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4차 케리그마신학세미나(20100128)
제4장 성육신하신 하나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 -신학의 과제로서 하나님 말씀-
신학자는 하나님에 대해 말해야 한다(신학). 그러나 신학자는 그것을 할 수 없다. 이것이 신학자가 처한 곤경이다. 이 곤경의 상황을 약화시키는 것은 올바른 신학이 아니다(예: 슐라이어마허). 왜냐하면 슐라이어마허는 인간이 감정과 심리적으로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적인 교조화된 진술도 바른 신학이 아니다(교리적 방법). 왜냐하면 이 방법은 인간의 신격화로 즉 인간이 하나님을 대상화시킨다는 데 문제가 있다. 그리고 반대로 인간을 부정하는 비판적인 방법은 교리적 방법보다 나은 것이긴 하나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신학의 과제를 다 이룰 수는 없다(비판적 방법). 교리적 방법과 비판적 방법의 장점을 취하고 있는 방법은 변증법적 방법이다. 여기에서 긍정적 하나님 관념과 인간성에 대한 비판이 다루어진다. 그러나 인간 편에서의 긍정이나 부정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따라서 하나님 편에서의 부정과 긍정이 필요하다. 하나님 편에서의 부정은 인간의 모든 시도 -하나님에 대한 진술-를 거부하는 것이고, 하나님 편에서의 긍정은 이러한 인간 부정 속에 있는 인간 긍정이다: “변증법자들이 말한 모든 것 저 너머에 모든 사람에게 참으로 의미와 진리를 수여하는 그것이 존재한다면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그의 말을 듣는 사람에게 그분 자신의 말씀을 말할 수 있다면 바로 그것 때문에 변증법자들은 자신의 존재의 정당성을 상실하고,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 없다 라고 고백할 수 밖에 없다”(119). 하나님이 우리에게 수여하신 진리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그를 통해 신학자는 하나님에 대해 말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신학자에게 해 주신 말씀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증언)이 신학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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