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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였느냐 / 요한복음 18:33-38a

by 【고동엽】 2021. 1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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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하였느냐 설교자 이재철

말씀: 요한복음 18:33-38a


 

1분 1초를 다투는 현대사회에서, 떨어지는 모래로 시간을 측정하는 모래시계란 단순히 장식품이상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엉성한 모래시계가 주는 교훈만큼은 그 어떤 첨단 시계보다 더 지대합니다. 그것은 모든 시간에는 끝이 있다는 교훈입니다. 밧데리가 장착되어 있는 현대시계는 언제 그 밧테리가 다 소진되어 초침이 멎을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모래시계는 아래쪽에 쌓인 모래를 통해서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그리고 위쪽에 남아 있는 모래로는 남아 있는 시간을 한눈에 식별케 해 줍니다. 그렇기에 떨어지는 모래는 단순한 모래가 아닙니다. 그것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살아 있는 시간인 동시에, 지나간 모든 과거의 축적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생을 모래 시계로 비유할 줄 안다는 것은 크나 큰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손목시계의 초침은 쉬지 않고 끝없이 회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것만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역시 끝이 없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인생이란 끝을 알 수 없는 손목시계가 아닙니다. 분명히 그 끝이 있는 모래시계입니다. 또 한 주간이 흘러갔다는 것은, 모래시계 위쪽의 남아있는 모래가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말인 동시에, 아래쪽에 떨어진 모래가 일주일 만큼 더 늘어났음을 의미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아래쪽 모래가 늘어나면 늘어났지 위쪽이 늘어나는 법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흘러가는 시간은 단순한 시간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남아 있는 내 인생의 끝을 향해 나아가는 내 생명 그 자체인 동시에, 이미 지나온 내 인생의 실상이요 실체인 것입니다. 이것을 아는 자만 매 순간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할 수 있습니다. 지금 진리 안에서 바르게 행하는 자가, 모든 지금의 총집합인 자신의 인생을 바르게 세울 수 있고, 이 세상에서 생이 끝나는 순간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들께 묻겠습니다.

"지난 일 주일 동안 여러분들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 질문을 받고서 내가 지난 일주일 동안 무엇을 했었는지 선뜻 기억할 수 없는 분이 있다면, 사람마다 그 이유는 같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그 이유가, 여러분의 인생을 끝없이 돌아가는 손목시계로 착각하고 아무 의미없이, 생각도 없이 살았기 때문인 것은 아닙니까? 자신의 인생이 정녕 모래시계임을 깨달아, 그 모래시계의 끝을 보면서 일주일 동안 떨어지는 모래를 진리 안에서 자신의 생명을 담아 바르게 가꾸어 보내었더라면, 몇 달 혹은 몇 년 전도 아닌, 바로 지난 주간 동안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았었는지는 답변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들께 다시 묻겠습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여러분들께서는 무엇을 하셨습니까?"

적지 않은 분들이, 나는 지난 일주일 동안 이런 일들을 했었다고 정확하게 기억하며 답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들 중 행여라도 '나는 지난 일주일 동안 모든 것을 진리 안에서 바르게 행하였다'고 답할 수 없는 분이 있다면, 그것 또한 자신의 인생이 모래시계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인생이란 참으로 모래시계요, 떨어진 모래는 소멸되어 없어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 산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쌓여진다는 사실, 그리고 지금 떨어지는 모래를 바르게 가꾸어야만 이미 떨어진 모래 역시 바르게 축적되어 바른 인생이 구축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지난 한 주간도 살았던 사람이라면 최소한도, '나는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만 지난 한 주간도 진리 안에서 모든 것을 바르게 행하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는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빌라도 총독은 꼭두새벽부터 유대인들이 끌고 와 십자가에 처형해 달라고 고발한 예수님을 자신의 공관 안으로 불러 들였습니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33b)"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스스로 유대인의 왕으로 참칭하며 로마 황제에게 맞서려는 행악자로 고발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본문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뇨, 다른 사람들이 나를 대하여 네게 한 말이뇨."(34)

 

예수님께서는 빌라도에게, '네가 왕이냐'는 빌라도의 질문이 빌라도 자신의 판단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유대인들의 고발내용을 전한 것인지를 물으셨습니다. 만약 전자의 경우라면 그것은 정치적 왕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대답은 '아니다'이어야 했고, 후자의 경우라면 종교적 메시야를 뜻하기에 그 답변은 '맞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본문 35절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유대인이냐,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빌라도는, '네가 왕이냐'는 자신의 질문은 자신의 판단이 아니라 단순히 유대인의 고발 내용에 기인한 것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향하여 새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가 도대체 무엇을 하였기에 유대인들이 모두 널 죽이려 하느냐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질문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 이것은 곧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카인은 한 순간의 질투심을 억누르지 못해 동생 아벨을 들로 끌고 가 쳐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손을 씻고 되돌아갔습니다. 자신이 도대체 무엇을 하였는지 생각조차 하려 하지를 않았습니다. 죄의식을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자신에게는 아벨을 죽일 수밖에 없는 충분하고도 합리적인 이유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으로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카인을 찾아오시어 물으셨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하나님의 그 질문 앞에서 카인은 비로소 인류 최초의 살인자, 그것도 한 피를 나눈 형제를 쳐죽인 부끄러운 자기 자신의 실상을 보았지만, 그것은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는 하나님의 이 질문 앞에서 카인은남아 있는 여생 만큼은 바로 가꿀수 있었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으셨던 하나님께서는 그 이후 모든 인간을 향하여 매순간마다 '네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 묻고 계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 대답은 너무나 간단합니다. 참된 신앙 유무 여부는 오직,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여기에서 '하다'는 동사 poyeo는 참으로 의미심장한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입니다.

첫째 행하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는 질문의 의미는 네가 진리를 행하였느냐 아니면 죄를 행하였느냐는 뜻인 것입니다. 둘째는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네가 네 인생을 진리의 전으로 만들었느냐 아니면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느냐는 것입니다. 셋째는 이룬다는 의미입니다. 네가 네 삶으로 이룬 것이 진리의 열매인가 아니면 죄의 열매인가 하는 뜻입니다. 넷째는 좇는다는 의미입니다. 네가 지금 좇고 있는 것이 진리인가 아니면 허망한 욕망인가 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베푼다, 혹은 나눈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지금 누구에게 무엇인가 나누어주고 있다면 그것은 진리 안에서의 생명인가 아니면 죄악 속의 죽음인가 하는 것입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는 질문 속에는 이 모든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이 질문에 대한 주님의 답변을 본문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36)

 

주님께서는 세속권력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아 오셨음을 밝히시는 답변인 바,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상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본문 37절이 이렇게 계속됩니다.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 하려 함이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소리를 듣느니라."

 

주님께서는 진리의 왕이요, 바로 그 진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시어 그 진리를 삶으로 증거하셨다는 것이,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는 빌라도의 질문에 대한 주님의 답변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주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진리만을 행하셨다는 말입니다. 이 땅에서의 당신의 인생을 오직 진리의 전으로만 가꾸셨다는 뜻입니다. 당신의 인생으로는 진리의 열매만을 결실 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만 좇았다는 고백입니다. 당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오직 진리 안에 있는 참 생명만 나누어 주셨다는 답변입니다.

얼마나 당당한 선포입니까?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던 주님께서 당신의 삶에 대하여 어떻게 이처럼 당당하게 고백하실수 있었겠습니까? 우리는 그 해답을 요한복음 13장 1절에서 찾아볼수 있습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사실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첫째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당신의 이 땅에서의 삶은 마치 모래시계처럼 반드시 끝날 때가 있다는 것과 그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계셨습니다. 둘째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난 뒤에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된다는 사실을 아셨습니다. 셋째, 그러므로 마치 모래시계의 모래처럼 흘러내리는 당신의 시간을 오직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엮어가야 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기에 이 땅에 흘러내린 그 분의 삶은 축적된 진리 그 자체였고, '네가 무엇을 행하였느냐'는 빌라도의 질문에 대하여, 나는 진리를 위하여 났고, 진리를 위해 이 세상에 왔고, 진리를 삶으로 증거했었노라고 거침없이 답변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한가지 간과해서는 안될 사실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고 묻고 있는 빌라도는 지금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는 지금 진리를 심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진리를 잘 알아서입니까? 주님의 답변을 다 들은 그는 본문 38절을 통해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을 정도로 진리에 대하여는 무지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심판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빌라도는 자기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전혀 모르는 자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진리를 못박는 가장 수치스럽고 가장 어리석은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온 나라는 대통령의 둘째 아들을 향하여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는 질문공세를 퍼붓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태가 이 지경이 되기까지 '나는 무엇을 했었던가' 자문하고 자성하는 언론기관이나 사법기관, 정치인은 아직까지 없습니다. 타인이 무엇을 했는지에 관심을 쏟는 것도 물론 중요할 때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전혀 생각조차 않다가 스스로 자멸해 버리는 어리석은 빌라도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다시 여러분께 묻습니다.

대통령 차남이 무엇을 했는지 그토록 알고 싶어하는 당신은 지난 일주일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습니까? 당신이 좇고 따르고 행했던 것이 진리였습니까? 아니면 죄와 욕망이었습니까? 당신의 인생을 진리의 전으로 가꾸었습니까? 아니면 강도의 굴혈이되게했습니까? 당신의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것이 있다면 생명의 열매입니까? 아니면 죽음의 씨앗입니까? 우리는 이 사순절 다섯번째 주일 아침에 회개하는 마음으로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인생은 손목시계가 아니라 모래시계임을 잊지마십시오. 그사람만 인생에 끝이 있음을 알고 끝을 대비하면서 살아갈수 있습니다.

지나간 나의 모든 시간들은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대통령 차남이 의사와 나눈 대화와 행적만 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모든 대화와 행적이 고스란히 남겨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삶이 다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야 하고,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던지실 첫 질문이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일 것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때에만 진리를 행하는 삶으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이세상을 떠날때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무엇을 들고 가서 보여 드릴 수 있는지 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 산더미처럼 쌓아둔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가 결코 아닙니다. 작가 가브리엘 엑셀(Gabriel Axel)은 그날 하나님 앞에 들고 갈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서 진리을 위하여 스스로 포기했던 것과 남에게 나누어 주었던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것으로 되돌려 받습니다. 다시 말해 진리를 위해 선택치 않은 것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합니다. 진리를 행한다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진리를 위해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진리에 따라 나눌 것을 나누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진리는 사유 속에서가 아니라 삶 속에서만 실현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그 분은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세상을 온전히 포기 하셨고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당신의 생명을 인간에게 송두리째 나누어 주셨습 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의해 구세주가 되시므로 세상을 얻으셨고, 부활주가 되시므로 영원한 생명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그 분은 내가 곧 진리라고 선포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자세히 보십시오. 우리 인생이 지금도 모래시계 모래처럼 흘러내리고 있지 않습니까? 윗부분이 점점 더 비어가고 있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지금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고 나누어야 할 것을 나누는 자가 되십시오. 그 때에만 우리의 모래시계가 다하는 순간 하나님 앞에 부끄럼없이 설 수 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그 날을 위해 오늘 아침에도 묻고 계시지 않습니까?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기도 드리시겠습니다.

주님! 우리는 이제껏 남이 무엇을 하였는지에 대하여는 지대한 관심을 가져왔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 보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빌라도처럼 진리와는 무관한 어리석은 삶을 사느라 참으로 귀한 시간들을 덧없이 많이 버려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우리를 사랑하시어 또 불러 주시사 우리의 인생이 모래시계임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미 흘러내린 시간과 남아 있는 시간을 확연하게 보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흘러내린 시간은 소멸되는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축적됨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을 알게 해 주셨사오며 성령의 조명아래서 지금도 계속 흘러내리는 우리의 시간을 오직 진리로 바르게 엮어가게 하옵소서. 진리를 위해 버려야 할 것을 미련없이 버리게 하시고, 진리를 따라 베풀어야 할 것을 기꺼이 베푸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모래시계가 다하는 순간 기쁨으로 아버지 앞에 나아가게 하옵소서.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는 하나님의 질문이야말로 우리를 바로 세우시기 원하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가장 위대한 사랑의 고백임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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