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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신비로운 선택

by 【고동엽】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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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신비로운 선택 행10:34~43 인터넷설교 녹취

 

‘선택’ ... 딱딱한 주제이지만,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어봅시다.

고넬료 집에 가서 설교한 베드로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선택>을 강조했는데요...

 

 

☆관련 설교: 선택 -클릭- ☆관련 예화 -클릭-

 

 

◑미리 선택하신 은혜

 

▲특별히 선택받은 사실을 강조한 베드로의 설교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초대되어 가서, 설교할 때,

주님께서 11제자들을 선택해 주셨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행10:41

 

부활하신 후에 주님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당신을 나타내 보여주신 것이 아니었다.

고작 11명의 제자들에게만 당신을 나타내 보여주셨다.

 

후에 사도바울은 고전15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이 약 5백 명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 5백여 명의 숫자 또한 이스라엘 전체에 비하면 미미하다.

더욱이 5백 명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과 직접 식사를 나눈 사람은 11명뿐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이야말로 주님으로부터 특별한 선택을 받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미리 택하신’

‘택하신’의 헬라어 동사 케이로토네오는.. 손을 내밀어 선택해 올리는 것인데,

그저 아무렇게 팔을 내밀어 손에 잡히는 것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들 가운데 특별히 지목해서 뽑아 올리는 것을 뜻한다.

그런 식으로 12 제자들을 뽑아 선택하셨다.

 

거기에 ‘미리’를 뜻하는 접두사 ‘프로’가 붙어 있다.

그래서 프로케이로토네오는.. ‘미리 선택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주님을 알기도 전부터

베드로를 미리 당신의 손을 내밀어 지목하시고 선택해두고 계셨던 것이다.

 

▲베드로는 자기를 선택하신 현장을 이렇게 설명한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저희가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마4:18~20

 

그 때에 베드로만 갈릴리 어부였던 것은 아니었다.

길이 21킬로, 넓이 12킬로에 달하는 갈릴리 호수 주위에 살고 있던 남정네들은

거의 모두가 어부였다. 당시 갈릴리는 온통 어부 천지였다.

그 많고 많은 어부들 가운데, 유독 베드로를 지목하여 선택해 내셨다.

 

병행구절인 눅5:1~11에도 예수님이 베드로와 만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날 거대한 인파가 주님 앞에 몰려왔다.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쌔 5:1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베드로는 결코 돋보이는 존재가 아니었다.

베드로는 전날 밤, 밤이 새도록 고기잡이에 완전 실패하고 기진맥진한

초라하고 볼품없는 인물이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당신 앞으로 몰려온 그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가장 초라하고 볼품없는 베드로에게 (고기가 가득 잡히는 기적을 베풀면서까지)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지목하여 선택해주셨다.

 

그 후 주님은 3년 동안 베드로와 함께하시면서 당신의 제자로 키우셨다.

 

▲하지만 베드로는 매사에 주님의 제자답지 못했다.

주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그 자리에서까지

주님을 외면하고 도망쳐 버리는... 믿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이 세상사람 가운데 믿을 수 없는 사람을, 자기 제자로 삼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곧 자기 자신에게 해害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은 믿을 수 없는 인간인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셨다.

 

부활하신 주님은, 당신이 먼저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부활하신 당신의 모습을 나타내 보여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베드로와 함께 식사까지 하시면서, 베드로를 확고한 당신의 제자로 세워주셨다.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미리 손을 내밀어 지목하신

당신의 제자로 <미리 선택>해 두셨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신비로운 선택

 

▲절대 주권적 선택

그러므로 갈릴리의 그 많고 많은 어부 가운데

가장 초라하고 볼품없는 베드로가 주님의 선택을 받게 된 동기와 이유는

결코 베드로에게 있지 않았다.

 

그것은 오직 주님에 의한 주님의 절대적인 (주권적) 선택이었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은 인간의 논리나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주님의 신비로운 선택의 결과였다.

 

제가 한번은 부산에 갔다가, 비가 와서 근처 편의점에서 우산을 구입했는데,

저는 그곳의 우산 가운데 <제일 좋은> 우산을 선택했다.

사람이 무엇을 선택할 때는, 가장 좋은 것을 골라서 선택한다.

 

반면에 주님은, 그 많고 많은 갈릴리 어부들 가운데

<제일 초라하고 볼품없는> 베드로를 선택하셨음을 감안한다면

주님의 선택의 그 신비로움은.. 도무지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다.

 

▲‘신비로운 선택’을 고넬료에게 설명한 베드로

이처럼 베드로는 신비로운 은총으로 당신을 선택해 주셨음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베드로였기에,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한 단어, 한 단어마다 주님의 신비로운 선택을 입은

베드로의 주체할 수 없는 감격이 넘쳐나고 있다.

 

여기서 간과해서 안 될 사실은,

이 고백은 베드로가 아무도 없는 골방에서 혼자 말한 자기 독백이 아니었다.

베드로는 이방인 고넬료 일행에게 복음을 설명하는 가운데

그와 같은 고백을 곁들였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특별히 자신을 선택해 주셨음을 과시하면서,

자신을 이방인 앞에서 과시하기 위해서였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자기 앞에 앉아 있는 이방인 고넬료 일행에게도

자신에게 임했던 은총과 동일한 은총이 임했음을

다시 말해 주님의 신비로운 선택의 손길이 그들에게도 임해 계심을

그들로 하여금 분명히 깨닫도록 해 주기 위함이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부활하신 예수께서 베드로를 도구삼아

이방인 고넬료 일행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을

주님 당신께서 친히 그들에게 계시해 주시기 위함이었다.

 

▲왜 하필이면 그들, 고넬료 일행이었을까?

이스라엘에 얼마나 사람들이 많았던가?

왜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다 제쳐놓고

유대인도 아닌 가이사랴의 이방인들이

주님의 그 신비로운 선택을 받게 되었을까?

 

거기에는 “왜?” 라는 질문이 제기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직 주님의 절대적인 신비로운 일방적인 은총이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이방인 고넬료 일행에게 분명하게 일깨워 주기 위해서

“그들 앞에서 미리 택하신 우리”를 강조했다. 행10:41

 

▲오늘날 나도 신비하게 선택받았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것은

2천년 이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서

오늘 이 시간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신비로운 선택의 손길이 임했음을

우리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함이다.

 

우리가 오늘 어떻게 구원받은 크리스천으로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는가?

두말할 것도 없이

갈릴리 어부 베드로를 주님께서 신비로운 방법으로 선택해 내셨듯이

이방인 고넬료 일행을 주님께서 당신의 손을 내밀어 선택해 불러내셨듯이

 

우리 각자도, 주님께서 당신의 손을 내미시어,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지목하여 선택하여 불러 내셨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얼마나 사람들이 많은가?

이 세상에는 아직도, 믿는 사람보다, 안 믿는 사람들이 더 많다.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 신비로운 손길을 내 미셨는가?

아무도 모른다.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굳이 찾는다면

신비로운 당신의 손길로 우리를 불러내신 주님께만 있다.

그래서 이 신비로운 선택의 손길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욱더 신비로운 것이다.

 

◑나의 신비로운 선택

 

이런 관점에서 본문 41절에 나타난 베드로의 고백은

-베드로의 고백일 뿐만 아니라

-이방인 고넬료 일행의 고백임과 동시에

-오늘날 나의 고백도 된다.

 

베드로가 “오직 미리 택하신 우리”라고 고백할 때

그 “우리” 속에는

-2천년 베드로와

-이방인 고넬료 일행과

-21세기를 살고 있는 내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

 

▲선택에 감격한 베드로.. 증인의 삶을 살다.

 

요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하셨다.

 

우리 신앙의 출발점이 어떤 경우에도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에게 신비로운 선택의 손길을 내 밀어 주신 주님께 있음을

주님께서 직접 분명하게 밝혀 주신 것이다.

 

내가 예수를 나의 주와 그리스도로 믿었다면,

그 이전에, 나를

신비롭게 선택해 주신 주님의 선택의 은총이 먼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정확하게 깨달았던 베드로는

자기에게 임한 주님의 신비로운 은총을

감사, 감격, 찬양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았다.

 

베드로는 본문 속에서 자신을 가리켜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이라고

자기 정체성을 밝혔다.

자기 자신은 갈릴리의 어부들 가운데서도 가장 초라하고 볼품없는 인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자신에게 신비로운 구원의 손길, 선택의 손길을 내미신 것은

자기를 믿으시고, 자신을 주님의 증인으로 쓰시기 위함임을

그는 바르게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본문 속에서 이방인 고넬료 일행 앞에서 뿐만 아니라

이후에 세상을 떠나기 까지 오직 주님의 증인된 삶으로 일관했다.

 

▲여기서 베드로를 나 자신과 잠시 비교해보자

베드로가 주님의 선택을 입기 이전까지

베드로는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정규교육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 일자무식인 갈릴리의 베드로에 비한다면 우리는 비교적 많이 배운 편이다.

 

우리가 무식한 베드로에 비해서 조금 더 많이 배웠기에

어쩌면 우리가 베드로보다 더 교묘하게 죄를 지어왔을 수 있다.

 

주님의 선택을 받을 때, 베드로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소박한 어부였다.

그 가난한 베드로에 비한다면, 우리는 최소한 베드로보다는 지닌 것이 많다.

 

가난하고 소박한 베드로보다 내가 지닌 것이 더 많기에

그 소유를 지니기까지 우리가 베드로보다

훨씬 더 자주 비양심적으로 살아왔을 수도 있다.

 

베드로가 주님의 선택을 입을 때, 그는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그렇다면 그 청년 베드로 보다 훨씬 긴 인생을 산 우리가

훨씬 더 많은 죄를 지어왔을 것이다.

 

베드로가 선택받은 것이 신비mystery라면,

내가 선택받은 것은 더 큰 신비요, 은혜라는 뜻이다.

 

▲베드로처럼 우리도 <증인>으로 살아야 마땅하다

우리는 늘 주님의 선택을 받기 이전의 베드로를

가난하고 무식한 인간으로 하찮게 여긴다.

그러나 주님 선택 이전의 베드로와 나 자신을 아무리 비교해보아도

주님 보시기에 베드로가 우리보다 더 나았으면 나았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다.

 

그 베드로가 자기에게 임한 신비로운 주님의 선택의 손길에 감격하면서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이란 자기 정체성 속에서

일평생 주님의 증인된 삶으로 일관했다면

 

그 베드로보다 훨씬 흉측한 삶을 산 우리는

우리에 대한 주님의 선택의 은총에 더 감격하고

더 더욱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살아야 마땅하다.

 

▲증인으로 살았던 어느 크리스천

제가 사랑하고 또 자랑스럽게 여기는 크리스천이 있다.

그 분은 젊었을 때 대기업의 중역을 지내셨다.

하지만 당시 그 분은, 그런 직임에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아파트에 살았다.

 

그 당시에 제가 그 집을 방문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목사님, 제가 마음만 먹으면, 이보다 훨씬 더 큰 집에 살 수 있습니다.

제 결제만으로 거래처에 지급되는 대금이 1년에 수 백 억원에 달합니다.

그러면 거래처로부터 사례비(리베이트)만 챙겨도.. 돈 버는 것은 간단합니다.

그러나 저는 가족과 함께 신앙양심을 지키면서

이 작은 집에서 사는 것이 정말 행복합니다.”

 

후에 그는 미국으로 이민을 갔는데, 미국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여전히 새벽에 주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써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는 그가

이렇게 말했다.

 

“예전에는 제가 다 쓰고 남은 자투리 시간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제가 가진 시간 중에,

가장 소중한 시간을 주님께 드리려고 노력합니다.”

 

얼마나 자랑스런, 신실한 주님의 증인인가?
이처럼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분이기에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이 분 주위 사람들이 새로워지고

주위사람들이 진심으로 이 분을 존경하고 사랑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는 이 분을 통해서

이 분을 선택하신 주님께서 친히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신비로운 주님의 선택

오늘도 우리 자신은, 내 필요에 의해서 여러 가지 물건을 구매하고, 선택한다.

예를 들면, 비가 올 때를 대비해서, 승용차에 비치해 둘 우산을

편의점에서 내가 선택한다. 내가 내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서 산다.

 

아마 나는, 같은 값이면 가장 품질이 좋은 우산을 살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구입한 우산이, 만약 제 기능을 제대로 발취하지 못한다면

주저 없이 그 우산을 내다버릴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 선택하실 때는

보잘것없는 나에게 신비스런 손길을 내밀어서 선택해 주셨다.

우리는 잘나서, 뭐가 돋보여서 선택된 것은 아니다.

전적인 은혜로 선택되었다.

 

주님께서 보잘것없는 우리에게, 신비스런 <선택>의 손길을 내미시고

우리를 주님의 <증인>으로 불러내신 것은

결코 ‘주님’을 위해서가 아니다.

‘나 자신’을 위한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베드로처럼 부족한 내가, 아니 베드로보다 더 부족한 내가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은,

나는 보잘것없지만, 우리를 선택해내신 주님께서 위대하시기 때문에

오늘도 나는 <증인>으로 사는.. 내 가치를 가장 극대화시키는 삶을 살아간다.

 

<인터넷설교 녹취 08.11.02. *원제목 : 미리 택하신 증인 [주제별 분류] 기독교 사상

 

출처 : 냉수 한 그릇
글쓴이 : 김지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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