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신앙 온전한 사람/여호수아 14:6-12
우리는 일생동안 훌륭한 사람들을 본받으면서 살아야 됩니다. 성경 가운데서 믿음의 위대한 선진들을 많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믿음이 좋은 사람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의 전 생애가 온전히 하나님을 좇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특별히 그 이름이 빛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고 인정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갈렙입니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9절)
여기 ‘온전히 좇았다’는 말은 ‘하나님을 만족케 했다, 충성스럽게 좇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다른말로 말하면 ‘갈렙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온전히 그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따랐다’ 이런 표현이 됩니다.
성경 가운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좇고 충성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갈렙은 특별히 하나님께로부터 인정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요셉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던 분이었지만 갈렙은 하나님을 온전히 좇은 위대한 인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성도들과 함께 갈렙의 생애를 보면서 우리 자신이 좀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는 이름난 사람보다 이름없이 착한 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애국자 가운데도 이름난 사람보다 무명의 애국자가 더 많습니다. 2천년 교회사에서 순교한 위대한 사람중에 그 이름이 역사에 남겨지지 않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도 충성을 다하지만 그 이름을 남들이 모른채 감추어져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자기 이름을 밖으로 나타내는 사람도 있지만 그 이름이 감추어진채 진실하고, 성실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사님도 안알아주고 교인들도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진실하고 충성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갈럽에 대하여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첫째, 갈렙은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은 특별한 능력의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사람이었습니다.
열심히 기도생활 많이 하고,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열심히 성경을 읽으면서도 사람됨이 거기에 못미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들이 잘 알지 못하지만 그의 신앙과 인격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우리에게 두 발이 있는 것처럼, 두 수레바퀴가 마차를 굴러가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온전함이 인간 됨에도 온전해지도록 노력해야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야 되고 하나님이 상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계시고 환경에 변함없이 계십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이 계시다는 말은 하지만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살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거짓말하고, 속이고, 양심에 꺼리는 일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다면 심장마비로 죽을 사람 많을 것입니다. 안계시다고 믿는 것이 다행입니다.
어느 신부님이 성당에서 “주님, 음성을 들려 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하다가 어느날 “내가 여기 있다”고 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음성을 들은 신부님은 그 자리에서 심장마비로 죽었습니다.
만약에 우리가 날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믿고 기도한다면 우리의 기도가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믿고 사업을 한다든지, 가정생활을 한다든지, 말을 한다면 얼마나 잘 하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이 안계신 것처럼 말하고 행동하고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확실히 믿었던 한 사람이 바로 갈렙이었습니다. 민수기 14장에 보면 그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부르심을 받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광야를 지나 가데스바네아라는 곳에 갔습니다. 거기는 가나안 땅에서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그곳에서 모세가 열두 지파에서 열두 사람을 택하여 가나안 땅에 정탐꾼으로 보냈습니다. 그 땅 거민은 어떠하며, 산지는 어떠하며, 성읍들은 얼마나 견고한지, 우리가 어떻게 해야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있는지 정확한 정보를 가지고 오라고 열두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열두명이 현지를 답사하고 정탐하고 와서 보고를 할 때 갈렙은 백성을 안돈시켜 하는 말이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 13:30) 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정탐꾼 열명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민 13:31-33)라고 악평을 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백성들은 모두 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면서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민 14:2-4) 하고 말했습니다.
이때 모세와 아론은 땅에 엎드려 기도하고 여호수아, 갈렙은 다시 외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 14:7-9)
그러나 백성들은 여호수아 갈렙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악평한 무리들의 말을 듣고 아우성을 치면서 원망하고 탄식했습니다.
열두 사람이 똑같이 정탐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 갈렙은 그 땅을 주신 하나님을 보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보았기 때문에 능히 이기리라고 말했지만 나머지 열 사람은 그 백성의 장대함과, 성읍의 견고함을 보고 자신들의 나약함을 비교하면서 이기지 못하리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도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셨거니와 미래에도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셔서 살아갈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갈렙은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어떤 고난이 올 때 낙심하기 쉽습니다. 고난을 보기 때문입니다. 또 세상을 보기 때문입니다. 현실을 보고 나를 보기 때문입니다. 그때 우리는 그 고난을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탄식하지 말고 눈을 들어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갈렙의 믿음이었습니다.
갈렙의 믿음은 긍정적인 믿음이었습니다. 갈렙은 그 마음속에 좋으신 하나님을 믿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확신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갈렙의 긍정적인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9절)라고 약속했던 것입니다.
이 믿음에 대하여 갈렙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날에 모세가 맹세하여 가로되 네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은즉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 하였나이다”(9절)
갈렙은 분명히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줄 가나안 땅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었으며 그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약속하시는 하나님 임을 믿었습니다.
갈렙이 이 말씀을 여기에서 하고 있는 것은 그가 약속을 받은지 4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45년동안 받지 못한 약속을 눈앞에 두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 발로 밟는 땅을 내게 주리라고 약속하신 것을 내 눈으로 보고 있으며 받아야 하겠나이다.”
우리는 갈렙에게서 위대한 신앙을 보는데 변함없는 신앙입니다. 젊어서 나이 40에 하나님으로부터 약속받았던 언약을 85세가 되어 그 약속을 회상하면서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주일학교 때 열심내고 타락한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결혼 전에 열심내고 열심이 식은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 믿을 때 화끈하고 나중에는 잿더미처럼 된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농촌에서 열심히 믿다가 서울에 와서는 안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젊어서 열심히 믿다가 나이가 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게으르고 나약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갈렙은 젊었을 때 가졌던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약속과, 언약이 그가 85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고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을 그도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성도들이 그러한 믿음을 갖기를 바랍니다.
혹시 첫사랑을 잃어버렸습니까 회복하십시오. 내 속에 타오르던 불길이, 옛날 가졌던 열정이 사라져가고 있습니까 식어버렸습니까 회복하십시오.
갈렙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심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긍정적인 믿음으로 하나님께 대하여 언제나 희망을 가졌습니다. 그는 어제나 오늘이나, 젊어서나 나이가 들어서나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온전히 좇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았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했으며, 끝까지 어떤 경우에도 그 마음속의 심지가 견고해서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갈렙은 그 신앙이 온전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신앙의 온전함이 그의 인격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둘째, 갈렙은 사람 관계가 온전했습니다.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 행한 이 사십오 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케 하셨나이다 오늘날 내가 팔십오 세로되”(10절)
하나님께서 40세에 갈렙에게 주셨던 은혜를 회상하면서 45년 전을 회상합니다. 45년 전 여호수아, 갈렙은 모세의 명령을 따라서 가나안 땅에 정탐꾼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유일한 사람이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1세들은 광야에서 다 죽었고 여호수아, 갈렙만이 하나님으로부터 “너희들은 살아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리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유일하게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받은 두 사람은 정탐꾼 동지였으며, 1세 중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공로를 인정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 땅으로 이끄는 총 사령관이 되었고, 갈렙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여호수아를 도와 헌신하는 참모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갈렙의 위대한 인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갈렙은 ‘그대나 나나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했던 동지니 똑같이 가나안 땅을 분배해서 반절은 그대가 반절은 내가 차지해야 한다’고 얼마든지 주장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절 그런 공로를 주장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보상을 요구하지 아니하고, 그것 때문에 마음 상하지 아니하고 끝까지 무명의 참모로 여호수아를 도와서 가나안 땅을 하나님의 거룩한 성지로 만드는 일에 최선을 다 했던 위대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이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인격자요, 별세의 사람 중에 별세의 사람이었습니다. 누구든지 이러한 현실에 부딪히면 마음이 시기와, 질투와, 분노로 사로잡힐 것입니다. ‘그대와 내가 똑같이 공로를 세운 사람이 아닌가 그대와 내가 똑같이 죽음을 무릅쓰고 가나안 땅을 정탐하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똑같이 그대와 나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지 않았는가 어찌하여 그대는 가나안 땅을 총 지휘하는 사람이 되고 나는 무명의 참모인가’라고 얼마든지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렙은 겸손하게 무명의 사람으로 헌신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영적 지도자가 되었고 갈렙은 다만 점령군 참모가 되었지만 그는 과거의 기득권을 요구하지 않았으며 보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참으로 온전한 정신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참으로 떳떳한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한 “네 발로 밟는 땅을 영영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고 하셨던 그 말씀 하나만 가지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적은 공로만 있어도 특혜를 바라고, 자기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불만을 터뜨리고 원망하는 것이 예사입니다. 그런데 갈렙은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모셨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 공간 인간적인 섭섭한 마음이 끼어들만한 요소가 없었습니다. 그는 하늘을 품은 사람이었습니다.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 그 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11절)
여기 ‘산지’는 산등성이를 말합니다. 가나안 땅에 가면 비옥한 땅이 많습니다. 넓은 평지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넓고 좋은 땅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고 자기에게는 산지를 달라는 것입니다.
“당신도 그 날에 들으셨거니와 그 곳에는 아낙 사람이 있고 그 성읍들은 크고 견고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혹시 나와 함께 하시면 내가 필경 여호와의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12절)
보통 사람 같으면 “힘세고 박력있는 젊은이들에게 그 산지를 전투해서 차지하게 하고 나는 나이가 들었으니 평평한 땅을 차지하게 하소서” 하고 여호수아에게 말할 수 있고, 또 여호수아도 들어줄 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이 험악한 산지를 주소서 내가 그 땅을 차지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헤브론은 높은 고지의 땅이었습니다. 그곳은 족장들이 살던 곳이요, 아브라함과 사라, 이삭과 리브가, 야곱과 레아가 묻혀있는 땅이었습니다. 갈렙은 헤브론이 가나안 땅에서 가장 어려운 땅이었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땅으로 만족하고 그 땅을 원했던 것입니다. ‘그 땅은 조상들이 묻혀있는 땅이요, 내가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 밟았던 땅이요, 주께서 약속하신 땅이니 그 땅을 나에게 주소서. 곡식이 잘 자라고 생산 좋은 땅도 있지만 나는 하나님이 가라는 곳에 가며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곳에 있기를 원하하오니 이 땅을 주소서.’ 하고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곳이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요, 살 곳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되 온전히 믿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간적인 생각으로 타산하지 않았습니다. ‘가난해도 좋다, 하나님이 계시면 그곳이 천국이다. 쫓겨나도 좋다. 그 곳에 하나님이 계시면 그곳이 낙원이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갈렙은 또 하나 위대한 것이 있습니다.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은 백성의 간담을 녹게 하였으나 나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으므로”(8절)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이 누구입니까? 함께 가나안 땅을 정탐하러 갔던 열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악평해서 말했던 사람, 이스라엘 백성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모두 다 원망하게 만들었던 사람, 그리고 광야에서 38년동안 헤매게 했던 악한 무리들, 이 불신의 무리들을 갈렙은 원망하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하나님의 뜻을 반역한 무리들 때문에 광야 38년간을 헤매었으니 얼마나 원망도 많고 불평도 많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기에서 ‘나와 함께 올라갔던 내 형제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불신의 무리였지만 자기의 형제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끝까지 ‘내 형제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그는 온전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백성을 광야에서 다 죽게 만들고 자기의 젊은 청춘을 광야에서 배회하면서 늙게 한 무리들을 향해서 ‘내 형제들’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끝까지 인간 관계에서 온전했던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도 원망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나온 날을 회상하면서 섭섭했던 과거를 되풀이하면서 부모를 원망합니까 그러지 맙시다. 아무도 원망하지 맙시다. 부부간에도 원망하지 말고, 형제간에도 원망하지 말고, 현재 나에게 주어진 운명과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입시다. 과거에 대하여는 하나님의 은혜로 용납하고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기다려야 됩니다.
갈렙은 끝까지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전했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전했습니다.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갈렙은 자기 자신을 온전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갈렙은 끝까지 자기 자신에 대하여 겸손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을 위하여 축복하고 헤브론을 그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매”(13절)
똑같은 정탐꾼 동지였습니다. 나이도 같은 나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 앞에 무릎을 꿇고 축복을 받습니다. 자기가 가야 할 땅도 무조건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의 허락을 받고 갑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기 때문에 ‘나 간다’ 하고 가면 됩니다. 그런데 질서의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여호수아에게 “그대가 하나님으로부터 지도자의 권위를 받았으니 나는 그대 앞에 무릎을 꿇고 복을 받노라” 하고 축복을 받습니다.
갈렙은 그 출신이 이스라엘 민족의 정통이 아니었습니다. “때에 유다 자손이 길갈에 있는 여호수아에게 나아오고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여호수아에게 말하되”(6절)
‘그니스’라는 사람은 창세기 36장 11절에 에서의 손자로 나옵니다. 야곱의 후손이 이스라엘의 정통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입니다. 단팥죽 한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아먹은 에서는 에돔족이 되었고 하나님을 반역하는 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그는 팔레스틴 땅에 살다가 하나님을 믿는 권속이 되어 유다 지파에 편입이 되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여호수아나 갈렙이나 똑같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방 출신이기 때문에 지도자의 반열에서 탈락된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나를 소외시켰다고 원망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나한테 그럴 수 있느냐’고 반기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자기를 부정하고 참았습니다. 단둘이 남아서 얼마든지 싸우면서 서로 라이벌 의식으로 경쟁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자기를 포기하고 여호수아를 받들어 세워주었습니다.
신약에 오면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뚝솟은 선교사의 거장이요, 바나바는 그를 뒤에서 도와주었던 사람입니다. 바나바가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세계를 복음화하는 큰손으로 쓰임을 입었습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이스라엘 민족 최대의 역사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함께 쓰임을 받았지만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가 되었고, 갈렙은 그 밑에서 여호수아를 돕는 참모가 되었습니다. 갈렙은 분명히 우리 주님께서 손을 높이 들어 “갈렙, 그대야말로 위대한 내 제자다. 그대야말로 별세한 사람이다. 그대는 원망과, 섭섭함과, 인간적인 감정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준 온전한 사람이다. 내가 그대를 기뻐하노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온전케 하십시다.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좇읍시다.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없이 하나님 말씀을 믿읍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신뢰하십시다.
갈렙은 나이가 들었으나 늙지 않는 사람으로 그 일생을 우리에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나를 보내던 날과 같이 오늘날 오히려 강건하니 나의 힘이 그 때나 이제나 일반이라 싸움에나 출입에 감당할 수 있사온즉”(11절)
갈렙은 어느 성경의 인물보다 그는 노년에 대하여 매우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일을 추구하는 나이에 80세의 노년에 개척자의 정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갈렙에게 있어 노년은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 아니었고 더 큰 업적을 위한 전진이었고 오히려 정상을 오르는 모험과 성취였습니다.
그는 육체적으로 강건하였습니다. 그는 힘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노년에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더욱 건강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일까요? 자기 자신에 대하여 온전해지는 삶의 동력이 어디에서 솟아오른 것일까요? 갈렙은 나이가 들어갈지라도 자기 자신에 대하여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코 게으르거나 방심하지 않았습니다. 일생동안 이렇게 산다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죽음이 오는 순간까지 발전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갈렙에게서 최선의 삶을 배워야 합니다.
갈렙은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겸손으로 그의 생의 모든 승리를 이끌어 갔던 것입니다.
일생을 사는 동안 갈렙은 진정한 낙천주의자였습니다. 갈렙은 신앙적으로나 인간관계에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나 부정적인 면이 없었습니다.
그는 나이가 85세가 된 노인인데도 자신에게 연민의 정을 갖지 않았고 또 자신을 부정하는 우울한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안에서 온전해지려는 그의 인생관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부족을 은혜로 채우는 삶을 날마다 새롭게 전진해가야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믿음, 사랑, 소망으로만 온전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 이웃 사랑, 하늘나라에 소망으로 온전해지십시다.
여러분이 나이가 들어도 마음이 늙지 않기를 바랍니다. 생각이 노쇠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끝까지 젊은 날에 가졌던 그 마음, 그 뜻, 그런 열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 그런 젊음의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며 주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는 위대한 승리자, 위대한 그리스도인,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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