니까 푸른 농장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사막 가운데 푸른 농장이 있으니 얼마나 눈에 띄겠습니까?

우리는 엔게디를 내려 온 후에 그 농장에 가보기로 하였습니다. 종려나무들이 즐비하였습니다. 약 10,000수는 된다는 것입니다. 마침 종려 열매를 따고 있었습니다. 큰 사다리 차로 종려 열매를 따는 데 한 가지를 둘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 가지가 한 나무에 여러 개 달려 있었습니다. 일 년에 한 나무에 10만원 수입은 족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종려 열매로 일 년에 10억 정도를 벌어 드리는 셈입니다. 맛을 보았더니 그야 말로 젖과 꿀이 흐르는 열매였습니다.

나는 당신은 참 부자라고 칭찬하여 주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주인은 우리에게 종려 열매를 한 상자주었습니다. 5명이 한 달을 질리게 먹었습니다. 나는 어떻게 이런 사막 가운데 이런 종려 농장을 만들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하였습니다. <이 곳은 사막입니다. 일년 내내 따가운 해가 있습니다. 땅값은 헐값입니다. 그런데 엔게디 물을 보는 순간 저 물을 끌어다가 농장을 만들어 일조량도 많고 물도 풍부하여 과일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농장을 시도하였습니다. 지금은 사막이 낙원이 되었습니다. 관광객이 수없이 많이 와도 지나가기만 하지 당신들처럼 이 농장에 들러 본 이들은 없었습니다. 참 감사합니다>

성지순례 가는 팀들은 모두 시간에 쫓기고 다른 곳을 많이 보려고 이런 농장을 방문할 리가 없습니다. 그는 무척 반가워하였습니다. 우리도 인상 깊게 나왔습니다. 낙원을 만든 사람이었습니다.

오늘 이야기로 들어갑니다. 아브라함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이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 정처 없이 떠돌아 다닐 때였습니다. 블레셋 땅으로 왔습니다. 비옥한 땅에는 자기들이 차지하고 살면서 못 쓸 땅만 남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런 땅에서 살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막 땅에 아브라함은 우물을 팠습니다. 아무 곳이나 땅을 판다고 물이 나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총으로 아브라함은 우물을 팔 수 있었습니다. 그 곳 이름을 브엘세바라고 지었습니다. 브엘세바란 7개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막에 낙원을 만들었습니다.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었습니다. 살 수 없는 땅을 살기 좋은 땅으로 만들었습니다. 본토인이 못 하는 것을 나그네가 이루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 낙원을 건설하였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가정이 낙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가 낙원이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낙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낙원이란 어떤 곳입니까?

 

1. 하나님이 계신 곳

낙원이란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있어도 낙원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에게는 모든 것이 다 있어도 부모가 없으면 낙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우물을 팠습니다. 그리고 에셀나무를 심었습니다. 사막이 살기 좋은 낙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생하시는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으며 그가 블레셋 족속의 땅에서 여러날을 지내었더라>(33-34)

어거스틴은 말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에 하나님 안에서 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하나님 중심을 살아가는 곳이 낙원입니다.

어느 집에서 이삿짐을 나를 때였습니다. 큰 어항을 옮기려고 하다 보니 너무나 무거웠습니다. 그러니까 이삿짐 센터에서 어항 밑에 있는 모래를 꺼냈습니다. 그리고 물을 5분 1만 남겼습니다. 그리고 어항을 싣고 5시간을 달렸습니다.

30 마리 가량의 물고기들은 도무지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간신히 목숨만 묻어 있는 형편이었습니다. 이런 곳은 물고기들에게 낙원이 아닙니다. 물고기는 물속에서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만이 참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낙원입니다.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설립한 양로원에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이 모여 살았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이 양노원을 방문하였습니다. 그리고 노인에게 물었습니다. < 이 양노원은 누가 지었습니까?> 노인이 대답하였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이 만들었습니다.> 방문객이 다시 물었습니다. <여왕이 한번이라도 이 양로원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까?> <가끔 오셨습니다.> 노인이 이렇게 대답하자 방문객이 다시 물었습니다. <그러면 만왕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은 여기 오셨습니까?> 노인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아니, 예수님이 왜 오십니까? 예수님은 오시는 분이 아니고 처음부터 여기 계셨습니다.>

노인들은 예수님과 함께 평안을 맛보며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계신 곳이 바로 낙원입니다. 성 버나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문을 열고 들어 오신다든지 걸어오시는 것은 못 봤어도 예수님은 항상 내 곁에 계셨다>

감리교를 창설한 요한 웨슬리는 항상 빈 의자를 곁에 놔두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늘 말했습니다. <이 의자는 예수님의 자리입니다> 나는 미국 로버트 슐러 목사님이 목회하시는 수정 교회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슐러 목사님은 회의할 때마다 가운데 자리를 비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는 회장되시는 하나님 자리라고 늘 고백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회의할 때마다 빈자리에 앉아 계신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조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바로 낙원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느 곳을 가든지 단을 쌓았다고 성경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사람들과 평화가 있는 곳

아무리 하나님이 계시고 물이 있고, 푸른 초원이 있다 할지라도 원수가 있는 곳은 낙원이 아닙니다. 갈등관계가 있는 곳은 낙원이 아닙니다. 그래서 잠언 기자 솔로몬도 말했습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잠25;24) 아브라함이 이주하여 살고 있는 브엘세바는 블레셋 땅이었습니다. 나그네가 이 땅에 와서 우물을 파고 나무를 심고 낙원을 이루고 사는 것을 보니 시기와 질투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고생하면서 판 우물을 빼앗아 버렸습니다. 그러던 중에 블렛세 왕 아비멜렉이 아브라함을 찾아 왔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정말 놀라운 사건입니다. 몇 가지 놀라운 것이 있습니다.

(1)왕이 나그네를 찾아 왔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2)나그네가 왕을 책망하였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에 대하여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매>(25)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세상 사람이 두려워하게 됩니다.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 지역으로 이사 왔을 때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 사라가 너무나 예뻐서 사람들이 자기를 죽일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일어난 일입니다. 그랬더니 그 곳 최고 통치자 아비멜렉은 사라를 보자 그의 아름다움에 매혹되고 말았습니다. 결혼한 여자라면 자기 아내로 삼을 마음을 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하니까 자기 아내로 삼고 싶어서 사라를 아비멜렉의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고 동침하려고 하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꿈에 아비멜렉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취한 이 여인을 인하여 네가 죽으리니 그가 남의 아내임이니라>(창20;3)

아비멜렉은 놀라서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 아직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내 책임이 아닙니다. 아브라함 책임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내가 아니라 누이라고 거짓말하여서 그런 줄 알고 아내로 삼으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백성도 멸하시나이까>(창20;4) 하나님은 아비멜렉을 용서하셨습니다. 몰라서 그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온전한 마음으로 이렇게 한 줄을 나도 알았으므로 너를 막아 내게 범죄하지 않게 하였나니 여인에게 가까이 못하게 함이 이 까닭이니라. 이제 그 사람의 아내를 돌려 보내라 그는 선지자라 그가 너를 위하여 기도하리니 네가 살려니와 네가 돌려 보내지 않으면 너와 네게 속한 자가 다 정녕 죽을 줄 알지니라>(창20;6-7)

아비멜렉은 다음 날 아침 사라를 아브라함에게 돌려보냈습니다. 그 후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을 건드리면 하나님께서 자기를 가만히 두지 않으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무서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아비멜렉은 나그네 아브라함을 찾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 나그네가 그 나라 왕을 책망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비멜렉과 평화 조약을 맺었습니다. 서로 괴롭히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외에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니까 평화스러운 낙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평화로운 관계가 되었습니다. 이런 곳이 낙원입니다. 원수가 없는 곳이 낙원입니다. 적이 없는 곳이 낙원입니다. 인간관계가 안 좋은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습니다.

지난 주간 우리 수양관에서 186기 성막 쎄미나가 있었습니다. 124 명 목사님들이 오셔서 공부하셨습니다. 모두가 은혜를 충만히 받고 만족하여 돌아 가셨습니다. 아침마다 나는 산에 오르는 습관이 있습니다. 산을 오르는 데 깊은 산속 조그만 웅덩이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 어떻게 물고기가 들어 왔는지 5마리가 한가롭게 그리고 평화롭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혼자 외쳤습니다. <너희들은 낙원에서 살고 있구나> 적이 없습니다. 자기들끼리만 살고 있습니다. 누가 건드린 적이 없습니다. 얼마나 평화롭습니까? 하나님께서 껄끄러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 친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적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적을 친구로 만들었습니다.

어느 왕이 전쟁을 하러 나가면서 말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적을 완전히 섬멸할 것이다>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왕은 적들을 모조리 포로로 잡아 왔습니다. 그리고 포로수용소에 수용하였습니다. 세월이 흘렀습니다. 신하들이 적들을 죽이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왕이시여! 적들을 모조리 섬멸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왜 모조리 죽이지 않고 그대로 두십니까?> 그 때 왕이 말했습니다. <나는 약속대로 적을 모조리 섬멸하였다> <저기 포로 수용소에 있지 않습니까?>

그 때 왕이 말했습니다. <저 들은 내 적이 아니라 내 친구들이다. 그 동안 다 내 친구로 만들었다. 이제는 적이 하나도 없어졌다> 그렇습니다. 사람들과 평화를 이루고 있는 곳이 바로 낙원입니다.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우리 사회가 낙원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에 평화가 없는 곳은 결코 낙원이 아닙니다. 어느 사모님이 대단히 내성적이고 말이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사모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보다 심방을 가서 무엇이든지 칭찬을 해주라고 말했습니다.

사모님도 그게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어느 날 성도 집으로 심방을 갔습니다. 참으로 가난한 집이었습니다. 어느 것도 칭찬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 하나가 바로 예쁘게 수놓은 책상보였습니다. 사모님은 칭찬할 것을 찾다가 ‘저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 수를 잘 놓았네요. 어떻게 저렇게 수를 잘 놓았어요?> 칭찬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이 의외의 결과를 낳고 말았습니다. 생전 말을 안 하던 사모가 그런 말을 하니까 그 집에 같이 심방 갔던 성도가 오해하였습니다. <사모님이 욕심이 많아서 그렇게 어려운 집에 가서도 식탁보를 탐냈다>

이 말에 사모님은 정신적으로 큰 상처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 후 평화를 얻지 못 하였습니다. 아무리 다 있어도 마음에 평화가 없으면 낙원이 아닙니다. 사람들과 평화가 있는 곳이 낙원입니다. 아브라함은 적속에 들어가서도 모두를 친구로 만들고 평화를 창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곳이 낙원입니다.

 

3.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

낙원이란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곳이 낙원입니다. 하나님이 계시고, 사람들과 평화가 있는 데 축복이 없다면 낙원이 아닙니다. 그런 곳은 진정으로 하나님이 계신 곳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반드시 축복이 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바로 이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당시 블레셋 왕은 아비멜렉이었 데 아비멜렉이 군대장관 비골을 데리고 아브라함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도다. 그런즉 너는 나와 나와 내 아들과 내 손자에게 거짓이 되어 행치 않기를 이제 여기서 하나님을 가리켜서 맹세하라. 내가 네게 후대한 대로 너도 나와 너의 머므는 이 땅에 행할 것이니라>(창21;22-23)

<네가 무슨 일을 하든 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하시도다> 이 말은 얼마나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축복하고 계시다는 증거인 지 짐작일 갈 것입니다. 무엇을 어디에서 하든지 하나님의 축복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자손 요셉에게서도 나타났습니다. 요셉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이 낙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아브라함과 같이 낙원을 만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낙원이란 어떤 곳입니까?

1. 하나님이 계신 곳이 낙원입니다.

2. 사람들과 평화가 있는 곳이 낙원입니다.

3.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곳이 낙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1887년 미국 뉴멕시코 주 샌안토니오의 작은 마을에 한 소년이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너무나 가난하였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곳 내일은 저 곳 물건을 팔러 다니는 행상 노릇을 하여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장사를 하였습니다. 다닐 때마다 가장 큰 문제는 자는 것이었습니다.

때로는 노숙할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연기가 가득한 헛간에서 잘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차에서 잘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여러 사람과 쪼그리고 좁은 공간에서 같이 잘 때도 있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 나마 잘 자리를 얻지 못 하였습니다. 어느 가게 집 귀퉁이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쪼그리고 자야 했습니다. 아버지와 이런 대화가 오고 갔습니다.

<춥니?> <조금요> <이런 고생을 조금만 견디면 좋은 날이 오겠지?> <그래요. 아버지. 그런데 저에게는 멋진 꿈이 있어요> <무슨 꿈인 데...> <이 다음에 내가 크면 호텔을 지을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을 아주 편하게 자게 만들어 줄 거예요> <자식두... 잠자리가 불편하니까 호텔 꿈을 갖게 되었구나. 서슴지 말고 어서 해봐라> 이런 대화를 하면서 아들은 꼭 호텔을 지이라는 꿈을 꾸면서 하나님이 축복하여 달라는 기도를 하고 잠에 들었습니다.

그 다음 날부터 그 아들은 머리에 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늘 뱅글뱅글 돌았습니다. <서슴치 말고 어서 해봐라> 그는 계속 기도하였습니다. 1924년 드디어 달라스에 큰 힐튼 호텔을 지었습니다. 1939년에는 캘리포니아에, 뉴욕에, 일리노이에 힐튼 호텔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세계 힐튼 호텔의 시작입니다.

 

 

출처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글쓴이 : 송수천목사설교카페입니다! 원글보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