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가기 |
설과 나팔절! (레 23;23-25)
김 찬삼씨가 무전으로 세계 여행을 하고 나서 한 말이 있습니다. <어느 곳에 도착하여 첫 날 보면 사람 사는 것이 다 달랐다. 그러나 3일 같이 살다 보면 사람 사는 것은 다 같았다>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는 어쩌면 그렇게 같은 지 놀랄 정도입니다. 우리나라의 최고 명절은 설입니다. 음력 1월 1일입니다. 구정이라고도 말합니다. 외국에서는 양력 1월 1일을 새 해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양력 1월 1일은 새 해입니다. 송구영신 예배도 1월 1일에 드립니다. 그런데 명절은 음력 1월 1일입니다. 정부에서는 이중 과세를 하는 것 같아 구정을 없애 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신라 시대부터 전통적으로 내려 온 우리 문화를 정부도 거스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 해는 양력 1월 1일이고, 음력 1월 1일은 우리나라 최대 명절로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양력 1월 1일은 새 해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새 해는 그들의 음력 7월 1일입니다. 그 날은 성경에서 나팔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축제일입니다.
새 해입니다. 나는 재작년 나팔절에 예루살렘에서 한 달 살고 있던 중에 맞았습니다. 유학생을 다른 곳으로 가서 살도록 부탁하고 우리 5명이 그 집에서 합동 생활을 하고 있을 때 나팔절을 맞았습니다.
새벽부터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서 그들이 어떻게 나팔절을 지내는 가를 세밀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는 교회가 83개 있습니다. 그 중에 한 교회에 가서 나팔절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나팔절 문화를 직접 피부로 체험하기도 하였습니다.
우선 성경적으로 나팔절에 대하여, 설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 지를 보겠습니다. 레위기 23장은 절기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절기 7 가지를 지키라고 아예 정하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에 들어오기 전에 이미 7 절기를 정해 가지고 들어 왔습니다. 가나안에서 살면서 그들은 7절기를 지키며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 중에 네 번째 절기가 나팔절 즉 설 새 해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일 일로 안식일을 심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레23:24)
나팔절 즉 설에는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습니다.
1. 갱신
설에는 갱신의 의미가 있습니다. 나팔절부터 신년이 시작됩니다. 새롭게 살자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팔을 붑니다. 나팔은 새 출발을 알리는 신호입니다. 나팔절 아침 일찍 예루살렘 성으로 나가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인 손에 나팔을 들고 광장으로 이미 수백 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나팔을 불어 댑니다. 여기서도 나팔, 저기서도 나팔 요란하였습니다. 새롭게 살자는 의미의 나팔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 500만 명, 6일 전쟁으로 빼앗은 곳에 살고 있는 아랍인이 약 300만 명 모두 800만 명 가량이 살고 있습니다. 적과의 동침입니다. 그 중에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은 겨우 10,000여명 됩니다. 이들이 모이는 교회가 83 교회입니다.
그 중에 한 교회에서 나팔절 예배를 드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배 도중 어린 아이들이 몇 명 나와서 한 명당 한 병씩 꿀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꿀과 같은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 해를 맞아 새 결단을 하고 새 출발하는 것이 설 즉 나팔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오늘 새 결단을 하기를 바랍니다.
한 가지만 확실하게 결단하고 새 출발한다면 설의 의미가 있습니다. 이 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팔을 불어 새로운 해의 기쁨을 온 세상에 알렸습니다.
어떤 사학자의 연구에 의하면 제사장이 나팔을 불면 사람들은 큰 소리로 반복하면서 <즐거운 소리를 아는 백성은 유복한 자라>(시89:15)라고 외치며 이날을 빛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설이면 <설빔>이라고 하여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려면 옷부터 새 옷을 입어야 한다고 하여 전 민족이 새 옷을 설부터 입었습니다. 설을 앞두고 제일 분주한 것은 새 옷을 장만하여 두는 일이었습니다.
아이들은 꼬까옷이라고 하여 색동저고리, 치마저고리, 바지저고리를 새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어른들은 두루마기, 도포를 준비하였습니다. 심지어는 신발까지 새로 준비하였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그래서 설이라고 하였습니다.
설부터 새로운 마음으로 살자고 새 옷, 새 신을 신기 시작하면서 새 해를 새롭게 시작하였습니다. 설은 나팔절과 같이 갱신의 의미를 진하게 가지고 있었습니다. 온 식구가 설빔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설부터 마음도 갱신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2. 재림
구약 성경은 모두 예수의 모습입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니라.>(요5;39)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요5;46)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절기도 결국은 그리스도의 놀라운 모형입니다. 구약은 수건을 벗고 보면 모두가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치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같이 아니하노라. 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까지 모세의 글을 읽을 때에 수건이 오히려 그 마음을 덮었도다.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2-18)
7절기는 모두 모세가 기록하였고 이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7절기는 모두 레위기 23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레위기 23장을 <절기장>이라고 부릅니다. 제1절기 유월절(레23;4-5), 그리스도의 죽음 제2절기 무교절(레23;5-8), 그리스도와의 친교 제3절기 초실절(레23;9-14), 그리스도의 부활 제4절기 칠칠절(레23;15-22), 그리스도와 성령의 교대 제5절기 나팔절(레23;23-25), 그리스도의 성도 부름 제6절기 속죄절(레23;26-32), 그리스도의 사죄 제7절기 초막절(레23;33-43), 그리스도의 성도 추수 나팔절 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반드시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님은 나도 모르고 천사도 모르고 오직 하늘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언제 주님이 오실지 모른다고 고백하여야 이단이 되지 않습니다.
만일 재림 날자를 말하면 금방 이단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몇 연도에 오실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 해에 나팔절에 오실 것이 분명하다. 이유는 확실하다. 지금까지 네 절기가 분명하게 이루어졌다.
유월절에 예수님이 죽으시고, 무교절에 친교하시고, 초실절에 부활하시고, 오순절에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네 절기가 분명히 정확하게 이루어졌으니 나머지 3 절기도 정확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나팔절에 오실 것만은 확실하다>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나팔절이면 설이면 예수 믿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오시지 않을까 긴장하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찬송도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팔소리 천지진동 할 때에 예수 영광중에 구름타시고 천사들을 세계만국 모든 곳에 보내어 구원 얻을 성도들을 모으리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나팔 불 때 나의 이름 부를 때에 잔치 참여하겠네>
나팔절 즉 설은 예수님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은 나팔절에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모래더미에는 흙도 있고 유리조각도 있고 돌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남철을 넣고 흔들면 철가루만 모두 붙어 올라오게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섞여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나팔을 불어 성도들만 모으시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나팔절입니다. 이 날이 설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모이는 절기입니다.
성막 강의 할 때마다 나는 이 강의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느 목사님이 편지를 주셨습니다. <강 목사님! 나는 이단이라고 할까 두려워서 공개적으로 말 하지 못 하겠습니다. 그러나 강 목사님은 이해하실 것같이 속을 털어 놓습니다.
목사님의 강의를 듣고 보니 나도 나팔절에 예수님이 오실 것을 믿고 싶습니다. 이스라엘 다녀오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유대인 달력을 몇 부 더 사 오셔서 내게도 한 부 보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나팔절을 표시하여 놓고 주님의 재림을 긴장 속에 기다리고 싶습니다. 아무에게도 내 이름을 공개하시지 말아 주시기 바랍니다.> 이런 편지를 한 분 이 아니라 몇 명에게 받았습니다. 설날은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 나팔소리와 함께 오셔서 모든 것을 갱신하실 것입니다. 설은 재림입니다. 우리나라 설도 영적인 풍습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소위 <앙괭이>라는 풍습입니다. 설날은 해가 바뀌는 날입니다. 새 해 새롭게 다짐하고 살아가기 시작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그 날 밤은 양괭이라는 귀신이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자기가 맞는 신이 있으면 신고 가버리면 그 사람에게는 일 년 내내 재앙이 임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 날 밤은 일찍 집에 들어 와 신을 방안이나 다락에 넣고 잤습니다.
하루 종일 세배 다니고 일하느라고 피곤한 하루이니까 일찍 자야하는 필요성을 이런 풍습으로 연결시킨 우리 조상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그러나 첫 날부터 귀신이 집에 오지 못 하게 하자고 다짐하면서 경계하는 풍습을 설날부터 가졌던 것이 우리 조상들이었습니다.
재미있는 풍습은 집 앞에 설날 구멍이 많이 뚫린 채를 놓고 잡니다. 그러면 양괭이이 신발을 훔치러 왔다가 채가 신기하여 신발 훔칠 생각도 잃어버리고 구멍을 세다가 날이 새고 나면 도망친다는 풍습도 있었습니다. 여하간 설날은 귀신이 오는 날입니다.
그러나 나팔절은 예수님이 오시는 날입니다. 재림은 새로운 질서의 재림 예수님을 만나는 날입니다. 그리고 설 날 사람들은 밖에 나와 연날리기를 하였습니다. 연날리기는 대단히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을 향하여 모든 재앙을 다 날려 버린다는 강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두 다 털어 버리겠다는 영적 의미였습니다. 설이나 나팔절은 영적 의미가 컸습니다.
3. 친교
모세는 나팔절을 이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일 일로 안식일을 심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레23:24)
이스라엘 백성들은 설이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안식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매년 그 날이면 모두가 함께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즐겼습니다.
우리나라 설도 같은 의미를 가졌습니다. 구정 설은 휴일입니다. 온 민족이 삼국 시대부터 친교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나라 설도 전통적인 의미가 점점 살아져 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 민족이 설이면 친교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우선 가족 간의 친교입니다. 떨어져 살던 온 친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같이 음식을 나누면서 한 것이 있습니다.
(1)제사
설이면 꼭 하는 것이 차례라고 하는 제사입니다. 조상의 은덕을 기리는 추도예배입니다. 우리나라 풍습은 4대 조상까지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 할아버지, 고조 할아버지까지만 제사를 지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습니다. 추도 예배를 드리며 조상을 추모하고 생각하면 됩니다.
(2)세배
제사를 드리고 나서 꼭 하는 것이 어른들에게 드리는 세배입니다. 어른에게 차례로 절을 하며 축복의 말을 합니다. 이를 덕담이라고 합니다. 덕담은 꼭 주고받아야 합니다. 세배를 하는 사람은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새 해에는 더욱 건강하십시오> <새 해에는 하시는 일이 만사형통하시기를 바랍니다.> <새 해에는 백수 향수하십시오.> 이렇게 덕담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그러면 세배를 받는 어른도 덕담으로 화답합니다. <금년에는 소원 성취하게> <금년에는 더욱 복 많이 받게> 이렇게 이스라엘의 나팔절처럼 덕담을 주고받으며 서로 사랑하고 친교 합니다.
(3)축복
세배를 마치고 나면 설에는 반드시 떡국을 끓여 서로 나누어 먹었습니다. 떡국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흰 쌀 가루를 길게 만들어 동그랗게 자릅니다. 그 것을 소고기와 끓여서 맛있게 먹습니다.
떡국은 동전을 생각나게 하였습니다. 바로 돈입니다. 축복 많이 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음식을 통하여서도 서로 서로 돈 많이 벌라고 축복하였습니다. 제일 좋은 고기는 꿩고기였습니다. 설을 앞두고 산에 올라가 꿩을 잡아다가 그 고기 국물로 떡국을 끓여 대접하는 것이 최고의 대접이었습니다.
그러나 꿩을 못 잡을 경우에는 닭을 썼습니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설은 서로서로 축복을 비는 날입니다. 나팔절이 서로 꿀을 나누면서 축복하는 것과 같습니다.
(4)널뛰기
설이면 이 마당 저 마당에서 널뛰기를 하였습니다. 서로 교대로 하늘로 치솟으며 나 때문에 네가 오르고 너 때문에 내가 하늘로 치솟는 널뛰기를 하면서 서로가 잘 되기를 축복하였습니다. 겨우 내내 움쿠려 살다가 발바닥을 그렇게 부딪쳐 주면 너무나 건강하였다는 것입니다.
<널을 뛰지 않으면 발바닥에 가시가 박힌다.>라는 속담은 여인들의 건강으로 널뛰기 운동을 시키려는 조상들의 지혜였습니다. 그 때 이런 노래를 부르면서 널뛰기를 하였습니다. 묵은해는 지나가고 새 해 신원을 맞았네. 널뛰자. 널뛰자 앞집에 수캐야 너 왔느냐 뒷집에 순이야 너도 왔느냐 널뛰자. 널뛰자 만복 무량 소원 성취 금년 신수 좋을 시구 널뛰자. 널뛰자 규중 생장 우리 몸은 설 노름이 널뛰기라 널뛰자. 널뛰자 널뛰기를 마친 후에 떡국놀이 가자 세라 널뛰자. 널뛰자 재미있는 널뛰기 노래가 또 있습니다. 허수자 척실루 네 머리 흔들. 내 다리 삽작 허수자 척실루 네 댕기 팔랑. 내 치마 낭넉 허수자 척실루 네 눈이 휘휘. 내 발이 알알 널뛰기를 하면서 친교하며 다른 이가 솟아오르도록 도와주는 미덕을 길렀습니다.
(5)윷놀이
윷놀이는 이웃 놀이의 준 말입니다. 이웃들이 모여 긴긴 밤을 같이 놀며 친교하며 지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팔절이면 안식하며 즐긴 것과 같은 날입니다.
(6)쥐불놀이
설날을 우리 조상들은 상자일이라고 하여 쥐불을 논뚝이 밭뚝에 질렀습니다. 모두가 논밭으로 나와 그 곳에 있는 쥐들을 멀리 쫓자고 하면서 모여 불을 놓았습니다. 이 불을 쥐불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논 밭둑에 있는 해충들을 모조리 불살라 버리는 풍습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서 모두가 모이는 친교의 행사이기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여서 나팔절 설날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일 년 내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도록 기도하였습니다. 비슷한 풍습입니다. 이같은 일을 하면서 설이면 친교 하였습니다. 설은 친교의 날입니다.
4. 구제
나팔절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나팔절 바로 전 절기가 칠칠절입니다. 여름 추수 절기입니다. 추수할 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레23:22)
구제 후에 나팔절을 맞으라고 하셨습니다. 밭모퉁이는 추수할 때 다 베지 말고 두라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구제입니다. 구제 후에 나팔절을 맞으라고 하셨습니다.
새 해 설을 맞을 때 구제를 생각하며 가난한 사람과 같이 지내라는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설 때도 마찬가지 풍습이 있었습니다. 복조리라는 풍습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설을 놓치지 않고 복조리 장사를 합니다.
새벽 일찍 복조리를 메고 <복조리 사려. 복조리 사려>라고 새벽공기를 헤치고 외치며 다닙니다. 그러면 아침 일찍 밥하러 일어난 어머니가 그 소리를 들으면 그 복조리를 빨리 사서 그 조리로 아침밥을 하여 식구들에게 밥을 해주어야 그 집에 일 년 내내 복이 임한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가난한 복조리 장사의 복조리를 통하여 복이 그 집에 묻어 들어온다는 아름다운 풍습이었습니다. 이는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라는 좋은 풍습이었습니다.
이 때 보통은 일 년 내내 쓸 조리를 한꺼번에 사기도 합니다. 나팔절 구제와 우리 설 복조리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또 다른 구제 풍습이 있습니다.
승병이라고 하는 풍습입니다. 옛날에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없고 불교만 있었습니다. 중들이 일년 내내 산속에서만 살았습니다. 산속에서 일년 먹을 양식을 구하는 날이 설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중들은 설날이면 자루를 메고 민가로 내려와서 이 집 저 집 다니면서 시주를 받습니다.
그 때 쌀이나 돈으로 시주합니다. 도를 닦는 중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줍니다. 그러면 중은 떡을 메고 다니면서 시주한 집집마다 떡을 한 개씩 나누어 줍니다. 그 떡을 두었다가 아이들에게 먹이면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고 믿었습니다. 병에 걸리지 않고 무병장수한다고 믿었습니다.
그런 풍습을 만들어 중들은 시주를 받았고, 사람들은 중들을 사랑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모두 설의 아름다운 구제 풍습입니다. 이스라엘의 나팔절도 구제 후에 나팔절을 맞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같이 성경의 새 해 나팔절과 우리의 새 해 설과는 비슷한 점이 많았습니다. 이스라엘과 우리나라는 영적으로 통하는 민족이었습니다. 이같이 설은 나팔절처럼 네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갱신 2. 재림 3. 친교 4. 구제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씨를 안고 사는 사람들! (수 23:12-16) (0) | 2022.01.04 |
---|---|
자기 정복자! (막 1:35-39) (0) | 2022.01.04 |
하나님의 일군 3가지 금기! (민 16;4-11) (0) | 2022.01.04 |
물댄 동산 같겠고! (사 58;9-12) (0) | 2022.01.04 |
믿음up (특별성회 교안!) (히 11:23-29) (0) | 2022.01.04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