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이 닥칠 적에 (렘17장12-18)
박조준(갈보리교회 담임목사)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고난을 싫어합니다. 고난받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고난은 누
구나 다 당합니다. 이 고난은 예고없이 닥칩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닥쳐오는 고난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는
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미국 휴스턴 감리교회의 목사였던 챨스 알렌 목사님이 그가 평소에 존경하던 연로하신 목사님을 찾아가서 이
야기를 나누는 중에 "목사님은 성경을 많이 읽으시는 것으로 소문이 났는데 그렇게 많은 성경을 읽으시는 가운
데 가장 마음에 드는 귀절이 무엇입니까?"고 물었습니다. 그때 나이 여든 일곱이신 노목사는 한참 대답을 못하
고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그때 젊은 목사는 자기 나름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성경귀절을 이것 저것 골라 보고
있었습니다.
한참만에 노목사는 입을 열었습니다. "내 마음에 드는 성경 귀절은 아마 성경 전체에 열다섯 내지 스무번은 나
올겁니다. 그것은 '그리고 다 지나가니…'하는 말씀이지요"라고 대답하더랍니다. 이때 챨스 알렌 목사님은 크
게 실망을 했습니다. 그래서 되물었습니다. "아니 목사님, 성경에 그 많은 말씀 가운데 겨우 '그리고 다 지나가
니 그 말씀이 마음에 드신다고요?"
그때 노목사님은 "예, 내 생각에는 이 보다 더 도움이 되는 말씀이 없어요. 나는 이제 오래 살아서 다 지나가리
라는 말씀의 의미와 그것이 얼마나 사실인가 잘 압니다.
인생의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인생의 기쁨도 지나갑니다. 인생의 슬픔도 지나갑니다. 모든 골치 아프던 것도
지나갑니다. 전쟁도 지나갑니다. 모두가 다 지나갑니다. 세상에 아이가 태어나지만 그 아이도 자라서 언젠가
는 어른이 되고 그리고 늙어지고 나중에는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사람에겐 직업이 있고 하는 일이 있지만 그
것도 다 지나갑니다. 내 몸 이상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고 또 같이 살지만 그것도 다 지나갑니다. 이
세상도 지나갑니다. 청춘도 지나갑니다. 권세도 지나갑니다. 정욕도 지나갑니다. 모두가 지나갑니다.
나는 내 평생에 걱정스러웠던 일들, 너무나 가슴이 아파 도저히 헤어나오지 못할 것같은 일들이 있었던 것을
지금 더듬어 생각해 봅니다. 지금 뒤돌아다 보면 그것도 다 지나갔음을 깨닫게 됩니다. 내가 생각할 때 이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지금 생각해 보니 모두가 지나갔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알렌 목사님은 많이 깨달은 바가 있었다고 그의 책에 기록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의 모든 일들은 다 지나갑니다. 괴로웠던 일도 지나가고 기쁘고 즐겁던 일도 지나갑니다.
오늘 우리가 지고가는 점이 무겁고 골치아프다고 해도 내일의 희망이 전혀없이 보인다고 해도 내가 가질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해도 이 말씀을 꼭 기억하십시다.
"다 지나가리라"
이 세상에 영원히 머무는 것은 없습니다.
내일은 새로운 기회가 주어질 것입니다.
내일은 새로운 힘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내일은 새로운 희망이 주어집니다.
내일은 새날이 될 것입니다. 인생의 새날이 전개될 것입니다.
며칠 전에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님 한 분이 저를 찾아와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이 경험 하나를 이야기하는 것
을 들었습니다. 하루는 어느 젊은이를 태우고 춘천까지 갈 일이 있어서 새로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있는 길로
달리는데 길은 울퉁불퉁하고 앞에 달리는 차가 일으키는 먼지 때문에 앞이 보이지 않고 날씨는 더워서 문을 여
니 먼지가 차 안으로 들어와서 거의 숨을 쉬기도 어려운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 기사는 피곤한데다가 길이 나쁘고 먼지를 뒤집어 쓰게 되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짜증이 났습니다. 그래
서 신경질을 부리고 욕을 퍼부었습니다. 그때 차에 타고 있던 젊은이가 "아저씨, 이까짓 것을 가지고 열을 내세
요?"하고 말을 했습니다. 이 말에 그난 이 기사는 자극을 받았습니다. "아, 내가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서 이 젊
은이한테 챙피한 일을 했구나", 스스로 부끄러움을 면치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춘천에서 돌아올 때 사정은
여전했지만 마음이 가라앉아 유쾌하게 집에까지 돌아 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 기사님 하시는 말씀이 그 이후부터는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이까짓걸 가지고 열
을 내?"하고 혼잣말을 하면 마음 속에 거품처럼 일어나던 복잡한 생각이 언제 사라지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사
실 우리 가운데 아무 것도 아닌 것 가지고 짜증을 내고, 야단을 하고, 고민을 하고, 실망을 하고, 번민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지나고 보면 별것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책에서 이런 이야기 하나를 읽었습니다. 오래 전에 기차를 타고 처음으로 여행을 해 본 어느 여자의 이야기입
니다. 이 여자는 처음으로 기차를 타서 그런지 자기 자리를 겨우 찾아서 지정된 자리에 앉자마자 창문으로 꼭
알맞을 정도의 밖의 공기가 들어오도록 조정을 하느라고 아주 부산을 떱니다. 문을 여니 너무 넓어져서 좁게
하려니 또 너무 좁아지고 다시 넓히고 앉아보니 바람이 너무 세차게 들어오는 것 같아 다시 일어나 창문을 좁
히니 너무 답답한 것 같아 다시 일어나 창문을 아까보니 조금 넓게 엽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조정이 되니까 그 다음에는 커어텐을 가지고 올렸다가는 내렸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들어서
다시 올리고 꼭 알맞게 빛이 들어오도록 조절하느라 한참동안 애를 썼습니다.
그 다음에는 여행 가방을 가방을 선반에 올려 놓아야 하는데 꼭 알맞게 자리에 정돈하느라고 의자 위에 올라서
서 땀을 흘리며 열심히 가방을 맞춰 놓았습니다. 그리고 모처럼 여행할 때 쓰느라고 사서 처음으로 쓰고 나온
모자가 상하지 않게시리 간수하느라고 여기 얹어 보았다. 마음이 안놓여서 낮은 가방위에 놓아 보기도 합니
다.
기차의 속력이 달라지면서 가방이 움직이니까 온 신경이 모자에 쏠려 있어서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다시 선반에서 내려서 옷을 거는데 걸어 봅니다. 바람에 날리니까 무릎 위에다 올려놓아 보기도 합니다. 그리
고 거울과 빗을 꺼내더니 그동안 정돈하느라고 헝틀어진 머리를 정성들여 빗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모든 준비를 다 마치고 이제는 거의 안정된 자세로 평안히 앉으려고 하는데 차장이 그녀에게 다가와
서 "아주머니 다음 정거장이 내리실 역입니다"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기차에서 내리는 그 여인은 혼자서 이렇
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금방 내릴줄 알았으면 쓸데없이 그 수선을 떨지 말걸 그랬네!" 하더랍니다.
이 이야기에서 저는 많은 교훈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가는 인생이란 여행을은 따지면 보면 잠깐입니다. 모세
의 기도대로 "인생이 70이요 혹 강건하면 80이라도 신속히 가니 날아가나이다"했습니다.
아무리 잘 살아도 인생은 짧은 한 기간입니다. 사소한 일에 법석떨 가치가 없습니다. 인생이 얼마나 짧은가를
생각하면 우리에게 사실상 필요없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런가 하면 아주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일
때문에 미루어 버리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제 인생의 60이라는 고개를 넘어섰습니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더 심각하게 생각되는 것이 많
이 있습니다. 전에는 남은 세월이 많은 줄 알고 이 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려는 때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었습
니다. 그런데 요사이 와서는 저 자신이 많은 변화를 가져봅니다. 이제부터 내게 남은 세월이 얼마나 될까?
인생의 오전이 아니라 오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가 꼭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하는데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공연한데 시간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있어도 되고 없어도 상관없는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습니
다. 이 여행 길이 얼마나 짧은가를 생각하면 중요하지 않은 일 때문에 걱정할 것 없습니다. 바쁜일 많은데 네
가 옳다 내가 옳다 다투고 싶지도 않습니다. 우물우물하며 지내다가 인생의 기차에서 내리게 될 시간이 다가오
기 때문입니다.
구약 욥기에 보면 이런 귀절이 있습니다. "인생은 고난을 위하여 났나니 불티가 위로 날음 같으니라"(욥 5:7)
모든 사람은 누구나 형편과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어떤 모양으로든지 시련을 겪습니다. 그러나 인생이 늘 고
난과 위기와 역경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의 대부분은 비교적 조용한 편입니다. 불행한 고난, 위기와 역경
보다는 기쁨과 행복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위기와 역경 그리고 고난은 우리 기억에 오래 남아 있기 때
문에 우리 인생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시련은 여러가지 형태로 닥쳐옵니다. 그것이 어려운 병일 수도 있습니다. 불행해진 결혼생활일 수도 있습니
다. 직장을 잃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랑하는 이의 죽임일 수도 있습니다. 뜻하지 않은 교통 사고일 수도
있습니다. 금전적인 손실일 수도 있습니다. 친구의 배신일 수도 있습니다. 심한 비난일 수도 있습니다. 부당한
판단으로 닥쳐올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순전히 인생의 권태일 수도 있습니다. 시련은 여러가지 형태로 여러가
지 방법으로 오는데 결국은 모든 사람에게 다 옵니다. 그러므로 "이 어려움이 닥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
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닥치는 고난이 사실은 축복이 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한 어
부가 두 아들을 데리고 낚시하러 바다에 나아갔습니다. 여느날처럼 어머니는 신창까지 나가서 식구들을 배웅
하고 많은 고기를 낚아 가지고 평안히 돌아오기를 빌었습니다. 오후가 되면서 바람이 부면서 높은 파도가 일
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어부와 두 아들이 탄 배는 곤두박질을 하시 시작하였습니다. 말할 수 없는 어려운 지경
에 이르렀습니다.
한편 집에서는 아궁이에 잡힌 불이 잘못되어 강한 바람에 불이 번져 몇가지 옷만 남기고는 집 한채가 다 타 버
리고 말았습니다. 이때 겨우 아버지와 두 아들은 배를 저어 해변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해변에서는 어머니
가 불이 났다는 슬픈 소식을 가족에게 알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남편을 만난 아내는 눈물을 흘리며 달려가서 "여보! 불이 나서 우리 집이 몽땅 타버렸어요. 우린 이제 남은 것
은 아무 것도 없어요"하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그 말에 별로 놀라지도 않았습니다. 아내는 안타깝
게 하는 말이 "여보! 제 말이 안들려요?"
그때 남편 대답이 "응, 나도 들었소. 하지만 몇 시간 전에 우리는 파도가 높게 이는 바다에서 길을 잃고 죽을 뻔
했소. 등대불도 꺼져버리고 보이지 않았소. 그때 우리는 죽음을 각오했었소. 그런데 멀리서 희미하게 노란불
이 보였소. 그러더니 점점 더 커지는거요. 우리는 배의 방향을 바꾸어 있는 힘을 다해 그 빛이 있는 방향으로
노를 저었소. 그래서 여기까지 온거요 우리 집이 처음 불타기 시작할 때 본 것이 그 희미한 빛이었구려. 한참
탈 때는 마치 온 해안이 다 대낮처럼 밝았어요. 우리 집을 태운 그 불 때문에 우리 목숨을 구한거요"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집이 불타듯이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을 얻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
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돌로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감정이 있고 약점이 있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한
편 힘도 있고 장점도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 앞에 닥친 고난을 견디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지만 참아낼 수도 있
습니다. 이것은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고난이 닥칠 때 나 혼자 당하는 것 같지만 실제는 하나님
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요셉이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갔으나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다니엘이 믿음 지키다가 사자굴에 던
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자가 다니엘을 해치지 못했습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다고 풀무불에 던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저희는 머리카
락 하나도 타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그들과 함께 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 43:1절 이하에 말씀합
니다.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
로 지날 때에 내가 함께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치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도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이사야서 41:10절 말씀을 봅시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
라 내가 너를 굳세계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여러분 이 하나님의 약속을 꼭 그대로 믿으십니까?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능히 이기고도 남을 수 있는 힘을 주
실 것을 믿습니다.
'◑δεδομένα 18,185편 ◑ > उपदेश सामग्री 16,731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도인의 언어생활! (약 3:2-6) (0) | 2021.12.16 |
---|---|
뒤로 돌아서지 마라(눅 9:57-62) / 이종윤 목사 (0) | 2021.12.16 |
두려움이 올 때! (수 1:9) (0) | 2021.12.16 |
움직이지 않는 소망 / 히브리서 10:19∼25 (0) | 2021.12.16 |
사랑의 3대 정의 (0) | 2021.12.1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