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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 복음주의신학입문 10장

by 【고동엽】 2021. 12. 17.

10. 고독: 신학에 위협성인가, 신학의 위대성인가

 

바르트는 신학을 위협하는 3가지 요소들 중에서 그 첫 번째로 ‘고독’을 언급한다. 그는 “누구든지 신학에 투신하는 사람은 곧바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이상하고 짓궂게 억압하는 고독 속으로 내몰린다.”고 말하면서, “신학자는 일반적으로 소위 세상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어떤 격리를 경험하면서 자기의 주제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118)

‘고독’은 신학을 위협하는 외적인 요소로, 그것은 신학이 모든 사람들의 직접적이고 간접적인 인정과 참여를 통해 지지를 얻고 모든 사람들과 가능한 모든 사람들에게 이해되는 작업이 아님을 의미한다.(118)

그에 의하면 “고립은 신학의 본질과 상치되는 것이므로 감당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는 그 이유를 “하나님의 행적과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과 세상의 화해이기 때문에, 신학의 대상이란 모든 인류의 상황에 대한 가장 과격한 변혁이요, 모든 인간에게 관계되는 바 이 변혁의 계시이다. 따라서 이 계시는 그 자체로서는 틀림없이 최대한의 보편사”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119)

그러나 바르트는 “신학을 철학으로 대표되는 타학문들, 즉, 문화 그 자체에 통합시키려는 시도, 혹은 문화, 철학 및 타학문들을 질문과 대답이라고 하는 불가분리의 상관관계로 신학에 통합시키는 시도”(cf. 틸리히)를 비판한다. 그는 “신학의 고독을 없애버리려는 이 시도 혹은 이와 비슷한 시도는 실현될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 이유는 이 경우 신학은 타락 전으로 소급하여 파라다이스(낙원)의 신학으로 자신을 이해하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시간을 앞질러서 완성된 신학으로 자신을 이해하든지, 창조자와 피조물의 차이를 무시하고 원형적 내지는 신적인 신학으로 자신을 이해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20)

그는 “지금 우리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으며 시도하려는 신학이란....인간에 의해서 수행되는 신학으로서 ‘순례자들의 파생적 신학’(theologia ektype viatorum)”이라고 말하면서, “이들 순례자들의 특징은 아직 눈이 어두우나 이미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 인식에로 조명 받았고, 미래의 영광을 바라보고 나가지만 아직도 미래에 있을 보편적 계시의 영광을 모두 투시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121)

바르트는 철학적 신학과 신학적 철학의 이념을 비판하면서 “값싼 종합은 포기되어야 한다. 사고력과 의욕을 가지고 상당히 쉽게 실현되는 종합은 포기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그는 “완전한 신학을 수행하려고 하는 것을 삼가야 하고, 얼른 보기에 비정상적인 것을 지금 여기에서 정상적인 것으로 그 타당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하면서 “신학적 인식, 신학적인 사고, 신학적인 언표는 결코 보편적인 인식, 사고, 언표가 아니요, 보편적인 것이 신학적인 것도 될 수 없다. 신학은 타학문들과의 관계에서 그것의 특수성과 고독 때문에 아무리 큰 고통을 느낀다 해도 감수해 나가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말한다.(121-122f)

바르트가 말하는 신학을 위협하는 고독의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그는 “신학자를 신학자답게 하는 뒤흔들어 놓는 충격”으로서 “하나님과 인간의 근본적인 관계”인 신앙-“하나님의 말씀을 긍정하고,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자유의 사용”-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이 경험은 모든 다른 인간의 경험과는 다르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 때문에 신학은 고독하고, 보편적일 수 없으며, 특수성을 가진다고 그는 이야기한다.(123)

둘째, 그는 “신학에 종사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특수한 신학적 사고의 위탁을 받았는데, 이는 독특한 성격을 띤 ‘신앙의 지성’(intellectus fidei)으로서 항상 고독한 길을 걷는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인간에 의해서 동기 지워진 질문과 대답이 아니라 인간에게 전해진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동기 지워진 질문과 대답”이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한다.(124)

셋째, 그는 “신학의 중심테마는 새로운 우주 속에서의 새로운 인간이기 때문에 그 책임에 있어서 비판적이고 항상 혁명적인 일을 수행한다. 따라서 신학에 종사하는 사람은 그의 사고와 언어에 있어서 실천적 영역의 현장에 직면하여 다른 사람들과 상충된다는 사실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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