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하게 하옵소서 설교자 이재철
말씀: 요한복음 17 :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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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제게 베풀어주신 많은 은총 가운데 하나는, 참으로 신실한 믿음의 본이 되는 교우님을 많이 만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의 교회가 창립된 이래 지난 8년여 동안, 그처럼 드러내지 않고 신앙을 삶으로 실천하는 분들을 통하여 얼마나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깨닫고 배웠는지 모릅니다. 저 개인에게 있어서는 모두, 제 자신을 비추어 볼 수 있는 믿음의 거울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소중한 분들입니다. 그와 같은 분 중의 한 분이, 지난 주일 4부 청년 예배시간에 자신의 신앙고백을 하던 중 이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오래 전, 그 분이 난생 처음으로 저녁 찬양예배 시간에 대표 기도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주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주일이면 휑하니 뚫려 있을 도로가 그 날 따라 체증이 극심하여, 애간장을 태우며 예배당에 도착하였을 때는 이미 찬양예배가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미착한 자신을 대신하여 인도자가 대표기도를 드리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첫 번째 공적 기도 순서를 그처럼 어처구니없이 놓쳐 버렸으니 얼마나 부끄럽고, 또 엄습하는 낭패감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그 한 순간이 지난 뒤에 그분은 진심으로 하나님께 그 모든 상황을 감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날 낮 친구와 함께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 험담을 나누었던 사실이 기억났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분은 다른 사람을 비방하고서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바로 그 입술로 하나님께 기도를, 그것도 모든 교인들을 대표하는 공적 기도를 드리기 위해 예배당을 향했습니다. 만약 그 날 길이 막히지 않았다면 사람을 헐뜯던 그 입술로 태연하게 공허한 기도의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 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길을 막으시므로, 그런 입술, 그런 마음으로 기도해서는 아니됨을, 회개를 통한 정결한 입술과 청정한 마음으로 기도 드려야 함을 친히 일깨워 주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하시고 알아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고 필요한 것을 교육시켜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생각할 때, 그 분은 그 날 기도 드리지 못하게 되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처럼 자상하시고 세밀하시고 생각이 깊으신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만약 하나님을 만군의 하나님― 즉 이 세상 모든 군대의 최고 통수권 자로만 인식한다면, 전능하신 창조주로만 받아들인다면, 우리와 같은 소시민과 유한한 피조물은 그 하나님의 권위와 위엄 앞에 질식당하고 말 것입니다. 그 분은 단지 공포와 경계의 대상일 뿐, 인격적이고도 깊은 신뢰의 대상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뜻하지 아니한 교통 체증으로 기도 시간을 놓쳤던 그 성도님처럼, 우리가 예기치 못한 상황과 절망적인 사건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하나님의 손길과 가꾸어 주심을 경험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는,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형성되고 심화됩니다.
얼마 전 어느 기업에서 전국에 있는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아버지에 대한 동시 대회'를 개최했습니다. 전국에서 무려 7만명의 어린이들이 응모했는데, 추려진 시 가운데에는 아버지가 어떤 존재인지 가슴 뭉클할 정도로 잘 표현한 시들이 있습니다.
서울 증산 초등학교 3학년 김정원 어린이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체육시간에 걸려 넘어져 상처로 얼룩진 내 무릎
저녁에 퇴근하신 아빠는 내 다리를 쓱 보시곤
"클 땐 다 그런거야"
그 날밤 잠든 내 무릎에 호오∼ 몇 번이나 입김을 불어 주시며
"에이 녀석, 조심하지 않구선"
자꾸만 자꾸만 혀를 차시는 우리 아빠
여러분 인생에 상처가 났을 때 여러분들이 알든 모르든 그 상처 위에 호∼ 당신의 입김을 불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를 알고계십니까? 여러분이 죄에 빠져 넘어질 때마다 자꾸만 자꾸만 혀를 차시는 우리 아버지가 계심을 아십니까? 우리는 이 아버지의 사랑에 힘입어 날마다 바른길을 걸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경남 삼신 초등학교 1학년 이환희 어린이는 이렇게 노래를 했습니다.
나는 조금 밖에 안 예뻐도, 우리 아빤 내가 제일 예쁘대요
나는 조금 밖에 잘한 것이 없어도, 우린 아빤 내가 제일 잘 한대요
그래서 나도, 이 세상에서 우리 아빠가 제일 좋아요
내게 자랑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내 인생 비록 하찮고 보잘것없다 해도, 네가 제일이라고, 네가 최고라고, 언제나 격려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기에 오늘도 우리는 이 험한 세상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경기 평촌 초등학교 4학년 장보영의 시는 또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고, 이 못난이,하고 말씀하시면, 그건 내가 예쁘다는 뜻
―아이고, 이 바보, 하고 말씀하시면, 그건 내가 똑똑하다는 뜻
―아이고, 이 돼지, 하고 말씀하시면, 그건 내가 건강하다는 뜻
아버지 마음속엔, 사랑이 가득
우리가 우리 귀에 들리고, 우리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인해 일희일비하지 않는 까닭은, 그 모든 것 속에는 이처럼 우리를 향하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깊으신 사랑, 깊으신 뜻, 깊으신 경륜이 깃들어져 있음을 아는 까닭입니다.
또 전남 여도 초등학교 5학년 고선경 어린이와 서울 석관 초등학교 1학년 장승환 어린이는 각각 아빠에 대해 이렇게 읊조리고 있습니다.
우리 아빠는 왜 안경을 쓰실까?
나를 더 자세히 보려고 안경을 쓰시겠지
우리 아빠는 왜 손이 크실까?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려고 큰 손이 있으시겠지
우리 아빠는 왜 등이 넓으실까?
나를 업어 주시려고 등이 넓으시겠지
우리 아빠는 왜 키가 크실까?
내가 어디 있나 찾으시려고 키가 크시겠지"
아빠, 아빠
아빠 품에 안기면
솜처럼 따뜻해요
아빠, 아빠
아빠 등에 기대면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어요
아빠, 아빠
아빠 어깨 위에 앉아 보면
하늘과 바다
저 먼 우주가 다 보여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처럼 가장 크시고 가장 강하시고 그 위에 더하여 전지 전능하신 아빠 되시기에 우리는 그 하나님의 등에 업혀 온 우주를 바라보며, 우주를 향한 웅지의 나래를 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갓 태어난 핏덩이에게, 그 아이를 부양해 줄 수 있는 아버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기껏 7-80년 살다가 관속에 드러누워 버릴 우리에게, 우리를 영원토록 책임져 주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은 얼마나 감격적인 일입니까? 바로 그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상하신 아버지가 되어 주신다는 것은 얼마나 큰 은총입니까? 그러나 아버지 곁에 있으면서도 아버지를 아버지로 알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면 그 아이는 고아처럼 살 수 밖에 없듯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심을 믿지 못할 때 그 인생은 덧없고 힘겨운 인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복음 17장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 되심을 거듭거듭 강조하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11주전부터 함께 살펴보고 있는 요한복음 17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둔 최후의 순간에 당신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이 땅에 있는 인간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 드린 중보기도의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 마지막 기도의 내용은 우리에게 있어 기도의 전형이 되며, 이 기도문에 동원된 단어 하나 하나마다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만큼 주님의 이 기도는 중요한 뜻을 지닌 기도입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을 아버지여 라고 부르는 것으로부터 주님의 기도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26절에서 기도가 끝날 때까지, 주님께서는 2 페이지도 채 되지 않는 이 길지 않은 기도문 속에서 하나님을 무려 39번이나 아버지라 부르고 계십니다. 총 1,754 페이지에 달하는 이 방대한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이처럼 연속적으로 아버지라 부르고 있는 장은 요한복음 17장이 유일합니다.
주님께서 단순히 당신 자신만이 성부 하나님의 아들 성자 되심을 과시하기 위해 이처럼 집중적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계시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일찍이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마6:9)
주님께서는 이미 그때 하나님은 당신만의 아버지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아버지 되심을 천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당신의 이 마지막 기도를 통하여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은 진노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은 자상하시고 인자하신 우리 아버지이심을 분명히 인식하도록 39번씩이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계시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주님의 이 마지막 기도의 목적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아버지심을 알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버지 되심을 깨닫는 것으로부터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형성되며, 하나님의 깊고도 자상하신 사랑을 인격적으로 체험할 수 있으며, 그때부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감사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감사드려야 하겠습니까? 지난 1년 동안 먹을 것을 주시고 입혀주시고 잠자리를 책임져 주셨음을 감사드릴 수 있습니다. 내 가정이 평안했음을 감사드릴 수 있고 가족이 건강했음을 감사드릴수 있으며, 일터를 지켜 주셨음을 감사드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감사는 나 중심의 감사요 그것은 참되고 성숙한 감사일 수가 없습니다.
참된 감사의 조건은 오직 한가지―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벌레만도 못한 나의 아버지 되신다는 사실― 바로 이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감사하는 자는 실패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병들었음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원치 않는 고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아버지이시기에 나를 당신의 아들답게 바로 세우시기 위하여 내게 꼭 필요한 것과 과정만을 주시는 분이심을 인격적으로 깊이 신뢰함인 것입니다.
한번 우리의 지난 날들을 되돌아보십시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때로는 우리를 품어 주시고 때로는 격려해 주시고 때로는 업어 주시고 때로는 위로해 주시고 때로는 용기를 북돋아 주시고 때로는 꾸짖어 주시면서 말할 수 없는 자상하심으로 끊임없이 깨우쳐 주시지 않았더라면, 어찌 우리가 이 아침, 진리를 사랑하는 생명의 사람들이 되어 이 구원의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확실히,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 되어 주신다는 사실보다도 더 큰 감사의 조건은 아무리 따져 보아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서울 은평 초등학교 6학년 유서연 어린이는 다음과 같은 시를 썼습니다.
화장대에 놓여 있는 아빠 안경
안경 유리에 뿌연 먼지가 소복히 앉아있다
얼마나 바쁘셨으면 안경알도 닦지 못하셨을까
나는 잠드신 아빠 얼굴 보며 안경알을 닦는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하여 하루종일 동분서주하다가 밤이 되어 골아 떨어진 아버지, 그 아버지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 잠든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아버지의 안경알을 닦는 어린 아들― 이 세상 그 어떤 그림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기까지, 우리를 살리시고 책임져 주시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 우리는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하겠습니까? 우리에게 있어서 우리가 정성스럽게 닦아 하나님께 드려야 할 안경알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겠습니까?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7)
바로 우리의 심령을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닦아 진리 안에서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거룩하게 가꾸어 드리는 것, 그보다 더 귀한 감사의 예물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아버지시요 거룩하신 아버지의 소망은 아버지의 자녀된 우리가 아버지처럼 거룩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본문 21절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님 안에, 주님께서 하나님 안에 계신 것 같이 우리가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 안에 거하도록 간구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 속에 거하는 것이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 5:18)"
여기에서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것은 내가 원치 아니한 결과와 상황까지도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왜 모든 것에 감사하는 것이, 설령 내가 원치 않는 일이라 할지라도 감사하는 것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까? 모든 일에 감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인격적으로 신뢰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감사하는 자는 아버지의 거룩함에 동참하는 자요, 아버지의 거룩함에 거하는 자가 아버지의 말씀을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 펼치는 아버지의 참된 자녀가 되는 까닭입니다.
수원 정자 초등학교 4학년 김슬기 어린이는 `아버지 마음'이란 시를 지었습니다.
아빠는 나더러 푸른 하늘처럼 맑게 살래요 고운 햇빛처럼 밝게 살래요
내가 내가 하늘처럼 맑게 자라고 내가 내가 햇빛처럼 밝게 자라면
우리 아빠 마음에 웃음꽃 피지요.
아빠는 날더러 푸른 나무처럼 씩씩하래요 예쁜 꽃들처럼 웃고 살래요
내가 내가 나무처럼 씩씩하게 자라고 내가 내가 꽃들처럼 웃고 살면은
우리 아빠 마음에 즐거움이 넘쳐요"
이 아이는 감사한 아빠에게 드릴 가장 큰 선물은 아빠의 마음 속에 거하면서 아빠의 마음을 읽고 아빠가 원하는 어린이가 되는 것임을 터득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우리가, 모든 면에서 이 아이보다 못해서야 되겠습니까?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아무리 생각해보아 하나님께 드릴 감사의 예물에 관한 한 우리의 거룩한 삶외에는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그것이 물질만 드리는 것은 하나님을 거지로 여기는 것이요, 자기 자신을 거지의 자식으로 삼는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기도 드리시겠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시고 영원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벌레만도 못하고 추악한 죄인인 우리의 아버지 되어 주심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버지께서 때로는 품어주시고 때로는 격려해 주시고 때로는 위로해 주시고 때로 업어주시고 때로는 꾸짖어 주시고 때로는 실패하게 해 주시므로, 오늘 이와 같이 진리를 아는 하나님의 자녀로 가꾸어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이제 진리 안에서 거룩하게 일구어진 우리의 삶을 예물로 드리므로, 거룩하신 아버지의 참된 자녀 성숙한 자녀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거룩한 삶을 통하여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이 세상을 거룩하게 가꾸어 가시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옵소서. 어떤 경우에도 우리의 거룩한 삶이 배제된 물질로 아버지를 거지로 삼고 우리 자신을 거지의 자식으로 전락시키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도록 은총을 베풀어주옵소서.
―아멘―
출처 : 주님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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