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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 (신명기 : 28:1-2)고)이중표 목사

by 【고동엽】 2022. 1. 3.

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는다! (신명기 : 28:1-2)고)이중표 목사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저마다 소원을 가지고 삽니다. 그 소원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마음의 소원은 복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모두 다 마음속에 '내가 복있게 살아야지' 이렇게 생각합니다.
복은 쉽게 생각한다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받는 것입니다. 또 다른말로 말하면 땅에서 잘 사는 것을 복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복받기를 원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은 복의 개념을 다섯 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첫째는 장수하며 사는 것, 두번째는 부자로 사는 것, 세번째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받으며 사는 것, 네번째는 평생 사는 동안 근심없이 마음의 평강을 누리고 사는 것, 마지막으로 죽을 때 편안하게 죽는 것, 이것을 오복이라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이것은 다 땅에서 받는 현세적인 복이고, 땅 위에서 영화를 누리는 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복을 그렇게 끝내지 않고 영적인 내면적 복을 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것을 복이라고 말합니다.

첫째, 순종은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복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면 존재의 복과 소유의 복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소유의 복은 땅에서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무엇인가 갖고, 누리고, 소유하는 복을 말합니다. 그러나 존재의 복은 내면적인 복인데 이것은 인격적 복이라고 말합니다. 삶의 보람, 의미, 가치, 이 땅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 이런 것을 추구합니다.
일반적인 사람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이고,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복을 추구하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내면적이고, 영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을 추구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것이 복입니다. 내가 아무리 원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는 것은 복이 아닙니다. 그러나 내가 원치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주셨다면 이것은 내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시는 복에 대하여 성경은 한 마디로 말하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자가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28장은 인간의 복과 저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에게 선포해 주고 있습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2절).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면 모든 복을 다 받는데 무슨 복을 받느냐?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이시요, 하나님 자신이 복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다 받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한다는 말은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곧 내게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네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3-5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이것은 그가 어디에 있든지 다 자기에게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복있는 사람은 그 자녀들도 복을 받고, 그 사람이 농사를 지으면 농작물도 복을 받고, 더 나아가서 모든 축산물이 복 받고, 이것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식탁에 먹는 것이 다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복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순종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한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안에 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내 삶 전체에 복이 되는 것입니다.
순종은 하나님을 모시는 최고의 신앙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성경 가운데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므로 복을 받은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장래에 기업으로 받을 땅에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하나님께 순종하므로 나아갔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한 은혜를 주셨습니다. 또한 요셉을 인하여 보디발의 집에도 복을 주셨습니다.
복있는 사람이 되면 나 때문에 다른 사람도 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복없는 사람이 되면 다른 사람도 복이 없습니다. 복없는 남편 만나면 가족들이 복이 없습니다. 복없는 사람과 동업하면 함께 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있는 사람과 같이 다녀야 됩니다.
복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없으니까 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감옥에 가면 감옥이 복이 됩니다. 예수님과 함께 죽으면 복이 됩니다. 다시 부활하니까요.
예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복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은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복을 다 상실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복을 잃어버린 인간들에게 복을 주려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에덴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복을 주신 최고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한 가지를 명령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아담에게 이르시되 이 모든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이것은 "선악과가 무엇을 의미하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라는 계명을 주는 것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안따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아담은 불순종했습니다.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9)
'죄인이 되었다'는 말은 복을 다 상실했다는 말입니다. 죄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복없는 자입니다. 예수님은 순종하므로 의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모든 복을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순종 자체가 축복입니다. 왜? 순종하므로 하나님을 모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복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열으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12-13절)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자에게 복을 주시는데 그 복이 남에게 꾸어주고, 위에 있고, 머리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내가 땅에서 부요하고, 지도자가 되고, 그리고 존경받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복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 '꾸어준다'는 말은 고리대금, 변리, 돈 꾸어주고 이자 받는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남에게 줄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또 더 나아가서 머리가 된다는 말이 무슨 말입니까? 지도자가 된다는 말입니다. 지도자는 남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회사 사장은 직원들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아버지는 가족을 살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면 성읍에서 복을 받고, 들에서 복을 받고, 들에서 복을 받고, 소생이 복을 받고, 농산물이 복을 받고, 가축이 복을 받고, 떡반죽이 복을 받아서 뭐하라는 것이냐? 남에게 주고, 남을 위해 쓰고, 남을 살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 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복은 있지만 쓰는 복은 못받습니다. 버는 것은 말씀에 순종하지 않아도 벌 수 있지만 쓰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든지 하나님 말씀에 관계없이 벌어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쓰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쓸 수 있습니다.

둘째, 순종은 최고의 섬김이 됩니다.
순종은 자기를 부정하고 자기를 쳐서 복종시켜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눅 9: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죽이고 자기를 부정해야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순종은 인격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순종은 자기를 부정한 겸손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순종으로 이루신 최고의 겸손이 십자가의 죽음이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자식이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반항하고 불순종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하는 것은 겸손입니다. 아무리 자기가 똑똑하고, 잘나고, 남편이 모자란다 할지라도 "아내들이여, 네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은 겸손입니다. 회사나 직장에 가서 윗 사람에게 순종해 주는 것은 자기 인격의 겸손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은 순종하므로 지위가 낮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 위치가 달라집니다. 하늘에 속한 자가 됩니다.
한국 교회사에 잘 알려진 일화가 있습니다. 순종의 본을 보인 조만식 장로님과 순교의 본을 보인 주기철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어느날 조만식 장로님이 기도 순서였는데 그날 따라 예배시간에 조금 늦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장로님, 예배시간에 늦었습니다. 그 자리에 서 계십시오." 장로님은 목사님의 말씀을 겸손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당시에는 교회 바닥이 나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모두 다 앉아 있는데 장로님은 가방 들고, 구두 들고, 종절 모자 들고 서 있습니다. 설교가 끝난 후에 주기철 목사님이 "장로님, 기도하시죠." 할 때 장로님이 "하나님 아버지,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주일 성수를 온전히 못해서 주의 종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나이다. 이 죄인을 용서하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그런 장로님을 보고 모든 교인들이 은혜를 받게 되었고 장로님을 더욱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그 장로님에 그 목사님입니다. 장로님 때문에 목사님이 순교한 것입니다.
조만식 장로님은 주기철 목사님이 오산중학교 다닐 때 교장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런데 주기철 목사님이 마산 문창교회에 있을 때 조만식 장로님이 목사님을 산정현 교회로 모시기 위해서 갔습니다. 그때 주기철 목사님은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장로님, 장로님은 제 은사님 아니십니까 제가 어떻게 그 교회에 가서 목회합니까?" 하지만 장로님은 포기하지 않고 목사님 앞에 무릎을 딱 꿇고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그때는 제가 교장이었지만 지금은 장로입니다. 목사님을 잘 섬기고 순종할테니 저희 교회로 와 주십시오. 산정현 교회를 살리는 것은 한국교회를 살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주기철 목사님은 산정현 교회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제가 시골교회에서 목회할 때 이웃 교회에 젊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6월달이면 시골은 농번기라 아주 바쁩니다. 장로님 한 분이 예배시간에 늦었습니다. 목사님이 "장로님 서 계십시오." 하니까 장로님이 서 있습니다. 교인들은 불안합니다. "장로님 기도하십시오." 하니까 "못해" 하면서 "젊은 목사가 나를 무시했으니 나 교회 안다닌다" 하고는 6개월 동안 교회에 안나갔습니다. 그 일로 인해 목사님은 그 교회를 사임하게 되었습니다. 그 목사님이 저를 찾아와서는 교회에 사임서를 제출했다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왜 그랬느냐"고 했더니 "주기철 목사님의 전기를 읽고서 자기도 한번 해보았노라"고 그래요. 그래서 제가 "여봐 그런 것도 사람봐서 해야지 아무한테나 하면 되나? 조만식 장로님은 겸손한 분이라 순종했지만 그 장로님은 안돼"
순종은 인격의 표현입니다. 자기 인격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순종입니다. 순종이란 말은 헬라어로 '휘파쿠오'라는 말인데 '아쿠오'는 듣는다는 뜻이고 '휘파쿠오'는 엎드려 듣는다, 아래에서 듣는다는 뜻입니다. 순종은 겸손의 표현입니다.

셋째, 순종은 자유인의 승리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1절)
여기 '듣는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쉐마'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한다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순종이라는 말은 '쉐마' 듣는다는 데서 나온 말입니다.
순종에는 세 가지 태도가 있습니다.
첫째, 무서워서 순종하는 노예 순종입니다. 이것은 순종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까 해서 억지로 하는 순종입니다.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 6:5-7)
둘째, 보상 때문에 하는 순종입니다. 이것은 삯을 받기 위해서, 보상을 받기 위해서 하는 순종입니다.
셋째, 자원적 순종입니다. 이것은 기쁜 마음이나, 존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서 하는 순종입니다. 자원하는 마음의 순종은 마음에 평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순종은 마음의 평안, 양심의 자유, 그리고 그 마음의 승리라고 말합니다.
성 프랜체스코가 농사 일을 하고 있는데 젊은 청년 두 명이 수도사가 되겠다고 찾아왔습니다. 마침 프랜체스코가 배추 모종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두 청년에게 모종을 주면서 "이 배추를 심되 거꾸로 심어라. 뿌리를 하늘로 하고 줄기를 땅으로 하여 심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한 지망생은 "선생님이 말씀한 것이니 그렇게 해야지" 하고는 거꾸로 심었습니다. 그러나 한 지망생은 한참 심다가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구나!' 하고 자기 생각대로 심었습니다. 프랜체스코가 저녁에 나와서 보고는 거꾸로 심은 사람은 수도사로 뽑고 합리적으로 하겠다는 사람은 돌려보냈습니다.
상식에 맞느냐 안맞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누가 말했느냐가 중요합니다. 순종한 청년은 프랜체스코의 인격을 믿은 것입니다. 그러나 불순종한 청년은 프랜체스코의 인격을 무시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불순종하면 교제가 단절됩니다.

넷째, 순종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릅니다.
순종은 상대를 행복하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부모에게 순종할 때 부모를 영광스럽게 합니다. 국민이 국가에 복종할 때 자기 나라를 영화롭게 합니다. 학생이 자기 스승에게 순종하고 그의 가르침을 따를 때 그 스승을 영광스럽게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므로 남편을 영화롭게 합니다. 예수님은 순종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최고의 섬김이요, 영광입니다.
어느 도시에 한 효자가 있었습니다. 농촌에 효자가 있다는 말을 듣고는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마침 아들이 산에서 나무를 하고 집에 돌아오자 노인 어머님이 나가서 지게를 받쳐주고 아들을 마루에 앉히더니 세수 대야에 물을 떠다가 아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입니다. 그러자 도시 효자가 그것을 보고 속으로 '저런 불효자가 있나 노인네가 발을 씻기는데 발을 닦으면서 가만히 앉아 있다니... 저럴 수가 있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머니가 아들의 발을 씻겨주고 방으로 들어가자 도시 효자가 물었습니다. "어떻게 아들로서 어머니에게 그런 수고를 끼칠 수 있습니까" 그때 농촌 효자가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나도 편치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어머니께서 그렇게 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내가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도시 효자는 회개했습니다. '나는 어머니에게 효도한답시고 어머니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구나!'
우리가 순종한다는 것은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이 뭡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그가 순종할 때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사람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그 앞에 무릎을 꿇게 하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이 순종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자녀들아 네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그 순종이 하나님께 이르는 것입니다.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순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아내들이여, '남편에게 순종하라'고 하니까 자존심이 상하십니까 자존심 상할 필요 없습니다. 남편에게 순종하되 주께 하듯 하면 아내는 천사가 됩니다. 남편의 아내에서 주님을 섬기는 천사로 바뀝니다. 그리고 순종할 때 남편이 아내를 우러러 보게 됩니다. '내 아내는 내 아내가 아니야 하늘이 보낸 천사지'
"종들아 상전에게 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신분으로 말하자면 종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심정으로 일할 때 그는 하늘이 파송한 천사가 됩니다. 그래서 상전이 우러러 보게 됩니다. '저 사람은 내 종이 아니야 하나님의 사람이지' 자식이 부모에게 최선을 다해서 순종할 때 부모가 무슨 생각을 하는 줄 압니까? '저 자식은 내가 낳은 자식 같지가 않아' 그럽니다. 하늘이 보낸 자식이 됩니다. 그 말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순종하십시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1절)
이번에 월드컵 축구로 한국의 위상이 세계인을 놀라게 했습니다. 여기에는 히딩크 감독의 공이 컸습니다. 히딩크 감독은 선수를 선발할 때 감독의 말에 순종하고 열심히 따르는 선수를 선발했습니다. 재능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고집부리지 않고 경력 내세우지 않고 무조건 감독 말에 순종하는 선수를 잘 훈련시켜서 그들의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시켰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해서 지켜 행하는 사람은 하늘나라 생명록에 그 이름이 기록될 것이요, 역사에 찬란하게 빛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것입니다.

출처 :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글쓴이 : 박종태목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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