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자라가십시오
베드로후서 3:18
아주 아름다운 찬양 감사드립니다.
에~저가 알고있는 성도가운데 아~영어로 표기하면 ‘P’로 시작되는 P씨, P사장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잠시동안 그분의 익명을 좀 사용하겠습니다. 그는 20대 초에 예수를 믿고 아주 큰 은혜를 체험했습니다.자기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실에 너무 감격했고, 아~, 그는 신앙을 기쁨으로 시작 했습니다. 기도 응답의 기적도 체험 했습니다. 아~이분은 수산업을 운영 했는데요,사업이 어려울 때 마다 주 앞에 매달려 기도 했습니다.그때마다 하나님의 그 특별한 간섭과 도우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그를 가리켜 아주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그런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요새말로 말하면 아주 잘 나가는 그런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사업이 좀 어려워지고 흔들거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자기 사업을 구제 하기 위해서 아~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든 사람을 만나서 타협을 시도 합니다. 아~그분과 만나서 여러가지 대화를 하다가 문득 그분이 아~ 이 P사장에게, P씨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그래요. ‘자네 예수 믿나?’ 순간적으로 이 사람의 머리 속에 ‘아~저분은 아~다른 종교를 갖고있는 분이구나 내가 만약 예수 믿는다고 하면 혹시 이 결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는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려 마음에 없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교회 좀 나가본 일이 있지마는 지금은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얼결에 이런 대답을 해 버렸다고 그래요. 그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그래서 그는 집에 돌아와서 계속 그것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의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훗날 회복하고 다시 이분은 쓰임을 받기도 했습니다마는, 그것이 늘 자기의 삶에 결정적인 오점으로,아픔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세상을 아~떠나갈 무렵이 되었을 때, 그는 죽음을 예감하면서 친구들에게 편지 한 장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처럼 이런 신앙의 실족이 없도록,또 자기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한 이유가 그의 삶 속에 훈련이 없었고, 일관성 있는 안정적인 신앙의 성숙을 못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습니다. 자기 신앙의 기초가 얼마나 취약했는가를 정직하게 고백하면서 자기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나처럼 신앙생활 해서는 안된다는 편지 한 장을 쓰게 됩니다.
이 편지가 바로 본문입니다. 베드로후서 입니다. 그게 베드로후서, 사장 이름 P씨는 바로 ‘피터’ 씨, 베드로 씨 입니다. 하하~ 아~ 제가 수산업을 했다고 그랬는데 그분이 본래 어부가 아니였습니까? 하하~녜녜, 그 물위를 걸어갔으니까 기적을 일으킨 사람이죠.녜, 자기의 삶이 흔들렸을 때 세번씩 이나 예수님을 부인 하고 또 저주까지 했든 사람이죠. 이것이 자기마음속에 늘 평생에 후회로 남았든 것도 사실이였을 것입니다.
자, 오늘 베드로 후서를 펼쳐놓으시고 베드로후서 1장 10절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이런 자기 일생의 어떤 오점에 관해서 잊을 수 없는, 마음속에 기억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여기서 우리가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베드로후서 1장 10절을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다같이 시작,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베드로가 실족이라는 단어를 쓰죠? 실족,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견고한 신앙이 필요하다 그렇지 아니하면 실족할 수 있다 라고 편지를 쓰면서 아마 뼈아픈 자기자신의 실족의 경험을 반추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계속 읽어보시면요, 14절 보세요.14절 베드로후서 1장 14절에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베드로가 지금 죽음을 예감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육체의 장막을 벗어날 때가 나에게 가까워 오고있다.
그 다음절 보세요. 15절에 보시면 베드로 후서 1장 15절에 보시면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내가 떠나간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 내가 이 편지를 쓴다.그래서 베드로 후서는 베드로의 유언 같은 마지막 편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편지의 마지막에서, 마지막으로 베드로가 강조한 것이 뭔 줄 아세요? 그것이 본문인데요? 베드로후서 3장 마지막 절 18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시면,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어떻게 하라고 그랬습니까? “자라가라!”그랬어요. “자라가라” 그 신앙의 성장이 자라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그는 여기서 부탁하고 있습니다. 일관성 있는 신앙의 성숙, 성장,이것보다 우리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베드로가 이렇게 강조합니다.
우리는 지난주일까지 우리교회 일년 중에 가장 크다란 잔치인 이웃초청 잔치를 했습니다. 많은 불신자 이웃들이 다녀갔고요, 그리고 나 예수 꼭 믿겠다, 나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싶다. 이런 진지한 신앙생활의 결단, 최초의 결단,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다고 자기
손으로 결심하고 카드를 써낸 사람만 453명 입니다. 453명, 그러니까 아마 카드 접수되지 않는 카드까지 합하면 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번 기회에 와서 복음을 듣고 결심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습니다. 아름다운 출발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분들에게는 이제부터 가장 중요한 과제는 뭐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그 분들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신앙이 성장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우리의 신앙이 매우 일관성 있게 그리고 건강하게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우리가 성장해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사도 베드로는 자기 일생의 경험에 반추하여 신앙성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두 가지의 요소를 강조합니다. ‘오직 우리 주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첫째로 은혜란 단어를 씁니다. 그레이스, 은혜, 은혜와 그 다음에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은혜와 지식’ 두개의 단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신앙이 제대로 성장할 수가 있을까요? 첫째는 은혜, 즉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사모하셔야 합니다.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 하는 본질적 메세지가 바로 ‘은혜’라는 단어 안에 들어있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제가 언젠가 그 얘기를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마는 영국에서 한번 세계적이 종교학회가 종교회의가 열린 적이 있어요. 그래서 종교를 연구한 사람들이 모여서 여러가지 종교들을 비교하고 포럼을 갖고 페너를 갖고 토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기독교 차례가 왔을 때,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이 무엇이냐?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이 무엇이냐? 한 학자가 말하기를 아마도 그것은 ‘성육신’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신 성육신이야 말로 기독교의 가장 독특성이 아니겠습니까? 누군가가 반론을 제시하기를 물론, 성육신은 기독교 신앙의 독특한 요소들중의 하나인 것은 사실이지마는,신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나타났다, 이런 얘기는 다른 종교의 경전에도 없지 않아 있다고, 또 누군가 말하기를 아무래도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은 부활에 있지 않겠느냐? 부활신앙, 부활신앙도 기독교의 독특성이죠. 그러나 또 누군가가 말하기를, 그런데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얘기는 다른 종교의 경전에도 종종 있다고,
이때 옥스포드와 캠브리지에 평신도 신학자요 문학가였든 유명한 씨에스 루이스 교수가 벌떡 일어 섰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 대답은 의외로 쉽습니다. 기독교의 독특성은 은혜입니다. ‘은혜’ 이 말 앞에 모두가 다 동의했다는 거죠. ‘은혜’ 은혜가 뭡니까?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베풀어지는 사랑, 자격이 없는데,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데, 죄를 범한 인간,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받아 마땅한데 오히려 하나님이 그들을 받아주시고 용납하고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다 이것이 은혜, 그레이스, 은혜!.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시면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뭐에요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 다음에는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자, 우리의 행동을 들고 창조주 앞에, 심판자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자기의 행위를 들고? 아무도 최선의 행위도, 나의 몸부림치는 나의 의를 추구하는 행위도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고, 행위로 보면 주 앞에 설수도 없는 이 죄인들, 주께서 받아주시고 용납하시고 용서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다. 이것이 놀라운 은혜라고 여러분 믿습니까? 은혜! 놀라우신 은혜, 어메이징 그레이션, 놀라운 은혜, 이것이 바로 은혜란 말이죠. 그런데요 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구원 받은 것 만이 은혜가 아니에요. 구원 받은 것만이 은혜가 아니고,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의 여정 속에서 지속적인 하나님의 은혜들을 우리는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구원받을 때만,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만, 용서 받을 때만 이 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도 우리는 주의 은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 교회에서 일어났든 일이라고 그러는데요 이 얘기도, 아~그 구라파 같은데 가면 여름철이 되면 아~그 동네에 있는 교회 중에 몇 교회가 문을 닫아요. 백케이션 가요. 네,그래서 다같이 한 교회에 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웃 교회들과 더불어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도 교인도 백케이션, 이번 여름에는 당신 교회에서 책임을 지십시요, 그래서 아마 몇 교회들이 같이 모이는 그런 오케이죤, 그런 아마 계기가 아니였는가 싶어요. 그래서 이제 이웃 사람들과 같이 모였는데 그날 예배는 마침 성찬식이였습니다. 성찬식,그래서 이제 아~집례를 하고 어떤 목사님이, 또 성찬위원들이 있는데 성찬위원으로 그날 봉사하시는 장로님 한 분이 판사로 지내신 분입니다. 재판관이였는데 성찬기를 들고 이렇게 돌다가 한 분 앞에 딱 가서 깜짝 놀라는 거에요. 왜냐하면 아주 유명한 그런 살안사건이 하나가 있었는데 그때 그 사건을 맡아서 이 판사였든 장로님이 처리를 하신 겁니다. 녜, 하, 그 사람이 와있네.자기가 판결을 내렸고, 형을 살았고, 그리고 나오셨던 그분이 딱 서있으니까 아, 이분이 살인을 했든 그런 분인데, 아, 이 분이 예수 믿고 성찬식에 참여해서 성찬을 받는다, 그 얼마나 놀라운 일이에요? 그래 깜짝 놀란 거죠.녜, 그 광경을 보고 집례하든 목사님도 알아차렸어요. 워낙 유명했든 사건이였으니까, 그래서 예배가 끝나고 나서 목사님이 장로님 만나서 ‘장로님, 참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지요?’ 그랬더니 이 장로님이 의외의 얘기를 하시드래요. 그게 뭐냐하면 ‘아, 목사님은 아마 그분이 저런 삶을 살던 분인데 이제 예수 믿고 나와서 성찬까지 참예한다 그래서 놀라셨겠죠?’ ‘아, 물론이죠’ ‘녜, 저도 놀랬어요. 저도 놀랬는데요 제가 그분을 만나고 조금 있다가 성찬에 저도 참여하면서 저는 다른, 다른 것을 생각했습니다.’ ‘무얼 생각하셨습니까?’ ‘제가 그 케이스를 잘 아는데 사실은 그분의 입장에 제가 섰다면 저도 아마 살인을 했었을 꺼에요. 그런데 내가 살인자가 안되고 이렇게 주님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 저는 생각해보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더라구요, 그것이 은혜더라구요’ 이런 의외의 얘기를 하는 거에요. 여러분!우리가 용서 받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만, 우리가 죄 짓지않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축복된 삶을 날마다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 이것도 은혜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자기 인생이 끝나는 마지막 시점에서 살아왔든 자기 인생을 쭉 돌이켜보면서 이런 유명한 고백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나에 나된 것은’ 무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직 나에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아,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구나, 그 은혜를 깨달을 때,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이는 신앙은 절대로 자라나지 않아요. 여러분 교회에 아무리 나와도 응? 교회 나오는 회수가 아무리 많아도, 아니 한 오백년! 하하~, 여러분들이 교회 나와도 이 은혜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면,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이는 신앙은 결코 자라나지 않습니다.
아,그래서 골로새서 1장 6절에 보시면 바울사도가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 골로새서 1장 6절에 보시면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자, 골로새 성도들에게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복음을 듣고 그 다음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따라서 하세요. ‘참으로,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자, 우리 신앙이 열매를 맺고 자란다, 언제부터 자란다로 그랬습니까? 복음 듣고 나서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순간부터, 무슨 얘기에요? 아, 하나님 사랑이 놀랍구나, 나 같은 죄인을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다니, 참 놀랍구나! 이 은혜를 깨달은 순간부터 열매를 맺고 내 믿음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렇게 바울사도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은혜에 대한 깨달음,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 또 더욱 은혜를 사모합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유명한 여자 룻을 생각해 보세오 이 여인도 본래는 신앙인이 아니였는데 시집가서 아마 남편 또 시부모님을 통해서 신앙을 갖게 되었겠죠. 자, 남편은 불행이도 일찍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시어머니 따라, 나오미 따라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찾아오죠. 앞길이 막연했어요. 앞에 뭣이 기다리고 있는지 잘 몰라요. 녜,이런 시점에서 구약성경에는 이런 참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는 사람들을 세우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기업 무를 자, 기업을 회복시켜줄 자 라고 부르는, ‘고 엘’ 이라고 불렀는데요, 이것은 신약시대에 오실, 예수님에 대한, 구원자에 대한 그림자에요. 그런데 이런 외로운 땅, 앞길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줄 모르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룻이 구속자의 역할을 할 보아스를 만나잖아요.그때 룻이 보아스 앞에 엎드리면서, 구원자 앞에 엎드리면서 이런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내 주여!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아주 유명한 고백이죠. 다같이 한번 ‘내 주여,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녜, 이 구원자 앞에 엎드리면서 고백하는 이 말,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이게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의 마음의 토양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여러분 어떤 마음이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일까요? 한 설교가가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속에는 세가지가 있다고 그랬어요.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 이미 베풀어진 은혜에 대해서 아, 감사하구나 감사한 마음, 둘째는 의지하는 마음, 은혜를 주신 그분을 의뢰하는 마음, 그 다음에 세 번째는 기대하는 마음, 그분을 통해서 더 큰 은혜를 받을 것을 기대하는 마음, 이것이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의 토양이다 그랬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좋아하는 한 찬송가의 가사는 이런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있는 케이스 라고 생각해요. 잘 아시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소위 ‘어메이징 그레이스’ 이 찬송가에 보시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뭐에요? 주님의 은혜 고마워, 놀라와, 이것은 과거에 베풀어 주신 그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인데,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도 그분 때문임을 알고, 그분을 의지하는 마음이 나타나고 있지요?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이 찬송가에 보면은 또 나를 장차 뭐에요?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녜, 내 앞길도 그분이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다, 잘 나타나요.
이 찬송가를 작사한 분이 ‘쟌 유턴’ 이라는 목사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분이 본래 목사님이 아니라 노예 상인 이였어요. 노예상인, 노예를 사고 파는, 그런 노예 장사꾼이였습니다. 그런데 이것 하다가 장사가 잘못되어서 자기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아주 기구한 운명이죠. 그래서 배에서 종 노릇 하는 노예의 일을 얼마동안 했는데 그가 노예의 자리에 있었을 때, 어느날 그 작은 신앙 책자 하나를 손에 쥐게 됩니다. 그 책자를 읽다가 큰 깨달음이 왔어요. 자기가 지금 노예 일을 하고 있지만 육체적인 노예보다 더 비참한 것은 자기가 죄악의 노예다. 죄에 얽매여 가지고 죄에 끌려다니는 내 모습,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는 자기자신의 죄의 사슬에 매여있는, 자기 자신의 실존을, 자기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이 사람이 깨닫습니다. 그래 그 책을 읽다 말고 기도를 해요.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복음이 깨달아집니다.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내 결단으로 풀어버릴 수 없는 죄악의 사슬, 하나님이 그런데 예수님을 보내시고 내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시고 예수를 믿는 자 죄사함을 받는다! 이 복음이 깨달아지는 그 순간 자기 마음속엔 놀라운 자유가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그가 붓을 들어 작사한 것이 바로 이 찬송가에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든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다’ 그분이 전도자가 되고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을 잘 증거하는 사람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은혜,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이미 은혜를 깨달은 자, 내 인생의 앞길도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사랑하시는 여러분, 누가 신앙이 자라갈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진정한 신앙의 성숙이 이루어질 수가 있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주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그래서 어떻게 신앙이 자라갈 수가 있어요?
첫째,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자, ‘우리 주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녜,그런데 여기서 바울 사도가 은혜를 주실, 베드로 사도가, 바울이 아니라, 베드로 사도가, 베드로가 은혜를 주시는 분을 어떤 단어로 이 구절에서 묘사했습니까?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자, 예수님에 대해서 두가지 명칭를 썼어요. 뭡니까? ‘주님과 구주’ 녜,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신 구주일뿐만 아니라,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우리의 고백은,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지마는 구주 이지만, 그래서 십자기에서 돌아가셨지만, 그분이 부활하신 이유, 나의 주님이 될려고 현제 여기서 살아가는 나의 삶을 통치하고 다스려주시는 놀라운 분 그분의 은혜, 이 은혜가 없이는 자라나지 못한다. 그래서 오직 우리 주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다음 두번째는 뭡니까? 저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가라 두번째는 지식이에요. 그래서 우리 신앙이 자라 갈려면, 둘째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저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가라, 그래 둘째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가셔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부 관계가 성숙한다 라고 말할 때, 부부관계가 성숙한다는 것이 무었을 뜻 할까요? 부부 관계가 참 아름다운 사랑 가운데 성숙해 간다.그것은 다른 것이 아닌 것 같아요. 그것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에요. 남편이 아내를 알아가고, 아내가 남편을 깊이 알아갑니다. 알아 가면서 더 이해하게 되고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이해하고, 이해 하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저는 결혼하기 전에도 제 아내를 무척 잘 알았습니다. 언제부터 알았느냐 하면, 중학교 3학년때부터 알았습니다. 제 아내를 중학교 3학년, 제 아내가 중학교 3학년이였을 때 부터 제가 알았어요. 또 저와 같이 성경공부도 하고, 그러니까 제가 얼마나 잘 알았겠어요? 그래서 결혼할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뭐 우리는 이런 대로 사는 거다 너무 잘 아는 상대였기 때문에, 그런데 결혼 딱, 하고 신혼 여행 갔다 와서 한달 되기 전에 제가 제 아내보고 이런 얘기를 했어요. 무슨 얘기 했을 것 같아요? 제 아내를 쳐다보면서 그랬습니다. ‘당신은 알다가도 모를 여자다’ 하하~ 아, 그냥 모르는 것들이 막 나타나더라구요. 몰랐든 부분들이, 제가 제 아내를 많이 몰랐더라구요. 알았다고 착각을 했어요 제가, 그런데 너무 몰랐어요.
저는 아마도 베드로의 체험이 그러하지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부르심을 받았잖아요. 수제자, 그러니까 다른 제자들 앞에서 아마 어깨에 힘을 주었을 거예요. “야, 예수님? 내가 잘 알아 예수님은 내 말대로만 한다” 자기가 예수님을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제자들 가운데서 주님을 가장 격렬한 언어로 부인하고 저주했던 베드로 또 그가 이렇게 실족하고 타락 후에는 애써 예수님을 외면하고 피해서 도망다녔잖아요. 예수님을 알았을까요? 베드로가 내 실수 내 상처 내 실족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든지 나를 용납해주신다. 이해하신다. 이런 예수님을 알았더라면 도망다닐 필요가 없었는데 그걸 나중에 베드로가 나중에 깨닫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후서를 쓰면서 베드로 후서 1장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서 베드로 후서 1장2절에 베드로의 마지막 편지 첫번째 부분에서 베드로가 어떤 단어를 애써 강조하는지를 주목해 보십시오. 베드로 후서 1장2절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자, 어떤 단어가 강조되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뭐예요? 앎으로.
하나님 알아야되요.예수님 알아야 되요.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계속 읽어보시면 그 다음에 8절, 베드로후서 1장 8절 또 읽어요. 시작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함이라.” 나는 여러분들이 정말 열매 맺는 신앙이 될려면 예수님을 알기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일에 게으르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부지런히 알아가십시오. 베드로가 힘써 무슨 단어를 강조해요?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어떻게 알아 갈수가 있습니까? 이건 기초예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베이직이예요. 예수님을 알아가는 방편,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말씀으로, 하나는 기도로, 말씀과 기도예요.
첫째는 말씀으로, 말씀으로 예수님을 알 수가 있지요. 성경으로 예수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성경이 두껍지만 성경책 전체의 메시지의 초점이 바로 뭡니까?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시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바로 (누구에 대하여?)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의 단일초점 성경의 유일한 주제 성경의 대주제 핵심 결국은 누구예요? 예수님이예요. 그러니까 성경알면 누구 알아요? 예수님 알아요. 그러므로 성경이라는 것은 주님의 주님의 객관적 정보를 제시합니다. 예수님의 객관적 정보를 주어요. 그런 성경 안 읽고 어떻게 예수님을 알수가 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성경과 나의 거리는 나와 예수님 사이의 거리다. 교회에 왔다 갔다 하시는 분은 예수님 몰라요.성경공부 하셔야 되요. 이제부터 그리고 성경 읽으셔야 되요. 성경 알아야 되요. 그래야 초점이신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예수님을 아는 방법이 대체로 두 가지예요. 어떤 사람은 특별한 체험을 합니다. 체험으로 예수님을 알수 가 있어요. 그러나 체험이라는 것은 굉장히 주관성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흔들릴 수가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체험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뭐냐? 말씀입니다.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라 말합니다. 계시란 말은 이상한 계시란 말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수가 있는 거예요. 베드로는 놀라운 체험들을 많이 했지만 체험했다고 해서 베드로가 신앙생활을 견고하게 했습니까? 아니예요. 그걸 나중에 베드로가 깨달은 거예요.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장 우리가 계속 다시 좀 읽어 보시면요 베드로후서 1장 다시 돌아와보세요. 그리고 16절부터 보시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다”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위엄을 눈으로 목격하는 체험을 했다. 17절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하늘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들었다. 이는 내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다.18절에 보시면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친히 이 소리를 들었다” 여러분, 예수님의 놀라운 모습이 나타나고 그리고 예수님을 향한 하늘의 음성이 들려오는 체험.
베드로가 어디서 했습니까? 변화산에서, 야고보 요한과 올라갔다가 예수님과 올라갔다가 예수님이 누구와 더불어 나타났어요? 모세와 엘리야와 나타나고 변화되고, 하늘에서 음성이 나와서 내사랑하는 아들이고 기뻐하는 자다. 얼마나 놀라운 체험했어요. 그러나 이 놀라운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절을 주목해보세요. 그 다음절입니다. 19절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19절 다같이 앍어요. 시작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에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 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네, 내가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하고 놀라운 소리를 들었지만 19절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 이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뭘 말해요? 성경을 얘기 합니다. 그 다음에 보시면 성경, 체험이 중요하지만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뭡니까?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흔들림 없는 말씀, 이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읽을 때 우리가 정말 주님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처음 신앙생활 하신분들이 이 말씀이 어렵죠. 성경이 네, 어려워요. 사실, 쉬운게 아니예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읽다가 어려운게 나오면 그냥 지나가세요.고민하지 말아요. 절대로 고민하지 말아요. 억지로 이해할려고 하지마세요. 이 베드로후서 전체가 뭐냐 하며는 성경 얘기를 계속하면서 베드로가 이제 1장 마지막에 성경 얘기를 하면서 그 다음에 그런데 성경 읽다가 해석할 때 억지로 하지 말아라, 이게 계속 강조하는 내용이예요. 억지로 하게 되면 잘못하면 이단에 빠져요. 그래서 베드로후서 3장 마지막부분 보세요. 마지막부분에 16절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6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3장 16절, 시작.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니까 억지로 풀지는 말아라 모르면 그냥 지나가라는 말, 여러분 어린아이들에게 딱딱한 음식 주면 소화합니까? 못해요. 그럼 어떻게 해요? 억지로 먹이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기다려요. 자라나면 딱딱한 음식도 먹게 되요. 음식을 먹다가 생선가시가 씹혀요. 어떻게 해요 그거 씹지 말아요. 그냥 뱉어요.그냥 지나가시면 되요.성장하면 나중에 다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너희가 이런 것들을 주의하면서, 그러나 성경에서 알수 있는 것 이해할 수 있는 것, 그것에 은혜를 받아요. 그 말씀을 취해요. 그 말씀을 붙들어요.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사랑하시면 되는거예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신앙이 자라갈수가 있습니까?
이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성경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럴 때 주님을 알아가는 놀라운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
두번째는 뭐예요. 말씀으로, 또하나는 기도함으로, 기도함으로 주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부부관계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알아야한다는,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알아야되요. 그 알아보는 방법중에 하나가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젊은 부부들은 내가 결혼했기 때문에 남편이나 아내를 잘 안다고 전제하지 말아요. 알아보세요.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내 아내가 어린시절에 어떻게 자랐는지 성장과정도 한번 자세히 알아보시고 어렸을 때 인간관계, 어렸을때 받았던 상처들 그런것들이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거든요.
그런것들을 잘 연구하면 아, 내 아내가 내 남편이 지금 그래서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어떻게 됩니까? 이해가 되요.이해가 됩니다. 또 기질을 연구해보세요. 요즘은 뭐 상대방을 알아보는 심리적 도구들이 많이 발전해 있단 말이죠.
MBTI해보던지, 기질연구. 아, 우리 아내가 남편이 기질이 이렇구나 이래서 저 여자가 저렇게 행동하는구나. 뭐가 되요? 이해가 되요, 이해가. 굉장히 필요한 것이예요.너무 전제하지 말고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연구를 해야 되요.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 연구에 의한 정보만으로 부부관계가 또 성숙하는 것은 아니예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화하는 일입니다. 부부가 함께 대화를 해야 해요. 깊이 있는 대화, 내마음속의 고통이나 아픔도 털어놓고 대화하면 아, 내 아내가 이런 아픔이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을 정확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또 객관적 정보가 필요하지만 정보못지 않게 주관적으로 내가 스스로 겪는 체험이 중요해요. 기도는 바로 이 체험을 제공합니다. 기도하면 주님의 인도를 체험합니다. 기도하면 주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제가 최근에 그 기독교 카운슬링, 크리스챤 카운슬링 잡지, 외국에서 온 잡지를 읽다가, 한기사를 읽고 감동을 받았어요. 은혜를 받았어요. 뭐 책이 온다고 해서 다 앍는 것은 아니예요, 저두요. 그런데 그중에 한 제목이, 아티클의 기사의 제목이 제눈을 확 끌었어요.하나님의 전화, 하나님의 전화. 재밌지 않아요? 하나님의 전화 이게 뭐야, 그래서 그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켄 가웁, 켄 카웁이라는 크리스챤 카운슬러가, GAUB이라는 이름을 가진 카운슬러가 쓴 간증이었습니다. 일종의, 이 사람은 워 카운슬링 오피스를 사무실을 갖고 사람들을 상담도 해주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대답도 해주는 카운슬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자기 직업에 대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스트레스가 느끼고 정말 내가 내 직업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든 거예요. 그래서 허탈감도 생기고 내가 아무리 도와도 사람들이 변하지 않은 것 같고 이러한 어떤 직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허무감을 가지고 씨름하던 어느날 전도를 받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챤이 되었어요. 그런데 예수를 믿은 후에도 자기 직업에 대한 확신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정말 내 직업을 쓰셔서 내가 보람 있는 인생을 살수가 있을까? 이런 회의가 자꾸만 생겨요. 그런데 자기가 초신자니까 교회에 나갈 때마다 성경공부 할 때마다 기도하라고 그러니까 “아! 내가 직업에 대해 기도 안했구나.” 그래서 기도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 정말 이 직업 계속해야 해요? 이 직업 정말 보람 있어요? 하나님 내 직업을 쓰실 수 있습니까?” 이런 기도를 하던 차였어요. 어느날 자기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습니다. 데이리 퀸이라는 아이스크림 팔러에 가서. 그런데 자기는 좀 들어가고 싶지 않았대요, 그날. 그래서 애들 돈 주고 “너희들 가서 아이스크림 사먹고 있어. 아빠는 좀 있다 들어 갈게” 그리고 먼저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여보내고 이 켄 가웁이라는 카운슬러는 그 주차장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주차장에 차 세워 놓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인생 생각이 나서 또 기도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 나, 이 직업 계속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내 직업을 통해서 이웃들을 정말 도울수 있는 보람 있는 직업 일까요? 제 마음은 확신이 없어요. 하나님 그렇다면 하나님 제가 이 직업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 싸인좀 보여주세요, 어떤 증거를 좀 보여주세요.”
이렇게 막 기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공중전화 부스에 있던 그 퍼블릭 폰이 공중전화가 막 울리는 거예요.계속 울리는 거예요. 받는 사람이 없어요. 아무도, 전화대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없고, 기도할 수 없으니까, 자기 기도를 전화 소리가 방해하니까 신경질이 나가지고 차에서 내려와 갖고, 공중전화에 가서 전화를 딱 받았어요. 받자마자 여자 목소리인데, “혹시 켄 가웁 선생님이십니까?” “켄 가웁? 아니 어떻게 나를 아십니가? 여기 있는 것을?” “아니 켄 가웁 선생님의 사무실 카운슬링 사무실 아닙니까?” “사무실이 아니라 여기는 아이스크림 옆에 있는 공중전화 입니다.” 그러니까 “그거 이상하네요.” “어떻게 된겁니까” 그러니까 “ 제 이름은 밀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인데 제가 인생이 너무 비관스러워서 저는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내 자살하는 것이 좀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자살할 수 밖에 없는 내 처지였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자살하기 전에 갑자기 텔레비전에 서 늘 보았던 선생님, 나와서 카운슬링 했잖아요. 그리고 선생님 카운슬링 오피스가 텔레비 스크린에 떴는데 갑자기 제 마음속에 생각이 나서 제가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마지막으로 켄 가웁 카운슬러에게 상담 한번 받아보고 죽겠습니다.” 그런데 스크린에 지나 갔던 전화번호가 생각이 나더래요. 갑자기 전화가, 그래서 그 전화를 돌렸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전화번호가 아니예요. 잘못 돌린 거예요, 잘못 돌린 거예요. 그런데 정확하게 켄 가웁이 주차장에서 기도 하고 있던 그 앞의 공중 전화로 전화가 걸려 온 거란 말이죠. 전율하죠, 소름치도록 놀라운 거예요. 아 그러냐고 하면서 이 카운슬로가 자기 얘기를 했대요. 자기도 직업에 확신이 없어서, 이런 소리 하면 안돼잖아요, 카운슬러는. 그런데 자기 얘기를 막 하는 거예요. 간증을 한거 예요. 그 소릴 듣더니 또 이 여자분은 “아유 선생님 저는요 제가 이 전화를 걸고 선생님이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확실하네요.” 두사람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확신하고 뭐, 더 상담 안 해도 되요. 해결된 거예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이렇게 간섭하시는데 두 사람 인생을 바꿨고 정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나를 돌보신다, 지키신다, 그리고 내 직업을 쓰신다 이것을 확신 했다는 놀라운 간증이예요.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우리가 엎드려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그리고 내게 다가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얼마나 찾고 있느냐 말이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여기서 안다는 말이 객관적 정보의 차원이 아니예요. 여기에서 아는 지식이란 말은 희랍어의 체험적 지식이라는 말이예요. 체험적 지식, 네, 그노세이라는 희랍어 단어가 쓰였어요. 기도하면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관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객관적으로 알았던 나는 이 말씀을 붙들고 엎드려 기도 하면서 주님의 임재를 주님의 인도하심을 주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할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말하기를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 가십시오, 마지막에 약속 그리하면 영광이 이제와 영원까지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영광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단어예요.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이예요. 예수님이 영광의 주님이예요.그런데 기도하는 자 말씀을 보는 자 엎드려 주님을 만나는 자 주님과 교제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엎드려서 말씀을 붙들고 그리고 기도하면 주님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영광이, 영광이 주님의 영광이 이제와 영원까지 우리가 천국에 가서 누릴 수 있는 놀라운 영과 그러나 지금 이 세상에 살면서도 주님과 교제하며 그리고 살아계신 주님의 터치를 통해서 그 영광을 경험할 수 있는 놀라운 삶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엎드려 주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 할 수 있다면 영광이 이제와 영원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우리 다 일어나서 함께 같이 기도 하시겠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베드로처럼 우리가 약해지고 흔들리고 때로는 내가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싶은 그런 충동이 날 정도로 때로는 인생은 잔인한 것입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길 수가 있어요? 어떻게 승리할 수가 있어요? 어떻게 우리가 신앙인답게 살아 갈 수가 있어요? 제대로 신앙이 성장해야 되요. 교회만 왔다 갔다 해서는 안돼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아셨다면 이제 말씀을 좀 보세요. 그리고 엎드려 기도하세요.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보세요.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더 큰 은혜를 입고 싶습니다.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살겠습니다. 주님, 주님 자신의 영광을 저에게 보여주시고 그래서 제가 이 삭막한 바람부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당당하게 주님 믿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십시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살겠습니다. 오 주여 우리가 주의 은혜 입기로 원하나이다. 제에게 주의 은혜를 입혀주십시오 주님의 자비가 주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사랑 없이는 은혜가 없이는 이 험악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가 없으니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의 삶이 온전히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 가도록 도와 주옵소서 주 사랑에 우리 주님을 향한 사랑에 고백과 경배를 드리겠습니다.
베드로후서 3:18
아주 아름다운 찬양 감사드립니다.
에~저가 알고있는 성도가운데 아~영어로 표기하면 ‘P’로 시작되는 P씨, P사장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잠시동안 그분의 익명을 좀 사용하겠습니다. 그는 20대 초에 예수를 믿고 아주 큰 은혜를 체험했습니다.자기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사실에 너무 감격했고, 아~, 그는 신앙을 기쁨으로 시작 했습니다. 기도 응답의 기적도 체험 했습니다. 아~이분은 수산업을 운영 했는데요,사업이 어려울 때 마다 주 앞에 매달려 기도 했습니다.그때마다 하나님의 그 특별한 간섭과 도우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그를 가리켜 아주 기적을 일으키는 사람,이라는 그런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요새말로 말하면 아주 잘 나가는 그런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나 다시 사업이 좀 어려워지고 흔들거리기 시작했을 때 그는 자기 사업을 구제 하기 위해서 아~정치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하든 사람을 만나서 타협을 시도 합니다. 아~그분과 만나서 여러가지 대화를 하다가 문득 그분이 아~ 이 P사장에게, P씨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고 그래요. ‘자네 예수 믿나?’ 순간적으로 이 사람의 머리 속에 ‘아~저분은 아~다른 종교를 갖고있는 분이구나 내가 만약 예수 믿는다고 하면 혹시 이 결정적인 도움을 받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그는 순간적으로 마음이 흔들려 마음에 없는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냥 교회 좀 나가본 일이 있지마는 지금은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얼결에 이런 대답을 해 버렸다고 그래요. 그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요? 그래서 그는 집에 돌아와서 계속 그것 때문에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의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훗날 회복하고 다시 이분은 쓰임을 받기도 했습니다마는, 그것이 늘 자기의 삶에 결정적인 오점으로,아픔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세상을 아~떠나갈 무렵이 되었을 때, 그는 죽음을 예감하면서 친구들에게 편지 한 장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자기처럼 이런 신앙의 실족이 없도록,또 자기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제대로 못한 이유가 그의 삶 속에 훈련이 없었고, 일관성 있는 안정적인 신앙의 성숙을 못했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습니다. 자기 신앙의 기초가 얼마나 취약했는가를 정직하게 고백하면서 자기 사랑하는 친구들에게 나처럼 신앙생활 해서는 안된다는 편지 한 장을 쓰게 됩니다.
이 편지가 바로 본문입니다. 베드로후서 입니다. 그게 베드로후서, 사장 이름 P씨는 바로 ‘피터’ 씨, 베드로 씨 입니다. 하하~ 아~ 제가 수산업을 했다고 그랬는데 그분이 본래 어부가 아니였습니까? 하하~녜녜, 그 물위를 걸어갔으니까 기적을 일으킨 사람이죠.녜, 자기의 삶이 흔들렸을 때 세번씩 이나 예수님을 부인 하고 또 저주까지 했든 사람이죠. 이것이 자기마음속에 늘 평생에 후회로 남았든 것도 사실이였을 것입니다.
자, 오늘 베드로 후서를 펼쳐놓으시고 베드로후서 1장 10절에서 우리는 베드로가 이런 자기 일생의 어떤 오점에 관해서 잊을 수 없는, 마음속에 기억을 하고 있었다는 점을 여기서 우리가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베드로후서 1장 10절을 한번 같이 읽겠습니다.다같이 시작,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베드로가 실족이라는 단어를 쓰죠? 실족,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견고한 신앙이 필요하다 그렇지 아니하면 실족할 수 있다 라고 편지를 쓰면서 아마 뼈아픈 자기자신의 실족의 경험을 반추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됩니다.계속 읽어보시면요, 14절 보세요.14절 베드로후서 1장 14절에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베드로가 지금 죽음을 예감하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육체의 장막을 벗어날 때가 나에게 가까워 오고있다.
그 다음절 보세요. 15절에 보시면 베드로 후서 1장 15절에 보시면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내가 떠나간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기 위해서 내가 이 편지를 쓴다.그래서 베드로 후서는 베드로의 유언 같은 마지막 편지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 편지의 마지막에서, 마지막으로 베드로가 강조한 것이 뭔 줄 아세요? 그것이 본문인데요? 베드로후서 3장 마지막 절 18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시면,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어떻게 하라고 그랬습니까? “자라가라!”그랬어요. “자라가라” 그 신앙의 성장이 자라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그는 여기서 부탁하고 있습니다. 일관성 있는 신앙의 성숙, 성장,이것보다 우리의 삶에서 더 중요한 것은 없다!. 베드로가 이렇게 강조합니다.
우리는 지난주일까지 우리교회 일년 중에 가장 크다란 잔치인 이웃초청 잔치를 했습니다. 많은 불신자 이웃들이 다녀갔고요, 그리고 나 예수 꼭 믿겠다, 나 정말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싶다. 이런 진지한 신앙생활의 결단, 최초의 결단,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싶다고 자기
손으로 결심하고 카드를 써낸 사람만 453명 입니다. 453명, 그러니까 아마 카드 접수되지 않는 카드까지 합하면 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번 기회에 와서 복음을 듣고 결심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셨습니다. 아름다운 출발이죠.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신 분들에게는 이제부터 가장 중요한 과제는 뭐냐하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난 그 분들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건강하게 신앙이 성장 하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우리의 신앙이 매우 일관성 있게 그리고 건강하게 영적으로 신앙적으로 우리가 성장해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오늘 사도 베드로는 자기 일생의 경험에 반추하여 신앙성장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두 가지의 요소를 강조합니다. ‘오직 우리 주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첫째로 은혜란 단어를 씁니다. 그레이스, 은혜, 은혜와 그 다음에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 ‘은혜와 지식’ 두개의 단어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신앙이 제대로 성장할 수가 있을까요? 첫째는 은혜, 즉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하셔야 합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사모하셔야 합니다. 기독교를 기독교 되게 하는 본질적 메세지가 바로 ‘은혜’라는 단어 안에 들어있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닙니다.
제가 언젠가 그 얘기를 드린 기억이 있습니다마는 영국에서 한번 세계적이 종교학회가 종교회의가 열린 적이 있어요. 그래서 종교를 연구한 사람들이 모여서 여러가지 종교들을 비교하고 포럼을 갖고 페너를 갖고 토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기독교 차례가 왔을 때,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이 무엇이냐?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이 무엇이냐? 한 학자가 말하기를 아마도 그것은 ‘성육신’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땅에 오신 성육신이야 말로 기독교의 가장 독특성이 아니겠습니까? 누군가가 반론을 제시하기를 물론, 성육신은 기독교 신앙의 독특한 요소들중의 하나인 것은 사실이지마는,신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나타났다, 이런 얘기는 다른 종교의 경전에도 없지 않아 있다고, 또 누군가 말하기를 아무래도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은 부활에 있지 않겠느냐? 부활신앙, 부활신앙도 기독교의 독특성이죠. 그러나 또 누군가가 말하기를, 그런데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얘기는 다른 종교의 경전에도 종종 있다고,
이때 옥스포드와 캠브리지에 평신도 신학자요 문학가였든 유명한 씨에스 루이스 교수가 벌떡 일어 섰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그 대답은 의외로 쉽습니다. 기독교의 독특성은 은혜입니다. ‘은혜’ 이 말 앞에 모두가 다 동의했다는 거죠. ‘은혜’ 은혜가 뭡니까?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베풀어지는 사랑, 자격이 없는데, 사랑 받을 자격이 없는데, 죄를 범한 인간,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를 받아 마땅한데 오히려 하나님이 그들을 받아주시고 용납하고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다 이것이 은혜, 그레이스, 은혜!.
에베소서 2장 8절에 보시면 ‘너희가 그 은혜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뭐에요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라’ 그 다음에는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자, 우리의 행동을 들고 창조주 앞에, 심판자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이 있어요? 자기의 행위를 들고? 아무도 최선의 행위도, 나의 몸부림치는 나의 의를 추구하는 행위도 하나님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고, 행위로 보면 주 앞에 설수도 없는 이 죄인들, 주께서 받아주시고 용납하시고 용서하시고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셨다. 이것이 놀라운 은혜라고 여러분 믿습니까? 은혜! 놀라우신 은혜, 어메이징 그레이션, 놀라운 은혜, 이것이 바로 은혜란 말이죠. 그런데요 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구원 받은 것 만이 은혜가 아니에요. 구원 받은 것만이 은혜가 아니고,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삶의 여정 속에서 지속적인 하나님의 은혜들을 우리는 필요로 합니다. 그러니 구원받을 때만,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만, 용서 받을 때만 이 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살아가는 삶에 있어서도 우리는 주의 은혜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국 교회에서 일어났든 일이라고 그러는데요 이 얘기도, 아~그 구라파 같은데 가면 여름철이 되면 아~그 동네에 있는 교회 중에 몇 교회가 문을 닫아요. 백케이션 가요. 네,그래서 다같이 한 교회에 모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웃 교회들과 더불어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도 교인도 백케이션, 이번 여름에는 당신 교회에서 책임을 지십시요, 그래서 아마 몇 교회들이 같이 모이는 그런 오케이죤, 그런 아마 계기가 아니였는가 싶어요. 그래서 이제 이웃 사람들과 같이 모였는데 그날 예배는 마침 성찬식이였습니다. 성찬식,그래서 이제 아~집례를 하고 어떤 목사님이, 또 성찬위원들이 있는데 성찬위원으로 그날 봉사하시는 장로님 한 분이 판사로 지내신 분입니다. 재판관이였는데 성찬기를 들고 이렇게 돌다가 한 분 앞에 딱 가서 깜짝 놀라는 거에요. 왜냐하면 아주 유명한 그런 살안사건이 하나가 있었는데 그때 그 사건을 맡아서 이 판사였든 장로님이 처리를 하신 겁니다. 녜, 하, 그 사람이 와있네.자기가 판결을 내렸고, 형을 살았고, 그리고 나오셨던 그분이 딱 서있으니까 아, 이분이 살인을 했든 그런 분인데, 아, 이 분이 예수 믿고 성찬식에 참여해서 성찬을 받는다, 그 얼마나 놀라운 일이에요? 그래 깜짝 놀란 거죠.녜, 그 광경을 보고 집례하든 목사님도 알아차렸어요. 워낙 유명했든 사건이였으니까, 그래서 예배가 끝나고 나서 목사님이 장로님 만나서 ‘장로님, 참 하나님의 은혜가 놀랍지요?’ 그랬더니 이 장로님이 의외의 얘기를 하시드래요. 그게 뭐냐하면 ‘아, 목사님은 아마 그분이 저런 삶을 살던 분인데 이제 예수 믿고 나와서 성찬까지 참예한다 그래서 놀라셨겠죠?’ ‘아, 물론이죠’ ‘녜, 저도 놀랬어요. 저도 놀랬는데요 제가 그분을 만나고 조금 있다가 성찬에 저도 참여하면서 저는 다른, 다른 것을 생각했습니다.’ ‘무얼 생각하셨습니까?’ ‘제가 그 케이스를 잘 아는데 사실은 그분의 입장에 제가 섰다면 저도 아마 살인을 했었을 꺼에요. 그런데 내가 살인자가 안되고 이렇게 주님 섬기는 사람이 되었다 저는 생각해보니까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더라구요, 그것이 은혜더라구요’ 이런 의외의 얘기를 하는 거에요. 여러분!우리가 용서 받기 위해서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만, 우리가 죄 짓지않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축복된 삶을 날마다 살아갈 수가 있다는 것 이것도 은혜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자기 인생이 끝나는 마지막 시점에서 살아왔든 자기 인생을 쭉 돌이켜보면서 이런 유명한 고백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나에 나된 것은’ 무라고 그랬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직 나에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 신앙이 자란다는 것은 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아,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구나, 그 은혜를 깨달을 때, 그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이는 신앙은 절대로 자라나지 않아요. 여러분 교회에 아무리 나와도 응? 교회 나오는 회수가 아무리 많아도, 아니 한 오백년! 하하~, 여러분들이 교회 나와도 이 은혜에 대한 깨달음이 없으면, 은혜에 대한 감격이 없이는 신앙은 결코 자라나지 않습니다.
아,그래서 골로새서 1장 6절에 보시면 바울사도가 이런 기록을 남깁니다. 골로새서 1장 6절에 보시면 바울이 골로새 교회를 향해서 편지를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자, 골로새 성도들에게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복음을 듣고 그 다음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따라서 하세요. ‘참으로,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자, 우리 신앙이 열매를 맺고 자란다, 언제부터 자란다로 그랬습니까? 복음 듣고 나서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네,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순간부터, 무슨 얘기에요? 아, 하나님 사랑이 놀랍구나, 나 같은 죄인을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시고 구원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다니, 참 놀랍구나! 이 은혜를 깨달은 순간부터 열매를 맺고 내 믿음이 자라기 시작했다 이렇게 바울사도는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은혜에 대한 깨달음, 은혜를 깨달은 사람이 또 더욱 은혜를 사모합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유명한 여자 룻을 생각해 보세오 이 여인도 본래는 신앙인이 아니였는데 시집가서 아마 남편 또 시부모님을 통해서 신앙을 갖게 되었겠죠. 자, 남편은 불행이도 일찍 세상을 떠나갔습니다. 시어머니 따라, 나오미 따라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찾아오죠. 앞길이 막연했어요. 앞에 뭣이 기다리고 있는지 잘 몰라요. 녜,이런 시점에서 구약성경에는 이런 참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구속하는 사람들을 세우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기업 무를 자, 기업을 회복시켜줄 자 라고 부르는, ‘고 엘’ 이라고 불렀는데요, 이것은 신약시대에 오실, 예수님에 대한, 구원자에 대한 그림자에요. 그런데 이런 외로운 땅, 앞길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 줄 모르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인 룻이 구속자의 역할을 할 보아스를 만나잖아요.그때 룻이 보아스 앞에 엎드리면서, 구원자 앞에 엎드리면서 이런 유명한 고백을 합니다. ‘내 주여!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아주 유명한 고백이죠. 다같이 한번 ‘내 주여,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녜, 이 구원자 앞에 엎드리면서 고백하는 이 말,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하나이다’ 이게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의 마음의 토양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여러분 어떤 마음이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일까요? 한 설교가가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속에는 세가지가 있다고 그랬어요. 하나는 감사하는 마음, 이미 베풀어진 은혜에 대해서 아, 감사하구나 감사한 마음, 둘째는 의지하는 마음, 은혜를 주신 그분을 의뢰하는 마음, 그 다음에 세 번째는 기대하는 마음, 그분을 통해서 더 큰 은혜를 받을 것을 기대하는 마음, 이것이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의 토양이다 그랬습니다.
여러분과 제가 좋아하는 한 찬송가의 가사는 이런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이 잘 나타나있는 케이스 라고 생각해요. 잘 아시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소위 ‘어메이징 그레이스’ 이 찬송가에 보시면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뭐에요? 주님의 은혜 고마워, 놀라와, 이것은 과거에 베풀어 주신 그 은혜에 대한 감사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제껏 내가 산것도 주님의 은혜인데,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것도 그분 때문임을 알고, 그분을 의지하는 마음이 나타나고 있지요?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이 찬송가에 보면은 또 나를 장차 뭐에요? 본향에 인도해 주시리, 녜, 내 앞길도 그분이 인도해 주실 것을 믿는다, 잘 나타나요.
이 찬송가를 작사한 분이 ‘쟌 유턴’ 이라는 목사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분이 본래 목사님이 아니라 노예 상인 이였어요. 노예상인, 노예를 사고 파는, 그런 노예 장사꾼이였습니다. 그런데 이것 하다가 장사가 잘못되어서 자기가 노예가 되었습니다. 아주 기구한 운명이죠. 그래서 배에서 종 노릇 하는 노예의 일을 얼마동안 했는데 그가 노예의 자리에 있었을 때, 어느날 그 작은 신앙 책자 하나를 손에 쥐게 됩니다. 그 책자를 읽다가 큰 깨달음이 왔어요. 자기가 지금 노예 일을 하고 있지만 육체적인 노예보다 더 비참한 것은 자기가 죄악의 노예다. 죄에 얽매여 가지고 죄에 끌려다니는 내 모습,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가 없는 자기자신의 죄의 사슬에 매여있는, 자기 자신의 실존을, 자기 자신의 비참한 운명을 이 사람이 깨닫습니다. 그래 그 책을 읽다 말고 기도를 해요.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복음이 깨달아집니다. 내 힘으로 내 노력으로 내 결단으로 풀어버릴 수 없는 죄악의 사슬, 하나님이 그런데 예수님을 보내시고 내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주시고 예수를 믿는 자 죄사함을 받는다! 이 복음이 깨달아지는 그 순간 자기 마음속엔 놀라운 자유가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감사한지,그가 붓을 들어 작사한 것이 바로 이 찬송가에요.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든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다’ 그분이 전도자가 되고 목사가 되어서 하나님을 잘 증거하는 사람의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은혜,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이미 은혜를 깨달은 자, 내 인생의 앞길도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어요.주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사랑하시는 여러분, 누가 신앙이 자라갈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진정한 신앙의 성숙이 이루어질 수가 있다면, 사랑하시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주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마음, 그래서 어떻게 신앙이 자라갈 수가 있어요?
첫째,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두번째는 자, ‘우리 주 우리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녜,그런데 여기서 바울 사도가 은혜를 주실, 베드로 사도가, 바울이 아니라, 베드로 사도가, 베드로가 은혜를 주시는 분을 어떤 단어로 이 구절에서 묘사했습니까?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자, 예수님에 대해서 두가지 명칭를 썼어요. 뭡니까? ‘주님과 구주’ 녜,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신 구주일뿐만 아니라,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우리의 고백은,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지마는 구주 이지만, 그래서 십자기에서 돌아가셨지만, 그분이 부활하신 이유, 나의 주님이 될려고 현제 여기서 살아가는 나의 삶을 통치하고 다스려주시는 놀라운 분 그분의 은혜, 이 은혜가 없이는 자라나지 못한다. 그래서 오직 우리 주 구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다음 두번째는 뭡니까? 저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가라 두번째는 지식이에요. 그래서 우리 신앙이 자라 갈려면, 둘째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가야 합니다. ‘저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가라, 그래 둘째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가셔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부부 관계가 성숙한다 라고 말할 때, 부부관계가 성숙한다는 것이 무었을 뜻 할까요? 부부 관계가 참 아름다운 사랑 가운데 성숙해 간다.그것은 다른 것이 아닌 것 같아요. 그것은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에요. 남편이 아내를 알아가고, 아내가 남편을 깊이 알아갑니다. 알아 가면서 더 이해하게 되고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이해하고, 이해 하면서 사랑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 저는 결혼하기 전에도 제 아내를 무척 잘 알았습니다. 언제부터 알았느냐 하면, 중학교 3학년때부터 알았습니다. 제 아내를 중학교 3학년, 제 아내가 중학교 3학년이였을 때 부터 제가 알았어요. 또 저와 같이 성경공부도 하고, 그러니까 제가 얼마나 잘 알았겠어요? 그래서 결혼할 때 저는 이런 생각을 했어요,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뭐 우리는 이런 대로 사는 거다 너무 잘 아는 상대였기 때문에, 그런데 결혼 딱, 하고 신혼 여행 갔다 와서 한달 되기 전에 제가 제 아내보고 이런 얘기를 했어요. 무슨 얘기 했을 것 같아요? 제 아내를 쳐다보면서 그랬습니다. ‘당신은 알다가도 모를 여자다’ 하하~ 아, 그냥 모르는 것들이 막 나타나더라구요. 몰랐든 부분들이, 제가 제 아내를 많이 몰랐더라구요. 알았다고 착각을 했어요 제가, 그런데 너무 몰랐어요.
저는 아마도 베드로의 체험이 그러하지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서 제일 먼저 부르심을 받았잖아요. 수제자, 그러니까 다른 제자들 앞에서 아마 어깨에 힘을 주었을 거예요. “야, 예수님? 내가 잘 알아 예수님은 내 말대로만 한다” 자기가 예수님을 제일 잘 안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제자들 가운데서 주님을 가장 격렬한 언어로 부인하고 저주했던 베드로 또 그가 이렇게 실족하고 타락 후에는 애써 예수님을 외면하고 피해서 도망다녔잖아요. 예수님을 알았을까요? 베드로가 내 실수 내 상처 내 실족에도 불구하고 그는 언제든지 나를 용납해주신다. 이해하신다. 이런 예수님을 알았더라면 도망다닐 필요가 없었는데 그걸 나중에 베드로가 나중에 깨닫습니다. 그리고 베드로 후서를 쓰면서 베드로 후서 1장으로 다시 한번 돌아가서 베드로 후서 1장2절에 베드로의 마지막 편지 첫번째 부분에서 베드로가 어떤 단어를 애써 강조하는지를 주목해 보십시오. 베드로 후서 1장2절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찌어다.” 자, 어떤 단어가 강조되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뭐예요? 앎으로.
하나님 알아야되요.예수님 알아야 되요.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계속 읽어보시면 그 다음에 8절, 베드로후서 1장 8절 또 읽어요. 시작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함이라.” 나는 여러분들이 정말 열매 맺는 신앙이 될려면 예수님을 알기에 게으르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아는 일에 게으르지 마십시오 예수님을 부지런히 알아가십시오. 베드로가 힘써 무슨 단어를 강조해요? 알아야 한다. 그런데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어떻게 알아 갈수가 있습니까? 이건 기초예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베이직이예요. 예수님을 알아가는 방편,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말씀으로, 하나는 기도로, 말씀과 기도예요.
첫째는 말씀으로, 말씀으로 예수님을 알 수가 있지요. 성경으로 예수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성경이 두껍지만 성경책 전체의 메시지의 초점이 바로 뭡니까? 우리가 잘 아는 요한복음 5장 39절에 보시면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바로 (누구에 대하여?)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의 단일초점 성경의 유일한 주제 성경의 대주제 핵심 결국은 누구예요? 예수님이예요. 그러니까 성경알면 누구 알아요? 예수님 알아요. 그러므로 성경이라는 것은 주님의 주님의 객관적 정보를 제시합니다. 예수님의 객관적 정보를 주어요. 그런 성경 안 읽고 어떻게 예수님을 알수가 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성경과 나의 거리는 나와 예수님 사이의 거리다. 교회에 왔다 갔다 하시는 분은 예수님 몰라요.성경공부 하셔야 되요. 이제부터 그리고 성경 읽으셔야 되요. 성경 알아야 되요. 그래야 초점이신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자,예수님을 아는 방법이 대체로 두 가지예요. 어떤 사람은 특별한 체험을 합니다. 체험으로 예수님을 알수 가 있어요. 그러나 체험이라는 것은 굉장히 주관성이 강하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는 흔들릴 수가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체험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뭐냐? 말씀입니다. 기독교를 계시의 종교라 말합니다. 계시란 말은 이상한 계시란 말이 아니예요. 하나님이 말씀으로 자신을 계시하셨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알수가 있는 거예요. 베드로는 놀라운 체험들을 많이 했지만 체험했다고 해서 베드로가 신앙생활을 견고하게 했습니까? 아니예요. 그걸 나중에 베드로가 깨달은 거예요.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베드로후서 1장 우리가 계속 다시 좀 읽어 보시면요 베드로후서 1장 다시 돌아와보세요. 그리고 16절부터 보시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다” 우리는 주님의 놀라운 위엄을 눈으로 목격하는 체험을 했다. 17절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하늘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들었다. 이는 내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다.18절에 보시면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친히 이 소리를 들었다” 여러분, 예수님의 놀라운 모습이 나타나고 그리고 예수님을 향한 하늘의 음성이 들려오는 체험.
베드로가 어디서 했습니까? 변화산에서, 야고보 요한과 올라갔다가 예수님과 올라갔다가 예수님이 누구와 더불어 나타났어요? 모세와 엘리야와 나타나고 변화되고, 하늘에서 음성이 나와서 내사랑하는 아들이고 기뻐하는 자다. 얼마나 놀라운 체험했어요. 그러나 이 놀라운 체험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 절을 주목해보세요. 그 다음절입니다. 19절입니다. 베드로후서 1장 19절 다같이 앍어요. 시작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에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 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네, 내가 이런 놀라운 체험을 하고 놀라운 소리를 들었지만 19절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다. 이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뭘 말해요? 성경을 얘기 합니다. 그 다음에 보시면 성경, 체험이 중요하지만 체험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어요. 뭡니까?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흔들림 없는 말씀, 이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을 읽을 때 우리가 정말 주님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처음 신앙생활 하신분들이 이 말씀이 어렵죠. 성경이 네, 어려워요. 사실, 쉬운게 아니예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읽다가 어려운게 나오면 그냥 지나가세요.고민하지 말아요. 절대로 고민하지 말아요. 억지로 이해할려고 하지마세요. 이 베드로후서 전체가 뭐냐 하며는 성경 얘기를 계속하면서 베드로가 이제 1장 마지막에 성경 얘기를 하면서 그 다음에 그런데 성경 읽다가 해석할 때 억지로 하지 말아라, 이게 계속 강조하는 내용이예요. 억지로 하게 되면 잘못하면 이단에 빠져요. 그래서 베드로후서 3장 마지막부분 보세요. 마지막부분에 16절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6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3장 16절, 시작.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그러니까 억지로 풀지는 말아라 모르면 그냥 지나가라는 말, 여러분 어린아이들에게 딱딱한 음식 주면 소화합니까? 못해요. 그럼 어떻게 해요? 억지로 먹이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기다려요. 자라나면 딱딱한 음식도 먹게 되요. 음식을 먹다가 생선가시가 씹혀요. 어떻게 해요 그거 씹지 말아요. 그냥 뱉어요.그냥 지나가시면 되요.성장하면 나중에 다 이해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너희가 이런 것들을 주의하면서, 그러나 성경에서 알수 있는 것 이해할 수 있는 것, 그것에 은혜를 받아요. 그 말씀을 취해요. 그 말씀을 붙들어요.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서 주님을 사랑하시면 되는거예요. 그렇습니다 어떻게 신앙이 자라갈수가 있습니까?
이 말씀을 가까이 하십시오. 성경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럴 때 주님을 알아가는 놀라운 일들이 생길 것입니다.
두번째는 뭐예요. 말씀으로, 또하나는 기도함으로, 기도함으로 주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부부관계가 성숙하기 위해서는 알아야한다는,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알아야되요. 그 알아보는 방법중에 하나가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젊은 부부들은 내가 결혼했기 때문에 남편이나 아내를 잘 안다고 전제하지 말아요. 알아보세요.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내 아내가 어린시절에 어떻게 자랐는지 성장과정도 한번 자세히 알아보시고 어렸을 때 인간관계, 어렸을때 받았던 상처들 그런것들이 지금까지 영향을 끼치거든요.
그런것들을 잘 연구하면 아, 내 아내가 내 남편이 지금 그래서 이렇게 행동하는구나, 어떻게 됩니까? 이해가 되요.이해가 됩니다. 또 기질을 연구해보세요. 요즘은 뭐 상대방을 알아보는 심리적 도구들이 많이 발전해 있단 말이죠.
MBTI해보던지, 기질연구. 아, 우리 아내가 남편이 기질이 이렇구나 이래서 저 여자가 저렇게 행동하는구나. 뭐가 되요? 이해가 되요, 이해가. 굉장히 필요한 것이예요.너무 전제하지 말고 안다고 생각하지 말고 연구를 해야 되요. 그러나 이러한 객관적 연구에 의한 정보만으로 부부관계가 또 성숙하는 것은 아니예요.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화하는 일입니다. 부부가 함께 대화를 해야 해요. 깊이 있는 대화, 내마음속의 고통이나 아픔도 털어놓고 대화하면 아, 내 아내가 이런 아픔이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대화를 통해서 상대방을 정확하게 체험하게 됩니다. 또 객관적 정보가 필요하지만 정보못지 않게 주관적으로 내가 스스로 겪는 체험이 중요해요. 기도는 바로 이 체험을 제공합니다. 기도하면 주님의 인도를 체험합니다. 기도하면 주님의 임재를 체험합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제가 최근에 그 기독교 카운슬링, 크리스챤 카운슬링 잡지, 외국에서 온 잡지를 읽다가, 한기사를 읽고 감동을 받았어요. 은혜를 받았어요. 뭐 책이 온다고 해서 다 앍는 것은 아니예요, 저두요. 그런데 그중에 한 제목이, 아티클의 기사의 제목이 제눈을 확 끌었어요.하나님의 전화, 하나님의 전화. 재밌지 않아요? 하나님의 전화 이게 뭐야, 그래서 그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켄 가웁, 켄 카웁이라는 크리스챤 카운슬러가, GAUB이라는 이름을 가진 카운슬러가 쓴 간증이었습니다. 일종의, 이 사람은 워 카운슬링 오피스를 사무실을 갖고 사람들을 상담도 해주고 텔레비전에 나와서 사람들의 문제에 대해 대답도 해주는 카운슬러였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자기 직업에 대한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스트레스가 느끼고 정말 내가 내 직업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든 거예요. 그래서 허탈감도 생기고 내가 아무리 도와도 사람들이 변하지 않은 것 같고 이러한 어떤 직업에 대한 스트레스와 허무감을 가지고 씨름하던 어느날 전도를 받습니다. 그리고 크리스챤이 되었어요. 그런데 예수를 믿은 후에도 자기 직업에 대한 확신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이 정말 내 직업을 쓰셔서 내가 보람 있는 인생을 살수가 있을까? 이런 회의가 자꾸만 생겨요. 그런데 자기가 초신자니까 교회에 나갈 때마다 성경공부 할 때마다 기도하라고 그러니까 “아! 내가 직업에 대해 기도 안했구나.” 그래서 기도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 정말 이 직업 계속해야 해요? 이 직업 정말 보람 있어요? 하나님 내 직업을 쓰실 수 있습니까?” 이런 기도를 하던 차였어요. 어느날 자기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그래서 아이들을 데리고 아이스크림 가게에 갔습니다. 데이리 퀸이라는 아이스크림 팔러에 가서. 그런데 자기는 좀 들어가고 싶지 않았대요, 그날. 그래서 애들 돈 주고 “너희들 가서 아이스크림 사먹고 있어. 아빠는 좀 있다 들어 갈게” 그리고 먼저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여보내고 이 켄 가웁이라는 카운슬러는 그 주차장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 주차장에 차 세워 놓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도 인생 생각이 나서 또 기도를 하는 거예요. “하나님 나, 이 직업 계속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내 직업을 통해서 이웃들을 정말 도울수 있는 보람 있는 직업 일까요? 제 마음은 확신이 없어요. 하나님 그렇다면 하나님 제가 이 직업하기를 원한다면 하나님 싸인좀 보여주세요, 어떤 증거를 좀 보여주세요.”
이렇게 막 기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앞에 공중전화 부스에 있던 그 퍼블릭 폰이 공중전화가 막 울리는 거예요.계속 울리는 거예요. 받는 사람이 없어요. 아무도, 전화대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도 없고, 기도할 수 없으니까, 자기 기도를 전화 소리가 방해하니까 신경질이 나가지고 차에서 내려와 갖고, 공중전화에 가서 전화를 딱 받았어요. 받자마자 여자 목소리인데, “혹시 켄 가웁 선생님이십니까?” “켄 가웁? 아니 어떻게 나를 아십니가? 여기 있는 것을?” “아니 켄 가웁 선생님의 사무실 카운슬링 사무실 아닙니까?” “사무실이 아니라 여기는 아이스크림 옆에 있는 공중전화 입니다.” 그러니까 “그거 이상하네요.” “어떻게 된겁니까” 그러니까 “ 제 이름은 밀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인데 제가 인생이 너무 비관스러워서 저는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내 자살하는 것이 좀 두려웠습니다. 그래도 자살할 수 밖에 없는 내 처지였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자살하기 전에 갑자기 텔레비전에 서 늘 보았던 선생님, 나와서 카운슬링 했잖아요. 그리고 선생님 카운슬링 오피스가 텔레비 스크린에 떴는데 갑자기 제 마음속에 생각이 나서 제가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마지막으로 켄 가웁 카운슬러에게 상담 한번 받아보고 죽겠습니다.” 그런데 스크린에 지나 갔던 전화번호가 생각이 나더래요. 갑자기 전화가, 그래서 그 전화를 돌렸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전화번호가 아니예요. 잘못 돌린 거예요, 잘못 돌린 거예요. 그런데 정확하게 켄 가웁이 주차장에서 기도 하고 있던 그 앞의 공중 전화로 전화가 걸려 온 거란 말이죠. 전율하죠, 소름치도록 놀라운 거예요. 아 그러냐고 하면서 이 카운슬로가 자기 얘기를 했대요. 자기도 직업에 확신이 없어서, 이런 소리 하면 안돼잖아요, 카운슬러는. 그런데 자기 얘기를 막 하는 거예요. 간증을 한거 예요. 그 소릴 듣더니 또 이 여자분은 “아유 선생님 저는요 제가 이 전화를 걸고 선생님이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 확실하네요.” 두사람이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확신하고 뭐, 더 상담 안 해도 되요. 해결된 거예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이렇게 간섭하시는데 두 사람 인생을 바꿨고 정말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나를 돌보신다, 지키신다, 그리고 내 직업을 쓰신다 이것을 확신 했다는 놀라운 간증이예요.
사랑하시는 여러분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우리가 엎드려 그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그리고 내게 다가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를 얼마나 찾고 있느냐 말이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여기서 안다는 말이 객관적 정보의 차원이 아니예요. 여기에서 아는 지식이란 말은 희랍어의 체험적 지식이라는 말이예요. 체험적 지식, 네, 그노세이라는 희랍어 단어가 쓰였어요. 기도하면 하나님을 체험하게 됩니다. 주관적으로 체험하게 됩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 객관적으로 알았던 나는 이 말씀을 붙들고 엎드려 기도 하면서 주님의 임재를 주님의 인도하심을 주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할 수 있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말하기를 우리 주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자라 가십시오, 마지막에 약속 그리하면 영광이 이제와 영원까지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영광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의 속성을 나타내는 단어예요.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이예요. 예수님이 영광의 주님이예요.그런데 기도하는 자 말씀을 보는 자 엎드려 주님을 만나는 자 주님과 교제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엎드려서 말씀을 붙들고 그리고 기도하면 주님을 찾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영광이, 영광이 주님의 영광이 이제와 영원까지 우리가 천국에 가서 누릴 수 있는 놀라운 영과 그러나 지금 이 세상에 살면서도 주님과 교제하며 그리고 살아계신 주님의 터치를 통해서 그 영광을 경험할 수 있는 놀라운 삶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엎드려 주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 할 수 있다면 영광이 이제와 영원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우리 다 일어나서 함께 같이 기도 하시겠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베드로처럼 우리가 약해지고 흔들리고 때로는 내가 예수를 믿으면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싶은 그런 충동이 날 정도로 때로는 인생은 잔인한 것입니다. 어떻게, 어떻게 이길 수가 있어요? 어떻게 승리할 수가 있어요? 어떻게 우리가 신앙인답게 살아 갈 수가 있어요? 제대로 신앙이 성장해야 되요. 교회만 왔다 갔다 해서는 안돼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아셨다면 이제 말씀을 좀 보세요. 그리고 엎드려 기도하세요. 그리고 이렇게 기도해보세요. 내 주여 내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더 큰 은혜를 입고 싶습니다. 기도하며 살겠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살겠습니다. 주님, 주님 자신의 영광을 저에게 보여주시고 그래서 제가 이 삭막한 바람부는 광야 같은 세상에서 당당하게 주님 믿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다같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기도하십시다.
살아계신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말씀을 받았습니다. 이 말씀을 붙들고 살겠습니다. 오 주여 우리가 주의 은혜 입기로 원하나이다. 제에게 주의 은혜를 입혀주십시오 주님의 자비가 주님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사랑 없이는 은혜가 없이는 이 험악한 세상을 헤쳐 나갈 수가 없으니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우리의 삶이 온전히 주의 영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 가도록 도와 주옵소서 주 사랑에 우리 주님을 향한 사랑에 고백과 경배를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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