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 올 때
여호수아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오늘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가장 무거운 십자가는 염려하는 일입니다. 걱정, 불안, 두려움은 오늘 현대인들이 안고 살아가야 하는 십자가입니다. 매사가 염려입니다. 하루도 염려 없이 살날이 없습니다. 아이들 걱정이 태산입니다. 요즘은 유괴범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안심하고 학교에 보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학교 파할 시간이 되면 학교까지 가서 데려와야 합니다. 처녀들까지 무자비하게 유괴합니다. 참 무서운 세상입니다. 사람이 무서운 사회는 건강성을 잃은 사회입니다.
사업하는 일도 불안과 걱정이 앞섭니다. 지금은 불경기라서 하루하루를 겨우 지탱해 나갑니다. 염려가 보통이 아닙니다. 건강이 또 염려입니다. 오늘 보면 젊은이들이 넘어지고 있습니다. 속수무책입니다. 보통일이 아닙니다. 이것이 모두 오늘 현대인들에게 주어진 십자가입니다. 동물에게는 이 염려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간만이 염려하고 위궤양에 걸리고 수면제를 먹어야 잠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염려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성경 전체에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이 360번이나 나옵니다. 이 문제는 그 옛날에도 주어졌던 십자가입니다. 성경을 보면 모세가 갑자기 죽습니다. 상상도 못한 일입니다. 그때 하나님은 갑자기 여호수아에게 네가 이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내가 어떻게 이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에 들어갑니까.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해 오고 염려가 오고 불안함이 엄습해 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두려워 말라, 염려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용기를 주시는 격려의 말씀입니까. 여호수아는 이 힘으로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을 들어갑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좋은 재산은 자신감입니다. 이 자신감은 재산 중 재산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입니까. 믿음은 자신감을 갖는 일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은 내게 자신감을 주십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현재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고, 미래에 대해서, 종말 앞에서, 무지 앞에서, 운명 앞에서, 죽음 앞에서 자신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감 갖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사람이 이 자신감을 잃고 믿음을 잃으면 곧 불안과 염려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이 불안하게 하는 요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그 요소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하나는 “나는 혼자다 생각될 때”입니다.
지금 나는 혼자다 생각될 때가 약해지고 불안해 지는 때입니다. 엘리야가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 때는 이방선지자 850명을 혼자 싸워서 이겼습니다. 그때 얼마나 자신만만했는지 모릅니다. 성경을 보면 아주 통쾌하게 이깁니다. 엘리야의 용기가 충천합니다. 그런데 이세벨이 엘리야를 향해서 이를 갑니다. 그리고 사신을 보내어 말하기를 “내일 이맘때 네 운명도 저 사람들과 같이 만들겠다”는 전갈을 보내왔습니다. 그때 엘리야는 비로소 눈을 뜨고 보니까 자기 혼자인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순간 그는 용기를 잃습니다. 믿음을 잃습니다.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그 당당하던 모습을 벗고 이세벨을 피해서 도망을 갑니다. 사람은 “나 혼자다”하고 느낄 때 순간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그때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왜 너 혼자냐, 아직 바알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 7천명이나 있다”고 말씀해 줍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는 방법이 많이 세련되어졌습니다. 옛날에는 넘어지게 하고 깨지고 부러지게 했는데 오늘은 그런 서툰 방법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오늘 사탄이 구사하는 방법은 우리 마음속에 자꾸만 “너는 혼자야”라는 말로 속삭여 줍니다. 그래서 우리들로 하여금 외롭게 만들고 불안하게 만들고 겁나게 만들어 일을 제대로 못하게 합니다. 이것이 불안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어려서 밤에 교회에 가려면 조그만 동산을 넘어야 했습니다. 캄캄한 밤 그 동산을 넘는 것이 늘 문제였습니다. 혼자서 깜깜한 밤에 그 동산을 넘으려면 언제나 사탄은 내 마음속에 자꾸만 무서운 마음을 증가시켰습니다. 그래서 더 긴장합니다. 누가 뒤를 쫓아오는 소리가 납니다. 바람소리가 이상하게 들립니다. 사탄은 그런 마음을 주어서 교회에 가질 못하게 했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피해 도망하다가 광야에서 혼자 잠을 잡니다. 생전 처음 집을 떠나서 광야에서 처량하게 웅크리고 누워서 잠을 잡니다. 그러니 그 밤에 잠을 잘 수 있습니까. 그러니 그 밤이 얼마나 외롭고 고독했겠습니까. 그때 하나님이 환상으로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그 말씀을 듣고 보니까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은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천사는 이곳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야곱이 “알고 보니 나 혼자가 아니었구나”하고 깨닫습니다. 그래서 야곱이 그곳을 벧엘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내가 여기 있기 전에 벌써 하나님은 계셨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혼자다 할 때 불안함이 엄습해 옵니다.
또 “장래가 불확실할 때” 두려움이 옵니다.
살아가다 보면 때로 장래가 막연할 때가 있습니다. 장래가 불안할 때가 있습니다. 자식들은 크고 빚은 늘고 집세는 올려달라고 하고 감당은 못하겠고 현실은 기댈 곳이 없고 가족들은 모두 나만 쳐다보고 있을 때 이때가 불안이 오고 두려움이 올 때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45정 56도“시대라고 합니다. 오늘은 45세면 정년시대이고 그런데 56세까지 직장 생활하는 사람은 도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45정 56도“라고 합니다. 오늘은 모두 45세면 직장에서 밀려납니다. 그러니 장래가 불안합니다. 아이들은 아직 크고 있는데 벌써 퇴직해야 합니다. 그러니 소화가 제대로 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 현대인들은 모두 위궤양에 걸려있고 수면제가 있어야 잠을 잘 수 있고 술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는 시대입니다.
오늘은 세상이 그러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덩달아 불안하게 살아가는 때입니다. 믿음은 있는데 그 믿음의 기초가 매우 부실하고 취약해서 그 차원을 넘지를 못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약한가 조사를 해 보았습니다. 그리스도인 1,000명을 놓고 신앙조사를 하면서 물었습니다. 이름과 운명과 상관있다고 보느냐고 물으니 30%가 상관있다고 응답했습니다. 결혼하기 전에 궁합을 보는데 얼마나 신뢰하느냐고 물으니 35.5% 신뢰한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면 궁합이 나쁘게 나오면 결혼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니 안하겠다고 응답한 사람이 28%나 나왔습니다. 그리고 선조의 묏자리가 자손의 번영과 얼마나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25,7%가 상관있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들도 덩달아 장래가 불안한 것입니다. 확신의 근거가 이렇게 약하니까 함께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을 가리켜서 혼돈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또 “사람이 죄를 범했을 때” 불안이 찾아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열매 먹고 나서 얼마나 두려워했습니까. 하나님이 오셨습니다. 오셔서 아담을 찾으십니다. 전 같으면 반가워서 뛰어 나갔을 것인데 이제는 두려워서 피해서 숨었습니다. 나뭇잎으로 자신들을 덮었습니다. 더 멀어지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죄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감을 상실하게 합니다. 그리고 늘 불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죄인은 좇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간다고 했습니다.
수양대군이 형 문종대왕의 충신 6명을 죄 없이 죽였습니다. 그리고 조카 단종을 죽이고 자신이 왕위에 오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이 살아갑니다. 사람을 죽이고 숨어살면 잡히지 않아도 매일 스스로 고문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것이 죄인들의 형벌입니다. 그래서 수양대군이 마음이 편안해지려고 불교를 믿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파고다 공원자리에 절을 지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다고 근본이 치유되지 않는데 편안해 지겠습니까. 그래서 결국 그는 왕위에 오른 지 10년 만에 젊은 나이로 죽었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죄는 사람을 두렵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무력해질 때” 두려움이 엄습해 옵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이 장래가 확실하고 주위에 친구가 많고 직장이 든든하고 건강해도 세상을 비관하고 심지어 우울증에 걸리고 자살해서 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불안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인데도 의기소침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영적 무력증 때문입니다. 사람이 영적으로 무력증에 빠지면 세상이 재미가 없고 의욕이 없고 기쁨이 없고 감격이 없어집니다. 그렇다면 이보다 더 무서운 병이 어디 있습니까. 그래서 이것이 무서운 병인 것입니다. 여러분, 이 영적 무력증이 가장 무서운 병입니다.
프랑스 요리 가운데 삶은 개구리 요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요리를 시키면 버너와 냄비를 식탁 위에 올려놓습니다. 그리고 손님이 보는 앞에서 싱싱한 자연산 개구리를 삶습니다. 개구리를 뜨거운 물에 넣으면 튀어나오니까 냄비의 물 온도를 적당하게 해놓고 개구리를 넣습니다. 그리고 냄비에 불을 서서히 집히면 이 개구리들이 기분이 좋아서 헤엄치고 놀고 다닙니다. 그러다 물의 온도가 서서히 올라가면 개구리들이 고스란히 삶아집니다. 이 개구리들은 자신들이 삶아지는 줄도 모르고 따뜻한 물에 취해서 놀다 잠자듯 죽습니다. 이런 사형법이 있으면 좋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참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영적 무력증에 빠지면 이렇게 됩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이런 영적 무력증의 요인들이 참 많습니다. 이 요인들은 우리의 집안에도, 내 마음에도 들어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나는 아직 건강하다” 하는 생각입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무력증에 빠지게 하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만용을 부리고 주먹을 믿게 되고 교만 떨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가 망한 것은 외부 침략으로 망한 것이 아닙니다. 국민들이 비전이 없어졌고 안주하고 목표를 잃었습니다. 그런데도 당시 사람들은 “로마는 영원하다“하고 자만을 떨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로마는 저 밑바닥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로마가 망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당장 먹고 살기 걱정 없음”입니다. 이것이 나를 영적으로 죽이는 무력증의 요소입니다. "살아가는데 아쉬울 것이 없음“. 이것이 영적으로 깊이 잠들게 하는 요인입니다. 미국에 이민 간 어느 부부의사가 이민 가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큰돈을 벌었습니다. 두 아들 모두 일류대학을 나온 엘리트 집안입니다. 살아가는데 걱정이 없습니다. 그때부터 신앙생활이 시들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이 권고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 신앙생활에 회의가 오네요”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계속 나태합니다. 가족끼리 즐기는 생활만 합니다. 그러다 신앙에서 떠났습니다. 이것이 불행이고 저주입니다. 부해짐, 평안해짐, 이것이 냄비 속에 들어간 개구리처럼 영적 무력증에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두 아들이 함께 스포츠카를 타고 달리다 가로수 들이받았습니다. 한 아들은 차가 가로수를 들이받는 충격으로 차에서 튕겨져 나와 죽었고 또 한 아들은 안경이 박살나면서 한눈을 실명하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당장 먹고 살기 걱정 없음”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그것이 사람을 영적으로 무력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재산이 넉넉한 것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때로 우리의 영을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일하지 않게 됩니다. 돈은 있고 일할 필요는 없고 그래서 날마다 찜질방으로, 음식점으로, 사우나로, 낮잠으로, 할 일없이 살아갑니다. 쉽게 말하면 목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망하는 요소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비전을 상실하고 꿈을 잃고 할 일을 잊어버리면 삶을 포기하게 됩니다. 참 무서운 병입니다. 목표가 없고 목적이 없고 삶의 특별한 이유가 없습니다. 이보다 더 큰 병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영적무력증입니다.
세 번째는 “자신의 망각”입니다. 나를 잊어버림 입니다. 내가 지금 왜 사는지, 왜 일을 해야 하는지, 왜 기도를 해야 하는지, 내가 할 일은 무엇인지, 내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이것은 참 위험한 생활입니다. 어느 여성이 투신자살하려고 다리위로 올라가 뛰어내렸습니다. 근처에 있던 청년이 여인을 구하려고 물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은 수영을 못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뛰어내린 것입니다. 물에 빠진 이 청년은 여인을 구하기는커녕 살아나려고 정신없이 헤엄을 치는데 허우적거릴 뿐 자꾸만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합니다. 그때 자살하려고 물에 빠진 여인이 보니까 한사람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순간 자살하려고 뛰어 내렸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청년을 살리자 하고 필사적으로 건져냅니다. 청년이 살려고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이 여인은 비로소 깊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그녀는 비로소 그 순간 잃었던 목적을 되찾게 됩니다.
나를 되찾으면 다 찾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찾으면 나의 무능을 발견하게 되고 잃어버린 목적도 찾게 되고 살아야 하는 이유도 찾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만나게 됩니다. 살이 썩으면 감각이 없어집니다. 이미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새 살이 나오면 몹시 아픕니다. 감각이 예민해져서 그렇습니다. 살아났다는 말입니다.
본문을 보십시오. 모세가 갑자기 죽었습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입니다. 그때 갑자기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네가 백성을 데리고 가나안으로 데리고 가라”고 하십니다. 두렵고 떨리고 불안했습니다. 자신감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늘 모세 뒤를 따르며 2인자 노릇만 했는데 갑자기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불안하고 걱정되고 감당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막연하고 겁이 나고 앞이 막막했습니다.
여러분 같으면 그때 어떻게 했겠습니까. 여호수아는 그때 심각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매달렸을 것입니다. 호소하고 탄원하고 부르짖었을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너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네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세상에 이 보다 더 큰 빽이 어디 있습니까. 이 같은 배경, 힘, 든든함이 어디 있습니까. 이것이 믿음입니다. 신앙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빽입니다. 우리의 배경입니다. 이 같은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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