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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설교〓/설교.자료모음

양선의 열매 /시편 107:1-9

by 【고동엽】 2021. 12. 24.
양선의 열매
시편 107:1-9

2차 대전이 종전된 후에 연합군이 독일의 감옥소, 수용소를 점령하고 들어갔습니다. 감옥소를 돌아보고 또 사람들이 죽어가던 gas chamber 를 보고 나오던 한 연합군 병사가 이런 외마디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 것이 전세계에 뉴스로 보도되었습니 다. 그는 gas chamber를 튀어 나오 면서 한 마디로 이렇게 소리질렀습 니다. 이곳이 지옥이다!. This is Hell! 이곳이 바로 지옥이야!. 그는 똑같은 병사가운데 몇 군데를 더 돌 아 나오다가 그의 입에서 또 다른 한 마디가 튀어나왔습니다. 그 말은 이것은 믿을 수가 없다! This is unbelievable. 이것은 믿을 수가 없 다! 다른 병사들이 그의 옆에 다가 가서 그가 가리키고 있는, 손이 가 리키고 있는 벽을 보았습니다. 그 벽에는 여러 가지 낙서가 휘갈겨 있 었는데 그 낙서의 두 군데를 이 병 사의 손이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거 기에는 하나님은 선하시다. God is Good! God is Love! 하나님은 사랑 이시다. 바로 그 문구를 보고 이 병 사는 이것은 믿을 수가 없다라는 소 리를 질렀던 것입니다. 최악의 상황 에서 최선을 만들어내신 그 하나님 께 대한 최선의 신앙의 고백이었다 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 벨로니아 포로에서 돌아왔던 이스라 엘 백성들의 찬양에서 꼭같은 고백 을 발견합니다. 시편 107편 1절 다 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 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 원함이로다 하나님께 감사하십시다. 그 이유를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 니다. 그는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God is Good. 그 하나님이 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의 성실한 사랑, 그의 인 자하심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시편 107편을 보면 이어서 꼭같은 일종의 찬양의 고백과 같은 찬양의 시귀가 네 번 반복됩니다. 이 반복 되는 네 개의 문장이 시편 107편을 네 개의 단락으로, 문단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8절, 15절, 21절, 31절 꼭 같은 문장입니다. 8절 한번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 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 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 꼭같은 말 이 15절에, 21절에, 31절에 반복되 죠? 시편 기자는 네 개의 상황 여 기서 네 개의 상황, 환경을 생각합 니다. 이것은 모두 악한 상황이었습 니다. 그런데 이 최악의 상황속에서 그들이 체험한 하나님의 선하심을 그들은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첫번째 상황은 광야에서 방황할 때였습니다. 광야에서 방황할 때. 4 절부터 7절까지. 4절에 보시면 저희 가 광야 사막길에서 방황하며.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지나간 일 년을 돌 이켜 볼 때 여러분 가운데 지나간 일년의 나의 삶은 마치 광야의 사막 길의 방황과도 같았다. 이런 느낌을 갖는 분들이 아마도 있었을 것입니 다. 다시 4절을 읽어보시면 저희가 광야 사막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 을 찾지 못하고 그들이 안주할 수 있는 곳을 찾지 못하고 한 지점에서 또 다른 지점을 향해서 정처없이 방 황하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고백을 여기서 우리는 볼 수가 있습 니다. 하나의 job에서 또 다른 job으 로 의미있는 job, 내가 안정할 수 있는 직업을 찾아 방황했던 한 해를 보냈던 분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 나의 사업에서 또 다른 사업으로 내 가 안정할 수 있는, 우리 식구들이 그리고 내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그런 사업의 장을 찾아서 계속 방황했던 한 해를 보냈던 분들이 있 었을 것입니다. 혹은 사랑을 찾아 따뜻한 사랑을 찾아 내 마음의 진정 한 안식을 위한 사랑을 찾아 한 해 를 방황하는 걸음으로 걸어왔던 분 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저희가 광야 사막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 지 못하고. 그것은 방황이었습니다. 그것은 아픔이었습니다. 그것은 고 통이었습니다. 그 속에서 내가 할 일은 아마 하나밖에 없었을지 모릅 니다. 하나님을 알기에 엎드려 기도 하는 일밖에는 없었을 것입니다. 6 절의 고백처럼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다만 부 르짖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드디어 직업을 찾고, 드디어 조그마하지만 이것이 크게 만족될 수 있는 것은 아직은 아닐지 모르지만 그래도 내가 도전할 수 있 는 작은 사업의 장을 발견할 수 있 었던 사람들 그들은 아마도 이런 고 백을 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7절 의 고백처럼, 7절을 다같이 읽겠습 니다.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직업을 찾고, 사업을 찾고, 사랑을 찾고.. 또 어떤 사람들은 오랫동안의 그런 인생의 방황을 그치고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내 삶의 진정한 안식처를 찾고 저 무덤 건너편의 영원한 천국의 소망 을 찾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렇게 고 백할 수가 있습니다.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나를 거할 성에 도달시키 셨도다. 이런 사람들에게 마음속에 서 나올 수 있는 고백은 하나밖에 없어요. 그 고백이 바로 8절의 고백 입니다. 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 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 찌로다 할렐루야! 할렐루야! 이것이 광야의 방황, 그 방황의 고통, 방황 의 악속에서 그들이 체험한 하나님 의 선하심에 대한 고백이었던 것입 니다. 두번째 케이스는 죄의 사슬에 속박 되었을 때였습니다. 죄의 사슬에 속 박되었을 때! 그것이 10절부터 14절 까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어느 날 갑자 기 내 인생이 깊은 궁지속에 빠져서 꼼짝 달싹 할 수 없이 내가 온 몸이 붙들어 매인 바 된, 사슬에 메인 것 같은 인생의 구속을 느끼는 순간들 이 있습니다. 주저앉아 버렸어요, 어 쩔수가 없어요, 나갈 수가 없어요. 꼼짝 달싹할 수가 없어요. 쇠사슬이 나를 얽어매고 있는 그런 인생의 궁 지 속에 빠져 버리는 체험을 할 때 가 있습니다. 10절의 체험이 아마도 그런 체험을 대표하는 고백일 것입 니다. 10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사람 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 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사슬에 매였 다 이렇게 말합니다. chain에 매였 다. 그냥 사슬이 아니라 쇠사슬! 내 힘으로는 깰 수 없는, 내 노력으로 는 깨뜨릴 수 없는, 벗어날 수 없는 그런 강력한 사슬이 나를 죄고 있는 이 삶의 곤고함, 이 아픔, 이 압력, 이 pressure속에서 인생이 주저앉아 버리는 체험을 하신 적이 없으신지 요? 그러나 점차 나는 이 사슬의 책 임이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발견 합니다. 그것은 내 죄가 만들어 낸 사슬, 다른 사람이 만들어 준 사슬 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만든 내 어 리석은 결정이, 내 과오가, 내 죄가, 내 잘못된 부도덕한 결정이 나 스스 로를 얽어매었던 사슬인 것을 우리 가 발견하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시 편 기자의 체험이 그렇습니다. 그래 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11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으로 인해서 내가 만든 이 죄의 사슬이 나에게 이 속박을 가져다 주었다고 고백합 니다. 그것은 불순종의 사슬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습관의 중독 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그 것은 알코올의 중독일 수가 있고 어 떤 사람의 그것은 성의 중독일수도 있습니다. 뭔가 사슬이 나를 얽어 매어서 내 삶을 패괴하게 만들고 내 삶을 황폐하게 만들었던 이 경험속 에서 살아왔던 속박의 세월을 돌이 켜 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나는 이 사슬에 매인 채 사슬을 깰 수 없는 내 무력을 느끼면서 나는 신음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저희가 그 근심 중 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부르짖으매. 그런데 어느 한 순간 나에게 찾아온 설명할 수 없었던 놀 라운 자유가 있었습니다. 그 자유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14절을 다같 이 읽겠습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 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 한 순간 나는 자유를 발 견합니다. 서서히 어떤 사람은 오랜 과정을 통해서 얻어진 자유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침내 나는 벗어 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억압에서, 이 사슬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한 순간에 나는 모처럼, 오랫만에 자유 를 발견했습니다. 자유! 주님이 주 신 자유! 말씀이 내게 가져다 준 자 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주께서 나에게 주신 이 놀라운 자유를 발견했던 사람들! 그들의 고백은 아마도 하나밖에 없 을 것입니다. 어떤 고백일까요? 15 절을 우리 힘차게 같이 읽어요. 여 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 로다 할렐루야! 죄의 사슬의 속박! 속박은 악입니다. 속박은 고통입니 다. 그러나 이 속박의 사슬속에서 체험된 하나님의 선하심! 나를 자유 케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인자 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그의 기이 한 일을 인하여 하나님 찬양을 받으 시옵소서! 세번째 상황입니다. 세번째 케이스 는 16절부터 20절까지인데 질병으로 죽게 되었을 때의 상황, 그런 케이 스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우리 주변에서 종 종 건강을 잃어버리고 안타까와하고 있는 사람들의, 이웃들의 얼굴을 발 견하게 됩니다. 아주 극도의 건강을 잃어버리고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 얘기를 듣다 보면 내가 인생에서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다 는 내 고민조차도 그 사람앞에서는 사치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여 러분, 이 아파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나는 그저 음식 잘 먹고 소화 한 번 제대로 시켜 봤으면 좋겠어요. 한 번만 내 손과 내 발을 움직여 봤으 면 좋겠습니다. 꼼짝달싹 할 수 없 는 온 몸이 마비된 상태속에서 내가 한 번만, 내가 일어나 다시 한 번 걸어봤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한 번 만 몸을 이쪽으로 옮겼으면 좋겠습 니다. 이것이 그들의 소망입니다. 오 늘 본문에서 아마 시편 기자는 그런 비슷한 체험을 했던 것으로 보여집 니다. 병을 얻고 식욕을 상실하고 음식조차 먹을 수 없는 상황속에서 이제 거의 죽음을 느끼고 죽음의 문 턱앞에 도달하는 사람의 고백을 우 리는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18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저희 혼이 가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 도다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식 욕을 잃어버렸습니다. 죽음의 문턱 앞에 도달했습니다. 뭐, 할 일이 뭐 가 있겠어요?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한 번만 다시 건강얻고 회복 할 수 있도록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저희가 그 근심중에서 여호와께 부 르짖으매.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어요. 내가 갑자기 이 병석에서 벗어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조금씩 내 몸이 움직입니다. 식욕이 돌아옵니 다. 건강이 회복되고 있는 것이예요. 20절의 그의 체험을 같이 읽어보겠 습니다.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 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말씀을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붙 들었더니, 그리고 그 말씀을 붙들고 기도했더니 내 몸에 치료가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고치사 그 위경에서, 사경에서 나를 건지시고 다시 한 번 삶의 기회를 얻게 하신 하나님! 할렐루야! 여러 분, 이 마당에서, 이 자리에서 일어 날 수 있는 고백, 무슨 고백이 있겠 습니까? 21절을 크게 다같이 읽겠습 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 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찌로다 이것이 시예요. 단락 을 가지고 있는 시입니다. 저는 찬 송가 20장을 한번도 불러보지 못했 는데 찬송가 20장의 스토리를 제가 최근에 읽게 되었습니다. 찬송가 20 장의 제목이 다 감사드리세 입니다. 마틴 리카르트라는 독일의 목사님이 작사한 그런 찬송가입니다. 17세기 에 이 찬송가는 작시되었습니다. 17 세기의 독일은, 17세기의 구라파는 소위 페스트라는 질병이 온 유럽을 휩쓸고 다닐 때 였습니다. 이 마틴 리카르트 목사님이 자기가 목회하고 있던 그 교회안에 교구에 자기가 사 랑하는 교인들 가운데서 날마다 이 병으로 죽어갑니다. 하루에 리카르 트목사님이 장례식을 최고로 50번 한 날이 있었어요. 사랑하는 교인들 가운데 50명의 시체를 장례를 집례 해야 하는 이 분의 심경이 어떤 심 정이었을까요? 그러다 마침내 사랑 하는 아들을 또한 잃어버렸습니다. 이 목사님이 자기 아들조차 잃어버 렸어요. 이런 극한 상황의 고통속에 서 저물어 가는 한 해. 한 해가 다 저물어가는 어떤 날 그는 조용히 창 밖을 내가 보면서 내가 살아있다. 그런데 내가 살아있다. 그리고 고통 받는 이웃들을 도우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사실이 너무 감격이 되어 서 그는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이 찬송가를 작사한 것입니다. 다 감사드리세 우리 말의 가사는 조금 뜻을 의역했습니다만 직역을 해서 옮긴다면 마음으로, 손으로, 목소리 로, 나의 전 존재로 감사를 드리세. 엄마의 팔에서부터 여기까지 인도된 내 인생.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안에 서 참으로 기뻐하며 하나님의 사랑 의 선물들을 누리며 살게 하시니 감 사를, 다 감사를 드리나이다. 때로 인생 길에서 우리가 건강을 잃어버 리고, 때로 질병을 얻고 그러나 다 시 질병에서 기적같이 회복된, 여러 분, 내가 병에서 회복된 하나 하나 의 사건이 기적인 것을 아십니까? 그리고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기적 인 줄 아십니까? 이 회복의 기적, 이 치유의 기적을 맛보면서 질병은 고통이지만, 아픔은 고통이지만, 죽 음을 경험한다는 것은 분명히 고통 이고 악이지만 그러나 거기서 다시 소생의 회복을 체험한, 하나님의 선 함을 체험한 사람들의 고백은 뭐예 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하나님 찬송을 받으시옵소서, 할렐루야! 마지막 네 번째의 케이스는 22절부 터 30절까지입니다. 바다에서 풍랑 을 만났을 때의 체험입니다. 사랑하 시는 여러분, 인생을 살다보면 어떨 때는 광야의 사막 길같은, 메마른 사막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는 그런 사막을 경험하는 순간들이 있습니 다. 뼈저린 외로움, 눈물겨운 방황, 앞이 전혀 예측되지 못하는 그리고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길, 그 건조 한 침묵의 길, 우리가 이런 인생길 을 걸어가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런 가 하면 또 어떤 순간은 갑자기 내 가 깊은 풍랑속에, 바다의 한 복판 속에 빠져서 일어나는 그 급류속에 물살과 그 풍랑속에서 어쩔 줄 모르 고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하나님 살려주세요! 소리칠 수 밖에 없는 그 풍랑을, 인생의 풍랑을 경험하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것은 인간관계 의 풍랑일 수 있습니다. 그것은 내 사업의 장에 몰아닥친 풍랑일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갑자기 직장의 해 고라는 그 풍랑일수도 있습니다. 그 물살을 경험한 사람들의 고백인 것 입니다. 25절에 보시면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물결 을 일으키는도다 저희가 하늘에 올 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한 마 디로 이 사람들의 상태를 27절이 적 나라하게 묘사하고 있지요? 27절을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저희가 이 리 저리 구르며 취한 자 같이 비틀 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한 마디 로 혼돈한 삶, 어쩔줄을 모르겠어요. 할 일이 없어요. 기도할 수 밖에 없 어요 호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마 지막 잎새같은 내 최후의 희망이신, 그리고 나의 최후의 구원이신 하나 님앞에 도움을 구할 수 밖에 없습니 다. 하나님 살려주세요.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어제까지 나는 이 속에서 도저히 허우적거리고 빠 져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한 내 인생 의 풍랑이 한 순간 잔잔해 지기 시 작했습니다. 유리 바다같은 평안이 내 인생의 장에 다시 찾아옵니다. 자, 그것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 까? 2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광 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 시는도다 30절까지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 다 할렐루야! 바다는 잔잔해졌습니 다. 내가 타고 있는 내 배는 다시 소원의 항구를 향해서 내 배는 순항 하기 시작합니다. 그 역경과 풍랑의 급류를 빠져 나와서, 다시 소원의 항구를 향해서 순항하기 시작한 이 뱃전안에서 내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격의 찬양이 있습니다. 무슨 찬양 일까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 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 를 찬송할찌로다 할렐루야! 그렇습 니다. 광야의 사막의 길, 그것은 고 통입니다. 죄로 말미암은 쇠사슬- 고통입니다. 질병으로 말미암아 느 끼는 죽음- 고통입니다. 바다에서 만나는 풍랑- 고통입니다. 그것은 악입니다. 그러나 이 악한 상황에서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 험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 은 뭡니까? 두 가지 입니다. 그것이 처음 절과 마지막 절에 나타나 있습 니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로 사는 것입니다. 1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 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 이로다.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 했다면, 그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 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당 연한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께 감사를 드 리는 삶, 감사하는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22절에 보면 시편 기자는 단순한 감사로만 만족할 수 가 없었던 것이에요. 특별한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22절에 어떤 고백을 드립니까? 22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 하여 그 행사를 선포할지로다 특별 한 의미의 감사의 축제를 마련하고 싶어했어요. 감사의 celebration 을, 감사feast를, 감사의 축제를 만들고 그리고 정식으로 하나님 앞에 감사 를 표현하는 그 아름다움을 주 앞에 드리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그는 희생의 제물을 준비하고 다시 말하면 감사의 예물 을 준비하고 나와서 하나님앞에 정 식으로 한번은 이 축제의 감사를 드 리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가 감사주일을 갖는 의미라고 생각 해요. 늘 감사하지만, 언제나 감사하 지만 그러나 특별한 의미의 축제를 준비하고 하나님 감사해요. 감사의 제사를 드리면서 그 하나님 앞에 찬 양을 드리고 그리고 이 감사의 대상 이 되시는 그 하나님을 선포하고 싶 어했던 것입니다. 감사의 제사를 드 리며 노래하여 그 행사를 선포할지 어다. 그리고 이러한 모멘트를 계기 로 해서 내가 더욱 감사하는 삶을 살기로, 감사하는 자로 주 앞에 살 아가기를 결단할 수 있다면 오늘의 감사의 이 예배는 주 앞에 드려지는 감사의 축제가 될 줄로 믿습니다. 감사하십시오! 그리고 마지막 한 가 지가 더 있어요. 그것은 지혜로운 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마 지막 구절입니다. 마지막 절을 다같 이 읽겠습니다. 지혜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달았다면 이제 부터 지혜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라. 42절에 보면 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 하며 모든 악인은 자기 입을 봉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 았습니다. 더 이상 나는 침묵할 수 가 없습니다. 우리는 이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를 간증하며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선하 심을 선포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선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예요? 하나님의 선을 체험 하는 사람으로서 나도 이제 선을 베 풀며 그리고 선을 증거하며 살아가 는 삶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아 무도 자기의 선한 행동을 통해서 구 원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선함은 언제나 주 앞에는 부족할 따 름입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뭐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 서 난 것이 아니니. 우리의 선한 행 동을 통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 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 다. 에베소서 2장 10절에 보시면 우 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새롭게 지 어진 사람,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주 앞에, 주 안에서 새롭게 지어진 자라.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다같이 따라 하 세요.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라. 선한 행동을 통해서 구원을 얻을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구원 받은 사람은 이제부터 선한 일 을 위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 한 자로 선을 나눌 수 있는 자로 살 아가야 한다고 성경은 가르치는 것 입니다. 구체적으로 선을 나눈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겠어요? 그것은 내가 통과했던 인생 길을 생각해 보 면 돼요. 자, 광야에서 방황했던 순 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내 주 변을 돌아보세요. 광야에서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이웃들의 얼굴들이 보이지 않는가? 죄의 사슬에 얽매인 채 고통 받고 있는 이웃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까? 혹은 질병에 걸 려, 죽음의 두려움과 불안 앞에 서 있는 내 이웃들의 얼굴이 보여지지 않습니까? 혹은 바다 한 복판에서 급류와 풍랑을 만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이웃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습 니까? 그들 곁에 다가 가세요. 위해 서 기도해 주세요. 따뜻한 손으로 잡아주세요. 그들을 붙들어 일으켜 세워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 을 증거해 주세요. 그들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도록. 그 때 내 인생 속에서는 선함의 열매가 맺어 지는 것입니다. 선함의 열매.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그 다음에 양선, 선 함. 선함의 열매. 내가 하나님의 선 하심을 체험한 사람으로서 또 선을 베풀고 나누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 님은 나를 바라보시면서 이렇게 말 씀하실 것입니다. 너는 나의 착하고 충성된 종이야! 우리는 예배의 자리 에서, 우리는 축제의 자리에서 이렇 게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당 신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고 백을 받으시면서 또 나를 향해서 이 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도 나의 착한 자녀야, 착한 아이야.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한 사람에 관해서 성경이 기록한 아름다운 이런 증언을 발견 하게 됩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 다. 이것은 우리가 보통,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착한 사람이야 라고 말하 는 일반적인 뜻이라고 저는 생각하 지 않아요. 그가 예수 믿고 그가 성 령 받고, 그가 성령을 체험하고 하 나님의 은혜로서 살아가는 동안에 그에게 생겨진 독특한 삶의 quality 를 바라보면서 성경이 증언한 놀라 운 표현입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 이다 인생은 반드시 쉬운 것만은 아 닙니다. 인생의 길에는 고통이 있습 니다. 광풍이 있습니다. 광야의 어두 움이 있습니다. 악함이 있습니다. 그 러나 우리는 이 악함 속에서 엎드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심을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선하심이 너무 감사하고 눈물겨워 선함을 베푸는 자로 살아갈 때 주께 서는 나를 보시고 또 감격해 하시면 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의 착한 아이야! 이 감사의 계절, 감사 를 드리면서 이제 주 앞에 선함의 삶의 열매를 드릴 수 있다면 우리 주님은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이것 이 주 앞에 드리는 오늘 우리의 감 사의 열매요, 착함의 열매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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