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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분이 서열인가?*이재철 목사

by 【고동엽】 2021.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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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좋다오

 

직분이 서열인가?
글/이재철 목사
주님께서 안디옥 교회의 바나바와 사을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세계 선교의 사명을 맡기신 성경 말씀입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도I,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 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
내심을 받아,실루기아에 내려가 거기서 배 타고 구브로에 가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
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사도행전 13장 2〜5절 말씀
선교팀의 구성원은 바나바와 사울 그리고 수행원 요한이었습니다. 이들 중 바나바의 이름이 가
장 먼저 나타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의 이름을 기록할 때 서열을 매우 중시하여, 반드시
직책 록은 연령순으로 기록합니다. 이 원칙에 의하면 가장 먼저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바나바가
이 선교팀의 우두머리 였습니다. 당시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의 담임목사였음을 감안하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습니 다. 그들은 안디옥에서 가까운 항구 실루기아에서 배를 타고 구브로로 건너갔
습니다.
구브로는 현재 지중해의 사이프러스 섬으로, 팀장인 바나바의 고향이었습니 다. 구브로의 동쪽
항구 살라미에서부터 복음을 전하기 시작한 그들은, 섬을 횡단하여 서쪽 항구 바보에 이르렀습
니다. 소아시아 반도, 즉 현재의 터키로 향하는 배를 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그들 사
이에 중대한 변동 사항이 있었음을 성경이 밝혀 주고 있습니다.
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사도행전 13장
13절 전반부
선교여행 중에 사울의 이름이 로마식 이름인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이때부터
성경이 선교팀을 '바울과 동행하는 사람들'이라고 표헌한 것입니다. 더 이상 •바나바와 그의 동
행'이 아니었습니다. 이 이후로 계속 바울의 이름이 바나바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것
은 팀장이 바나바에서 바울로 변경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첫 번재 기착지인 구브로의 살라미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안디옥 교회의 담임목사인 바나바가 팀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구브로 섬을 동서로 횡단하는 선교 현장에서, 바울의 능력이 바나바보다 더 두드러지게
나타난 것입니다. 교회 목회에 관한 한 바나바의 능력이 앞섰지만,선교 현장에서는 바을이 더욱
탁월하였습니다. 이에 바나바는 아무 거리낌 없이 바울에게 팀장의 역할을 넘겨주었습니다. 그
가 지켜야 할 것은 복음 전파의 사명이었지 자신의 직책이나 명예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이때, 바나바가 계속 우두머리 역할을 고집했더라면, 그들의 첫 번째 선교여행은 두 사람간의 심
각한 갈등으로 인해 결국 파국을 맞고 말았을 것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른히 서열이 바뀌는 수가 있습니다. 요즈음과 같은 서열 파괴의 시대에서는,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때 상사를 추월한 사람은, 승진의 기쁨을 만끽하겠지만, 거꾸로
추월당한 사람은,그 상황 자체를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이것은 교회
생활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자신보다 늦게 등록한 사람이 장로나 권사로 피택될 경우, 시험에
빠지거나, 심한 경우에는 아예 교회를 옮기는 자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구브로의 매듭을 맺는 자라야 합니다. 구브로에서의 바나바처 럼
직책이나 역할에 연연해서는 안됩니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을
이 고린도를 떠난 뒤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했는데,그 중의 하나가 심각한 파당 싸움이었습니다.
스스로 바울 파, 게바(베드로)파, 아볼로 파, 그리스도 파로 나뉘어, 비난하고정죄하면서 서로 높
아지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였습니다. 그 사실을 전해 들은 바울은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향해 다
음과 같은 글을 썼습니 다.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글로에의 집 사람들이 여러분의 소식을 전해 주어서, 나는 여러분 가운데
에 분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름이 아니라, 여러분은 저마다 말하기를 '나는 바울
편이다", "나는 아볼로 편이다", "나는 게바 편이다", "나는 그리스도 편이다" 한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갈라지셨습니까? 바울이 여러분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기라도 했습니까? 또는,
여러분이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_고린도전서 1장 11〜13절 말씀 (표준새번역)
아볼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입 니까? 아볼로와 나는 여러분을 믿게 한 일꾼들이며,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각 맡겨 주신 대로 일하였을 뿐입니다. 나는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
나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
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고린도전서 3장 5-7절 말씀 (표준새번역)
자신이 세운 교회임에도 바울은 자신을 고린도 교회의 우두머리로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자신
은 단지 하나님의 일꾼일 뿐이며, 교회를 교회 되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하였
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인 우리를 마치, 사형수처럼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없는 사람들로 내놀으셨습니다. 우리는 세계와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
거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지만,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
에서 지혜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약하나, 여러분은 강합니다. 여러분은 영광을 누리고 있으나. 우리는 천대를 받고 있습
니다. 우리는 바로 이 시각까지도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얻어맞고, 정저 없이 떠돌아다닙니
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일을 하면서,고된 노동을 합니다. 우리는 욕을 먹으면 도리어 죽복하여
주고. 박해를 받으면 참고, 비방을 받으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쓰레기저럼
되고, 이제까지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내가 이런 말을 쓰는 것은,여러분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나의 사랑하는 자녀들같이
툰계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는 일만 명의 스승이 있을지 몰라도, 아버지
는 여럿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내가 여러분을 낳았습니다. 그러므
로 나는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고린도전서 4장 9〜16절
말씀
바울은 우두머리 노릇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자신이 사랑해야 할 사람들을 위해, 그들 밑에서
쓰레기와 찌꺼기 같은 삶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역시 구브로의 매듭을 지닌 자였던 것입
니다. 바울은 서로 높아지려고 다투는 고린도 교회 교인들을 향해, 자신을 본받아 상대를 위해
쓰레기와 찌꺼기 같은 역할도 감수할 수 있기를 다시 말해 구브로의 매듭을 기꺼이 맺기를 당부
하였습니다. 구브로의 매든을 지닌 자만 인간관계에서 자신을 내세우지 않고, 주님께서는 자신
을 내세우지 않는 자를 통해서만 온전히 역사하십 니다. 주님의 제자들 역시 서로 높은 자리를 자
지하기 위해 다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주님게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곁에 불
러 놀고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
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위
하여 자기 목숨을 몸값으로 치러 주려고 왔다." •마태복음 20장 25니8절 말씀 (표준 새번역)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것 역시 한마디로 구브로의 매듭이었습니다. 남보다 높은 자리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 자는, 일생토록 수없이 많은 사람을 짓밟을 수밖에 없기에, 그런 자는 진
정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갈 도리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자리나 직책에 연연하셨다면, 결코
우리의 구원주가 되실 수는 없으셨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을 위해 쓰레기나 찌꺼기보다
못한 십자가의 죽음을 개의치 않으심으로, 우리 모두를 살리시는 생명의 포도나무가 되셨습니
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요한복음 15장 1절 말씀
생명의 상징인 포도나무를 비롯하여, 모든 나무의 특징은, 제일 굵고 오래된 가지의 순서로 밑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굵고 오래된 나뭇가지들이 윗 자리를 탐한다면, 그 무게를 이
기지 못한 나무는 이내 꺾어지고 말 것입니다. 나무가 생명의 열매와 그늘을 제공하는 거룩이 될
수 있는 것은, 강하고 굵은 가지들일수록,밑에서 윗가지들을 든든히 지탱해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포도나무에, 그리고 우리를 그 가지에 비유하셨습니다.
따라서 크리스천인 우리의 사명은 높은 자리를 쟁취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을
믿는 백성에게 어떤 직책, 어떤 자리, 어떤 상황을 주시든, 누군가를 위한 밑가지로 살아가는 데
우리의 사명이 있습니다. 스스로 누군가의 밑가지가 되는 구브로의 매듭 위에서, 우리는 높은 직
책으로도 교만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낮은 직책에서도 비굴함이 없이 생명을 일구는 주님의 일
꾼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때 밀가지인 우리를 주님께서 친히 높이십니다. 마지 우리 생명의 밑가지 되신 주님을 하나님
께서 영원한 부활주로 높이시고, 구브로의 매듭을 맺은 바나바와 바울을 주님께서 영원토록 높
이신 것저럼 말입니다. 역사상 스스로 남의 윗자리를 차지하려 했던 자 중에 후세 사람으로부터
진정한 존경과 사랑을 받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후세인의 존경과 사랑의 대상은, 하나같이 이
타적 삶을 위해 자리나 직책에 연연해하거나 집착하지 않았던 자들입니다. 그것이 주님의 법칙
이요, 우리는 그 법칙을 믿는 주님의 제자들입니다.-이재철 목사의 저서 '매든짓기’中
예수가좋다오
글을 보시고 스크업 하시기 전에 그냥 가지 마시고 y글로 따듯한 소갑으로 갑사플 표하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출처 : ╋예수가좋다오
글쓴이 : (一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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