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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택하여 쓰시는 사람(창 15:1-7 ) / 이수영 목사

by 【고동엽】 2021. 12. 27.

하나님께서 택하여 쓰시는 사람
창15:1-7


새문안교회 주일예배


설교 이수영 목사


구약성경 창세기의 1장부터 11장까지는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상대로 말씀하시고 역사하신 바를 기록한 것이라면, 12장부터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그가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과 상대하신 역사를 중심적으로 기록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75세의 나이로 하란이라는 곳에 머물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 1-2) 하셨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주하며 그의 조카 롯과 헤어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두 번째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창13:16)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세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아브라함에게 임한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낳게 해주실 것이고 그 자손들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해주실 것이라 하시며 앞선 두 차례에 걸쳐 하신 말씀을 재확인해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낳게 해주실 것이고 그 자손들을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해주실 것이라 하신 것 말고도 그에게 하신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1절에서 보는 대로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신 말씀이고, 다른 하나는 7절에서 읽는 대로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하신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상급은 지극히 크리라"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당신에게 특별한 사람으로 택하여 세우고자 하심을 나타내시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소유를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인의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니라" 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이미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 가운데서 인도하심을 받고 있었음을 드러내시는 말씀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분명히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특별히 택하신 사람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처음 그에게 말씀하실 때 "너는 복이 될지라"(12:2) 하신 말씀은 그 사실을 확실하게 해줍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의 그 무엇이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를 택하여 쓰시게 하셨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관심거리가 됩니다. 우리는 12장부터 15장 사이의 이야기들에서 보기만 해도 하나님에 의하여 특별히 택함받아 쓰여질 만한 아브라함의 인간적 면모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선 아브라함은 관대한 사람이었습니다. 13장에 기록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그것을 엿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일찍 죽은 작은 동생 하란의 아들 롯을 늘 데리고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과 롯의 소유가 많아지고 그들이 다 함께 지내기에는 땅이 넉넉하지 못하게 된 어느 날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가 서로 다투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롯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친족이 아니냐.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왼쪽으로 가겠다면 나는 오른 쪽으로 가겠고, 네가 오른 쪽을 갖겠다면 나는 왼 쪽을 갖겠다."(8-9) 그러자 롯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며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은 요단 온 지역을 택하고 동쪽으로 옮겨갔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자기가 큰아버지인 것을 내세워 먼저 좋은 곳을 택하지 않고 조카 롯에게 전적으로 선택권을 주는 아량 있고 욕심 없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둘째로 아브라함은 의리와 결단의 사람이었습니다. 14장에는 전쟁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당시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과 소알 다섯 나라는 엘람에게 12년간 조공을 바치는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이 더 이상 조공 바치기를 거부하자 엘람 왕 그돌라오멜은 시날과 엘라살과 고임 세 나라와 연합하여 배반한 다섯 나라를 징벌하기 위한 전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돌라오멜의 네 나라 연합군은 승승장구하며 배반한 다섯 나라의 왕들을 패퇴시켰고 그들에게 속했던 사람들과 재물과 양식을 모두 빼았았습니다. 그 와중에서 소돔에 살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그 온 가족들과 재물과 함께 사로잡혀가게 되었습니다. 조카 롯이 사로잡혔다는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가신들과 그의 집에서 기르며 훈련시킨 삼백십팔 명의 가병들을 거느리고 쫓아가서 엘람 왕 그돌라오멜의 연합군을 쳐부수고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부녀와 친척과 모든 빼앗겼던 재물을 다 찾아왔습니다. 아브라함은 두 편으로 나뉘어 싸운 아홉 나라 사이에 얽힌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지내고 있었지만 조카 롯에 대한 가족으로서의 의리 때문에 그 전투를 벌이게 되었던 것입니다.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소알 다섯 나라 연합군도 그 힘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고, 그들을 이긴 엘람, 시날, 엘라살, 고임 네 나라 연합군은 더 강했을 터인데, 이들을 상대로 고작 318명의 가병들을 데리고 싸운다는 것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것과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비록, 15절에서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었다"고 한 것으로 보아, 네 나라 연합군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기보다는 게릴라식 야간기습공격과 적진을 기만하고 교란시키는 고도의 작전을 통해 일을 성사시켰다고 여겨지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모하고 위험천만한 전투가 아닐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집안의 어른으로서 조카에 대한 사랑과 의리 때문에 그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비장한 전투을 벌였던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의 승리와 성공은 사실은 그와 그 가병들의 힘으로 된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임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브라함이 그돌라오멜과 그와 함께 한 왕들을 쳐부수고 돌아올 때에 살렘 왕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에게 나아와 그를 축복하며 말하기를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17-20) 한 것으로 보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아브라함은 부당하거나 더러운 이득을 단호히 배격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엘람, 시날, 엘라살, 고임 네 나라 연합군을 물리쳐주자 그들에게 패했던 소돔왕은 아브라함에게 말하기를 "사람은 내게 돌려보내고 물품은 당신이 다 가지시요"(21) 했습니다. 그 때 아브라함은 소돔 왕에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당신이 나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치부하게 하였다 말할까봐 당신에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22-23) 이렇게 아브라함은 그가 재물을 탐해서가 아니라 오직 조카를 구하기 위해서 나섰던 것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또 13:13에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기록되었듯이 소돔 땅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악한 자들이었음을 잘 알고 있었던 아브라함은 그들의 재물에는 아예 눈길조차 두지 않으려는 그의 뜻을 단호하게 보여준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에게 인간적인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12장에서 우리는 그가 너무나 허약하고 어이없이 처신하는 모습을 목도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살던 아브라함은 그 땅에 기근이 들자 애굽에 거류하려고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기를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한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아브라함이 애굽에 이르자 애굽 사람들은 사래가 심히 아름다움을 보았고 바로의 고관들도 그녀를 보고 바로 앞에서 칭찬했으므로 사래는 바로의 궁으로 데려가져서 왕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이에 바로는 사래 때문에 아브라함을 후대하고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준 일이 있습니다. 물론 바로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를 자기 아내로 만든 일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시자 혼비백산해서 아브라함에게 사래를 돌려주기는 했지만 아브라함으로서는 너무나 비겁하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후덕하고 욕심없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보신 가장 좋은 점은 그의 순종적인 믿음이었습니다. 12:1에 보면 처음으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셨습니다. 비옥하고 잘 정착되었으며 정들고 편한 삶의 터전을 하루아침에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가게 될 그곳이 어떻게 되어있는 곳인지도 모르며 무작정 온 가솔들을 데리고 간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12:4에 보면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4)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말씀하시기를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5) 하시자,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다고 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의 "공의"로 여기셨다(6)고 했습니다. 6절에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공의로 여기셨다" 한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롭게 여기셨다"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의로 간주하셨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서 좋게 보신 것, 귀하게 여기신 것, 잘했다고 생각하신 것, 맘에 드신 것은 바로 그의 믿음이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 믿음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믿음의 조상이라 일컬음을 받는 것이며, 많은 사람들에게 복의 근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12:2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여기서 우리는 "너는 복이 될지라" 하신 말씀을 잘 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복을 받으리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너는 복이 될지라" 하신 것입니다. 즉 아브라함 혼자 복받을 것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 자신이 다른 사람들을 위한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것은 뒤따르는 3절 말씀에 의해 더 분명해집니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아브라함은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관대한 사람이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도리와 책임을 위하여 위험을 무릅쓸 줄 아는 사람이었고,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기뻐하셨으며, 당신의 백성을 이루시고 당신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도구로, 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여 쓰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본문 1절에서 보는 대로 아브라함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기 이전에 이미 그 말씀대로 앞서 행하셨습니다. 아내 사래를 영영 애굽왕 바로의 아내로 빼앗길뻔 했던 위기에서 아브라함에게 방패가 되어주셨고,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하여 절대적인 숫적 우세에 있던 엘람 왕 그돌라오멜의 연합군과의 전투에서도 방패가 되어주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우리의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 말은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본받아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순종하는 우리가 됩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도우심을 믿고 마땅히 해야할 도리를 다하는 우리가 됩시다. 항상 타인의 이익을 먼저 구하며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는 사람이 됩시다. 그리하면 우리의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기뻐하시고 하나님의 귀한 사업에 우리들을 택하여 쓰실 것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위한 복의 근원이 될 수 있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들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복 받게 되는 것, 이 얼마나 기쁘고 좋은 일입니까? 이 사회와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하여 하나님께 쓰임 받는 우리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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