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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목소리 / 이사야 6:1-8

by 【고동엽】 2021. 12. 21.

주의 목소리

이사야 6:1-8

 

이사야 6장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로 시작됩니다.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이 되어 52년간 나라를 다스렸고 재위기간 국위선양은 물론 선정을 베푼 왕이었습니다. 그러나 역대하 26:16-21을 보면 제사장의 직무를 대행하려다 하나님의 진노로 나환자가 되었습니다. 교만은 금물입니다.

초대 왕이었던 사울 역시 제사장이 하는 일을 자기가 행함으로 버림받았습니다.

웃시야 왕은 주전 747년경 세상을 떠났고 통치자의 죽음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이었습니다. 바로 그 시점에서 이사야가 부름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때 그 상황을 살펴나가면서 오늘의 교훈을 찾아보겠습니다.

 

1.환상을 보여주셨습니다.

6:1을 보면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과 성전을 환상으로 본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국가의 주인이시며 역 사의 주인이시며 영원한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며 웃시야는 죽었지만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이 유대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높은 보좌에 앉으셨고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고 천사들(스랍들)이 모셔 서있고 천사들은 서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장면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의 중심입니다. 역사가 벤룬은 "영국은 세익스피어를, 유대인은 한 채의 집과 한 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한 채의 집은 성전이고 한 권은 책은 성경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이 삶의 중심이었습니다. 성전에서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제사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성전에 계신다고 믿었습니다. 성전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멀리할 때 그들은 불행했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후 광야생활 40년 동안 자기 사는 집은 천막이었지만 하나님을 예배하는 회막은 정성껏 꾸리고 단장했습니다. 나라가 어렵고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들은 하나님을 찾고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이 위기를 해결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위기는 어느 나라나, 어느 시대나,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위기를 해결하고 극복하는 비결은 성전에 나와 성전에 계시는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온갖 어려움도 그러한 방정식으로 풀어야 합니다.

세계에서 휴대폰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 중국, 일본, 한국이라고 합니다. 그 나라들 가운데 초등학교 아이들과 유치원 아이들까지 휴대폰을 가지고 다니는 나라는 우리가 최고라고 합니다. 어느 목사님 얘기를 들었는데 그분이 살던 산골 고향마을은 12가구가 모여 사는 곳인데 자동차가 열두 대라고 합니다. 요즘 시골에서는 모내기를 하다가 쉬는 시간이 되면 휴대전화로 커피를 주문해 마신다고 합니다.

그런가 하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문화 그 어느 것도 걱정 근심의 바람이 불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웃시야가 죽던 해처럼 앞이 캄캄하고 끝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러나 이사야에게 나타나시고 충만한 영광으로 임재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위기를 극복케 해 주실 것입니다.

4절을 보면 스랍들(천사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노래할 때 "성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고 했습니다.

찬송부를 때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주경가들은 "땅이 요동한 것은 천사들의 찬양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도 유사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도하다가 붙잡혀 감옥에 갇혔습니다. 매를 맞고 손과 발엔 착고를 채웠고 감방은 음침한 특별 감방이었습니다.

그날 밤 바울과 실라는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6:26을 보면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고 했습니다.

천사들의 찬송으로 성전 터가 움직이고 바울과 실라의 찬송은 옥터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내 찬송은 하늘 보좌를 움직이고 사람의 영혼을 움직여야 합니다.

찬양대나 지휘자나 반주자들은 그런 믿음과 사명감으로 해야 합니다. 직업 소리꾼은 안됩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사람은 안됩니다.

찬송은 땅과 보좌를 움직이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2.입술을 깨끗케 했습니다.

5절을 보면 "화도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입술은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내고 말의 출입구가 됩니다. 무의식중에 내뱉는 말은 그 사람의 의식 단층에 잠재돼 있는 것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술꾼들은 술김에 하는 말이 진실이라고 합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 그 말이 진실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입술이 부정하면 화가 되고 결국은 망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탄식한 것입니다.

마태복음 15:17-20을 보면 입에서 나오는 것이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악하고 더럽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어버려진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다"라고...

국회의원인 유재건 장로님 어머님이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외아들이기 때문에 세상 떠날 때까지 어머님을 모셨다고 합니다. 아드님과 함께 미국에서 30여년을 살면서 이민 교회를 섬겼습니다. 이민 교회는 대부분 교회 규모가 작기 때문에 교인끼리 사정도 훤히 알고 만나는 기회가 많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말이 많아지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그 어머님은 권사님들과 만날 때마다 단 한번도 며느리 흉을 본 일이 없었습니다. 칭찬만 했습니다. 그리고 늘 하시는 말씀이 "가정이 화목하고 며느리 사랑 받으려면 며느리 흉을 보면 안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는 데마다 만나는 사람마다 며느리 칭찬하는 시어머니를 싫어할 며느리가 어디 있겠습니까? 며느리 역시 시어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섬겼습니다. 가족이 다 같이 귀국한 뒤에도 계속 그 관계가 지속되다보니 서로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생활이 가능 했었노라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주의 종입니다. 그의 입술은 보통 사람의 입술과 같아선 안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그의 입술을 숯불로 지져 정결케 하신 것입니다.

손이나 발로 짓는 죄보다 입술로 짓는 죄가 더 크고 많습니다. 야고보서 3:10을 보면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라고 책망했습니다. 이사야는 "부정한 입술 때문에 화를 당하고 망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거짓말을 하지 맙시다."

"남을 비난하고 해롭게 하는 말을 하지 맙시다."

"함부로 말하지 맙시다."

"근거 없는 말, 확인되지 않은 말을 하지 맙시다."

"사실이고 확인된 말이라도 유익이 되지 않는 말은 하지 맙시다."

"남에게 상처를 주고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 말은 삼가 합시다."

"많이 생각하고 일은 많이 하고 말은 아껴 합시다."

"칭찬하고 격려하고 생명을 살리는 말을 합시다."

"예수 얘기를 많이 합시다."

거짓과 허위로 입술에 덧칠하지 말고, 물로 씻고 불로 태워서 깨끗하게 합시다.

주여, 내 부정한 입술을 깨끗케 하여 주옵소서.

 

3.주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8절을 보면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했습니다.

이사야는 성전에서 주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즉 그는 주의 음성을 듣는 귀가 열려 있었던 것입니다. 사무엘상 3장을 보면 어린 사무엘은 부르시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만 엘리 제사장은 듣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리고 대답하는 것은 더 큰 축복입니다.

연세대학교 은퇴교수이신 민경배 박사는 현재 서울장신대 총장이시고 신촌교회 협동 목사님이십니다. 신촌교회 오창학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주일마다 가장 예배를 잘 드리는 분은 민경배 교수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30분전에 나와 맨 앞자리에 앉고, 바른 자세(정좌)로 강단을 주목하고, 그리고 설교 시간에는 가장 경청을 한다는 것입니다. 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분이라며 칭찬하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성경을 읽다가, 설교를 듣다가 혹은 주의 종과 상담을 하다가 듣게 됩니다. 그때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지난 주간 이준 국방장관을 만났습니다. 현재 국군중앙교회 시무장로님이신데 군선교 관계로 의논할 일이 있어서 만났습니다. 21사단 사단장 재임시절 사단 안에 있는 교회에서 장로로 피택되어 임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임직식 날까지 갈등이 계속 되었습니다. 담배도 피워야 하고 술도 마셔야 되는데, 장로가 되면 꼼짝없이 코를 꿰이게 될텐데 어떻게 해야 하나,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임직식에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날 어느 목사님의 말씀이 그를 감동 시켰습니다. "사단장님은 수지 맞았습니다. 지금은 몰라도 앞으로 장로가 되었기 때문에 수지 맞을 일이 계속될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촌스럽고 유치한 그 말이 장군의 마음을 변화시켰습니다. 그 시간부터 마음에 평안히 오고 얼굴의 근심이 걷히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것은 장로 된 다음부터 진급이 되어 사성장군이 되었고, 수지 맞는 일이 계속 일어나 장관까지 됐다는 것입니다.

그는 장로가 되면서 두 가지를 서원 했습니다. 그것은 술은 입에 대지 않겠다는 것과 새벽기도회를 빠지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24시간을 뛰어도 시간이 모자라는 요즈음도 그는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고 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 겸손하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듣겠나이다, 내가 따르겠나이다" 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역사를 맡기시고, 큰 것을 맡기시고, 재물도 맡기시는 것입니다.

주의 목소리를 듣고 대답합시다. "나를 보내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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