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된 헌신
마가복음 14:10-11, 17-21
논지 :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욕심 으로 열심을 내는 것은 헌신이 아니 다.
위장취업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다 학력도 좋고 좋은 사람들이 공장 노동 현장에 자기의 모든 경력 같은 것을 숨기고 들어가서 노동운동하기 위해 들어가 취업하는 사람들이 있 었습니다. 그런데 그 노동현장에만 위장 취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 권에도 위장취업이 있어서 경력을 다 위조하고 자기의 잘못된 것을 다 감춘 채 그리고는 출마를 하고 당선 이 되고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 납세, 병역, 전과 이 런 것을 다 공개해서 거짓말로 자기 경력을 얘기하고 나쁜 것 감추고 하 는 것이 다 없어져서 얼마나 다행인 지 모릅니다. 이유야 어떻든지 간에 선진민주국에서는 벌써부터 하던 것 을 우리나라에서도 차츰 하게 되서 이제 위장으로 뭐 하던 사람들이 다 없어질 것 같아서 참 다행인 일입니 다. 가. 가룟유다의 열심
1. 예수님 제자 중에도 위장취업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겉으로 그럴
듯하게 열심을 내고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의 제자로서 일
한 사람이지요. 가룟유다입니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사람들은
굉장히 많았습니다. 5천명이 예
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께
서 먹이실 때에 같이 먹었습니
다. 그가운데 70명을 뽑아가지고
둘씩 셋씩 짝을 지워서 전도하
러 내보낸 적도 있습니다. 그들
중에서도 12명을 택하셔서 예수
님께서 제자로 삼아 함께 생활
하고, 그들을 가르치시고 이적과
기사를 베풀게 하고 사역에 동
참하도록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까 12명이 예수님께 있어
서는 가장 핵심적인 제자였다고
말할 수가 있을텐데, 가룟 유다
가 바로 그 핵심적인 12명 가운
데 한 사람으로 선택이 되었습
니다. (막3:18-19) 그만큼 가룟유다는 많은 사람들 중 에서 두드러지게 성실하고 진실하게 일하는 사람으로 인저잉 되고 그래 서 뽑히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가룟유다는 예수님과 12제자 가 같이 다닐 때에 그 모든 살림살 이를 책임진 사람입니다. 재정을 다 담당해서, 그래서 13명이 같이 여행 도 하고 생활할 때에 그 모든 살림 살이를 다 관장한 사람입니다. 그만큼 계산이 정확하고 살림살이에 유능하고 정직하고 진실한 사람이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특별히 신임했습니다. 모든 다른 제자들이 가룟유다를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일을 그 가룟유다에게 맡긴 것입니다. 2. 자연히 예수님과 함께 12제자가 같이 식사하기 위하여 식탁에 앉으면, 가룟유다가 헤드테이블에 앉았습니다. 예수님 계신 데에, 예수님과 같이 손을 내밀어서 떡을 가져가는 그런 곳, 가장 중심부(Head Table)에 가룟유다가 앉게 된 것이지요.(18, 20) 열두제자, 그 그룹에서 가룟유다가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게 되었다는 그런 말씀입니다. 성실하고 열심있게 일했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인정을 받았고, 그렇게 1년, 2년, 3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앉을 정도가 된 것입니다.
나. 가룟유다의 본심 1. 그런데 가룟유다의 본심이 사실 은 그렇지 않았다고 성경은 구석구 석에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이지만, 가 룟유다도 정치적 야심을 가지고 있 었습니다. 지지난주에 섬기는 지도 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습니 다. 그 때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님 에게 와서 한사람은 우편에 한사람 은 좌편에 앉게 해 주십시요, 높은 자리에 앉게 해 주십시요 인사청탁 을 했거든요. 다른 제자들은 우리 다 똑같이 고생했는데 왜 야고보와 요한만 높은 자리에 앉느냐 그리고 는 분개하고 분노를 했습니다. (막 10:35-41, 섬기는 지도자, 2000.3.26) 다시 말하면 열두제자가 다 어떤 정 치적인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 이지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 라가셔서 왕이 되시면, 우리도 같이 옆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권력 을 가지고 권력을 휘두르고 그런 일 을 할 것이다, 그런 야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시 고 하나님 나라의 왕을 말씀하실 때 에 그것이 어떤 종류의 나라인지 그 만 오해를 하고, 그 나라가 세상 나 라같이 권력을 휘두르고 군사를 압 제하고 정복하는 것으로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다 니기는 했지만, 그러나 예수님을 주 님으로 모시고 종으로서, 제자로서 헌신했다기 보다는 높은 자리를 차 지해보자는 그런 보상을 기대했기 때문에, 자기에게 돌아올 이익을 생 각하고 이해관계를 따져서 열심을 낸 것입니다. 한마디로 줄이면 주님 께 헌신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열심을 낸 것이지요. 위장된 헌신을 한 것입니다. 가룟유다가 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12제자가 다 그렇게 단순히 권력을 가지고자 하 는 정치적 야심만 가졌던 것은 아니 다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그 제자들 중에는 가나안인 시몬(막 3:18)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그 시몬 이 열심당원이라는 이야기를 합니 다. 그러면 그 사람은 순수한 애국 심을 가졌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오셨으니까 그 왕의 힘을 빌어서 우리 이스라엘 하 나님의 백성이 로마사람들에게 정복 당해서 식민지로 있으니까 저 왕을 우리나라의 왕으로 모시고 우리 나 라를 독립시켜야하겠다하는 순수한 애국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 간 사람도 있었습니다. 긍정적이고 순 수한 애국심도 좋은 일이지만, 그러 나 그것도 정확하게 말한다면 예수 님을 자기 나라 독립에 이용하고자 하는 생각을 가진 것입니다. 예수님 께 전적으로 주인으로 헌신한 것이 라고 하기 보다는 나라를 되찾겠다 는 그런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 나라 초대교회때도, 일제시대 때 교회를 독립운동에 이 용하기 위해서 교회에 들어온 분들 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다음에도 민 주화에 교회를 이용하기 위해서 들 어 온 분들도 있었구요, 선거가 있 을 때마다 교회를 선거에 이용하려 고 하는 분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다 주님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 라 자기를 위해서 주님을 이용하고 자 하는 생각들이 강했던 것입니다. 2. 특히 가룟유다는 물질에 대한 탐욕이 강했스니다. 지난 주에 제가 말씀을 전할 때에 마리아가 예 수님께 향유를 부어 드린 말씀을 드 렸습니다. 자기의 전체를 드려서 주 님께 헌신을 했는데, 옆에 다른 사 람이 그 여인의 헌신을 비난하고 책 망을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구 제하면 좋을 텐데 저것을 왜 그렇게 낭비하느냐, 그렇게 비난하고 책망 을 했습니다. 요한복음은 그렇게 책 망한 사람이 가룟유다였다고 이야기 하면서 계속해서 어떠헥 이야기하냐 면 가룟유다가 도적이고 돈궤를 맡 고 거기에 있는 것을 훔쳐갔다고 고 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300 데나리온, 큰돈을, 그 향유값이 자기 가 관리하는 돈궤 안에 들어오면 그 것을 자기 손으로 주무르면서 가난 한 사람들을 도와주기도 하겠지만, 자기 손에도 떡고물이 뭍지 않겠습 니까? 그것을 노리고 자기 관리하는 돈궤 안에 돈이 많이 들어오기를 원 했다는 것이지요. 마리아는 에수님 을 주님으로 모시면서 그분에게 전 적으로 자신을 드려 헌신했다고 하 면, 가룟유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탐욕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했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가룟유다 의 성실과 열심히 있었는데 그것은 헌신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위장 한 것이었습니다. 겉으로는 정직하 고 성실한 삶인 것 같이, 헌신적인 사람인것같이, 행동하고 나타냈지만, 하지만 사실 그 속에서는 자기 탐욕 을 채우고, 자기 이기적인 욕심을 채우는 그런 일들을 한 것입니다. 위장된 헌신을 한 것이지요. 예) 어느 교회에 다른 곳에서 이사 왔다고 등록한 분이 계셨어요. 자그 마한 교회인데, 그 새로 오신 분이 다른 교회 있을 때에 임직을 맡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아주 열 심으로 신앙생활을 했습니다. 새벽 기도고 금요일 철야기도고, 일반적 으로 잘 나오기 힘든 시간에 신앙생 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아주 훌륭한 신앙생활 하는 분이라 고 칭찬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서 대중기도도 한번 시켜보니까, 대 중기도도 아주 유창하게 얼마나 은 혜스럽게 기도를 잘 하든지 모든 분 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헌금도 아 주 거액을 하구요, 그래서 모든 교 인들이 다 우리교회에 아주 좋은 인 재가 들어왔구나, 저 분이 앞으로 우리 교회를 이끌어 갈 귀한 지도자 가 되겠구나 그렇게 기대를 했습니 다. 신뢰를 한 것이지요. 그런데 어 느날 그 분이 사라졌어요. 사라지고 나니까 그 작은 교회 구석구석에서 여기저기 벌집 쑤시듯이 드러났는 데, 누구한테 돈 얼마 꿔가고, 또 누 구한테 돈 얼마 꿔가고, 그만 교회 에 굉장한 시험이 들게 만들었습니 다. 그 열심히 기도하고 헌금하고 한 모든 것들이 다 사실은 위장이었 다는 것이 나중에 다 드러나게 된 것이지요. 여러분 교회에서 자기 직 업상, 사업상 이유때문에 등록을 하 고 열심을 내는 일들은 비일비재하 게 많이 있습니다. 예전에 제가 알 던 분 가운데 한 분은 모태신앙이 고, 그 교회에서 죽 자라난 분인데, 중직의 아들이구요, 그런데 굉장히 찬양을 잘했습니다. 목소리가 좋고 테너인데, 찬양을 참 잘했어요. 그래 서 다들 훌륭하게 생각했는데, 그 분은 자기 입으로 뭐라고 이야기하 냐면, 나는 교회에 노래부르러 나온 다, 아가씨 만나러 나온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주님께 찬양 을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노래하기 위해 나오는 것이지요. 주님을 위해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 열심을 내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제가 알던 분은 성경을 굉장히 많이 읽는 분이었습니다. 성경 지식 도 많구요, 암기도 많이 하고 그랬 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그 성경을 자기 인격 수양을 위해서 성경을 읽 고 성경을 공부했습니다. 주님 뜻을 알고, 주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은 것이 아니구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성경을 읽는 거예요. 여러분, 겉으로 보기에 가장 그럴듯 하게, 가장 멋있게, 가장 성실하게 신앙생활하고 교회생활하는 것같이 보여도, 그것이 주님을 위한 것이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면 그 것은 헌신이 아닙니다. 위장된 헌신 이지요.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 들의 신앙생활, 교회생활이 어떤 종 류의 것입니까? 자기 자신을 위한 열심입니까, 주님을 위한 헌신입니 까? 사랑하는 여러분들, 여러분들의 신앙생활과 여러분들의 교회생활이 주님을 위한 헌신이 되시기를 바랍 니다.
다. 가룟유다의 배신 1. 가룟유다가 이렇게 예수님을 따 라다니는 중에 점점 예루살렘에 가 까이 왔는데, 예루살렘에 이제 딱 와서 보니까 예수님께서 고난당한다 는 말씀을 수차례 할 때에 마음가운 데 실망이 되었어요. 저 예수님이 자기가 생각한 메시아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정치적인, 군 사적 영웅이 되어서 저 이방나라를 물리치고 우리나라를 독립시킬 그럴 왕과 영웅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 습니다. 자꾸 하는 소리가 체포될 것이다, 능욕과 멸시를 당하게 될 것이다, 십자가에 죽을 것이다, 고난 당할 것이다, 영 맥빠지는 소리만 한단 말이지요. 저 분이 우리나라를 독립시키고 왕이 되고 내가 거기서 권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라는 기대 를 가졌는데, 계속 힘없는 소리만 한다는 것이지요. 시시한 소리만 자 꾸 해요. 가룟유다의 마음 가운데 낙심이 됐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판단을 했습니 다. 예수님께 이제는 민족의 독립을 기대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게 됐 다, 저 분이 왕이 되고 내가 높은 자리에 올라갈 것이다라는 것은 기 대하기 어렵게 됐다, 권력을 가진다 든지 많은 돈을 주무를 수 있게 된 다든지, 이런 것은 이제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 습니다. 그의 모든 기대와 희망이 다 깨졌습니다. 3년동안이나 쫓아다 니면서 이렇게 수고하고 애쓰면 나 중에 뭐가 되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따라다닌 것이 다 헛수고가 되어버 리고 말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자기 혼자 마음으로 예수님께 대해서 배 신감을 가지는 거예요. 자기 기대대 로 안됐으니까. 2. 바로 그 때 가룟유다의 마음속에 사단이 들어갔습니다. (눅22:3) 오늘 똑같은 본문을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에서는 이 순간에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의 그 탐심, 가룟유다의 그 낙 심한 마음, 기대가 깨져서 배신감을 속으로 가지고 있을 때에, 그럴 때 에 사탄이 바로 그 속에 들어갔습니 다. 야고보서 1장 14절 15절에서 말 씀하기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 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성도라 도 미혹하기 위해서 호시탐탐 노리 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가 마음가 운데 탐욕을 품고 있다든지, 정욕을 품고 있다든지, 분노와 혈기와 시기 와 이런 심령이 있을 때에 바로 그 것을 틈타서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 다는 것입니다. 바로 가룟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의 제 자고,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고, 에수 님과 같이 생활하면서 예수님의 모 든 본을 받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 고,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을 경험하고 이런 놀라운 일들을 다 했는데도 불구하고 탐욕 속에 실 망 속에 빠졌을 때에, 사탄이 그 속 에 침입해서 가룟유다를 실족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선생님은 베드로전서 5장 8절 9절 말씀에서 이렇게 말씀 하고 있습니다. 근신해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 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말 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 성도라도 늘 경건생활 에 깨어 힘쓰지 않으면, 사탄이 우 리 속에 싹 들어와서 우리를 미혹케 하고 우리를 자기 도구로, 자기 앞 잡이로 만들어버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깨어서 경건생활 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3. 가룟유다가 사단의 도구가 되었 습니다. 아니 선생님한테 자기가 실 망했으면 자기 혼자 실망한 것이니 까 그냥 떠나가면 그만인데, 조용히 떠나 간 것이 아니라 자기 선생님을 돈 주고 팔아먹었습니다. 은 30이라 는 것은 종 한 사람 값입니다. 종 한사람 값에 자기 선생님을 팔아먹 고 만 것이지요. 자기 마음속에 물 질 탐욕이 지나치다 보니까 선생님 을 팔아 먹는 정도까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인신매매범, 아주 파렴 치범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제자로 택하시 고, 신임해서 재정의 일을 맡기시고, 예수님의 테이블에 앉을 정도로 가 장 친밀한 관계를 가졌는데, 그러나 유다는 가장 신임받고 친밀한 것을 역이용해서 배신했습니다. 여러분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넘기는 싸 인, 그 표시가 뭔고 하면 선생님한 테 가서 입맞추는 겁니다. 입을 맞 춘다는 것은 가장 친한 사람이 하는 것이 바로 그 입맞춤의 표시입니다. 길 가다가 아무나 하고 그렇게 입맞 추는 것이 아니잖아요. 가장 친한 사람, 가장 친밀한 관계에 있는 사 람, 그 사람에게 입맞추는 것인데 가장 친밀한 표현이 바로 자기 선생 님을 팔아먹는 신호가 되었습니다. 자기 욕심이 채워지지 않으니까 가 차없이 선생님을 배반하고 은혜를 배신으로 갚아버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탐욕을 따라서, 이해관계를 따라서 자기 욕심을 내다보면 이해 관계가 잘 안 맞는다든지, 환경이 바뀐다든지 그러면 이렇게 배신자가 된다든지, 신앙이 흔들리게 되어 있 습니다. 적용) 온전히 나를 드려서 헌신하는 그런 속에 주님 앞에 서 있는 사람 은 환경이 어떠하든지, 주님께서 고 난을 당하든지 어쩌든지 거기 관계 없이 흔들리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바로 가룟유다는 거기에 실족을 한 것입니다. 4. 예수님이 잡혀간 다음에, 보니까 예수님께서 실제로 재판을 당하고 죽게 생겼단 말이지요. 저렇게까지 는 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 만 그런 모습을 보고는 가룟유다 마 음가운데 후회가 생겼습니다. 그래 서 돈 받았던 것 도로 돌려주면서, 나 이 돈 받았던 것 다시 돌려줄 테 니까 예수님 풀어주시요, 이야기 했 는데 그 땐 이미 늦었어요. 안되는 겁니다. 돈을 집어내던지고 죄책감 에 못이겨 하다가 목을 매어 스스로 죽고 말았습니다.(마27:3-10, 행 1:18-19) 비참한 죽음을 죽은 것이 지요. 그뿐만 아니라 역사에 오점을 남긴 것이고 그는 영원한 지옥에서 멸망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탐욕을 따라서 자기 열심을 내서 나가던 그 사람이 결국에는 돈도 잃어버리고 생명도 잃어버리고 멸망가운데 처하 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가룟유다는 열심히 예수님 따라다니고 열심히 예수님과 일했지만 그는 자기 자신 을 위해서 일한 겁니다. 열심으로 일을 했어요, 그러나 그런 것은 헌 신이 아닙니다. 위장된 헌신, 가짜 헌신이지요. 5.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어땠습니 까? 우리 예수님은 하늘 보좌를 버 리시고 인간의 육신을 입기까지 낮 추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기 까지 인간들에게 자기 전체를 대속 물로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온전 히 헌신을 하셨어요.
결론) 여러분 이제 우리가 가야 할길 이 분명해졌습니다. 가룟유다같이 자기 이기적인 열심을 따라서 가짜 헌신을 가질 것이냐, 우리 예수님같 이 전적으로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내어주는 진정한 헌신을 할 것인가. 우리가 갈 길이 분명해졌습니다. 사 랑하는 여러분들, 우리 예수님께서 는 우리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주기 까지 헌신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생명의 주님이 되시고 우리 인생의 주인이 되신 것이지요.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주인되신 우 리 예수님께 모든 것을 다 드려서 헌신하는, 진정한 헌신을 드리는 여 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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