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미 의 축 복/창세기 27:1-4
설날이 오면 우리는 어른들에게 세배를 드리고 또 어른들의 따뜻한 격려의 말을 듣고 조상들의 축복을 받습니다. 또 설날이 오면 우리는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서 부모님과 조상을 공경합니다. 이것을 별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옛날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릴 때 설날이 오면 어른들을 대접하기 위해서 없는 살림에도 정성껏 준비해서 어른들에게 문안인사를 드리러 가면서 별미를 만들어가지고 갑니다. 부모님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는 자녀됨의 정성과 그 효심은 참으로 기특한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것 같으나 이러한 정성이 자손들에게 복이 되었고 또 조상은 자손들에게 축복을 빌어주었던 것입니다. 별미를 만들어드림으로 어른들을 기쁘게 하고 또 별미를 나누어 먹는 기쁨을 명절에 누리게 됩니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조상들에게 무엇인가 좋은 것을 드리고 자기는 부스러기를 먹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손들의 축복이었습니다. 어른들을 대접하지 않는 것은 좋은 것이 못됩니다. 그러니까 명절이 되면 맛있는 것을 만들어서 드리려고 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착한 것입니다. 부모님이 평소에 좋아했던 것을 드리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이 자녀됨의 본분입니다.
이러한 별미를 드리고 복을 받는 것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들어 죽을 때가 가까이 되었을 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죽기 전에 자식을 축복해야지’ 그래서 맏아들 에서를 부릅니다. “에서야, 네 아비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다오. 내가 그것을 먹고 힘을 얻어서 너를 마음껏 축복하리라”
이 말을 듣고 에서가 전통에 활을 담고 들로 사냥을 하러 나갑니다. 마침 그 얘기를 곁에서 들었던 분이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입니다. 리브가는 평소에 에서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둘째 아들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그것은 어떤 인간적인 편애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야곱을 사랑하라고 계시했기 때문입니다.
리브가가 야곱을 부릅니다. “야곱아, 네 아버지가 마지막 축복을 할텐데 네가 받아야 한다. 빨리 염소를 잡아서 가지고 오너라 내가 별미를 만들어 네 손에 들릴테니 네가 갖다 드리고 복을 받아라” “어머니, 형은 털이 많은 사람이요 나는 매끈한 사람인데 축복을 받으러 들어갔다가 이 사실이 탄로나면 축복은커녕 저주받을까 두렵습니다.” “아니다. 내가 잘 알아서 할 것이니 준비해서 가지고 오너라”
리브가가 양을 잡아서 별미를 만들어 아들 손에 들리기 전에 집안에 있는 에서의 옷 중에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손에는 양의 새끼의 털로 감추어서 별미를 들고 들어갑니다. “아버지, 아버지께서 즐기는 별미를 만들어왔습니다.” “벌써 만들어 왔나” “예, 여호와께서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셔서 잡아서 가지고 왔습니다.” “가까이 와 봐라 음성이 야곱의 음성인데... 손을 좀 만져보자” 눈이 어두우니까 손을 만지는데 손에 털이 많으니까 “음성은 야곱의 음성인데 손은 에서의 손이구나!” 하면서 옷의 향취를 맡으면서 “옷의 향취는 여호와의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고는 그에게 축복을 합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28-29절)
이 축복을 받은 이후에 에서가 들에서 사냥을 해서 별미를 만들어서 아버지에게 가지고 왔습니다. “아버지, 저를 축복해 주시죠.” “아니 네가 누구냐?” “에서이옵니다.” “조금 전에 축복을 다 끝냈다.” “아버지, 저에게 줄 축복은 없습니까?” “없다. 한 번 축복을 내렸다. 그 이름 야곱 그대로 또 나를 속였구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너의 주소는 땅의 기름짐에서 뜨고 내리는 하늘 이슬에서 뜰 것이며 너는 칼을 믿고 생활하겠고 네 아우를 섬길 것이며 네가 매임을 벗을 때에는 그 멍에를 네 목에서 떨쳐 버리리라”(39-40절). 복도 아닌 복을 에서에게 빌어주었습니다. 저는 야곱이 받은 축복을 모든 성도들이 다 받기를 바랍니다.
“이삭이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니”(1절)
눈이 어둡다는 것은 물론 기력이 쇠해서 시력이 약해졌다는 말도 되지만 영안이 어두워졌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보는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에서를 축복하려는 것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에서를 장자로 예비한 것이 아니라 둘째 아들 야곱을 장자로 예비했습니다.
리브가가 태중에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잉태했는데 둘이 얼마나 싸우는지 태중에서 복통이 일어나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배를 부둥켜 안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아이들이 배 속에서 요동합니까?”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
이런 얘기를 리브가가 이삭에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의 계시를 만홀히 여기고 인간적인 감정으로 맏아들 에서가 들에서 사냥을 해서 종종 짐승의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주니까 그것을 먹고 축복을 하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이 말을 들은 리브가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저 노인이 망령이 들었구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려 하는구나 에서가 맏아들이지만 분명히 하나님의 축복은 둘째인 야곱에게 주려고 계시했는데 어찌하여 축복을 에서에게 주려고 하나 에서가 장자의 복을 받으면 이 가문은 망한다. 하나님의 가문이 못된다. 장자의 명분을 팥죽 한그릇에 팔아먹는 망령된 자식에게 어찌 장자의 명분을 줄 수 있단 말인가’ 해서 리브가가 비상 수단을 써서 축복을 야곱에게 받도록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생각한다면 수단과 방법은 좋은 것이 못되었습니다. 만일 진실로 리브가가 그랬다고 한다면 “여보, 당신이 나이가 들어 영안이 흐린 것 같은데 축복을 에서에게 주면 안되옵니다.” 이렇게 만류를 했을 것인데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눈 어두운 것을 빌미로 작은 아들이 축복을 받게 한 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을 사랑하고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받도록 계획했기 때문입니다. 그 계획을 이룬 것입니다.
들짐승을 잡아서 별미를 만드는 것으로는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 행동해야 됩니다. 저들이 축복을 빌어주어도 그 별미가 하늘이 주는 별미를 먹어서 축복을 해야 하는 것이지 들 가운데 있는 짐승을 먹고 축복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별미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고기는 양이었습니다. 이것은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언제나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 별미를 받을 때 양으로 받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양을 잡아서 가죽 옷을 입혀서 저들의 허물을 가리웠습니다. 아벨이 양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제물로 드릴 때 그것을 열납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상에서 양을 잡아서 하나님께 드림으로 이삭을 대신해서 번제로 받으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양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시고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에게 준 별미의 신비의 동물입니다. 왜냐하면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만백성의 죄를 지고 갈 어린양으로 오실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들은 양을 잡아서 하나님 앞에 별미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위하여 제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질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430년동안 노예생활을 할 때 저들이 탄식하며 학대를 받는 신음속에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기 위해서 어린양을 잡아서 문설주에 피를 발라 하나님의 집으로 표시를 하고 하나님의 장자를 죽이는 재앙이 임할 때 어린양의 피가 있는 집은 건너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양의 고기, 별미를 먹고 잔치를 하고 다음날 애굽을 떠나게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이요, 계시였던 것입니다.
이와같이 조상 대대에 하나님의 별미인 양의 식물을 이삭이 만홀히 여겨 들짐승을 먹고 축복하려고 할 때 리브가가 가로막은 것입니다. 아내가 믿음이 있는 것이죠. 훌륭한 것이죠.
하나님께서 별미를 양의 고기로 만들어서 드리게 하고 드디어 그 축복을 야곱이 받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 이렇게 말합니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야곱은 본질적으로 축복을 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손을 어린양의 가죽으로 덮어서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모든 축복은 내 행위나, 내 노력이나, 내 인간됨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덮어서 그 손으로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신비한 비밀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는 것도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어린양의 피로 덮어서 드려야 그 제물이 하늘에 이르는 것이고 하나님의 은혜도 나의 인간됨의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죄사함의 은혜도 어린양 예수의 피로 덮어서 죄사함 받는 것입니다. 이 신비한 은혜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별미에 대한 깊은 뜻을 발견하고 이 은혜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별미는 우리의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명절 설 때도 음식을 만들 때 정성을 다 해야 합니다. 정성을 들여야 됩니다. ‘우리 어머니에게 정성을 다해서 드려야지’ 이것이 복받는 자세입니다.
여기에서 야곱이 축복을 받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그는 장자의 축복을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장자라는 것은 인간적인 장자에 대한 얘기가 아닙니다. 야곱이 장자가 되어서 무엇을 받을 것이 있습니까 땅 상속을 야곱은 욕심내지 않습니다. 그러면 야곱이 장자의 상속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그 하나님에 대한 장자입니다. 하나님의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는 장자됨에 대한 의욕입니다. 이것이 야곱이 받아내는 축복의 비밀입니다. 이 복은 신령한 복이며, 가장 큰 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이런 면에서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세상의 축복도 받아야 됩니다. 그러나 먼저 우리가 받아야 할 축복은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을 크게 받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늘나라에 가면 하나님으로부터 ‘네가 큰 자다’ 이렇게 인정을 받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서는 팥죽 한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면서 ‘내가 배고파 죽겠는데 장자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배고프다고 죽는 것입니까 그렇게 사람이 망령되었습니다.
우리가 조금 어려우면 ‘내가 죽게 되었는데 사업이 안되어 죽게 되었는데 무슨 예배야, 무슨 다락방 예배야’ 그럽니다. 혹시 이런 생각이 들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배고픈 처지에 예수가 무슨 소용이 있어” 그런 사람과 똑같은 것입니다. “내가 세상 살기가 어려운데 교회가 무슨 소용이 있어” 혹시 이런 말을 하는 분이 있으면 이런 말은 절대로 입밖에 내지 마십시오. 교회에 가자고 하니까 “사업도 안되는데 무슨 교회를 가” 그럽니다. 사업은 안되어도 주일은 지켜야 됩니다. ‘우선 먹고 보자. 먹는 것이 큰 것이다.’ 이것은 에서주의입니다. 하루벌이와 같은 팥죽 한그릇에 주일도 잊어버리고 십일조 생활도 잊어버리고 산다면 에서의 망령된 근성이 우리 속에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내 믿음이 커야지’ 이런 생각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은혜가 커야지, 충성이 커야지, 바치는 일에 장자가 되어야지’ 이런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의 마음입니다.
장자의 명분을 내던지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육신의 정욕에 매인 자요, 일시적으로 세상것에 헤매이는 타락한 자의 본성입니다. 예수 없는 인생은 망한 것입니다. 예수 없는 사업도 망한 것입니다. 잘되고 못되고 물어볼 것 없습니다. 예수 없는 인생을 살아서 뭐가 남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에서의 저주입니다.
야곱의 축복은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장자의 축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의 큰 은혜의 축복입니다.
두 번째로 야곱이 축복을 받는 비밀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를 가까이 모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항상 어머니를 따라 가까이 있었는데 에서는 들사람이라 들에서 많이 살았습니다. 야곱은 집에서 어머니 말을 잘 순종했습니다. 장막 사람입니다.
자식이 어머니 말씀을 순종하는 자식은 장래가 있습니다. 어머니 말씀을 순종하는 자식이 아버지 말씀에 불순종하겠습니까 연약한 여인인 어머니 말씀을 순종하는 자식은 아버지 말씀에 절대순종합니다. 그래서 야곱이 장막 곁에서 어머니의 교훈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머니 얘기를 통해서 아브라함 할아버지의 얘기를 듣습니다. 모리아산상의 얘기를 듣습니다. 아버지 이삭을 기적적으로 할아버지가 백살에 낳았다는 얘기를 듣습니다. ‘우리 가문은 보통 가문이 아니구나!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비록 세상의 능력도, 권세도, 재주도 없지만 하나님이 세운 위대한 분이구나! 그 분의 위대한 신앙을 내가 받아야지’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과 교훈을 장막 곁에 있는 야곱이 어머니를 통해 받습니다.
신령한 의미로 교회는 어머니와 같다고 말합니다. 성자 크리소스톰은 말하기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면 교회는 어머니와 같다.”고 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 품속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받으며 자란 자식이 평화롭고 미래가 비젼이 있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도들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다고 한다면 거룩한 성전에 와서 그 품에서 살아야 됩니다. 교회에 올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할 때 하늘문이 열립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할 때 하나님이 음성을 듣습니다. 여기에 와서 예배를 드릴 때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습니다. 이것이 야곱이 축복을 받는 비밀을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어제는 제수가 조카를 데리고 저를 찾아와서 “목사님, 목사님은 형제들 중에 부모님에게 좋은 것은 다 받으셨죠. 형제들 다 보니까 부모님을 뵙지는 못했지만 부모님으로부터 좋은 것을 다 받은 것 같아요.” 그래요. 그래서 제가 형제들이 다 똑같이 받았다고 했습니다.
형제들이 아버지 성품, 어머니 성품을 다 받았는데 똑같이 받은 것이 있는데 자존심을 받았습니다. 자존심을 받아서 절대로 남에게 가서 아쉬운 소리를 못합니다. 그래서 어디에 가서 비위 맞추면서 상대에게 접근해가는 것을 못하기 때문에 제가 공무원이 되었다고 한다면 출세하기는 틀린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친구 사귀는데는 헛점이 많습니다. 저는 친구를 잘 사귈 수 있는 성격이 못됩니다. 친구를 못사귀니까 한 분을 사귀게 도었습니다. 예수님을 사귀었습니다. 거기에 생명을 걸었습니다. 세상 친구들 만나기 싫으니까 예수에게 생명을 걸고 거기에 정열을 쏟아서 저서를 만들고 작품을 만듭니다. 이것이 저 자신을 복되게 했습니다.
또 하나는 어머니를 볼 때 어머니는 부지런하셨습니다. 똑같이 다 형제들이 성품을 받았는데 부지런한 집념을 받아가지고 저에게 큰 복이 되었습니다. 아버님에 대하여 자녀됨에 대한 감사를 했고 어머님에 대하여 자녀됨에 대한 감사를 했습니다. 이것은 제가 생각해봐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징조였습니다. 아버님이 술 취하고 방탕해도 절대로 원망을 안했습니다. 자식됨의 도리를 다 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저에게 하나님의 종 되라고 한 번도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너는 돈을 벌어야 한다. 부자가 되어야 한다.” 너무 가난하게 사니까 내 말년을 좀 편하게 해 달라는 것이 어머니의 소원이셨습니다. 어머니는 나에게 한 번도 하나님의 종 되는 것에 대해서 기도해 준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어머님이 내가 하나님의 종이 되도록 축복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눈물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눈물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종이 눈물을 받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교회를 보고 울고, 세상을 보고 울고, 하늘을 보고 울고, 땅을 보고 울고 울 수 있는 마음을 주셨으니 얼마나 큰 복이겠습니까
축복이라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곁에서 어머니의 이치나 말씀이 유치할지라도 교훈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을 교훈으로 받았습니다. 어머니를 무시하는 자식은 장래가 없습니다. 세상은 성공했을지 모르나 분명히 그 속에는 하늘의 이치를 거스렸습니다.
그런데 여기 야곱은 놀라운 축복을 받아냅니다. 아버지로부터 축복을 받으려고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축복을 부모로부터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식됨의 도리입니다. 부모가 이 자식을 원망한다든지 자식을 싫어한다든지 그 자식에 대하여 마음에 맺힌 한이 있으면 이미 축복은 없습니다. 무슨 축복이 없느냐? 땅에서 재산을 모을 수 있는 복은 있을지 몰라도 하늘의 복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복은 부모에게 효도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야곱은 부모에게 대한 축복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이삭의 하나님, 그래서 이삭이 축복하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받습니다.
주의 종에게 대하여 언제나 축복을 받으리라는 생각을 가지십시오. 주의 종에게 음식을 대접할 때 ‘아부하네’ 그럽니다. 주의 종에게는 아부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 가서 아부하는 것이지 주의 종에게 아부해서 뭐 나올 것이 있습니까
제가 설 때 마음으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나에게 자녀들을 세배하러 보내면 좋겠다 그러면 내가 축복해줄텐데’ 세배하러 온 아이들에게 축복을 했습니다. 주의 종이 부족하고 허물된 것이 있지만 인간적으로 보지 마십시오. 하늘의 축복을 나에게 주기 위해서 하나님의 종으로 세웠다고 생각하십시오. 사석에서, 공석에서 주의 종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부모님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자식됨의 도리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도 하지 마십시오. 어떤 경우에도 주의 종을 원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자기의 축복을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함께 하고 있지 않습니까 야곱은 여기에서 자기 아버지를 하나님의 종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저는 가끔 교인들이 저에게 무릎을 꿇고 “저에게 축복해주시죠.” 그러면 제가 두려운 마음으로 축복합니다. 부족한 것을 아니까요. 그러나 하나님의 종으로 믿기 때문에 복을 받는 것이지 인격적으로 훌륭해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네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 주의 종을 선대하라, 네 남편에게 순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남편을 거스리는 아내는 복이 없습니다. 여자는 모든 축복이 남편으로부터 옵니다. 남편이 머리요, 아버지가 머리요, 주의 종이 머리니까요. 머리를 건드리면 몸이 망합니다. 남편이 못났어도 위해주십시오. 자존심을 상하게 하지 마십시오. 남편을 건드려 놓으면 자기는 천해집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축복의 원리를 알았던 야곱이 세 가지 축복을 받아내고 맙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로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28절)
이것은 하늘과 땅의 모든 복을 다 부어주겠다는 것입니다. 팔레스틴에서는 이슬이 농사에 많은 영향을 줍니다. 그것은 지중해에서 서풍에 의해 밤중에 내리는 것인데 뜨겁고 비가 적은 팔레스틴의 여름에 이슬은 농작물에 매우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슬이 내려야 농사를 짓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요와 즐거움을 함께 주는 것입니다. 포도주는 마시고 즐겁게 살라는 것입니다. 부요를 누리면서 즐겁게 살라는 것입니다. 이 복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그에게 축복합니다.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미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29절) 이것은 ‘너는 어느 곳에 가든지 머리가 되고 다스리는 자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네게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네게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 이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예수를 믿는 자는 축복을 받을 것이고 예수를 거역하는 자는 망할 것을 그의 믿음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에게 하나님을 잘 믿는 축복을 약속하는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함으로 내가 받는 축복이 당장 무엇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을 잘 믿는 축복을 주십니다. 두 번째로 남편을 잘 섬김으로 받는 복이 뭡니까? 예수 잘 믿는 복을 받습니다. ‘회사에 가서 상전을 섬기되 주께 하듯 하라, 주의 종을 섬기되 주께 하듯 하라’ 이것이 바로 복받는 비밀입니다.
주님을 계속 섬기는 분이 누구입니까? 천사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를 하나님처럼 받드는 자식은 뭐가 됩니까? 천사같은 자녀가 됩니다. 자기 남편을 주님 보듯 섬기고 있으면 천사같은 아내가 됩니다. 목사를 주님 보듯 보고 있으면 천사같은 교인이 됩니다. 회사에 가서 윗사람을 주님을 보듯 섬기면 자기는 천사같은 사람이 되기 때문에 천사로 봅니다.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주님을 섬기듯 하고 있으면 자기가 천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은 천사같은 사람이 되어서 우러러 하늘을 보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늘이 보낸 자식, 하늘이 보낸 아내, 하늘이 보낸 교인은 그리스도인의 최대의 영광입니다. 이 복을 야곱에게 약속하십니다.
‘만민이 너를 섬긴다’ 이것은 우러러 본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이 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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